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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세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세계가 변이되어 간다는 배경을 가지고 다양한 인물들의 과거와 내면을 얽고 얽어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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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을빛달  lv 2 0.666666666667% / 302 글 17 | 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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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노을빛달[areara]
조회 846    추천 0   덧글 7    / 2007.12.03 03:52:34


 별빛은 타락했다.
 태고 시절부터 찬란히 빛나며 밤하늘을 수놓던 그 것들은 이제, 인간의 도시를 밝히는 조명보다도 어두웠다. 인공의 불빛에게 칠흑과 같은 어둠을 빼앗긴 밤하늘은 더 이상 별빛을 돋보이게 해 줄 수가 없어, 반쪽 달만이 을씨년스럽게 하늘에 떠 있었다.
 도시의 밤은 밝다.
 전기란 것을 발견하여 그 것을 빛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게 된 인간들은 불을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훨씬 빠르게 밤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해가 떠 있는 낮 동안에만 활동하던 영장류 인간은 이제 어둔 밤마저 밝게 바꾸어 살아가기에.... 타당한 밤의 주민이자, 주인인 그들을 잊어 버렸다.
 본래 색을 잃고 검푸르게 변색된 밤하늘을 올려다 보던 밤의 주인이, 오만방자한 손님들의 도시를 내려다 보며, 와인잔을 들어올려 그 안에 든 검붉은 액체의 향을 음미했다.

 \"참아라, 겁 많은 어린 양을 꾀어 내었으니 이제 헤매기만을 기다릴지어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그 순간부터 밤은 그의 자손인 뱀파이어들의 것이었다. 그런 밤 하늘 아래로 인간들이 나오는 것은 그들이 어둠을 밝히는 빛을 얻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피를 마시고 그들을 농락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뱀파이어들이 달콤한 말로 그들을 꾀어내었기 때문이었다.
 인간들에게 밤을 열어둠으로서 뱀파이어들은 인간들 속으로 녹아 들어 갔고, 그렇게 지금 몇몇 뱀파이어들은 사회의 중추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아니, 이젠 뱀파이어가 인간들을 사육하고 있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현대의 뱀파이어는 고대 바빌론 왕국의 뱀파이어들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나약하고 신비롭지 못했다. 태양 아래에서도 당당히 활보하고, 신과 같은 이능을 행사하던 그들과 달리 그들의 후예들은 태양광에 노출되면 순식간에 재가 되어 버렸고,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는 속임수나 다름 없는 저급한 마술과 같은 것 뿐이었다. 그런 약해빠진 흡혈종이 어떻게 멸종하지 않고 지금껏 살아가고 있는 건가?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그들은 인간보다 교활하고 비정했으며 미쳤다. 단지, 그 뿐이었다. 힘을 잃어갈수록 그들은 더더욱 교활하게 인간의 마음을 이용했고 그들의 나약한 부분을 파고 들었다. 그리하여 그렇게 살아 남았다.
 그들을 멸망시키기 직전까지 갔던 사건이 있었다. 그 것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발생한 마녀 사냥을 비롯한, 이교도와 마물의 퇴치였다. 인간들에게 붙잡혀 고문을 받은 어린 뱀파이어들 중에서 배신자가 나타나 혈족을 팔았고, 혈주(주7)는 더 많은 혈족을 살리기 위해서 어린 자들을 제물로 바쳐 인간들의 시선을 돌리려 했다. 이에 분노한 어리석은 혈족들은 언젠가 자신들도 혈주가 살아남기 위한 제물로 바쳐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의 아버지인 혈주를 인간들에게 팔았다. 혈주가 죽으면 그 피를 받은 모든 뱀파이어가 죽는데도, 어리석은 그들은 짧은 순간을 더 연명하기 위해, 생명의 원천을 인간들의 손에 넘겨준 것이었다.
 ...그러해서 늙고 힘 있으며 교활한 혈주들은 그들의 자식들을 모두 내쳤다. 그들은 자신들을 살려주는 댓가로 스스로의 자유와 그들의 자식을 화형장의 제물로 내놓았다. 그리하여 지구 상의 거의 모든 뱀파이어가 사라질 위기를 맞았었다.
 살아남기 위해 젊은 뱀파이어들은 최후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것은, 인간들 속으로 숨어서 그들이 자신들을 잊도록 하는 것이었다. 영원한 밤을 사는 그들과 달리 인간의 수명은 짧기에, 뱀파이어를 직접 보고 싸운 자들은 100년도 되지 못해 모두 죽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뱀파이어란 것은 인간들에게 한낱 이야기 거리로 잊혀지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아 떨어졌다.
 인간은 뱀파이어를 잊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들이 실존한다고 믿지 않았다.
 뱀파이어는 그렇게 살아 남았다. 그리고 지금은 인간들의 도시에 숨어 살며, 그들 속에서 인간인척, 그들의 친구이자, 가족, 연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 인간의 피를 와인 대신에 마시는 자도 그런 뱀파이어 중 한명이었다.

 \"저지(Judge), 에이전트(agent) 중 하나에게서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까만 턱시도를 입은 미남자가 은빛의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노크하고 들어오라 했잖아, 스팅(Sting).\"

 \"매번 말씀 드리지만, 전 분명히 했습니다. 못 들으셨겠죠.\"

 창 밖을 보던 남자가 돌아서자 어깨까지 덮고 있는 검은 머리가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그는 사납고 매서운 눈매를 잔뜩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단언했다.

 \"넌 쓸데없는 대꾸가 많다.\"

 \"대꾸가 아니라 올바른 지적입니다. 말장난을 바라시는 거라면 계속 놀아 드릴 순 있지만 에이전트의 보고는 나중에 들으시겠습니까?\"

 저지의 얼굴이 한결 풀어지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여간 넌 재미없는 녀석이야.\"

 \"저지도 재미없는 분이십니다.\"

 \"알아, 알아. 너한텐 재미없겠지. 자, 보고 해 보라고.\"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하는 얼굴로 저지를 보던 스팅이 보고서를 꽂아둔 파일을 열어서 저지의 앞에 있는 책상 위에 놓았다.

 \"지시한 대로, 발키리 프로젝트의 초안자 유휘주와 관련된 것들을 조사했습니다. 우선 그녀는 아시는 대로 죽은 사람이며, 룬테이션이 살해 했습니다. 유휘주를 죽인 룬테이션은 케르빔에 의해 사살 되었으며 그녀의 시신은 화장 되었습니다. 그녀에겐 3명의 유족이 있는데 우선 아들의 이름은 소율, 현재 유산인 아파트에서 홀로 생활 중이며 고교 재학 중입니다. 별 다른 특이점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라고 조사 했었는데, 그것도 오늘로 끝입니다. 그와 접촉했던 인간이 룬테이션이 되었다고 합니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인형처럼 말하는 스팅과 달리 저지의 얼굴엔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는 새로운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인간을 룬테이션으로 변이시킨 건가?\"

 \"그건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에이전트가 확인한 것은 결과뿐이었습니다. 과정은 미궁 속이지요.\"

 불확실하다, 그 말만큼 연구자가 좋아하는 단어가 어디 있겠는가?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이 나타나자마자 뛸리 없는 심장마저 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심장이 멎고, 호흡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된 그에게 탐구심이란 산소와 같은 것이었다.

 \"그에 대해서 조사한 건 있겠지? 너라면 이미 해 뒀을 거야, 분명.\"

 \"예, 보고서를 확인하시죠.\"

 저지는 서둘러 보고서를 훑어 보며 소율에 대한 신상정보를 찾아냈다. 프로필 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빈약한 정보 뿐이었지만 소율의 사진을 보며 저지는 웃었다.

 \"우연찮게도 딱 취향이실 아이더군요. 직접 만나 보시겠습니까?\"

 \"물론, 최대한 빨리 부탁하지. 여러가지로 알아 보고 싶으니까.\"

 \"예, 여러모로.... 유휘주가 그에게 뭔가 남겼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래, 그녀는....\"

 룬테이션 연구의 선구자이자,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전면적으로 적용한 3세대 암그레이브 발키리의 계발자이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둠의 주민인 뱀파이어들은 그녀를 공포와 경외를 담아 \'마녀\'라고 불렀다.

 

 수학 수업이 한창 중인 교실에서 소율은 멍하니 생각에 잠겨 노트에 샤프를 쓱쓱거리고 있었다. 우선 둥근 원을 대충 그려 그 안에 두개의 삼각형을 넣어 육망성을 만든 뒤에, 처음에 그린 둥근 원 밖에 지렁같은 것을 꾸물꾸물 그렸다.
 우로보로스, 인터넷을 뒤져서 그 그림이 그렇게 불린다는 것을 알아냈다. 자신의 꼬리를 물어 삼키는 사악한 뱀의 형태로 그려지며 시간, 삶의 연속, 비도덕성, 무한, 존재, 완벽, 완전, 순환적인 우주의 본질, 본질에 대한 자기 충복, 지구의 재부활 등 많은 것들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가 찾는 것은 아니었다.
 어제 자신의 집에 숨어 들어왔던 외국인은, 우로보로스를 상징하는 듯한 문신을 한 자의 사주로 집 안을 뒤졌다고 털어 놓았다. 의뢰는 발키리 라고 하는 암그레이브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고, 그래서 숨겨둔 칩 같은 거라도 없는지 찾아 보았다고 얘기했다. 혼이 빠진 것만 같은 그 남자는 그 외에도 소율이 묻는 말에 전부 대답하였는데, 그는 정말로 그 외에는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단순한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소율은 어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회상했다.

 얻어 맞는 도중에 의식이 끊어졌고 정신이 들었을 땐 넋이 나가 주저 앉아 있는 동남아인이 있었다. 자신을 두들겨 패던 자가 어째서 저렇게 된 것인지 몰라 어리둥절 하지만서도,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니 퉁퉁 부어 있어야할 얼굴이 어째서인지 상처 하나 없이 멀쩡 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몰라 혼란 해 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변이 중이다. 그래도 묻는 말엔 대답할테니까 궁금한 건 물어봐.
 
 화들짝 놀라서 허둥거리다 그만 넘어져서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이번엔 아찔할 정도로 큰 소리가 머리 속에 울렸다.

 -머리 한번 깨주니까 다 까먹었어?!!!! 이 자식, 편리한 대가릴 가졌구만!!

 그제서야 소율은 그 소리가 자신의 머리 속에서 들려온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들어먹을 준비가 됐나 보군. 구르지도 않을 돌머리 굴릴 궁리 하지 말고 말 해 주는대로 받아들여.

 우선 그는 자신이 소율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다른 존재라고 말 해 주었다. 그는 서역(西域)이라고 하는 다른 세계에서 왔으며 눈 앞에 있는 자에게 서역에 있던 자신의 백성 중 하나를 불러 넣었는데 아직 자릴 완전히 잡지 못해 저런 상태라고 간결히 설명했다. 소율은 그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려고 해 보았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그러니까 돌덩이 굴리지 마라니까!!!!!

 하고 한 소릴 들어 버렸다.
 그는 가만히 듣고 있으라고 다시 한번 주의를 준 뒤에 차근차근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우린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다. 그래, 외계인 같은 게 되겠군. 다만, 실체는 없어.

 지금 소율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그를 비롯해 그의 일족들은 먼 옛날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추방 당한 자들이며 그들의 몸은 이미 한번 죽어 흙으로 돌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려면 이 곳에 살아가는 인간의 몸을 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거 귀신(鬼神) 아닌가?\'

 -그래, 귀신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것들과 달리 우린 혼백(魂魄)을 모두 가지고 있다.

 \'.........\'

 -그러니까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마. 우린 그저 단순히 죽은 존재가 아니란 거다.
 살아 있는 사람의 정신(精神)은 사람이 죽으면, 정은 백(魄)이 되고 신은 혼(魂)이 되며 백은 죽으면 땅으로 돌아가며, 혼은 하늘로 돌아가 윤회의 고리 속으로 돌아가 새로운 백을 얻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죽었음에도 혼과 백이 떨어지지 못 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가 되어 하늘로 돌아가지도 다시 태어나지도 못한 채 대지의 정(精)이 매마른 서역에 가두어졌다. 그 것은 산 채로 미라가 되는 것과 같은 고통이다. 죽고 싶어도 우리의 백은 대지로 돌아가지 않아. 그럼에도 매마른 대지는 계속해서 우리의 정을 빼앗으려 하지.... 그건 정말로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다.

 \'어째서 죽지 못하는 거지? 어째서 그런 곳에 가둬진 거야?\'

 -하늘을 향해 반기(叛旗)를 들었으니까.

 그 말에 사막의 바람에 닳고 닳은 슬픔이 묻어났다.

 -네 머리 속에 괜찮은 말이 있구만. 룬테이션, 그 것이 우리가 자리 잡은 인간을 뜻하는 말이다.

 소율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어째서 흐르는지 알 수 없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 내었다.

 \'어째서 내게 온 거야?!\'

 -넌 기억하지 못하는지 모르지만, 네가 날 불렀다. 우린 우리의 뜻대로 이 세계로 오질 못 해. 어디까지나 이 세계의 존재가 불러주어야만 하지. 그리고 난 네가 바라는 것을 이미 주었다. 그럼, 이제 그 댓가를 요구해도 되겠지?

 \'뭐? 내가 뭘 바랬다는 거야?!\'

 -이 자식, 다 까먹은 거야? 네 어미의 복수를 위한 힘을 원했잖아?!

 그 순간, 소율이 잊고 있던 것들이 바람에 책장이 넘어가듯 기억났다.
 ...............그래, 시작하자, 찬란한 악몽을! 이 꿈의 끝은 지옥이다.
 어머니를 살해한 자의 모습을 한 자에게 박살난 머리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래, 난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했어.\'

 -네 어미는 죽었고 넌 복수를 위한 힘을 바랬다. 그 결과, 네가 어떤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상관 없겠지? 그렇다면 날 도와라, 나도 복수를 해야한다. 설령 그 것이 저 하늘이라 할지라도....

 \'우선, 네가 준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데? 과연 그 것이 하늘에게 복수할만 한 힘인가?\'

 -물론 네게 준 힘으론 무리겠지. 하지만 파천(破天)을 향한 도화선이 될 거다.
 내가 너에게 준 힘은 존재를 변이 시키는 힘, 이 세계의 인간에게 서역의 우리를 불러 들이는 힘이다. 난 서역의 말라 비틀어진 망자들의 왕이며, 네가 이 땅에 내 백성들을 모두 불러 들였을 때, 파천의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을 괴물로 바꾸는 힘인가......\'

 -지금에 와서 그만 두겠단 건 아니겠지? 그런 나약한 부분은 내가 죽여줬을 터인데?

 \'물론.... 그만 둘 생각은 없어. 단지, 정말로 쓸모 없는 힘을 줬다 싶어서 말야.\'

 -뭐?! 이 핏덩이가!!!!!!!!!!!

 육체가 있었으면 불같이 날뛰며 화를 내었겠지만 사념 뿐인 존재였기에 그는 소릴 지르는 것 같이 사념을 크게 발하는 것 외에는 그 걸 표현 할 방법이 없었다.
 머리 속이 울렸지만 소율은 덤덤하게 손으로 미간을 짚으며 생각했다.

 \'백골보다 더 늙었다고 생색내지 마. 아무리 생각해도 썩 좋은 힘은 못 되니까.\'

 -명령에 목숨 바치는 신하를 얻는 능력이 쓸모 없단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 앞에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주저앉아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너 누구의 사주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우리 집에서 뭘 했고?\"

 \"이름은 모른다. 그저 돈을 받기로 했을 뿐이야. 발키리에 대한 거라면 무엇이라도 찾아오라 했어. 그래서 숨겨둔 칩 같은 거라도 없는지 뒤져봤다.\"

 \"의뢰자 말야, 뭔가 특징 있을 거 잖아, 그리고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리고 발키리가 뭐야?\"

 \"그의 손등에 뱀으로 만든 원 안의 별이 새겨져 있었어. 만날 장소는 정하지 않았다. 그가 찾아올 거라 했어. 발키리는 암그레이브다.\"

 \"...문신이라, 아니 그 것보단 어떻게 찾아온다는 거야?\"

 \"모른다. 하지만 처음에도 그는 날 찾아서 왔다.\"

 \"...결국, 그 것말곤 더 아는 게 없는 거야?\"

 \"그렇다.\"

 \"좋아, 일어서. 완전히 변이가 끝날 때까지 숨어 있다가 끝나면 내 앞으로 와라.\"

 남자는 소율의 말을 듣고 일어나더니 비틀거리는 불안한 걸음걸이로 계단을 내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떤 명령이라도 다 듣는 거야?\"

 소율은 남자가 내려간 계단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그 어떤 명령이라도. 다만, 너 자신을 죽이라는 명령은 듣지 않을 거다.

 \"내가 죽으면 너도 사라지기 때문?\"

 -난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서역으로 돌아가 다시 날 불러낼 자가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테니까....

 \"좋아, 이 힘 받아 들이겠어.\"

 -그래, 언약은 맺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한가지 충고하자면.... 아무나 변이시킨다고 해서 그가 완전히 내 일족이 되는 게 아니다. 아무래도 받아 들일 수 있는 그릇이 따로 있는 모양인데....

 \"취소하겠어. 이 힘 반품 하지.\"

 -아앗!!! 잠깐!! 반품같은 건 안돼!!!!!!

 \"....뭐야, 반품 되는 거야?\"

 -아니, 안되지만....

 \"뭐, 상관 없지. 완전히 안되는 건 아닐테고, 내 명령을 한동안 듣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래, 그 것만으로도 네 복수는 충분히 가능하니까, 될 수 있으면 많은 인간을 변이시켜다오.

 \"...필요 이상으로 남발할 생각은 없어.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면, 조건을 알 수 있겠지.\"

 집으로 돌아간 소율은 집 안을 정리하고, 오늘 아르바이트를 갈 수 없다고 연락한 뒤, 인터넷을 이용해 부족한 정보를 보충하려 해 보았다. 하지만 밤 늦게까지 찾아서 그가 알게 된 거라곤 뱀이 나오는 신화에 관한 것이나 연금술에 관한 것, 그리고 최신예 육전병기인 암그레이브에 대한 지식뿐이었다.

 잠이 부족한 나머지 소율은 입을 가리며 하품을 했다.
 멍 했다.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졌지만 아직 아무 것도 수습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처럼 평온하게 돌아가는 지금 이 수업이, 일상이 너무나도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아, 그랬다. 세상은 전부 크나큰 가식으로 가득 차 있었지.
 문득, 자신의 옆에 앉은 인형같이 예쁜 소녀에게 눈길이 갔다. 까맣고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에 하얀 피부와 빨갛고 작은 입술, 서양인에겐 흔하지 않은 검은 눈동자마저 그 특출난 외모를 더욱 더 특별하게 부각시켜 주고 있었다.
 예쁘다.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다. 소율은 고개를 휙휙 저은 후 손등으로 눈을 부볐다.
 예쁘긴 하지만 분명 성격은 나쁜 듯 했다. 게다가 그녀가 전학 온 날, 수상한 자가 자신의 집을 뒤지지 않았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왠지 이 사람 같지 않게 예쁜 소녀가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비논리적인 추측이 떠올랐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망설임만큼 치명적인 것도 없다.

 \'그래서 어떡하란 거야? 조심하란 거야, 말란 거야?\'

 어제부터 자신의 머리 속에 방은 얻은 자에게 소율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건 네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특하면 저 소리. 이봐, 셋방살이 하고 있으면 도움이 좀 돼 보란 말야.\'

 소율의 말에 그는 그 이상 대꾸하지 않았고 답답해진 소율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잠들었고, 가끔 깨어나 쓸모없는 잔소리나 늘어 놓았다. 혹 깨어 있을 때 소율이 도움을 청하면 매번 \'그건 네 스스로....\' 라고 떠들었다. 도움이 안되는 놈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소율은 또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눈을 꾹 감았다가 살짝 떠서 슬그머니 옆에 앉은 베아트리체를 훔쳐 보았다.
 어떻게 떠 봐야 미친 놈 취급 받지 않고 그녀가 우로보로스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까? 아니, 미친 놈이나 오타쿠 취급 받는 거야 견뎌낼 수 있겠지만 혹시 정말 관계가 있어서, 수작을 부리거나 달아나버리면, 겨우 찾아온 원수의 단서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다.

 \'....정말 어떻게 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소율이 손 끝으로 베아트리체의 팔을 톡 건드리자, 그녀의 커다란 두 눈이 그를 비췄다.

 \"있잖아, 너 유령이나 괴물 같은 거 관심있어?\"

 베아트리체의 두 눈이 삽시간에 가늘어지더니 소율을 흘겨 보았다.

 \"그런 쓸데없는 얘긴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린 베아트리체는 그 때부터 소율이 어떻게 말도 못 붙일 정도로 냉랭한 기운을 발하며 그의 접근을 완전봉쇄 해 버렸다. 결국, 소율은 쉬는 시간이 올 때까지 단 한번도 그녀와 한마디도 얘기하지 못했다.
 쉬는 시간,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애들은 활기차게 교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걔중에는 시즈나와 문호가 있었는데 그들의 목적지는 당연히 소율의 자리였다. 어째서인지 책상 위에 엎어져 골골 거리는 소율을 포위하곤, 늘어져 있는 고양이를 괴롭히듯 가져 놀았다.

 \"...아아, 귀찮아아......\"

 시즈나의 손이 소율의 귀와 볼을 조물락 거리고 문호는 그 앞에 서서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별로 듣고 싶지 않지만 귀가 들려서 어쩔 수 없이 들으니 어제 방영 되었던 인기 드라마의 줄거리였다. 그 혼자 떠들고 있었으면 다행이었는데, 그의 얘길 듣고 여자애들이 하나 둘 모이더니 여럿이서 떠들어 대기 시작했고 금방 시장통 같이 되어 버렸다. 그런 분위기가 불편했는지 자리를 뜨려는 베아트리체를 시즈나가 붙잡더니 자리에 앉히고 그대로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

 \"어디 가려고 그래?\"

 \"그게.... 화장실....\"

 베아트리체가 쑥스러운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시즈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래, 그럼 같이 가자.\"

 \"아, 아냐. 다음 시간에 갈래.\"

 \"그래? 그러지, 뭐.\"

 소율은 그런 베아트리체를 보며 역시 시즈나에겐 안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지금 이 상황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게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째서인지 기쁘지가 않았다.

 \"야, 근데 너 어제 별 일 없었어? 너희 집 근처에서 괴물이 나왔던데?\"

 문호가 소율의 어깨를 툭 치면서 물었다.

 \"그래?....\"

 어제 그 남자가 머리 속에 번뜩 떠올랐다.

 \"목격자만 해도 여러명이고 죽은 사람도 나왔다더라.\"

 문호의 그 말에 주변 여자아이들이 꺅꺅! 거리며 시끄럽게 굴고 베아트리체는 무표정하게 문호를 바라보았다. 소율은 그녀가 그의 얘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단 걸 눈치챘다.

 \"그래? 나도 본 거 같은데, 그게 괴물이었나?....\"

 그렇게 말하며 소율은 눈을 베아트리체에게 돌렸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정말이야?! 어떻게 생겼는데?!\"

 문호를 비롯해서 그 주변 여자애들이 소율에게 질문을 던졌다.

 \"글쎄, 어두워서 잘못 봤어. 우리 아파트 비상계단 쪽이었는데 말야.\"

 \"그래, 아깝다. 실은 목격자마자 증언에 제 각각이라 괴물의 모습을 추정하지 못하고 있거든.\"

 \"그런데 문호는 어떻게 그런 걸 아는 거야? 오늘 아침 뉴스에도 안 나왔잖아, 그런 사건.\"

 시즈나가 그렇게 묻자 문호와 그 주변 여자아이들은 황당한 얼굴로 아무 말도 못했다. 그의 아버지가 케르빔(주8)의 수사관이라는 건 반 아이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역시 시즈나는 소율 밖에 모르나 보네.\"

 문호가 그렇게 말하자 조금 발끈한 시즈나가 바로 대꾸했다.

 \"정정해, 지금은 아체도 있어. 그리고 왠지 바보 취급 당한 거 같은데?\"

 시즈나가 사납게 노려보자 문호는 한 손으로 그 시선을 가리며 빈정거렸다.

 \"설마! 그런 생각은 없었어. 우리 아버지가 수사관이란 건 바보빼곤 다 알거든.\"

 \"호오, 그랬어? 아버지 업무 자료 훔쳐 보는 건 나쁜 일이야, 아가.\"

 시즈나의 빈정거림에 문호도 기분이 상해서 노려보고 주변에 모여 있던 아이들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슬그머니 다들 자리로 돌아갔다.

 \"그거, 한번 해 보자는 거지?\"

 \"상대 해 줄테니까 감사하도록 해, 아가.\"

 \"여자라고 해도 적에겐 용서 없어, 각오해.\"

 시즈나는 피식 웃으면서 문호가 지금 서 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소율의 곁에서 반 걸음 정도, 충분히 닿는다!

 \"소율! 주먹!!!\"

 시즈나의 한마디에 소율은 아무 생각없이 주먹을 뻗었다.
 -퍽!!!- 배에 주먹이 꽂힌 문호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졌다.

 \"어?..............\"

 \"꺄하하!! 잘했어!!!!\"

 언제부턴가, 잘 조교 된 애완견이 되어 버린 소율이었다.

 

 

#주7 - 혈주, 모든 뱀파이어는 퍼스트 블러드 카인에게서 비롯되었으며 그의 직계 자식인 세컨드 블러드들은 지금 현존하는 모든 뱀파이어들의 부모인 셈이다. 뱀파이어는 자신의 피를 나눠줌으로 인간을 뱀파이어로 만드는데, 그 피가 비롯된 생명의 원천이 바로 세컨드 블러드들이다. 그들이 죽으면 그들의 피도 뱀파이어로서의 힘을 잃고, 그로 인해 퍼스트 블러드를 제외한 모든 뱀파이어는 사라진다.

#주8 - 케르빔, 신강화시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사설경비업체로, 작게는 교통 정리부터 크게는 테러 대응까지 할 수 있는 전문 군사 조직이다. 조직원 대부분이 세계 각 국의 특수부대나 경찰 등에서 스카웃 해 온 사람들이다. 본래는 로마 카톨릭 교황청의 자본으로 조직된 대 뱀파이어 특수부대이나 어째서인지 신강화 국제시가 생긴 이후 도시의 치안 부대로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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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을빛달  lv 2 0.666666666667% / 302 글 17 | 댓글 44  
아............그래, 난 여기 없다.

꿈을 꾸는 듯이, 꿈 속을 걷는 듯이, 이 무채색의 세상을 유영한다.

볼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만이
.....................나에게 주어진 하나뿐인 현실, 호흡, 고동, 파도...........

아득히 먼 곳에서
하지만 지금도 귓 속에 멤도는 그리운 소리.


코드 리볼버(CoDe -Revorver-)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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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0 월하연 12/03/06:44
뱀파에어, 룬테이션, 인간.......안드로메다에서 오는 양반들은 없어요? 안드로이드라든지, 아니면 외계인이나, 하다못해 UFO타고 오는 E.T라도...(...)
2 노을빛달 12/06/11:42
안타깝게도 그 쪽은 예정이 없습니다, 손님.
0 방랑마도사 12/07/01:06
5화에서 폼이란 폼은 다잡던 서역의왕. 반품요구에 당황하다 자멸. ㅋㅋㅋ
근데 진짜 E.T.는 안나오나? ㅋㅋ
2 반바렛 12/07/01:16
좋은 작품 보고 가요~
2 노을빛달 12/07/01:23
안나온다 바보 마도사!
아, 세스님 어서오세요~ 아하하....
4 지나가는사람 12/11/03:43
잘조교된 애완견............................(그것보다 반품 되는거였어!?..)
0 Ruffian 12/17/07:21
코드리볼버-반역의 장소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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