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작 완결작

검색결과

전파소설가 [식극의 소마]...
아이크 빛과 어둠의 검사
Leafy 암흑면
연화홍란 전생을 했지만...
redbead 환생 뒤 전(前...
pakpa 1
갓카 내 모니터 속...
카미즈 라그나로크 극
카미도 혼란스러운 거리
컨알 하얀 악마
카이테미요 천명을 힐러였...
AlwaysLaugh 설령, 당신이 ...
실버나라 나만 판타지 ...
wani [단편] Black ...
lyan15 검은 천사
rlight 지나가던 선비
로드드라콘 구마록(驅魔錄)
보닝 신같은 포지션...
정상인임ㅎ 대마왕이 가출...
엽토군 블로그
부르프 낮으로 걸어오...
air05 하루아침에 마...
라쿠카라챠 츤데레 여친과...
잉여포돌이 Re:
9A 금경을 삼킨 용
살많은빼빼로 자유의 날개
노아카미 Heal Up
살많은빼빼로 억압의 사슬
요리코 이세계 소환! ...
적색소음 나는 결국, 아...
봄날상어 우리들의 일상...
호떡 밖으로 나가면...
건달프 After Memories
사가 성불사
노가리 미래에서 미래...
똑같은매일 강철 심장의 고동
승다르크 카르페 디엠
멘카로건 Let Us [Rise ...
살많은빼빼로 Life with dead
랑이초록 지구스토리: ...
joseu 생판 몰랐던 ...
쥐며느리 머그속 그녀의...
살많은빼빼로 학생의 반란
초록만두 창밖으로 뛰어...
joseu 생미부
박사능 흉터 새기는 남자
주렁이 이세계 직업에...
멜렌나 노 네임-제미니-
Enivia 하나뿐인 여동생
pwins 용사의 은퇴시기
호치 사랑하는 나의...
레드트리 반인반요
갓카 단편 모음
오얏 고코미의 모험
책갈피 오늘의 꽃을 ...
코노미카 우리 동아리에...
불닭 해골과 소년의...
서호란 살아간다는 것은.
이동규 마왕 따위 되...
이동규 죽음이 사는 숲
비익연리 나와 그녀의 ...
JG광합성 호텔! 마왕성!
레크리셔 빨간 망토 소...
Nehru CRISHA[크리샤]
별티끌 누리끼리
뚜뚜루 나의 작은 기사님
카샬 이제는 너무나...
갓카 Nostalgia
밤바다 이런 나지만 ...
즈잔 황폐한 땅의 ...
도토리x 망할 유령들 ...
두희 나와 호랑이님
나하린 프로 조연과 ...
pakpa 제목미정
9959 운명의 돌: 멈...
yooil 내 소꿉친구는...
리츠카 페퍼민트 카페인
샌니마 저, 오늘부로 ...
김리토 레스즈
1ron 나와 요정의 ...
미호 라노벨에 사용...
칠흑의카밀레 소인 세계에서...
HAlt 환생한 대주술사
깽깽이 이세계의 블랙...
xiix 암살법사
BLAZE ???
엘그나 정상 위에 소...
연역 롤플레잉!
W더블 진홍의 히스토...
형칠이22 팀 파이브 엔젤스
즐거운나날 신님은 우리들...
pe0000 이세계 용사와...
카사토리00 메이드 여동생...
피토휘 여동생과 나 ...
tg가로수 평소대로 살았...
라케리안 모형정원
실크라운 쿨데레X츤데레...
이부프로펜 이 동아리 뭔...
칠흑의대마왕 도적은 왕에게...
세하 Dreamland Online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by 유지

"이제 슬슬 말해주지 않을래?" "뭘?!" "네 바람을." 그렇게 말하고 소녀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

[]
총 편수 17 / 총 관심작 수 5 / 총 추천수 0 / 총 용량 -0.899Kbytes
관련글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2장. 변화 - 1 -
0명 참여 별점
 
  4 유지[yuzi]  
조회 1021    추천 0   덧글 0    / 2008.04.12 15:44:18

제 2장. 변화

멍하니 내 방의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나는 오늘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일기라는 수단을 생각해냈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기록하여 보존해두는 것. 왜 그러한 생각이 갑자기 났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보리가 이 집에서 얼마나 머무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름이라는 것을 갖게 된 날은 그녀에게 있어 상당히 소중한 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쓸쓸해보였던 그녀의 옆모습과 나풀거리는 하얀 깃털이 불현듯 머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하고 얼마지 않아 나는 어느새 아무런 필기도 하지 않은 공책을 한 권 찾아 오늘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의무적인 숙제인 일기를 탈피하여 자의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것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기뻤다. 나라는 놈이 참으로 단순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계기도 되었다. 왠지 모르게 바보 같군.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일기라는 것을 매일같이 쓰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보리가 내 침대에서 같이 잠들었던 것과 내가 도망쳤던 것, 지붕에서의 일을 다 적고 슬슬 글을 마무리 지으려 했을 무렵,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렸다. 평소와 같이 열렸더라면 별다른 문제가 없었겠지만 너무나도 상세히 오늘 하루 내가 겪었던 일을 솔직담백하게 적어놓은 글을 쓰는 도중에 난입이라니! 이거 조금이라도 보면 나로서는 상당히 곤란한 내용(창피해서)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간이 떨어지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나는 주인에게 발각된 밤손님처럼 부들부들 떨며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가장하여 일기장을 덮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한숨을 내쉬고 있는 여사님이 있었다.
“시영아. 갈 곳 없는 애를 돌봐주는 것은 정말 상관없는데 말이지. 아니, 오히려 정말 딸이 하나 생긴 것 같아서 좋긴 하단다.”
“네.”
“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지 않겠니?”
그럼 그렇지. 아무리 장난기가 많으시긴 하지만, 다른 가정의 어머니에 비하여 심각할 정도로 개방적이신 분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어머니께서는 일단 정상적인 어른이었다. 얼마나 믿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적어도 내가 아는 사건과 사실들을 어머니에게 전해주었다. 그러자….
“흐윽….”
어머니는 심각하게 그 이야기에 빠져버리셨던 것인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방에서 “보리야~!”라고 외치며 달려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방문 건너로 ‘으윽!’이라거나 ‘그…그만!’이라는 소리라던가 우드득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여사님의 또 다른 필살기가 시전 중인 것 같았다. 보리가 불쌍하지만 필살기의 시전 대상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건너갔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기에 방에서 나가지 않도록 했다. 사과는 한 마디 해둔다. 미안하게 됐다.
일기를 마무리한 후, 책장에 꽂아 넣은 나는 조용히 침대로 들어가 이불을 덮었다. 오늘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 슬슬 눈을 감는 데 평상시와는 다른 향기가 느껴졌다. 이, 이건 보리의 향기. 그새 몸 냄새가 밴 건가. 결코 기분 나쁘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슨 향수라도 뿌리는 걸까.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 마음이 절로 편해지는….
어느새 나는 수면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녘이 되어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옆구리에 무언가 감촉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자그마한 동물과도 같이 잽싸게 파고들어 내가 혼자 쓰던 이불을 덮어 쓴다. 이 덕분에 깬 거군.
나는 조용히 이불을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여사님의 잠옷을 빌려 입은 보리의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대체 언제 입으시던 걸 빌려 입은 거냐. 딸기 무늬라니.
“뭐하냐? 잠은 어머니랑 같이 자는 거 아니었냐?”
“…잠들 수가 없어.”
그래, 애초에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갑자기 쳐들어 와서 잠을 잘도 자겠다. 나로서는 절대 불가능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만.
“그 의미가 아니라 다른 의미야.”
“그럼 뭔데. 그렇다고 내 방에 기어 들어온 건 내가 무슨 야한 짓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거냐.”
보리의 이마에 걸린 파란색의 보석이 반짝였다. 그리고 나는 보리가 싱긋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억….”
퍼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복부에 찾아오는 격통으로 인해 난 눈살을 찌푸렸다. 농담으로 한 번 말해본 건데 너무 수위가 지나쳤던 것 같다. 여사님의 19금성 장난들에 하도 농락당하다 보니 이런 식의 후유증이 있다고 새삼 느꼈다. 그나저나 정말 주먹 맵구나.
“헛소리 하지 말고…, 잠버릇이 너무 안 좋다고 말하는 거야.”
“…….”
잊고 있었다.
여사님의 잠버릇은 보통 잠버릇이 아니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와 함께 잠들었을 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그 공포. 나는 어찌 보면 보리를 죽음의 수렁으로 내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방을 줄 수도 없잖아?
“여기 있을 동안만은 참아.”
“우…, 그렇지만.”
“애초에 언제까지 있을 생각이냐?”
일기를 쓰면서 생각했던 것이다. 이 소녀는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를 생각인 것일까. 역시나 내 ‘바람’이라는 것을 이루어줄 때까지인 것일까. 그렇다면 쓸데없이 가까워 질 필요는 없다. 앞으로 보지 않게 될 녀석이니까.
“…일단은 네 바람을 나에게 말하고 내가 그걸 이루어줄 때까지.”
보리는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뭔가 생각이 많아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일단은, 이라는 건 뭐냐.
“그렇다는 건 당장 내가 바라는 것을 말하고 네가 이루어줄 수 있고 네가 이루어 준다면 여기서 바로 사라진다는 뜻이야?”
“그렇게도 되겠지.”
보리는 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덕분에 내 머릿속이 복잡해져 버렸다.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개를 한 마리 데려 와서 씻기고 같이 잤더니 다음날 사람이 되어있다.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바람을 한 가지 이루어주겠다고 한다. 바람을 이루어줄 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것도 확실하지가 않다. 아니, ‘이 집에서 나가!’라는 바람을 말한다면 당장 나가주겠지만 그것은 왠지 모르게 슬펐다. 왠지 모르게 가족이 없는 보리에게 상처 주는 것만 같은 그런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능하다면 그녀에게 의미가 있는 바람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그러한 것이 생각날 리가 없었기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있었지만 아직 말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나의 바람을 대체 어떻게 이루어 준다는 거야?”
“바람을 이루어주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네 바람인 거야?”
그녀의 귀가 쫑긋거리는 것과 함께 그 위에 달려 있던 깃털 장식이 흔들렸다.
“…그런 것을 바랄 것 같아? 말해주기 싫으면 됐어.”
나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렸다. 왠지 지금 보리에게 나의 얼굴을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에.
“날 믿지 못하는 거야?”
등 뒤로 보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초에 네 스스로 말한 것 말고는 그것을 증명할 만한 수단이나 기회가 없었는데 내가 알 것 같아? 네가 무슨 마법사라던가 세인트라던가 말은 해도 나에게 있어서 말은 말일 뿐이야. 눈으로 지금까지 확인한 게 없다고. 아니, 애초에 내가 데려왔던 개가 너라는 보장이 어디 있다는 거야?”
“그럼 볼래?”
“뭐?”
나는 보리가 누워있는 쪽으로 다시금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배시시 웃어 보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소녀가 있었다.
“내가 세인트라는 증거. 그리고 너희들이 말하는 마법사라는 증거.”
그 말을 하던 그녀의 모습이 잊혀 지지 않았다.
새벽.
장사를 모두 정리한 것인지 24시간 편의점 같은 곳에나 불이 들어와 있었다. 거리의 가로등만이 어두운 거리를 밝게 하는 모습. 그러한 어두운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에 나와 보리는 있었다. 주변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달빛을 가린 채 솟아 있었고 그러한 수많은 나무들 중 우리가 있는, 아니. 정확히 말해 보리가 있는 곳에는 가지만 남겨진 한 그루의 거대한 벚나무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평균 수명의 몇 배나 살아온 것만 같은 벚나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이러한 시간에 이러한 장소로 산책 나올 만한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심정에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뒷장을 끼고 어때?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소녀를 제외하고는. 19년간 이 동네에서 살았으니 내가 이곳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 나는 지금 이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산에 올라와 있었다. 자세한 기억은 없었지만 어렸을 때 곧잘 놀러 왔던 장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갑자기 변한 주위를 열심히 둘러보자 잎 하나 달려있지 않은 벚나무 옆에 서 있던 보리가 설명하듯 입을 열었다.
“공간이동(空間移動). 세인트가 되면 가장 먼저 습득하게 되는 기술이야.”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문과인 데다가 물리 같은 것은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고 불량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내가 만약 학교 공부에 충실한 놈이고 이과생이었다 하더라도 이런 것은 순순히 받아들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네가 알고 있는 ‘마법’이잖아? 그리고 나는 사람들의 바람을 이루어주는 세인트라고 했었지? 은근히 추억의 장소에 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사람들이 많거든. 이건 그러한 사람들의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한 세인트로서의 기본적인 기술이야. 보통은 어딘가에 가고 싶다는 ‘바람’을 말할 때나 이루어 주는 것인데 일단 믿지를 않으니 이건 서비스로 해둘게.”
보리는 나에게 윙크하며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구나. 하고 그때가 되어서야 진심으로 나는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른 공간에 있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녀가 나에게 바람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부터, 나는 그녀가 ‘마법’을 사용하는 존재라고 믿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흐음, 이쯤 되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말이지.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한 가지 더 보여주도록 할게.”
“이번엔 또 뭘 보여준다는 거야.”
“마찬가지로 서비스야.”
보리는 내 말에 대답하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양손을 깍지 끼곤 마치 기도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 모습이 묘하게 여겨져 가만히 지켜보자 보리는 곧 눈을 떴다. 그리고 몸을 돌리더니 벚나무를 향하여 양손을 뻗는다.
벚나무에 그 새하얀 손이 닿자 ‘기적’이 일어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헐벗은 벚나무는 스스스 하는 소리를 내며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꽃봉오리가 솟아났고, 꽃봉오리가 터지고 몇 초의 시간이 흐르자 순식간에 꽃잎이 만개한 상태가 되었다. 수령이 족히 몇 백 년은 되었을 법한 거대한 벚나무다. 그에 따라 꽃잎의 양도 엄청났다. 그 모습이 실로 대단해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 이거 죽은 나무 아니었냐?”
“죽기 직전. 이대로 얼마간 더 있었으면 죽었을 거야.”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이 나무의 바람을 이루어주었어.”
그렇게 말하고 보리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그것은 마치 어린 자식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려 하는, 자상해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과 같았다. 그와 함께 벚꽃 잎이 조금씩 떨어져 내리며 흩날리기 시작했다. 소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이야기가 되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수 백 년 동안 이곳에서 마을을 지켜보았던 이 나무는 그 생명이 끝나기 전에 바란 것이 있었어.”
나는 그러한 보리의 모습에 홀린 듯, 조용히 그녀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꽃잎을 피워보고 싶어. 그리고 그 꽃잎들과 함께 이 마을을… 마지막으로 이 마을을 바라보고 싶어. 라고 말이야.”
“그래서 이루어준 거야?”
보리는 어느새 눈을 뜨고 나에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응. 그것도 특별 서비스로 1년 동안 벚꽃을 피울 수 있게 말이지.”
“…그 1년 때문에 무언가 문제가 될 거라 하는 생각은 안 들었냐?”
겨울이 되도 벚꽃이 그대로 있으면 이걸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고 기자들도 앞 다투어 취재하러 올 것이다. 아니, 앞 다투어까지는 아니더라도 괴현상에 포함될 일임에는 분명하다. 뭐, 사실 애초에 벚나무가 저렇게 큰 것도 충분히 괴현상이다.
내 말에 보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라고 묻는 표정이지만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억지로 이해시켜줄 필요도 없겠지. 살짝 한숨을 쉰 내게 보리가 다가왔다. 그리고 무언가를 내밀었다.
“뭐야 이거. 반지?”
소녀가 나에게 내밀은 것은 은색의 반지였다. 나 같은 문외한이 대충 봐도 훌륭한 공예품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것에는 수많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사이즈는 그다지 크지 않다. 내 새끼손가락에 간신히 들어갈까 말까한 크기랄까.
“나에게 주는 거야?”
보리는 말하는 것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왜?”
“너는 바라지도 않는 바람을 말할 사람처럼 보이거든.”
“내가 왜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하지?”
“그거야…. 시영이 네가 항상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보리는 그렇게 말하곤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은색의 머리카락이 그에 따라 찰랑인다. 그런데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는 짐작되는 바가 없다. 만사에 부정적이고 뭐든 간에 귀찮아 하긴 해도 말이지. 아니, 설마 그걸까. 내가 이 소녀 앞에서 항상 귀찮아하는 표정을 짓고 있어서 자신이 귀찮아지면 바라지도 않는 바람을 말해서 자신을 쫓아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반지는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지, 말하고 있지 않는지를 알려주는 거짓말 탐지기 비스무리 한 것이라는 얘기가 되는군.
“후, 난 그렇게 신용 받지 못하는 녀석이었구나.”
“…스스로도 인정하는 거 아니었어?”
보리는 어느새 고개를 제대로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선이 어째 좀 거북하다.
“그럴 리가 있냐. 그럼 내킨 김에 내 바람이 무엇인지 말해 줄까?”
“응. 그 전에 일단 그 반지를 끼워 줘.”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려 했다. 하지만, 조금 부족했던 것인지 끝까지 들어가지 않는다. 보리에게 이거 안 들어가는데, 라고 말하려 했을 때 은색의 반지는 희미하게 빛나더니 내 손가락에 딱 맞는 크기로 끼워졌다.
“…뭐냐 이거. 지 맘대로 껴 지는데?”
“무엇이든 이루어줄 테니까 이제 네 바람을 말해 봐.”
보리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훗, 무엇이든인가. 내 바람이라…. 그래, 말해주지.
“나를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로 만들어 줘. 물 대신 만 원짜리 지폐로 가득 채운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화장실에서 휴지 대신 지폐를 사용해도 남아 돌을 만큼.”
-딱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머리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그 덕에 강제적으로 고개가 약간 숙여졌다. 나 지금 맞은 건가.
고개를 슬쩍 들어보니 내 머리를 가격한 자세 그대로 서 있는 보리가 있었다. 왠지 모르게 조금 화난 것 같은데.
“제대로 말 해.”
“…너 대체 뭘 근거로 그렇게 말 하는 거냐.”
“약속의 반지(Ring of promise)가 빛나지 않았어.”
약속의 반지라니…. 이 반지가 무슨 거짓말 탐지기 역할을 수행한다는 건가? 제대로 된 바람을 말하면 반지가 빛이 나는 시스템이기라도 한 거야? 그런 거야? 그럼 적어도 이 반지를 끼고 있는 동안에는 거짓된 바람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되고.
“이것 참 곤란한데.”
“그러니까 제대로 말해보란 말이야.”
보리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말했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귀여워 보였다. 나는 자신의 얼굴이 어느새 풀어진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후우, 어쩔 수 없구만.”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가 진정 바라는 것. 그것은 어느 한 사람과의 재회. 살았는지도,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아니, 죽었음에 틀림없다. 적어도 그 사람의 마지막은 내 기억에 남아 있으니까.
나는 눈을 떴다. 파란색의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나의 바람을 듣고자 하는 소녀가 내 앞에 있었다. 나는 넌지시 말했다.
“보리야.”
“응?”
“무엇이든 이루어주겠다고 했지?”
“응.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말이야. 그래도 걱정하지 마. 보통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세인트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구?”
소녀는 방긋 웃고 있었다.
정말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런 것이 된다면. 이 소녀는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일 터. 하지만, 조그마한 희망을 안고 나는 말했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과도 만나게 해줄 수 있어?”
그 한 마디가.
그 잔인한 한 마디가 보리라는 자그마한 소녀에게 있어 얼마나 커다란 상처를 주는 말이었는지 그 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태그

게시물 주소 http://seednovel.com/pb/23256
트랙백 주소 http://seednovel.com/pb/tb/23256
14227 bytes / 118.36.217.92
목록

자유연재 검색된 1 / 1 Page, Total 17 Documents
번호 제목 이름 시간 조회 추천
17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Epilogue [2] 4 유지 08.04.21 978 0
16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4장. 바람 - 3 - 4 유지 08.04.21 1086 0
15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4장. 바람 - 2 - 4 유지 08.04.21 1119 0
14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4장. 바람 - 1 - 4 유지 08.04.21 952 0
13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3장. 전환 - 4 - 4 유지 08.04.21 1149 0
12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3장. 전환 - 3 - 4 유지 08.04.21 1735 0
11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3장. 전환 - 2 - 4 유지 08.04.21 957 0
10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3장. 전환 - 1 - 4 유지 08.04.21 1373 0
9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2장. 변화 - 5 - 4 유지 08.04.19 1519 0
8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2장. 변화 - 4 - [1] 4 유지 08.04.15 1096 0
7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2장. 변화 - 3 - 4 유지 08.04.15 914 0
6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2장. 변화 - 2 - 4 유지 08.04.14 1104 0
5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2장. 변화 - 1 - 4 유지 08.04.12 1022 0
4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1장. 계기 - 3 - 4 유지 08.04.09 991 0
3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1장. 계기 - 2 - 4 유지 08.04.04 2327 0
2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제 1장. 계기 - 1 - [1] 4 유지 08.03.24 1219 0
1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Prologue [5] 4 유지 08.03.21 983 0
전체목록 < 1 >


Page loading time:0.03s, Powered by pimangBoard v3
회원가입 | 정보찾기

연재

자유연재

공모전연재

베스트 작품

작품 홍보


▶ Today 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