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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H by Pa3NDA

이건 말야. …줄 거야.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는 사람에게. 약한 사람을 돕고 그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에게. 착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혼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외로운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아직 누군지 이름은 모르지만. 그 사람에게 줄 거야. ———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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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힌다. 소향의 뒷모습이 점점 좁아져 간다.
감정이 외치고 있었다.
안돼. 두고 갈순 없어.
멈추지 않으면!
하지만 이성은 그걸 용서하지 않았다.
둘이선 무리야. 도망칠 수 없어.
하지만 혼자서는 이길 수 없어!
…그렇다고 내가 있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거기다 소향은 특과다. 특과 역시 나의 적.
그들과 싸우기 위해 난 이렇게 도망치고 있는 거야. 
하지만…
하지만 소향은…

정신차려! ‘약속’을 잊어버린 거야?

페이후가 소향에게 달려드는 순간 엘리베이터의 문은 완전히 닫혔다.
……끝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남은 것은 후회? 아니면 안도감?
모르겠다.
…하지만 됐어.
이걸로 된 거야.
이대로 지하대피소로 빠진 후 미로 같은 지하도로 도망치다 보면 상당한 거리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다시 혼자서 도망치면 된다.
그럼 이번에야 말로 그 누구도 다치는 일 없이……
하지만 이미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싸우고 있다.
다칠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너무나도 낙천적인 사고.
죽을 거다.
거의 틀림없이.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의 생명은 가볍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말도 안될 정도의 저체중.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세상의 어딘 가에선 사람의 평균 수명이 30을 못 넘기는 나라가 있다고. 기아 때문에 태어난 아이들이 반밖에 어른이 되지 못하는 나라가 있다고.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그런 지독할 정도의 비현실감.
하지만 그게 정답.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정당한 생명의 몸무게.
하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비현실적인 이유는, 그 사람들보다 이쪽 사람들이 행복하거나 잘나서가 아니라 단지 단 하나.
그들에겐 없는 갑옷을 하나 뒤집어 쓰고 있어서 일뿐.
TV를 틀어 뉴스를 보면. 먼 나라의 전쟁이. 가까운 이웃의 불행이. 그리고 과대 포장된 시덥잖은 미담이 작게 잘린 규격 틀에 담겨 무감동하기 그지없게 나열된다.
머나먼 후진국에서 하루에 수백 명 단위로 죽어나가는 것과, 게임중독자인 중학생이 난데없이 자기 어머니를 찔러 죽이는 것은, 동급.
…조금만 더 솔직해 지자면, 대다수의 현대인에게 있어선 후자 쪽이 더 심각해 보이겠지. 분명.
마음속의 저울 추가 수백이 아닌 하나에 기울어 지는 언밸런스.
왜 이렇게 무게에 차이가? 생명의 무게? 인간의 무게?
아마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그저 사회의 무게.
스스로의 무게가 아닌 사회라는 구조가 만들어 입혀준 우스꽝스러운 풀풀레이트아머.
분하지만 나의 생각은 페이후와 닮아있다.
그저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페이후의 파워 밸런스의 중심추는 강과 약이지만 자신의 중심추는 선과 악일 뿐이란 것.
언제나 생각한다.
지금 이 세상은 뭔가 잘못되어있다. 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전쟁을 반대하며 의료활동이나 운동을 벌이던 사람들은 군인의 총탄에 간단히 죽어버리고. 평화에 배불러서 보통은 상상하기 힘든 엽기적인 살인을 저지른 꼬마는 정신문제네 미성년자네 하면서 무죄.
미친 게 아닐까.
문제와 답안이 뒤바뀌어 버린 게 아닐까.
100년 전, 아니 50년 전만해도 주변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을지도 모르는 악행도. 지금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집에 숨어서 지독한 욕설을 던질 뿐.
권선징악을 위해 처벌을 원한다고 말은 하지만 행동은 그 누구도 절대 하지 않는.
사회란 시스템은 그 사이에 인권이네 권리네 하면서 훌륭한 갑옷을 죄인에게 걸쳐주면서 용서하는 거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라면서.
왜 그렇게 까지 무책임한 거지? 왜 그렇게 위선적인 거야?
항상 미워할 거리를 찾으면서 왜 진짜 미워할 녀석들은 용서하란 거지?
사회란 시스템은 넓고, 강하며, 그리고 비겁하다.
결국 인간이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기대지 않고 시스템에 기대기 시작하면서 발생하기 시작한 정신착란. 궤도를 잃어버린 모순점들.
그 모순점이 극소수의 득을 위해 썩은 체로 들러붙어있다 는걸 알면서도 구경만 하는 말뿐인 일반인들.
벌받지 않는 악당. 보답 받지 않는 선인. 
악이 애매모호하니까 당연히 선도 애매모호해질 뿐인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정말 지켜야 하는 건 사회라는 껍질을 벗겨버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비겁자들이 아냐.
정말 웃어야 하는 건 사람의 중요한 것의 순위가 뒤바뀌어버린 바보들이 아냐.
………내가 아냐.
정말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은…

———— 그렇지만 이 세상 어딘가엔 ———가 있어요. 그건,
————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는.

‘여기가 아파! 여기가 ‘그건 틀렸어’라고 외치고 있어! 머리만으론 알 수 없어요! 누군가에게 도움 받았을 때의 그 상냥함과 기쁨은!’

———— 약한 사람을 돕고 그 눈물을 닦아 주는.

‘누군가를 위해주는 그런 상냥함을 아는 아이가 절대 나쁜 사람일 리가 없어요.’

———— 착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혼내 줄 수 있는.

‘난 ‘이 서향’이라고 해.’

———— 외로운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넌?’

———— 그런 사람.

응, 나 같은 거 보단 그런 사람이 살아가야 해.
그러니까.
소향이 살아가야 한다고, 난 생각해.
나 같은 이유밖에 없는 사람보단 당신 같은 존재가 훨씬 더 무겁고, 중요해.

하지만. 생각할 뿐.
단지 그것뿐.
난 더러워. 치사하고 비겁해.
검은 변명으로 눈앞을 가리고 있어.
“……어?”
눈이 뜨겁다.
태어나서 단 한번밖에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
혼자가 되어버린 그날처럼.
그때와 같이 지금도 이상하게 눈이 뜨겁다. 아플 정도로.
눈 앞을 가득 매운 무언가에 시선이 흐렸다.
가방을 본다.
모든 게 이 안에 있다.
자신의 존재 의의. 소중한 친구의 잔향. 불행의 상징. 족쇄. 희망의 씨앗. 허무. 가상의 우상.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의 형체화.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의 현실화. 흐릿한 개념.

——— 부탁이야. 이걸…

그리고 약속.
…소향. 만약 당신이 특과만 아니었다면.
특과만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난……
내 행동엔 이유가 필요해. 난 약하니까.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으니까.
어떤 행동에도 이유가 필요한 거야.
하지만…

“난 아직 말하지 못한 게 있어서… 그래서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
그건 매우 그리운 목소리. 지금은 곁에 없는 가장 소중했던 사람의 목소리.

“당신은 말했나요?”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등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도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들렸다.
정말 그리운.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말했다.
————당신은 말했나요. 라고.
내게… 분명히 내게 말했다.
“……난 …나도 아직…”


○○○


“왜, 왜 웃는 거죠!”
“어머 무서워. 살려주세요♥”
수녀는 소풍이라도 나온듯한 분위기였다.
“……”
“왜 그러세요? 허락도 떨어졌으니까 이젠 쏘는 일만 남았잖아요?”
수녀는 스스로 리의 총을 잡고 자신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아무리 저라도 머리에 총알이 박히면 죽어요. 아, 오해하고 계실지도 모르니까 미리 말씀 드리겠는데 전 죽어도 안 터지니까 안심하시길. 거기다 파격 서비스. 지금이라면 이 연약한 수녀의 머리에 총알을 쑤셔 박아도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을게요. 어때요? 두근두근?”
수녀의 말에 노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악취미는 고칠 기미가 안 보이는군.”
수녀가 빙긋이 웃었다. 매우 즐겁다는 듯이.
“정말 쏠 거에요!”
수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디 마음껏.”
노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부탁하고 싶군.”
“……”
총을 든 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손, 떨리고 있습니다만?”
“………”
“역시 무린가요.”
“……크읏.”
“갑작스러운 얘깁니다만. 전 세상에서 노인이 가장 싫어요.”
“에?”
“특히 그 중에서도 이상한 갑옷에 수염을 길게 기른 타입이 제일 싫어. 뭐랄까. 그냥 보고만 있어도 짜증이 밀려오는 그런 기분. 이해하죠?”
수녀는 노골적으로 반대편에 서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어쨌다는 거죠.”
“그 다음으로는 약한 게 싫어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무생물이든.”
“!”
순간 수녀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그 위압감을.
아니 잊은 게 아니다. 어느 순간 사라져있었다.
마치 감춰두기라도 한 듯이.
“그 다음으론 거짓말쟁이가 가장 싫어요. 아쉽게도 당신은 내 가장싫어 순위권의 2등과 3등에 다 포함되는 거 같군요. 킬러 핑크.”
하지만 지금 다시 그 위압감이 풍겨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흔히들 말하는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기’와도 같은 느낌의.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살기’라는 느낌이었다. 
“…무슨.”
수녀는 관자놀이에 겨눠진 총 따위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 듯이 고개를 돌려 리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댔다.
그리고 마치 비밀이야기라도 하듯이 속삭였다.
“사실 당신을 죽이지 말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에?”
“하지만 난 약한 당신이 정말 싫어. 그러니까 팔 하나 정도는.”
너무나 간단히. 순식간에 수녀가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던 리를 떨쳐버렸다. 그리고 바로 리의 왼팔을 잡았다.
“괜찮겠죠?!”
잡힌 손을 향해 수녀는 팔을 휘둘렀다.
수녀의 공격은 지금까지 해온 수도 같은 것이 아닌 무형의 발톱.
공기를 찢어 발기는 진공파가 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너무나 빨랐다. 그리고 너무나 가까웠다.
파할 수 없어!

그 때.
리의 등뒤로.
엘리베이터의 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소향. 엎드려!”
“!?”
리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동시에.
치잉!
유리에 금이 가는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리의 시야는 하얀 빛에 감싸였다.
“크윽!”
수녀는 예상치 못한 타격에 뒤로 도약했다. 리의 팔을 노리던 수녀의 오른손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 올랐다.
“이건… \'비숍\'!”
“아직도 탄환이 남아있는 건가.”
위협하는 야생동물처럼 몸을 숙인 수녀의 옆에서 노인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리는 등 뒤에는 하얀 소녀.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백은색의 총이 입에서 하얀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나기! 왜…”
“나, 나도 아직 말하지 못했어!”
“나기?”
히이라기가 리를 바라봤다.

“나 아직 소향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으니까!”

리가 히이라기를 바라봤다.

“아프잖아!! 젠장!”
두 사람의 사이로 수녀가 다시 달려들었다.
히이라기가 리에게 손을 뻗었다.
“소향, 손을!”
“으, 응!”

두 사람의 손이 겹쳐 졌다.
히이라기의 눈동자는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 해킹(hacking)!

히이라기의 손에서 환한 빛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빛은 리에게 넘어가.
그녀의 팔을 감싼 팔찌로 이어졌다.


○○○


“……눈부셔. 어? 여긴?”
여긴 소향과 내 정신이 이어진 공간. 정도랄까.
“응? 나기? 옆에 있는 거야? 안보여.”
그건 다 이유가…
하지만 지금은 이럴 이야길 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여긴 오래 가지 않을 태니까.
소향. 내 이야길 들어줘.
“으, 응.”
난 당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너무해. 이런 곳에 데리고 와서 시작부터 이상한 사람 취급이라니.”
아니. 당신은 이상해.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거야.
당신의 행동, 그리고 생각.
마치 교과서에나 실려있을 듯한 당신의 도덕관은 대중의 기준에 크게 어긋나 있어.
누구나 다 옳다고 배우지만 실제로 누구 하나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평등해. 불쌍한 사람은 도와야 해. 약한 사람을 우리가 지켜줘야 해.
과연 그럴까? 양심이라는 애매한 기준 위에서 실질적인 메리트가 없는 옳은 일이 사회란 시스템 속에서 과연 옳은 일일까.
만약 한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기부했다면.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게 뭘까. 사회적인 인정? 그런 거라면 좀더 대외적으로 복지향상이라던가 경제발전이라던가 더 그럴싸한 건 얼마든지 있어. 개인적인 만족? 그런 건 취미에 지나지 않아. 취미란에 독서나 낚시 외에 더 이상 쓸게 없으면 써넣으면 돼.  
그런 것 보단.
밑에서 위를 지향하는 것보단 위에서 위를 지향하는 게 훨씬 더 당연하다고 선생과 교과서만 빼고 사회의 모든 것이 다 그렇게 가리키고 있어.
잘 사는 사람은 잘사는 사람끼리 모여서 더 잘살라고. 극소수의 불편한 사람보단 대다수의 건강한 사람이 더 편해야 한다고. 세상의 모든 게 그렇다고 말하고 있어.
사람도 동물이니까. 아무리 고상한 척을 하려고 해도 동물이니까.
약한 것에 대한 의리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무책임한 교육만으로 충분.
……나도 그게 옳다고 생각해.
“아냐. 그 생각은 잘못 됐어.”
응. 당신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래서 솔직히 나도 아직 당신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
그러니까.
“…나기.”
소향은 증명하지 않으면 안돼.
그러니까!


○○○


시간의 흐름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주변의 모든 것이 다시 보이기 시작 했다.
그와 동시에 리는 스스로의 상태이상을 느꼈다.
격양감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머릿속에선 강제로 뿜어져 나오는 뇌내물질에 입안이 텁텁하다.
그녀는 알고 있다. 이 기분을. 이 느낌을.
이건.
각성의 울림이다.
“나기! 이건…”
“소향!”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겹쳤다.
“그러니까 보여줘! 진짜를!!”

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외쳤다.
“승인(consent)!”
팔목의 팔찌가 분열했다.
“폴리모프(polymorph)!!”
팔찌에서 흘러나오는 분홍색의 빛. 그 빛이 몸을 감싼다.
그리고 그 빛은 갑옷이 되어.

———— 그녀는 다시 전사가 되었다.

“뭐?! 변신을!”
리는 날아드는 수녀의 손을 그대로 부여잡았다.
“이야야앗!!”
그리고 그대로 크게 옆으로 돌면서 벽으로 집어 던졌다. 이번에도 역시 시스터는 아까처럼 중심을 잡았다. 하지만.
콰앙!
그대로 달려든 리의 주먹을 피하진 못했다. 양팔을 올려 가드 했지만 중심을 잡아줄 벽이 그것을 견뎌 내지 못했다. 수녀는 벽을 뚫고 방안으로 튕겨 날라갔다.
“코드해제 없이 폴리모프를…?”
상황에 흘러가 자신도 모르게 변신해버렸지만 사실 지금 상황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언리미티드 모드야.”
옆에서 구멍 난 벽을 향해 총을 겨눈 체로 히이라기가 말했다.
“언리미티드?”
“너희들이 장비하고 있는 레플리카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물건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제약이 걸려있지. 카피한 오리지널의 능력을 억제하기 위해. 말 그대로 봉인.”
리의 질문에 멀쩍이서 구경하고 있던 노인이 대신 대답했다.
“지금 상태는 그 봉인을 전부 해제한 상태다. 그래서 폴리모프에도 제약이 없지. 하지만…”
그때 구멍 난 벽에서 검은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왔다. 본능적으로 아까의 수녀 란 건 이해했지만 이건.
눈에 보이질 않는다.
“나기! 뒤로!”
리는 허리춤에 손을 가져댔다. 그러자 자동적으로 벨트부분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다트. 리 전용의 근거리 투척무기다.
손가락 사이에 하나씩 총 6개의 다트가 리의 손에 장진 됐다. 센서에 의지해 상대방의 대략의 위치를 확인, 추측. 연산의 종료와 함께 전부를 적을 향해 던진다. 여기서 또 한번 다트는 장착한 헬멧 속의 매인 관리장치와 연동해 자동으로 적의 위치를 보정한다.
자체 추진제로 인해 선홍색 궤적을 그리며 수녀를 향해 날아간 다트는 자체에 장치되어있는 극소형 봉인디바이더에 인해 원구모양으로 폭발했다.
“이제야 조금은 재미있어지는 거 같군요!”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수녀의 머리카락조차 스치지 못했다.
“!?”
불가능하다. 다트는 적을 쓰러트리기 위한 것이 아닌 발을 묶기 위한 무기다. 적의 주변에서 자동적으로 폭발. 360도 전방위를 향해 마치 산탄총처럼 봉인입자를 뿌려버리는 다트는 파괴력 자체는 미미하더라도 명중률만큼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걸 전부 피했다는 것은.
수녀의 움직임이 리의 계산을 뛰어넘었던가.
혹은 이쪽의 문제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폴리모프를 해도 맞출 수 없는 건 변함이 없나 보죠?”
바로 눈앞에 나타난 수녀의 비웃는 듯한 미소.
“소향!”
나기가 둘의 사이에 끼어들며 백은색의 총을 겨눴다.
치잉!
다시 한번 유리를 깨는듯한 날카로운 소리.
하지만 수녀는 같은 공격을 두 번 당하지 않았다.
총에서 발하는 빛의 사정거리에서 아슬아슬할 정도의 거리만 뒤로 회피했다.
수녀는 회피동작의 종료직후 바로 다시 날아들었다.
히이라기 역시 수녀를 향해 제차 방아쇠를 당겼다.
짤깍.
하지만 총은 빛나지 않았다.
“총알이…”
“체크메이트!”
“나기!”
리는 어깨 갑주에 손을 넣었다. 동시에 어깨 갑주의 일부분이 형태를 재구성 했다. 수녀를 향해 막아서는 리의 손에는 어느샌가 대구경의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KRP-013. 모드선택을 통해 근거리 연사부터 초장거리 저격까지 올레인지로 사용 가능한 또 다른 리의 전용무기.
일명 ‘1200미터 마녀’.
반동 때문에 보통 사람이 쏘면 무조건 팔이 절단되기 때문에 변신 전에는 절대 사용할 수 없는 무기이기도 하다.
리는 그것을 수녀에게 겨눴다.
근거리. 범위대상 넓음. 대상 1(소).
타깃 록 온.
파이어!
콰앙!
권총은 대포와도 같은 소리로 울부짖으며 탄환을 내뱉었다.
“흥!”
이번에도 수녀는 여유롭게 피했다. 하지만 히이라기를 향한 공격은 막을 수 있었다.
“더 이상 당신에게 총은 어울리지 않아요! 집에 가서 스웨터나 마저 짜는 게 어때요?!”
수녀의 회피 후 착지 예정 위치를 계산해서 그 자리를 향해 다시 사격.
“존재를 변질시켜도 당신의 약함은 변하지 않아! 빈틈없는 철갑으로 겉모습만 위장한 체 정작 중요한 싸울 의지를 잊어버린 당신은 총알 없는 총! 검집뿐인 칼!”
하지만 그 공격은 수녀에게 닿질 않았다. 수녀는 바닥 대신 복도의 벽을 타고 다시 공격해 왔다.
“난 과거의 당신과 싸우고 싶었어요! 자비롭게 잔인한 그 상냥한 폭력을! 웃는 얼굴로 적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는 과거의 당신과! 그런데 그 여자의 쓸데없는 한마디에 흔들려서는!”

——— 만약. 만약에.
크리쳐가, 원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약해! 더 이상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은 약해요!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당신의 모습은 지금에선 현실감조차 없을 정도로 흐려! 전사는 싸우는 것만 생각하면 돼! 병사는 이기는 것만 생각하면 돼! 고민도 걱정도 아무 의미가 없어요.
크리쳐들이 사실 보통 사람이라서? 그것도 실험의 피해자라서? 그게 어쨌다는 거죠! 전쟁에서 상대방의 지병부터 가족관계까지 다 신경 쓰면서 싸울 수 있겠어요?! 당신은 수수께끼의 괴생명체들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 당신들의 의미 없이 높은 월급과 보너스도 다 그 행위의 대가야.
싸워요! 이유 같은 건 얼마든지 있으니까!!”
진공의 손톱의 쉴 틈 없는 연격.
리는 팔목부분의 장갑으로 수녀의 공격을 막으며 비어있는 왼손을 다시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그런 건…”
다트가 손가락 사이로 장착되기가 무섭게 그걸 투척했다.
“뭐?” 
“그런 건 몰라! 왜 이유가 필요한 거야! 왜 나중에 열심히 생각해서 행동에 눈을 돌려야 하는 거야! 왜 변명 해야 하는 거야! 마음이 외치고 있으니까! 옳다고! 아니면 틀리다고! 그러니까 행동하는 거잖아! 왜 거기에 이유가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거야!”
바로 눈앞에서 던져진 다트를 수녀는 피하지 않았다.
수녀에게 닿기도 전에 그녀의 손톱에 의해 다 격추돼 버린 것이다.
“그런 걸 본능이라고 하는 거잖아요! 모처럼 인간으로 태어났으니까 조금은 생각 같은 것도 해보는 게 어때요! 자기 자신이 절대적인 기준이라면 마치 자신이 정의라고 외치는 꼴이잖아요!”
하지만 리가 노린 건 적의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뿐.
“그래! 아니, 누구나 그래야 해!”
“단어가 틀렸어! 그런 건 독단! 독선! 이기! 라고 쓰는 거에요! 그런 건 틀렸어요!”
“아니! 그건 자신이라고 쓰는 거야! 스스로를 믿는다는 뜻으로!
자신 조차 납득 못 키면서 가장 중요한 것까지 남한테 맡겨버리면!
싸울 수가!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리는 왼 손바닥을 펼쳐 앞으로 내밀었다.
 “!!”
“공간봉인(field brake)!!”
리의 선언에 각각 다른 방향으로 떨어진 3개의 다트의 모서리가 빛의 선을 이루어 서로를 물었다. 삼각형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선은 수녀를 가둔 체 선홍색 피라미드의 형태를 만들었다. 리의 내밀은 왼팔엔 분홍색 빛의 원구. 리의 봉인형 기술이었다.
수녀는 피라미드에 갇혀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봉인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60초. 평균 40초. 저 수녀라면 조금 더 빠를지도 모른다. 판단을 서둘러야 한다. 다행히 아직도 적들은 저 수녀를 구할 생각은 없는 듯 하다.
평상시라면 봉인선언과 함께 갑주의 모든 에너지는 봉인에 집중, 전소한다. 그 후엔 어떤 움직임도 불가능 해진다.
하지만 지금(unlimited)이라면.
…할 수 있어.
리는 손바닥에서 빛나는 원구를 힘껏 쥐었다. 빛이 마치 고무공처럼 찌부러지면서 주먹의 양 옆으로 비어져 나갔다. 빛은 그대로 계속 길죽하게 늘어지면서 곧 활대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러니까 증명하겠어! 틀리지 않았다고!”
그리고 빛의 활대는 서서히 금속의 재질을 띄기 시작했다.
활줄을 잡아당긴다.
선홍색 빛의 화살이 장진 된다.
망설임은 없다.
브레이커(breaker).
리의 손에서 선홍의 화살이 떠나갔다.
일직선의 빛 줄기가.
피라미드를 꽤 뚫었다.
“…이런 약한 나에게 고맙다고 말해준 사람한테.”
“…소향.”

“……하아. 꽤 괜찮은걸요. 당신처럼 재미있는 상대도 참 오랜만인 거 같아요.”

“?!!”
굳어버린 체로 깨진 피라미드의 조각 속에서 수녀는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아, 전 크리쳐가 가 아니라 조금 다른 종(種)이다 보니. 이런 종류의 공격에는 조금 내성이 강하다고나 할까요. 직접적인 살상력 대신 전 신체능력의 저하. 전신 마비. 뭐 그런 조건을 단 건가요? 역시 열화라고 해도 D는 D로군요. 이런 세세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니.”
수녀는 스커트에 붙은 먼지를 털었다.
“아마 보통이라면 이런걸 맞으면 누구라도 움직이지조차 못할 거에요. 저라도 지금 조금 힘들 정도랄까. 하지만 이런 공격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두 번째니까요.
……전 말이죠. 사실 이래봬도 환자에요. 어떤 빌어먹을 자식한테 등을 찔린 다음부터는 마음껏 싸울 수가 없어요. 만약 그러려고 하면.”
수녀는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가 무지막지하게 아파요.”
수녀가 한걸음 다가왔다.
공간이 격리되는 듯한 느낌. 리가 직업상 언제나 느끼는 존재의 위화감.
“요즘은 이 아픔을 감수할 만한 상대가 전혀 없었거든요. 기뻐요. 당신이 나타나줘서.”
손바닥으로 수녀는 얼굴을 가렸다.
“…폴리모프(polymorph).”

“그만둬라.”

노인의 말에 지금까지 멈춰있던 크리쳐들이 수녀에게 다가갔다.
촤악!
수녀의 보이지 않는 바람의 발톱이 크리쳐들의 바로 앞바닥을 훑고 지나갔다.
“방해하면 죽일 거에요?”
“수명을 단축시키지 마라. 시간이다.”
“시간?”
“큭!”
그때, 리의 뒤에 서있던 히이라기가 괴로운 신음을 뱉으며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리는 갑주가 무거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기?!”
“지금 너의 레플리카를 유지하고 있는 건 모두 그 아이의 힘. 하지만 언리미티드 상태를 오래 유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노인은 조용히 설명했다.
“소향. 괜찮아. 아직 조금은 더…”
“안돼.”
리는 히이라기를 안아 올렸다.
“도망가자.”
“………응.”
“그렇겐 안되지. 너의 시간도 여기까지다. 돌아와라. 내 손녀여.”
“…손녀?!”
노인의 말에 리는 놀랐다.
히이라기는 리의 품 안에서 노인을 바라봤다.
순간 히이라기의 눈에서 애틋한 무엇인가가 잠시 맺혔다 이내 사라졌다.
노인의 눈에도 강철같은 그 눈커플 사이로 사람의 무엇인가가 스쳐 지나갔다.
“…할아버님. 미안해요. 난…”
“…나기.”
“가자, 소향!”
히이라기는 리의 목에 팔을 둘렀다.
“이쪽! 복도 끝의 창 밖으로!!”
히이라기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리는 움직였다. 가슴에서 램프라도 점멸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알 수 있다. 시간이 별로 없다. 곧 변신이 풀린다.
수녀는 쫓아오지 않았다.
흥이 깨진 듯이 양 허리에 손을 댄 체 그저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멈춰라.]

순간 히이라기의 머릿속에 노이즈가 흘러 들었다. 동시에 크리쳐들이 리를 막기 위해 앞을 막아 섰다.
하지만 지금 상태의 리를 일개 잡병들이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리의 무릎에서 주먹 반 개 만한 작은 금속 조각 두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디코이(decoy).
전투기가 꼬리에 붙은 미사일을 떨쳐버릴 때 사용하는 그것과 비슷한 것으로 원리는 잘 알 수 없지만 사용하면 잠시 동안 사용자가 여러 명으로 늘어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리는 그 사이에 몸을 낮게 숙여 순식간에 방어진을 돌파했다.
창문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순간.
“어쩔 수가 없군.”
어느새 노인이 바로 눈 앞에 서있었다.
“!!”
노인은 리의 머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노인의 손이 리의 머리에 닿기 바로 직전.
“원하는 건 이거죠!”

히이라기가 품속에 안고 있던 서류가방을 노인을 향해 던졌다.

“!!!”
“나기!?”
“괜찮으니까 소향, 밖으로!!”
“으, 응!”
챙강!
리는 창문을 뚫고 그대로 7층 높이에서 뛰어 내렸다.

노인은 순간 가방에 정신이 팔려 리를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노인이 가방을 붙잡음과 동시에 가방의 뚜껑이 맥없이 열렸다.
가방은 자물쇠 부분이 고장 나 있었다. 그것은 어떠한 물리적 충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히이라기가 가지고 있는 ‘비숍’이라면 이 정도는 간단한 일.
 “…한방 먹었군.”
 ————— 삐잇. 비정상적인 접촉이 확인되었습니다. 반경 100미터 이내의 전공간을 봉인합니다. 비정상적인 접…
쿠웅. 무거운 것이 내려앉는 듯한 소리와 함께 주변의 모든 것이 멈춰 섰다.


○○○
 

“…아무것도 묻지 않네.”
처음으로 입을 연건 히이라기였다.
차는 밤길을 가르며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히이라기는 지친 표정으로 조수석의 창틀에 기대어 있었다.
“무리해서 말할 건 없어.”
운전을 하고 있는 리의 변신은 풀려있었다.
창 밖으로 뛰어내린 후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주차중인 경 트럭을 접수. 남에게 말하기 조금 곤란한 방법으로 시동을 걸고 달리기 시작한지 몇 분.
방금 전까지 이곳엔 침묵만이 가득해 있었다.
“…그래.”
히이라기의 입김에 창문에 하얗게 서리가 끼었다.
히이라기는 입김으로 그려진 하얀 캔버스 위에 별 의미 없이 눈사람을 그렸다.
“엣취!”
그때 리의 재채기소리.
“…추워?”
“아니 뭐, 그다지…”
리의 입에서는 말과는 다르게 하얀 입김과 함께 딱딱딱하고 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팔에는 소름이 잔뜩 돋아있었다.
차의 히터부분은 고장 나 있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고 차의 시동을 걸 때 힘 조절에 실패한 리의 일격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버린 것이다.
“엣취!”
거기다 리의 복장은 지금 매우 대담한 상태다. 브라에 스커트뿐. 수상한 업소에서 도망쳐 나오기라도 한듯한 복장이었다.
“…정말.”
히이라기는 조용히 자신의 코트를 벗어서 리의 어깨에 걸쳐줬다.
“에? 정말 괜찮은데.”
“예를 들면.”
“응?”
히이라기는 리가 팔을 코트 안으로 넣기 편하게 코트를 잡아주면서 전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내가 두 개를 가지고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없을 경우.”
히이라기는 운전중인 리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단추를 채웠다.
“난 조건에 따라선 가지고 있는 두 개 중 하나는 양보해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타입.”
특이하게 히이라기는 밑에서부터 단추를 채워 올라갔다.
“그 조건은 하나, 내가 감사를 느낄 때.”
단추를 다 채우고 히이라기는 리의 목덜미의 마지막 단추를 채운 그 자세 그대로 리의 얼굴을 바라봤다.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일 때.”
어째서인지 리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반대로 히이라기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히이라기는 계속해서 말했다.
“소향은 말야. 자신이 왜 2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이해조차 못하는 사람. 자신이 2개를 갖는 것 보단 남과 같이 1개씩 나눠 갖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타입.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두 개 모두 남에게 주는 타입이었어.”
“그 아이?”
“…아니,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해야겠지.”
히이라기는 다시 자신의 의자에 등을 붙이고 앉았다.
“들어줄래? 나랑 그 아이의 이야기를. …내가 싸우는 이유를.”


—— 이 이야기의 계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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