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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정하늘 by 머루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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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470    추천 1   덧글 12    / 2007.05.20 13:58:20


초등학교 3학년 때 쯤의 일이었다.
나는 다른 친구의 흉을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기억력이 나쁜 나는, 결심을 하더라도 하루만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는 일주일도 넘게 그 맹세만큼은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지켰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때 나는 깨달았다.
어느새 나는 다른 아이들과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아이들은 거의 언제나 다른 친구들을 흉보았고, 나는 그때마다 어울리지 않음으로써, 많은 친구들과의 교류 점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설령 그것이 나쁜 짓임을 알더라도, 모두 함께 지저분한 진흙탕에 발을 담가야 한다. 다같이 발을 더럽히지 못한 사람은,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처럼 도태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결심을 했다.
만약 그런 모순들이 노력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면, 나만큼은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나는 정말로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나는 어렸을 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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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정하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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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자율 선택.


“하늘이 푸르구나.”

고등학교에 입학한 첫날.
나와 가장 먼저 사귀게 된 친구는 평범한 여자애였다. 그녀는 이따금 패스트푸드 점에 가면 케첩을 남들의 두 배로 뿌려먹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특징도 없고, 학업에도 착실한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와 2주 정도 친하게 지냈다.
여학생 두 명이 모여 걷고 있는 오후의 길거리는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하늘에 가면 하늘나라가 있을까?
“아마 없을 걸.”

나는 포도맛 크레이프를 먹으면서 대답했다.
아까 전부터 하늘이 어쩌고 하며 떠들고 있는 여자애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오민희’였다. 평범한 여학생인 민희는, 별명조차 이름과 별 차이가 없는 ‘미니’였다. 별명은 미니지만, 그녀의 체구는 그리 작지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3cm 정도는 키가 더 크고, 이목구비도 고만고만하게 생긴 것이, 설핏 눈에 띄진 않지만 미인 타입이었다.
그녀에 비하면 나는 (밖으로 드러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배도 좀 나오고, 키도 땅딸막한 보통의 여학생이었다. 이렇게 보면, ‘미니’란 별명은, 오민희보다 나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민희와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거리에서 마주친 다른 학교의 남학생들은 우리 쪽을 흘끗거렸다. 나는 입고 있던 교복 치마를 내려다보았다. 이전에 치마 아래쪽이 접인 것을 모르고 돌아다니다가, 부끄러운 일을 치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창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을 동안, 옆에 있던 민희는 또다시 헤벌레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아. 이렇게 더운 날은, 하늘을 날고 싶다.”
“짜샤. 남의 이름을 계속 그렇게 부를래?”

나는 아까부터 계속 하늘이 어쩌니 말하고 있는 민희에게 화를 냈다. 내 이름은 ‘정하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민희는 빙그레 웃었다.

“아, 괜찮아. 하늘이는 푸르니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왕왕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해대는 것은 저 녀석의 나쁜 버릇이었다.
축 처진 눈매와 사람을 지긋이 바라보는 버릇 덕분에, 민희의 괴상한 말버릇은 항상 듣는 사람을 긴장시켰다. 간단히 말해서, 이쪽이 당황스럽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희는 평범한 선을 넘어설 정도로 특이한 여학생은 아니었다. 그녀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자애였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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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나는 이제까지 단 한번도 주역이 될만한 활약을 해본 적이 없었다.
운동회에서 항상 달리기는 꼴찌였고, 시험을 치면 언제나 중간이었고, 그 흔한 청소반장도 되어 본적이 없고, 수학 경시 대회나 심지어는 과학의 날 행사에도 참석해본 적이 없다.
아, 딱 한번 3위 안에 들어본 적은 있다.
초등학교 체육 시간에 씨름을 했을 때, 나는 반에서 2등을 차지했다. 1등을 한 아이는 굉장히 뚱뚱한 여자애였는데, 그때까지 승승장구하던 나는 그 아이의 굵은 허벅지에 쩔쩔매다가 맥없이 넘어졌다. 그래서 나는 반에서 씨름 순위가 2등인 정하늘이 되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경쟁으로 3등 이내의 등수를 차지해본 경험이었다.
평범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살면서 만나왔던 사람들도, 대부분은 평범했다.
남녀공학이었던 중학생 시절에는, 학교에서 그리 눈에 띄지 않는 날라리 여학생이 나의 단짝이었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느리고 굼뜬 오민희와 친하게 되었다. 나와 친구가 된 녀석들은 눈에 띌 정도로 대단한 녀석이 하나도 없었다.
나의 인생은, 이제껏 사귄 친구들을 포함해서 평범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인생이 지루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평범하게 행복하다는 것은, 기괴하고 불행한 삶보다 몇 배나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외국의 히어로물을 모으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가방을 침대 위에 던지고, 책장 위에 놓인 헬보이 액션 피겨를 만지작거렸다. 책장 옆의 창가에는 새파란 정원의 잎줄기들이 보였다.
나는 내가 평범한 녀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히어로들의 삶을 동경했다.
그렇다고 나에게 정의의 사자나 상식의 수호자 역할을 자청할 정도로 열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누구와도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면서, 가끔씩 히어로들을 동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 세상의 어딘가에 가슴이 뛰는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내 근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것이 평범한 사람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
.
.

다음날.
학교에 간 나는 이상한 공기가 교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교실의 뒷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흠칫 놀라고 말았다. 내가 문을 여는 순간, 교실에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시선은 금세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우연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내 자리로 향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 후로도 내가 있는 곳을 흘끔거리며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나에게 적대적이었다.
나는 이런 시선을 이전에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어느 날, 알게 모르게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때와 같은 기억이었다.
수업이 시작하기 20분 전, 마침내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하늘. 선생님이 오라고 하셨어.”

뒤에서 수군거리거나 작당을 하는 것에 약한 나는, 그렇게 말을 걸어온 임시 의장이 떠나자마자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나는 반장이 말해준 장소,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그리 대단한 벌을 받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도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
나도 최소한의 상식은 있는 인간이었다. 만약 내가 굉장히 큰 벌을 받을 정도의 일을 저질렀다면, 다른 사람이 지적하기도 전에 나의 상식이 그것을 먼저 깨닫고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콩알만한 나의 심장은 여전히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어떤 위험한 규율위반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체육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상담 선생님의 얼굴은 무서웠다.

“1학년 6반의 정하늘. 저도 저기에 서거라.”

우리학교의 체육 선생은 키가 2m쯤 되는 거한이었다. 나는 입학식 때 그를 처음 보면서 느낀 두려움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체육 선생은 길이가 120cm쯤 되는 쇠자를 들고 현관의 바닥을 찧으며 큰 소리를 냈다. 물론 겁을 주기 위한 도구이겠지만, 나는 현관에 깔린 대리석에서 하얀 부스러기를 떨어내는 그의 완력에 겁을 먹었다. 자로 바닥을 치는 체육 선생의 완력은 나보다 앞서 강당에 모인 학생들의 어깨도 함께 진동시키고 있었다.
강당의 벽 쪽에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인 오민희도 있었다. 나는 신발을 벗고 쪼르르 달려가서 그녀의 옆에 섰다.

“무슨 일이야?”
“아, 그게…….” 민희는 우물쭈물하며 느릿하게 말을 꺼냈지만, 그녀의 말은 미처 끝나지 못했다.

체육 선생은 위협적인 모습으로 쇠자를 어깨에 올린 채 다가왔다. 그의 옆에는, 운동장 조례 때 딱 한번 본적이 있는 학생주임의 얼굴도 보였다. 체육 선생은 학생주임의 부하처럼 뒤에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후, 학생주임은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어명이 적힌 두루마리를 펼치듯 위엄 있는 동작으로 수첩을 꺼냈다.

“여러분이 왜 여기에 오셨는지 아십니까?”

학생주임의 목소리는, 생긴 것과 똑같아서 약간 우스웠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그러자 학생주임은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눈 위로는 계속 웃음을 지으면서, 두 손으로 입만 막았다.

“아, 편히 쉬어요.”

학생주임은 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선심을 썼다. 하지만 곧 우스운 일이 일어났다. 줄곧 뒤에서 쇠자를 손바닥에 두드리던 체육 선생은, 학생주임과 손발이 맞지 않는 듯 갑자기 정반대의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일동! 열중 쉬엇!”

우리는 어느 쪽의 명령을 따라야할지 잠시 고민해보았다. 물론, 학생들은 체육 선생보다는 더 높은 학생주임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체육 선생은 학생들이 편한 자세를 취하자 머쓱한 듯 자신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그때 학생주임은 자신의 비싼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체육 선생의 말대로 합시다. 일동, 열중 쉬엇.”
체육 선생은 학생주임의 넓은 마음 씀씀이에 감동한 듯이 “감사합니다, 주임선생님.”이라는 말을 남겼다. 예의바른 학생주임은 당연히 고개를 숙이며 “천만의 말씀입니다, 체육 선생.”이라고 답례를 했다.
나를 포함한 학생들이 열중 쉬어 자리를 취하는 동안, 학생주임은 목청을 가다듬더니 마침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여러분은 어제 있었던 일이 뭔지 아십니까?” 학생들은 대답이 없었다. 학생주임도 대답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어제는 말입니다. 야간 자율 학습이 있었던 날입니다. 1학년 처음으로 말이죠.”

뒤늦게 그 사실을 떠올린 학생들 사이에서 ‘아’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내가 왜 아침부터 이런 곳에 와야 했는지, 교실에 들어갔을 때 왜 급우들이 나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어제 야간 자습을 하지 않고 혼자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학생주임은 이렇게 말했다. 어제는 처음으로 야간 자율 학습을 시작했던 날이라서 처음 고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들이 그 사실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는 매우 선심을 쓰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계속 미끄러지는 자신의 안경을 밀어 올렸다.

“하지만 처음이었죠? 그래서 오늘은 이만 봐드리겠습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어서 교실로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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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민희는 같은 반이었으므로, 함께 교실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학생주임과의 면담이 끝난 것은 수업이 시작하기 1분이었다. 나는 불과 30초도 걸리지 않는 말을 하기 위해 학생들을 강당에 붙잡아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너무나 화가 났던 나는, 민희가 내 걸음을 못 쫓아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쳇, 뭐가 자율 학습이야.”

분명히 ‘자율’ 학습일 텐데도, 우리는 거기에 참가하지 않을 자유가 없었다. 분명히 그 시간에 무엇을 공부할지는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지만, 또한 우리에게는 그것을 고를 자유밖에는 주어지지 않고 있었다. 나는 학생주임의 느물거리는 말투와, 학생들을 위협하기 위한 체육선생의 쇠자도 증오스러웠다.
나는 갑자기 민희가 멈춰서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너무 걸음이 느렸기 때문에, 나는 민희의 손을 잡고 그녀를 끌어주듯 하며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빠른 걸음을 유지하고 있었고, 갑자기 걸음을 멈춘 민희는 자동차의 브레이크처럼 내 다리를 걸어서 우리는 복도에서 넘어질 뻔 했다.
“아야, 넘어질 뻔 했잖아!” 내가 서둘러 복도의 벽을 짚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둘 다 넘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불평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민희는 복도의 넓은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오늘 같은 날은, 정말 하늘을 날고 싶어.”

왠지 그녀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슬프게 들렸다. 나는 민희의 붉게 상기된 뺨을 빤히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나도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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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달이 지났다.
나를 포함한 1학년들은 고등학교에 처음 들어와서 인문계 특유의 엄격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서서히 이 체제 안에서 적응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대부분은 학생들에게 겁을 줄 뿐이지 정말로 때리는 사람들은 적었다. 개중에는 화가 나면 못 말릴 정도로 폭발하는 선생들도 있었지만, 그 선생의 시간만 조심하면 되는 일이었다.
점차 우리가 맨 처음에 느꼈던 거부감은 사라져갔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히어로물을 볼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아쉬웠다.
어째서 이 세상에는 이리도 제약이 많은 것일까. 나는 홍길동이나 일지매처럼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떠나는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학교에서 자율 학습을 하면―덧붙여서, 노는 녀석들과 사귀지 않으면―학업성적은 충실하게 오른다. 선생들이 그날 내어주는 과제나 프린트를 야간 자습 시간에 해치우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
또, 할 일도 없는 야자 시간에는, 그날 공부했던 내용을 잠시만 들여다봐도 훌륭한 복습이 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학교에서 야자를 하는 것이 학원에서 밤을 새는 것보다야 낫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짓밟히는 학생들의 자유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보상받을 수가 없다.

“하늘아. 노래 들을래?”

어느 날, 야자 시간에 옆에 앉은 민희가 말을 걸었다.
야자 시간에는 친한 학생들끼리 모여 자리를 바꾸어 앉는다. 보통은 노는 아이들과 공부하는 아이들로 패가 갈리지만, 개중에는 야한 이야기를 하며 시시덕거리는 패거리도 있고, 이상한 책을 들여다보며 만화를 그리거나 글을 쓰는 패거리도 있고, 벌써부터 대학 문제를 풀고 있는 엘리트 집단도 있었다.
민희와 나는 그중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날 선생이 내어준 과제를 야자 시간에 풀고, 남은 시간에는 낮은 목소리로 잡담을 주고받으며 숨죽인 웃음소리를 내는 평범한 학생 말이다.
나는 민희가 내민 이어폰을 넘겨받으며 조용히 말했다.

“음악 듣는 건 좋은데, 오늘은 웬일이야?”
“응? 뭐가?”
“보통은 야자2차시가 되기 전까진 음악을 안 듣잖니?”

민희는 나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편이었다. 나는 종종 도서관에서 빌려온 소설을 읽느라 과제를 땡땡이치는 일이 있지만, 민희는 야자 1차시가 끝나기 전까지는 착실하게 공부를 하는 타입이었다.
오래된 베이비복스의 노래를 듣던 그녀는 뽀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상하게, 오늘은 공부가 잘 안 되서.”
“가끔은 그런 날도 있지. 하하. 사실은 나도 너처럼 공부가 안돼.”

나는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교과서를 덮고, 팔짱을 꼈다. 제목을 알 수 없는 아이돌 노래가 끝나자, 호텔 캘리포니아라는 낡은 노래가 나왔다. 민희의 음악 취향은 의외로 아저씨 같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웃음소리 때문에 음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옆자리에 있는 ‘책상 4개’ 패거리의 웃음소리였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고, 민희는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책상 4개 패거리란, 야자 시간에 붙인 책상의 개수를 말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의 모둠학습 때처럼, 학생들 중에는 야자 시간에 자신의 책상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친한 사람들과 함께 앉는 녀석들도 있었다.
이런 녀석들은 대부분 불량아이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붙어 앉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처럼 선생님들의 감시가 뜸한 날―아예 없는 날도 있었다―에는 그런 패거리의 말소리 때문에 공부가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야, 너희들. 조용히 안 할래?”
“어쭈, 정하늘. 너 많이 컸다.”

참지 못한 내가 한마디 하자, 그녀들 중에서 가장 활발한 두 여학생이 맞받아쳤다. 그녀들은 굳이 목소리를 줄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말소리가 너무 커. 선생님이 오시면 어쩌려고 그래?”
“오늘은 화학선생이잖아. 그 선생은 총각인데다 숫기가 없어서 여학생들에게 화를 못 낸다구.”
“멍청이들. 그런 걸 무기로 삼을 셈이냐?”

그녀들의 책상 위에는 과자 봉지가 몇 개 열려 있었다. 포테이토칩에 눈에 미친 나는 그것을 몇 개 집어먹었다. 책상 4개를 붙이고 앉아있던 패거리는 비명을 질렀다.

“야! 무슨 짓이야!”
“야자 시간에 과자 파티를 벌이는 너희들이야말로 무슨 짓이니? 어쨌건, 계속 조용히 하지 않으면 선생님을 불러 올거야.”
“알았어! 치사하긴. 너야말로 그런 건 무기로 삼아도 되는 거니?”

나는 대답대신 웃음을 지으며 아직 개봉하지 않은 치토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불량한 여학생들은 넌더리를 내기 시작했다.

“쳇, 알았어. 과자도 가져가.”

자리로 돌아온 나는 다시 민희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고지식한 민희는 내가 노는 학생들과 담판을 지을 동안 음악을 멈추고 있었다.
나는 특별히 과자에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빼앗아온 과자는 옆에 있던 다른 그룹의 아이들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민희와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꽂고 야자시간이 끝날 때가지 말없이 음악을 들었다.
내가 책상에 등을 싣고 까닥거리는 동안, 민희는 또다시 창문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민희가 보고 있는 곳을 향해 눈동자를 돌렸다. 그녀의 머리카락 너머로 창틀이, 창틀 너머로 까만 밤하늘이 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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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을 때, 민희와 나의 친구 관계는 딱 2주일 정도였다. 지금 되새겨보면, 그날 있었던 야간 자습의 추억이 민희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후에도 나는 그녀와 친하게 지낼 기회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학생끼리의 우정이 아니라, 뭔가 더 께름칙하고 불편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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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는 학교에 오자마자 민희를 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시간은 7시 40분이었다. 나는 내가 학교에 너무 일찍 온 것이 아닌가 의심해보았다. 하지만 민희는 나보다 훨씬 빠르게 학교에 오는 편이었고, 이맘때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책을 꺼내서 공부를 시작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교실 안에는 10여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지난밤에 대화를 나누었던 날라리 녀석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민희 못 봤어?”
“글쎄. 오늘은 좀 늦게 올 모양인데.”

그러나, 그녀는 HR시간 직전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지어 학교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민희는 그 후로도 3주일 동안 학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귄지 딱 2주되는 친구였고, 가장 친한 친구였다곤 해도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어딘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말만 들려왔다. 그곳이 어디인지를 물어보았지만 누구도 자세히 대답해주지 않았다.
나는 저녁밥을 먹고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찾아갔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서 야간 자습이 시작되기 전의 가장 한산한 시간―선생님들도 야자의 순찰을 도는 것은 귀찮아했으므로―을 고른 것이었다.
학생주임은 마침 무거운 서류를 들고 교무실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 애는 못 찾을 거다.”

교무실 입구에서 만난 학생주임은 그렇게 말하고 내 어깨를 밀치며 지나갔다. 그는 양 손에 10pt크기의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 적힌 A4용지를 가득 들고 있었다.
혼자 서 있다 교무실을 드나드는 교사들에게 밀려난 나는 의문에 휩싸였다. 어디로 갔는지를 물어보았는데, ‘못 찾을 거다’라는 대답은 어딘가 어색하다. 나는 학생주임이 분명히 민희에 대해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나는 오민희가 사라진 이후, 같은 반의 날라리 여학생들과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다. 내 성미에는 민희처럼 굼뜬 아이보다는 건달처럼 잘 놀고 쾌활한 친구들이 더 친근했던 것이다.
애초에 내가 민희와 친하게 지냈던 것은, 고등학교에 갓 들어와서 적응을 하지 못하던 나에게, 인형처럼 느리고 멍한 성격이었던 민희가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는 친구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고등학교에 익숙해진 나는 이전처럼 잘 노는 아이들을 단짝으로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민희와 친구로서 사귄 것은 딱 2주일이었다. 내가 다시 그녀를 만난 것은, 5월이 넘어서 첫 번째 중간고사를 막 끝마쳤을 때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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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에르무즈 05/20/02:16
정하늘에 압박
1 현무암골렘 05/20/03:44
와아;;; 재밋어요
0 개똥철학 05/20/03:46
재밌네효
0 즈마 05/20/04:30
잘 읽었습니다^^ 근데 야자 2차시는 8시반부터 10시까지 아닌가요-.-
0 미스즈짱 05/20/04:44
개념인정. 재밌군요
1 소브이엘 05/20/05:37
재밌네요..
야자시간이야 학교마다 차이가 있을수도..^^;
1 붕크 05/22/11:40
\'ㅅ\'/
0 카잠 05/23/10:23
죄송한데 머루머루 님은 여성이신가요? 아니라면 일인칭은 좀 권하지 않습니다. 남성 입장의 여성적 관점은, 어차피 판타지에 그칠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뭐, 간혹가다 문단 개념이 적은 것 외에는 무난합니다.
0 머루머루 05/23/11:12
의견 감사합니다. ^^a
하늘이는 보통 여성이 아니므로 괜찮습니다. 세월의 돌의 파비안 정도로.
0 동급생 05/24/12:26
일반적으로 말할때 키를 말할때는 200센티정도 된다고 이야기 하기보다는 2미터 정도 된다고 이야기 하지 않나요.
0 머루머루 05/25/01:49
동급생 // 지적 감사합니다 ^^; 한글로 오프라인에서 작업하던 부분에는 고쳐져 있었는데, 업로드 된 1편 연재 분량은 고치지 않았다는 걸 보았습니다.
0 Nowhere 05/27/09:41
크흑 여기도 야자가 ... 잘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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