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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난신(怪力亂神) by Dr.L

굳이 따지자면, 한여름날 할머니가 해주던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한국적인 이야기. 라고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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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편수 19 / 총 관심작 수 87 / 총 추천수 0 / 총 용량 -25.521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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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Dr.L[ceaser]
조회 1916    추천 0   덧글 5    / 2007.05.27 23:42:16
########

그 때였다.
어둠은 영민을 먹어치우지 못했다. 웅크려있던 영민이 고개를 들었을 때에, 어둠은 발치에서 기괴하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보고 있는 모양으로 허공에 눌러 붙어 있었다. 그 후 검이 떨며 검 집의 좁은 틈으로 눈부신 빛을 내뿜는 것 또한 보았다. 악한 것에 반응하는 파사의 기운이 담긴 검은 그 이질적인 기운에 정면으로 맞서, 마치 새벽별의 빛처럼 선명하고 눈부신 빛을 내뿜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자신감을 얻은 영민은 검을 뽑아들었다. 차가운 쇠붙이의 작은 소음이 어둠을 타고 흐르고, 뽑혀 나온 새하얗게 빛나는 검이 느닷없이 뱀처럼 움직여 어둠을 사납게 베어냈다. 엉겁결에 쥐고만 있었던 검이 제멋대로 움직이자, 영민은 당황해하며 멈추려 했지만 오히려 사인검은 성난 황소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어둠을 잘라낼 뿐이었다.

\"이, 이거 뭐야!\"

본인도 모르게 칼춤을 추고 있는 몸을 멈추려 해 보았지만, 뜻과는 달리 더 격렬하게만 움직였다. 도저히 멈출 방법이 없을 것만 같아 그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원치 않는 검무를 추고 있는 데, 그걸 보고 있던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나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내가 그럴 거라고 미리 말하지 않았나?\"

천호역에서 내린 남자가 혀를 차며 그 모습을 팔짱을 낀 채로 구경하고 있었다. 언제인지 검은색 도포에 갓은 쓰지 않은 의관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이상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머리카락만으로도 어둠 속에서도 잘 알아볼 수 있는 길고 치렁한 백발이고, 키는 호선생보다 약간 작은 편이지만 자신보다는 훨씬 큰 정도였다. 손에는 5척의 커다란 도가 쥐어져 있는데, 영민의 짧은 식견으로는 아무리 보아도 일본도와 거의 흡사하게 생겼다. 하지만 그 이상은 더 자세하게는 관찰 할 수 없었는데, 미칠 듯이 허공을 베고 있는 이 검의 처치가 매우 곤란했기 때문으로. 지금 당장이라도 검을 놓아버리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어둠에게 먹혀버릴까 두려워, 그렇게 하지는 못하는 것을 혀를 차며 백발의 남자가 말했다.

\"이 녀석아. 내 말하지 않았냐? 습격을 당할 것이라고. 쯧쯧. 그러게 말은 곱게 들어야 착한 아이가 아니냐?\"
\"그보다 먼저 이, 이것 좀 멈추어 주세요.\"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허덕대며 칼춤을 추는 것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던 그는, 겨우 도울 맘이 생겼던 것인지 가만히 도를 들어 올려 하늘을 향한 상태에서 호랑이가 울부짖듯이 외쳤다.

\"현묘를 떠받드는 무장武將은 들으라!\"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 한 줄기 노란 번개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데. 그 기세가 공기를 끓어 올려 날 뛰게 하고, 매서운 바람이 주변을 훑으며 쓰레기들을 말아 올렸다. 그 서슬에 미친 듯이 백발을 휘날리던 남자의 노란 눈이 살포시 가늘어졌다.

\"동에는 기箕요 서에는 묘昴이며 남에는 귀鬼니 북의 두斗를 따라서 현묘를 쓸어 담아, 삿된 것을 찌르라! 이는 지엄한 군율이니 반하는 것은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니 이윽고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허공에서 번개가 떨어지며 어둠을 가차 없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굉음을 내며 떨어진 번개에 맞을 때 마다 어둠이 부서지고, 다섯 번째 번개가 떨어지자, 이젠 부서진 작은 조각으로 남아. 어느새 거의 그 흔적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신통력을 쓰는 것은 돗까비들 이외에는 본 적이 없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다가, 겨우 괴팍한 검무가 멈춘 것을 깨닫고는 씩씩 거리는 숨을 천천히 고른 영민이는. 우선 고깝긴 했지만 그 백발 남자에게 고개를 숙여 구해준 데 대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너는 내 생각대로 그리 선택할 줄 알았다.\"

그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불현듯 지하철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가, 그렇지 않은 가의 선택. 분명 너라면 내가 예상한 대로의 결과를 따르겠지. 하긴 그런 것도 재미있으니까 내가 알 바는 아니다만. 꼭 살아남아라.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말이야.」

\'설마 이걸 염두에 두고 말 했다는 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미리 알았다는 뜻일까? 에이 설마.\'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머릿속에 떠오른 그 생각을 부정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결코 틀린 것은 아니었다. 분명 이 정도의 신통이라면 호 선생과 막상막하의 능력이다. 비를 부르고 번개를 치게 하고 우박을 내리게 하는, 그런 종류의 신통에 대해선 늘 말로만 들었을 뿐으로. 영민이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만 그러한 신통에 놀라기 보다는 왜 자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지와, 자기가 알 바 아니라고 하면서 도와달라는 말에 선뜻 도움을 주었는지 그것 또한 궁금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 미물을 마주칠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까지 단번에 해결할 요량으로 결심하고는, 말을 건네려했지만 애석하게도 그 상대편의 말이 훨씬 더 빨랐다.

\"나에 대한 것도, 내가 왜 너를 도와주었는지도 묻지 마라. 나를 만나게 된 것 또한 묻지 마라. 궁금해 하지도 마라. 나는 너를 도와준 대가로 질문만 할 것이다.\"

그의 발언은 불만을 가지게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다만 영민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이 떨어지자 백발의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럼 우선 네 집에 가서 이야기 하도록 하자. 이 자리는 좀 춥구나.\"

그렇게 말하고 먼저 길을 재촉하는데 너무 어이가 없던 나머지, 할 말을 잃고는 그의 뒤를 따라 골목으로 간다. 먼저 도착한 그 백발남자를 무시하고는, 주머니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내 집의 대문을 열고 좁은 마당을 통해 계단을 올라간다. 아무도 없어 불조차 켜지지 않은 을씨년스러운 집은. 여전히 괴물처럼 그 입을 벌리고 주인과 손님을 맞이했다. 우선 집 안으로 들어간 영민은 거실의 불을 켜고, 창문을 열어놓아 우선 사람이 많은 것처럼 그럴싸하게 해 두었다. 그리고 지금은 비어 아무도 없는 썰렁한 안방의 불을 켜 두고, 거실과 방의 TV를 동시에 켜 두었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지금 이 집이 학교에 다니는 소년 홀로 살고 있는 집이라곤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 행동을 보며 현관 오른쪽의 주방에 약간 삐져나온 식탁의 의자 하나에 앉아있던 그는, 볼일을 다 마친 영민이 방석 두 개를 내어오자 군말 없이 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동안 보아왔던 윤 판서며 광영이며 유여며. 호선생의 그런 예의범절에 익숙해 졌기 때문에, 이 남자의 막무가내 식의 행동이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만 생명의 은인이기 때문에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을 뿐. 용건이 끝나면 빨리 내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뿐이었다.

\"…미움을 사고 있다는 건 잘 아니까, 그 표정 좀 어떻게 해보지 않겠어?\"

그 나이 또래답지 않게 사려가 깊고 남을 배려할 줄 안다는 평가를 얻고 있는, 영민의 성격상 이런 식의 성격은 서로 상극이었다. 그러나 그런 성격 외에도 고지식한 일면이 있기도 하다. 약속은 약속이라며 속으로 쌓은 말을 꾹 참았다.

\"그렇다고 차도 안내주다니. 이거 미움을 톡톡히 샀나보군. 그래 밤도 깊었으니 빨리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내 이름은 표헌. 성 같은 것은 없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탈주자이기도 하지.\"
\"탈주자?\"
\"나는 내 마음대로 돗까비들이 두른 영역의 한계를 넘어버린 존재다. 그들은 나를 반역자들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저 무리를 잠시 이탈한 탈주자일 뿐이다.\"
\"왜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하는 겁니까?\"

영민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묻자, 무서운 표정을 하며 그 질문을 받아쳤다.

\"아까 말했어. 이건 아까 정한 룰이야. 나는 질문을 하고 넌 대답을 한다. 그러니까 넌 내 질문에만 대답할 필요가 있을 뿐이고, 질문할 권리는 없다. 우선 첫 번째로 물어보지. 돗까비가 어째서 인왕산 지하에 굴을 뚫고 살고 있는지 아나?\"
\"모릅니다.\"
\"두 번째. 윤 판서를 알고 있지?\"
\"네.\"

표헌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세 번째 질문을 던졌다.

\"돗까비들이 유독 조선시대의 복식과 문화에 집착하고 있는지 아나?\"
\"모릅니다.\"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대답하자, 표헌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특별하게 마지막의 대답에 대한 내 질문의 이유를 말해준다. 좋던 싫던 이 나라가 서양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마침내 점령 당해버렸을 때 철저하게 지탄을 받은 것은 문화였다. 돗까비들은 왜 자신들의 나라가 그동안 미개하다고 생각했던 나라에게 점령당해야 했는지,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 아무것도 몰랐어. 그저 지금처럼 옛것을 고수하고 인륜지대사의 보호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으니까. 돗까비들은 이미 조선시대에 멈춰져 버린 불쌍한 존재들이야. 세상이 이렇게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그들만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지. 왜 변하지 않는 걸까? 단 한 번도 궁금해 해 본적이 없냐?\"
\"생명의 은인에게 궤변을 듣고 싶지 않군요. 그만 돌아가 주시죠.\"

돗까비들이 어찌 살아왔건 어떤 배경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건 자신에겐 하등 관계없는 일이었다. 단지 부모님의 찾기 위해 스스로 행동했을 뿐이다. 부모님이 무사히 돌아오게 되면 그 뒤의 일은 그때 생각할 일이고. 지금은 단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 싫어하니 잘 알겠다. 그만 가도록 하지. 하지만 그 전에 하고 싶은 말 한가지다 있다. 귀 후비고 잘 새겨들어라.\"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라 콧김을 내 뿜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영민의 발을 붙들자, 이제는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짜증이 치밀어 올랐는지 대뜸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직 볼 일이 남으셨습니까?\"
\"사람의 몸으로 인불귀력人不鬼力을 쓰고 있는데 멀쩡한 까닭을 모르겠나? 진짜 모르겠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만. 네가 왜 그러한 괴이한 것들에게 계속 쫓김을 당하고 있었는지 알고나 있다면 다행이겠지. 넌 이미 돗까비들의 세계에 들어왔어. 이 세계엔 경계 따윈 존재하지도, 있어야 할 필요조차도 없어! 이젠 평생을 저런 미물과 죽을 때 까지 싸워야 하는 것이 네 운명이야! 대체, 왜? 지금까지 평범하게 인간으로 살아왔잖아!\"

더 이상은 들을 가치가 없다. 그렇게 단정하며 방으로 발길을 돌리려던 영민의 등 뒤로, 그의 속사포와 같은 말이 터져 나온다.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사람의 몸으로 돗까비들의 힘을 쓰지만 돗까비는 아니다. 설령 그 것이 감투의 힘을 빌리고 있다고 해도, 이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의문이 피어난다.
어째서 그 감투를 발견하게 된 것이며, 그 발견한 사실을 광영 어르신이 보고 있었던 것인가? 일순 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그동안 당연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밤이 깊었으니 그만 돌아가세요.\"
\"너도 들었으니 알겠지. 공자가 왜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았을까? 그건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것들이었는데? 혼자 잘 생각해 봐라. 분명 답은 금방 나오지는 않을 거지만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던 것인지 더 말하지 않고 순순히 돌아갔다. 하지만 남은 영민은 그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말 때문에 도무지 집중 할 수가 없었다.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아 침대에 털썩 누운 채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말마따나 그들은 이 현실에 스스로를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있었다. 그 존재들의 유일한 접점은 청운누각과 낡은 골동품점 뿐으로, 그것은 호선생과 광영어르신 두 분이 나누어 관리하고 있을 뿐으로. 돗까비들의 집성촌인 인왕동은 그 흔한 문명의 이기를 단 하나도 쓰려 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그 시대에 살았기 때문이었기에? 아니면 자신조차 모르고 있는 또 다른 문제 때문에? 결국 영민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이번 주 주말부터 모의고사가 있건만, 그 고민은 접어 둔 채로 그대로 잠을 청했다. 전기 불을 켜 놓아 눈이 조금 부셨지만, 어두운 것 보다는 낫고, 또 불을 꺼 놓으면 그 어둠이 몰려들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더 할 말은 없습니다. 그저 보아주시고 선작해주신 것도 모자라 추천까지 부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이러한 장르는 저 또한 자주 시도해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표현이 서투르다고 해도. 기승전결의 기 부분이니 많은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하루 하루 배운다는 기분으로 글을 쓰고 수정을 하여 올리는 것이니,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가차없이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편은 내일 새벽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시길 빌겠습니다. (개인적인 일이 있었기에 두편을 올리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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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향 05/27/11:45
이제 슬슬 그 이유가 나오는 군요.
0 친한척 05/28/12:22
왠지 로맨스그레이...(발그레).
0 페르시온 05/28/02:36
화이팅입니다아~
1 하히 05/28/10:30
기대 됩니다.
0 yul 06/0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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