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작 완결작

검색결과

아이크 빛과 어둠의 검사
카미도 혼란스러운 거리
redbead 환생 뒤 전(前...
카미즈블러드 라그나로크 극
컨알 하얀 악마
카이테미요 천명을 힐러였...
Leafy 암흑면
AlwaysLaugh 설령, 당신이 ...
연화홍란 전생을 했지만...
실버나라 나만 판타지 ...
wani [단편] Black ...
lyan15 검은 천사
rlight 지나가던 선비
갓카 내 모니터 속...
로드드라콘 구마록(驅魔錄)
보닝 신같은 포지션...
정상인임ㅎ 대마왕이 가출...
NAMIA 신이 죽은 세...
엽토군 블로그
부르프 낮으로 걸어오...
air05 하루아침에 마...
라쿠카라챠 츤데레 여친과...
잉여포돌이 Re:
9A 금경을 삼킨 용
살많은빼빼로 자유의 날개
노아카미 Heal Up
살많은빼빼로 억압의 사슬
요리코 이세계 소환! ...
적색소음 나는 결국, 아...
봄날상어 우리들의 일상...
호떡 밖으로 나가면...
건달프 After Memories
사가 성불사
노가리 미래에서 미래...
똑같은매일 강철 심장의 고동
승다르크 카르페 디엠
멘카로건 Let Us [Rise ...
살많은빼빼로 Life with dead
랑이초록 지구스토리: ...
joseu 생판 몰랐던 ...
쥐며느리 머그속 그녀의...
살많은빼빼로 학생의 반란
초록만두 창밖으로 뛰어...
joseu 생미부
박사능 흉터 새기는 남자
주렁이 이세계 직업에...
멜렌나 노 네임-제미니-
Enivia 하나뿐인 여동생
pwins 용사의 은퇴시기
호치 사랑하는 나의...
레드트리 반인반요
갓카 단편 모음
오얏 고코미의 모험
책갈피 오늘의 꽃을 ...
코노미카 우리 동아리에...
불닭 해골과 소년의...
서호란 살아간다는 것은.
이동규 마왕 따위 되...
이동규 죽음이 사는 숲
비익연리 나와 그녀의 ...
JG광합성 호텔! 마왕성!
레크리셔 빨간 망토 소...
Nehru CRISHA[크리샤]
별티끌 누리끼리
뚜뚜루 나의 작은 기사님
카샬 이제는 너무나...
갓카 Nostalgia
밤바다 이런 나지만 ...
즈잔 황폐한 땅의 ...
도토리x 망할 유령들 ...
두희 나와 호랑이님
나하린 프로 조연과 ...
pakpa 제목미정
9959 운명의 돌: 멈...
yooil 내 소꿉친구는...
리츠카 페퍼민트 카페인
샌니마 저, 오늘부로 ...
김리토 레스즈
1ron 나와 요정의 ...
미호 라노벨에 사용...
칠흑의카밀레 소인 세계에서...
HAlt 환생한 대주술사
깽깽이 이세계의 블랙...
xiix 암살법사
BLAZE ???
엘그나 정상 위에 소...
연역 롤플레잉!
W더블 진홍의 히스토...
형칠이22 팀 파이브 엔젤스
즐거운나날 신님은 우리들...
pe0000 이세계 용사와...
카사토리00 메이드 여동생...
피토휘 여동생과 나 ...
tg가로수 평소대로 살았...
라케리안 모형정원
실크라운 쿨데레X츤데레...
이부프로펜 이 동아리 뭔...
칠흑의대마왕 도적은 왕에게...
세하 Dreamland Online
강화중 주인공의 친구...
키퍼 앤 도어 by 존

구 본격 미스테리. 가끔은 능력 액션로망. 이어서 능력자 계약 배틀 믹스. 마지막은 영지점령 발전 심시티물. 분량 압박 조기종영 위기일발.

[]
총 편수 11 / 총 관심작 수 7 / 총 추천수 0 / 총 용량 0Kbytes
관련글
  5. 재회
0명 참여 별점
 
  5 [sj1120]
조회 834    추천 0   덧글 1    / 2007.10.25 15:15:24

 5. 재회. 


 천장이 보인다.
 그 천장이 너무 뜬금없어 시점을 옆으로 돌렸다. 방안이 회전하며 나의 시점이 돌아간다. 그렇게 비스듬히 하여 방안을 바라보았다. 응급실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가운을 입고 움직이는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간호사들이 시점 속에 들어왔다.
 …아니, 시점이 아니야.
 난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없을 것만 같았던 손가락이 슬며시 움직이며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런 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 뒤, 마지막으로 상의를 일으키며 앉았다.
 은재가 보인다.
 교복 차림의 은재가 내가 누운 침대에 팔을 올리고 잠들어 있었다.
 물끄러미 올려다본 시계는 2시를 가리키고 있다.
 꼬박 2시간이나 잔인한 꿈속을 관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꿈속에 빠져들 때 느껴졌던 현기증은 가라앉았지만, 반대로 마음은 붕 떠 있는 것만 같다. 그건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찌르고, 베고, 마침내 휘둘러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들이 끔찍하다.
 마음을 발판삼아 떠오르는 생각들을 지우며 눈을 감았다.
 어둠.
 문뜩 그 어둠 속으로 붉은 액체가 튄다.
 올라간 입 꼬리. 내리 쳐지는 검. 마침내 단상 아래로 나뒹구는, 잘린 머리.
 선명한 그 광경에 눈을 뜨려 했다. 하지만 눈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 신비롭던 금빛 머리카락은 이제 서서히 붉은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점인 날 똑바로 직시한다.
 잘린 머리는 눈을 떴다.
 그 순간, 현실의 나도 눈을 떴다.
 끔찍하다. 끔찍했다. 하지만 버킨이 왜? 어째서야?
 답이 나올 수 없는 질문들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게 담요와 무릎을 끌어안고 손톱을 깨물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계속해서 들리는 환청. 계속해서 떠올려지는 광경. 그리고 계속해서 나의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는 왕의 마지막 목소리. ‘…이제,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런 환청의 끝자락에서 누군가가 부스럭 거렸다.
 그것은.
 “무서웠어?”
 마음을 토닥이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난 목소리에서 도망치며 더욱 깊숙이 얼굴을 파묻었다.
 “…싫어. 이제 싫어. 이런 꿈 따위… 이런 건 정말 싫어.”
 “괜찮아. 무사히 돌아왔잖아?”
 그 목소리는, 이제 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침대 위로 올라와, 은재는 머리를 파묻은 날 마주보고 있었다.
 “무슨 꿈이야?”
 “…죽었어.”
 “누가 누굴 죽였는데?”
 “…왕이 자신의 기사를 죽였어.”
 정적이다.
 누군가가 모든 목소리의 볼륨을 꺼버린 것만 같다.
 하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랬구나.”
 “응…. 그랬어.”
 중얼 거리는 나의 손을 은재의 손이 살며시 마주 잡았다.
 “야.”
 “응?”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주먹이다.
 “기운 차려 멍청아!!”
 큭! 은재의 주먹이 내 어깨를 내리쳤다. 그 충격에 뒤로 밀려졌다.
 아팠다. 무지막지하게 아픈 주먹이었지만, 무거웠던 마음은 한결 나아져 있었다.
 그 마술 같은 펀치에, 난 결국 웃을 수밖에 없었다.
 “채하는?”
 “납치됐지 뭐.”
 “납치?”
 “끌고 갔다고, 그 경호원.”
 “아….”
 “걱정 되면 전화 해 보던지.”
 “아니야. 괜찮아.”
 기지개를 크게 하며 은재와 함께 침대에서 내려왔다. 여전히 교복을 입고 있었다. 다행히도 몸엔 아무런 이상이 없는 모양이다. 은재는 단순한 기절이여서 잠시 안정을 취하면 된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고 알려 줬다. 그렇게 몇 가지 진찰을 더 받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상쾌했다.
 아니, 상쾌한 기분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이제 어디로 갈까?”
 은재의 그 말에 난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학교로 돌아가야지.”
 “싫어. 오늘은 그냥 쉴 거야.”
 말이 좋아서 쉰다는 거지, 엄연한 땡땡이였다. 담인 선생님인 독고 강철 선생님은 병원에서 퇴원하는 즉시 학교로 복귀하라고 엄포를 놓으셨다. 나쁜 분은 아니시지만 교육에 대한 남다른 철학과 강철 같은 의지가 강하셔서, 아이들에겐 무쇠의 독고강 선생님으로 불린다.
 하지만 굴할 은재가 아니다, 인걸까?
 “그래. ‘이야기’를 하자.”
 “이야기?”
 “응.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야.”
 뜬금없는 말이었다.
 “좀 뜬금없지?”
 아니, 뜨끔했다.
 그렇게 은재와 난 병원 앞 벤치에 앉았다. 오늘 아침 멍하니 있다가 채하와 마주쳤던 바로 그 벤치였다. 여름의 햇빛은 나무의 그늘이 적당히 가려줬고, 바람이 불어 선선했다. 딱 기분 좋은 날씨였다. 그래서인지 꽤나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묻겠어. 네가 아는 난 어떤 은재야?”
 이번에도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확실히 은재가 채하에게 했던 질문과 같다.
 “글쎄, 뭐랄까. 아빠?”
 은재의 이마에 힘줄이 튀어 올랐다.
 “죽을래?”
 난 그런 은재를 향해 시익 웃어주었다.
 “음…. 동생 같은 친구?”
 의외의 답변이었는지 은재는 눈썹을 찌푸리며 되물어 왔다.
 “왜 그렇게 생각 하는 건데?”
 “확실히 다른 아이들은 네 쪽이 누나 같다고 하지만, 난 오히려 네가 동생 같아. 뭐랄까, 그래. 잔뜩 넘어질 기세로 흔들리는 유리컵 같아서, 반드시 옆에서 잡고 있어야 하는 거야.”
 은재의 얼굴이 조금 더 찌푸려졌다.
 “힘이 너무 들어갔잖아. 간단히. 그런 식이니까 언어영역이 엉망인거야.”
 하여간 어릴 때부터 아픈 곳을 너무 잘 찌른다니까. 송곳 같은 계집애.
 그래, 간단히.
 “가족이야.”
 순간, 은재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졌다.
 하지만 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언제든 함께하고, 서로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까, 우린 가족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은재가 처음 날 만났을 때, 처음 울고 있는 날 향해 그 작은 손을 내밀었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은재의 모든 가족들이 마치 나의 가족과도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하긴, 모두가 좋으신 분들이니까.
 사라졌던 표정이 돌아왔다.
 “한심해.”
 겨울, 그 자체처럼 차가운 말투다.
 “가족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확실히 은재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그런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반응은 처음이다. 어째서 화가 난거지?
 “서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멍청해. 정말로 멍청한 말이었어, 그거.”
 마지막으로 은재는 가방을 끌어안고 말도 없이 일어섰다.
 “…정말 멍청했다고.”
 나를 남겨두고 투벅투벅 걷기 시작한다.
 마치 내가 사람이 아닌 동상이라는 듯, 그렇게. 


 공휴일은 끝났다.
 나와 은재는 택시를 타고 희망 빌라로 돌아왔다. 도로 위로 택시가 달리던 그 길었던 시간동안 우린 단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았다. 무엇인가 묘하고 팽팽한 감정의 끈이 서로의 마음에 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택시에서 내린 우리들은 말도 없이 나란히 서서 빌라의 현관으로 들어섰다. 우린 같은 희망빌라의 2동에 살고 있다. 난 10층 은재 녀석은 9층. 뭐 그렇게 가까우니 언제든 단짝처럼 함께 등하교 할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우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말없이 각자의 층수를 눌렀다.
 불이 들어온 것은 9층과 10층의 버튼.
 엘리베이터의 상승과 함께 지독스러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문뜩 그런 고요 속에서 돌아본 거울 너머로 은재의 옆모습이 보였다.
 병에 걸린 것처럼 희고 차갑게 보이는 피부. 나와의 말다툼 때문인지 눈동자 역시 차갑게 굳어 있다. 복장은 은재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어제 아침 등교할 때의 교복차림이었다.
 누군가 어제의 사고와 병원에서의 사건이 없던 일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다.
 난 복잡한 마음속에서 머리를 헤집었다.
 띵! 스르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표시된 것은 9층. 은재의 집이다.
 말을 걸까?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그렇게 머뭇거리는 날 뒤로 하고 은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뚜벅. 뚜벅. 스르륵. 엘리베이터 문은 나 혼자만을 남기고 조용히 닫혔다.
 내가 사과해야할 부분은 없어.
 다시 상승하는 엘리베이터를 느끼며 마음을 다잡았다.
 10층. 띵.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한 번 열린다.
 그런데.
 열려진 엘리베이터 문 앞에.
 예상치도 못했던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은재는 문이 닫히지 않게 버튼을 누르고, 허리를 숙인 체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다.
 계단으로.
 “뛰어… 왔어?”
 나의 물음에 은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들었다.
 “하아.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게. 하아. 있어서.”
 “말하지… 않은 것?”
 은재는 왼손을 뻗어 나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응. 제일 중요한 걸 말하지 않았어. 택시를 타고 오는 내내 고민했었어.”
 그리고 내가 서있던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어 들어 왔다.
 “…미안해.”
 뭐가…?
 “정말이지 말이야. 정말이지 너에게 미안해.”
 그리고 와락 하고 날 껴안아 버렸다.
 스르륵. 엘리베이터 문은 다시 한 번 닫혀버린다.
 엘리베이터가 하강 하는지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든다.
 난 그런 묘한 감정과 느낌들 속에서 품에 안긴 은재를 당혹스럽게 내려다 보았다.
 “뭐, 뭐야? 지금 고백 하고 있는 거야?”
 그런 멍청한 물음에 은재는 품에서 빠져나와 날 마주보고 섰다.
 “아니. 너에게 사과하고 있는 거야.”
 미안한 감정이다.
 은재의 얼굴에 묻어나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미안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뭐가 미안한 거야?” 
 벤치에서의 대화로 이렇게 미안한 태도가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누구보다도 당당히 날 집어 차 버리곤 하는 은재가 고작 그런 일로 이런 식의 사과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됐다.
 “너와 함께 다녀서 늘 미안했어.”
 무슨 말이야?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띵. 나와 은재 사이에 선을 긋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다.
 되돌아온 1층,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은재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 나만을 남겨두고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갔다. 
 “이제, …함께하지 않을 거야.” 
 비켜봐. 은재와 내 사이를 가리지 마. 그러니까.
 “좀 비켜 보라고요!”
 난 그렇게 밀려드는 사람들을 헤집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문을 나서기 전.
 엘리베이터 문은 나보다 한발 빠르게 닫혀 버린다.
 위이이이잉. 기괴한 소리를 내며 상승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멍하니 굳었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사람은 많았지만, 난 분명하고 명백한 혼자였다.
 아니, 혼자가 됐다. 


 ――쏴아아아.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차가운 물을 맞으며 생각해 보았다.
 엘리베이터에서 은재는 분명 날 향해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리고 미안하기 때문에 더 이상 나와 함께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런 뒤 빌라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언제나 함께 그네를 타고는 했던 공원이나, 어릴 때부터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등교를 시작하곤 했던 집 앞의 편의점도 찾아보았지만 은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은재를 찾아 거리를 걷다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예상대로 핸드폰 역시 꺼놓았다.
 …대체 무슨 일인거야?
 이해해 보려 할수록 머리가 어지럽다. 이대로 잠에 취해 잠시 동안이라도 모든 생각과 고민들을 잊고 싶었지만 잠이 들 수는 없었다. 잠이 든다면 또 다시 그 지독한 꿈속에 빨려들 것이다. 하지만 피곤함은 샤워를 시작했을 때부터 무겁게 머리와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난 비틀거리며 욕실을 빠져나와 가벼운 트레이닝복 바지와 푸른 셔츠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슬러퍼를 신고 현관문을 열며 빌라 복도로 빠져나왔다. 지금쯤이라면 은재가 집에 들어왔을 지도 모른다. 난 그렇게 계단을 걸어 내려가 은재의 집 현관 문 앞에 섰다.
 벨을 눌러야 하지만 망설여진다.
 그렇게 몇 번이고 벨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내리며 주저하는데.
 “오라? 이런 밤중에, 당신은 도둑 일까?”
 기척도 없이 바로 등 뒤에서 뿜어진 호흡에 깜짝 놀라 버렸다.
 “누, 누구야!” 
 척추까지 싸늘해지는 기분에 돌아서며 질문을 던졌다.
 등 뒤로 다가와 날 바라보는 사람은 키가 크고 날씬한 여자였다. 고운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흘러내려와 있는데 장난이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내 모습을 위 아래로 훑어가며 보고 있었다. 얼굴의 화장은 연했지만 어른스러운 매력이 오히려 더욱 진하게 풍겨지는 것 같다. 
 입고 있는 옷은,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몸에 착 달라 붙는 긴팔 티셔츠.
 “…에? 대뜸 누구냐고 물어보다니. 그건 실례.”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내 옆구리를 쿡-! 하고 손가락으로 찔러버렸다.
 덕분에 윽! 하는 소리와 함께 문에서 옆 복도로 비켜서자 여자는 손에 들고 있던 핸드백을 뒤져 무엇인가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무엇인가를 문고리에 끼우고 피식 웃으며 돌린다.
 찰칵! 문은 거짓말처럼 열려버렸다.
 …열쇠? 그렇다면 이 여자는!
 “도, 도둑이야?!”
 나의 외마디 비명소리에 여자의 얼굴도 함께 공포에 휩싸인다.
 “에에에?! 도둑은 어디야?? 설마 가까이 있는거야?!” 
 천연덕스럽게 은재의 집 현관문을 따버린 여자는 오히려 자신이 놀라고 있다.
 “그 도둑이 바로 당신이잖아!”
 내 말에 여자의 얼굴은 겨울이라도 찾아왔는지 금새 식어 버렸다.
 “헤에. 도입부는 좋았는데 지금의 조크는 수준이 낮은 걸. 실망.”
 그렇게 말한 뒤 멋대로 어깨를 으쓱하고 은재의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덕분에 난 여자의 어깨를 잡고 뒤로 끌어당긴 뒤, 양팔을 펼치고 은재의 집 현관문을 막아섰다. 슬쩍 뒤를 돌아보았지만 거실은 불이 꺼져있었고 은재의 집에는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것 같았다. 
 “신고하기 전에 돌아가세요!”
 …돌아가세요, 라니?
 내가 말 해 놓고도 스스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상한 말이었다.
 도둑녀에게 신고하기 전에 돌아가시라고 정중히 충고하다니. 정신이 있냐! 시은하!
 눈앞의 도둑녀 역시 내 말에 황당한 표정으로 날 멍하니 마주보다 입을 열었다.
 “조금 전의 그건 이쪽에서 해야 더욱 어울리는 대사인 걸.”
 “…그 쪽에 어울리는 대사라구요?”
 되묻는 날 향해 여자는 왼손으로 자신의 턱을 잡고 눈을 감았다.
 “그러니까.”
 거기까지만 말하고 금빛이 감도는 눈동자를 번쩍 떴다.
 “경찰을 부르기 전에 당장 현관에서 비켜 이 익숙한 자식아!!”
 외침에 포함된 살기가 보이지 않는 증기처럼 여자의 몸에서 사방으로 뿜어진다.
 그런 지독한 존재감 속에서 차갑게 굳은 날 향해 여자는 다시 한 번 시익 웃었다. 
 “…뭐 그런 대사랄까?”
 한순간 느껴졌다 가라앉은 기운에 나도 모르게 흠칫 물러섰다. 그런 나의 빈틈을 눈치 챘는지 여자는 피식 웃으며 날 밀치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자동으로 불이 탁. 하고 켜진 형광등이 시야를 밝혀 주었다. 불빛 아래서 여자는 날 뒤로 하고 힐을 벗고 거실로 들어섰다.
 “어쩜 조금도 변하지 않았잖아. 실망.”
 그에 질세라 나 역시 슬리퍼를 벗고 그런 여자를 말리기 위해 거실로 들어섰다. 그렇게 단숨에 손목을 잡아채서 현관 밖으로 다시 끌고 나오려는데 여자가 날 돌아보며 다시 웃었다.
 “실망은 은하 너도 포함.” 
 …에? 내 이름을… 알고 있어?
 난 한 대 맞은 표정으로 손목이 잡힌 연상의 여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꽤나 익숙한 얼굴이다. 요란하게도 염색을 해서 붉은색과 노란색이 뒤죽박죽인 이상한 머리카락도 생각해보니 굉장히 익숙했던 과거의 기억에 포함되어 있었다. 언제나 색색으로 물들어 있던 머리카락 때문에 분명히 물감을 뒤집어 쓴 누나 따위로 불렀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하지만 분명히.
 “솔잎 누나는, 영국에… 갔잖아?”
 멍한 표정으로 멍하게 뱉어낸 말에 눈앞의 여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지겨웠던 임무를 끝내고 무사 귀환!”
 정말이다. 정말 눈앞의 이 사람은.
 “잎이 누나가… 맞잖아?”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시작된 미소가 얼굴 전체에 웃음으로 번져버렸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은재의 언니는 나에게 있어서 친 누나와도 같은 존재였다. 은재는 자신의 언니를 꽤나 싫어했었지만 난 그 누구보다도 내게 허물없고 유쾌하게 대해주는 은재의 언니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당시의 어렸던 난 잎이 누나가 영국으로 유학 가고 두 달도 넘게 은재에게 잎이 누나를 돌려내라고 때를 쓰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웃음이 나오는 추억이었다.
 그런데 그런 잎이 누나가 정말로 돌아와버린 것이다.
 5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그런 긴 시간을 넘어와 내 눈앞에 서있는 사람은 분명 솔잎 누나였다.
 “멍한 표정은 여전한데… 에에?! 키는 나만큼이나 컸잖아!” 
 멋대로 쇼크 받아 버린 표정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서있다.
 여전히 유쾌한 듯 보이는 잎이 누나는 그렇게 나의 키를 향해 불만을 표출하고는 춤추듯 나풀거리며 걸어가 소파에 털썩. 하고 안착했다. 분명 솔잎 누나가 눈 앞에서 움직이며 말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언니에 대한 말을 하기 싫어하는 은재였지만, 한국으로 돌아올 정도의 빅 뉴스였다면 당연히 나에게도 알려줬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은재가 여전히 집에 없다.
 “은재는 어디 간 거야? 에에. 연속 실망.”
 그렇게 중얼거리며 잎이 누나는 소파 위로 다리를 끌어 올린다. 짧은 숏 스커트를 입고 있어서 조금 아슬아슬하게 보였지만 무릎을 모으고 그 무릎 위로 볼을 대고 날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음대로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역시 마음대로 찡그리고, 피식하고 웃었다.
 뭔가 거창하고 시끌벅적한 재회가 없을 거란 걸 잘 알고 있다.
 잎이 누나는 언제나 감정을 꾸미고 치장해서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오랜만.”
 단지 짧지만 진심으로 말할 뿐이다.
 지금, 나의 앞에 앉아 날 올려다 보는 사람은 정말로 그 잎이 누나가 분명하다.
 “응. 정말 오랜만이야, 누나.”
 나 역시 웃으며 그렇게 답해 주었다.
 우리들은 서로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피식하고 웃고, 머리를 긁적이고, 다시 웃어버린다. 그렇게 어색하지만 기분 좋고 그리운 재회의 시간에 잎이 누나가 다시 입술을 움직였다. 
 “그런데 은하가 우리 집엔 무슨 일로 온 걸까?”
 잎이 누나는 여전히 치마가 아슬아슬한 무릎에 볼을 대고 날 비스듬히 보고 있다. 
 “은재 녀석이….”
 거기까지 말하자 왠지 모를 답답함이 밀려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말을 해버리면 정말로 진실이 되어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망설였다.
 하지만 애써 입술을 깨물며 가슴 깊이 아래에서 멤도는 말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녀석이… 없어져 버렸어.”
 내 말에 잎이 누나의 표정이 묘하게 흔들린다. 하지만 이내 다시 피식 웃으며 무릎을 소파 아래로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허리를 잡고 상채를 좌우로 돌린 뒤 기지개를 크게 했다. 마지막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에게로 다가와서 내 볼을 콱! 하고 잡아버렸다. 
 “너희 둘.”
 볼이 얼얼하다.
 그렇게 볼이 꼬집혀 대답하지 못하자 잎이 누나는 혼자서 말을 이어갔다.
 “허락도 없이 누가 멋대로 사랑에 빠지래?”
 장난이 아닌 진심인 그 물음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잎이 누나는 그런 나의 반대편 볼까지 콱! 하고 붙잡아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양 볼이 붙잡힌 날 바로 앞에서 뚫어져라 마주보기 시작했다.
 어째서일까? 왠지 모를 차가운 시선이다.
 잎이 누나의 호흡이 그런 차가운 시선 너머로 쏟아지며 콧등을 간질였다.
 그런 부담되는 시선에 애써 고개를 돌려 피하는 날 계속해서 바라본다.
 그리고.
 “좋아하는 건 은재 녀석 혼자였구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볼을 꼬집고 있던 양 손을 놓아주고 콧노래를 부르며 날 지나쳐 걸어갔다.
 은재가…, 녀석이 날 좋아 한다고?
 “출발이야.”
 멍하니 서있던 난 현관문 쪽에서 들리는 잎이 누나의 목소리에 돌아섰다.
 누나는 어느새 벗어두었던 자신의 검은색 하이힐을 다시 신고 있었다.
 “… 출발이라니?”
 꽤나 익숙한 동작으로 힐을 다 신은 잎이 누나는 일어서서 날 돌아봤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권총 모양을 만들어보였다. 
 “지금 부터.”
 그렇게 진지한 표정이 된다. 
 “하은재를 잡으러 간다.”
 마지막으로 잎이 누나는 피식 웃으며 날 향해 손목을 튕겨보였다. 
 “탕!”


 6년 전의 추억이다.
 그곳을 보자 답답했던 가슴은 총알이 지나간 것처럼 뻥하고 뚫려 버렸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입술을 스치고, 콧등을 스치고, 볼을 스치고, 귓가를 스치고, 마침내 내 검은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헤집은 뒤에야 등 뒤로 사라져갔다. 문뜩 소리를 질러 버리고 싶어졌다. 바다야. 내 눈앞에 펼쳐진 저 푸른 곳은 정말이지 한 여름의 동해 바다란 말이야!
 “헤헤. 어때 은하 꼬마? 끝내주지?”
 등 뒤에서 들려온 것, 그것은 소라 껍데기의 소리였다.
 조금 웃긴 비유긴 했지만 잎이 누나의 목소리는 소라 껍데기에서 들리는 파도소리 같았다.
위이잉. 위이이잉. 그렇게 분명히 귓가로 들리지만 없을 것만 같은 아련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사람의 목소리임에는 틀림없다.
 “에레? 그 말은 내 몸이 물컹물컹하고 징그럽단 말이야?”
 잎이 누나는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내 옆으로 살며시 앉았다. 원피스 수영복차림에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선머슴처럼 눌러쓰고 손에는 캔 맥주를 들고 있었는데, 이쯤 되면 해변에 놀러온 누구라도 감히 잎이 누나가 고등학생이라고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소라보다는 소라 껍데기야.” 
 “뭐. 나름대로 매력 있겠지. 껍데기란 것도. 아닌가?”
 그런 뒤 손에 들고 있던 캔 맥주를 찰랑거리며 단숨에 꿀꺽꿀꺽 마셔 버렸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알록달록한 머리카락 아래로 미간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최후에 얼굴을 지배한 것은 고통을 넘어온 기쁨과 승리의 환호였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앗! 판타스틱!!\"
 그 괴상한 감탄사와 함께 캔을 쥔 손에 힘을 줬는지 빈 맥주 캔이 볼품없이 찌그러졌다. 그렇게 손아귀에 힘을 준 뒤에야 따갑던 목이 진정됐는지 그대로 팔을 쫙 펼쳐서 뒤로 털썩! 하고 모래바닥으로 드러누워 버렸다. 마지막으로 팔을 들어 이마 위에 자연스레 올렸다.
 “현대인이 만든 유일한 축복은 역시 캔 맥주야.”
 기분좋게 그렇게 누워 배를 두드리는 잎이 누나의 얼굴 위로 문뜩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태양과 햇살을 가린 그 그림자는 파도처럼 출렁거리더니, 이내 목소리를 만들어 냈다.
 “그 말엔 상당한 어폐가 있는 거 알아?”
 그 익숙한 소리는 그림자의 것이 아니다. 난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허리를 숙이고 불만이 잔뜩 서린 표정으로 잎이 누나를 내려다보는 익숙한 여자아이.
 난 반가운 마음에 바닥을 짚으며 모래사장에서 일어섰다.
 “늦었잖아, 하은재.” 


 “그 바닷가, 정말 기억 안나?”
 잎이 누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방향을 따라 알록달록하고 긴 머리카락이 한들거렸다.
 “뭐, 하긴… 벌써 6년이나 지났으니까.”
 잎이 누나와 난 나란히 발을 맞추며 빌라에서 내려오는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손목에 찬 시계가 11시를 가리키고 있었기에 가로등은 불빛이 켜져 있었다. 그런 불빛이 어둠의 지배하에 놓여있어야 할 공간을 금빛으로 물들였고, 우리들은 그런 금빛의 세상을 걷고 있었다.
 지금 잎이 누나와 함께 향하고 있는 채하의 저택이다.
 문뜩 잎이 누나는 벌레에 물렸는지 팔등을 검지로 문지르며 말했다.
 “은재랑은, 설마 다툰 거야?”
 우린… 다툰 걸까? 아니야. 우린 결코 다툰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은재의 행동은.
 “…모르겠어.”
 대답이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잎이 누나는 볼을 부풀리고 생각에 잠긴 듯 하다.
 타박. 타박. 타박. 발걸음 소리가 침묵 속에서 풀벌레의 노래처럼 퍼져나갔다. 그런 발자국소리를 만드는 사람은 잎이 누나와 나,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직장인이나 학생들이었다. 그런 사람들 모두가 문뜩 부럽게만 느껴진다. 평범한 일상. 평범한 생활들. 그런 것들.
 “심플하게 포기! 자 은하 네가 직접 말해봐. 그럼 무슨 일이 있었어?”
 무슨 일? 특별한… 무슨 일?
 특별한 일이라면 한 가지 뿐이다. 한 달 전부터 지속되었고,
 아직도 날 압박하고 있는 중세의 꿈이다.
 문뜩 병원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다시 떠올랐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부터 잊어버리자고 다짐했지만 도저히 잊어버릴 수가 없는 기억들이다. 그 경비원이 아직도 다솜 병원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했었지만, 그 경비원만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눈치를 보여 왔었다.
 문뜩, 중요한 것을 놓친 기분이 들었다.
 난 정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새벽의 일을 기억하냐고 물어봤던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머지않아 스스로의 마음에서 떠올랐다.
 아직 물어보지 못한 사람이 한명 있다.
 그 사람은, 새벽에 은재와 나를 목격했던 꼬마였다. 


 “에…. 그렇다는 건, 자각몽일까?”
 내가 풀어놓은 이야기에 잎이 누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답변을 찾는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무언가를 생각한다. 우린 어느새 마을에서 벗어나 채하의 저택이 보이는 언덕 아랫길을 걷고 있었다. 도로는 포장되어 있지만 마을에서 조금 벗어난 외각이라 길 주위로는 꽃과 풀잎들이 아무렇게나 자라 있었다. 덕분에 매미의 울음소리가 심하다.
 고요를 가르는 그 노랫말 사이로 풀벌레의 악기소리도 들려온다.
 그것이 마치 숲이 만들어내는 여름밤의 기분 좋은 교향곡 같다는 생각이다.
 지휘자가 없는 악단이 아무렇게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지만, 묘하게 예쁜 음악이었다. 나와 잎이 누나는 그런 밤의 연주를 들으며 열기가 피어오르는 아스팔트를 걸었다. 은재는 저 멀리 불빛을 만들어내고 있는 채하의 저택에 있을 것이다. 잎이 누나와 함께 은재를 찾아 나서기 직전, 혹시나 해서 채하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 다행히도 적중해버린 것이다.
 - 앗! 은하다! 괜찮아? 괜찮은 거야? 죽지 않은거지? 
 채하는 전화기 안에서 당장 튀어나올 기세였다.
 - 은재? 우리 집에 올 거라며 전화 온 걸? 은하 너도 함께 올 거지? 응? 응응?
 그렇게 은재가 오면 시간을 벌어 달라는 다짐을 받고 잎이 누나와 함께 빌라를 빠져나왔던 것이다.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려고도 했지만 특별히 먼 거리도 아니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싶다는 잎의 누나의 말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렇게 걷고 있는 것이다.
 이 길로 저택을 찾아가 은재를 만난다.
 그리고 어째서 화가 난 건지, 어째서 그런 태도를 취했는지 물어볼 것이다. 어제 새벽, 병원복도에서 은재와 날 봤던 꼬마를 만나보고 싶었지만 일단 은재와의 오해를 먼저 풀기로 결심 했다. 은재와의 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한 감정의 벽을 무너트리는 것이 우선이다.
 잎이 누나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이 나오지 않자 볼을 부풀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특별히 이어지며 연속되는 자각몽이란 건 들어본 적이 없는 걸?”
 “뭐, 단지 지독한 우연… 이겠지. 괜히 크게 신경 쓰지 마, 누나.”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결코 우연 따위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입으로 거짓을 만들며 애써 별일이 아니라는 듯 웃어보였다.
 잎이 누나의 추궁에 꿈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긴 했지만,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던 부분은 마음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빌 레베톤의 출현과 경비원의 죽음, 그리고 꿈속에서 겪었던 상황들을 모두 말해버린다면 잎이 누나도 이 사건에 휘말려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것이, 시체 보관소에서 있었던 끔찍했던 일과 꿈들이 정말 없던 일이였다 해도,
 난 벌써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은재를 멋대로 사건에 끌어 들였던 한심한 과거가 있다.
 이젠 스스로가, 나 혼자만이 이 꿈과 뒤섞인 현실을 해결할 것이다.
 반드시… 반드시 해결할 것이다.
 “하지만 벌써 한 달 째라면서, 그건 스스로에 대해 거만한 태도인 걸.”
 걱정하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꾹 쥐었던 주먹을 펴며 애써 담담한 표정을 했다.
 “실은 정신병원에도 찾아 갔었는데, 다행히 의사가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래.”
 “…헤에? 정신 병원이라면, 정말로 은하 네가 미쳐 버린 거야?\"
 어느새 걸음을 멈춘 잎이 누나가 날 보며 조금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얼굴을 찌푸리다가, 6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한 그 동문서답에 기분 좋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단지 상담이었어. 약 좀 먹고 잡생각을 줄이면 괜찮아 질 거래.”
 잎이 누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탁 튀겼다.
 “아! 정신 병원이라면 그 개인이 운영하는 백화점 옆의 아름다리 정신병원?”
 그 말에 머릿속으로 날 정신병자 취급하던 의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뚱뚱하고 머리가 반쯤 벗겨진 음흉한 원장이 있는 곳이라면, 역시 맞아.”
 좋지 않은 추억에 얼굴을 찡그린 나의 태도가 재미있는지 잎이 누나는 피식 웃었다.
 “헤에! 역시 맞구나, 후훗. 실은 그 원장님이랑 아빠랑 친구야. 꽤나 막역한 사이인 걸?”
 에이, 설마.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그건 마치 야구공으로 축구를 한다는 소리와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언제나 나에게 자상한 은재의 아버지와, 늘 상냥하고 친 어머니처럼 챙겨주는 은재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웃고 계신 두 분 옆에 그 병원 원장의 음흉한 모습을 나란히 새워 보자, 생각지도 않은 단어가 반사적으로 터져 나왔다.
 “악몽이야!”
 어쩌면 무례했을 반응이었지만 잎이 누나는 동의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확실히 은하 너에겐 악몽인 걸까?”
 나에 대한 이야기로 아까운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이쯤이면 됐다.
 난 마음속을 맴돌고 있던 수많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인 포문을 열었다.
 “그나저나 잎이 누나는 그 동안 영국에서 어떻게 지냈던 거야?”
 질문에 골똘히 생각하던 잎이 누나는 곧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뭐랄까…. 그냥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했다, 정도 일까나.”
 잎이 누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공부이다. 고등학교 때 꽤나 말썽을 부리던 잎이 누나는 20살 때 국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포기 하고 해외로 향했다. 당시 잎이 누나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 영국에 패션 디자인 관련 공부를 하러 간다고 말했다. 그렇게 작별을 했던 것이다.
 난 겉으론 웃으며 새삼스레 느껴지는 당시의 우울한 감정들을 꾹꾹 내리 눌렀다.
 “헤에. 그 말은 공부가 잘 됐다는 말로 알아들으면 되지?”
 잎이 누나는 언제나처럼 히죽 웃으며 자신 있게 검지를 치켜든다.
 “당연히 임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성공적! 판타스틱 퍼펙트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누가 뭐래도 내가 믿는 잎이 누나니까. 헤헤.”
 쑥스러운지 잎이 누나는 알록달록한 자신의 머리를 아이처럼 긁적거렸다.
 그 모습에 좀 더 짓궂은 질문을 하기로 결심하며 탐정과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수호 마을의 전설인 누나가 과연 공부만 했을까, 라는 의문은 필연인데?”
 “에엑. 전설? …뭐, 아무튼. 확실히 밤마다 영국 큐티 가이들을 쓰러트리고 다녔지.”
 쓰러트렸다는 그 말이 지닌 묘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놀란 표정이 됐다.
 “…쓰, 쓰러트렸다고?\"
 하지만 잎이 누나는 유쾌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쳐 보였다.
 “그런 게 아니라. 이렇게 남자들을 팍팍 쓰러트리는 거야. 매력 발사! 탕탕!”
 그렇게 왼손을 들어 올려 권총 모양을 만든 뒤 날 향해 총을 쏘는 제스처를 취했다.
 어쩜 조금도 변하지 않은 그런 모습들에 훌쩍 커버린 잎이 누나의 모습도 익숙해졌다.
 “…매력발산? 뭐, 좋은 거겠지. 그보다 이제 한국에 완전히 돌아오기로 한 거야?”
 “어, 어어? 아. 뭐랄까…. 그게 말이야. 조금은 애매한 걸.”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들어 버렸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 후 미국으로 떠나셨고, 아버지마저 사고로 날 떠나셨다.
 난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싫다.
 “뭐야…, 그 말은 언제든 그때처럼 다시 훌쩍 떠나버릴 거란 뜻이야?”
 “확실히 장담 할 수도 없고,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한 가지는 약속.”
 그렇게 말하고 잎이 누나는 날 향해 방긋 웃어보였다.
 “오늘 밤엔 오랜만에 모두가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드는 거야!\"
 잎이 누나의 말이 맞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은 접어 두고 지금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오랜만에 잎이 누나, 그리고 은재와 다 함께 모여 밤새 이야기를 나눌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져 버렸다. 하지만 역시나 지속되는 꿈과 그 꿈이 만들어내는 현실의 이상한 일들이 마음의 한 구석을 내리 누른다. 내가 여유 부려도 되는 걸까?
 아니.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여유이다.
 꿈이 아닌 나의 소중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니까.
 그런 일상에 충실하면서, 타인을 끌어들이지 않고 꿈의 원인과 진실을 찾을 것이다.
 “와아아! 영국에서 봤던 것만큼이나 커다란 저택이잖아?”
 놀라는 잎이 누나의 목소리에 머릿속을 지배하던 생각들을 훌훌 털어버렸다.
 어둠속에 홀로 불을 밝히며 담벼락 너머로 자리 잡은 커다란 저택. 
 왠지 압도되는 그런 저택의 앞으로 다가가 정문에 있는 벨을 지그시 눌렀다.
 ――끼이이익.
 문은 기괴한 소리와 함께 열린다.
 그 순간 까지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또한 지금까지의 나의 다짐이, 그 얼마나 우스운 허세였는지를.
 나와 잎이 누나는 문턱을 넘었다.

 그녀도, 문턱을, 넘었다.



태그
5   lv 5 7.83333333333% / 1547 글 50 | 댓글 360  

게시물 주소 http://seednovel.com/pb/12992
트랙백 주소 http://seednovel.com/pb/tb/12992
29824 bytes / 121.175.99.44
목록
9 다리만삼톤 10/25/04:31
오오....................
잎이누님도 나오셨으니 이제 제대로..
근데 또 닉네임이 바뀌셨네요 디긋디긋

자유연재 검색된 1 / 1 Page, Total 11 Documents
번호 제목 이름 시간 조회 추천
11 9. 두 사람 - 2 [1막 완] 5 08.11.09 758 0
10 9. 두 사람 - 1 [1] 5 07.12.04 816 0
9 8. 키퍼 [1] 5 07.11.08 775 0
8 7. 하은재 [1] 5 07.11.06 851 0
7 6. 마음 [1] 5 07.11.03 785 0
6 5. 재회 [1] 5 07.10.25 835 0
5 4. 추락 [1] 5 07.10.15 882 0
4 3. 없는 밤 [1] 5 07.10.09 801 0
3 2. 키핑 5 07.10.09 783 0
2 1. 공휴일 5 07.10.09 866 0
1 0. 프롤로그 [1막. 시은하] [1] 5 07.10.07 1051 0
전체목록 < 1 >


Page loading time:0.03s, Powered by pimangBoard v3
회원가입 | 정보찾기

연재

자유연재

공모전연재

베스트 작품

작품 홍보


▶ Today 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