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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by 유지

"이제 슬슬 말해주지 않을래?" "뭘?!" "네 바람을." 그렇게 말하고 소녀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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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유지[yuzi]  
조회 1518    추천 0   덧글 0    / 2008.04.19 06:47:00
센트럴 시티에 존재하는 몇 개의 오락실 중, 내가 유일하게 곧잘 찾아오던 곳. 조이맥스.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즐거움 만땅. 미안하다. 자중하겠다. 그나저나 왠지 모르게 한글로 풀이하면 이미지가 깨지는 것이 상당히 많다. 예는… 더 들지 않도록 하겠다.
역시 오전이라 그런 것인지 사람의 모습은 그다지 없었다. 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토요일이다. 결론부터 말해 사람이 미어터지게 많았다. 영화를 예매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곳에 와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겠지. 어째 오는 날을 잘 못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도 뭐,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은 늦었지. 지금은 그저 현재를 즐길 뿐이다.
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한 건슈팅 게임 앞에 섰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줄곧 해왔던 게임이다. 대형 스크린 두 개를 병렬로 연결하여 전장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으며 이스 플레이와 어설터 라이플이라 불리는 소총을 무기로 4인 동시 플레이가 가능한 획기적인 게임입니다. 라는 것이 이 게임을 개발한 코나○사의 소개문이었다. 분명 지금 보리가 열심히 읽고 있는 게임에 대한 소개문은 그러한 것이겠지.
먼저 게임을 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게임 오버 당하고 곧바로 사라졌기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런 게임 구경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나란 녀석은 아니니까.
500원짜리 동전을 하나 넣고 혼자만 노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보리에게 미안해졌다. 그래서 예의상 한 번 물어보았다.
“한 번 같이 해 볼래?”
“이거? 어떻게 하는지 알려준다면야.”
해 볼 생각이군. 그다지 만만하진 않을 거라 생각되었지만 나는 보리에게 간단히 게임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어느새 비장의 팁도 알려주고 있었다. 타임 크라이시○같은 게임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방식이지만 레이저가 발사되어 스크린에 닿는 것으로 판정이 있는 대부분의 건슈팅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바로 총알을 장전할 때 총을 아래로 내리지 않고 레이저가 쏘아지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는 것이었다. 단점이라면 총이 무거울 경우에는 팔에 알이 배길지도 모른다는 것이지만 나 같은 경우야 그러한 알이 배기고 근육으로 바뀐 것이 오래 전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괜찮은 방법이다.
게임 방법과 나의 이러한 팁을 들은 보리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볼게.’라는 말을 하곤 총을 어깨에 걸쳤다. 의외로 자세가 나오는 것 같았기에 나도 모르게 절로 감탄이 나왔다. 분명 처음일 텐데 말이지.
“좋아…, 그럼 시작한다.”
“응.”
보리의 대답이 들림과 동시에 나는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시작한 지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미칠 것만 같았다.
애초에 나는 이 게임을 혼자 즐길 때가 많았다. 건슈팅 게임의 한계랄까. 적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면 미리 겨냥을 해놓으면 된다. 나는 다 외운 것으로도 모자라 일일이 헤드로, 거기에 단발로 쏴죽였기에 보너스 점수가 여타 사람들에 비해 무식하게 높은 사람이었다. 참고로 이 게임에서 기록되어있는 랭킹 1등은 바로 나였다. 그런데 그러한 내가 좌절하게 될 정도로 난이도가 올라가 있었으니.
“이거 언제 이렇게 난이도를 올린 거야!!!”
간신히 환상적인 헤드라인과 반사 신경으로 한 대도 맞지 않고 스테이지 1을 클리어 하는 데 성공했지만, 아슬아슬하게 피했던 부분이 상당히 많았기에 왠지 모르게 자존심에 금이 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의외로 쉽네. 총은 좀 묵직한데 할 만한 것 같아.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은데?”
이 게임기의 현 랭킹 1등인 나와 달리 여유로움을 전혀 잃지 않고 있는 이 녀석이다.
나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너…, 이거 이 난이도로 해본 적 있냐?”
“있을 것 같아?”
“…아니.”
“그럼 됐지?”
하고 해맑게 웃는다. 스코어는 13만 5천점 대 13만점. 반칙이다. 분명히 반칙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4년 간 수많은 건슈팅 게임을 하면서. 그거로도 모자라 수많은 FPS게임을 하면서 단련된 반사 신경과 헤드라인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냔 말이야!
“어머, 처음부터 타고난 것과 노력하여 단련된 것. 그것이 별 차이가 없다는 건 바로 천재와 노력가의 차이가 아닐까?”
까르르 웃으며 말하는 보리. 왠지 지금 이 순간만큼 네가 가증스럽게 보인 때가 없던 것 같다….
“좋아…. 아직 스테이지는 하나 끝났을 뿐이야. 7개의 스테이지가 더 남아있어. 승부다 보리!”
“얼마든지! 시영!”
클리어 영상을 강제로 스킵하고 우리는 다시 총대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우와…, 저 사람들 좀 봐.”
“미쳤다. 저거 난이도 최고로 올려놓은 건데 둘 다 한 대도 안 맞고 죽음의 6스테이지를 돌파했어!”
“야…, 저거 기본 라이플 맞아? 왜 머신건 속도로 나가냐?”
“이 바보야. 저 사람 손가락 움직이는 것을 좀 보라고.”
“…저거 사람이 낼 수 있는 속도냐?”
어느새 나와 보리가 플레이하고 있는 4인용 건슈팅 게임 주변으로 열다섯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알기 싫어도 알게 된다. 중얼거리는 것과 스테이지를 클리어 할 때, 영상이 잠시 거멓게 변하고 마치 거울처럼 뒤가 반사되어 보이니까.
스테이지 6을 아슬아슬하게 맞지 않고 클리어하자 어느새 나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옆을 돌아보자 보리도 조금 지친 기색이 보였다. 스코어는 123만점 대 130만점. 내가 지고 있었다! 하지만…, 승부는 지금부터다.
“후…후후후. 제법인데….”
“시, 시영이 너야말로….”
“하지만, 지금부터야말로 내 진가가 발휘될 때다. 그럼 간다!”
나는 울분을 담아 강제 스킵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경험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스테이지가!
“차! 내가 접수한다!”
“뭐…, 뭐야! 왜 저런 데 바주카가 들어있는 거야!”
“훗! 이걸로 역전이다.”
“비겁해!!!”
“비겁하긴! 이게 바로 경험이라는 거야!”
그렇다.
내가 노린 것은 여태까지 적을 쏴 죽이면 나오는 무기가 아니라 상자나 등장하는 기체 일부분을 부수면 나오는 히든 웨폰. 머신 건 따위 지금의 나나 보리처럼 방아쇠를 초당 4발에서 5발씩 쏴대면 없어도 되는 무기다. 하지만, 바주카는 급이 다르지! 정확한 타점에 정확히 10발을 맞춰야 하는 장갑차 같은 녀석들도 바주카 한방이면 빠이빠이. 인 것이다!
“와하하하하! 이걸로 내 승리는 확정인 것일까!”
현재 스코어 198만점 대 180만점. 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스테이지 7을 클리어 하자 보리는 분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외치듯이 말했다.
“아직! 아직이야!”
스테이지 8. 라스트 스테이지가 시작되었다. 여전히 10발씩 고스란히 맞춰줘야 하는 놈들은 나올 것이다. 아니, 지금까지보다도 더 많이 나오겠지. 하지만, 그만큼 숨겨져 있는 바주카도 많다는 말이 된다. 베테랑이 초짜 상대로 질 수야 없지!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보리를 돌아보았다. 보리는 눈을 감고 무언가 조그맣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적어도 한국말은 아니다. 이거 설마….
그녀는 웃고 있었다. 이마의 보석이 반짝거린다. 보리는 어느새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김시영. 이 승부의 승리는 내가 가져가겠어.”
“그거야 말로 진짜 비겁한 거잖아!!!”
“시끄러워! 네가 먼저 시작한 거야!”
“경험이랑 그런 거랑 같을 리가 있냐! 우왓! 로딩 끝났다!”
내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시 총대를 부여잡았다. 건슈팅 게임의 단점이라면 지쳤을 때 쉴 틈이 없다는 것. 아니 쉬어도 되긴 한데 타임 오버 되면 그대로 겜 셋인데? 결국 쉬지 말고 쏴대라는 것이다.
“훗, 아무리 그 방법을 써도 바주카가 있는 곳을 알아내진 못하는 모양이군!”
나는 여유롭게 히든 웨폰을 챙기며 보리에게 한 마디 건넸다. 도발하려고 한 말이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유로운 말 한 마디.
“난 그런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응?”
“뭐, 곧 있으면 알게 될 거야.”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총질을 계속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예의 장갑차가 나왔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장갑차 부대의 등장. 그리고 그것들이 나오기 시작한 순간 나는 한 대의 장갑차를 향해 바주카를 겨냥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아니, 당기려고 했다.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장갑차가 터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헐….”
이거 설마 그 10발을 내가 바주카를 쏘기도 전에 다 박아버린 거냐? 내 탄식이 나오고 쫑알거리면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하는 거겠지. 이어서 다른 한 대도. 다른 한 대도. 내가 겨냥하는 것마다 모조리 터져버렸다.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이것만큼은!”
아무래도 내 타점을 쫓아다니는 것 같아 겨냥하던 것에 페이크를 주어 다른 쪽에 대고 바주카를 냅다 발사했다. 그러자.
-다다다닥 펑!
“후, 이걸로 끝인가?”
보리는 한숨 돌렸다는 듯이 소매로 이마에 맺힌 땀을 쓱쓱 닦아내며 말했다.
한… 한 대도… 부수지 못했다. 무려 열 세 대의 장갑차 중에서, 바주카 9발을 갖고 한 대도 부수지 못했…다. 내 4년…. 내 경험…. 후후후…, 후후후후….
장갑차 라인이 끝나고 라스트 보스가 등장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멍해진 채 타점에 대고 열심히 쏘고 있을 뿐.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흔들리지 않는 제자리 머신 건을 당해낼 리가 없었다.
장갑차 맷집의 10배. 그 눈알을 100번 맞춰야 하는 보스. 지 멋대로 위 아래로 덩실덩실 춤추기도 하고, 갑자기 코앞까지 다가오기도 하고 갑자기 불줄기를 쏘아대기도 하는 등 움직임이 다채로운 녀석이다. 혼자 클리어 할 때를 기준으로. 이 놈 처리하는 데 약 2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내가 그 눈알에 총알을 열두 번쯤 박았다고 생각했을까….
보스가 쓰러졌다. 10초였다.
10초 걸렸다고. 이거 사기다. 사기가 아니라고 도저히 말할 수가 없다.
스코어는 어느새 200만점 대 250만점. 져버렸다. 옆을 바라보자 나에게 시선을 향한 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고 있는 보리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힘없이 말했다.
“내… 패배다.”
“응. 좋은 승부였어.”
나와 보리는 총대를 내려놓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우리가 벗어날 때까지 구경하던 열다섯 명. 아니, 어느새 스무 명은 되어있는 것 같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우리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을 뿐. 언젠가 뒤로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한 고등학생과 길쭉한 귀를 가진 초미소녀가 세워놓은 기록은 그 날 이후로는 깨지지 않고 있다나 뭐라나.
* * *
12시 30분. 영화 시작까지 10분 정도 남아있을 때. 우리는 잠시 대기석에 앉아 이온음료를 한 캔씩 뜯고 있었다.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열심히 닦아내며 보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 게임을 해본 게 정말 처음이 아니야?”
아무리 7스테이지 이후로 마법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마법을 사용하기 전부터 그녀의 반사 신경과 정확도는 그런 류의 것을 전혀 접해본 자의 그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말하고 있었다.
“응. 그런 게임을 해본 적은 없어. 하지만….”
“하지만?”
나는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보리에게 물었다. 그녀는 그러한 내 질문에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총기류를 조금 다뤄본 적은 있어. 세인트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엑?!”
실제 무기를 다뤄 봤단 말이야? 어떻게 그런….
“뭐…, 그럴 일이 조금 있었어. 중요한 것도 아니고 지금에 와서는 하지 않는 것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렇구나.”
총기를 다루어 봤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어느 정도 다룰 수 있는 실력이었다면 저런 게임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겠지.
“혹시 분했어?”
보리는 키득거리며 나에게 물었다.
“분하다기보다는 다시 봤다고나 할까. 보통 여자애들은 저런 게임 못 하는 애들이 대부분이거든.”
이건 솔직한 심정이었다. 애초에 게임 하나 갖고 열 올리는 것도 게임하고 있을 그 때 뿐이다.
“난 보통에 속하지 않을 테니까. 그나저나 시영이 너 역시 적어도 보통이 아니었는걸.”
“그럴지도 모르겠다. 슬슬 다 마셨으면 들어가자.”
“그래.”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 에스코트하는 기사처럼 보리를 향해 우아하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시죠. 공주님. 아직 보여드릴 것이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보리는 그러한 내 모습에 피식 하고 웃더니 내 손을 맞잡았다. 역시나 부드럽구나.
나는 살짝 얼굴이 달아오른 상태로 영화관 안으로 보리를 안내했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내용은 상당히 감동적이라 생각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눈물이 찔끔 흘러 나왔을 정도? 혼자 봤으면 꽤나 흘러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가 되어서 여자 앞에서 영화 보면서 펑펑 울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날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을 정도로 거대한 감동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예전의 나라면 눈물을 흘렸을지도 몰랐겠지만 이상할 정도로 눈물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옆을 바라보자 보리 역시 그러했기에 나는 살며시 그녀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와 보리는 영화관에서 나왔다. 그리고 나는 볼 수 있었다. 눈 주위가 빨갛게 부어오른 채 그 영화에 대해 계속 말하는 보리를.
“정말 감동적이었어.”
보리는 귀를 쫑긋거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나도 좀 그랬던 것 같고.”
나는 그녀의 말에 동의를 표하곤 센트럴 시티의 이곳저곳을 안내하며 즐겼다. 스타벅○라던가의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기도 하고 중심부에서 외치면 목소리가 크게 울리는 곳에도 가보고 분수대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하는 식으로.
그리고 저녁이 되었다.
나와 보리는 센트럴 시티 밖에 있었다. 이러저러한 예술품들 사이로 의자가 있었기에 그곳에 앉아 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보리가 무언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 의자에서 달려 나갔다. 나는 그러한 모습을 의아하게 여기며 조용히 그녀를 따랐다.
보리가 도달한 곳에는 한 수제 목걸이를 만들어 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나는 그 가게의 옆에 달린 팻말을 읽었다.
‘쌀 목걸이. 하나에 5천원.’
‘연인과의 추억을 목걸이에 담아 간직하세요.’
싸…쌀 목걸이? 대체 몇 년 전에 유행하던 거냐 이거.
나는 좀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보리를 바라보았지만 보리는 그러한 내 시선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듯 열심히 만들어져 있는 목걸이들을 구경 중이었다. 당신이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한 때 쌀 목걸이라 하여 쌀알 하나에 글자를 새긴 목걸이가 유행이었다. 정작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은 그다지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지. 그러한 것을 보리는 난생 처음 보는 듯 굉장한 호기심을 가지며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난생 처음 본다면 굉장히 호기심이 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도 처음에야 꽤나 호기심을 가졌으니 말이지. 결국 만들지는 않았지만.
쌀 목걸이를 열심히 구경하는 보리의 모습이 귀여워 보였는지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노점상의 주인아저씨는 기뻐하며 보리에게 이런 저런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마 몇 년 만이겠지. 그러한 생각을 하며 잠시 아저씨를 바라보자 이내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말했다.
“예쁜 여자 친구에게 쌀 목걸이 하나 선물하는 건 어때요? 싸게 해 줄 테니까.”
…여자 친구라니.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런 관계는 아닐 것이다. 어라? 그런데 손잡고 같이 영화보고 노는 것은 적어도 여자 친구랑 하는 게 아닐까 한다만. 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만 생각하도록 하자.
나는 보리에게 물었다.
“갖고 싶어?”
“으음. 우정도 맘에 들고 사랑도 맘에 들고 하늘도 좋고….”
보리는 듣고 있지 않았다.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쌀 목걸이는 말이야. 그러한 단어보다 기념이 될 만한 단어를 새긴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 거야. 새기고 싶은 단어라던가 문구, 없어?”
“새긴다?”
“그래.”
“엑? 새기고 싶은 글자를 새길 수 있어?”
이 녀석…. 그렇게 열심히 보더니 그걸 여태껏 눈치 못 챘던 거냐.
나의 이러한 심정을 아는 것인지 주인아저씨는 사람 좋아 보이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보리에게 말했다.
“그래, 아가씨. 이 쌀 목걸이는 말이야. 자신이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말을 새겨서 간직할 수 있는 마법의 목걸이야. 그렇게 새긴 쌀 목걸이를 간직하고 있으면 복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지. 연인의 이름을 새긴다면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어.”
사기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잖아.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나와 달리 보리는 마치 수업시간에 교사가 가르치는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는 학생처럼 주인아저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고개도 열심히 끄덕이고 말이지.
“하나는 ‘시영’이라고 새겨서 하나 만들어 주세요.”
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보리는 그제야 뒤돌아보더니.
“다른 하나는 ‘보리’라고 새겨서 만들어 주시구요.”
“‘시영’이라는 게 남자 친구 이름이로구나. 좋아, 잠시만 기다려라. 후딱 멋진 목걸이를 만들어주도록 할 테니까.”
그렇게 말을 하곤 아저씨는 간만에 솜씨 발휘라도 하겠다는 듯 양팔을 걷어 올리고 목걸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보리는 그러한 모습을 흥미진진하기라도 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저렇게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성호가 말했던 ‘이벤트’라는 말이 생각나서 나는 묵묵히 있도록 했다. 이윽고 목걸이가 완성되었고 보리는 ‘와~’하고 외치며 목걸이 두 개를 받아들었다.
“오랜만에 쌀 목걸이에 이 정도로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는데 공짜로 해주마.”
인심 좋아 보이는 주인아저씨는 실제로도 인심이 좋았다. 나는 괜히 죄송해져서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드리려 하는데.
“아냐, 이건 내가 사도록 할게. 오늘 놀아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야.”
보리가 주인아저씨에게 녹색의 지폐를 한 장 건네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보리가 건네는 돈을 한사코 거절하려 했지만 보리가 계속 끈질기게 아저씨의 주머니에 우겨넣자 결국 항복해버렸다. 왠지 모르게 정겨운 모습이었다. 요즘 한국에서도 저런 모습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쌀 목걸이 아저씨에게 인사를 한 후, 나와 보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두운 거리였지만 밝은 조명 덕에 그다지 어둡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보리는 나에게 ‘보리♡’라고 새겨져 있는 쌀 목걸이를 하나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은 ‘시영♡’이라고 새겨진 목걸이를 목에 걸더니 나에게 물었다. 하…하트라니.
“어때? 잘 어울려?”
“에….”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보리와 목걸이를 걸고 한 바퀴 돌곤 미소 지어 보이며 말하는 보리를 보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역시 아름답다. 그리고… 순수하다. 어느새 세상에 찌들어버린 나와는 달리.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자 보리는 얼굴을 들이대더니 다시 한 번 물었다. 귀가 쫑긋거리는 것과 함께 귀에 달린 깃털 장식이 살랑인다.
“잘 어울려?”
“응. 잘 어울려.”
“시영이도 목에 걸어 봐. 아니, 내가 해 줄게.”
“엑. 괜찮아. 스스로 할 수 있어.”
나는 손을 앞으로 휘저으면서 말했다. 창피하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안 돼 안 돼. 이리 와. 목걸이도 주고.”
“…으.”
보리는 강제로 나의 손에서 목걸이를 빼앗더니 나를 뒤돌게 했다. 그리고 내 목에 쌀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역시나 창피한데.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지나가는 행인들은 커플들이었다. 지나가면서 우리를 보고 미소 짓는 모습에 더욱 창피해졌다. ‘보리♡’라 새겨진 목걸이가 목에 걸린 나는 목에 걸리자마자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후우. 됐지?”
“응.”
보리는 그렇게 말하고 웃으며 조명이 비치는 거리를 구두를 신은 채 달려 나갔다. 저러다가 넘어질 텐데.
“아윽.”
“…….”
그렇다고 진짜 넘어지냐.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넘어진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괜찮아? 까지진 않았고?”
“으응. 근데 옷이 더러워졌어.”
보리는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새하얀 무릎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상처가 안 나서 다행이다.
“옷 같은 건 신경 쓰지 마. 몸이 더 중요한 거지.”
“으, 그래도 한 벌밖에 없는 옷인걸.”
“세탁하면 괜찮아. 슬슬 돌아가자.”
“응.”
보리는 내밀어진 내 손을 붙잡으며 힘차게 대답했다.
거주하는 동네에 도착했을 무렵,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주황색의 가로등만이 어두운 밤거리를 비추고 있었기에 왠지 모르게 적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실제로 조용하기도 했고.
열심히 걷다가 집 앞에 왔을 때 갑자기 보리가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보리는 상당히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 그리고 고마웠어.”
“아냐, 역시 나 같은 녀석이랑 놀아서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겠지만 어울려줘서 나야말로 고마웠어.”
“그렇게 생각하지 마. 정말 즐거웠는걸.”
보리는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선 채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또 다가왔다.
-쪽
뺨에 따스한 것이 닿았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보리가 ‘에헷. 뽀뽀해 버렸네.’하고 말하더니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외치고 있었다.
“언니~! 다녀왔어!”
그나저나 이 느낌은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이었던가. 나도 의외로 순정파에 속하는 놈이었구나. 나는 그러한 보리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그래, 보리답다는 것은 이러한 것일까. 생각을 정리하고 나도 집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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