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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축복이라 할지라도…. by 사다메

처녀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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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이야기 / 그것이 축복이라 할지라도 [Vol.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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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사다메[scvmetal]
조회 2265    추천 0   덧글 0    / 2008.02.22 14:30:07

창밖으로 울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침대위에 누워있는 유라.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베게 맡에 놓아둔 토끼인형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선물했던 사람과 마찬가지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인형을 바라보며 그녀는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바보 멍청이 둔탱이씨는 지금도 열심히 샤워 중이었고, 그의 교복도 아직 세탁기 안에서 뱅뱅 돌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시간이 많았다.

‘그래. 지금이 기회야. 지금이 지현이의 마음을 나에게 돌려놓을 기회야. 아무도 없는 집에 단 둘이! 이런 기회는 흔치않아!’

그렇게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심호흡을 내쉬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더 흘러지나 갔을까. 조금 열려있는 문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지현이가 나왔나보다.

“응? 방에 있냐?”

그의 목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 유라는 이내 침대에서 발딱 일어나 앉았다. 마치 방금 전까지 이런저런 고민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다는 투로.

끼이익 하고 문이 열린다. 그곳으로 지현이 아직 덜 마른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터덜터덜 들어왔다. 지금까지 11년이나 자기 방처럼 들락날락 했던 방이다. 여자아이의 방이라고 새삼스레 두근거릴게 없는 그였다. 그렇게 그는 그녀의 방을 한번 쭉 둘러보며 말했다.

“유라야. 나 궁금한 게 있어.”

갑작스런 그의 말에 새삼스레 놀라며 말하는 그녀. 구, 궁금한 거?

“응? 뭔데?”

“내가 다른 여자애들 방엔 안 가봐서 모르겠는데, 여자애들은 원래 뭘 이렇게 가득가득 모으는 걸 좋아하는 거냐? 가연이는 만화책, 너는 인형, 은혜는 아이스크림….”

은혜의 이야기가 나오자 살며시 얼굴이 굳어버리는 그녀.

“아? 그러고 보니, 은혜는 뭔가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네. 먹는 거니까. 뭔 아이스크림을 그렇게도 먹어대는지, 갈 때마다 먹더라고. 질리지도 않나? 음, 여자애들은 원래 단 것을 좋아한다고 그랬었나? TV에서 본 것 같은데.”

계속해서 진행되는 은혜이야기에 유라는 어딘가 가슴속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 마. 이런데 와서 그 계집애 얘기는 하지 말란 말이야. 단 둘이 있는 이런 곳에서까지 그런 얘긴 꺼내지 말라고…!

그런 그녀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현은 머리위에 수건을 올려놓곤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가 앉아있는 침대위에 털썩 걸터앉았다.

“여자애들이 원래 그렇게 단걸 좋아했던가? 너랑 가연이는 별로 안 그렇잖아?”

“….”

“응?”

“….”

“유라야?”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알게 모르게 어두워 졌다는 것을 느낀 그는 의아함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녀도 그런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이내 어설픈 미소로 손을 휙휙 저으며 말한다.

“응? 아. 미안 딴 생각 좀 하느라.”

“뭐야, 이 녀석?”

정말이지 자신의 마음 따윈 하나도 몰라주는 그. 자꾸 은혜의 이야기를 꺼내는 그런 그의 모습에 유라는 조금씩 자신의 마음이 불안해 지는 것을 느꼈다. 때문에 그녀는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기는 한 건지. 곁눈으로 그의 모습을 힐끔 훔친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한다.

“그, 지현아.”

“응? 왜?”

검지로 자신의 볼을 살짝 긁적이며 말하는 유라.

“최근 어떤 인터넷 카페에서 보게 된 건데….”

“…?”

“거기서 내가 아는 어떤 여자애가 그러던데, 한 8년? 아, 아니 한 10년 정도 친하게 지내온 남자애가 있는데 요즘 들어 되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나?”

“호오? 그거 흥미진진한데? 곁에 있던 소꿉친구가 마음에 들어진다는 거 아냐? 무슨 영화에서나 보던 소잰데?”

왠지 긍정적인 그의 반응에 유라는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그 둘이 사귀게 되었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같은 소꿉친구가 있는 사람으로서.”

그녀의 말에 지현은 머리위에 얹어둔 수건으로 아직 다 마르지 않은 자신의 머리를 닦으며 말한다.

“글쎄? 그다지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이 누군진 몰라도 서로 좋아하니까 사귀는 것 아냐? 10년 정도나 친하게 지낸 사이에 사귀기까지 한다면, 야. 그건 완전 진짜 부부나 마찬가지잖아? 아니, 결혼한 부부들보다도 더 할지도 모르겠다. 그거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네.”

“그, 그렇지? 나쁘지 않은 거지?”

밝은 표정으로 미소 짓는 그녀. 좋게 생각한다는 얘기잖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하던 그녀는 이내 이렇게 고백해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소꿉친구에 대해서 긍정해버린 지금, 어쩌면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아줄지도 몰라. 그, 그런데 만약에 거절하면 어떡하지? 우으윽, 고민되잖아…!’

그런 그녀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현은 능청스레 이런 장난스런 이야기를 꺼내버렸다.

“야. 네가 나한테 고백한번 해봐라. 그거 재미있겠는데? 낄낄.”

“!!”

그런 그의 말에 그녀는 왠지 방금 전의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 얼굴이 발개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 바보야! 내, 내가 그런 말을 할리가 없잖아!!”

어느새 교복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멋진 라이징 킥이 지현을 향해 시전 되고 있었다.

그렇게 비가 내리고 있는 어느 여름날,

침대 위, 베게 맡의 토끼 인형이 그런 그들을 재미있다는 듯,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

 

아침의 등굣길.

일주일 동안 연속으로 계속되는 시험기간의 마지막 날 인지라 학교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의 모습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오늘 오전만 넘기면 이제 당분간은 자유의 몸이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그들이었지만 그 위로도 꼬리표가 나오기 전, 일주일 동안뿐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태평스럽게 걷고 있는 인물들이 있었으니, 저기 나란히 걷고 있는 한지현과 권가연이 되겠다. 지현은 능력을 통해 이미 정답을 모두 알고 있는 상태였고, 가연은 원래부터가 만사태평 형 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지현이 너 성적 많이 올랐더라? 지금까지 채점해 본 것들 다 장난 아니었잖아.”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조금 작은 편이었던 가연은 자신보다 20cm도 넘게 더 큰 지현을 올려다보고 말 하려니 고개가 꺾이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도 벌써 11년째다. 이젠 그것조차 익숙하게 느끼고 있는 그녀였다. 그런 가연을 내려다보며 지현은 머리를 벅벅거렸다.

“뭐, 이번시험 상당히 쉽더라고. 유라도 봐. 전부 다 백점이잖아.”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는 가연.

“유라는 원래부터 전교순위에서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고작해야 넌 나랑 비슷한 정도였잖아. 그게 쉬웠어? 다른 애들 말론 저번보다 훨씬 어렵다던데.”

지현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이 어이 이 아가씨야. 고작해야 너라니, 이거 섭섭한 말씀을 하시네? 네 녀석 애니나 만화책 보는 것만큼이나 열심히 했더니 문제가 술술 풀리던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가연은 두 말 없이 그의 정강이를 향해 로우 킥을 날렸다.

<빠악!>

“우윽!”

“매를 벌어라 아주.”

“쳇.”

가연의 일격을 맞게 된 지현. 그는 툴툴거리는 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쑤셔 집어넣으며 말했다.

“왜, 권가연. 넌 성적 떨어졌어?”

“…시험이 어려웠다니까?”

“안 어려웠다니까? 궁색하게 변명하긴. 뭐야 너. 혹시 평소보다 키 크기 체조 시간을 늘린 거냐? 너 같은 발육부진 꼬맹이에겐 필수잖아 그거.”

씨잌 웃으며 감행하는 지현의 반격. 이제 조금 있으면 또 파닥거리며 덤비려 들겠지. 이번에도 가만히 맞아주나 봐라. 하지만 그는 잠시 후 그녀가 보이는 의외의 반응에 머리위로 물음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런가….”

가연은 그의 말에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짓기 시작했으니까.

“유라처럼 스타일이 좋은 것도 아니고, 은혜같이 귀여운 것도 아니고…. 우우으….”

그녀의 예상외의 반응에 지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쟤…, 쟤가 왜 저래? 평소 같았으면 시끄럽게 떠들면서 반격하던 녀석이. 내,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한 건가? 하긴 쟤는 쟤대로 꽤나 민감할 수도 있겠네. 때문에 왠지 모르게 머쓱함을 느낀 지현은 얼버무리듯 와하하 웃으며 말했다.

“아, 아하하하! 괜찮아, 괜찮아. 너는 너대로 매력이 있는 거니까.”

“그런 걸까…, 라고 말할 줄 알았냐?!”

<퍼억!>

지현은 난데없이 얼굴에 직격하는 그녀의 가방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윽, 뭐, 뭐야?

“너, 너 이 녀석!”

“흥! 메롱이다!”

그렇게 장난스런 표정으로 자신의 가방을 챙겨 뽀로로 달려가 버리는 가연이를 보며 지현은 왠지 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야잇, 거기서 이 계집애야!”

기말고사 마지막 날의 긴장감이란 이미 그 두 사람에겐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

 

“와아! 드디어 끝이다아!!”

“놀자! 노는 거야! 무조건 노는 거야!”

여기저기서 터지는 환호성과 함께, 시험지들이 공중에 비산하고 있는 어느 교실. 기말고사와의 전쟁을 무사히 마친 아이들은 시험 결과가 어찌 나왔건, 일단 시험이 모두 끝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침울한 표정으로 어기적 어기적 집에 돌아가는 녀석들도 있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대부분이 밝은 표정이었다. 시험지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창밖으로 날리는 녀석도 있었고 지금부터 놀 궁리에 동료들을 모으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지현이네도 다를 건 없었다.

시험지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밖으로 날리려다가 유라에게 혼이 난 가연은 이내 눈에 번쩍거리는 빛을 내며 왁자지껄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노래방이다! 노래방에 가는 거야! 찬성하는 사람 손!”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이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드는 은혜와, 뭐 이미 정해진 것 아니었냐는 듯 무덤덤하게 손을 들어 올리는 유라.

반대하는 것은 지현 뿐이었다.

“안 돼! 노래방은 싫어!”

어딘가 모르게 필사적인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뭔데? 우리가 납득 할 수 있는 이유를 대봐.”

그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폭포수 같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단, 나는 노래를 잘 못 불러! 아는 노래도 별로 없고! 게다가 가장 결정적인 건…!”

고개를 갸웃하는 3명의 소녀들.

“결정 적인 건?”

“언제나 듣게 되는 그놈의 애니송 메들리가 지겹기 때문이다!”

다시 가연이의 가방이 그의 안면에 직격하는 순간이었다.

<퍽-!>

“크윽, 어찌됐든 싫어!”

그렇게 부득불 우기는 지현. 은혜는 그런 그에게 어딘가 모르게 슬퍼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와 말했다.

“나 지현이랑 노래방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이번만이라도 같이 가주면 안 돼? 응? 응?”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어느새 다가와 지현의 팔을 꼭 붙잡는 그녀. 지현은 왠지 쑥스러워 하는 그녀의 표정에 그저 얼굴이 발개지며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저 그, 그게…”

그런데 당황한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야잇, 천은혜! 적당히 해! 지현이에게서 떨어져!!”

어느새 달려든 유라의 이단옆차기에 의해 날아가 버리는 은혜.

“꺅!”

“지현이에게 달라붙지 마!”

하지만 은혜는 어느새 발딱 일어나 이렇게 대꾸한다.

“그, 그래도…!”

유라는 그런 그녀에게 눈썹을 곤두세우며 항의한다.

“귀여운 척 하지 말란 말이야! 앞으로도 계속 그러면 나도 가만있진 않을 거야?!”

어, 어이? 너희들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리는 교실.

그렇게 의도하지 않게 두 소녀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바람에 그것을 중재하고자 그는 이런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노래방 가면 되잖아! 그러니까 그만해 이 계집애들아!”

그렇게 여차저차 해서 도착한 노래방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소란스런 분위기였다. 아마도 시험이 끝나자마자 노래방으로 뽀로로 달려온 팀들은 지현이네 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자리가 꽉 찼으면 어쩌지 하는 고민을 하며 카운터로 다가간 가연은 아직 빈자리가 아직 있다는 노래방 알바의 말에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 고마워요, 오빠!”

“아니, 고맙긴요. 재미있게들 노세요~”

“그런데 오늘은 좀 이른 시간에 나오셨네요? 원래 저녁에 했었잖아요.”

“아아, 사정이 있어서요. 사장님 대신 잠깐 보고 있는 거에요.”

그렇게 계속 알바생과 주절주절 떠드는 가연이. 하긴, 저 녀석은 단골이다 보니 여기 사람들이랑 얼굴을 알만도 하겠지.

여튼 그렇게 해서 들어간 방은 그리 크지도 넓지도 않은 적당한 곳이었다. 천장에서 돌고 있는 화려한 조명기구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방안을 수놓고 있었다. 들어가기가 무섭게 테이블에 가방을 휙 집어던지며 마이크를 낚아채는 가연.

“아아! 여러분!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안 들리면 그게 인간이냐?

걷는 내내 듣고 있던 MP3를 가방에 집어넣던 은혜는 그런 가연을 보며 빙긋 웃는다.

“응, 잘 들려~”

뭐가 좋은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향해 박수를 치고 있는 은혜의 모습에, 그녀는 활력이 배가 되어버린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자 그러면 이 권가연! 첫 스타트를 끊겠습니다!”

그렇게 가연은 노래방 책자도 펴지 않은 채, 숫자와 예약 버튼을 연타하기 시작했다. 역시. 베테랑답다. 이, 이미 노래 번호를 외우고 있어.

어느새 울리기 시작하는 밝은 느낌의 반주와 함께, 가연이 열창을 하기 시작했다. 첫 곡은 역시나 가사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애니송이었다. 응? 애니송이 맞나? 영어로 되어 있었는데? 뭐 아무튼 그런 느낌의 곡이었다.

<Won\'t you take me in your heart~ I~ only, I only want to be with you. You will always have the key to my heart~ I~ only, I only want to be with you!>

감미로운 반주와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

잘 부르기는 한데, 그런데 뭐랄까. 어디선가 몰려오는 이 미묘한 거부감은 뭐지? 가연의 모습을 보며 머리를 긁적이던 지현은 뭔가가 파라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깨닫곤,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노래방 책자를 대충대충 넘겨가며 ‘훑어보고 있는’ 유라의 모습이 있었다.

“!?”

설마, 너 그거마저 전부 외워버릴 작정인거냐…!?

절대기억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한번 보았던 것이라면 무엇이든 머릿속에 떠올릴 수가 있다. 이렇게 책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휘리릭 훑어보기만 해도 신곡이 추가되지 않는 한, 이제는 두 번 다시 노래 책자를 펼쳐 볼 일이 없을 테지. 뭐, 신곡이 추가 되도 한번 슥 쳐다보기만 하면 암기 끝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지현과 같이 멍하니 지켜보던 은혜는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대단하다 유라야. 으으, 그나저나 내가 찾던 노래가 어디에 있더라? 에에, 어디어디….

그렇게 상반된 목적을 가진 채 열심히 노래 책자를 바라보는 두 명의 소녀. 두 개 밖에 없는 노래 책자를 그렇게 다 뺏긴 뒤라 그다지 할 일이 없던 지현은 어느새 마이페이스에 빠져 두 번째 곡에 들어간 안경소녀를 바라보며 그저 멍 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 어차피 노래 부를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그나저나 이번엔 애니 송이 아닌 것 같은데? 저건 J POP 이잖아?

<Make a wish! Easy one. You are not the only one. Someone\'s there next to you holding your hand~!>

<텁!>

잠시 후,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 책자를 다 훑어본 유라는 책을 덮으며 왠지 모를 흐뭇한 미소와 함께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이후로 계속되는 예약연타. 꾹꾹꾹, 꾹꾹꾹, 꾹꾹꾹꾹. 역시나 책자는 전혀 들여다보질 않는다.

‘여, 역시, 굉장하다.’

새삼스레 자신들이 얻게 된 능력에 대해 감탄을 해버린 지현이었다.

‘나도 그 능력 덕분에 이번 시험을 잘 넘길 수 있었지. 답을 미리 볼 수 있었으니까. 유라는 원래 전교에서 놀긴 했지만 그 암기력 덕분에 성적이 더 오른 것 같고. 은혜는…. 은혜는?’

뭔가 의아함을 느낀 지현은 아직도 노래를 찾지 못하고 바들거리는 손가락으로 책자를 넘기고 있는 어느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이 능력을 쓰는 모습은 전혀 본 적이 없네. 하긴 마음을 읽는 능력이니 사용한다고 그래도 내가 알 리가 있겠냐만, 적어도 이번 시험에선 그 능력을 쓰지 않았잖아? 공부 잘하는 녀석들 마음을 읽는다면 그 애들 못지않은 모범답안을 뽑아 낼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은혜는 그러지 않았어. 나라면 100번이고 들여다봤을 텐데 말이야.’

그런 지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내 찾던 노래를 발견하고 좋아하는 은혜. “앗, 찾았다, 찾았다!” 그렇게 노래 책자를 덮고 나서 리모컨을 잡은 그녀는 이내 얼마 되지도 않아 난감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곤 이내 손을 바들거리며 다시 책자를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너, 설마 방금 전에 찾은걸 예약하려다가 까먹은 거냐?

아무튼 가연이가 노래를 마치자, 이번엔 유라의 차례가 돌아왔다.

“흠흠.”

그녀의 헛기침과 동시에 화면에 떠오른 노래의 제목은 Blessedness 라는 제목이었다. 뭐야 저 노래? 저거 되게 옛날 노래 아닌가? 우리 엄마가 내 또래일 때 나왔던 것 같은데. 한 20년은 됐을라나. 지현은 그렇게 유라에게 빈정거리기 시작했다.

“유라 너도 참, 취향이 독특하구나? 아줌마들이나 부를만한 옛날 노랠 부르다니.”

“시, 시끄러! 내 맘이니까 참견하지 마!”

그렇게 옛날노래 치곤 꽤나 화려한 드럼과 일렉기타 반주가 쏟아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유라.

<누군가가 날아오르는 날개를 꺾어버릴 지라도,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날개를 잃은 나는 하늘을 날던 때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한 채, 언젠가 날아오를 자신을 믿고 있을 테니까.>

평소 터프한 이미지의 유라였지만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만큼은 뭐랄까, 청순한 소녀의 이미지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까만 머리카락이 그녀의 몸짓을 따라 하늘거리며 그녀가 부르는 노래와 함께 멋진 춤을 추고 있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저 녀석이 예쁘게 보이는 걸까?

그렇게 멍하니 유라를 바라보던 지현은 무심결에 유라와 눈이 마주쳐 버렸고 자신에게 윙크를 날리는 그녀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때,

뚝-

반주가 끊김과 동시에 환하게 밝혀진 조명.

<소원에 실어 보낸 그 마음들이, 이 바람의 끝까지…, 에?>

한창 노래를 부르던 유라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원인을 찾던 그녀는 곧, 양손으로 리모컨을 쥔 채 굳어있는 은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미, 미안. 예약을 잘못해서 예약 취소를 누르려고 했는데, 실수로 그냥 취소 버튼을 눌러 버렸….”

빠득!

“너! 내가 점수 따는 게 배 아파서 일부러 누른 거지!?”

“시, 실수라니까!”

정말 실수인지 아니면 고의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어느새 부터인가 다시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일부러잖아! 내 윙크에 지현이가 흔들리니까 배 아파서…!”

흔들리긴 누, 누가!!

“아니래돗!”

지현은 그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식은땀을 흘릴 뿐이었다.

‘언제부터 쟤들이 나 때문에 싸우기 시작한 거지?’

옛날부터 소꿉친구였던 유라. 그리고 갑자기 만나게 된 어릴 때 친구 은혜. 두 사람 다 자신에게 좋아한다는 얘기는 한 적이 없었지만 어느새 점점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섣불리 나설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그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두 사람에 대한 감정이 흔들리는 그였다.

‘하아아. 나는 이제 어떡해야 좋은 거죠? 하늘에 계신 아버지. 좀 알려 주세요!’

그렇게 옥신각신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환호를 지르며 시험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를 풀어가던 그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던 그들은 어느새 노래방 시간이 다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분 정도를 남겨놓고 마지막 노래를 10분짜리 댄스곡 메들리로 선곡하는 가연이의 센스에 힘입어, 아이들은 소리 지르느라 목이 쉬어버리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그리곤 그렇게 마지막 노래가 끝나자 오히려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에 허탈한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안녕히 가세요~!”

활기찬 알바생의 인사를 뒤로한 채 그곳을 빠져나온 일당들은 노래방 건물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하아. 드디어 끝이구나.”

한숨을 내쉬는 지현의 모습에 미소 짓는 은혜와 유라.

“으응, 오늘 너무 너무 재미있었어~”

“흠흠, 너무 소리를 질렀나? 목이 살짝 아프네.”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치던 지현은 이내 별 감정 없이 말했다.

“그럼 이젠 해산인거냐?”

그런 그를 바라보곤 안경에 음침한 빛을 내며 웃는 소녀가 있었으니,

“훗. 얘가 뭘 모르네.”

3인방은 그런 가연을 바라보며 머리위에 물음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가연은 그런 그들의 시선을 즐기며 기운차게 외쳤다.

“기운내서 놀았으면 뭐라도 먹어야 할 것 아냐!”

“호오? 일리 있는데? 가연이 너도 뭘 좀 아는 걸?”

그렇게 가연이 앞장서며 찾아간 곳은 언제나 그들이 자주 들리는 곳이었다.

그곳은 정말이지 익숙한 역 앞의 □△○X분식집이었으니까.

‘하아? 뭐야? 기껏 뒤풀이라고 찾아온 데가 분식집이냐?’라는 지현의 투덜거림과 함께 바라본 그곳에는 시험이 끝났기 때문인지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많았다. 모두 지현이네와 마찬가지의 생각으로 이곳을 찾아온 아이들이었다.

한지현 일당은 입구에서 주인아주머니께 떡볶이와 튀김을 주문하곤 언제나 즐겨 앉는 구석진 테이블을 점거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오래간 만이네. 그러고 보니 은혜랑 온 적은 처음이지 아마?”

지현의 말에 어느새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던 은혜는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 내 말이나 알아듣고 대답한 걸까? 매일 이어폰을 꽂고 살고 있으면서 어떻게 말하는 건 다 알아 먹는지 모르겠네.

그때 문득, 그는 그녀의 ‘능력’이 떠올라 버렸다.

‘아.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은 마음을 읽을 수 있었지? 들리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상대가 무슨 소릴 했는지 다 알아 들을 수 있다는 거잖아? 흐음. 편리한 능력이네.’

그런 은혜가 신기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비단 그 뿐만은 아니었나보다. 가연이가 그런 그녀를 바라보곤 빙긋 웃으며 질문하고 있었으니까.

“은혜는 음악을 정말 좋아하나보네? 쉬는 시간에도 끼고 다니던데.”

“음악을 좋아하긴 하는데, 쉬는 시간까지 공부 할 정도는 아니야.”

“아? 아아….”

“…?”

동문서답하는 은혜와 그 모습에 당황하는 가연을 지켜보던 그는, 문득 방금 떠올린 자신의 가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 뭐야. 들리지 않아도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 매일 음악을 듣고 있어도 상관없던 것 아니었나? 그는 그때서야 은혜가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를 떠올렸다.

‘나는 내 능력을 잘 쓰지 않는 편이야. 최근에 사용했던 것도 어제 너를 처음 만났을 때뿐이었어.’

순간 그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뭐야? 어째 서지? 마음을 잘 읽지 않는 편이라면, 왜 자신의 귀를 저렇게 항상 막고 다니는 거야?’

무의식중의 버릇대로 손바닥으로 정수리를 누르던 그는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한번 물어보기로 다짐했다.

“우와, 살인 사건이래.”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보고며 중얼거리는 유라의 모습에, 그녀의 시선을 따라 가본 곳에는 25인치 정도로 보이는 조그만 TV에서 뉴스 속보가 방송되고 있었다.

<어제 아침 여덟시 경, 학교를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선 후 실종된 여고생 김 모 양이 오늘 오전 열한시경 근처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 되었습니다. 용의자는 이웃에 사는 이 모 씨로, 피해자의 이웃이라고 하여 더욱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현장에 나가있는 정민혁 기자와 연결합니다. 정민혁 기자?>

<네, 정민혁입니다. 용의자 이 모 씨는 현재…>

“열한시? 열한시라면 바로 두 시간 전이잖아?”

놀라듯 말하는 유라의 말에 눈썹을 꿈틀거리는 가연. 은혜는 뭐가 무서운지 움찔거리며 떨고 있었다.

“두 시간 전이면, 시험 끝나고 막 놀러갔던 시간이었잖아? 으으, 저런 사건이 정말로 있긴 있구나…. 게다가 이웃 사람이 범인이었다니.”

은혜의 말에 지현은 그저 피식 웃으며 말한다.

“별 걱정을 다한다. 왜? 무섭냐?”

“그, 그럼 무섭잖아! 옆집 사람이 범인이라는데!”

예상외의 대답을 들었다는 듯, 은혜는 조금 놀란 듯한 모습이었다. 지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은혜 너 왜 그러냐? 혹시 걱정이라도 되는 거야? 옆집 사람이 안녕 은혜야? 하면서 칼로 푹 찌르기라도 할까봐?”

그렇게 별거 아니라는 그의 말에 어느새 은혜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여, 여기서도 살인사건이 일어났었다며?”

“어라? 그랬었나?”

“우, 우범지역이라며! 네가 그랬잖아!”

발끈하는 그녀의 말에 지현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처음 은혜를 만났을 때 그런 농담을 했었지.

 

‘야, 그래도 12시가 넘었는데 여자애 혼자서 이렇게 돌아다니면 위험하다고? 이 동네 의외로 우범지역이야.’

‘에? 그, 그런 거야?’

‘그래. 며칠 전에 어떤 여자애가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납치된 다음 지하철역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던데?’

‘!!?’

‘걱정하지 마. 그런 일은 자주 있는 게 아니니까.’

‘그, 그래?’

 

그렇게 그때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떠올린 지현은 그저 마냥 재미있다는 듯이 웃을 뿐이었다.

“야. 그 말을 아직까지 믿는 거냐? 에라, 이런. 농담이라고 농담. 거짓말이야 그거.”

“거, 짓말…?”

“그래. 그때 네 모습이 하도 어리바리해 보여서 그냥 장난 쳐본 거야. 이 어벙한 녀석아. 그러니까 안심해. 걱정 말라고. 우리 동네에서 그런 사건은 없었어.”

“그, 그런… 거야?”

“…?”

“거, 거짓말이었구나.”

갑자기 우울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은혜의 모습이 의아했던 지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야? 너 왜 그래, 갑자기.”

“믿었는데. 믿고 있었는데…. 나는 또 속고 있었구나.”

그렇게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는 은혜. 그녀의 눈망울이 조그맣게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울기 직전의 표정처럼.

“아, 미, 미안. 그러고 보니 나 오늘 집에 손님이 오기로 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어. 다, 다음에 보자.”

그렇게 은혜는 눈가를 살짝 훔치더니 언제 여기 있었냐는 듯 사라져 버렸다. 달려 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지현은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뭐야? 너도 한 달에 한번 온다는 그 마법에 걸린 거냐?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에 뒤통수를 긁적이던 지현은 이내 게슴츠레한 눈으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두 소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저 계집애 감싸주는 건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너 너무 했다.”

“소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파렴치한.”

“뭐야? 그, 그냥 농담 하나 했던 것뿐인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 말을 했었던 게 그녀를 처음 만났었을 때이니, 벌써 보름 정도 전의 일이었다. 그때 했던 그 농담을 아직까지도 믿고 있었던 거야? 후우. 이런, 순진한 것도 정도가 있지.

“다음에 만나면, 제대로 사과 해 바보야. 은혜는 민감한 아이라고. 너도 알 거 아냐?”

“에휴, 알았어.”

은혜를 챙겨주는 가연의 말에, 지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 쉴 수밖에 없었다. 여자라는 동물은, 여러모로 참 피곤한 녀석들이구나. 하지만 지현은 가슴 한쪽 구석에 자리 잡게 된 찝찝함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냥 지금 가서 사과하고 와야 하나? 얼마 못 갔을 텐데, 잠깐만 나 나갔다 올게.”

그렇게 자리를 뜨려던 지현. 하지만 그의 발목을 붙잡는 듯한 유라의 말에 그대로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가지 마, 지현아.”

“응?”

“그냥 여기에 있어줘.”

고개를 돌려 돌아 본 그곳에선 유라가 왠지 모르게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여기 날 내버려두고 가지 말라는 듯한 표정. 그냥 은혜는 내버려두고 내 곁에 있어달라는 표정. 평소 강인한 모습만을 보여주던 그녀의 그런 의외의 모습 때문에 지현은 머리를 헤집으며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아, 정말. 여자는 피곤해. 유라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 속으로 미소 짓는다.

‘역시, 지현이는 나를 더 좋아하는구나. 후후. 은혜에겐 미안하지만 지현이가 너랑 같이 있게 놔 둘 수는 없어. 빼앗기지 않을 거야. 절대로!’

그렇게 분식집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던 세 사람. 갑자기 자리를 떠나버린 은혜 때문인지 지현은 어딘가 찝찝한 느낌이 있었지만, 밝게 웃으며 말을 건네는 유라와 그에 어울려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려고 노력하는 가연이 덕분에 그런대로 즐거운 분위기에서 점심을 해결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지는 즐거운 대화에 어느덧 은혜에 대한 미안한 감정은 태양 볕 아래의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려 없어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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