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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중 주인공의 친구...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by 유지

"이제 슬슬 말해주지 않을래?" "뭘?!" "네 바람을." 그렇게 말하고 소녀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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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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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유지[yuzi]  
조회 960    추천 0   덧글 5    / 2008.03.21 17:09:10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Prologue

꿈속의 나는, 누군가에게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빛바랜 기억.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나날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이렇게 슬픈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째서일까.
‘그’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그’인지 ‘그녀’인지조차 더 이상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
그것은 한 겨울날의 이야기.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슬픔을 느끼는 것조차 잊어버린 나에 대한 이야기.

제 1장. 계기

2006년 4월 말.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있어 괴로운 아침이 시작된다.
자명종을 대신하는 핸드폰에서 울리는 가요의 일부분. 숙면을 취하는 사람의 눈을 뜨게 만드는 데 있어 가요를 들자면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이 소리, 상당히 시끄럽다.
“…….”
실눈을 뜬 상태로 침대의 머리맡에 두고 잤던 핸드폰의 액정을 바라본다.
오전 6시 30분이라는 표시가 핸드폰의 정중앙에 ‘일어나세요.’ 라는 문구와 함께 딸려서 액정에 떠 있었다. 전날 밤에 게임을 열심히 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침대로 기어들어간 것이 문제였는지 도저히 바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라고 해도 언제나 이 모양이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모닝콜 시간을 5분 다시 늦춰놓고 잠을 도로 청한다.
* * *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제길, 왜 눈을 감았을 뿐인데 곧장 노래가 들려오는 것인지 불가사의할 뿐이다.
또 다시 5분….
“어찌합니까~.”
“…….”
수차례 반복.
“김시영! 제 때 안 일어나면 엄마 들어간다?”
나는 7시가 다 되어서야 문 밖의 목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에 들어오신다니, 방안이 어질러져 있는 것이 걸리는 것은 둘째 치고 그건 정말 곤란하다.
그런데 결국 30분을 그냥 더 자는 게 효율적인 걸까? 그렇지 않으면 깼다 일어났다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걸까? 적어도 나를 기준으로 한다면 날마다 다른 것 같다. …결국 그 말은 내가 항상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만.
설마 지금 날 바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 * *
세면을 하고, 교복을 입고, 학교 갈 채비를 마친 채, 잠시 베란다에 나가보았다. 창문이 열려져있던 탓인지 서늘한 아침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러고 있기를 잠시, 잠이 어느 정도 깼다고 느끼자 거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차려져 있는 식탁 앞의 의자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아침밥으로 주어진 것은 마가린을 발라 구운 토스트 두 조각. 하얀 접시 위에 노릇노릇 구워져 있는 것이 꽤나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다른 가정에 비하면 간소한 아침 식사일 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뭐, 애초에 아침은 거를 때도 많은 편이고 말이지. 시간여유는 둘째치더라도 식욕이 그다지 없었기에, 토스트를 입에 우겨넣다시피 하고 있는 나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다.
“후우. 정말…, 아침에 약한 건 너나 그이나 똑같구나.”
윤기가 나는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내려오도록 기른 사람. 가볍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식탁에 흰색의 액체가 담긴 컵을 놓아두며 말했다. 20대 중반에서 후반 정도의 외모를 가진, 비즈니스우먼을 연상시키는 여성용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얇은 화장을 한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내 어머니, 강초연 여사였다. …사실 복장과 마찬가지로 비즈니스우먼이 맞다. 조그마한 마케팅 회사를 하나 운영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나저나 대체 피부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실제 나이인 30대 후반이 아니라 20대 후반이라고 말해도 열 명의 사람들 가운데 최소한 여덟, 아홉은 고개를 끄덕일 것만 같은, 볼륨감 있는 몸매의 소유자였다. …사실 몸매 유지의 비결 중에는 짚이는 게 한 가지 있긴 하지만, 다음에 말하도록 하자.
어찌 되었든 열두 살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나에게 있어 이 집에서 유일하게 버팀목이 되는 존재이자 가족이었다.
“어쩔 수 없는걸요. 아침에는 정말 일어나기 힘드니까.”
“그런데 정말 이걸로 괜찮겠니? 고등학생이 이런 걸로 아침을 때운다고 생각하니 이 엄마는 도무지 걱정이 돼서 말이야.”
“괜찮아요. 일어나자마자 뭐 먹는 건 힘드니까 이 정도로 충분해요.”
마지막 빵 한 조각을 입에 넣고 꿀꺽 삼킨다. 그리고 우유가 담긴 컵에 손을 가져가 단숨에 들이마시기 시작한다. 차갑다. 하지만, 그 덕에 잠이 완전히 달아나는 것 같다. 그러자 강초연 여사께서는 유난히도 큰 자신의 가슴을 양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래. 사실 빵 두 조각으로 영양이 부족하니 영양이 듬뿍 담긴 모유를 먹여야지. 네가 어렸을 때랑은 다르게 잘 안 나와서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는 있니?”
“푸웁?!”
나는 마시던 자세 그대로 뿜어버렸다.
“이런, 농담이야~. 설마 아직도 모유가 나오겠니. 아니, 정말 노력해보면 아직 나올 수도 있으려나?”
어머니는 웃으시더니 골똘히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맥이 빠진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런 농담은 가급적 참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부끄럽다는 듯이 웃었다.
“흐음, 역시 사춘기인 아들에게는 너무 자극적인 농담이었나?”
“윙크하며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도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다른 남자에게 해주세요. …그리고 사춘기는 이미 지났다고요.”
“에에, 그럼 엄마가 다른 남자에게 이래도 좋다는 말이니?”
“…원하시면요. 그런데 왜 자꾸 이런 장난을 치시는 거예요?”
금방 말했다시피, 이런 19금에 가까운 장난을 하는 것은 어머니의 취미생활이었다. 그것도 아들을 향한….
나는 허탈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그러자 강초연 여사께서는 당연하다는 표정과 몸짓을 보이며 말했다.
“그거야 재밌으니까!”
“…….”
“응? 왜 그러니?”
“…적어도 저는 그럴 때마다 당황스러워요. 제가 졌으니 이번까지 만으로 좀 봐주세요.”
눈을 살며시 감고 양손을 위로 휘휘 저으며 항복했다는 의사를 표한다.
“어쩌면 좋니…. 시영아! 어떻게 그이랑 말투나 버릇까지 똑같을 수가 있을까~”
강초연 여사께서는 어느새 내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아, 안 돼. 설마 이거….
그리고 얼마지 않아 나에게 아침의 재앙이 찾아왔다.
강초연 여사께서는 순식간에 나를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마구 비비기 시작한다. 왔다! 강초연 여사의 공포의 부비부비 Lv Max가!
“아아…, 정말 낳아서 잘한 것 같아. 그이가 없어도 그이의 분신을 볼 수 있잖니?”
어느새 부비부비의 시전상대가 된 나는 필사적으로 얼굴을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하려 해도 이 비정상적인 완력에 난 당해낼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이러지 마요! 어머니 화장! 화장한 거 지워진다고요!
“괜찮아~ 엄마는 맨 얼굴도 예쁘니까~”
“가슴! 가슴도 닿는다고요! 가슴 자꾸 닿으니까 떨어져요!”
“그것도 괜찮아~ 내 아들인걸?”
“그러니까 더 안 된다고요!”
“아, 그런 걸까?”
여사께서는 그제야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부비부비 하는 것을 멈췄다. …그래도 여전히 껴안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어머니는 흐응 하고 콧소리를 내시며 말했다.
“시영아. 정말 엄마가 이런 짓을 네가 아니라 다른 남자에게도 해도 좋다고 생각하니?”
“…원하시면요.”
어머니는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계속 말했다.
“그럼 엄마가 재혼하는 건?”
“그것도요. 괜히 제가 반대할 것 같다고 생각하셔서 그런 거라면 그런 걱정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어머니도 어머니 나름의 인생이 있으니까요. 적어도 제가 발목을 붙잡고 있다면 그렇지 않게 해드릴 테니까.”
아버지에 대한 것을 잊으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들을 혼자 키워 오신 어머니의 입장을 생각해본다면 괜히 서글퍼졌기에 더 이상 어리광을 부리면 안 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재혼하는 것 정도는 허용해드려야겠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보험금이 상당히 나온 덕에 경제적인 면에서는 아직까지는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 왔지만, 나나 어머니에게 있어 존재했던 정신적인 지주는 더 이상 없으니까. 두 명의 가족이 서로를 의지해가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어머니가 지치신다면, 나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면. 그 때 후회해도 너무 늦는 것이다. 그러니 그 전에 정신적인 지주를 한 분 받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보신다면 통곡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가야 하니까. 아니, 애초에 우리 아버지라면 그런 이유는 이해해주실 거라 믿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탓인지 난 내 나이 또래 애들보다 철이 빨리 들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게 더 서글픈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더 빨리 알게 되어 버렸으니까.
어느새 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지만, 몸은 뇌가 명령한대로 행동하기 싫어하는 것처럼. 아무리 어른인 척해도 철부지인 나였다. 이것이 너무도 화가 난다.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면서도 그렇게 따랐던 아버지의 빈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기는 싫었다. 어느새 침울해져버린 나에게 얼마지 않아 따스한 것이 닿았다.
“시영아, 역시 말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에게 껴안긴 자세 그대로, 조용히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릴 뿐.
“널 낳아서 잘한 것 같아.”
“…갑자기 또 왜 그래요?”
“생긴 것도 생긴 거지만~ 점점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잖니? 그게 이 엄마는 너무나도 기쁘단다.”
“이 정도의 배려는 어머니 한정이니 그다지 기뻐하시진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에에, 그러니? 그것도 나 한정이라니 기쁜 면도 없지 않아 있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껴안은 자세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나는 어느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계속 말했다.
“엄마는 재혼할 생각 같은 건 없단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미소를 짓고 계신 어머니가 있었다. 아아, 이 분은 왜 이렇게 강하신 건가요. 너무나도 약한 나와 달리.
“그이와 함께 있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와 이러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는 아직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고 싶어.”
어머니는 속삭이고 있었다. 그것은 솔직한 자신의 느낌과 감상을 담아. 마음을 담아 나에게 와 닿고 있었다. 아침부터 눈물바다를 보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싫었기에, 나는 어느새 어머니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솔직히 창피하다면 창피했다.
“고마워요. 하지만, 정말 그럴 생각이 드시거든 얼마든지 말해 주세요. 그럼 이만 다녀올게요. 그리고 잘 먹었어요.”
“그래, 차 조심하고 잘 다녀오렴. 뭐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어머니는 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러한 어머니의 배웅을 뒤로 한 채, 현관문을 열었다.
적당한 운동은 몸에 좋다고들 하지만 나에게 있어 등굣길은 임시적인 체력 테스트일 뿐이었다. 그래봐야 몇 백 미터 달리기 한 종목이지만. …그런데 5분 달리고 쉬고 5분 또 달려야 하는 종목이 체력장에 있었던가? 오늘은 평소보다 더 늦었으니 그 시간을 더 단축시켜야 할 것 같은데, 정말 죽을 것 같다.
“이거 아침부터 너무 무리한 것 같은데….”
헐떡거리는 숨을 가다듬으며 느릿느릿 걷기 시작한다. 학교 주변의 풍경이 그제야 들어오기 시작했다. 문구점들을 지나가던 중, 무언가 4월의 평소와 달리 어둡다고 느끼고 나는 위로 시선을 옮겼다. 문득 바라다본 하늘은 우중충한 빛을 띠고 있었고, 언제 빗방울이 떨어져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오늘 아침 세수를 하며 들은 일기예보로는 강수확률이 5퍼센트라고 한 것 같지만, 한국의 기상청은 믿을 것이 못된다. 예의 온난화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건 아직 직접 뼈에 와 닿질 않아서 잘 모르겠다.
버스 안에는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녀석들이 있었지만, 적어도 3학년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 지금은 고3이 등교하기엔 아슬아슬한 시간이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완전히 숨을 고르진 않았지만, 여유가 있지 않은 사람은 달려야만 했다. 교문을 지나 계단 위를 달려간다. 중학교 때와 달리 이 학교는 실내화 따위 쓸 일이 없었다. 그런고로 사지도 않았고 굳이 갈아 신을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없었지만.
조례가 시작되는 종이 치고 담임은커녕 학생조차 하나 없는 복도를 달려 나는 간신히 교실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헐떡거리며 문을 열어젖히는 것과 동시에 이미 와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몰린다. 수십 명의 시선이 한 곳에 몰리기도 잠시, 담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다들 자기들만의 일들로 돌아간다.
“겨우겨우 세이프….”
내가 무의식중에 중얼거린 말에, 누군가 다가오며 말을 걸어 왔다.
“또 전력질주 했냐?”
목소리를 듣고 누군지 파악했다. 난 그 녀석에게 얼굴을 돌리며 대답했다.
“아아…. 뭐 대충.”
“쯧쯔. 그러니까 5분만 더 일찍 일어나도 그럴 필요 없지 않느냐고 몇 번이나 말했지 않냐. 이 형은 7시에 등교했단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수험생인 지금까지 질리지도 않고 계속 같이 놀았던 녀석, 윤성호.
그런데 생일로 따지자면 이쪽이 형입니다만. 뭔가 억지가 있는 것 같지만 그냥 넘어가주자. 어쨌든 평범한 것보다 조금 더 큰 키에 준수한 얼굴을 가진 녀석, 여자 친구로는 이 학교의 여자애들로는 만족을 못하는 것인지 대학교 2학년의 누님을 사귀고 있다. 근데 잠깐만. 뭐? 오전 7시에 등교를 해?
“아무리 그래도 7시는 좀 오버 아니냐? 7시에 학교 와서 뭐했냐.”
“뭐 그냥. 가끔은 학교라는 곳에도 좀 빨리 와줘야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7시는 수면부족인 내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시간인데요.
“지도 지각대장인 주제에…, 어쩌다 빨리 일어나놓고 말은 잘 한다.”
어느새 내가 하고 싶은 태클을 굳이 찾아오고 알아서 넣어주는 녀석, 이승태였다.
훤칠한 키에 덩치 좋고, 첫 인상은 험상궂으나 순진한 녀석. 동물에 비유하자면 곰…이다.
대놓고 말하면 녀석이 두들겨 패려고 쫓아오는, 일명 이승태 소환용 주문 - 곰 혹은 쿠마.
녀석의 건장한 체구에 의한 몸통 박치기와 조이기에 의한 데미지는 나의 왜소한 몸으로 견디기가 힘들기에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는 나의 비기였다. 어찌되었든, 성호와 승태. 둘 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항상 같이 지내오던 녀석들이었다. 살짝 생각을 정리하는 도중, 성호가 승태의 말에 실상을 해명했다.
“이 쉐키. 어쩌다 빨리 일어난 게 아냐. 밤을 샌 거지.”
“미쳤구나.”
“아, 건X 신작이 나와서…. 그림 좀 그리다가 그거 보니까 해 뜨더라?”
“…….”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의사를 표시하며, 성호가 한 말에 승태는 허탈해하는 표정으로 대답해주었다. 그럼 그렇지…. 이놈이 괜히 빨리 일어날 이유가 없지. 분명 승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터였다.
몇 번, 성호 녀석의 집에 놀러가서 새벽까지 놀다가 잠든 적이 있었는데, 이 녀석이 나보다 먼저 일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에서 지금의 조그마한 사건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스스로 빨리 일어나서 학교에 왔다고 생각한 내 머리를 잠시나마 원망한다. 그리고….
“요, 시영이 왔냐. 오늘도 아슬아슬하네?”
남자애들만 모인 그룹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녀석. 정한희.
 …적어도 여자애 말투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하늘색의 리본으로 묶어 깔끔하게 정리한 양 갈래의 머리에 안경을 쓴 것이 딱 보면 우등생이다! 라는 느낌이 나는 녀석은 분명히 여자아이였다. 이 학교의 여자 배구부 주장이자 에이스를 맡고 있는 이 녀석은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녀석 중 하나였다. 보통 운동을 하는 녀석들이라 하면 공부 쪽은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하기 마련인데 내 상식을 초월하고서 몸소 문무겸비의 표본을 보여주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왜 이런 불량들만 모인 곳에 합류하려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곧잘 우리들이 있는 곳에 와서 잠시 있다 가곤 했다. 고2때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인지 여자애라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다른 녀석들보다는 서로 알고 있는 부분이 적은 편이었다. 아니, 애초에 난 그다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그나저나 나 역시 실상을 해명해야겠지.
“오늘도 붙잡혀있었다는 얘기가 되기도 하지.”
“후후, 그래. 그래도 적당히 안하면 언젠간 담임보다 늦는다?”
이 녀석도 내가 왜 이렇게 간당간당하게 학교에 오는지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알고 있어. 적당히 선은 지키고 있다.”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담임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기준으로 모였던 녀석들은 순식간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 역시 조용히 내 책상 옆 고리에 가방을 걸고 자리에 앉았다. 종이 친 지 몇 분이 지났지만 어색함은 전혀 없다. 뭐,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얼굴에 붙어있는 큰 점이 알 수 없게 안 좋은 첫인상을 만드는 담임은 국사 담당이었다.  …애초에 난 담임의 억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좋은 인상을 가질 수가 없었지.
“결석은… 없군. 땡땡이치지 말고 수업 잘 들어라. 중간고사 얼마 안 남았다.”
“네.”
말을 마치며 담임이 나를 슬쩍 노려본 것 같기도 했지만 이건 뭐 넘어가자.
여하간 반 애들의 대부분이 대답했다. 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끼어 있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단체가 대답할 일이 있으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 이유를 물어본다면 단순히 귀찮아서 일 뿐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항상 이런 것은 아니다. 베트남이라 불리는 이 학교에 현존하는 전설, 피부 시커먼 체육선생이라거나, 열혈한자선생이라면 입을 벙긋하는 센스를 보여준다. 나처럼 하다가 걸려서 두들겨 맞은 녀석은 보았지만 적어도 난 …아직까지 걸린 적이 없다. 이거 설마 나도 언젠가 걸리려나? 조심해야겠다. 남녀공학이라고는 해도 선생들이 학생들을 대우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즉, 남자애들이 두들겨 맞는 것 역시 필연이라는 것이지.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조례는 끝나고 담임이 나가고 있었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는데, 옆자리에 앉은 성호 녀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야, 나 지금부터 잘 거니까 베트남 오면 깨워.”
이 녀석도 역시 인생 편하면서 안전하게 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뭐, 이 학교 학생이라면 당연한 거지만.
몇 칸 떨어진 곳에 앉은 승태를 슬쩍 바라보니, 1교시인 영어에 해당하는 책 두 권을 꺼내고 있었다.
“과연 세화고, 수험생이라고 서점에서 파는 책이 아니라 학교 교사들이 만든 책을 수업용 교재로 쓰다니…. 수험생들에게 있어 최적인건가.”
“아니…, 그러는 당신도 세화고 학생입니다만.”
성호의 앞, 즉 나에게 있어 대각선에 앉은 한희가 나에게 말했다.
“…후, 아무리 교재가 좋아도 수면제인 갈갈이 수업은 도저히 버틸 수 없다. 그런고로 나 역시 자야겠군.”
갈갈이라 함은 앞니가 긴 영어선생에게 붙은 별명. 모 개그프로에 나오는 개그맨과 외모가 닮아서 라는 의미도 포함되어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별명 너무 잘 짓는 거 같은데, 대체 누가 짓는 거냐.
“…언제부터 불량 라인에 빠진 거야? 넌.”
“애초에 불량이었어. 그럼 나도 이만 잔다. 베트남 오면 깨워 주고.”
고1 땐 공부 잘했던 걸로 기억했는데, 라는 말이 들려온 것 같았지만, …그런데 내 고1 성적을 어떻게 아는 거지? 뭐 상관없나. 난 더 이상 난 신경 쓰지 않고 책상 위에 엎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수면부족이었던 탓인지 나는 순식간에 잠의 늪으로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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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세카이 03/21/10:35
오오...
공감대 형성이후
새로운 사건을 일으켰다...
그리고 흥미유발..
재밌어요.재밌어요.
엄청 기대되는데요.
4 유지 03/21/11:04
감사합니다 :S... 후딱 2편 준비를 하고 있다지요
11 황제 03/24/12:53
저.. 혹시, 세화고를 세광고라고 느낀것은 저 뿐인가요;;
4 유지 03/24/07:12
네, 아직까지는 아마도 [ ..]
0 04/30/11:44
흐음...평범한 일상의 모습인가요. ...문체는 상당히 괜찮으시네요. 지금까지는 평범한 전개. 캐릭터 등장도.....이제 네명인가요? 그 외로도 선생님들도 나오시는데,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각각의 에피소드가 존재한다면 모르지만, 까딱하면 캐릭터가 묻혀버릴수도 있으니 그 점에 관해서는 신경쓰시는게 좋으실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프롤로그 읽었으니 딱히 뭐라 할 수는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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