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작 완결작

검색결과

연화홍란 전생을 했지만...
아이크 빛과 어둠의 검사
카미도 혼란스러운 거리
redbead 환생 뒤 전(前...
카미즈블러드 라그나로크 극
컨알 하얀 악마
카이테미요 천명을 힐러였...
Leafy 암흑면
AlwaysLaugh 설령, 당신이 ...
실버나라 나만 판타지 ...
wani [단편] Black ...
lyan15 검은 천사
rlight 지나가던 선비
갓카 내 모니터 속...
로드드라콘 구마록(驅魔錄)
보닝 신같은 포지션...
정상인임ㅎ 대마왕이 가출...
NAMIA 신이 죽은 세...
엽토군 블로그
부르프 낮으로 걸어오...
air05 하루아침에 마...
라쿠카라챠 츤데레 여친과...
잉여포돌이 Re:
9A 금경을 삼킨 용
살많은빼빼로 자유의 날개
노아카미 Heal Up
살많은빼빼로 억압의 사슬
요리코 이세계 소환! ...
적색소음 나는 결국, 아...
봄날상어 우리들의 일상...
호떡 밖으로 나가면...
건달프 After Memories
사가 성불사
노가리 미래에서 미래...
똑같은매일 강철 심장의 고동
승다르크 카르페 디엠
멘카로건 Let Us [Rise ...
살많은빼빼로 Life with dead
랑이초록 지구스토리: ...
joseu 생판 몰랐던 ...
쥐며느리 머그속 그녀의...
살많은빼빼로 학생의 반란
초록만두 창밖으로 뛰어...
joseu 생미부
박사능 흉터 새기는 남자
주렁이 이세계 직업에...
멜렌나 노 네임-제미니-
Enivia 하나뿐인 여동생
pwins 용사의 은퇴시기
호치 사랑하는 나의...
레드트리 반인반요
갓카 단편 모음
오얏 고코미의 모험
책갈피 오늘의 꽃을 ...
코노미카 우리 동아리에...
불닭 해골과 소년의...
서호란 살아간다는 것은.
이동규 마왕 따위 되...
이동규 죽음이 사는 숲
비익연리 나와 그녀의 ...
JG광합성 호텔! 마왕성!
레크리셔 빨간 망토 소...
Nehru CRISHA[크리샤]
별티끌 누리끼리
뚜뚜루 나의 작은 기사님
카샬 이제는 너무나...
갓카 Nostalgia
밤바다 이런 나지만 ...
즈잔 황폐한 땅의 ...
도토리x 망할 유령들 ...
두희 나와 호랑이님
나하린 프로 조연과 ...
pakpa 제목미정
9959 운명의 돌: 멈...
yooil 내 소꿉친구는...
리츠카 페퍼민트 카페인
샌니마 저, 오늘부로 ...
김리토 레스즈
1ron 나와 요정의 ...
미호 라노벨에 사용...
칠흑의카밀레 소인 세계에서...
HAlt 환생한 대주술사
깽깽이 이세계의 블랙...
xiix 암살법사
BLAZE ???
엘그나 정상 위에 소...
연역 롤플레잉!
W더블 진홍의 히스토...
형칠이22 팀 파이브 엔젤스
즐거운나날 신님은 우리들...
pe0000 이세계 용사와...
카사토리00 메이드 여동생...
피토휘 여동생과 나 ...
tg가로수 평소대로 살았...
라케리안 모형정원
실크라운 쿨데레X츤데레...
이부프로펜 이 동아리 뭔...
칠흑의대마왕 도적은 왕에게...
세하 Dreamland Online
강화중 주인공의 친구...
만물 유전자 by 만파식적

“살면서 네 인생이 사실은 철저히 조종당하고 있다는 생각해본 적 없니? 누군가가 너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 받아본 적이 없어?” 아버지가 세계의 비밀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국가든 민족이든, 동맹이든 전쟁이든 신문 지상의 내용은 모두 허위고 어쩌면 진짜 지배자들은 따로 있어서 정치가들을 카드처럼 갈아 끼우며 자신들의 지배를 공교히 하고 있다면 어떨까. 사실은 단 한번도 인간이 이 지구의 지배자였던 적은 없다

[]
총 편수 27 / 총 관심작 수 5 / 총 추천수 0 / 총 용량 0Kbytes
0 만파식적  lv 0 0% / 0 글 30 | 댓글 12  
관련글
  제 6장 별로 대단할 것 없는 인간 학생(2)
0명 참여 별점
 
  0 만파식적[jiny616]
조회 1582    추천 0   덧글 0    / 2008.05.04 19:05:01

◆ ◆ ◆

해지킴 행사가 끝나고 다음날은 놀토였기 때문에 등교를 하지 않아도 좋았지만 역시 날밤을 세워 뛰어다닌 피로는 며칠 동안이나 사라지지 않았다.

월요일날이 되어 등교를 해보니 엉망진창이 되었던 학교가 마치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와져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신기했지만 아이들은 인환과는 달리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누구는 청군이 되었고 누구는 떨거지로 남았다더라 하는 수다 정도만 떨 뿐이었다. 그나마도 며칠이 지나자 주제는 곧 있을 중간고사로 바뀌어져 버렸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학생들은 춘추복으로 갈아입었다.

학교 곳곳에서는 수련에 힘쓰는 3학년들이 선생님들께 때와 시를 가리지 않고 전수를 받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특히 산은 24시간 개방 수련장이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아트만이 날아오지 않을까 하며 경계하며 다녀야 했다.

학교 안도 위험했다.

처음에는 벽이 폭발하듯 무너지는 소리나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무척 놀라곤 했던 여학생들도 이제는 학교가 흔들리지 않는 한 무덤덤해졌다.

인환은 대체 왜 신입생들을 창문도 없는 반지하 통합강의실에 몰아놨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이놈의 학교는 이곳저곳 할 것 없이 지뢰밭이었던 것이다.

쉬는 시간이 되어 화장실에 가려던 신입생들 중에는 어디선가 날아온 아트만에 부상을 당해 전치 몇 주의 부상을 입은 치들도 꽤 되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동급생이 잠깐 복도에 나갔다가 피를 철철 흘리며 안으로 운반되어져 오는 모습은 신입생들의 공포심을 무척 자극해서 4월이 되고 부터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헬멧과 방탄조끼를 장착하고 강의실 밖을 나가게 되었다.

헬멧과 방탄조끼는 매점에서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었다.

죽은 듯 엎드려 지내고 싶은 인환에게 자꾸만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아무리 부서지고 깨져도 하루만 지나면 학교건물이 복구된다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수위아저씨가 엄청 부지런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꾸만 머리에 맴도는 이상한 점들도 있었는데 그 중의 최고는 역시 선생들의 외국어구사력이었다.

허주고 선생님들은 자기가 가르키는 과목이 무엇이든지간에 최소 5개 국어 이상을 구사하는 것이다. 국제고다보니 신입생들 중에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이곳 저곳에서 몰려온 외국 학생들이 있었다. 외국학생은 가까운 중국, 일본에서부터 말레이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까지 다양했다. 처음에는 내국인 학생들을 위해 한국어로 설명을 하다가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요점을 정리해주는 시간을 가졌는데 유창한 본토발음에 인환은 기가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말도 안돼. 대체 어째서 말레이어까지 구사하는 건데? 그 나라 말이 집앞 학원에서 10만원내고 배울 수 있는 말이야? 왜 모든 과목 선생이 CF로고송 부르듯 유창하게 외국어를 말하는 거야? 요즘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더니 그래서 이래? 5개 국어정도는 능수능란하게 구사해야 선생질 할 수 있는 거냐구?’

하지만 고민해봤자 월급도 안 나오는 일들이라면 그저 물흐르듯 내버려두는 게 상책인 거다.

청군이 된 이상 일신의 안위는 보장 받았겠다 노트필기만 잘하면 아버지께서 용돈도 착착 잘 주셨다 무슨 고민이 있겠는가.

과학고에서도 유명했던 깔끔 쌈빡한 필기였던지라 돗님들 사이에 인환의 노트필기는 금새 소문이 나버렸다.

“야, 나 니 노트 복사하면 안될까?”

“얼마 줄껀데?”

“얼마면 되겠니?”

“못해도 열 장.”

“어? 싸네. 알써. 노트 넘겨.”

“싸다고? 나 천원짜리 이야기 하는 건 줄 알아?”

“나도 천원짜리 이야기한 거 아닌데? 너 지금 농담하니?”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한 인환은 가격을 좀 더 올려버려서 만원짜리 신권으로 삼십만 원에 노트를 넘겼다. 찬양하라. 돈이면 다되는 세상.

이 학교 생각보다 괜찮은 학교였다.

알고 보니, 허주고 중간고사에는 객관식이라는 게 아예 없다고 했다.

입학시험 때도 그랬거니와 기능성 아트만 문구류를 가지고 있으면 객관식 답 정도는 손쉽게 답을 해독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인환의 통장에는 차곡차곡 돈이 쌓이게 되었고 고교 졸업전에 아파트를 사게 되지 않을까 하는 단꿈에 부풀게 되었다.

요즘 재테크 상품으로 괜찮은게 뭐 있더라?

수업도 그만하면 재미있었다.

인환 같은 경우에는 이미 중학교 때에 고교 선행학습이 거의 끝났기에 과학고를 가서도 별로 배울 게 없었는데 허주고에서는 국사도 그냥 국사가 아니었고 세계사도 그냥 세계사가 아닌, 돗님들에 의한 이면사(裏面史)를 주로 배웠기 때문에 그쪽 자료에는 백지에 가까웠던 인환에게 충격을 주었다.

강당 옆 첨성대 모양의 도서관에 더 재미난 자료가 상당수 구비되어 있다고 해서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망할 놈의 두통 때문에 그것까지는 무리였다. 조금 깊게 생각하려고 시동만 걸면, 마치 핸드폰이 두뇌 속에 내장되어 있는 것처럼 부르르르 진동이 오니 으이구.

그러나 물론 재미없는 수업도 있었다.

아니 그 수업은 재미를 떠나서 인환 같은 타입의 인간에게는 거의 쥐약과도 같은 수업이었다.

일주일에 단 한번 있는 주제에 한번 씩 치러질 때마다 인환으로 하여금 이 놈의 학교 관둬버릴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는 그 놈의 수업 명칭은 ‘예능 수련 수업’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외울 것이 없는 부담 없는 과목이라고 좋아하는 모양이었지만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신분으로서 그런 걸 기대하다니 사치 아닌가.

게을러 썩어빠진 붕어의 부레 힘줄 같은 놈들.

차라리 책 한 권 나눠주고 동틀 때까지 외워와 라고 말하는 게 더 낫을 거다, 라고 인환은 생각하고 있었다.

예능 수련 수업은 음악, 미술 교과를 통합해서 부르는 수업이었는데 이론 점수가 없이 실기로만 점수를 평가하고 있었다. 70점 이상을 받으려면 기말고사 전에 입문을 해야 하고 나머지 30점은 태도점수니 미심쩍기 그지없다.

예능 수련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음악과 미술이 격주로 수행되곤 했는데 150명의 신입생들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새벽과 오후로 나뉘어 15명씩 개인레슨을 받게 되어 있었다.

인환은 이 정체모호한 수련 수업이 들어 있는 화요일이 제일 싫었다. 늦게 끝나는데다 음악 정지우 선생이 하는 헛소리가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정지우 선생은 춘분날 수월루에서 거문고를 뜯은 바 있었던 인간문화재 여선생이었다.(진짜 인간은 아니었고 인간 행세를 하는 돗놈이었다) 우면산 아랫자락에 있는 국악원에서 원장을 맡고 있기도 했다.

「나와 우주가 하나라는 것을 이해하세요. 나는 그 일부인 동시에 모든 것입니다. 순간을 사는 동시에 영원을 삽니다.」

머리에 비녀를 꽂고는 개량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항상 똑같았다. 우주가 어떻고, 영원이 어떻고, 말장난은 누가 못하는가.

안그래도 입시와 취직의 전쟁터를 살아가는 어린 투사들에게 그런 말로 현실도피 시키는 건, 학부모에게 뜯은 촌지로 싸X월드 미니홈피를 꾸미는 것과 똑같은 반 양심적인 행위 아닌가. 생각 같아서는 학교 운영위원회에 이야기해서 당장 잘라버리라고 하고 싶은데 의외로 정지우를 따르는 축이 많아 불가능 할 듯싶었다.

그리고 어느덧 만우절이 살포시 지난 4월의 화요일.

신입생들 중에도 슬슬 입문자들이 늘어나서 선배들에게 불려가는 아이들이 많아진, 늦은 오후의 어느날이었다.

인환은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음악 수련실 앞 장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핸드폰 시계는 벌써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레슨이 끝났는지 1학년 음악 수련실 문이 활짝 열렸다.

“흑흑흑. 저는요. 선생님. 어렸을 때 죽이고 말았던 병아리의 환영을 보았어요. 그 병아리가 제게 말을 걸었어요. 흑. 괜찮다고. 괜찮다고. 난 좋은 곳에 있으니까, 이제 널 용서할 수 있다고.”

“이제 알겠나요. 한지은 학생. 세상 만물에 하찮은 목숨은 없는 거예요. 모두가 그대에게 말을 걸고 있는 거예요. 이제 학생은 거의 입문이 되어가는 군요. 입문이 되고나면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정지우 선생은 먼저 레슨이 끝나 막 나온 여학생을 가슴으로 안아주었다. 버섯머리의 여학생은 수업시간에 곧잘 비명을 지르고 울곤 하던 여학생이었다.

지은 학생이 훌쩍이며 수련실을 나가자 자색빛 개량한복을 입은 음악 선생은 인환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인환은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만은 기필코! 이번만큼은 절대 당신 페이스에 말려들어가지 않겠어!

음악 수련실이라는 곳에는 각종 악기가 오케스트라처럼 잔뜩 벌여져 있는 곳이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는 색소폰 등은 물론이려니와 어느 나라에서 구했는지 알 수 없는 소뿔을 나선형으로 갈아 만든 나팔도 있고 100개도 넘는 현으로 이루어진 하프도 걸려 있고 막대기처럼 긴 디제리두도 넓은 수련실 한 벽을 채우고 있었다. 주변을 방음장치가 되어있고 창문 하나 없는데도 공기가 쾌적했다. 아마도 방향으로 쓰인 침향(枕向) 때문인 듯 싶었다.

악기를 보관하기 위해 세심하게 습기까지 조절되어 있어서 환경은 좋았지만 정지우 선생의 어법만 생각하면 이 모든 것들을 쓰레기처럼 느껴진다.

“다루고 싶은 악기는 뭐지요? 오늘도 드럼을 칠 건가요?”

수업 내용자체는 별 것이 아니었다.

다양한 악기 중에서 하나를 골라 연주를 하면 되는 것이다.

수련이라고 하기엔 뭐하고 악기 체험이랄까?

「저는 지구상의 존재하는 모든 악기를 다룰 수 있습니다.」

라고 첫 번째 시간에 자신을 소개했었던 지우는 정말로 온갖 악기들, 그러니까 마림바와 트럼펫 색소폰, 리코더와 오카리나를 비롯해 학생들이 요구한 모든 악기를 다룰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지난 과학시간 KFC 샌더스 대령 선생에게 배웠던 대로 아트만의 ‘호환성’과 관련된 내용이겠거니 평범한 인간인 인환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아니요. 오늘은 현악기로.”

“이를테면…?”

“거문고로 하겠습니다.”

인환의 결의의 찬 대답이었다.

정지우 선생이 이쪽을 멀끄러미 바라본다.

정선생은 거문고 인간문화재. 모든 악기를 다룰 수 있지만 전공은 거문고란 이야기였다.

그런데 거문고를 다루겠다고?

경계하는 듯도 하고 재미있다는 듯도 한, 아니 더 정확히는 어디 한 번 두고 보겠다는 그런 미소가 정선생의 입가에서 스며나오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요? 왜 거문고를 택했는지?”

지우가 한쪽 벽에 세워진 거문고를 들고오면서 물었다.

“선생님께서 업으로 삼으시는 악기니까, 아무래도 제일 깊이 이해하고 계시지 않을까 해서…. 그 깊이 있는 이해를 조금이나마 나눠 가지고 싶었습니다.”

뻥치고 있네.

사실은 선생님이 인환이 아닌 거문고 연주에 완전 몰입해서 이런저런 헛소리를 하지 않게 되길 바랬던 것뿐이다.

우주라든지, 생명이라든지, 숭고함 따위의 잡설.

그런 말들 좀 안 듣고 이번 시간 넘어가기 위해 골머리를 쓴 결과였다.

“곡목은요?”

“정대석 님의 무영탑으로 부탁드립니다.”

인터넷으로 심혈을 기울여 찾은 곡이었다.

처음에는 느린 듯 시작하지만 3악장 쯤 되면 미친듯 빨라져서 기교를 맞추기도 힘들다.

‘당신이 나에게 뭐라고 떠들 여력이 없는 곡이란 말이지.’

보이지 않게 웃으며 인환은 테이블에 올려진 열 개의 반지를 꼈다.

조금 큰 듯하게 느껴졌던 아트만 반지가 손가락에 들어가자마자 정확하게 수축한다. 직경은 수축했지만 반지의 두께는 쑤욱 늘어나서 손가락을 완전히 감싸버렸다. 손바닥이 없는 장갑을 낀 듯한 상태랄까.

정지우는 인환이 방석을 깔고 바닥에 앉아 거문고 타는 자세를 잘 잡을 수 있도록 머리와 어깨의 위치를 바로잡아주었다.

그리고 인환의 뒤에 역시 똑같은 자세로 앉았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허공 속에 손을 뻗은 채로 지우가 말했다.

인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코 말려들지 않으리.’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지며.

그리고 정지우가 허공에서 손가락을 움직이자 연주가 시작되었다.

마치 행동을 복사라도 하는 것처럼 지우의 손가락 움직임을 그대로 인환이 따라하고 있었다.

한 번도 거문고를 배워본 적이 없었지만 아트만 반지를 끼고 있는 인환의 손가락은 거문고 명인처럼 능숙하게 현을 뜯어 나간다.

둥둥둥.

중모리의 느린 가락이 연주된다.

‘어? 어? 어?’

뭐야 이건.

인환은 곡이 전개될수록 당황하기 시작했다.

음악 선생의 파워가, 다른 녀석들을 붙잡고 연주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마치 무협지에서 공력주입을 하는 것처럼 인환의 등뒤에 바싹 달라붙은 한복입은 여선생은 평소 때보다 몇 배는 더 과하게 에테르를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턴오프 상태라 에테르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그런 거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제는 느낄 수 있었다. 손가락이야 애초부터 에테르로 정지우 선생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 말고도 아래서부터 무언가가 마치 따스한 목욕물처럼 뜨끈뜨끈하게 발목과 엉덩이 배꼽까지 차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인환은 그것이 본능적으로 지우의 에테르라는 것을 알았다.

따스한 기운이 허리께에서 찰랑이더니 이제는 거문고를 완전히 덮고 인환의 손가락, 가슴, 목까지 차올라왔다. 그리고 이내 인환 전체를 감싸버린다.

“서…선생….”

마치 물에 잠긴 것처럼 호흡이 가빠진 인환은 고개를 돌려 정선생을 부르려 했다. 하지만 몸이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옆의 철케비넷에 비친 정선생의 얼굴을 인환은 보게 되었다.

무서울 정도로 집중해서 마치 살기처럼 보이는 눈빛으로 정 선생은 인환을 노려보고 있었다. 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바로 저런 눈빛일꺼다 싶을 정도로 예각적으로 벼려진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점차 몸이 마비가 되는 것처럼 감각이 멀어져갔다.

‘우욱.’

최면에 걸린 것처럼 눈이 저절로 감겼다.

거문고를 뜯고 있으면서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태가 단속적으로 반복되었다.

어머니의 양수처럼 평온한 기분.

음표와 박자들이 저 멀리에 떠간다. 손을 뻗으면 모두 잡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땅과 하늘이 보였다. 서라벌. 아내와 이별해 먼 길 떠나는 석공 하나가 거문고 현 위를 지나간다. 그는 돌의 아트만을 느낄 수 있는 이상한 사내다. 돌에게 돌이 원하는 윤곽선을 찾아줄 수 있는 괴상한 사내다.

둥둥둥.

마치 외줄타기를 하듯 음악이 그의 발밑에 있다.

긴 고독 속에서, 사내는 돌의 힘줄과 뼈대를 느끼고 정과 돌망치를 가지고 쪼아, 그 어느 탑보다 곱고 고요한 석가탑을 만든다.

어느새 인환의 손에 쥐어진 것은 거문고가 아니라 정과 돌망치였다. 사내가 탑신을 어루만질 때 인환도 번뜩 돌의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사내는 몰랐다.

탑이 완성된 바로 그 순간에 그의 아내가 깊은 연못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는 사실을.

꿈처럼 모든 장면들을 엉크러져 있다.

물속으로 깊게깊게 가라앉는 사내의 아내.

‘안돼…! 죽지마!’

세상이 핑글 돌았다.

인환의 뇌리에 무혁이 떠오른다.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치던 무혁.

‘그러지마!’

정신을 차려보니, 인환은 호수가 거대한 돌멩이 앞에 홀로 서 있다. 여전히 손에는 돌망치와 정을 들고.

아무도 없는 이 사막과 같은 세상에 모진 바람이 분다. 뜨는 달과 뜨는 태양도 이제 내게 무슨 상관이랴. 피고 지는 꽃과 풀들이 무슨 의미랴.

드르륵. 드르륵. 쩡쩡.

바람 소리와 돌 다듬는 소리. 이제 사내는 돌의 아트만뿐만 아니라 가슴 속에 텅 비어버린 것의 아트만을 느낄 수 있다.

식음을 전폐하고 돌에 매달려, 깊은 상실을 새기려 몸부림쳤다. 새기면 새길수록 손끝이 꿈틀꿈틀 거린다. 현기증이 돈다. 몸에서 무엇인가가 쏟아져 나오려는 것처럼 부글부글 거리고 있다.

‘아트만…! 내 아트만이 솟구쳐 나온다…!’

라고 깨달았을 때 인환은 눈을 번쩍 떴다.

싫다!

괴상한 놈이 되고 싶지는 않아.

「너 빙의되어 있잖아.」

위청의 말이 귓가에 울려퍼진다.

어떻게 알았을까.

입문하게 되면 다른 이의 아트만을 느끼게 되는 걸까.

그러면 나도 아트만을 컨트롤하게 되면 ‘그 녀석’을 느끼게 되는 건가.

‘가책이 두려운 건 아니야. 내가 너를 망쳐버리고 죽여버렸다고 하는 가책 정도면 나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어. 하지만…’

차라리 어떤 의미에서는 계집애처럼 울면서 청승이나 떠는 꼴이 더 낫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조그마한 방안에서 쓰레기들과 함께 영혼을 부패시키며 대면했던 공포의 정체는, 사실은, 사실 정말 두려웠던 것은….

째각째각 시계의 초침 속에서 마주한 지루하고 고요한 절망의 정체는.

‘전혀 아무렇지 않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냔 말이야. 유일한 친구였던 그 녀석조차 내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잖아…!’

입문 하고나서도 그 녀석의 아트만을 느끼고 나서도 아무런 감흥 없이 살면 어떡하지?

차라리 그럴 바에야 지금처럼 두통을 가지고 있는 편이 나았다. 무혁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을 양심이 견디다 못해 병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거라고. 얼마나 인간 적인가!

그런데 만약 그런 것조차 아니라면.

무혁이 자살한 다음날에도 인환은 과학고 입학시험 준비를 했었다. 녀석이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 별로 놀라지도 않으며 예습하고 복습하고 단어나 외우면서 아침이니까 깨고 배고프니까 먹고 똥이나 싸고 잠이나 자면서 할 꺼 다하고 살았다. 두통이 발병하기까지.

‘젠장. 그게 사는 거야? 나 정말 인간 맞아?’

무혁은 열아홉해를 살면서 인환에게 가장 따스한 체온을 나눠준 인간이었다. 인환 스스로도 그 녀석이 유일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환은 어땠던가. 자신 때문에 죽은 무혁의 시체를 붙들고서도 오로지 무심했을 뿐이다.

이번에 입문되고 나서 다시 한번 그토록 냉정한 스스로의 일면을 마주하게 된다면…. 인환은 인생에 대해 걸었던 마지막 기대를 단념하게 될 것이다.

‘아아, 내게는 마음이 없구나.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쇳덩어리 인간이야.’

누구를 만나고 어디서 살고, 하는 따위의 환경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때는 정말 희망이 죽어버리게 될 것이다.

천년이 지난다해도 다른 인간들처럼 눈물 흘리고 웃고 떠들 수 없겠구나.

순수하게 쌈박질하게 화해하고 마음 나누면서 살 수 없겠구나.

무심하게 초탈한 듯, 사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팔짱끼고 인생 운운했지만 사실은, 사실은 학교 다니는 내내 평범한 아이들을 얼마나 부러워하고 있었던가.

공부나 성적…?

그런 건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했다. 움켜쥐어봤자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인간이라면.

그것이 지금까지의 인환의 인생이었다.

‘재미없어. 모든 게 지루해.’

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먹고 싸고 자고 움직이겠지.

불평과 허무만이 인생의 전부가 되겠지.

학교에서도 혼자. 집에서도 혼자.

관 뚜껑이 덮일 때까지.

그게 진실이 되겠지.

“싫어어어어!”

손바닥을 뚫고 나오려는 아트만을 인환은 혼신의 힘을 다해 저지했다.

‘그런 것따위 알고 싶지 않아. 아무 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순간 사내와 인환이 분리되었다.

사내는 아내의 모양인지 부처의 모양인지가 새겨진 돌을 껴안고 숨을 거둔다.

인환은 눈을 번쩍 떴다.

화장기 없는 입가, 초췌한 눈빛.

정지우 선생이 바로 눈앞에서 인환을 바라보고 있다.

선생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돌을 아는 것과 돌을 깨닫는 것은 전연 다른 이야기입니다.”

하지마세요. 지금은 제발.

의식이 꿈과 현실사이에 짓눌려 꼭 가위에 눌린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기운만 있었다면 정선생의 입을 틀어막았을 것이지만 지금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가 없었다.

“무얼 두려워하고 있지요?

단지 겉을 보고 아는 것은 하인이 하는 일, 그것을 깨닫고 사랑하는 일은 주인의 일입니다. 깨달으세요. 그럼 지배하게 됩니다. 사랑하세요. 그냥 모든 것들을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세요.”


태그
0 만파식적  lv 0 0% / 0 글 30 | 댓글 12  
손톱이 격렬하게 잘 생긴 청주 사는 늙은 작가

만물 유전자 27편

게시물 주소 http://seednovel.com/pb/24491
트랙백 주소 http://seednovel.com/pb/tb/24491
61620 bytes / 211.213.172.150
목록

자유연재 검색된 1 / 2 Page, Total 27 Documents
번호 제목 이름 시간 조회 추천
27 만물 유전자 1권 대망의 완결 완결!!!! 0 만파식적 08.05.04 989 0
26 제 6장 별로 대단할 것 없는 인간 학생(4) 0 만파식적 08.05.04 1041 0
25 제 6장 별로 대단할 것 없는 인간 학생(3) 0 만파식적 08.05.04 1115 0
24 제 6장 별로 대단할 것 없는 인간 학생(2) 0 만파식적 08.05.04 1583 0
23 제 6장 별로 대단할 것 없는 인간 학생(1) 0 만파식적 08.05.04 1148 0
22 제 5장 해지킴날(8) 0 만파식적 08.05.03 1206 0
21 제 5장 해지킴날(7) 0 만파식적 08.05.03 975 0
20 제 5장 해지킴날(6) 0 만파식적 08.05.03 999 0
19 제 5장 해지킴날(5) 0 만파식적 08.05.03 941 0
18 제 5장 해지킴날(4) 0 만파식적 08.05.03 987 0
17 제 5장 해지킴날(3) 0 만파식적 08.05.03 1029 0
16 제 5장 해지킴날(2) 0 만파식적 08.05.03 1059 0
15 제 5장 해지킴날(1) 0 만파식적 08.05.03 1059 0
14 제 4장 블랙 먼데이(1) 0 만파식적 08.05.02 1573 0
13 제 3장 아트만 모든 도술의 원천(4) 0 만파식적 08.05.01 1312 0
12 제 3장 아트만, 모든 도술의 원천(3) 0 만파식적 08.05.01 1282 0
11 제 3장 아트만, 모든 도술의 원천(2) 0 만파식적 08.05.01 1002 0
10 제 3장 아트만, 모든 도술의 원천(1) [1] 0 만파식적 08.05.01 1465 0
9 제2장 검고 축축한 비밀(4) 0 만파식적 08.05.01 1018 0
8 제 2장 검고 축축한 비밀(3) 0 만파식적 08.05.01 1126 0
전체목록 < 1 2 >


Page loading time:0.03s, Powered by pimangBoard v3
회원가입 | 정보찾기

연재

자유연재

공모전연재

베스트 작품

작품 홍보


▶ Today 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