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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Zero -일그러진 미래의 선택- (1권 完) by Miragene

정체를 알 수 없는, 베일에 싸인 힘이 몸속에 스며든 한 소년의 이야기. 주인공 서혜승은 어릴 적 충격으로 마음을 굳게 닫고 타인과의 관계를 꺼리며,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고독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세계에 전례 없는 기괴한 현상들이 발생한다. 세계 각 국에서 온갖 기괴한 현상이 발생하지만 혜승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무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처럼 별 감흥 없이 살아가는 혜승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나 혜승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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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장 - 파멸을 향한 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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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Miragene[tlstmdghl999]
조회 821    추천 0   덧글 1    / 2008.10.25 18:47:02


 A.S.와 함께 2세계를 구경하던 미넬은 한참 들뜬 상태였다.
 한 손에는 흰 봉투, 한 손에는 초콜릿 아이스 바.
 \"~󰁟\"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즐거운 기분을 한껏 뽐낸다.
 그런 미넬을 한 발 뒤에서 따라가던 A.S.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아까 자신이 한 말을 후회했다.
 \'2세계 구경이라니, 얼른 서혜승 씨를 모시고 돌아가도 모자를 판에…….\'
 하지만 \'그런 생각\'만 들었을 뿐, \'그런 마음이\' 든 것은 아니었다.
 그 증거로, A.S.의 손에는 오렌지 주스가 들려있었다.
 \'뭐, 잠시 동안은 괜찮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빨래로 주스를 마신다.
 언제부터인가 멍해진 정신으로 천천히 걷고 있는데,
 \"—A.S. 씨~!\"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후, 미넬의 목소리가 들린 쪽을 보았다.
 \"…….\"
 미넬은 어떤 가게 앞으로 뛰어가 A.S.를 부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A.S.는 빨대를 통해 올라오는 음료수가 없는 것을 깨닫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다 먹은 주스 병을 버리려고 휴지통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자 재차 눈썹을 꿈틀거리며 느린 걸음으로 미넬에게 다가갔다.
 \"…뭐죠?\"
 뭡니까, 라는 강압적인 어조의 말은 할 수 없었다. 한창 들뜬 미넬을 기죽게 할 수는 없으니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현재 미넬의 기분을 맞춰주기로 했다.
 움찔, 미넬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A.S. 씨의 평소 분위기를 어디 갔어?! 역시 무서워!
 하지만,

 지금의 A.S. 씨도 좋은데…?

 \"그, 그게 말이죠.\"
 미넬은 A.S.의 분위기에 약간 동요하며 손가락으로 자신이 앞에 서 있는 가게의 \'그것\'을 가리켰다.
 A.S.는 미넬이 가리킨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
 …….
 ….

 \'옷가게?\'

 대충 짐작이 되어 무표정한 얼굴로 미넬을 보자, 미넬은 미소 짓고 있었다.
 \"여기의 옷들은 어떨까 궁금해서요.\"
 A.S.는 어이가 없어져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깰 수는 없었기에 한숨만 쉬고 말했다.
 솔직히, A.S.는 미넬 못지않게 2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처음에는 임무에 집중하느라 다른 세계에 대한 어떤 호기심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A.S.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그동안 쌓였던 호기심을 어느 정도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마침 임무가 대단한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에 잘된 참이다.
 \"그런데 미넬.\"
 문득 의문이 들어,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는 미넬을 불러 세웠다.
 \"네…?\"
 불안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미넬, A.S.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심문하듯 말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2세계의 화폐는 어떻게 구한 거죠?\"
 그렇다. 화폐—돈. 자신이 들고 있는 이 음료수—맛은 괜찮았다—와 미넬이 들고, 먹고 있는 하얀 봉투와 아이스 바는 분명히 적당한 돈을 지불하고 얻은 것일 터.
 문제는 그 돈의 지불 방법. 물론, 우리에게는 돈이 없다. 있다고 해도— 이 세계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5세계의 돈, 생김새는 같지만, 딱봐도 2세계의 돈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기 때문에 사용은 불가능했다.
 그럼, 어떻게?
 \"아, 저, 저기, 그게—.\"
 미넬은 당황하며 급하게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변명거리를 찾고 있는 것일 테지.
 A.S.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며 미넬에게 다가갔다.
 무슨 말인가 하려는 순간,
 \'—!\'
 불길한 예감이 A.S.를 덮쳤다.
 익숙하지만 좋지는 않은, \'죽음\'을 실감하게 하는 감각.
 \"미넬—! 따라 오십시오—!\"
 A.S.는 눈을 찡그리며 한창 변명거리를 찾고 있는 미넬에게 소리치는 동시에 감각의 발원지를 찾아 뛰었다.
 \"…에—?\"
 어안이 벙벙해진 미넬은 A.S.의 분위기가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느끼고 안도함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이미 먼 거리를 뛰어 간 A.S.를 쫓아 달리며 소리쳤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가요—! —아.\"

 잠깐잠깐.
 A.S.를 쫓아 달리다 멈춘 미넬은 손에 든 것을 보았다.
 아까 산 물건을 담은 흰 봉투와, 한참 먹는 도중이었던 아이스 바—.
 아이스 바는 어느 새인가 전부 녹아 없어진 후였다.
 \"히잉—\"
 미넬은 울먹이며 아이스 바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흔적\'을 핥아먹고는
 \"맛있다—.\"
 기분 좋은 얼굴로 지금의 기분을 만끽했다.
 \"—아.\"
 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듯.
 \"A.S. 씨—!\"
 이미 보이지 않게 된 A.S.를 쫓아 달렸다.


 그런 미넬을 멀찌감치 바라보는 한 인영이 있었다.
 \"…크큭….\"
 기분 나쁘게 웃으며 눈으로 소녀를 쫓는다.
 이윽고, 소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소녀가 달려간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며 작게 중얼거렸다.
 \"조금만 기다려라, 미라지—.\"
 증오가 담긴 목소리로 말한 그 인영은, 어느 순간 증발하듯 사라졌다.



 \"…그가 왜 여기에….\"
 익숙하지만 좋지 않은, \'죽음\'을 실감하게 하는 감각의 발원지를 향해 달려가던 A.S.는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숨을 헐떡이며, 이미 최고 속도로 달리고 있는 다리에 재촉한다.
 조금만 더 빨리,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빨리, 빨리, 빨리—.
 어느새 한계에 다다른 다리가 고통을 호소했지만 개의치 않고 달린다.
 얼마나 달렸을까. A.S.는 달리는 속도를 점점 늦춰, 거리 한 가운데에 멈췄다.
 거칠어진 숨을 고른 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본다.
 —A.S.의 정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본 것과 같은, 한산한 거리만이 무한히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거리 한 가운데에 서 정면을 가만히 주시하던 A.S.는 입을 벌려 중얼거리듯 말했다.
 \"—카오스.\"

 —.
 이에 반응하며, A.S.가 주시하고 있는 정면의 공간이 한쪽으로 회전하며 일그러졌다.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한 때는 \'점\'이었던 것이 지금은 \'선\'으로 변해 무한한 곡선을 그렸다.
 A.S.는 일그러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버린 공간에 심한 이질감을 느끼며 가만히 서 있었다.
 \"왜 이 곳에 있는 겁니까?\"
 공간의 일그러진 회전이 끝나자, A.S.는 눈앞에 펼쳐진, 어둠에 뒤덮여 추악하게 변해버린 세계에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살기가 담겨있었다.

 「\'■\'라는 ■■의 확신과, ■■■ ■■를 이끄는 ■ ■■를 위해.」(\'나\'라는 존재의 확신과, 나라는 존재를 이끄는 한 존재를 위해.)

 분할된 세계의 경계선에 서 있는 A.S.에게 추악하게 변한 세계의 주인의 것인 듯한, 인간의 성대로는 흉내조차 불가능한 언어가 대답을 해왔다.
 그 말에 A.S.는 굳은 표정으로 어디에 있는지 모를 목소리의 주인에게 감정이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만 말하겠습니다. 당장, 당신이 구성한 세계를 해체하십시오.\"
 —서혜승 씨는 카오스가 구성한 세계 속에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카오스가 세계를 구성했다는 것은 결코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것.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서혜승 씨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구해야한다.

 지금의 서혜승 씨는 어떤 일에도 관련되어서는 안 된다.

 —서혜승 씨를 구해야한다.

 하지만 카오스의 세계는 침입하는 것도,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카오스 스스로가 세계를 해체하지 않는 이상, 서혜승 씨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오스가 스스로 세계를 해체할리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카오스의 세계를 강제 해체하는 것.

 「■■는 ■■■ 변화를 ■■시키는 ■은 의식■—.」(이끄는 존재의 변화를 고착시키는 작은 의식을—.)

 무언가 무의식적으로 내뱉어지려는 말을 가까스로 삼키며 카오스의 세계 내부를 바라보았다.
 상당히 먼 거리. 세 인영이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가끔씩 인영과 인영이 겹쳐지며 그 사이에서 무언가를 뿜어댔다.
 A.S.는 어두워진 표정으로 세 인영 중 하나를 보며 뭐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길게 침묵한 뒤,
 \"……카오스, 나에게는 당신이 구성한 세계를 강제 해체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겠죠.\"
 세계의 정상을 노려보듯 바라보며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짐승의 포효 같은 소리와 함께 세계 속에 생성된 또 하나의 세계의 표면이, A.S.가 주시하고 있는 점을 중심으로 물결 같은 것이 일며 퍼져 나갔다.
 A.S.는 담담한 눈으로 요통치고 있는 검은 세계를 바라보았다.

 검은 세계는 끝없이 요동치는 것에 의해 그 형체를 조금씩 잃어갔다. 그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한 세계의 붕괴를 굳이 표현하자면, 형체를 잃어갔다, 라는 표현이 제격일 것이리라.
 A.S.는 \'익숙한\' 그 풍경이 달갑지는 않은 듯, 입술 끝을 살짝 물었다.

 세계의 붕괴를, A.S.와 숨을 헐떡이는 미넬이 바라보고 있었다.



 \"———서.\"
 촤악, 무언가 베이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작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어째서.\"
 그 중얼거림에는 후회와 허무함이 깃들어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촤악, 베어진 무언가의 내부에서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쏟아져 나왔다.
 쏟아져 나온, 표면이 끈적끈적한 점액으로 뒤덮인 그것들은 땅에 떨어지는 순간 녹아내리며 액체로 변해 \'무언가\'에게 되돌아갔다.
 그 광경이 추악하다면 추악하달까. 끝없이 반복되는 그 과정이 마치 시간이 되감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럴 수가….\"
 끝없이 반복되는 그 광경을 조금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던 라이에르는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것이 Mr.ED의 본 모습인가.
 Mr.ED의 본 모습.
 라이에르가 지켜보고 있는 눈앞의 존재—Mr.ED는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짐승처럼 툭 튀어나온 입과 턱,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송곳니, 위아래로 길게 찢어진 동공을 한 붉은 눈, 갑작스레 발달한 온몸의 근육, Mr.ED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한 소용돌이치는 빛.
 무엇보다— 세계의 색과 같은, 어둠을 두르고 있는 몸.
 늑대인간— 라이칸 스로프(Lycan Thrope) 같은 그 모습에 라이에르는 놀란 눈으로 기분 나쁠 정도로 짙은 살기를 띠고 있는 Mr.ED를 쳐다보았다.
 루엘러이는 중얼거린 말을 반복하며 손에 쥐고 있는 무기— 이 세계의 영향으로 루엘러이의 검이 소환되지 않을 것을 사전에 예측한 라이에르가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검을 기묘한 모습으로 변한 Mr.ED를 향해 힘없이 휘둘렀다.
 Mr.ED는 그런 루엘러이의 힘없는 공격을 받으면서 \'D\'를 올려다보았다.
 본 모습으로 변한 Mr.ED의, 라이에르와 루엘러이에 대한 관심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지금 그의 관심은 오로지 D에 있을 뿐, 방금 전까지 대적한 두 상태가 무슨 짓을 하던 신경 쓰지 않는다. 휘둘러지는 검에 의해 몸이 산산조각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의 Mr.ED는 결코 관심을 돌리지 않으리라.
 \"……벌써, 인가.\"
 Mr.ED는 툭 튀어나온 입과 턱을 움직여 거대한 송곳니 사이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라이에르는 짐승의 얼굴로 인간의 말을 하는 Mr.ED를 보고 이질감을 느꼈다.
 \"루엘러이.\"
 라이에르를 보지 않고 휘두르던 검을 멈추자,
 \"이제 그만하게. Mr.ED는—\"
 라이에르는 잠깐 뜸을 들였다. 루엘러이가 공허한 눈으로 재촉하듯 자신을 돌아보자,
 \"Mr.ED는 이미 죽은 사람이네. —아까부터 우리가 상대하던 Mr.ED는, 사실은 Mr.ED가 아니라 Mr.ED의 껍질을 뒤집어 쓴 어떤 존재일 뿐이었어.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나도 참 어리석군.\"
 \"…….\"
 루엘러이는 공허한 눈 속의 차가움으로 Mr.ED와 라이에르를 천천히 번갈아보았다. 그리곤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

 찍어지는 짐승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직후, 세계의 벽에서 파장이 일어나 끝없이 요동치며 세계 그 자체를 침식해갔다.
 침식된 부분부터 차례로 붕괴하며 카오스가 세계를 구성하기 전부터 있었던 세계가 점차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꽃이 피는 것 같은 그 모습은 세계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였다.
 \"……돌아가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 말투에 라이에르는 의미 없는 쓴웃음을 지으며 뒤돌아 걸어갔다.
 \"루엘러이, 가세.\"
 \"…어디로 말인가.\"
 \"집으로 돌아가야지.\"
 \"……그렇군.\"
 Mr.ED는 그런 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천천히 고개를 떨어뜨린 후 자신의 일부가 된 빛을 슬픈 눈으로 쳐다보았다.
 \"……일단 급한 불은 끈 건가.\"
 후우, 한숨을 내쉬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말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군.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수난과 시련이 닥쳐올지는 알 수 없다. 분명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테지. 하지만 그런 것들을 스스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그 후에는—\"
 Mr.ED의 마지막 말은 세계의 비명—붕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굉음에 의해 지워졌다.



 —꿈을 꾸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공간에서 끝없이 부유하는 꿈을.
 아니, 꿈일까.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하다. 마치 꿈이 아닌 것 같은.
 어둠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해도 아무 의미도 없을뿐더러, 그 이전에 하고 싶은 마음조차도 들지 않았다.
 비록 꿈이지만, 이곳은 어디일까.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인 이곳은 어디일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곳일까. 하지만 기억에는 없다. 아무리 떠올리려 해봐도 이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어디일까, 이곳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어디선가 누구 것인지도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목소리 자체는 알아들을 수 없어도 그 말의 의미는 알 수 있었다.
 \'…….\'
 나는 곧 그 의미를 깨닫고 실소했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서혜승 씨, 서혜승 씨!\"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혜승은 눈을 천천히 떴다. 요 며칠 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상당수 겪었기 때문에 머릿속이 엉망이었지만, 그때그때 조금이나마 머릿속을 정리한 덕에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서혜승 씨!\"
 반복하는 소리에 미간을 약간 좁히며 자신을 부르고 있는 소녀—미넬을 보았다.
 푸르고 긴 머리에, 검은 제복을 입은 미넬은 자신을 보고 눈물을 찔끔거리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누가 죽기라도 했나.
 혜승은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이 미넬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 옆에서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는 또 한 명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A.S.였다.
 혜승의 기억 속의 한 사람과 같은 이름을 가진 그녀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파란 원피스를 입은, 초등학생 정도의 외모를 한 소녀였다.
 \"괜찮으십니까?\"
 A.S.는 혜승이 자신을 바라보자 감정이 없는 듯한, 걱정하는 마음을 숨긴 말투로 말했다.
 \"…여기는…….\"
 \"2세계입니다.\"
 A.S.는 중얼거림 같은 혜승의 말을 놓치지 않고 답했다. 그리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투로 말을 꺼냈다.
 \"그것보다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되다니? 자신이 쓰러져 있었다는 것을 어느 새인가 깨달은 혜승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A.S.가 혜승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측하고 몸을 부축해주었다.
 A.S.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난 혜승은 주변을 보고 말을 잃었다.
 폭격이라도 받은 듯, 완파되거나 반파된 건물들과 그런 건물들의 잔해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무, 무슨 일…….\"
 아까까지는 그렇게도 평온하던 마을이 지금은, 마치 폭풍이라도 지나간 듯 살풍경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
 \"…혹시—\"
 \"서혜승 씨, 일단은 저희와 함께 5세계로 가도록 하죠.\"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던 혜승은 너무나도 차가운 A.S.의 단호한 말에 왜인지 모르게 맥이 빠졌다.
 잠시 생각을 하고 있는데 A.S.가 주저 앉아있던 미넬을 일으켜 세우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미라지 님이 서혜승 씨께 급히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아보였습니다.\"
 그 말에 혜승은 먼저 앞서가고 있는 A.S.와 미넬을 쫓아가며 자기 자신에게 추궁하듯 중얼거렸다.

 —언제부터일까, 파괴되어버린 일상에 순응하게 된 것은.



 \"큭, 크크크…….\"
 그늘 속에서 음흉하다고도 할 수 있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늘 밖에는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카오스\'가 표정이 없는 얼굴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그늘 속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크큭, 이번 고통은, 오래 가는군. 크크크……큭.\"
 힘을 잃고 고통을 억누르며 어렵게 그늘 속으로 피신한 웃음소리의 주인—크레이얼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푸념처럼 내뱉었다.
 \"큭, 뭐—그래도 임무는 완수했으니 된 건가. 크크큭.\"
 고통을 호소하는 신음이 음흉한 웃음소리로 들린다.
 \"그래서— 이제 나는 어떻게, 할 거지? 큭.\"
 크레이얼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눈앞에 상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아무 말이 없자 작게 코웃음 치며 조소했다. 그리고는 벽을 짚고 일어났다. 큭, 고통 때문에 잘 버틸 수 없었지만 남아있는 힘을 짜내어 그늘 밖으로 나왔다.
 그늘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꿈쩍도 하지 않고 돌처럼 굳어있던 카오스는 크레이얼이 그늘 밖으로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많이 약해졌군, 나도.
 크레이얼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신을 신경 쓰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카오스를 힐끔 쳐다본 뒤, 2세계를 벗어났다.



 똑똑, 노트를 하자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려왔다. 실례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며 문을 열자, 방 가운데에 큰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주변에 철제 의자가 아무렇게나 배치되어 있었다. 문 정면, 테이블 너머에는 노출부위인 얼굴만 제외한 모든 신체 부위가 하얀색으로 칠해진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물감으로 칠한 듯한 머리와 흰색 수염, 흰 정장, 흰 장갑.
 방의 색과 대조적인 색을 띤 하지만 잘 어울리는, 그 중년의 남자는 손을 흔들며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했네. —자, 앉게나.\"
 \"미라지 님, 서혜승 씨를 이쪽으로 다시 불러들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혜승의 생각을 대변하듯 A.S.가 말했다.
 질책하는 듯한 A.S.의 말에 중년의 남자—미라지는 대충 얼버무리려는 듯 헛기침을 했다.
 그런 두 사람 사이를 발소리를 죽인 미넬이 살금살금 지나갔다.
 A.S.의 시선이 한 순간 미넬에게로 옮겨갔다가 미라지에게로 돌아갔다.

 \"—일단 앉게.\"
 웃는 얼굴로 말하고 있지만 왜인지 모르게 강요하는 것처럼 들리는 미라지의 말에, A.S.와 그 뒤에 있던 혜승은 테이블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 일단은 모두 모인 것 같군.\"
 그럼 시작할까, 라는 말을 웃는 얼굴로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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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iragene  lv 10 80.3636363636% / 6384 글 141 | 댓글 1616  
←수류아 님께서 그려주신 캐릭터 [미넬]                 대화명 변경 : 타나토노트 → Miragene(미라진)                  시드노벨 커뮤티니 출생연도 : 2008년 3월 경.                  가끔 글을 쓰고 있는 아직까지는 고교생. 나름대로 생각하는 건 많은듯 하지만 막상 꺼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림. 시드노벨 커뮤니티에서 존재감 0% 랭킹을 달리고 있음.

T.Zero -일그러진 미래의 선택- (1권 完) 28편
수업 중에 난입한 벌 이야기. (完)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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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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