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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라 지구야 by 그레텔

몇달에 한번씩 업데이트하는 듯한 유쾌산뜻상큼 이능력배틀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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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레텔  lv 6 60.1428571429% / 2521 글 85 | 댓글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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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그레텔[yunie22]
조회 1068    추천 0   덧글 4    / 2008.02.28 04:10:36
그날 밤은 일찍 잠이 들었고, 오랜만에 꿈을 꿨다. 저녁의 전투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 뜨거운 불길이 아른거리는 꿈이었다. 기억나는 건 그것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비오 형의 엄청난 목소리에 깨어났기 때문이었다.
“온달아, 일어나아!”
우엣?! 그런 흉한 소리를 내며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야? 당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침이었고, 나는 내 방 이불 안에 얌전히 들어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다 눈에 들어온 것은, 방문 쪽에 쭈그려 앉아 웃고 있는 비오 형이었다. 다행히, 무슨 일 난 건 아닌 듯 했다. 안도해서 한숨을 푹, 내쉬고는 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요?
“에헤헤,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잘 보니, 웃는 얼굴인데도 미묘하게 울상이다. 아, 형의 이런 얼굴 언젠가 본 적 있는데.
“나, 너무 아파서 죽어버릴 것 같아.”
네? 왜 그요?! 또다시 화들짝 놀라서 다급히 다가가자, 형은 나에게 옷소매를 걷어 올려 보였다. 그리고 그 안을 본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우아, 이거 뭐야. 형의 팔은 온통 새빨갛게 된 채로, 여기저기 물집이 잡혀있었다.
“이거 뭐… 무슨…….”
“그게 있잖아. 어디가 너무 아파서 일어났더니 몸이 막 이래. 이쪽 팔도 그러고 다리도 그렇고…….”
“우, 왜, 왜 이런 거예요, 도대체.”
놀라서, 형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형은 그런데도 계속해서 헤헤거리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문득, 꿈에서 본 아른거리는 불길이 떠올랐다. 설마, 어젯밤에 그 폭발 때문인가?
“어제 밤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시간차? 나, 정신 줄 놓고 있었던 건가?”
으, 이러면 또 나 때문이잖아. 미안해, 형. 고개를 수그리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응? 에? 아, 뭐가. 너 안 그랬음 나 죽었을 걸. 하지만 아무튼, 아프긴 아프다.”
어쩐지 우울하게 그렇게 말하면서 팔을 툭, 떨어트렸다.
“근데 어제는 불길이 너무 강했었는데. 도대체 뭐였어, 그건?”
아, 그거요. 멍하니 있다가, 방 한 쪽 구석의 연습장을 주워들었다. 역시 어젯밤의 여파로 살짝 피가 묻어있는 연습장을 펼쳤다. 어제 토끼에 갔다 댔던 장.
“그, 이거에요. 이거, 옛날에 잔뜩 그려뒀던 건데.”
엉, 뭐야 이거? 형은 멍하니 그 연습장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오래되 보이는 삐뚤거리는 글씨로 ‘열로 폭발시킨다.’라고 써져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쓴지 얼마 안 돼 보이는 휘갈긴 듯한 글씨. ‘반드시 죽는다. 흔적이 남지 않는다.’
“음. 이건, 그러니까……?”
“그, 어렸을 때 만들어놨던 연습장이에요. 왜인지 몰라도, 전투 같은 데 필요한 게 잔뜩 그려져 있거든요. 음…… 그, 다시 찾아서. 조금 보충을 했는데 너무 강해진 걸까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헤헤, 음, 그러니까 이건 온달이가 어린시절 만든 또 다른 지구의 자살들이라 이거지.”
“에, 그, 엑, 잠깐만요. 그런 거 아닌데……!”
농담이야, 농담. 당황해서 허둥대는데, 그런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웃는 형이었다. 우, 뭐야. 조금 화가 나서, 머리카락을 막 헝클어뜨리는 형의 손목을 붙잡아 떼 냈다. 아니, 그보다 형은 괜찮은 건지. 형은 지금 당장 자기가 죽을 상황이라도 실실거릴 사람이다. 보증금을 떼먹히더라도 웃어넘기겠지.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다, 형의 웃음에 또다시 울상이 섞이는 것을 목격하고는 다급히 손을 놓았다. 잡혔던 손목을 문지르며 투덜대는 형이었다.
“그보다, 어떡하지. 병원에 가야하는 건가.”
에, 병원이라니. 형의 투덜거림을 듣고는, 반짝 무언가가 떠올랐다. 형, 잠만 기다려 봐요. 그렇게 말하고는, 연습장을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연필을 주워들어, 주욱 선을 긋기 시작했다. 옆에서 와아, 하는 감탄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그리고 완성한 것은, 약병이었다. 에에, 그리고. 멍하니 중얼거리며 다시 연필을 들어올렸다. ‘뭐든 다 낫는다.’
“손 대봐요, 형.”
에, 응, 하고 조심스레 그 위에 손을 갖다 대는 형이었다. 그리고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림은 글씨만 남긴 채 사라졌고, 대신 조그마한 약병이 나타났다. 그걸 보며, 진심으로 대단하다는 듯한 눈빛을 반짝거리는 형이었다.
“우와, 뭐야, 이거! 완전 짱이다! 이거, 되게 좋은 능력이네.”
“에, 뭐, 그런가요. 근데 저는 아무튼 이 능력, 없앨 거라니까요.”
응, 알아, 알아. 형이 씩 웃는다. 그러면서 조금 두서없는 이야기를 하다, 곧 학교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형은 오늘은 바로 PSE로 갈 거라고 했다. 있다 봐, 하고 손을 흔들며 길을 나섰다. 평소보다 꽤 이른 시간. 형의 집에서부터 학교까지는 꽤 멀어서,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적이 많았는데 오늘은 조금 느긋하게 가도 될 것 같았다. 멍하니 걸으며, 어제를 떠올렸다. 그 전날은 갑작스런 폭주기. 집으로 찾아왔던 해협이. 또 갑작스레 나타난 수많은 토끼들. 기억나지 않은 설정들. 중복된 설정. 능력이 나오지 않은 형. 잘은 몰라도,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려고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분명히 그 때 형이 그랬었다. 이 사건도 이제 곧 끝이 보인다고. 이제 곧 끝나려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만화전개 같기도 같다. 세마치 씨가 그랬던가? 요즘엔 자꾸 이런 토끼들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이런 토끼들. ‘초능력’이라고 말하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능력이 통하지 않는, 쓰러뜨리기 어려운 녀석들. 파워 인플레인가? 나오는 적들이 점점 더 강해지는. 아으, 도대체 어렸을 때 나는 뭐하는 놈이었던 거야. 이런 걸 만들어 내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어느새 얼마 멀지 않은 곳에 학교가 보였다. 아, 확실히 일찍 출발하니까 좋구나. 이렇게 느긋하게 걷기도 하고, 거리도 조용하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순간, 어디선가 너무나 익숙한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어쩌라는 거야, 이 병신 같은 놈아!!”
푸헙, 뭐야 이건……!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 쪽 길목의 귀퉁이 쪽에서, 지부장님의 것이 분명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뭡니까 이건? 무슨 일이라도 났나요? 지부장님, 설마 정말로 사람을 팬다거나 뭐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럴 리가. 말도 안돼는 상상을 하고 있는 머리를 탁, 치고는 소리가 난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니까 말이지, 전혀 안 끝났다고. 도대체 우리가 어제 상대했던 그 것들은 뭔데?”
그리고 거기에선, 지부장님이 한 손에 휴대폰을 든 채로 엄청난 소리 소리를 내 지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로 평강이가 가만히 서 있었다. 저, 저기, 잘은 몰라도 내가 낄 때는 아닌 것 같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는데 순간 평강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 온달 군?”
그 평강이의 말과 함께, 허공의 어딘가에 가 있던 지부장님의 시선이 나에게로 돌아갔다. 움찔. 뭐, 뭐야. 하지만 지부장님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통화에 열중했다. 돌아가기도 뭐하고. 머뭇거리다가, 평강이 옆으로 다가갔다.
“그, 저기, 무슨 일이야?”
“글쎄. 지금 지부장님은 서울본부의 본부장님과 통화 중이오.”
몰라도, 뭔가 심각한 일인 것 같다. 지원이 없다느니, 닥치라느니 하는 호통이 약 1분간 더 지속되었고, 이내 무언가 괴성의 소리를 내지르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지부장님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겁니까?”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렇게 묻는 평강이를 보며, 이를 빠득, 가는 지부장님.
“어떻게 되긴? 네가 들은 그대로지.”
“저, 그, 도대체 무슨…?”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소리에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순간, 지부장님이 엄청난 얼굴을 하고서 나를 노려보았다. 넌 좀 닥치고 있어 봐. 넵, 죄송합니다. 지부장님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이 자식도 있고, 학교도 바로 앞이니까 괜찮겠지? 이만 가 볼 테니까.”
네, 그럼. 하고 꾸벅, 인사를 하는 평강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지부장님의 제법 친절한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머뭇거리다,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한 번 손을 흔들고는 획 돌아서 걸어가는 지부장님.
“그, 도대체 방금, 무슨 이야기 한 거야?”
“그러니까 어제, 나는 가지 않았기에 제대로는 모르지만 이상한 일이 있었다고 들었소.”
아, 응. 그랬지. 몸을 돌려 나와 마주선 평강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전날 새벽 이후로 토끼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말이 나왔소.”
뭐라고? 평강이의 말에, 잠시 정신이 멍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국 그 능력자가 ‘달 토끼 지구침략기’사건 종결 선언을 했소. 그날 새벽 이후로 말이오.”
에? 그 말을 듣고, 그런 소리를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그건. 종결 선언이라니. 그날 새벽 이후로, 라는 건 내가 설정을 보고 말해주기로 했던. 오늘이 그 폭주기가 아닐까, 했던, 비오 형이랑 퀭하니 뻗어버렸던 바로 그 날 말인가. 그렇다면, 그런 말도 안 돼는 소리가 어디 있어. 사건 종결이라고? 그러면 어젯밤 하천가에 나타났던 그 많은 토끼들은 다 뭐였던 건데.
“그러니까 말이오. 게다가 어젯밤이 아니더라도, 방금 말인데.”
아주 미세하게, 평강이의 음조가 변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평강이는 조금 인상을 쓴 채 한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손에 든 노트북을 꽉 쥐었다.
“나 말이오. 학교에 오다가, 또 토끼랑 마주쳤소.”
그 투덜거림을 듣고는, 헉, 하는 소리를 냈다. 평강이는 짜증스럽게 고개를 내저었다.
“뭐, 다행히 지부장님께서 와주셔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소이다. 그래도 지부장님은 걱정이 되신 건지 여기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역시 지부장님, 평강이 예뻐하는구나. 평강이도, 지부장님에게는 언제나 예의바르다. 아, 이건 당연한 건가. 그보다 문제는 그게 아니지.
“계속해서 이 근처에만 나타나고 있는 것 같소이다. 그것도 이렇게나 많이 말이오. 정말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소.”
그렇게 투덜거리며 안 어울리게 한숨을 내쉬는 평강이였다.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이상한 점은 더 많이 있다. 평강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 그렇지. 그리고 또. 어제 그 토끼들은, 설정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어.”
“그것도 지부장님께 들었소. 전에 본부 쪽에서 온달 군의 그 기억력 또한, 능력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말이 나왔었는데 말이오. 일이 이렇게 되니, 도대체 뭐가 뭔지.”
평강이는 뭔가 거슬린다는 듯한 표정을 한 채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에, 본부라니 서울본부 말인가. 거기서 그런 이야기도 나왔었다니, 전혀 몰랐다. 아무튼, 이야기할 건 또 있다.
“그, 그리고 말이지. 비오 형, 능력이 안 써지기도 했고.”
나의 말에, 아, 하고 멍한 표정을 짓는 평강이였다.
“비오 오빠는 예전부터 자주 그랬소. 하지만 점점 더 잦아지고 있는 건 사실인 듯 하오.”
“그, 그런 거야…….”
정말로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이 이상 없을 정도로 머리가 혼란스럽다.
“뭐 아무튼, 그래서 지부장님은 본부에 지원 요청을 좀 했는데, 거기서 ‘사건 다 끝났거든? 우리도 바쁘거든?’이라는 태도로 나왔다는 것이오.”
왠지 모르게 재기 넘치는 말투로 말하는 평강이였다. 뭐야, 그건. 너무한 거 아니야? 어쩐지 본부 쪽에서는 남부 쪽을 조금 무시하고 있다던가.
“뭐 본부 쪽도 바쁘긴 하겠지만. 여긴 인원도 다섯 명밖에 안 되는데. 아, 네 명이군.”
다섯 명이라니, 나도 남부의 일원으로 끼워주는 건가하고 잠시 놀랐지만, 이내 툭 내뱉든 덧붙이는 말에 조금 좌절했다.
“나는 도무지 전력이 되지 않으니 말이오. 정말이지.”
푸흡. 그 말을 들은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아마 입 안에 뭔가 들어있었다면 다 뿜어버렸을 것이다. 뭐야, 이건. 지금, 평강이가 자기 비하 비슷한 발언을 하고 있는 겁니까!
“내 능력으로는, 도무지 도움이 되지를…….”
평강이는 거기까지 말하다, 말을 딱 멈추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뭐요, 그 얼굴은?”
“어?! 아니, 아, 아무 것도 아닌데.”
하, 정말! 평강이는 그렇게 내뱉듯 말하고는, 씩씩거리며 몸을 돌렸다.
“빨리 학교에나 가야겠소. 이대로는 늦는다고.”
아, 응. 걸음을 빨리하며 걷기 시작하는 평강이의 뒤를 따랐다. 평강이의 능력, 정말로 뭘까. 이걸로 전투에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능력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조금 걸음을 빨리 해, 평강이와 거의 나란히 서 걸었다.
그리고 지나왔던 모퉁이를 돌던 순간이었다.
“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 앞에는, 말할 것도 없이. 또야? 처음으로 든 생각은, 그거였다. 옆에서 평강이가 우뚝 멈춰서는 게 느껴졌다. 곧이어 다짜고짜 든 생각은, 내가 평강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평강아, 도망쳐!”
나도 모르게,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말한 자신조차 민망해지는 대사였지만, 그런 데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앞의 빨갛고 하얀 생물체, 달 토끼. 그려보아도, 설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심장이 마구 울렸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듯 했다. 새삼스레 느끼는 공포였다. 하얀 털에 새빨간 눈을 가진 커다란 생물. 아무 것도 모른다. 이게 정말로, 내가 만들어 낸 생명체인가? 평강이는 조금 뒷걸음질 쳤을 뿐, 그 이상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눈앞의 토끼는,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단지 그것뿐인데, 땅에서부터 엄청난 충격이 느껴져 왔다. 바들거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평강이가 숨을 딱 멈추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주 잠시, 토끼의 빨간 눈이 빛나는 듯이 보였다.
“위, 위험해……!”
그렇게 소리치며, 있는 힘을 다해서 평강이를 밀쳐냈다. 작게 꺅,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한 쪽으로 몸을 날린 순간이었다. 퍼억! 그런 소리와 함께 토끼의 앞발이 바닥을 뚫었다. 망할…! 그렇게 중얼거리며, 구르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평강이는 어느 정도 안전지대에 쓰러져 있다. 토끼는 그 빨간 눈을 계속해서 나에게로 반짝이며, 앞발을 치켜들었다.
퍼억! 그런 소리와 함께, 둔탁한 충격이 느껴져 왔다. 윽…! 간발의 차이로 몸을 돌렸지만, 토끼의 앞발은 내 등을 가차 없이 긁어내렸다. 메고 있던 가방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간다. 다친 곳은 거의 없었지만, 망할! 연필이고 뭐고, 필통 자체가 종이처럼 구부러져 버렸다. 책들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 뭐야 이건, 이제 능력이고 뭐고, 쓸 수도 없잖아! 최악이다. 죽는 건가? 이대로 죽고 마는 걸까? 나도, 평강이도? 삐거덕. 그런 소리가 날 듯한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지만, 계속해서 바들바들 떨렸다.
“온달 군, 여기……!”
순간, 평강이의 그런 목소리와 함께 퍽, 하고 등에 작은 충격이 느껴져 왔다. 뭐, 뭡니까. 몸을 돌리자, 아래로 작은 펜과 공책 한권이 보였다. 멀리서, 평강이가 자신의 가방을 꽉 끌어안고 있다. 아아…! 그런 감탄사가, 무심코 튀어나갔다. 펜과 공책을 집고는, 토끼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물러섰다. 토끼는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펜을 들어올리고는, 공책을 펼쳤다. 동그라미를 그리고 설정을 써넣었다. ‘폭탄. 넌 뒤졌다.’ 공책을 앞으로 들어 보였다. 자, 와라!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토끼는 뛰어올랐다. 쿵, 하고 심장이 뛰었지만 공책을 든 손을 내려놓지 않았다. 녀석이 나에게로 다가온 순간, 갔다 댄다. 그러면, 이 녀석은 끝이다. 나도 모르게, 눈을 꼭 감았다.
“온달 군!”
에? 그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날아오른 녀석의 뒷발에, 손 채로 후려쳐 지며, 동시에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뭐, 뭐야…. 아스팔트 위를 마구 뒹구는 내 눈에 보인 것은, 평강이에게로 뛰어드는 토끼의 뒷모습이었다. 저 망할 놈. 왜 평강이한테로 가는 거야?! 젠장. 좀 와줘요! 지부장님, 비오 형, 세마치 씨! 평강이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그 괴물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 자식…! 마구 삐걱대며 움직이기를 거부하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앞으로 한 발짝 내딛었지만, 그러자 간신히 일으켜 세운 몸은 다시 무너져내렸다. 망할. 토끼의 앞발이, 들렸다. 그 순간.
타앙.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 에? 하는, 평강이의 멍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응? 뭐야? 뭐가 뭔지는 잘 몰라도, 평강이에게 뛰어들던 그 토끼는 촤악, 하고 피를 흩뿌리며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뭐야, 이거.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그 앞에, 마치 깃털처럼 사뿐히 내려앉듯 나타난, 새하얗고 빨간 생명체. 온통 하얀 몸과, 빨간 눈을 가진 그 것은 분명히… 달 토끼였다.



“다친 곳은 없습니까?”
그런데 그 생명체는, 사람의 언어로 말을 하고 있었다. 잠깐. 뭡니까, 이건.
“아, 그 쪽 여자분. 피를 뒤집어 써버렸군요. 미안합니다.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하는 건데, 그럴 경황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평강이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평강이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눈앞의 그 괴이쩍은 생물체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피부, 새빨간 두 눈동자. 마치 피어오르는 눈꽃과도 같은 모습의 하얀 머리카락. 그 위로, 쫑긋 솟은 기다란 두 귀. 이상하게 차려입은 정장은, 빨간 넥타이를 제외하고는 온통 하얀 색. 이건, 뭐랄까. 지금까지 봐 왔던 달 토끼들 중에서, 제일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 눈이 지금 잘못된 게 아니라면.
“힘드시다면 그대로 앉아 있어도 괜찮습니다, 여자 분은. 아무튼, 제가 볼일이 있는 건 그 쪽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말하고서 몸을 이쪽으로 돌린 그 토끼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익, 뭡니까! 그 토끼는 사뿐사뿐한 발걸음으로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눈앞에 떡하니 그 하얀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세요. 처음 보는 사람과의 인사 정도는 일어나서 하는 게 예의이지요.”
아, 그렇긴 하지… 가 아닌데. 머뭇거리다, 일단은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나를 올려다보는 빨간 눈동자가 보였다. 작다. 멍하니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이겠지요. 그래서 반드시 만나야만 한다는 생각에 왔습니다. 사실, 태어났을 때부터 꼭 당신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저기요. 에, 음. 뭐라고요? 토끼는 나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잠깐, 정말로 뭡니까 이건.
“그러니까 말이지요. 저는 당신 겁니다.”
풉. 잠깐, 뭐라고요? 그런 황당한 말에, 어버버 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토끼는 음, 그러니까… 라며 뭔가가 난처한 듯 눈을 깜빡이며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그 커다랗고 빨간 눈망울을 나에게로 돌렸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
“주인님이라고 부를까요, 아니면 마스터라고 부를까요?”
“푸흡…!”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 그 소리를 듣고 뿜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게 사람일까. 하지만, 방금 그 소리는 내가 낸 소리가 아니었다. 저 멀리에, 쓰러져서는 입가를 틀어막은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평강이. 잠깐만, 너는 뭐가 그렇게 웃긴 거냐…! 엄청난 충격에 빠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토끼는 그런 내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열심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어느 쪽이 더 듣기 좋습니까? 주인님, 아니면 마스터?”
왜… 왜, 그런 걸 나에게 묻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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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레텔  lv 6 60.1428571429% / 2521 글 85 | 댓글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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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月影 02/29/07:00
과연 주인님과 마스터중에 어떤걸?
6 그레텔 02/29/03:42
└그러게요.. 으흐허허ㅠㅠㅠㅠ(...?)
0 03/04/03:10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네요 ㅎㅎ 그런데 저 토끼인간은 악랄한 달토끼들을 막기 위해 주인공이 그린 정의의 사도... 쯤 되는 건가요? 여튼 건필요~
6 그레텔 03/04/10:37
으하하 그럴까나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꺄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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