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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본격 미스테리. 가끔은 능력 액션로망. 이어서 능력자 계약 배틀 믹스. 마지막은 영지점령 발전 심시티물. 분량 압박 조기종영 위기일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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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키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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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키핑.


 위를 둘러봤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십자가였다.
 그런 거대한 금빛 십자가 위로 무지개를 섞어놓은 것만 같은 빛깔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햇살을 그렇게 몽환적인 모습으로 꾸미고 있는 것은 창문마다 수놓아진 스테인드글라스이다. 물끄러미 올려 본 천장에도, 양쪽 벽면에도, 창문이라면 어디에나 그려져 있었다.
 모두 익숙한 것들이다. 지난 한 달간 잠을 청할 때 마다 찾아왔던 곳이니 잊을 수가 없다.
 이곳은 꿈이 시작되는 장소이다.
 어째서인지 꿈을 꿀 때면 나의 시점은 늘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은재는?
 은재는 어떻게 됐을까?
 순간 현실 속에서 보았던 여러 가지가 그림 카드처럼 눈앞을 스친다.
 피. 살점. 시체. 칼. 라이터. 담배연기. 왼손 문신….
 그리고 마지막으로 쓰러진 은재의 모습이 떠올랐다.
 눈을 감기 직전 본 은재는 침대 아래서 미세한 숨을 힘겹게 몰아쉬고 있었다.
 은재 역시 나처럼 그 여자에게 발각됐을까?
 그보다 어째서 내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거지?
 하지만 살아있다고 해서 안심하긴 이르다. 어쩌면 바로 지금 가면의 여자가 내 몸에 칼날을 쑤셔 넣으려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혹은 아무도 모르게 날 자동차 트렁크에 넣고 어딘가 깊은 산속에 매장 하러가는 길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난 꿈속에서 죽어 버릴 테지.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가 아직 살아있다면, 은재도 무사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과연 언제까지 무사할 것인가이다.
 제길! 그렇게 외치려 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여전히 꿈속에서 난 생명이 아닌 하나의 시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오히려 나의 마음을 더욱 괴롭게 조여 오는 올가미처럼 느껴진다. 현실의 내가, 현실의 은재가, 총을 든 미치광이와 함께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하고, 주위를 볼 수 있는 내가 그런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나에게 소중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런 이상한 꿈속에 묶여 있을 뿐인 것이다.
 빠져나가야 해.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의 의지로 현실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현실의 누군가가 깨우거나, 현실의 내 육체가 스스로 일어나기 전까진 빠져나갈 수 없다.
 난 살해 위협에 휩싸인 체 꿈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일단 방법을 찾아보자. 분명 이곳을 벗어날 방법이 있을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교회에 흔히 있는 여럿이 앉을 수 있는 긴 의자들이 보인다. 내가 서있는 십자가 앞을 기준으로 저 멀리 보이는 정문까지 쭉 이어진 가운데 길을 제외한 양쪽을 모두 그 의자들이 규칙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수많은 빈자리들 사이에서 문뜩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길고 고운 금발의 머리카락.
 기도하듯 모은 두 손 너머로는 검고 긴 속눈썹이 보인다.
 아름다운 녹색 치마를 입고 그곳에 앉아 있는 소녀.
 그녀는 분명.
 장미의 기사, 샤를리앙이었다. 


 하늘이 높다.
 바람은 시원하게 분다.
 대리석으로 만든 타일 바닥은 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맑은 소리를 만들었다.
 교회를 나온 샤를리앙은 그렇게 낮은 굽의 구두를 옮기며 걷고 있었다. 따스하게 불어오는 여름 바람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 주름이 낮게 한들거렸다. 그렇게 바람은 샤를에게 장난을 친 뒤 거리의 가로수들 사이로 사라졌다. 조용하고 평화로우며, 한가로운 아침이었다.
 난 샤를이 향할 곳을 알고 있다.
 그녀는 언제나 이렇게 아침의 기도를 드린 뒤, 왕성으로 향했다. 다른 기사들이라면 하인을 대동하거나 말을 타고 이동하겠지만 샤를은 혼자서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조용한 성격 때문인지 누군가와 말을 하는 것도 보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언제나 혼자이길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한적한 거리를 혼자 걷고 있다. 난 바람이라도 된 것처럼 그런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이 거리를 쭉 걷다가 광장을 지나칠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빌은 광장에서 죽었다. 시체 보관소를 습격해 경비원을 살해한 여자는 분명 내가 그 빌 레베톤이라고 생각하는 시체의 목을 잘라가려 했다. 모든 상황이 흩어진 퍼즐 조각처럼 머릿속에서 아무렇게나 맴돌기만 했지만, 한 가지 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단서가 있다면 반드시 광장에 있을 것이다.
 문뜩 샤를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광장이 가까워진 것이다.
 급한 마음에 난 그녀보다 빨리 시점을 당겨 먼저 광장에 도착했다.
 높이 하늘을 향해 물을 뿜어내고 있는 분수대.
 그런 분수대 앞에서 멋지게 칼을 뽑아든 버킨 포린테 국왕의 동상이 보인다.
 빌은 죽기 직전까지도 그 동상의 바로 아래에서 하프를 연주하며 앉아있었다.
 난 그쪽을 향해 시점을 확대해 바닥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다. 그저 대리석 타일 바닥일 뿐이다. 원처럼 넓은광장의 주위로는 상가 건물들이 밀집해 있었다. 어디를 조사해야 하지? 아니. 조사할 곳은 없다. 빌은 언제나 여기 있었을 뿐이다. 그는 아무 곳도 가지 않는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순간에도 내 몸이 죽어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은재가 죽어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초조한 마음에 시야를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한줄기 돌풍이라도 된 것처럼 광장의 주점 내부를 휘감고 2층 창문으로 빠져나왔다. 그렇게 내질러져 식당으로 들어간 뒤 모든 것을 훑어보고 빠져나와 또 다른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빠져나온다.
 없다.
 아무 것도 없다.
 아니.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 상황을 모르겠고, 이 꿈을 모르겠다.
 그녀는 왜 빌의 목을 잘랐을까?
 간단하다. 결론은 두 가지이다.
 누군가 그의 목을 원하거나, 누군가가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
 원하는 자는 짐작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의 얼굴을 보려는 자는 누구지?
 그 생각을 하려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져 버렸다.
 세상에 우연이 없다면 빌의 얼굴을 확인하려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그것은.
 그것은 바로, …나였다.
 그렇게 멍하니 엎질러진 생각들을 정리하는데.
 문뜩 저 멀리서 질주해 오는 마차 한대가 내 시점을 어지럽혀 왔다.
 놀랍게도 그 마차는, 빌을 치였던 그 때의 바로 그 마차였다.
 마차는 광장을 가로지르며 미칠 듯이 달린다.
 그리고 그와 같은 반대편 동선에서 샤를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마차를 발견하지 못하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이대로 있으면.
 그녀도 빌처럼 죽어버린다. 


 그것은 한 자루의 창이다.
 창은 가장 치명적이고 날카롭게 앞으로 내질러지는 무기이다.
 상대방을 찌르고, 꿰뚫어서, 마침내 목숨까지 앗아가는 치명적인 살인 도구. 
 …아니. 아니다. 그것은 창 따위의 단순한 무기가 아니였다.
 마치 창처럼 날카롭게 내질러지고 있었지만, 더욱 더 치명적으로 달리고 있다.
 그것은.
 네 마리의 흑마와.
 검은 망토의 사신과도 같은 마부를 앞 새운 칠흑의 마차였다.
 그런 사신의 마차가 미친 듯이 광장을 질주하고 있었다. 한가로운 아침을 거닐던 수많은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좌우로 갈라진다. 익숙하다. 마차는 그렇게 미친 듯이 질주해서 거리 악사의 평온을 짓밟았었다. 그리고 그런 마차가, 이번엔 샤를리앙을 향해 달리고 있다.
 막아야 한다.
 그렇게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난 그런 본능을 방패로 삼아 마차의 앞으로 시점을 옮겼다. 달리는 말이 차올리는 타일 바닥의 먼지가 미친 듯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렇게 마차는 내 시야를 꿰뚫고 보이지 않는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 떠올리기 싫은 직감이 마음속에서 표면으로 솟아올랐다.
 저 마차를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애써 그런 생각을 지워가며 시점을 돌려 마차의 뒤를 쫓았다.
 마차를 통과하여 내달려 그것보다 먼저 샤를의 눈앞으로 도착했다.
 차갑게 굳은 표정.
 한들거리는 바람에 금빛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녀는 그렇게 가만히 서서 마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겁에 질려 굳어 버린 걸까? 아니. 그 감정은 겁이 아니라 냉소에 가깝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그렇게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샤를은 단지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가만히 서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친 듯이 타일 바닥을 울리며 달려오는 마차. 그런 마차가 이제 코앞이다.
 죽을지도 모른다.
 죽을 것이다.
 아니. 틀림없이 이대로라면 그녀는 죽는다!
 난 미칠 듯이 요동치는 마음을 붙잡으며 시점으로써 그런 샤를리앙의 앞을 막아섰다. 이 마차에 그녀가 죽는다면, 내 꿈과, 내 현실이 더욱 뒤죽박죽이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검은 마차는.
 그런 날 마치 영혼처럼 지나쳐 내 시야의 뒤편으로 사라진다.
 이어질 뻔 한 결말에 난 체념하며 시점을 질끈 감아 버렸다.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나란 존재, 아니. 나란 시점이 사라져 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런 기분 속에서 높이 내질러지는 시민들의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여전히 울려 퍼지는 마차가 달리는 소리. 비명에 묻힌 그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지금 감았던 시점을 뜨고, 뒤를 돌아보면 그녀가 있을 것이다.
 짓눌린 꽃잎처럼 마차에 뭉개진 고운 모습의 그녀가 피를 흘리고 있을 것이다.
 돌아 볼 수 없다. 아니, 돌아보기가 싫다.
 하지만 어둠 너머로 느껴지는 무엇인가에 시점을 서서히 떴다. 
 빛이. 
 반사되는 빛이 시점을 어지럽힌다.
 그런 반사광을 만들어내고 있는 물건은 햇살에 번뜩이는 검이다.
 검은 내 시점 뒤쪽에서부터 찔러 들어와, 나의 시점 앞쪽으로 반쯤 나와 있었다. 그것은 마치 등 뒤에서 찔러져서, 내 복부로 튀어나온 것을 내려다보는 끔찍한 기분이었다. 그런 섬뜩함에 놀라 황급히 시점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시점을 일그렸다.
 샤를이. 놈의, 마부의 검을 옆구리로 흘려보내고 내 시점 앞에 서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피했던 검이 내 시점을 찌르고 넘어왔던 것이다. 저 멀리 마부가 뛰어내린 마차가 보인다. 마차는 아무렇게나 흔들리며, 광장을 지나쳐, 보이지 않는 골목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당신은 쥴리어스 로즌의 개로군요.”
 샤를은 아슬아슬하게 옆구리를 스친 검을 맨손으로 잡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망토의 마부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있는지, 검 날을 부여잡은 샤를의 손바닥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짧은 순간의 정적.
 그런 정적 너머로 들리는 다른 세계의 것만 같은 비명소리들.
 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국왕의 동상과, 샤를과, 마부만을 남겨두고 저 멀리 흩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물을 뿜는 분수대의 옆에서 난, 충돌하는 두 사람의 시간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짧았던 침묵이 끝나자.
 망토의 마부는 타닥. 타닥! 하고 뒤로 뛰어올라 간격을 벌렸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그런 습격자의 모습을 지켜보던 샤를은 피가 흐르는 왼손으로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그런 치맛자락의 반대편을 쥐고 당겨버린다.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린 피에 붉게 물든 녹색의 치마가 그렇게 무릎 아래로 길게 찢어져 내려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천 조각으로 피가 흐르는 왼손을 싸맸다.
 마부는 그런 빈틈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실력을 알고 있는지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의 싸움은 분명 샤를에게 불리하다.
 상대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 그것도 한손으로 휘두르는 날카로운 검을 쥔 남자였다. 마부 역시 그런 자신의 이점을 잘 아는지 결코 서두르지는 않고 여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샤를은 찢겨져서 거추장스럽게 흘러내린 나머지 치맛자락들을 무릎 위로 묶어 올렸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다리가 그런 치마 아래에서 단단히 타일 바닥을 지탱하고 섰다.
 햇살처럼 쏟아지는 팽팽한 고요와 긴장.
 난 그런 긴장감과 함께 자꾸만 조여드는 시점을 애써 넓히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기가 필요하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무기였다.
 하지만 광장엔 아무 것도 없다. 저 멀리 무기 상인이 자판 위에 늘어놓은 몇 가지 낡은 무기들이 보이긴 했지만, 내가 그것을 들어 샤를에게 던져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그녀 자신이 발견한다 해도, 눈앞의 마부가 그녀를 필사적으로 막아설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난 도대체 뭘 할 수 있는 거야!
 무엇인가 하려 할수록, 그 마음은 더욱 더 큰 무력감이 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그렇게 그저 멍청히 그녀의 피가 흐르는 손을, 샤를을 바라볼 뿐이다.
 그런 멍청하고 제한된 나의 시점 속에서.
 마부는 다시 한 번 검을 들고, 타일 바닥을 밟으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의 검은 먹이를 향해 날카롭게 쏟아지는 매처럼 치명적이게 앞으로 내뻗어졌다. 샤를은 그런 매의 발톱과 같은 검을 피해 옆으로 몸을 날려보지만, 검 역시 공중에서 뱀처럼 날을 비틀며 샤를의 동작을 추격하고, 따라가서, 마침내 그녀의 어깨를 단숨에 베어내어 버렸다.
 선혈이 여름의 미풍을 타고 공중으로 흩날린다.
 그런 선혈의 너머로 샤를은 몸에 닿는 섬뜩한 검을 느끼며 뒤로 뛰어 올랐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녀의 몸을 반으로 갈라냈을 검이 남은 허공을 베어내며 공중에서 크게 휘둘러진다.
 마부의 입술이 머리에 뒤집어 쓴 후드 아래서 비릿하게 웃었다.
 이대로 다시 한 번 그의 공격이 들어온다면,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무기가 필요해.
 그 소리 없는 중얼거림을 비웃 듯 마부는 다시 피 묻은 검을 들어 올렸다.
 그녀에겐 검이 필요해.
 마부는 검을 치켜들고, 어깨를 부여잡은 샤를을 향해 다시 한 번 돌진한다.
 이대로 있다간 죽어버린단 말이야!
 검이.
 마부의 검이 샤를의 몸을 찔러내기 직전.
 기적이, 믿을 수 없는 일이, 마치 안개와도 같이 일어났다.
 그것이.
 한 줄기 섬광과 함께.
 샤를의 손에 마법이 만들어내는 그림처럼 그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챙―――!!
 날카롭게 광장에 메아리 쳐지는 높고 차가운 검의 파열음.
 망토 아래서 비릿한 웃음을 짓던 마부의 입술은 비정상적으로 일그러진다.
 그런 그를 향해 샤를은 자신의 손에 그려진, 쥐어진 검을 휘둘러서 내리 그었다.
 한 치의 용서도.
 배려도.
 연민도 없는 차가운 동작의 연속.
 그리고 그런 연속된 동작이 비로써 하나의 검무로 완성되는 순간.
 촤아아악! 피는 뒤 쪽에서 뿜어지고 있는 분수대처럼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그러자 망토와 함께 반으로 갈라진 마부의 몸이 힘없이 좌우로 꼬꾸라진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지는 시체.
 그런 시체 너머에서 샤를은 보고 있었다.
 하나의 시점에 불과한 날, 실체가 없는 존재인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왼 손에 들려진 날카롭고 투박한 검.
 그것은.
 나의 바람이 만들어낸 꿈의 무기였다.


 그녀가 정말 내 존재를 알고 있을까?
 허브차가 가득 담긴 찻잔을 들어 올리는 지금도 가끔씩 나와 시점이 마주친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로 날 바라보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대단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단지 우연히 내가 시점으로 위치하는 공간의 다른 것들을 바라보는 것 인지도 몰랐다.
 그녀에게 묻고 싶지만 말할 수가 없다.
 난 여전히 바람처럼 실체가 없는 존재일 뿐이니 말이다.
 공기처럼, 분명 존재는 하지만 눈으로는 증명 될 수 없는 바로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꿈과, 꿈의 난입으로 무너져 버린 현실의 단서가 그녀인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간절히 떠올리고 바랐을 때, 그것은 그녀에게서 현실이 되었다. 단지 검의 모양을 상상하고, 떠올려서 머릿속에 그려냈을 뿐인데, 그것은 이 꿈속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손에서 실제로 그려져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없던 검은 그녀가 마부를 베어낸 직후 증발했다.
 그것은 비유가 아니라, 검은 정말 흩어지는 연기처럼 공간 사이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검은 자연스레 처음부터 이 꿈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물건이 되었다.
 검이 사라진 뒤 녹색 천이 붕대처럼 감겨진 허전한 왼손을 내려다보던 샤를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리고 당황하고, 놀래서,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적어도 그 상황에서 그녀는 그랬어야만 했다. 하지만 비상식적인 광경을 목격했던 그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 묻어나고 있던 느낌.
 그것은 오히려… 담담함이었다.
 그런 그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그녀를 향해서 묻고 싶었다.
 이 꿈의 정체가 뭐지?
 그리고 당신들은 도대체 뭐야?
 허락도 없이 멋대로 내 꿈속에서 살아가고, 멋대로 내 현실로 난입하고.
 멋대로 지긋지긋한 이 시점 앞에 펼쳐진 이 세상과 당신들은 도대체 뭐냔 말이야!
 하지만 목청 것 내지른 외침은 가슴이라고 느껴지는 나의 공간에서 맴돌 뿐이다.
 샤를은 그런 나를 뒤로 하고 걸었다. 얇게 베여 피가 흘러내리는 어깨를 부여잡고, 주위로 몰려들어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가로지르며, 그렇게 그녀는 단지 왕성을 향해 걸어갔다. 죽은 마부의 신원쯤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등 뒤로 조각난 마부를 돌아보진 않았다.
 그렇게 그녀가 비명을 지르고, 놀라는 시민들을 지나치며 왕성의 입구에 다 달았을 때, 그녀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는 한 장의 붉은 꽃잎처럼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곧 성문을 지키고 있던 왕실 근위병들이 그녀를 기사들의 주치의가 있는 건물로 데려갔다.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흰색 예복을 입은 젊은 아가씨는 그런 샤를을 침대에 눕히고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지난 한 달간 꿈을 꾸며 꽤나 많이 왕성을 드나들었지만, 오늘에야 처음 보는 그녀는 왕성의 주치의였다. 그런 그녀는 치료를 위해 샤를의 상의를 조금 내렸다.
 그러자 길고 고운 목선 옆으로 이어진 희고 우화한 어깨가 들어난다.
 그런 아름다운 어깨의 한쪽 구석엔 날카롭고 끔찍하게 베어진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샤를의 호흡이 입술을 타고 뿜어져 나올 때마다, 상처의 틈에서 피도 함께 흘러내린다.
 간단히 상처를 살핀 주치의는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아두었던 가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샤를의 상의로 가져가, 서서히 그녀의 옷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잠시 당황스러움에 머뭇거리던 난 시점을 빼내어 문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아름답게 치장된 왕성 복도의 시점이 되자 긴장이 풀리며 여유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런 여유는 곧 마차의 습격으로 혼란스러워졌던 마음을 가라앉혀줬다.
 그렇게 냉정해진 마음이 되자 현실이 다시 의식 너머에서 전면으로 떠올랐다.
 어쨌든 이 모든 것들은 단지 나의 꿈일 뿐이다.
 난 현실의 나에게 신경을 써야 한다. 현실의 은재에게 신경을 써야한다.
 현실에서 나와 은재의 목숨을 조여오고 있을 살인마에게 신경을 써야한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현실에서의 나의 일상들에게 신경을 써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이 부질없는 생각이란 것을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이 꿈속에서 단서인 샤를을 조사하는 것.
 지금으로썬 내가 할 수 있는 그것에 집중하면 된다.
 그래, 단지, …그것뿐이야.
 그렇게 한참을 자던 샤를이 깨어났을 때, 그녀를 기다린 것은 버킨 포린테 국왕의 부름이었다. 붕대를 감고, 간단한 기사의 예복을 입은 샤를은 왕실 하녀의 도움을 받으며 왕의 서재로 향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알현실에서 만났을 테지만, 포린테 국왕은 언제나 샤를을 신뢰했고 그녀와는 늘 편하게 자신의 서재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 두 사람이 이렇게 서로를 마주보고 허브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큰 상처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야. 그래, 몸은 좀 어때?”
 미성의 질문과 함께 허브차가 가득 담긴 잔을 들어 올리는 이십대의 청년.
 왕은 평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소탈한 복장과 장난 끼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처음 이 꿈속의 젊은 왕을 만났을 때 느낌 감정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연히 이런 중세의 도시를 다스리는 왕은, 늙고, 수염이 난 부류의 남자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덥수룩한 금발 머리의 서글서글한 인상의 왕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와도 같은 느낌이다.
 아니, 실제로 지금의 내게 있어서 그는 친구처럼 익숙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내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왕이다. 
 “단지 어깨를 조금 베였을 뿐입니다.”
 “서재에 들어올 때의 동작을 보니 조금은 아닌 것 같던데?”
 “…걱정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폐하.”
 샤를은 그렇게 말하며 마주 앉은 버킨을 향해 고개를 숙여 목례를 했다.
 그러자 버킨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손 사례를 친다. 
 “그만. 거기까지. 늘 말하지만 샤를 넌 너무 매사에 유연하지 못해.”
 “그렇습니까, 폐하가 그렇게 느끼신다면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여전히 돌아온 깍듯한 대답에 버킨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습격자는 역시 쥴리어스 로즌의 앞잡이들이였겠지?” 
 그런 버킨의 질문에 샤를은 아무렇지도 않게 입술을 움직이며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마치 단어 카드라도 된 것처럼,
 내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와 혼란 속에서 제멋대로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 살해. 네. 레베톤. 자와. 정보원. 왕실. 였습니다. 빌. 인물이. 그자는. -
 난 대면된 진실 앞에서 흔들리는 시점을 다잡으며 그런 카드들을 제 자리에 놓는다.
 마음 속 단어 카드의 완성.
 그러자 내 마음속에서 샤를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네. 그자는 왕실 정보원 빌 레베톤을 살해한 자와 동일 인물이었습니다.” 
 분명한 말이 된 단어들의 나열에 나도 모르게 시점이 떨려왔다.
 그렇게 떨리다가, 흐릿해지고, 다시 분명한 초점이 되어 눈앞의 두 사람을 본다.
 왕실 정보원.
 샤를의 말이 맞다면 그의 정체가,
 미치도록 찾아내려던 빌의 정체가 바로 버킨의 정보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모르겠다.
 단지 모르겠다는 생각만이 마음속에 꽉 들어찰 뿐이었다.
 거리의 악사라고만 여겼던 그가 왕성의 정보원이었고, 그런 정보원은 윈스턴 광장에서 내 시점이 보는 앞에서 죽었다. 그리고 그는 현실에 나타나서 마차에 치였던 것과 동일하게 버스에 치어 다시 한 번 죽었다. 그리고 가면의 여자가 나타나 그런 빌의 목을 잘라가려 했었다. 그리고 여자는, 자신을 목격한 나에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주사를 놓아 잠재워버렸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 지점은 바로 이곳이다.
 빌이 소속된 윈스턴 왕성.
 버킨이 통치하는 포린테 왕국.
 이것은 진짜 나의 꿈일까? 아니면 이곳은 또 다른 세상인가?
 복잡하다.
 다 맞춰 가던 퍼즐 판을 누군가 어지럽힌 것처럼, 생각이 흩어져 버린다.
 그렇게 시점을 조이며 괴로워하고 있는데, 버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튼 정말 골치 아프군. 쥴리어스 녀석! 내 지하 감옥에 잡아 쳐 넣고 말테다!” 
 버킨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왕을 바라보는 샤를은 여전히 딱딱한 표정이다. 
 “한 가지 더 보고드릴 사실이 있습니다.”
 “샤를. 내가 늘 너에게 말하는 거지만, 그냥 편하게 말해도 돼.”
 “…그 말씀은, 명령이십니까?”
 “음. 뭐랄까. 에라, 그래. 명령이야. 명령!”
 “폐하의 뜻이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했지만 샤를은 여전히 기대를 져 버리지 않고 깍듯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쥴리어스의 부하와 교전을 벌일 때, 그것이, 키핑이 일어났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살인마의 가면과,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뱉어내던 말들이 머리를 스친다.
 ‘키핑 실험체를 확보했습니다.’ 난 나도 모르게 시점을 찌푸렸다. 
 “…키핑?”
 버킨이 마치 나를 대신한 것처럼 되묻자 샤를은 예를 취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 제 손에 검이 키핑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니. 분명히 그 말뜻은 말이지….”
 거기까지만 말하고 버킨은 놀란 표정이 되어 일어선다. 
 “그러니까 ‘그’가 지금 여기 있을 수도 있단 말이야?” 
 버킨은 흥분한 표정으로, 샤를의 침착한 얼굴을 뒤로 하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서재의 책장을 지나 날 바라보고, 스치고, 다시 보고, 다시 스쳐 지나가버린다.
 그가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여기 있을 수도 있다고 짐작하는 것.
 그것은, 보이지 않음을 알면서도 버킨이 찾는 그것은….
 바로 나라는 이름의 관찰자, 
 시점이었다. 
  
 
 귀신을 불러온다고 했다.
 그래서 나와 친구들은 책상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서, ‘그래. 나도 그랬었지’ 라고 떠 올릴법한 그런 추억.
 그것이 시작되면 교실의 모든 시선은 우리가 앉은 책상의 노트 위로 집중되곤 했다.
 그렇게 시선을 잡아끈 노트의 중앙엔 커다란 글씨로 - YES/NO - 가 적혀있다.
 당시의 우리들은 그것이 정말로 귀신을 불러온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노트 위로 나와 은재는 서로 마주 앉아 함께 펜을 감싸 쥐고 있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의 나와 은재, 그리고 반의 모든 아이들은 겁에 잔뜩 질려 있곤 했었다.
 눈을 감고.
 노트 위에 원을 그리며 서서히 펜을 돌리기 시작한다.
 교실의 긴장감과 시선들 역시 그런 펜의 축을 따라 회전하며 묘한 고요에 휩싸인다.
 스르륵. 스르륵….
 펜에 짓눌리는 노트의 거친 소리.
 그런 소름 돋는 노트의 비명 너머로 은재가 마른 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지금, 이곳에, 오셨나요?”
 회전하던 축을 벗어나 펜이 움직인다. 
    
  
 어째서 그런 추억이 떠 오른 걸까?
 난 과거를 떠올리게 만든 시점 앞의 노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버킨과 샤를은 서재의 테이블 위에 그런 평범한 노트를 펼쳐두고 마주 앉아 있다.
샤를은 언제나처럼 딱딱하고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그런 샤를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버킨의 표정은 조금 달랐다. 그것은 묘한 긴장감과도 같았고 어떻게 본다면 두려움과도 같았다.
 아니, 아니다.
 그것들 보다는 일종의 경외감과 비슷한 느낌이다.
 버킨은 긴장과 흥분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연신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렇게 열려진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긴장을 털어내고 있는 버킨의 손엔 펜과 잉크가 들려있다. 그것은 샤를이 일기를 쓰던 것과 동일한 종류의 깃털 펜이었는데, 좀 더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펜과 잉크.
 그리고 노트로 무엇을 하려는 거지?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나란 시점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마도 그들이 저 도구들을 모아서 하려는 것은 단 하나 뿐일 것이다.
 의사소통.
 하지만 난 그것이 무리란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단지 관찰할 수밖에 없는 시점 따위인 내가 펜을 들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런 나의 생각을 마치 짐작이라도 하고 있다는 듯, 버킨은 테이블 위에 그것들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봐 샤를, 과연 그가 우리들에게 응답해 올까?”
 짐작이 확신이 되자 나도 모르게 시점을 일그러트렸다.
 그렇게 일그러진 시점 안에서, 서재와 샤를 그리고 버킨의 모습도 구겨져 버린다.
 “죄송합니다. 아직 그가 어떤 성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괴하게 뒤틀리고 구겨진 샤를이 매끄러운 입술을 움직여 그렇게 답했다.
 모든게 구겨져 순식간에 악몽으로 변해버린 나의 꿈 속.
 그런 악몽과도 같은 꿈의 세상은 내가 일그렸던 시점을 폄과 동시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음…. 그렇다면 역시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겠구나.”
 그렇게 말하고 버킨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서재는 여전히 고요에 잠겨있었다. 가끔 소음이 들릴 법도 했지만, 서재가 있는 이곳은 성의 꼭대기인 5층이었고, 밖의 하녀들 역시 극히 소음에 신경 쓰고 있었기에 늘 조용했다.
 버킨은 그런 고요를 깨며 한껏 들이마셨던 숨을 내쉬었다.
 “후우――. 자자! 그럼 어디 한 번 시작해 볼까?”
 그렇게 말한 뒤 테이블 위로 두 팔을 살며시 올린다.
 그리고 기도하듯 양 손을 마주잡고, 잠시 샤를을 바라본 뒤 눈을 지그시 감아 버렸다. 그것은 종교를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인간이라면 누구든 다 알고 있을 동작이었다.
 바로 기도라고 이름 붙어진 행위이다.
 하지만 버킨이 어째서 기도를 하는 거지?
 그는 대체 뭘 하려는 거야?
 그런 의문들에 휩싸이며 시점을 버킨의 앞으로 조금씩 당겨 갔다.
 그 순간.
 보이지 않는, 존재하지 않는 나의 시점 안쪽으로 무엇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꽃잎처럼 나의 안에 떨어져서, 내 마음에 잔잔히 퍼지는 물결처럼 원을 그린다.
 그런 원의 파동은.
 나의 안쪽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이 마음의 파동은….
 분명.
 -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버킨의 …목소리야?
 그런 목소리와 함께 다가 온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시점이 조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시점 안쪽에선, 그 깊은 곳에선 버킨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 퍼진다.
 소름끼치지만 막을 수 없다. 귀를 틀어막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난 그저 시점에 불과한 날 감싸고 퍼지는 이 목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비틀거렸다. 시점이 비틀거렸고,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서재가 비틀거렸으며, 세상이 비틀거렸다.
 그런 흔들리는 서재에, 버킨은 여전히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다.
 - 지금, 이곳에, 오셨습니까?
 시점을 가득 매우는 소름끼치는 목소리.
 난 그런 괴로운 공포감에 결국 창밖으로 시점을 던졌다.
 그것은 마치 자살과 비슷하다.
 하지만 난 그대로 시점을 당기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태양에서 쏟아지는 빛이 시점을 지배한다. 하늘이 보인다. 윈스턴이 내려다보인다.
 나의 꿈들이 내려다보인다. 꿈속의 세상들이 내려다보인다. 미친 듯이 방황한다.
 그런 세상이 아무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마치 색종이를 찢어 붙여 만든 아이의 종이 그림처럼.
 조각조각으로 찢겨지며 끝없이 검은 어둠만을 남기고 떨어져 내린다.
 두려워.
 난 이런 소름끼치는 꿈들이 두렵다.
 아무렇게나 박살나고, 파괴되는 이 꿈들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벗어나고 싶어.
 벗어나고 싶어. 벗어나고 싶어.
 꺼내 줘. 누가 제발 나 좀 이런 미친 꿈의 세상에서 꺼내 줘! 
 “…괜찮아. 괜찮아.” 
 너무나도…. 
 “괜찮아, 시은하.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무나도 그리웠던 목소리.
 덜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붕괴하고, 무너지는 꿈속에서.
 시점에 불과한 내게 은재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단지 꿈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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