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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세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세계가 변이되어 간다는 배경을 가지고 다양한 인물들의 과거와 내면을 얽고 얽어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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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노을빛달[areara]
조회 775    추천 0   덧글 8    / 2007.11.30 03:35:47


 헬맷을 쓰며 바이크 위에 올라 시동을 걸자, 엔진은 따당 따당 거리며 작은 고양이마냥 울었고, 소율은   스로틀을 쓰다듬듯이 감았다 풀었다를 반복하여 엔진을 달랬다. 본래 2행정 형식의 엔진을 사용하는 바이크는 예열 과정을 신경 써 주지 않으면 흔히 엔진이 붙었다 라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건 실린더와 피스톤의 표면이 녹아 서로 들러붙게 되는 일이었다. 이런 문제는 엔진의 구조 결함에 의한 것이었지만, 4행정 엔진에 비해 작은 배기량으로 고출력을 내어주는 구조라서, 아직도 스쿠터나 소배기량 레이스 머신에 여전히 중용되는 엔진 형식이었다. 관리하기 번거롭긴 하지만 소율은 이런 엔진만이 내는 높은 톤의 배기음과 사나운 출력 특성을 좋아했다.
 게다가, 이 위에 앉아서 갸릉갸릉 거리는 바이크의 울음을 듣고 있노라면...

 \'어머니의 기분을 알 것만 같아.\'

 어머니가 달리던 세상을, 똑같은 세상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어려운 형편에도 이 바이크를 처분한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이크는 마냥 교태를 부리며 신나게 달릴 준비가 다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베아트리체가 신발을 갈아 신고 소율을 쫓아 교사 뒷편으로 왔을 땐, 이미 그가 바이크를 출발시키고 있을 때였고, 그녀에겐 바이크를 쫓아갈만한 이동수단이 없었다.

 \'뭐야, 학생 주제 저런 걸 타는 거야?\'

 그녀가 알고 있는 고등학생이란 개인 이동수단을 가지지 않은 게 보통이었지만, 이 학교와 소율 둘 모두 그 보통이란 범주에서 벗어나 있단 걸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소율이 바이크를 타고 학교 후문을 유유자적 빠져 나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기, 바보!!!!!\'

 그녀는 자신의 부족한 통찰력 대신에, 이 시대의 정보를 자신에게 알려주었던 애꿎은 후견인을 바보로 매도함으로서 분한 마음을 삮였다.
 소율이 등교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체적으로 15분에서 20분 정도였는데, 그건 평균 시속 80Km 이상으로 달렸을 경우의 애기였다. 하교할 때는 좀 더 느긋하게 달려 30분 정도 걸려서 집에 도착하곤 했는데 오늘은 그렇게 여유롭게 달릴 사정이 못 되었다. 평소 같으면 집으로 돌아가 저녁 식사를 하고 느긋하게 아르바이트 하는 곳으로 갔을 터인데, 오늘은 오너가 할 일이 많다고 서둘러서 오라는 바람에 시간이 빠뜻했다. 그래서 소율은 알피엠(Revolutions Per Minute)을 6,000이하로 떨어트리지 않고, 파워밴드(주5)를 이용하여 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달려 나갔다.

 -꼭 알바 해야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도와줄 친척 없어?

 문득 문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있긴 있어, 하지만 이모는 이모대로 힘든 걸.\'

 유일한 친척인 이모는 어머니와 나이차가 많이 나서 조카인 그와 겨우 10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데다가, 그 젊은 나이에 이미 8살 먹은 딸을 키우는 어머니이기도 했다. 게다가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를 낳은 탓에 여자 혼자 몸으로 온갖 멸시와 고난을 받으면서도 꿎꿎하게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모에게 더 이상의 부담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스로틀을 감아 바이크를 가속시켰다.
 10분, 시속 80km로 달려 20분이 걸릴 거리를 단 10분만에 주파하고 지하 주차장에 바이크를 세운 뒤, 헬맷을 벗으며 소율은 뭐가 아쉬운지 한마디 툭 내뱉었다.

 \"브레이크를 없앨까?\"

 그의 지인들이 들었으면 기겁을 할 그 한마디를 정말로 실행에 옮길려는지 브레이크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맘이 바꼈는지 금세 발길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브레이크를 없애면 더 빨리 달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 늦어질 뿐이다.
 그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서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잡지 않았어도 될 브레이크를 사용한 탓에 기록이 나빠진 것이 분해서 잠깐 그런 생각이 든 것이었다.

 \'요즘, 겁이 많아졌어. 처음 타기 시작할 땐 지금보다 빨랐는데...\'

 예전이 더 빨랐다는 건 어디까지나 추억에 젖은 상념일뿐, 실제로는 옛날보다 경험이나 기술의 모든 부분에서 상당히 발전한 지금이 훨씬 더 빠르게 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소율은 키를 찾으며 현관문 앞으로 걸어갔다.

 -리이이이이이잉...............

 머리 속에 그 누구에게도 들릴 리 없는 소리가 울리고, 망각의 저편에 묻혀 있던 기억들의 잔재가 사자(死者)의 형상을 빌려 소율의 발목을 붙잡았다. 단 한 순간도 잊은 적 없는 얼굴이었다. 머릴 풀어 해치고 창백한 얼굴이어도,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게 파란 실핏줄이 비치는 흉측한 몰골이라 해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매일 집에서 밥을 먹을 때, 자신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얼굴인데....
 그녀의 손이 소율의 의식을 붙잡아 당겼다. 의식의 수면 아래로, 보고 싶지 않은 기억을 봉인한 무의식의 심연 속으로 계속해서 끌어 내렸다.

 아아.....................안.....돼........
 ...................머.....멈.......춰.........................
 
 -화악!!!- 커튼이 펄럭인다. 펄럭이는 커튼을 스치며 하늘을 붉게 물들인 햇살의 조각이 드나들었다.
 창 앞에 한 남자가 서 있다. 붉은 노을을 등지고 실루엣만 남은 그에겐 괴이하게 뒤틀리고, 몸집에 비해 이질적으로 커다란 팔이 달려 있다. 호랑이의 것을 닮은 날카로운 발톱에는 붉은 피가 흐른다.
 미광이 닿는 곳에 붉게 물든 어머니가 있다.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죽었다. 누가 봐도 그 것이 시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분명 죽어 있다.

 아..........................................

 머리 속을 울리는 이명으로 인해 되살아나는 그 날의 악몽을 억누르려 애를 썼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지만, 마음 속에서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불안은 이제 종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날도 그랬다. 그 날도 현관문 앞에 섰을 때, 이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체를 보았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떨리는 손으로 다급하게 현관문을 열어 젖히는 순간까진 그 날과 완전히 같았다.
 집 안에는 누군가 신발을 신고 들어왔는지 발자국이 남아 안방까지 이어져 있다.
 소율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서둘러 거실에 장식 해 둔 목도를 챙기고 살금살금 안방으로 다가가, 단순한 좀도둑일 뿐이다 라고 스스로에게 수 없이 되뇌였다. 그저 값나가는 물건을 훔치러 들어온 것뿐이니 붙잡아서 경찰에 넘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렇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가 안방에서 어머니의 유품에 손을 대는 걸 봐 버린다면 지금까지의 자신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아니, 분명 그렇다. 매일 매일, 어머니가 살아 있다고 스스로를 속여온 자신이 조금씩, 아주 천천히 깨져 가고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지금까지의 일상을 \'OFF\' 하는 스위치가 들어갔다.

 침입자의 발자국을 따라 안방으로 미친듯이 달려가 문을 벌컥 열어 젖혔다.
 그리고 봐버렸다.

 짙은 갈색의 피부를 가진 동남아인이 어머니의 화장대 위에 올려진 보석 상자를 들어서 열고 있었다.

 갑자기 문을 열고 들이닥친 집 주인을 보고 놀란 도둑은 손에 들고 있던 보석 상자를 놓쳐 버리고, 바닥에 떨어진 상자는 그 안에 든 것들을 와르르 쏟아냈다. 그 날의 핏자국이 채 가시지 않은 방바닥에 어머니가 아끼던 진주와 비즈들이 샅샅이 흩어져 검붉은 흔적을 더더욱 강조했다.
 크게 뜬 두 눈 속에 깊은 어둠이 확장 되고 소율은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그래. 확실히, 꺼졌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 날도 바람이 잦았다.
 제복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노인이 바람에 펄럭이는 머플러를 질끈 쥐며 단언했다.

 -그녀는 죽었다. 이젠 이 세상에.......

 잊고 있던 말이, 잊으려 했던 것이 떠올라 버렸다. 스스로에게 어머니는 살아 있다고, 수백, 수천번을 일러 왔고 그렇게 믿어 왔지만 그저 단 한번 그 말을 기억 해 내 버린 것만으로.... 물거품 같은 거짓은 지금까지의 일상과 함께 재와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아아아.............\"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탄식이 흐를 때, 그의 평온을 훔친 도둑이 그를 밀치고 달아났다.
 힘 없이 튕겨 나가 문에 등을 부딪힌 뒤, 그대로 거기 기대어 주저 앉는 동안에도 소율의 의식은 그 날에 못 박혀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그의 눈동자는 방 바닥에 쓰러져 있는 어머니의 시신이 비추고 있었다.
 잊지 않았다. 잊어선 안 되었다. 잊을 순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잊-외면하-고 있었다.

 그에게 세상이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이었고, 어머니는 그의 전부였다. 숨 쉬고 있던 공기가 사라져 버리면 금방이라도 질식하듯이 그는 미친듯이 방황하며 괴로워했다. 사실, 그건 슬퍼서가 아니라, 괴로워서도 아니라, 그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찾아 헤맸던 게 아닐까? 어머니와 함께 죽어 버리지 않고 이대로 살아 있는 자신은 너무나도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 해 버리니 너무나 슬퍼졌다. 지금까지의 일상이 모두 부정되어 버리고 나니 자신에게 애정을 가지고 대해 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했고,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너무나 바보 같아서 더더욱 미워졌다. 자시는 지금 대체 왜 살고 있는 건가? 왜 세상과 함께 사라지지 못 했을까 하고 후회했다.

 \'왜 어머니가 죽었야 했지? 왜 내 모든 걸 앗아간 거야?\'

 그는 죽지 못 했다. 아니, 죽을 수 없었다.
 어머니를 따라 죽을 용기도, 어머니가 없는 세상을 살아갈 용기도 없어서 지금까지 스스로를 속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비겁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이대로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모든 걸 잊거나....

 \'붙잡아야.......\'

 복수하거나.

 -부숴버려-

 자신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간 자에게 복수한다.
 소율은 달아난 남자가 분명 어머니를 죽인 살인자라고 확신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럴 가능성보다 아닐 가능성이 높단 걸 알 수 있었지만 그의 이성은 지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소율은 흉흉한 살의를 품고 집을 뛰쳐 나갔다.
 달렸다, 발이 바닥에 닿는 것을 느낄 수 없도록! 빠르게! 더욱 더 빠르게!! 계속해서 발을 내딛어 뛰어올랐다. 가벼운 몸은 그야말로 한 발의 화살이 되어 바람을 가르듯이 나아가, 이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마구 눌러대고 있는 과녁을 발견했다.
 화살의 과녁이 자신을 쫓아온 자그마한 체구의 남자 아이를 돌아보자 그의 맘 속의 누군가가 물었다.
 -왜 달아나지? 저런 조그만 녀석, 몇대만 때리면 기절한다고...
 분명 그랬다. 그만한 체격으로 저런 조그만 꼬마 하나 어찌 못해 달아나는 꼴은, 호랑이가 개를 보고 달아나는 것이나 다름 없었음에도, 그는 그런 시커먼 충동을 뿌리치고 계단으로 달아났다. 고향에 돌아가면  저 또래의 동생들이 있는 자신이 저 아이를 때린다면, 동생들을 볼 면목이 서질 않아서였다.
 소율은 그의 그런 기분을 알 턱이 없고 설령 안다고 해도 이해 해 줄 상태가 못 되었다.

 \"거기 섯!!!!!!!!!!!!!!!!\"

 있는 힘껏 외쳤지만 그렇게 외친다고 해서 상대가 멈출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큰 목소리로 상대에게 자신이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왔단 느낌을 주어, 짧은 순간이지만 달아나던 자의 이목을 끌려는 의도였다. 바라는대로 달아나던 자가 계단 위를 돌아보는 순간, 소율은 손에 들고 있던 목도를 일부러 보란듯이 큰 동작으로 힘껏 던졌다.
 목도가 코 앞으로 살벌하게 날아들고 달아나려던 남자는 한 걸음 물러섰다. 소율이 노리던 바였다.
 계단 난간을 밟고 뛰어 오른 소율이 온 몸을 실어 발차기를 뻗고 남자는 얼떨결에 자신의 팔로 막아냈다.
체구는 작아도 몸을 내던진 발차기는 묵직했고 두 사람은 그대로 뒤엉켜 벽에 부딪혔다.
 -우당탕!- 넘어진 두 사람 중 먼저 충격에서 벗어난 도둑이 다시 일어서려는 것을, 소율이 잽싸게 발을 걸어 넘어트리더니 그대로 그의 배 위에 올라타 멱살을 잡았다.

 \"x새끼!!!!! 네가!!! 네가!!!!!!!!!!!\"

 \"큭!! 미친 놈!!!\"

 멱살을 잡고 목을 조르는 소율의 손은 근육의 경련 탓인지 아님 또 다른 이유에서인지 심하게 떨렸고, 부릅 뜨고 있는 두 눈동자와 일그러진 얼굴은 그의 말마따나 광인(狂人)이 따로 없었다.
 남자의 주먹이 있는 힘껏 소율의 볼을 때렸지만, 그런 무게가 실리지 않은 주먹으론 그 작은 몸 하나 쓰러트리지 못했다. 가벼운 주먹은 되려 소율의 광기를 부추기는 도화선이 되어 버렸다.

 \"네가 죽였어!!!!!!!!!!!!!!!!\"

 소율의 자그마한 주먹이 마구잡이로 무방비한 남자의 얼굴을 두드리고 한방, 한방 때릴 때마다 함께 상처 입어 갔다. 아드레날린 탓에 통증을 잊은 소율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데미지도 모르고, 모조리 다 부숴 버릴 작정으로 단련되지 않은 주먹을 마구 내려쳤다.
 결국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망가져 버린 주먹과 퉁퉁 부어오른 얼굴, 둘 중에 어느 쪽이 망가진 것인지 알기도 전에 얻어 맞고만 있던 남자가 상황을 뒤집었다. 별 다른 기술을 시도한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순히 힘으로 들어올려 뒤집었을 뿐이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체격 차는 컸다.
 자신보다 작고 힘이 약한 자를 제압하는 것은 실로 너무나 단순하고 간단했다. 그저 상대를 넘어트리고 그 위에 올라탄 채 안면에서도 뼈가 없는 약한 부위를 주먹으로, 주먹이 단련되지 않았다면 손목이 이어지는 손바닥 부분으로 계속해서 가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가해자의 손은 다치지 않고 상대의 몸에 꾸준히 충격을 주어 제압할 수 있다.
 그렇게 소율은 처참하게 박살났다. 제대로 한번 반격도 못하고 계속해서 두들겨 맞아 코는 내려 앉고 입 안은 피투성이가 되고, 두 눈두덩은 모두 부어 올라 앞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무력하게 천천히 의식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젠장........제길...........\'

 자신은 왜이리 약한 건지, 왜이리 무력한 건지, 너무나도 분하고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무력감에 짓눌려 자기혐오란 이름의 폭력에 두들겨 맞으며 스스로를 찢어 발기는 자괴감에 몸부림칠 때, 그의 귓가에 누군가가 속삭였다.

 .................바꾸겠나?.......

 \'뭐, 뭐야?.... 뭘 바꾸잔 거야?!\'

 날 받아 들인다면 네게 복수할 힘을 주겠다.

 \"으아아!!!!!!!!!!!\"

 소율의 위에 올라탄 남자는 악을 지르며 잔뜩 손을 치켜 들어 내려쳤다. 소율의 턱이 가차없이 돌아가고 그 순간 의식이 날아갔다.

 \'.......어머니의.......원수.....................\'

 그 바램, 이뤄주마.

 다시 한번 손바닥이 소율의 안면을 가격하는 순간, 그는 절묘하게 고개를 돌림으로 타격을 흘려 버리며 동시에 두 손으로 상대의 무릎 관절 신경을 자극했다. 신경을 자극 받은 무릎은 아주 잠깐이지만 관절을 펴기 위해 근육을 수축시켰는데, 소율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몸을 일으키며 상대를 밀쳐냈다. 빗나간 손이 바닥을 짚은 탓에 몸무게가 분산되어 그리 큰 힘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이 없게 상대를 놓쳐 당황하고 있는 남자의 머리를 소율의 손이 잽싸게 붙잡았다.

 \"대답해라, 뭣 때문에 온 거지? 누가 사주했나?\"

 설령 마운트(주6)에서 벗어났다고 한들 두 사람의 입장이 바뀔 리가 없었다. 여전히 그의 몸이 더 컸고 힘이 더 셌으며, 다시 꼬마를 눕혀 두들겨 패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당당한 꼬마의 태도에 남자는 어이가 없었다.

 \"닥쳐!!!!!\"

 이번 일만 잘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 동생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 일념으로 남자는 주먹을 뻗었지만 그의 몸은 이미 그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온 몸이 감각은 있지만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교감 신경의 잠식, 그 것이 그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미 체크매이트다. 아무래도 넌 안될 것 같긴 하지만...\"

 소율이 두 눈을 감자 그 순간, 남자의 의식은 태풍에 휩쓸려 날아갔다.

 

 붉은 하늘, 흩날리는 재, 매말라 갈라진 광대한 대지엔 풀 한 포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세계, 모든 것이 죽은 이 곳에 남아 있는 것은 영원히 목 마른 망자들 뿐이었다. 무미건조한 이 세계에 일말의 감정, 이성 그 모든 것을 빨려, 남은 것이라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망념 뿐인 존재들이 하나 둘, 다른 세계에서 온 살아있는 인간의 영혼 가까이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온 몸의 피가 말라 붙는 것만 같은 고통과 목이 타는 듯한 갈증에 허덕이며,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영혼인 제물이 울부짖었다. 자신의 존재가 한 줌 모래가 되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과, 자신의 혼을 탐내어 모여들고 있는 악령들이 그의 마음을 침식하고, 이성은 초콜릿 마냥 녹아버려 질척였다.
 삐쩍 마른 미라같은 영혼들이 살아있는 인간의 혼을 음미하며 몸을 부볐다.

 -선택권을 주지, 잘 골라보라고... 걔 중에 네게 잘 맞는 것이 있을지 몰라.

 악령들에게 붙잡여 움직일 수도 없는 남자의 앞에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소율이 나타났다. 그의 두 눈은 붉었고, 새까만 머리는 불이 붙은 것 마냥 붉은 빛이 넘실 거렸다.

 -빨리 하지 않으면 너도 저들과 같이 되어 버릴 걸.

 지독한 조소를 가득 머금으며 담백하게 내뱉었다. 그 말과 함께 그들과 같게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의 머리 속에 흘려 보내주었다. 전신이 타 들어가는 고통에 영원히 괴로워하며 정신과 육체, 둘 모두가 썩어 문드러지고, 결국엔 저들처럼 추악한 몰골로 변해 버리는 자신을 보며 남자는 절규했다.

 \"우와아아아악!!!!!!!!!!!!!!!!!\"

 

 소율, 아니 그의 몸을 빌은 존재는 자신이 붙잡고 있는 남자의 눈동자 속의 붉은 세계, 서역(西域)을 바라 보았다. 살아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고, 죽었으되 죽은 게 아닌 존재들이 영원히 갈증에 허덕이며 괴로워 해야만 하는 생지옥이 그 곳에 있었다.
 이 세상과 서역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 이 몸의 정신은 서역의 망자들에게 붙잡혀 발버둥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헤어나올 수가 없었고 이내 수 많은 망자들 속에 파묻혀 버렸다.
 서역을 비추며 붉게 빛나던 두 눈동자가 점점 빛을 잃어갔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이어주는 문이 닫히고 있었다.

 \"역시, 무리인가.\"

 순간, 그의 머리 속에 찌잉!!! 할 정도로 날카로운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서역의 문이 완전히 닫힌 두 눈동자엔, 달이 없는 밤의 어둠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하!!!!!!!!!!!!!!!!!!!!!!!!!\"

 자신의 백성이 이 세계에 안착하는 모습을 보며 소율의 모습을 한 서역의 적왕(赤王)은 크게 웃었다. 그것은 침식(浸蝕), 이세계로부터 찾아온 변용(變容)의 사자(使者-Angel), 추악하게 일그러진, 그렇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 순간을 보며 망자들의 왕은 미소 지었다.

 \"보았다, 네 어둠을.............\"
 
 

 바이크에 올라탄 채 헬맷을 쓰는 한 여인이 자신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는 자식의 모습이 눈에 걸리는지 손짓하여 그 아이를 불렀다.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소율은 단번에 그녀의 품에 안기고 어머니는 품에 안은 아이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그런 눈으로 보면, 일하러 갈 수가 없잖니.\"

 \"...하지만.....\"

 \"뭐가 그렇게 불안하니? 엄마가 바이크 타는 거? 아님 무서운 아저씨랑 일하러 가는 거?\"

 다정한 목소리로 물으며 소율의 긴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준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올려다 보고 그녀는 웃어 보였다.

 \"바이크 타는 거. 아저씨는 어머니보다 약하잖아요.\"

 약하다는 말에 그만 웃고 말았다. 그가 자신의 투정을 받아줄 뿐이라는 걸 어린애에게 어떻게 설명 해 주면 좋을지 난감했고 또 한켠으로는 즐거웠다. 아이의 눈에는 그렇게 비치는구나 하곤 웃었다.

 \"바보구나, 엄마는 바이크 타면서 사고난 적이 한번도~ 없어요.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엄마는 죽어도 율이 앞에서 죽을 거니까 그렇게 불안해 할 것 없네요, 알았죠?\"

 그 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가 살아계실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아니, 적어도 그 날, 악을 쓰고 때를 써서라도 그녀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운명을 바뀌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어머니를 붙잡아라고, 못 가게 막아라고 외쳤지만 어린 그는, 어머니가 죽은 후에 후회하는 자신의 목소릴 듣지 못하는지 풀 죽은 얼굴로 어머니를 배웅했다.
 그렇게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한 말대로 소율의 앞에서 죽었다. 아니, 이미 죽어 있었다.
 그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벌써 차갑게 식어 검붉게 굳어가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소율의 마음도 딱딱하게 굳어갔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별 거 아닌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흘러 나오던 눈물은 이렇게도 슬픈데, 아니 슬퍼야 하는데 조금도 흐르지 않았다. 아아, 두 손으로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쥐어 짜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단 한방울도, 그녀를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슬퍼하지 않는 그의 앞에 누군가 다가왔고,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소율은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의 보석상자를 들고 있던 남자가 웃는 얼굴로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너도 죽고 싶은가?\"

 아아, 그래. 차라리 나도 같이 죽었어야 했어.

 \"도망치는 건가? 그 것도 좋지.\"

 뭐?.... 나, 난... 도망치고 있었던가?.................

 \"그래, 나라면 이렇게 해 버렸을 거다.\"

 눈 앞에 남자의 몸이 유리처럼 금이 쩌억 가더니 붉은 고깃덩이가 되어 와르르 무너졌다.
 갈기갈기 찢긴 고깃덩이를 누군가의 발이 밟았다. 그의 모습은 검은 실루엣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의 것이 아닌 기이한 팔의 형상 탓에 소율은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증오스럽지 않은가?

 증오해!!!!!!!!!

 \"그런데 왜 넌 도망치지? 두려운가? 무섭다면 어쩔 수 없지. 꺼져라, 겁쟁이.\"

 내 모든 걸 빼앗간, 내 일상을 깨부신 널 용서할 수 없어! 하지만!! 하지만!!!!!!!!
 난.... 사람을 죽이는 건..... 할 수 없어.......

 \"그래? 그럼 죽어라. 네 몸은 내가 유용하게 써 주지.\"

 괴물의 손이 소율의 머릴 붙잡아 들어올리더니 이내, 터트릴 작정으로 힘을 주기 시작했다.
 힘 없고 나약한 소년은 가련하게 발버둥 쳤다. 하지만 용서는 없었다.

 -퍼억- 하고 두개골은 박살나고 그 안에 든 것들은 머릴 잃고 힘 없이 쓰러지는 몸 위에 쏟아졌다.

 복수한다고 해서, 죽인다고 해서,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진 않아. 분명 그런 건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괜찮다는 건 아냐!!
 후회해, 지금까지 달아나고 있던 자신이 싫어. 이렇게 살아가는 건!!! 죽기 보다 싫어!!!!!
 찾고 싶어. 어머니의 죽음에 달아난 나 자신을 되찾아서 후회하지 않게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난 복수 하겠어. 그렇다고 그 자를 반드시 죽이겠단 건 아냐. 그 자를 찾아내 어머니를 왜 죽인 건지, 어머니가 대체 왜 죽었야 했는지 알아내겠어. 그리고, 후회하게 만들 거야. 후회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야, 살인자라고. 혹 그를 죽여야 한다면 망설이지 않겠어.
 ....나약한 나는, 거짓된 나는 지금 죽었어.

 소율의 어머니를 죽인 자의 모습을 한 서역의 왕은 자신의 그릇이 될 자를 질렸다는 얼굴로 내려봤다.

 \"지독한 놈, 한번 죽지 않고서야,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일 순 없다는 건가.\"

 머릴 잃은 소율의 몸이 꿈틀 거리더니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래, 시작하자, 찬란한 악몽을! 이 꿈의 끝은 지옥이다.\"

 


#주5 - 파워밴드, 출력이 급격히 상승하는 회전 범위를 말한다. 2행정 엔진은 보통 이 영역을 제외한 회전역에선 제대로 힘을 내지 못하지만 파워밴드 내에선 힘이 넘쳐나기에 이런 형식의 엔진을 가진 바이크를 빠르게 타기 위해선 파워밴드를 항시 유지하도록 기어 변속에 신경써야 한다.

#주6 - 마운트, 이종격투기에서 누워 있는 상대의 몸 위에 올라타는 포지션을 뜻하며 또 그 자세에서의 공격기술등을 총칭하기도 한다. 어지간해서는 빠져 나오기 힘들며 이종격투기에선 이 포지션을 이루어지면 승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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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을빛달  lv 2 0.666666666667% / 302 글 17 | 댓글 44  
아............그래, 난 여기 없다.

꿈을 꾸는 듯이, 꿈 속을 걷는 듯이, 이 무채색의 세상을 유영한다.

볼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만이
.....................나에게 주어진 하나뿐인 현실, 호흡, 고동, 파도...........

아득히 먼 곳에서
하지만 지금도 귓 속에 멤도는 그리운 소리.


코드 리볼버(CoDe -Revorver-)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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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방랑마도사 11/30/04:20
....뭐야 이거.
0 바란토르 11/30/12:35
...우아,.
0 월하연 11/30/06:18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기분
2 노을빛달 12/01/01:14
월하연, 너마저.....
0 예소드 12/01/09:08
수고하십니다
0 방랑마도사 12/07/12:57
...풀어쓸려고 애쓴다...그나저나 확실히 이해하긴 편해졌네.
건필.
4 지나가는사람 12/11/03:23
에그러니까.... 뭐야이거?....
2 노을빛달 12/11/03:58
흐아, 다들 이런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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