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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본격 미스테리. 가끔은 능력 액션로망. 이어서 능력자 계약 배틀 믹스. 마지막은 영지점령 발전 심시티물. 분량 압박 조기종영 위기일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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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82    추천 0   덧글 1    / 2007.10.15 22:23:06
 4. 추락.


 둠이 군림했다.
 마치 늪과 같은 그 어둠은, 발목을 잡고 날 끌어 내린다.
 발버둥 치고, 닿는 것들을 쥐어 잡고, 소리를 질러보지만 빠져 들어갔다.
 그런 소름끼치는 늪의 바닥에서 마침내,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아니, 감고 있던 시점을 떴다.
 늪으로 빨려들었는데, 늪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다. 
 문뜩 올려다본 벽에는 거대한 짐승과 같은 십자가가 날 굽어보고 있었다. 
 사원은 비어 있다.
 아니. 비어 있는 것은 비단 사원뿐만이 아니다.
 왜, 대체 왜 내가 쓰러져버린 걸까?
 스스로에게 던진 그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지금쯤 깜짝 놀란 은재와 채하가 나를 의사에게 데려 갔을까? 아니. 아마 채하는 그 경호원의 손에 이끌려 먼저 학교로 돌아갔을 것이다. 언제나 꿈속에 들어온다면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적어도 죽은 것은 아니다. 이렇게 시점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하지만 어째서야?
 생각해 보려던 그 순간, 샤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가 상처 입던 순간이 마치 필름처럼 시점 앞에 맺혔다.
 샤를에게 어제의 상처가 있다면, 어젯밤은 있는 밤이 된다.
 모두가 거짓이라 했던 그 밤이 사실이 되는 것이다.
 난 시점을 창가로 옮겼다. 
 어차피 빠져나갈 수 없다면, 그것을 확인하면 된다.
 밖에선 비가 쏟아지고 있는지 창문에 물방울이 맺히고 있다. 난 그렇게 가장 높은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맺힌 물방울들을, 통과해 버렸다. 그렇게 나의 시점은 사원을 뚫고 나왔다.
 쏴아아아.
 도시는, 꿈은, 쏟아지는 폭우에 젖어 가고 있다. 바닥으로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왜 이렇게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걸까?
 단지 비가 온다는 걸론 흔들리는 이 기분을 설명할 수 없다.
 그 순간.
 ―――쾅!!!!
 꿈을 찢어낼 듯한 폭음이 날아와, 내가 소속된 공간을 스쳐지나갔다.
 뭐지? 무슨 소리야?
 그렇게 폭발음이 들린 방향을 돌아보았다.
 다음 순간 시점을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폭우 너머.
 왕성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건물 내부는 불길에 휩싸였다.
 마치 짐승과도 같은 화염은 창문을 깨어 부수고, 마침내 폭우마저 삼켜버릴 기세로 미쳐버려 이리저리 비명을 지르며 날 뛰고 있었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있긴 했지만 건물이 석조로 만들어져있고, 불타는 것은 내부였기에 자연 진압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왕성 뒤편에 마련된 별채의 내부는 그렇게 불에 먹혀가고 있다.
 이 건물이라면 분명 샤를을 치료했던 왕성 주치의가 머물던 건물이다. 
 그녀는 무사할까?
 난 좀 더 시점을 하늘로 옮겨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았다.
 기사들이 병사들을 독려하고, 병사들과 하인들이 물동이를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폭발에 튕겨 나가버린 문으로.
 폭발과 화마에 깨어져버린 창문으로.
 연신 물벼락이 뿌려지지만 불길이 쉽게 진정하지 않을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짐승같은 불이군! 발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깔끔한 흰색 콧털이 인상적인 노기사가 성큼성큼 걸어오면 소리쳤다.
 비가 그의 머리칼과 옷가지들을 적셔나갔지만 개의치 않은 모습이다. 그런 그의 등장에 현장을 지휘하고 있던 기사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여 기사의 예를 취해보였다. 그 익숙한 모습에 그를 여러 번 관람했던 지난 꿈의 기억이 떠올랐다. 틀림없이 펫트리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그는, 이곳 윈스턴 왕성 기사단의 기사 단장을 역임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난 곧 그의 곁으로 시점을 내렸다.
 “아, 아직 파악할 수 없습니다. 다만 쾅 하는 소리가 들린 직후….”
 펫트의 흰색 눈썹이 일그러졌다.
 “나이트 로페슈, 혹시 이곳에 있나!”
 그 외침에 기사들의 틈에서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한 남자가 뛰어 나왔다.
 “네! 여기 있습니다!”
 자신감에 찬 목소리였지만, 펫트의 얼굴은 심각하게 구겨져 버린다.
 “네놈과 네 녀석의 병사들은 이곳에서 뭘 하고 있나!”
 “그야 당연히 화재 진압을 돕기 위해서….” 
 결국 펫트는 손에 끼고 있던 강철 장갑을 벗어 로페슈에게 던져 버렸다. 
 얼굴을 강타한 그 충격에, 로페슈는 주춤 거리며 물러섰다. 피가 흘러내린다.
 기사들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는, 펫트의 다음 외침에 묻혀버렸다. 
 “빌어먹을! 당장 성문으로 간다! 녀석들의 목적은 그곳이다!” 
 그제야 로페슈를 필두로 기사들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갔다.
 페트는 이를 갈며 익숙한 이름을 소리쳤다.
 “쥴리어스 로즌, 네놈이 감히!”



 시점을 날려, 왕성을 그대로 통과하였다.
 마치 벽을 뚫고 지나가는 유령처럼 왕성의 중심부를 가르며 직선으로 통과한다. 화려한 방을 꿰뚫고, 하녀들이 청소를 하고 있는 복도를 꿰뚫고, 요리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는 주방마저 꿰뚫어 버린 나의 시점은, 눈 깜짝할 사이에 성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나 굳게 닫힌 성문 내부엔 아무런 병사들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무지 막지한 장갑을 던져버리다니. 
 시점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지만 특별한 침입자는 발견할 수 없다.
 그렇게 주위를 살펴보던 나의 시점에 한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허리에 검을 차고 똑바로 서있는 그의 뒤엔, 성문을 열 수 있는 키가, 보통 보았던 함선의 그것보다 훨씬 거대한 키가 벽에 매달려 있었다. 그 역시 몇 번이고 왕성을 관람하며 본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왕성 문을 열고 닫는, 성문 관리인이다.
 그런 그의 표정 역시 지극히 평화로워 보인다.
 펫트는 분명 누군가가 쳐들어올 것처럼 말했지만, 정작 너무나도 고요하다.
 그가 틀린 걸까?
 그렇게 기다림을 포기하고 샤를이 있을 왕성 내부로 시점을 옮기려는 순간.
 또 다른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 왕성 쪽에서 저벅 저벅 걸어왔다.
 우산을 들고 성문 관리인에게로 다가오는 저 사람은….
 다행이었다.
 그녀는 샤를을 치료해 주었던 왕성의 주치의다.
 혹시라도 폭발에 휩싸여 버렸을까 내심 걱정했었는데, 무사했던 것이다.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성문 관리인은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취해 보였다. 그런 인사에 주치의 역시 살짝 미소하며 화답해 주었다. 곧 관리인의 옆으로 다가온 그녀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했다.
 “화재 현장엔 가보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그 질문에 병사는 등 뒤에 있는 키를 탁탁 두드리며 대답했다.
 “성문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아, 역시 훌륭한 자세에요.”
 “하하, 뭘요. 주치의님이야 말로 늘 수고가 많으십니다.”
 부끄러운지 주치의는 입술을 가리며 살짝 웃었다. 그렇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렇다면 한 가지 수고를 덜어주실래요?”
 “부탁이라면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그럼, 뭐랄까.”
 그리고 생각났다는 듯 박수를 치고 손가락을 뻗었다.
 “그래요. 저 성문을 열어주세요.”
 그 말에 관리인은 성문을 한번 쳐다본 뒤 다시 주치의를 바라봤다.
 “어딜 나가보셔야 하는 겁니까?”
 “그 반대인걸요.”
 그 순간, 무엇인가 이상한 것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주치의의 왼손 뒤쪽으로, 팔목 뒤쪽에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녀가 팔을 직선으로 내리고 있어서 관리인은 절대 발견하지 못하겠지만, 그들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시점인 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뭘까? 저것은 뭐지? 
 길고… 뾰족한 저것은 마치….
 그렇게 주치의의 손목 뒤쪽을 향해 시점을 확대했다.
 시점은 본능적으로 일그러진다.
 가위였다.
 “네?”
 의문 섞인 되물음에 주치의는 다시 한 번 친절하게 대답했다.
 “저쪽에서 들어와야 한다는 말이에요.”
 도망쳐요! 달아나버리라고요! 이대로라면….
 이대로라면 당신은…!
 관리인의 귓가로 시점을 이동시켜, 아무리 그렇게 외치려 해도, 단지 마음 뿐이다.
 난 여전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쳇. 역시 말이 안통 하잖아.”
 거기까지 말하고, 주치의는, 왼손을, 서서히 움직인다.
 “그냥 제가 할게요. 그러니까, 죽어 줘요.”
 성문 관리인은 놀란 표정이 되어 자신의 검을 뽑아 들려고 했다. 하지만 주치의는 미소하며 관리인의 검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슥 밀어서 다시 검 집에 넣으며, 그 왼팔을 휘둘렀다.
 그녀의 팔이, 그녀의 손이, 그녀의 손에 쥐어진 가위가, 채칙처럼 움직인다.
 스으으윽.
 마치 목을 휘감는 듯한 착각이 든다.
 추아아아악!
 그리고 그 착각은.
 성문 관리인의 몸이 피를 뿌리며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끝이났다.
 난 흐릿해지는 시점을 좌 우로 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별채에 불을 지른 범인은, 
 …바로 그녀였다.


 괴물이 입을 열 듯, 성문이 좌우로 펼쳐진다.
 그들은 성문 밖에서 폭우를 맞고 있었다. 입을 가리는 검은 복면을 하고 장검을 들고 있었지만, 윈스턴의 군대와는 달리 갑옷은 입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익숙한 복장이었다. 난 그들의 복장이 마부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들도 암살자가 분명하다.
 하지만, 누구를 암살하려는 거지?
 “고생 많았다. 메리.”
 성문을 넘어 들어온 남자는 무리의 대장으로 보인다.
 “뭘 이정도 가지고 그래, 쥴리어스. 아니, 쥴리. 헤헷.”
 왕성의 주치의는, 아니. 암살단의 일원인 메리는 그렇게 말하며 웃어보였다. 무뚝뚝하게 메리의 머리를 쓰다듬던 쥴리는 곧 등 뒤에서 대기 중인 자신의 부하들을 향해 돌아섰다.
 “곧 버킨의 꼭두각시들이 몰려들 것이다. 너희들의 임무는 최대한 흩어져서 혼자가 되는 것이다. 혼자가 돼서, 꼭두각시들을 한 놈이라도 더 분산시켜라. 그런 뒤에 죽는 것이다.”
 죽는다, 라는 말이 나왔지만 그들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난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자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애초에 죽는 것이란 걸.
 “너희들의 목숨값으로, 버킨과 샤를리앙의 목은 반드시 잘라보이겠다.”
 …뭐라고?
 나도 모르게 시점이 흔들렸다.
 그런 흔들리는 시점 속에서, 그는 부하들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조금전까지 당당했던 그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우리들이 다시 만난 다면 그곳은 지옥이겠지. 자, 움직여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등 뒤의 암살자들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쥴리.”
 메리는 눈을 감고 있는 쥴리의 손을 마주잡았다. 촉감이 느껴졌는지, 쥴리는 눈을 뜨고 자신 앞에 선, 자신보다 조금 작은 키의 메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복면위로 피식 웃었다.
 “우리들도 갈 시간이군.”
 쥴리와 메리는 그렇게 손을 잡고 왕성의 문을 박차고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마침내 건물 내부에 들어가게 된 쥴리는 피식 웃었다.
 “이것이 왕과 여기사의 목숨 값인가.” 
 홀을 가로지르는 눈 앞으로 사슬 갑옷을 입은 수많은 병사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쥴리는 빗방울이 떨이지는 장검을,
 메리는 핏방울이 떨어지는 길쭉한 가위를 들어올린다.
 “죄인은 왕이에요. 하지만 길을 막는다면….” 
 메리의 그 말을, 쥴리가 마무리했다.
 “그 값을 받아 가겠다.”


 
타닥. 타닥.
 바닥을 짓누르며 달려 나간다.
 ――타닥!
 그리고 마침내 바닥을 박차며 날아올랐다.
 그렇게 공중에서 병사의 어깨를 밟으며 착지하며, 순식간에 그의 목으로 가위를 가져갔다. 나의 시점엔 그 장면이 마치 슬로우 테잎처럼 느리게 펼쳐진다. 아주 느리게, 아주 느리게 병사의 목으로 다가간 가위는, 살에 닿는다. 그리고 그 살을 뚫어내고, 혈관을 잘라내고, 마침내 뼈에 닿은 뒤에야 침탈 행위를 멈추고 불쾌한 구멍만을 남긴채, 서서히 빠져나왔다.
 그런 구멍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혈액이 올라온다.
 그리고, 마침내 시점은, 잃어버렸던 시간의 흐름을 되찾았다.
 촤아아아악!
 병사는 목에서 피를 내뿜으며 비틀거렸다. 메리는 그런 병사의 어깨를 발판 삼아 두 번째 희생자를 향해 날아올랐다.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액션 영화를 보듯, 나의 시점은 카메라가 되어 그런 메리의 동작을 뒤쫓고 있었다. 그렇게 메리를 따르다, 한 순간에 돌아보았다.
 문 쪽에선 쥴리가 검을 늘어트리고 달려오고 있다.
 타닥. 타닥. 타닥.
 한 마리의 늑대처럼 돌진한 쥴리는 앞으로 내질러진 발목에 힘을 주며 멈췄다.
 쉬이이이이익!
 달리던 그 기세는 모두가 그의 검에 실렸다. 아니, 기세 자체가 검이 되었다.
 그렇게 검은 하늘을 향하는 용과도 같이 선을 그리며 치켜 올려진다. 그리고 마침내,
 마침내 메리가 목에 가위를 꼽았던 그 병사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그런 부하의 참혹한 죽음을 계단 위에서 내려다 보던 기사는 이를 갈았다.
 “무, 물러서지 마라! 침입자는 고작 두 명이다! 막아라!”
 난 그런 기사를 향해 시점을 옮겼다.
 수 많은 병사들의 머리 위로 날아가, 그들의 어깨를 밟고 있는 메리를 스쳐서,
 마침내 병사들의 가장 뒤쪽에 위치한 그 지휘 기사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 순간.
 쉬익!
 무엇인가가 날 꿰뚫고 지나쳤다.
 그렇게, 가위는, 나의 앞에 서있던 기사의 머리에 정확히 꼽혀버렸다.
 기사는 입을 열지만 말은 새어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꼬꾸라져서, 계단을 굴러내려, 병사들의 뒤에 쳐박혔다.
 지휘관의 시체와 마주한 대열의 뒤쪽에선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런 혼란의 위로, 발목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검을 피해, 메리가 다시 한 번 뛰어 올랐다. 덕분에 검은 메리가 밟고 있던 병사의 목을 쳐버렸다. 몸을 잃은 머리가 공중으로 피를 흩날리며 튕겨진다. 동료의 피를 뒤집어쓴 병사들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하지만 겁을 집어 먹은 병사들 보다, 살의를 뿜어내며 메리와 쥴리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병사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수십 명의 그들은 모두가 간절히 두 암살자의 목숨을 숙원하고 있었다. 
 “쥴리! 위를 봐!”
 그 외침에 쥴리는 자신의 검이 꿰뚫고 있던 병사를 발로 집어 차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 들려있던 장검을 자신의 나머지 손으로 뺏어들었다. 그렇게 그는 양손에 두 자루의 검을 들었다. 다음 순간, 그는 몸을 활처럼 뒤로 당긴 뒤 한 자루를 던져 버렸다.
 화살이다.
 마치 화살과도 같이 검이 돌진한다.
 나의 시점을 꿰뚫고 지나쳐, 마침내 \'그것\'의 강철 끈을 잘라내며 천장에 박혔다.
 다음 순간 거대한 샹들리에는 지상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쿵!!!
 그것은 굉음을 내며 메리가 있던 바닥을 파괴했다. 메리는 아슬 아슬하게 옆으로 피했지만, 우왕자왕하던 병사들은 미쳐 피하지 못하고 으깨져 버렸다.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짓눌리고, 샹들리에의 파편과 병사들의 피가 뒤섞여 사방으로 튀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메리는 죽은 병사의 장검을 주워 들며, 쫓아오는 병사들을 피해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2층의 문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메리는 계단 중간에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열려진 문에선 병사들이 아닌, 수 십명의 기사들이 조소를 보내고 있었다.
 “더 이상 나아갈 곳은 없습니다, 주치의님. 아니, 쥴리어스의 암캐, 인가?”
 그렇게 말한 선두의 기사는 할버드를 치켜 들었다.
 난 그들을 바라보던 시점을 다시 뒤로 당겨 쥴리를 향해갔다.
 쥴리는 앞으로 노도처럼 밀려드는 적들을 베어내고, 넘어트리고, 찔러내며 병사의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그런 그 역시 경미했긴 하지만, 여러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그런 그를 바라보다, 시점을 돌려 다시 메리를 보았다. 메리는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병사들과, 위쪽에서 내려오는 할버드의 기사 사이에서 이곳저곳으로 검을 돌려 겨누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메리는 결국 피식 웃었다.
 “…결국엔, 죽으러 온거야.”
 체념한 듯한 그 말에 계단을 내려오던 기사는 걸음을 멈췄다.
 “현실 직시가 빠르군, 암캐.”
 하지만 메리는 고개를 저으며 검을 떨어트리고, 양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포기하겠다는 건가? 하지만 쥴리어스까지 나온 마당에 포로는 필요없다.”
 “아니, 아니야. 처음 부터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잖아?”
 기사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메리는 활짝 웃으며 손을 꺼내었다.
 “죽으러 온 것은 너희들이란 말이야.”
 그 순간, 기사의 얼굴을 수놓던 여유는 사라졌다.
 “그, 그것은 설마…?!”
 “설마라니, 섭섭한 걸. 이 놈은 \'진짜\'야”
 그리고 양손에 들린 두개의 물건을 가슴 앞으로 들어올렸다.
 “금지되었지만, 한 때 연금술사들이 만들었던 폭탄. 가짜 따위가 아냐!”
 그 외침의 끝에서,
 메리는 양 손에 들고 있던 \'그것\'을 공중에서 충돌시켰다.
 ――쾅!!!!!!
 화염이, 열기가, 충격이, 시점을 강타했다.
 시점이 찢어지는 듯한 그 폭발속에서 쥴리의 외침만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퍼졌다.
 “…메리!!”


 날아 올랐다.
 마침내 하늘에 닿아서야 왕성을 내려다보았다.
 그 폭발이 일어났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그것 밖에 없었다.
 시점 앞을 가득 매우는 화마와 연기를 피해 천장을 꿰뚫고 날아올라 도망치는 것. 
 그렇게 하늘이 되어 이 혼란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저 멀리 아래로 성문에 도착한 페트와 그의 기사들이 보였다. 쓰러진 성문 관리인의 시체를 확인한 그들은 중앙 정원을 지나쳐 쥴리와 메리가 들어섰던 그 정문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다 시점을 이리 저리 돌려보았다. 
 본관 밖의 곳곳에서도 교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성 벽 위에서도, 높게 솟아 오른 시계탑에서도, 싸움은 그렇게 일어나고 있다.
 쾅――!
 다시 한 번 폭음이 들리며 왕성 한 켠의 창문이 터져 나왔다. 왕성을 공격하고 있는 모든 암살자들이 메리와 마찬가지로 폭발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것이 쥴리가 말했던 죽는 다는 것의 의미라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무모한 일이다. 어째서 자신을 희생하는거야? 
 이 모든 것은 마치 중세 전쟁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하지만 이건 결코 영화 따위가 아니다.
 단지 상상을 멈추거나, 정지 버튼을 누른다고 끝나는 허구 따위가 아니다.
 그들은 정말, 정말 나의 눈앞에서 모두가 죽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난 혼란스러운 시점을 되잡으며 움직였다.
 빗속을 가르며 왕성 본관을 향해 다시 한 번 다가갔다. 쥴리의 싸움이 어떻게 됐을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여유가 없었다. 아니, 더 이상 그들의 죽음을 보고 있을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바람처럼 허공을 부유하며 왕성의 가장 꼭대기 층으로 들어섰다.
 왕의 서재엔 아무도 없다.
 난 시점을 왕성에서 빼내어 샤를이 일기를 쓰던 기사단의 숙소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 역시 텅 비어있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샤를은 어디로 가버린 거지?
 방안을 둘러보던 나의 시점은 문뜩 침대 옆 테이블에서 멈춰졌다.
 잉크와 펜. 그리고 일기장.
 그곳엔 샤를의 일기장이 그 흰색 속지를 들어내며 펼쳐져 있었다.
 가장 최근에 머물고 있을 때까지 일기를 쓰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난 시점을 당겨 그런 일기장으로 다가갔다.  

 우리 국가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가장 최근에 새로운 페이지로 넘겼는지, 글은 그 한 줄이 전부였다.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 앞에 적혀있을 내용을 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이 일기장의 페이지를 넘길 손 따윈 가지고 있지 않았다. 또한 남의 일기장을 보는 것은 분명 좋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타인을 관람하는 주제에… 건방진 소리일까?
 ――툭.
 그 순간 시점 안쪽으로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난 이 꽃잎과도 같은 느낌을 경험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 소름끼치는 이 느낌은 분명….
 버킨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니, 시점이 두근거렸다.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난 버킨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다. 이것은 버킨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다.
 두 사람인가? 아니, 세 사람. 네 사람. 일곱 사람. 열 사람.
 끝없이 그 느낌이 올라간다. 그럴수록 시점은 더욱 요동치며 두근거렸다. 
 시점을 따라 세상도 두근 거린다. 마치 세상 자체가 거대한 누군가의 심장 위에 놓여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두근 거리고, 수축하며 끝없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시점이 스스로 움직였다.
 나의 의지가 아닌,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로 나의 시점이 움직인다.
 마치 자석에 끌려가듯 그렇게 허공을 가르며 끌려간다. 샤를의 서재에서 튕겨나가, 왕성의 벽으로 당겨진다. 왕성의 벽에 부딪힐 기세로 날아가 그 벽을 유령처럼 뚫고 진입했다. 그렇게 수십 개의 왕성 내벽을 뚫고,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여, 마침내 그곳에 도착해 버렸다.
 아직도 두근거린다.
 두근거리는 시점을 진정시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부 이곳에 있었다.
 버킨도, 샤를도, 사원의 모든 사람들도, 그들 모두가 이곳에 있다.
 …뭘 하려는 거야?
 난 두근거림이 멈춰가는 시점을 움직여 그들을 살펴보았다.
 단상까지 향하는 길을 백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두 줄로 서로 길게 보고서서, 검을 두 손으로 가슴 앞에 치켜들고 가장 강력하고 절대적인 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뒤쪽으로는 사원에서 보아왔던 수많은 신도들이 흰색의 예복을 입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시점을 앞으로 당기며 그런 기사의 길을 가로 질렀다.
 단 상 위에는 세 명의 사람이 있다.
 버킨은 평소의 소탈한 복장과는 다르게 붉은 털로 만들어진 망토를 걸치고, 머리엔 금빛 왕관을 쓰고 있었다. 그런 진지한 표정의 버킨의 앞으론 샤를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내려다보는 노인은 사원의 대사제이다.
 십자가가 그려진 붉은 망토를 입고, 대사제는 단상의 가장 위에서 버킨과 샤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의식과도 같다. 그리고 그 의식은 끝을 향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버킨 국왕은 천천히 검을 들어올린다.
 “샤를리앙 프란체리아.”
 샤를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왕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그녀의 금발 사이로 짙은 금색 눈동자가 보였다. 그 눈동자는 색이 너무나도 강해서, 아무리 시점을 당겨 살펴보아도 도저히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이로써 당신을 포린테의 키퍼에 봉합니다.”
 그 말을 마친 버킨은 단상 위의 대사제를 올려다보았다.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던 대사제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버킨은 그 날카롭고 치명적인 검을 들어 샤를의 어깨 위로 살며시 내린다.
 고요를 파괴하며.
 문이 벌컥 열린 것은 그때였다.
 “…당장 의식을 멈춰!”
 남자는, 쥴리는 그렇게 외친 뒤 문을 걸어 잠갔다.
 난 시점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 쪽 팔이 없다.
 쾅! 쾅!
 곧 쥴리가 등으로 막아선 문의 뒤편에서 무엇인가가 부딪히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어서 문을 열어라!”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페트의 것이었다. 연신 등을 쳐올리는 그 기세를 온몸으로 내리누르던 쥴리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팔이 떨어져나간 어깨에선 계속해서 피가 흘러내린다. 그런 침입자를 바라보던 버킨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평화를 가장한 짧은 정적이 흘렀다.
 투둑. 투둑.
 어깨를 타고 바닥으로 피가 떨어진다.
 난 그런 끔찍한 모습의 쥴리에게서 시점을 돌려 그를 외면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목소리가 들리는 단상 위를 돌아보았다.
 어째서일까?
 버킨의 눈동자에, 그 푸른 눈동자에 슬픔이 고여 있다.
 “왜 그렇게 어리석은 거야, 쥴리어스.”
 왕의 슬픔을 바라보던 쥴리는 조소하며 장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금이 가기 시작하는 문을 뒤로 하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는 순간이었다. 촤르르륵. 철컥! 철컥!
 단상까지 길을 만들어내고 있던 기사들의 검이 절도 있게 움직였다. 기사들은 가슴 앞으로 새워져 있던 검들을 일제히 돌려 걸음을 땐 쥴리를 향해 겨누었다. 그런 기사들과 쥴리의 사이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던 신도들은 차분한 표정으로 물러서면 자리를 비켜 주었다.
 쥴리는 이를갈며 앞을 막아선 기사들을 보았다.
 그리고, 얼굴을 모두 가린 그들의 투구 사이로 눈빛을 주시했다.
 “여전히 좋은 녀석들을 부하로 두었군요, 폐하.” 
 쥴리의 입이 움직일 때마다 상처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의 양이 많아졌다.
 단상 위에서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대사제는 결국 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한 때 그 좋은 부하들의 지휘관이지 않았나, 쥴리어스!”
 격앙된 감정은 목소리를 타고 퍼진다.
 …그가, 쥴리어스가 윈스턴 기사들의 지휘관이었다고?
 “부질없는 과거일 뿐입니다. 지금의 저는 단지….”
 일그러졌다. 쥴리는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입을 막았다.
 ――쿨럭!
 손가락 사이사이로 검붉은 혈액이 떨어져 내린다. 쥴리는 손을 들어올려 그것을 보았다.
 “…저는 단지 왕의 목을 베어내려는 반역자들의 수장일 뿐입니다.”
 쾅! 쾅! 걸음을 옮기는 쥴리의 등 뒤로, 문은 이제 떨어져 나가기 직전이었다.
 “폐하가, 왕이 점령전쟁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던 그날, 그날 베었어야할 일입니다!”
 그렇게 외치는 쥴리의 입술을 타고 피가 연신 흘러내렸다.
 “이 전쟁은 참여해서는 안 되는 전쟁입니다! 당신은, 폐하는 모두를 죽일 셈입니까!”
 버킨은 여전히 슬픈 얼굴을 들고 쥴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것은 연민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그런 소란 속에서도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샤를은 여전히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마치 영혼이 다른 세계로 빠져나가 버린 것만 같다.
 하지만 미세하게 움직이는 어깨가, 호흡이, 그녀가 아직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우리들에게 개전을 막을 권리는 없어, 쥴리.”
 “그래서, 그래서 당신은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삼아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겁니까!”
 버킨은 자신을 노려보는 쥴리의 그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 샤를의 어깨에 얹어 두었던 검을 천천히 공중으로 들어올린다.
 “진정 당신은 창조자의 체스판 위에서 놀아나는 왕이 되려는 겁니까!”
 버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눈을 감고 검을 계속해서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쥴리는 자신을 막아서는 첫 번째 기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은 맥없이 튕겨진다.
 “너희들은 어째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왕을 따르는 건가!”
 절규했지만 기사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쾅! 굉장한 그 소리와 함께 등 뒤의 문짝도 박살나 버린다. 곧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페트와 그를 따르는 군사들이 잔뜩 움츠리고 있던 물살처럼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거기까지다 반역자!”
 페트가 기사들의 틈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당장 그 미친 짓을 그만두십시오!”
 그렇게 왕에게 외치며 걸어가는 쥴리의 등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천을 찢어내고, 살을 찢어내고, 검은 마침내 쥴리의 복부를 관통하며 튀어나왔다.
 비틀거렸다. 비틀거림을 뒤로 하고 시점을 돌렸다.
 난 그렇게 쓰러지는 쥴리에게서 시점을 돌려 버킨을 보았다.
 그 순간.
 추락이 시작됐다.
 하늘을 향한 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검의 곡선은 언제나 매혹적이다. 하지만 그런 빛나는 검의 움직임이 샤를의 목에 닿았을 때, 그 아름다움이 나의 눈엔 마치 더럽고 역겨운 추악함의 일종으로 보여 졌다. 마침내 날카로운 검의 날은, 샤를의 고운 피부 위로 추락했다.

 서걱.

 살을 잘라내는 소리.

 덜컥.

 잘려진 무엇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곧, 목을 잃은 샤를의 몸은 붉은 피를 사방으로 뿌리며 무너졌다.

 “신이시여.”

 “이제,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버킨의, 왕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날따라 지독히 길었던 나의 꿈은 거기서 끝이났다.
 하지만 그것은, 지독히도 길어질 비틀어진 현실의 시작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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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다리만삼톤 10/16/06:33
으악, 팔이! 배가! 샤를은 어째요! 목이!으악!
으음 ;ㅁ; 갈수록 흥미진진이네요, 항상기대하고있겠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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