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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by 유지

"이제 슬슬 말해주지 않을래?" "뭘?!" "네 바람을." 그렇게 말하고 소녀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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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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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유지[yuzi]  
조회 1021    추천 0   덧글 2    / 2008.04.21 13:38:30

Epilogue

오늘만큼은 보리를 따라오지 말고 집에서 잠시 대기해달라고 프리드리히에게 말해 두었기에, 나와 보리는 엘리제가 나타났던 그 날로부터 사흘이 지나 일요일이 되었을 무렵, 시작의 장소이자 결전의 장소였던 그 곳에 다시 와 있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줄곧 꿈을 꾸었던 내용과 결과적으로 그에 대하여 깨달은 것들을 보리에게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만개하고 있는, 거대한 벚나무가 있는 장소였다. 당시 프리드리히와 엘리제가 그 격한 전투를 벌였던 장소다. 돌아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수많은 나무와 풀이 잿더미가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와보니 언제 그러한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해져 있었다. 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자 보리가 갑자기 내 앞으로 와서 나를 마주보더니 승리의 V자를 표시했다.
“에? 네가 복구한 거야?”
“물론~ 나는 자연을 사랑하는 세인트니까~.”
아아, 그것 정말 다행이로군. 나로서도 사실 이 장소가 그렇게 황폐해져 있는 것은 바라지 않았으니까. 이곳은 나에게 있어 시작이자 끝이었던 장소. 그리고 또 다시 시작이자 끝이었던 장소, 그리고… 3번째 시작일 장소가 될 테니까 말이다.
보리는 안도한 나의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이곳에 다시 오자고 말했던 나의 의도가 궁금했던 것인지 질문을 했다.
“그런데 시영아 대체 여긴 왜 또 오자고 한 거야?”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곤 거대한 벚나무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그 나무에 손을 대곤 눈을 감았다. 여러 날의 일들이 떠오른다. 처음으로 이곳에 왔을 때 나와 만났던 소녀. 나를 데리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던 소녀.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상상하게 되었던 소녀.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올랐다. 이해할 수 없는 복장으로 등장했던 보리, 죽어가는 벚나무를 마지막으로 꽃피울 수 있게 만든 보리, 학교로 찾아왔던 보리, 같이 건슈팅 게임을 하면서 열을 올리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 울기도 하고, 쌀 목걸이를 나에게 선물해주었던 보리. 내 안의 그것들은 이미 나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어 있었다.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뒤돌아보았다. 그곳엔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보리의 모습이 있었다. 지금이라면 모든 것을 알고 말할 수 있다. 그녀는 이미 모두 알고서 나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 날로부터 도망쳐 왔던 나를…, 구원해주기 위하여.
“보리야. 할 말이 있다.”
“응, 말해.”
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너의 그 미소가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지 너는 알지 못하겠지. 나는 피식 웃으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줄곧 만나고 싶어 했던 한 사람이 있었어.”
보리는 천천히 내 이야기에 빠져 들어갔다. 나는 그러한 그녀에게 내가 인생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과 불행했던 순간. 그리고 ‘그 날’로부터 도망쳐 왔던 나의 삶을 전해주었다. 더 이상 만나지 못했던 소녀를 죽었다고 믿고 그것을 발판으로 살아온 나를.
이야기가 끝났을 무렵, 보리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죽은 사람이 만나고 싶다고… 내가 말 했었지?”
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깃털 장식이 어느새 불어온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다. 어느새 자라버린 소녀를 향해 나는 말했다.
“그 바람은 이미 이루어져 있었어.”
비록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보리는 어느새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눈가에 맺혀 있던 이슬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에게 아무리 해도 부족한 말을 나는 하고 있었다.
“보리야.”
“으… 응.”
“고마워.”
“…바보. 시영이는 정말 바보야.”
“물론이야. 나는 바보야.”
“에….”
내 말에 보리는 울고 있던 얼굴 그대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당황스러운 대답이었던 것일까. 그 당황해하는 모습을 나는 그녀에게 나의 진정한 바람을 말할 용기가 생겼다.
“나는 바보니까…, 곁에서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안 돼.”
“…….”
보리는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미소 지으며 말을 매듭지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줄곧 내 곁에 있어줘. 그것이 나의 바람. 뭐, 만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바람이었으니 갖고 있던 바람은 없던 것으로 쳐 줄 거지?”
“아….”
내가 말한 그 순간, 보리는 순간적으로 멍해져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오른손에 끼워진 약속의 반지가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보리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고 보리의 옆에 섰다. 그리고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보리에게 말했다.
“이건 이루어줄 수 있는 바람이야?”
그제야 보리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슬쩍 숙였다. 그리고 내 태도를 살피는 것이 왠지 모르게 굉장히 귀여워 보였다. 보리는 한참을 고민하는 것 같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하며 그 조그마한 입을 열었다.
“으응…. 나 정도로 괜찮다면.”
“너 정도라니. 사실 나에겐 너무 과할 정도야.”
나는 보리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앙증맞고 자그마한 입술에 천천히 내 입술을 가져다 댔다. 따듯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가 났다. 어느새 내 등에는 따듯한 두 개의 팔이 걸려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바랐던 바람들이 모두 이루어진 그 날은…. 나에게 있어 시작과 끝이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나에게 있어 이곳은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바람이 이루어지는 장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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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라가야 05/07/10:52
수고하셨습니다. 군제대 후는 더욱 멋진 소설을 써주세요~.
0 05/16/11:04
다 읽었습니다. 꽤 훈훈한 결말이네요. 군 제대 후에 좋은 활동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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