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작 완결작

검색결과

아이크 빛과 어둠의 검사
카미도 혼란스러운 거리
redbead 환생 뒤 전(前...
카미즈블러드 라그나로크 극
컨알 하얀 악마
카이테미요 천명을 힐러였...
Leafy 암흑면
AlwaysLaugh 설령, 당신이 ...
연화홍란 전생을 했지만...
실버나라 나만 판타지 ...
wani [단편] Black ...
lyan15 검은 천사
rlight 지나가던 선비
갓카 내 모니터 속...
로드드라콘 구마록(驅魔錄)
보닝 신같은 포지션...
정상인임ㅎ 대마왕이 가출...
NAMIA 신이 죽은 세...
엽토군 블로그
부르프 낮으로 걸어오...
air05 하루아침에 마...
라쿠카라챠 츤데레 여친과...
잉여포돌이 Re:
9A 금경을 삼킨 용
살많은빼빼로 자유의 날개
노아카미 Heal Up
살많은빼빼로 억압의 사슬
요리코 이세계 소환! ...
적색소음 나는 결국, 아...
봄날상어 우리들의 일상...
호떡 밖으로 나가면...
건달프 After Memories
사가 성불사
노가리 미래에서 미래...
똑같은매일 강철 심장의 고동
승다르크 카르페 디엠
멘카로건 Let Us [Rise ...
살많은빼빼로 Life with dead
랑이초록 지구스토리: ...
joseu 생판 몰랐던 ...
쥐며느리 머그속 그녀의...
살많은빼빼로 학생의 반란
초록만두 창밖으로 뛰어...
joseu 생미부
박사능 흉터 새기는 남자
주렁이 이세계 직업에...
멜렌나 노 네임-제미니-
Enivia 하나뿐인 여동생
pwins 용사의 은퇴시기
호치 사랑하는 나의...
레드트리 반인반요
갓카 단편 모음
오얏 고코미의 모험
책갈피 오늘의 꽃을 ...
코노미카 우리 동아리에...
불닭 해골과 소년의...
서호란 살아간다는 것은.
이동규 마왕 따위 되...
이동규 죽음이 사는 숲
비익연리 나와 그녀의 ...
JG광합성 호텔! 마왕성!
레크리셔 빨간 망토 소...
Nehru CRISHA[크리샤]
별티끌 누리끼리
뚜뚜루 나의 작은 기사님
카샬 이제는 너무나...
갓카 Nostalgia
밤바다 이런 나지만 ...
즈잔 황폐한 땅의 ...
도토리x 망할 유령들 ...
두희 나와 호랑이님
나하린 프로 조연과 ...
pakpa 제목미정
9959 운명의 돌: 멈...
yooil 내 소꿉친구는...
리츠카 페퍼민트 카페인
샌니마 저, 오늘부로 ...
김리토 레스즈
1ron 나와 요정의 ...
미호 라노벨에 사용...
칠흑의카밀레 소인 세계에서...
HAlt 환생한 대주술사
깽깽이 이세계의 블랙...
xiix 암살법사
BLAZE ???
엘그나 정상 위에 소...
연역 롤플레잉!
W더블 진홍의 히스토...
형칠이22 팀 파이브 엔젤스
즐거운나날 신님은 우리들...
pe0000 이세계 용사와...
카사토리00 메이드 여동생...
피토휘 여동생과 나 ...
tg가로수 평소대로 살았...
라케리안 모형정원
실크라운 쿨데레X츤데레...
이부프로펜 이 동아리 뭔...
칠흑의대마왕 도적은 왕에게...
세하 Dreamland Online
강화중 주인공의 친구...
XIII;요정의 시각 by 커리

『――――사실 우리의 뇌내세계 속에 2000년, 2001년, 2002년은 존재하지 않아. 다만 밀레니엄 쇼크, 9.11테러, 한일 월드컵이라는 사건이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을 뿐이야. 고등학교 입학, 대학교 입학, 더 나아가면 취업, 결혼 같은 인생 대소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사망에서 매듭이 지어지겠지――――』

[]
총 편수 17 / 총 관심작 수 30 / 총 추천수 0 / 총 용량 0Kbytes
4 홍삼처럼 6년 묵은 커리  lv 4 10% / 1050 글 45 | 댓글 196  
관련글
  IV.
0명 참여 별점
 
  4 커리[kerius]  
조회 1661    추천 0   덧글 6    / 2007.06.15 11:55:20


 ――――――『녀석』의 방에 여자가 찾아왔다.
 몇 주의 스토킹을 통하여 『녀석』에 대하여 상당한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이름, 성별, 연령, 다니는 학교, 듣는 강의, 취침/기상 시각과 매 끼니를 때우는 방식,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지금까지 모은 정보를 토대로 추론하건데『녀석』은 요즘 세상에선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전형적인 한국의 남학생이었다. 적당히 내성적이고 적당히 소심하며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경향도 보이는데 이것은 상황이 좋은 요소였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노릴 수 있는 타이밍도 많고, 쥐도 새도 모르게 『녀석』을 처치하고 나서 벌 수 있는 시간도 길어지니까.
 내가 이 마을에 돌아왔을 때엔 이미 『녀석』은 『그것』의 힘을 이해해서 온갖 괴사건을 일으키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용의주도해지는 사건들이 오히려 나에게 확신을 가져다주었다――――녀석은 『그것』을 우연하게 손에 넣었을 뿐인 풋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확신. 그나마 지난주부터는 『그것』을 사용하면서도 스스로 조심하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나의 존재를 눈치 챈 것 같은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름대로 선량함과 죄책감이 있는 거겠지. 거기에 생각이 미친 나는 더 시간을 끌지 않고 『녀석』을 해치우기 위한 밑 준비를 시작했다. 예정대로라면 어제나 오늘, 『그것』을 없앴을 터였다.
 하지만, 변수가 나타났다.
 어젯밤 『녀석』이 새로운 범행을 위해 집에서 나온 것이 11시 30분경이었는데 13시가 풀리자마자 그의 방에서는 환한 형광등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가 집에 돌아온 것이다. 범행을 끝내고 방심하고 있을 그때를 노려서 『녀석』의 집에 접근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방에서 웬 여자가 튀어나왔다. 미리 수집해둔 정보에 없었던 일이었다. 여자는 주위를 좀 살피다가 문을 걸어잠그고 그의 방 열쇠를 아무 망설임 없이 자신의 포켓에 넣었다. 하지만 여자도 나의 존재는 눈치 채지 못했고 그대로 근처의 주차장에 가서 하얀색 승용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여자는 밤새 몇 번이고 그의 방을 들락날락했다. 방에 들어갈 때엔 항상 인근 대형 마트의 로고가 찍힌 비닐봉지에 물건을 가득 들고 있었는데 나올 때는 꼭 빈손이었다. 거기까지 확인하고 나는 결행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모르는 요소가 『녀석』에게 개입된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어제의 여자가 또다시 나타났다. 손에는 예의 대형 마트의 로고가 찍힌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음식 재료인 것 같았다. 여자를 보고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집 안으로 들어갔고 이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비명을 지른 시점에서 『녀석』과 여자의 관계를 확실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적어도 여자가 『녀석』이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람은 확실히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녀석』은 여자와 최근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여자는 『녀석』처럼 13시에 움직일 수 있는 존재이니까――――――
 ―――즉, 여자는 타지에서 흘러들어온 시간능력자이다.
 여자의 승용차가 놓인 주차장에 다가갔다. 무언가 여자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싶었다. 동네의 주민들에게 의심받지 않도록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척하면서 차량번호를 옮겨적었다. 미러를 통해 안을 보자 차 내부는 기가 막힐 정도로 깔끔했다. 보통 여성 운전자는 차 안을 이런저런 굿즈로 꾸미는 경우가 많은데 이 차엔 그러한 물건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래가지곤 여자의 취미도 성향도 읽어낼 수 없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상황에 익숙한 시간능력자인 것일까……이 여자, 『녀석』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베타랑인 것 같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구두 소리는 아닌 걸로 봐서 여자는 아니고, 여기에 주차를 해둔 동네 주민이겠지. 얼굴이 드러나선 곤란하기에 나는 차의 뒤편에 몸을 숨겼다.


 서울 대학로의 시간능력자, 한진용과 처음으로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인상은 이렇다.
 「……범인(凡人)」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다. 한진용은 한국인 청년의 범주에선 너무나 평범한 존재이고, 시간능력자의 범주에선 너무나 유니크한 존재였다. 나는 어젯밤에 졸도한 그를 침대에 집어넣고 그의 PC를 열어보았다. 누군가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쓰는 PC를 보는 게 빠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다지 성실한 학생은 아니지만 컴퓨터에 관한 능력은 기대 이상으로 수준급이었다. 한국의 IT 계열 수준이 높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는 대단히 유능한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는 성공할 것이다……어디까지나 인간으로 산다면.
 하지만, 한진용은 이미 시간능력자이다. 초상능력자에게 일반인의 잣대는 통용되지 않는다. 상식을 초월한 자들의 기준으로 보면 한진용은 너무나도 나약하다. 건강하거나, 돈이 많거나, 그도 아니면 싸움에 강한 것 같지도 않았다. 당장 내일이라도 시계노인 급의 괴물과 마주친다면 그는 갖춘 능력을 다 끌어내 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그래도 그나마 희망은 있다. 그는 나를 보고 놀란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이미  회중시계의 성능을 나름대로 분석해서 알고 있었다. 본인이 자각하고 있는지는 별도로 치더라도 그는 멍해보이는 생김새와는 다르게 냉철함과 어벙함의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확실히 보통 사람이지만, 이건 잘만 이용하면 다른 능력자의 방심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와 그의 시계의 힘을 빌린다면……이번에야말로, 시계노인의 허를 찌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에스트로」
 지금도 눈만 감으면 1년 전의 그날 밤이 떠오른다.
 런던의 밤,
 시릴 정도로 하얀 달,
 XII인 채로 계속해서 종을 때리는 빅 뱅의 시계탑,
 타워 브릿지, 그리고―――――컷. 거기까지.
 옛날 상념에 잠길 시간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자.
 차를 출발시켰다. 클러치에 얹은 발을 서서히 떼자 차가 앞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한국은 땅도 좁고 길도 좁고 운전자의 상태도 좋지 않다. 핸들을 꺾어서 주차장을 다 빠져나올 때 즈음이 되어서……나는 지금까지 간과하고 있었던 의문점에 도달했다.
 「맞아. 한진용은 어쩌다가 회중시계를 손에 넣었지?」
 이것 참. 아까 적당히 말을 돌려서라도 간접적으로 물어볼걸.
 기억을 되돌려보자.
 ――――아……그렇지. 시계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했었죠.
 ――――어. 난 그냥 이사 올 때에 이 집에 버려져 있던 시계를 주운 것뿐이니까.
 그냥 이사 올 때에 이 집에 버려져 있던 시계를, 주운 것뿐이니까. 그냥 이 집에 버려져 있던 시계를――――버려져 있던, 시계?
 시간능력자로서 오랫동안 지냈지만 그처럼 시계를 손에 넣었다는 케이스는 들어본 역사가 없다. 하긴 그렇게 우발적인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한진용같은 일반인이 회중시계의 주인이 될 일도 없었겠지. 이 마을에서 일어난 괴사건의 진원지는 틀림없이 한진용과 그의 회중시계이다. 한진용의 태도나 그가 일으킨 사건, 그의 조사 파일을 생각해보면 시계를 우연히 얻었다는 그의 말 자체는 거짓이 섞이진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말로 회중시계는 그의 집에 버려져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냥저냥 넘기기엔 이 대목이 너무나도 내 식스 센스를 건드리고 있었다. 목 뒷덜미를 바늘 같은 것으로 콕콕 찌르는 느낌. 여자의 육감이기도 하고, 시간능력자의 경험이기도 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조금 조사를 해 둘 필요는 있을까……」
 아무래도 한진용과 사귀어 나가는 일 외에 중요한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이 마을엔 뭔가가 더 있다……아주 치명적인, 무언가가


 「……」
 ……심심하다.
 기숙사에서 살 때나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살 때엔 혼자 사는 게 이리도 심심한 건지 몰랐다. 확실히 처음 몇 주는 즐겁고 재미있었지만 그것도 몇 주 놀고 나니 이제는 뭘 해도 불감증이다. 기숙사에서 지낼 때엔 밥도 같이 먹고 놀아도 같이 놀았기 때문에 불편함은 느꼈어도 고독감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친구라도 불러내거나, 움직일만한 녀석이 없으면 학교 도서관에나 갈까.
 핸드폰을 들어서 리스트를 훑다가 오늘 아침에 등록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윤세현……」
 소리를 내서 말할 생각은 없었다. 윤세현. 머리가 좋을 거 같은 이름이다. 프랑스 말, 긴 머리, 희고 검은 옷, 통 굽 구두, 가느다란 손, 작은 키, 바람에 흔들리는 스커트, 비닐째 씹은 삼각김밥, 지독하리만큼 맛있는 카레, 그리고……시간능력자.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서 뚜껑을 재꼈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마의 13시, 시계장인 브레게, 시계, 지구의 시계, 브레게가 만든 시계, 절대시간축과 상대시간축, 정과 동, 환상의 제1시계, 마리 앙투아네뜨, 12개로 나뉜 제2시계, 요정왕, 시계노인…… 수많은 단어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자기가 저장될 곳을 찾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깜짝 놀라서 발신자를 보니, 진영이였다. 내심 윤세현에게서 오는 전화가 아닐까 하고 1그램만큼 기대했었다. 꾹꾹.
 「칫…… 진영이냐」
 『크크큭! 어차피 전화 올 여자도 없으면서』
 이 치는 의외로 날카로운 구석이 있다. 다만 그 날카로움이 타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아니라 세심한 본심 찌르기라는 것이 문제가 있다. 왠지 진영이는 사회 나가서 취직하면 직장 상사에게 귀여움받고 부하직원에게 욕먹는 사람이 될 것 같다.
 「……언제고 네놈과는 한 번 다퉈서 자웅을 겨루려고 생각하고 있었지」
 『기분 나쁜가 보네. 어디야?』
 「집」
 『밥 먹었냐?』
 공돌이의 전화는 받아보면 절반은 밥 안부다. 공대가 사람을 메마르게 만드는 건지 아니면 그런 사람이 모여서 공대에 다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밥 먹었냐고? 먹었지. 그것도 프로급 요리사가 만들어놓고 간 카레를 먹었지. 아직도 2~3번 먹을 양은 남아있다만.
 「공 DVD가 다 떨어져서 사러 가야 해. 같이 갈려?」
 그러면서도 내 시선은 DVD를 수납해둔 박스에 가 있다. 안 쓴 DVD는 아직도 30장 이상 남아있지만 어딘가에 나가고 싶었다.
 『간 김에 신작 좀 체크하고?』
 「것도 좋고」
 사실 나도 슬슬 콘솔 게임기를 하나 지를까 생각 중이다. 돈이야 훔쳐놓은 액수가 있고, 요즘 우리나라 온라인게임은 다 캐쥬얼 표방하는 노가다 게임이라서 진득하게 붙잡고 할 수가 없다. 신품을 지르면 진영이가 의심할 테니까 싸게 나와있는 중고 머신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으면 진영이의 추천을 받아서 게임 소프트를 한두 개 끼워서 사오면 되는 일이다.
 『역 앞에서 1시』
 「날 덥다. 3시」
 『콜』
 뚝.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씻고 나가서, 다소의 사치를 하자. 그러면 꿀꿀한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탄생까지 거슬러간 회포 그속에 내포된 여행의 의미는 수포,
가 되어도 산화된 유혼과 재가된 육체는 다음주기 삶을또 예비한……』
 싸재 MP3P에 넣은 음악이 귓전을 때린다. 평소에 랩은 잘 안 듣는 편이지만 오늘은 왠지 국내힙합을 듣고 싶은 기분이었다. 약속을 뒤로 밀어놓은 주제에 너무 빨리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역 앞의 찻집에 들어갔다. 커피 한 잔을 홀짝거리면서 딱히 넣을 것도 없으면서 괜히 가지고 나온 가방에 마침 들어있던 학교 원서나 펴놓고 시간을 죽이고 있다.
 사실 책은 꺼내놓고 있지만 내 시선은 창 밖을 오가는 사람들에 있다. 그냥 이런 공공장소에서 영어 원서를 읽는 척하고 있으면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에서이다. 커피? 사실 별로 안 좋아한다. 학교와 직업 특성상 캔커피는 자주 마시지만 사람이 꼭 주로 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란 법은 없다.
 왠지 오늘은 하는 일들이 다 쓰잘데기가 없다.
 이 커피도, 원서도, 귀에서 들리는 음악도, 이제부터 가서 살 DVD도, 게임도, 사실 정말 안 지르면 죽을 정도로 필요한 물건은 아니다.
 사실 나는 이 감각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다른 일을 해서 신경을 분산시키려고 해도, 내 머리는 아침부터 회중시계와 윤세현에 대한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
 「엽자리 갠찬습니카」
 워워워. 누군가가 내 옆으로 불쑥 나타났다. 급작스러운 인기척에 난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폰을 빼고 옆을 보니 키가 훤칠한 금발의 외국인 남자가 꿍한 표정을 하고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옆 좌석 위에 올려놓고 있던 내 가방을 서둘러 치웠고 겨우 외국인은 손에 들고 있던 플라스틱 쟁반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인사동에선 자주 보이는 게 서양인이지만, 대학로에선 그렇게까지 자주 볼 수 없는 게 또 외국인이다. 그러고 보면 난 태어나서 처음 만난 외국인이었다. 약간 호기심이 발동해서, 힐끔힐끔 옆을 보았다. 이 커피가게의 마크가 찍힌 종이 컵하고, 작은 도너츠하고……내 거랑 똑같은 디자인의 회중시계가 그 위에 올려져 있었다.
 「 !?」
 그제야 나는 이 가게 안이 텅텅 비었고, 굳이 여기 말고도 자리는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외국인……나한테 용건이 있어서 이렇게 하고 있는 거다. 머릿속에 떠오르던 수많은 상념이 싹 지워졌다. 이 외국인에게선 약하게 기름 냄새가 났다. 그리고 쇳가루 냄새도 조금 섞여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이 외국인의 성격을 결정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시간능력자.
 「……」
 「……」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직 시간만이 묵언(默言)한 채 째깍거리면서 세계를 떠돌고 있었다. 종일 멍했던 머리가 풀가동을 하기 시작했다.
 도망쳐야 하나?
 싸워야 하나?
 여기서부터, 어디로?
 사람이 적은 가게이긴 해도 민간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가능한 한 태연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MP3P의 전원을 껐다. 완전히 자리를 잡은 외국인 남자는 내가 펼쳐놓은 책을 슥 보고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Oh, Are you speak English?」(오. 영어를 하십니까?)
 「a……a little」 (조……조금은)
 패닉에 빠져서 떠뜸떠뜸 초보적인 단어로 대답한다. 지금 내 발음 무지 이상했다. 평소에도 영어는 잘 못했는데 설마 첫 실전 영어회화가 시간능력자와의 대화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good」(좋군요)
 「……」
 「Don’t afraid me. I want just talking with you in peaceful mood」(날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는 그저 당신과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을 뿐입니다)
 사실대로 말하자. 도망가고 싶어도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짐짓 허세를 부리려고 담배를 하나 물었다. 내가 짐짓 딴청을 부리며 담배를 피우자 외국인은 날 가만히 관찰하더니 자기 도너츠를 집어먹었다. 서양인은 다들 엉뚱하다던데, 이 남자도 좀 그런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먼저 운을 뗀 것은 외국인 쪽이었다.
 「Greetings, Do you know who am I?」 (반갑습니다. 제가 누구인지는 아십니까?)
 외국인 남자가 구사하는 영어는 흔히 한국에서 듣거나 가르치는 발음과는 좀 달랐다. 좀 더 딱딱하고……강한 느낌이 있었다.
 「No, I don\'t. but……」 (아니, 모릅니다. 하지만……)
 외국인은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잠깐 목을 축였다. 이쪽은 몸속의 물기란 물기가 다 마를 지경인데 말이다. 기억해 내라, 단어를 기억해 내!
 「but I……know your clock」(하지만, 나는 당신의 시계를 압니다)
 「Oh」(오, 이런)
 그는 시계를 자신의 정장 조끼 앞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야말로 회중시계를 넣는 곳이다. 가만 보니 이 외국인은 한낮 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여름임에도 신사용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정장이라고는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정장이 아니라 그……뭐냐. 우리나라로 치면 개화기 때의 빳빳한 양복이다.
 이 외국인도 그렇고 세현이도 그렇고, 시간능력자들은 이상한 옷을 입는 녀석들이 많다. 외국인의 왼손 중지에 끼워져있는 커다란 반지가 조금 신경쓰였다. 대단히 큰 붉은 보석이 박혀 있는데 아무래도 루비인 것 같았다.
 「Well……at first, I do introduce myself. My name is Louis, Le Breguet」(음……일단, 제 자신을 소개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루이스 르 브레겟입니다)
 영어로 하는 소개이면서도, 그가 댄 이름은 뭐랄까……프랑스 쪽 같았다. 게다가 그의 성은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매크로 영어회화 세뇌교육에 의거하여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My name is 진용 한」(전 한진용입니다)
 「Thank you, Sir Han」(고맙습니다. 한님)
 남자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은은했고,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성질이 있었다. 대화를 거듭하는 동안 내 마음은 점점 긴장을 풀었고, 처음엔 빡빡했던 혀도 슬슬 굴러가기 시작했다.
 「I\'m not a Knight. just a common people」(저는 기사가 아닙니다. 그저 평민일 뿐이죠)
 「Oh, sorry」(오, 미안합니다)
 \'브레게\'라 자신을 밝힌 외국인 남자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사진이었다. 심야에 촬영된 데다가 묘한 더스트 같은 게 섞여있어서 도저히 잘 찍은 사진이라고는 볼 수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그 안에 잡힌 사람만은 깨끗하고 뚜렷하게 찍혀있었다. 그건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윤세현.
 「……!?」
 「Do you know this girl?」(이 소녀를 아십니까?)
 「No……Nothing」(아……아뇨)
 발뺌했다. 제발, 제발 속아다오……!!
 하지만, 외국인은 내 속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친근감 있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다. 인제 보니 남자의 눈동자는 보라색에 가까운 푸른색이었다. 보통 금발에는 벽안(碧眼), 그러니까 초록색 눈을 연상하게 되는데 이 남자의 눈에는 어째서인가 보라색이 자리잡고 있었다.
 「OK. I do not pursue」(좋아요. 추궁을 하진 않겠습니다)
 펄쓰으. 아는 단어였는데……뭐였지? 필사적으로 머릿속에 들어 있는 단어장을 뒤적거리고 있으려니 외국인 남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도너츠를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Be careful, a young Clock-User. This Town to be Battlefield」(……그저 조심하십시오, 서울의 젊은 시간능력자여. 이 마을은 곧 전장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내 어깨를 탁탁 두드리고서 남자는 카페를 떠나갔다. 그가 완전히 모습을 감춘 뒤에야 나는 석화가 풀린 사람처럼 급하게 핸드폰을 뽑아서 그녀의 이름을 찾아 누를 수 있었다.



태그
4 홍삼처럼 6년 묵은 커리  lv 4 10% / 1050 글 45 | 댓글 196  

게시물 주소 http://seednovel.com/pb/3844
트랙백 주소 http://seednovel.com/pb/tb/3844
16112 bytes / 203.130.112.84
목록
13 天理行人 06/15/12:13
오.... 영어라 좀 해석이 힘들었지만..... 전쟁 예감이...
4 커리 06/15/12:23
사실 마구 틀려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영어는 자신이 없는 편인지라.
좀....그렇잖아요? 슈로대 보면 서양인이든 동양인이든 스페이스노이드든 은하의 반대편에서 온 괴물이든 존다-든 바암성인이든 다 일본말이 통해하는 거 이상하지 않습니까[버어]
0 리움 06/15/04:13
오홍 스피디한 전개
0 sadik 06/16/12:37
뭐. 틀려있지만 브레겟도 영어를 외국어로 배웠다면 별로 할말은 없을듯.
사실 그런 차원의 애기를 하자면 어떤 얘기를 하든 굉장한 장문을 한번만에 알아먹는 ㅚ수들이야 수두룩함.
4 커리 06/16/01:42
라뮤트/이것도 저것도 다 모에이벤트씬을 넣을 공간을 미리 벌어두기 위한 전략(......)
사딕/자네가 가하다면 가하겠지.......으음.
7 티에라바다 06/17/01:08
흥미로운 설정과 빠른 전개. 긴장감마저 느껴집니다^^
개인적이지만 영어는 두 세 마디만 쓰시고 나머지는 그냥 한글로 쓰셨어도
될 거 같았는데^^;; 참, 다른 건 잘 몰라도 이 두 문장은 이게 맞는 거 같더군요.
\'Don\'t afraid of me.\'(날 두려워 하지마세요)
\'Do you know who I am?\'(제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자유연재 검색된 1 / 1 Page, Total 17 Documents
번호 제목 이름 시간 조회 추천
17 V. (수정중 버그가 나서 삭제후 재업) [1] 4 커리 07.09.30 1431 0
16 수정판 업로드 종료 4 커리 07.09.30 1471 0
15 XIII;요정의 시각 연재종료 [7] 4 커리 07.07.31 2393 0
14 Epilogue. [12] 4 커리 07.07.31 1776 0
13 XIII [1] 4 커리 07.07.31 2073 0
12 XII. [2] 4 커리 07.07.26 1221 0
11 XI. [7] 4 커리 07.07.12 1389 0
10 X. [8] 4 커리 07.07.05 1727 0
9 IX. [3] 4 커리 07.06.27 1292 0
8 VIII. [4] 4 커리 07.06.25 1707 0
7 VII [6] 4 커리 07.06.22 1643 0
6 VI [5] 4 커리 07.06.20 1417 0
5 IV. [6] 4 커리 07.06.15 1662 0
4 III. [11] 4 커리 07.06.13 1580 0
3 II. [6] 4 커리 07.06.13 1477 0
2 I. [8] 4 커리 07.06.09 2291 0
1 0/Midnight. [10] 4 커리 07.06.07 6214 0
전체목록 < 1 >


Page loading time:0.03s, Powered by pimangBoard v3
회원가입 | 정보찾기

연재

자유연재

공모전연재

베스트 작품

작품 홍보


▶ Today 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