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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장수와 사진찍는 소녀 by 먼지.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웃는 매드헤터와 사진에 미친 삼월 토끼. 현실세계에 등장하는 괴물 들. 싸우지 못하면 죽어버리는 이상한 현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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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56    추천 0   덧글 0    / 2008.03.16 15:28:05

14.
 바델의 품에 안겨 창문으로 떨어진 우리는 연못 속에서 튀어오르는 물고기처럼 수면에서 튀어 올랐다. 바델은 여유있게 나뭇가지를 잡았지만 나는 그대로 연못속으로 떨어졌다.
 “잡았다! 어이, 어, 야, 은하야?”
 오늘 하루만 물에 두 번이나 빠졌다고 생각했다. 평소 연못 구경할일이 전혀 없는 내겐 굉장한 사건이다. 그리고 불운한 사건이기도 했다.
 연못물은 내 피부에 닿고 혀에 닿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나는 허우적거리면서도 연못치고는 맛이 너무 짜다고 생각했다. 몸이 계속해서 아래로 가라 앉는다. 기분이 몽롱하다. 죽으면 신과 만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죽으면 앨리스를 만나지 않을까, 그럼 그녀에게 나는 협상을 제시할거다. 내 가족과 친구들을 돌려달라고. 내 계획에 모자장수나 시계토끼같은 비현실은 들어있지 않다. 아니 나는 분명하게 말할거다. 비현실을 볼 수 없게 해달라고 말이다. 이 지긋지긋한 두통과 앨리스 증후군을 없애고 평범한 삶을 살게 해주세요. 울보에 내가 없으면 안될것 같은 정연이를 돌려 주세요. 민준선배가 정연이와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세요. 난 그저 곁에서 지켜보고 싶을 뿐입니다.
 이번에는 감성이 내 생각을 끊었다. 감성은 조용히, 하지만 사납게 물과 함께 내 목구멍으로 찔러왔다.
 거짓말쟁이 삼월토끼. 넌 언제나 남에게 선심을 쓰듯 말하지.
 -넌 민준선배가 싫어?
 -싫어.
 -그러는 은하 넌 민준선배 좋아하니?

 -......이성으로서는 아니야. 네가 민준선배가 좋다고 하면 밀어주려고 그랬더니.
 하지만 너도 알고 있어.
 민준선배가 정연이에게 고백하는 걸 보느니 차라리 모두 죽어버린게 낫지?
 감성은 이성보다도 더 정확하게 내 치부를 찔렀다.
 끝도없이 가라앉고 있는데 누군가 날 건져 올렸다. 내 몸은 낚시바늘에 걸린 고기마냥 순식간에 물 바깥으로 올라왔다. 바델이 안절부절 발로 바닥을 탁탁탁 쳐대며 나를 살펴보았다.
 “수영도 못하다니! 수영을! 그걸 못하는 건 너밖에 없을거다.”
 그가 나를 나무랐다.
 나는 웩웩대고 연못물을 토하다가 바델을 돌아 보았다.
 “현실에서는 수영을 할 일이 많지 않아요. 도시 한가운데에 연못이 있지 않으니까.”
 “그건 핑계거리가 못돼!”
 더 이상 반박할 거리가 없어서 나는 고개를 돌리고 연못에 침을 뱉었다. 물을 먹은 뱃속이 더부룩했다.
 “이 연못은 왜 짠거죠?”
 “그건 네 연못이니까. 정확히는 네 눈물로 만들어진 연못이야. 거기 펫말이 있잖아.”

 그의 말에 나는 멍해졌다.
 “나는 정말 많이 울었군요.”
 연못의 깊이를 떠올리며 내가 말했다. 돌아보니 정말 연못 옆에 작은 펫말이 꽃혀 있었다. 그곳엔 은하은이라는 내 이름대신 삼월토끼, 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낮선 이름에 나는 잠시 당황하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나 나와 관련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바델은 날 멀뚱히 쳐다보다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 물을 짜주었다.
 “고마워요.”
 바델의 손에 잡힌 머리카락에서 물이 쏟아졌다.
 나는 모자장수를 떠올렸다. 그는 얼마나 울었을까 적어도 나보다는 적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모자장수는... 정말이지 매우 눈물을 많이 흘렸을 것 같다.

“모자장수의 연못도 있어요?”
 바델은 내 옆에 있는 작은 연못을 가르켰다. 정확히는 연못이었던 움푹 파인 곳이다.
 “메말랐네요?”
 “그놈은 슬퍼하는 법을 잃어버렸어.”
 “왜요?”
 “미쳤으니까! 알아들었으면 어서 여왕에게 가자. 우린 너무 늦었어! 늦었다고.”
 바델이 방방거리며 땅을 탁탁탁 발로 찼다. 누구 때문에 늦은 건데 저런 반응이야. 보란듯이 여유부리며 교복 치마의 물을 짰다. 머리카락을 헝클이고 옷매무새를 다듬는데 그가 끄응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그러게 내가 말할 때 날 여왕에게 데려다줬어야지.
 “아까와는 태도가 정 반대군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네가 모자장수를 따라갈 줄 알았어. 그럼 난 여왕의 눈에 띄지 않게 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그런데 멍청하게 넌 여왕에게 되돌아간다고 하잖아. 여왕과 마주치면 난 목이 잘리지는 않아도 몇일간 근신하게 될거야. 그게 다 너 때문이야!”
 “여왕의 성까지 가는 길만 알려줘도 괜찮은데......”
 내 말에 바델은 날 노려보더니 귀를 쫑긋 세웠다.
 “안돼!”
 “왜요?”
 “너 혼자 나돌아다니면 당장 목이 베일거다. 넌 이 나라의 규칙을 하나도 몰라. 네가 무슨 사고를 치기라도 하면 난 매드해터한데 목이 뎅강 잘릴거야. 뎅강!”
 그는 끝없이 소리질렀다. 뎅강뎅강대고 있는 그를 보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서두르라고 재촉하는 그를 따라가려는데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바델이 빨리 오라고 성을 내는 통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숲길을 걸었다. 속옷까지 젖어서는 질척거리는 흟위를 걷자니 온몸에 꿀이라도 바른 기분이었다.
 “풀독이 오를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어.”
 “하지만 따가운데......”
 “어쩔 수 없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나에게 화내는 것과 어쩔 수 없어밖에 없나요?\"
 내가 짜증을 부리던 말던 바델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포기하고 그를 따라가는데 바델이 코를 벌름거렸다.
 “이게 무슨 냄새지?”
 나는 그를 따라 코를 킁킁거려봤지만 풀냄새와 숲냄새밖에 맡지 못했다. 그는 뭔가 따라 오고있어, 라고 말하며 귀를 세웠다. 나도 주변을 살폈지만 나무에 앉아있던 새가 날아가는 장면밖에 보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이 익숙한 꼬르륵 소리는.....체셔 도르트다! 도망가!”
 바델이 귀를 쭈욱 세우더니 내 손목을 잡고 뛰었다. 토끼답게 정말 잘 뛰었다. 나는 그에게 끌려가면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질척하고 구부정한데다 길 한가운데에 나무뿌리가 툭 튀어나온 숲길은 달리기에 적합하지 않다. 신고 있던 슬리퍼가 벗겨져 길에 나뒹굴었다.
 “내 신발!”
 “놔둬, 시간 없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난 신발없이 산길을 달릴 수 없어요!”
 하얀 양말이 흟색이 됐다. 바델의 손을 뿌리치고 나는 어정쩡 멈춰서 신발을 주워 신었다. 바델이 인상을 찌푸리고 내 손목을 낚아채더니 뒤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체셔!”

 바델이 비명을 질렀다.
 “도르트라고 불러야지?”
 붉은 머리카락의 사내가 바델의 목을 졸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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