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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II;요정의 시각 by 커리

『――――사실 우리의 뇌내세계 속에 2000년, 2001년, 2002년은 존재하지 않아. 다만 밀레니엄 쇼크, 9.11테러, 한일 월드컵이라는 사건이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을 뿐이야. 고등학교 입학, 대학교 입학, 더 나아가면 취업, 결혼 같은 인생 대소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사망에서 매듭이 지어지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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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홍삼처럼 6년 묵은 커리  lv 4 10% / 1050 글 45 | 댓글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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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커리[kerius]  
조회 1681    추천 0   덧글 6    / 2007.06.13 03:02:24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났다.
 아니나 다를까, 기말에서 총살 직전까지 몰린 내 사정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는 일방적으로 여름 방학을 맞이했다. 한동안은 과제 걱정도 학교에 갈 걱정도 할 필요가 없어지긴 하였지만, 사실 내 뇌리에는 성적 같은 것이 발붙일 장소는 없었다. 새집에 이사 와서 주운 회중시계에 대한 것만이 머릿속에 가득 차있어서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몇 주 동안 MT도 술판도 집어치우고, 이 회중시계에 대한 것만을 열심히 생각했다. 마의 13시는 매일 밤 나를 찾아왔다. 초반의 며칠 동안은 적응이 안 돼서 패닉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일수가 더해짐에 따라서 차차 안정을 얻고 이 이상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지금 나는 창가에 앉아서 멍한 시선을 모니터에 떨구고 있다. 딱히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화면에는 단지 메모장 하나가 띄워져 있을 뿐이다.

[ 회중시계 - 메모장
[ 파일(F) 편집(E) 서식(Q) 보기(V) 도움말(H)
[
[ 1. 회중시계를 가지고 있으면 하루에 60분의 보너스 타임을 얻는다.
[ 1-1. 시계를 집에 두고 평창에 내려가 본 결과, 13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 1-2. 하지만, 시계를 가지고 가면 13시는 여지없이 찾아왔다.
[ 1의 추론 : 시계에서 일정 거리 이상으로 멀어지면 효력이 없어지는 것 같다.
[
[ 2. 13시일 때, 다른 사람들은 마치 굳어있는 것처럼 멈춰있는다.
[ 2-1. 그들은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다.
[
[ 3. 13시일 때, 모든 시계는 정지한다.
[ 3-1. 단지 11:59:59를 1시간 동안 반복한다.
[ 3-2. 사진을 찍으면 전날 날짜로 새겨진다.
[
[ 4. 13시일 때, 멈춰있는 사람을 넘어뜨리거나, 밀거나, 움직일 수 없다.
[ 4-1. 심지어 진영이는 한 시간 동안 허공에 떠 있었다.
[ 4-2. 개, 고양이 같은 동물은 13시에도 멈추지 않는 것 같다.
[
[ 5. 13시일 때, 물건을 움직이거나, 던지거나, 집어올릴 수 있다.
[ 5-1. 커터 칼로 진영이를 벨 경우, 일단 상처가 벌어진 후 13시가 지나서야 피가 흘러나왔다.
[ 5-1의 추론 : 물건을 통하면 사람에게 영향을 입힐 수 있다.
[ 5-2. 자전거는 움직일 수 있다.
[ 5-3. 택시를 타봤지만, 1시간 동안 멈춰있었다.
[ 5-4. 전철도 멈춰 있었다.
[ 5의 추론 : 남이 움직이는 이동수단은 이용할 수 없다. 직접 움직이면 되는 것도 같다.
[
[ 6. 13시일 때, 모든 통신수단은 먹통이 된다.
[ 6-1. 다운로드를 켜놓고 계측한 결과, 13시에 인터넷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느려진다.
[ 6-1-1. 오프라인 환경에서 동작하는 애플리케이션은 정상동작한다.
[ 6-1-2. 조금이라도 온라인 리소스를 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은 극도로 느려진다.
[ 6-2. 핸드폰도 안된다.
[ 6-2-1. 문자를 보내면 12:00:00에 전송된 것으로 표시된다.
[ 6-2-2. 전화를 걸 경우 13시가 끝나고 정상 시간대로 돌아왔을 때에 저쪽에서 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 6-2-3. 전화가 연결된 상태에서 13시에 돌입할 경우, 1시간 동안 노이즈가 들리다가 정상시간대가 되었을 때 해제된다.
[ 6-2-3-1. 상대방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
[ 7. 13시일 때, 나는 카메라나 CCTV 등에 녹화되지 않는다.
[ 7-1. 사실 나도 찍히기는 찍힌다. 하지만, 1초를 60프레임이라고 생각했을 때 나는 거의 1프레임 동안 투사될까 말까 하다.
[ 7-2. 노가다를 통해서 내가 찍힌 1프레임을 찾아냈지만, 그것은 이상하게 뒤틀리고 사람 크기의 긴 선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 7-3. 몇 초당 한 번씩 사진을 찍는 슬라이드 카메라의 경우엔, 거의 잡히지조차 않았던 것 같다.
[ 7-3-1. 하지만, 똑같은 동영상, 화상을 13시에 재생시켜서 보았을 경우, 통상 상태와 동일하게 찍혀 있었다.
[

 일주일 동안 온갖 실험을 통해서 알아낸 건 대충 이 정도. 다소 비인도적인 실험에 본의 아니게 협조해준 진영이 포함 학교 동기들, 게임 속에서 친하게 지내는 지인 여러분에게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시계를 가진 한, 마의 13시에선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귀신이니 오컬트니 하는 것은 믿지 않는 주의였지만, 2~3일 정도 계속해서 13시를 체험하자 확신을 하고 \'귀신은 없다\'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추가로 7일 정도가 지나가고 난 뒤엔 아예 적극적으로 비현실을 인정하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어떠냐고?
 최근엔 아예 세상이 다 아름다워 보일 지경이다.
 시계를 버릴까도 몇 번을 생각했고, 또 몇 번이고 실행에 옮겼다. 특히 13시 동안에는 너무나 간단히 사람을 죽여버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엔 정말로 시계를 버리려고 마음먹었다. 그때엔 이런 힘이 세계에 존재해선 안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나는 매번 시계를 다시 손에 넣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 추가의 1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만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에 마법이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고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난 지금 이 시계에 홀려있다. 자, 어떻게 하면 이 시계로 내가 득을 볼 수 있을까?
 대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범죄. 그중에서도 절도.
 방법은 간단하다. 13시가 되고 나서 적당한 편의점에 쳐들어가서, 현금보관대를 열고, 안에 들어 있는 돈을 모조리 가지고 가면 된다. CCTV에 찍히지 않는다는 것은 의외로 엄청난 메리트였다. 초범일 때엔 백 원짜리 동전까지 싹 털었지만, 그런 짓은 맨 처음의 한번으로 끝났다. 횟수가 더해지면서 나는 점점 만 원짜리만, 1시간 동안 가능한 한 많은 수의 편의점을 돌면서 조금씩 털게 되었다.
 물론 편의점만이 나의 범죄대상은 아니다. 노래방, 주유소, 특히 심야까지 영업하는 저 대학로에 흘러넘치고도 남는 술집……특히 나이트클럽 등은 보안을 인력에 의존하는(그래, 쉽게 말하면 깍두기 아저씨들이다)경향이 강한 데다가 비교적 12시경에 현금이 많아서 가장 좋은 자금원이라 할 수 있었다.
 근 1주일간, 대학로에서 돌고 도는 돈이란 돈은 다 긁어모았다. 젠장. 무슨 학생 녀석들이 이리도 돈이 많아.
 당연하게도 내가 일으킨 엄청난 숫자의 괴사건은 현재 장안의 화제가 되어 있다. 범죄 초행으로부터 거의 한 달이 지나가려고 하는 지금에까지 내 꼬리는 커녕 범죄 수법 하나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걸 보면 경찰도 결국 이 회중시계 앞에선 멈춰있는 일반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 마의 13시를 가져다주는 이 회중시계가 있는 한 나는 현행범으로 잡힐 리는 절대 없으며 혹시라도 모를 경찰 수사에 꼬리를 잡히지 않고자 나름대로 수를 썼다. 훔친 돈은 당장 쓸 일부만 남겨두고 전부 별도의 은행에 나눠서 입금해 뒀고, 하나의 통장에 들어있는 액수가 학생이 가질법한 돈의 일정 한도를 초과하면 통장을 해제하고 나서 자금은 다른 금융기관을 전전시키고 있다던가 뭐……그런 거다. 말이 길어지니까 자세한 사항은 생략하자.

 나라고 이러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호승심과 일탈감, 그리고 약간의 째지는 쾌감과 스릴에 얼룩져서 일을 치렀다. 하지만, 평범하게 장사하는 사람들의 하루 수입을 뺏는 행위가 분명히 처벌받아야 할 짓이라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요즘 내 머리는 아무래도 좀 이상해져 있는 것 같다. 범행을 하면 할수록 어떻게든 회중시계를 통해서 득을 봐야만 할 것 같은 욕망이 나 자신을 계속해서 그것도 매번 더 강하게 부추기는 것이다.
 「이것이 돈맛인가……」
 그래서 나는 약간의 결심을 했다.
 어차피 대학로는 내가 일으킨 괴사건 때문에 사람들이 조심하고 있어서 12시 근처가 되면 현금은 더 안전한 곳에 보관하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다. 치료가 안 되니 예방을 하겠다는 건데 13시에선 최강의 도둑이지만 어떠한 전문적인 기술도 없는 나에겐 그 백신이 가장 잘 통하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은 괴사건으로 분류되어있지만 같은 짓을 계속 하다가는 언젠가는 꼬리를 잡힐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오늘이 마지막이야. 이후로는 어떠한 나쁜 짓도 하지 않겠어」
 이미 나는 학생이 가지기엔 큰 돈을 가지고 있다. 큰 돈이라고는 해도 수백만 원 수준이고 지금 훔쳐놓은 돈은 장학금이라고 생각하고 학비나 생활비에 조금씩 조금씩 보태서 쓰려고 생각한다. 이 이상 시계의 힘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간 나 자신을 주최하지 못할 거 같은 기분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늘이 마지막이다.


 11시가 지나간 것을 확인하고 조금 일찍 집을 나와 미리 점찍어둔 범행장소로 향했다. 이동하는 도중에 13시에 진입했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딱딱하게 멈췄다.
 「참……언제 봐도」
 가관이다.
 술에 취해서 쓰러질 듯이 비틀비틀 걷고 있던 행인들이 핀에 고정된 곤충 박제처럼 기묘한 자세로 굳어있다. 좀 미인 측에 드는 여성이 있어서 괜히 가서 볼을 쿡쿡 눌러보지만 화석이 된 것처럼 잘 눌리지도 않는다. 씁……재미없다.
 게다가――――마치 동네 전체가 음소거 버튼을 누른 기분이 든다. 사람이 모는 차도 멈췄기 때문에 큰길에 나가도 도로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유일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면 이런저런 가게에서 앰프를 통해 틀어놓은 최신 유행가이지만 그런 것들도 희미한 속삭임 정도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미리 준비해둔 장갑을 꺼내서 두 손에 끼우고 슬슬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운전면허가 없는 나에게 있어서 이건 거의 유일한 이동수단이기도 하고 또 인력으로 굴리는 거니까 연비도 지나치게 싸다.

 목적한 범행장소에 도착했다. 깊은 알콜과 망각의 바다에 빠져있는 대학로의 일각을 밝게 비추는 이 편의점이, 이 이공간처럼 느껴지는 거리에서 유일하게 현실적인 장소로 느껴졌다. 물론 현실이라고는 해도 이런 시간대에 편의점을 이용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취객이지만 말이야.
 「……」
 일단 편의점 안에 진입하기 전에 유리벽에 달라붙어서 안쪽의 상태를 살핀다. 주로 보는 것은 사람의 수와 위치이다. 어차피 멈춰있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한번 멈춰버린 인간은 움직일 수 없어서 제3자가 훔치기 어려운 상태에서 굳어버리면 곤란하게 되어 있다. 유심히 계산대 쪽을 보자, 아르바이트생일 것이 분명한 점원 한 명이 멀뚱멀뚱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할만하다.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도어를 밀어젖힌다. 딸랑딸랑하는 소리가 문에서 들려왔지만 나는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제 문을 완전히 밀어서 열어두고 등을 돌렸더니――――
 「흐므?」
 「……어!?!?!?」
 ――――삼각김밥을 입에 물고 있는 고스로리 복장을 한 여자와 눈이 맞아버렸다. 이 여자, 13시임에도 불구하고 움직인다?!
 잠시간, 나와 그 여자 양쪽 다 꼼짝달싹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영겁처럼 느껴지는 길고도 짧은 시간이 정적으로 매워진다. 정적을 깬 것은 여자의 가득 부푼 입이었다. 우물우물.
 「……아! 흐므쉐우무무루에아하!」
 「지구 말로 해!」
 척수반사로 행해지는 일갈.
 여자는 내 말을 알아듣는 모양인지 입 안에 삼킨 삼각김밥을 열심히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다행이군. 우주인은 아니잖아――――잠깐, 나 지금 뭔가 중요한 걸 잊어버리고 있지 않냐?
 아아 그래, 생각났다. 그렇다. 저 여자도 이 마의 13시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 여자는 손에 뭔가 금줄 같은 것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끝에 매달린 건 회중시계다. 내 거랑 똑같이 생긴 회중시계였다. 그렇다는 건……!?
 「흡!」
 나는 벼락같은 움직임으로 밖으로 뛰쳐나온 뒤 전속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 이봐요!!」
 인제야 입안에 든 걸 다 삼킨 걸까. 날 따라나온 여자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거 같지만 난 이미 그런 것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모드를 켜고 있다. 가능한 한 빨리, 저 한국말 하는 배고픈 우주인……이 아니라! 나랑 똑같은 시계를 소유하고 있는 여자에게서 도망치기 위함이었다. 왜 도망쳐야 하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말하면 본능이다. 나는 젖먹던 힘까지 더하여 대학로를 가로질렀다. 아 맞다, 내 자전거!
 자전거가 걱정돼서 뒤를 돌아봤다……안 볼 걸 그랬다.
 여자는 내 뒤를 바짝 쫒아오고 있었다. 움직임을 여러모로 제한하는 깝깝한 치마에 리본이나 끈이 많이 달린 검고 하얀 드레스 같은 상의를 입고 있는데……다리를 보니 여자는 빠른 걸음 정도로 걷고 있었다. 내가 공부는 잘 못해도 이제껏 20평생 학교 다니면서 체육에서 우 이하를 맞아본 경력이 없는 사람이다.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이지만 100m 달리기를 하면 전교에서 나보다 빠른 녀석은 없었다.
 「이봐, 잠깐만 기다리라니깐!」
 「그러는 너는 왜 쫓아오는데!」
 「당신이 갑자기 뛰니까! 서요 좀!」
 「서란다고 서는 놈 봤느냐!!」
 한국의 호러영화가 이 공포를 따라잡으려면 앞으로 10년은 걸릴 거 같다. 좀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내고 긴 갈색 생머리를 휘날리면서, 난 분명히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데, 러닝머신 위에서 빨리 걷는 것처럼 다리를 움직이며 뒤를 쫓아오는 고스로리 복장의 여자……는 날 따라잡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손에 들고 있던 회중시계를 날 향해 뿌렸다!
 쉬리리릭!
 멋들어진 곡선을 검은 밤 공기 위에 수놓은 금색 회중시계가 날아오더니 마치 요요처럼 묘기를 부리며 내 팔에 감겼다. 덕분에 제동이 걸린 팔이 뒤로 잡아당겨 지면서, 난 달리던 힘을 못 이기고  꼬꾸라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벌떡. 나는 이부자리를 걷어차고 괴성을 지르며 일어났다……이부자리?
 창문 밖 멀찍이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푸른 아침 햇살이 은은하게 내리쬐며 방 안에 평온한 분위기를 연출해주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평상시와 아무것도 다를 것이 없는, 평상시의 아침이었다. 그렇다는 건…….
 「그렇구나……무서운 꿈을 꾸었구나」
 그게 꿈인가.
 고스로리 삼각김밥 축지법 우주인 여자가 꿈이었단 말인가.
 「하, 아하하하……」
 너무 허탈해서 웃음이 다 나온다.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좀 눌러봤더니 시간은 오전 7시 30분이 살짝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맞춰놓은 알람 시각보다는 1시간은 이른 시간이지만 뭐어, 이것도 저것도 다 일상 다반사다.
 「하하하……하아」
 깊은 한숨.
 책상 위를 더듬어서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원래 아침담배를 할 정도로 헤비스모커인 것은 아니지만……왠지 피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일단 한 모금 들이쉬고 나서, 어기적 어기적 반쯤 기어서 냉장고를 열고 미리 사둔 250mL짜리 캔음료를 하나 재꼈다.
 「……푸하! 수명이 10년은 줄어드는 줄 알았네」
 그냥 음료수일 뿐인데, 어떠한 꿀보다 더 맛이 있게 느껴졌다. 어허허허헐. 별 이상한 꿈도 다 꾸는구만.
 [띵동- 띵동-]
 그때 현관 벨이 울렸다. 이런 아침에 누구지? 이런 아침에 찾아올 친구는 없고, 잘 해봐야 집주인 노부부이거나, 신문 보라는 잡상인이겠지. 하긴 지금의 내 기분이라면 신문배급소 알바생이 아니라 신문사 사장 할아버지가 와도 상큼한 미소와 함께 거절할 자신이 있다.
 「예~갑니다 가요~~」
 서둘러 음료수를 원샷한 뒤에 담배를 그 안에 넣어서 끄고, 나 한진용은 환한 미소와 함께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누구십니――――――――」
 「Bonjour. 이제 일어난 모양이네, 한진용군」
 희디 흰 아침 햇살이 갈색 머리카락을 약간 붉게 수놓고 있는 여자가 거기에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서 한참을 처다보다가 상황을 이해했다……어제 꿈에서 본 우주인이다.
 「고향별로 돌아가라」
 쾅.
 「아하하핫. 내가 뭘 잘못 봤겠지」
 신발을 벗고 다시 방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이번엔 현관 벨소리가 초고속으로 반복해서 들려왔다.
 [띵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동-]
 쿵쿵쿵, 벌컥. 다시 문을 열어재끼자, 그 여자가 꿍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저기……화성은요, 여기가 아니라 하나 옆별이거든요? 주소 잘못 찾으신 게 아닐까 하고……」
 「그만 좀 현실을 직시하는 게 어때?」
 알았어. 이제 웃기지도 않는 멍한 개그는 그만 할게.
 「스읍――――」
일단 들이쉬고.
 「으아아아-!!」
 지금까지 멍하게 있었던 만큼 나의 충격과 공포는 곱절로 날 엄습했다. 내가 서둘러 방 안으로 후퇴하자 정체불명의 여자는 한 숨을 쉬면서 따라서 내 가택에 침입해왔다. 그리고는 일방적인 인사를 날렸다.
 「안녕」
 「너……너……」
 「또 외계인 소리 하면 정말로 때려버릴 거니깐 그렇게 알아. 그 이외의 질문이라면 들을게」
 큭. 선수를 쳤군, 그럼 그 질문은 접어두고, 좀 시리어스한 발상을 해보자.
 「너도……회중시계를 가졌어?」
 내 질문에, 그녀는 자기 옷의 포켓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서 손바닥 위에 놓고 뚜껑을 젖혔다.
 째깍, 째깍……내 회중시계에서 들려오는 째깍거리는 소리와 아주 약간의 흐트러짐도 없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소리였다.
 「너도 13시 때 움직일 수 있지?」
 「응」
 「어제 일은 꿈이 아닌가?」
 그 말에, 눈앞의 여자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냥 다른 능력자를 만난 게 반가워서 말을 걸려고 했을 뿐인데, 네가 막 도망가잖아……그래서 쫓아갔는데, 내가 붙잡자마자 쓰러져서 기절하더라? 정말이지……. 여기까지 옮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요?」
 이녀석, 존댓말과 반말이 미묘하게 섞여있다. 일단 그런 것은 접어두고,
 「잠깐만, 우리집이 여기인 줄은 어떻게 알고?」
 「일단 사람이 길에 누웠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네 지갑을 뒤졌더니 주민등록증이 나오더라. 보니깐 최근에 이사한 주소가 여기로 되어있길래 여기로 옮겼어. 네가 가지고 있던 집 열쇠도 맞는거 같고, 여기가 네 집이라고 생각했지」
 음.정황으로 보면 내쪽에서 감사를 표명하지 않으면 안될 거 같았다.
 「아……미안」
 「알면 됐어요. 나도 네가 그렇게까지 놀랄 줄은 미처 계산에 넣어두지 못했으니까. 다른 소유자들과 만난 적이 없구나?」
 다른?
 「설마……더 있는거야? 똑같은 시계가?」
 「두 개 있는 건 세 개 있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니?」
 으……왠지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거 같다.
 「끄응……」
 그녀는 일단 밖에 나가서 문 앞에 내려둔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싱싱한 파가 봉지 위로 머리를 드러낸 걸로 봐선 음식 재료가 들어있는 것 같다.
 「일단 좀 씻고라도 있어봐. 뭐라도 만들어 줄 테니까. 싱크대 좀 빌리겠어요」
 하지만 내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그녀는 일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요리 밑준비를 시작했다.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 내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아침이 시작되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어」
 나 한진용은 그 때 어땠는가 하면, 이런 말을 우물거리면서 화장실로 숨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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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홍삼처럼 6년 묵은 커리  lv 4 10% / 1050 글 45 | 댓글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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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커리 06/13/05:27
급하게 써서 그런지 문장 호흡이 좀 이상하군요(......) 어쨌든 주인공도 이제부터가 바빠지게 생겼습니다.
13 天理行人 06/13/08:19
오오! 새로운 능력자 등장.
0 유노시안 06/13/12:25
외계인 비바!(야!)
4 커리 06/13/07:25
천리/==b
활자/전투 BGM \"장군님 축지법 하신다\" (....응?)
0 리움 06/15/02:03
(다 제쳐두고) 모종의 여인네가 집에 쳐들어와 음식을 해주다니! 저런!
...부럽다.
4 커리 06/15/05:18
라뮤/자취남의 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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