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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아 연대기] by Lunewolf

엘리시아 대륙에서 벌어지는 자유를 위한 전쟁. 그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실지는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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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12    추천 4   덧글 5    / 2009.01.18 0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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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조차도 흐려져 버린 인적 드문 어둑한 숲길.

이 숲길도 한때는 잘 닦인 도로로서 많은 행상인들이 오가던 거리였지만, 석 달이 넘도록 지속된 전란으로 인해 지금은 고통 속에 죽어간 원령들과 도적떼 정도나 이 길을 점거하고 있었다.

이전이라면, 내란 전이었다면 적절히 유복한 상인들에게서나 적당한 통행료를 받는 정도로 생계를 유지했을 그들이지만, 최근 이용객들이 발을 끊어서 그런걸까 마을을 약탈한다는 위험도 만점의 행위들을 빈번히 저지르고 있었다.

그 덕택에 시의 윗분들도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자신들의 지갑에서 아까운 돈을 털어 이 도적들에게 현상금을 붙이셨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도적분들이 설쳐주신 덕분에 나같은 떠돌이 검사에게도 수입원이 생겼다는 뜻이다.

-문득, 입가에 자조적인 웃음이 흘렀다.

한때 부르짖던 드높은 이상향. 그것을 지키기 위해 이 검과 목숨을 걸고 맹세했던 기사의 도.

그러나 불과 석달만에 그 이상향과 동료들은 무참히 박살났고, 간신히 살아남은 나는 이런 저질스러운 현상금 사냥꾼 생활이나 하고 있었다.

웃긴 이야기다.

지금은 도적떼라 불리는 그들, 그들의 대부분은 한때 내가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고 맹세한 국가의 주민들이다.

허나 지금은 지켜주긴 커녕 내 생계를 위해 그들을 베기 위한 송곳니를 들이대는게 나의 처지다.

기사도 아닌, 그저 일개 칼잡이에 불과한 나로서는 그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거짓말.

당치도 않는 핑계요 변명이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그저 타락해가는 자신을 위한 자조섞인 변명.

바스락

작은 소리가 울렸다.

누군가 숲의 잔디를 밟은 소리.

칼잡이로서의 본능이 그 작은 소리에 상념속에 잠긴 내 머리를 현실로 끌고 돌아왔다.

어둠속으로 눈을 돌리고 차가워진 애검의 손잡이로 손을 돌렸다.

빠르게 주위를 살피며 곧 드러날 누군가의 모습에 신경을 곤두세웠으나, 이윽고 내 눈에 비친 것은-

달처럼 아름다운 은발과, 빛나는 루비처럼 맑고 붉은 눈동자를 지닌-작은 여자아이였다.



-

“응...그러니까 란란?”

-라고, 붉은 눈의 꼬마 아가씨께서 말씀하셨다.

“아까부터 5번째이지만 제 이름은 란델 하인츠버그입니다.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고의적으로 퉁명스럽게 대답했음에도 이 안하무인, 방약 무도한 아가씨에게 내 말따윈 티타임때의 간식 같은 것이었던 듯 하다.

“그치만 그런 딱딱한 이름보단 그냥 란- 이라고 하는게 더 귀여운걸?”

“….”

어느 가문의 영애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방의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하면서 태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태도와 소질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내가 봐온 수많은 귀족들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그러시다면야 부디 뜻대로 하소서...”

“응! 물론이지. 난 아까부터 내가 편한대로 하고 있는걸!”

그 당당한 웃음에 나도 모르게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과 한숨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확실한 것은, 이 자색의 값비싼 드레스를 입은 영양을 모시던 누군가에게 엄청난 동정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뭐야 뭐, 그 한숨은! 그럼 내가 하인츠버그님- 이라거나 란델 경- 이렇게 불러주길 바라는 거야?”

“…그건 그것대로 조금 피하고 싶은 상황이군요.”

“응, 그러니까 그냥 란으로 낙찰!”

내 이름을 마치 뉘집 개 이름 부르듯 마음대로 줄여버리고 그대로 낙찰 시켜버린 그 꼬마 아가씨는 스스로의 결정에 만족스러운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악한 꼬마 독재자이며 어찌보면 예의를 모른다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이 아가씨니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되려 이런 모습이 아닌 평범하고 조숙한 모습은 왠지 매치가 안된다고 해야할까.

그 짧은 순간에 벌써 그녀의 페이스에 휘둘린 것에 잠시 고개를 털고는 아까 했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다시금 물어보았다.

“어쨌든, 다시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

“응, 뭔데?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해줄게-.”

내 질문의 요지는 매우 현실적이면서 간단했다.

귀족집 자제로 보이는 아가씨가 이런 시간에 인적도 드문 이곳에, 호위도 없이 무슨 용무로 왔느냐- 하는 것.

단순히 길을 잃었다기엔 귀족들이 사용하는 도로와 너무 동떨어져있었고, 이 자그마한 아가씨가 도적떼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며-뭐, 도적 두목의 따님정도라면 있을법한 시츄에이션이다만.

“아, 응... 나 조금 누굴 만나러 왔어.”

그러나 답변은 내 기대를 충족시켜주기는 커녕 되려 의구심만 깊어지게 하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를 찾으러 왔달까나... 하여튼 그래, 응.”

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누구를 찾느냐-하는 것.

그러자 아가씨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

“음... 솔직하게 말해서, 누군지는 잘 몰라.”

이상한 일이다.

저 독재적이고 고압적이고 안하무인한 성격도 이상하다면 이상하지만, 그거야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대귀족의 따님정도로 상상한다면 충분히 납득 가능했다.

그러나 그런 아가씨가 이런 음습한 장소에 해가 진 어둑한 시점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찾기위해 배회하고 있다는 것은 나로선 납득하기 힘든 대답이었다.

“하지만 만나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래서 여기까지 나온거니까.”

마치 내 마음을 읽고 안심하란 듯, 생긋 미소를 지으며 말한 꼬마 아가씨이지만 전혀 안심이 되지 않는 대답..아니 답변 구실도 못해주는 말이었다.

“하아-. 뭐 저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입니다만, 이 일대가 도적들로 뒤숭숭하다는 이야기 정도는 들어보시지 않았습니까?”

과거-라고 해도 몇 개월 전이지만- 어느 제국이 번창하던 시대에는 여성이 홀로 금화로 주머니를 꽉 채운 채 제국의 끝에서 끝까지 홀몸으로 여행해도 전혀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 치안이 훌륭했다지만 지금은 그런 황금기와는 정반대인 암흑기라 불릴 시기였다.

“후움… 그치만….”

목소리에는 힘이 사라지고, 표정 역시도 조금 측은해진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꼬마 아가씨. 그런 모습에 왠지 모를 죄책감 마저 조금 들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내 입지는 이 만남이 끝나는 순간까지 놀림감을 벗어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조금 입지를 굳혀볼 요량 겸 예전의 버릇대로 조금 훈계를 해버렸다. -시간이 지난 뒤에 나는 이 판단을 엄청나게 후회했지만.

“안그래도 흉흉한 요즘 시기에 이런 장소를 호위도 없이 돌아다니시다니, 가문에서는 얼마나 걱정하시겠습니까, 아니 가문에서 알기는 알고 있는건가요? 지금 아가씨 혼자 돌아다니시는 것을,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제가 아가씨 댁에 종사하는 자라면 책임자를 엄벌하고 당장에 뛰쳐나와서 찾아 헤매고 있을 겁니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어두운 표정을 유지하던 아가씨의 입 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가는 그 순간을.

그리고 직감했다.

나의 완벽한 패배라는 것을.

그 사람-꼬마 아가씨는 가슴에 살짝 손을 얹고 너무나도 과장되게 상처 입은 듯한 표정으로, 눈물마저 그렁거리며 그 애처로운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럼-. 란이 날 지켜줄 거지?”

가식이라는 것도 간파했으며,

과장이라는 것도 뻔히 보였으며,

거짓 눈물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일이었지만,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답변들을 봉쇄하고 꼬마 아가씨가 원하는 대답만을 얻기엔 충분한 타격이었다.

“…그렇게 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어쩔 수 없군요. 단, 이 숲을 벗어나 아가씨의 거처로 돌아갈 때까지입니다. 아시겠죠?”

이미 박살나버려 너덜해진 내 입지를 조금이라도 회복해보고자 했던 발언이지만, 만난지 10분도 안되서 나를 멋대로 휘두르고 있는 저 아가씨에겐 별 상관없는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응,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는 거니까, 어서 가자구?”

여전히 이 지역에 대한 위기의식 없이 촐랑거리며 벌써 저만치 가버린 꼬마 아가씨.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조금 속도를 내어 그 뒤를 쫓아갔다.

지키고 싶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나지만,

이런 빛바랜 검이라도, 잠시 동안이라도 눈앞의 작은 아가씨를 지키는 일 정도는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아, 그러고 보니까 꼬마 아가씨는 이름이?”

앞에서 뛰어가던 자그마한 아가씨는 내 질문에 춤 추듯 뒤돌아보며 생긋 미소지었다.

“비-밀. 아직은 말이지? 그치만, 그 ‘꼬마’라는 말 빼지 않으면 화낼지도 몰라?”

그리고 나의 대답은 기대 않는지, 곧장 은백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

“그렇구나, 란네 기사단은 엘‧디하트 방어전에서 전멸한 거였구나….”

유감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꼬마…아니, 아가씨.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화제였지만, 대화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이야기로 흘러와버렸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마따나 나도 어느정도 무뎌진 걸까, 예전만큼 가슴이 저려오지는 않았으니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다만 한가지 놀랐던 점은 이 자그마한 아가씨께서 석달 전 내란에 대해 의외로 상세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응…. 확실히, 그때 수비대의 배신은 정말 예상 밖이었으니까.”

그 말대로 였다.

덕분에 성 주변에 포위진을 형성하고 있던 적들을 요격하러 나갔던 부대의 태반이, 눈앞의 적과 자신들의 성벽 사이에 끼어서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채 괴멸해버렸다.

“길드 연합측에서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그정도까지 피해는 입지 않았을텐데 말이지.”

마치 그 일이 길드 연합의, 그리고 자신의 책임인양. 꼬마 아가씨는 분한듯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지으며 최대한 의연하게 대답했다.

“그때 길드 연합은 갓 창설된 단계였으니까요. 지금와서 새삼 누군가를 탓하거나 원망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살육전에서 홀로 간신히 살아남은 직후.

나는 신과 악마의 구별없이 원망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원망하며 저주했었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이야기, 그런 짓을 번복한다고 해서 죽은 이들이 돌아오는 것도, 실책이 만회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 전투에서 그나마 내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도 길드 연합에서 연합 총회의 의사결정을 무시하고 전장으로 달려온 몇 개의 길드가 전투에 참여한 덕분이었다.

길드 푸른불꽃의 부길드장이라는 사람이 연합 측에 아무런 통보 없이 자신의 예하 병력을 이끌고 초토화되고 있던 전장에 제일 먼저 도착했고, 나중에야 그 소식을 듣고 길드 주 병력을 이끌고 온 그 길드의 길드장이 분노로 길길이 날뛰며 스트레스 해소를 적군 한가운데에 퍼부었다는 비화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란도 대단하네. 그런 일방적인 포위망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니 말야. 비리비리하게 생겼는데, 실제로는 제법 실력이 있나봐?”

왠지 엄청나게 실례되는 발언을 들은 기분이었다.

“하아-. 이래뵈도 한때는 그 푸른불꽃의 돌격대장과도 호각을 이룰거란 평을 들었습니다만….”

내란에 대해 나름 빠삭한 아가씨인 만큼, 이 말이 얼마나 대단한 의미인지 알 거라 생각하고 아가씨의 반응을 살폈으나,

“헤에- 그 돌격 바보랑 말이지?”

하고 엷은 비웃음과 함께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긴, 피비린내 나는 전장과 가까이 할 리 만무한 이런 고귀한 자제분께서 내 말뜻을 제대로 이해했을 리가 없지.

“뭐, 아무래도 좋은 일이죠. 그런데, 그 만나야 할 분이란 사람은 아직 입니까?”

같이 숲을 돌아다닌지 어언 3시간.

안개가 걷히고 하늘 저 높은 곳에서 은빛의 달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고, 그렇게 오래 걸었음에도 내 옆의 꼬마 아가씨는 지친 기색 없이 자신 있게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중간에 도적들을 두어차례 만나긴 했지만 조그만 찰과상이라도 입으면 겁먹고 도망쳐버리는 기개없는 집단이었던 지라 별 문제는 안되었지만….

싸우는 내내 뒤에서 방실방실 웃으며 급기야는 박수까지 쳐대며 ‘란란 잘 싸운다- 파이팅!’을 외치고 있던 누군가씨는 조금, 아니 매우 거슬렸다.

“으응…. 모르겠어. 아니, 곧… 내가 왔다는 것. 상대도 눈치 챈 것 같아.”

만났을 때부터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선문답 수준의 애매모호한 답변뿐이었지만 사실 이미 깊이 알고자 하는 욕구는 포기한 지 제법 되었다.

그저 최대한 빨리 이 귀찮은 아가씨 지키기에서 해방되고 내 갈 길을 다시 걸어가고픈 생각뿐.

-그래, 내가 갈 길. 가야 할….

섬광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간 감각.

내가 가야할 길은, 대체, 어디에 남아있다는 것일까.

좀 전까지의 활기를 잠시 닫은채 조용히 걷고 있는 아가씨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이 아가씨를 집까지 바래다주면, 나는 아마도 다시 방황길에 들어서겠지.

나보다 더 약한 자들을 베어내면서, 진흙 밑바닥에서 평생을 뒹굴다가 어느날 객사를 할 그런 삶을 살아가겠지.

아이러니하다.

한시라도 이 귀찮은 아가씨에게서 해방되고 싶은 기분과 동시에 지금의 나라도 누군가를 지키고 있다는 그런 고양감, 사소한 일의 사소한 행복이지만, 어째서 일까….

왠지 잠시라도 놓치기 아까운, 내 분에 겨운 꿈의 파편 같은 느낌이었다.

-

더 이상 도적들에게 습격을 받거나 하는 일도 없이, 나는 꼬마아가씨랑 이런저런 잡담이나 하며 계속 그 뒤를 따라갔다.

“후웅, 그럼 쭈욱 혼자였던 모양이네 그 이후로.”

그리고 어째서인지 이야기는 다시금 피하고 싶던 화제로 돌아온다.

“그치만 이런 현상금 사냥꾼 말고 다른 일은 생각 안해본 거야?”

분명 한때 그런 생각도 했었다.

전란 끝에 피폐해져버린 이 무너져가는 국가를 지탱한 길드 연합. 그들중 한 곳이라면 이 죽어가는 기사의 마음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았었다.

“란 정도의 실력이라면 어느 길드에서라도 환영할 거 같은데 말야.”

그래 한때는 그랬다.

하지만 내가 속한 기사단이 괴멸당한 그 전투.

누군가를 지키겠다던 드높은 이상향- 그것은, 내 목숨 하나 부지하기 힘든 열악한 전황속에서 휴지조각 보다 못한 것으로 전락해버렸다.

내 검에 생명을 담아, 내가 지키려 했던 도시의 주민들은,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우리들을 배신하였다.

나와 함께 나가 싸웠던 동료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차디찬 시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는게, 난 잘 이해가 안가.”

아니, 되려 알기 쉽다.

다시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스스로의 무력함에 좌절하고 싶지 않았다.

상처받기 싫어서, 다시 슬퍼하기 싫어서, 이런 못난 놈이기에,

스스로를 죽여가는 이런 길 밖에 택하지 못한 것이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어두워 진걸까.

어느덧 걸음을 멈추고 묘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꼬마아가씨.

“미안. 상처, 건드린 모양이네.”

조금은 의외였다.

이 아가씨에게서 사과를 받는다는 건 절대 무리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리고 그 순간,

“누구냐!”

직감과 동시에 외치며 검을 뽑았다.

살기가 느껴지는 방향과 아가씨 사이에 벽을 만든 후 차분히 적의 수를 파악했다.

셋, 아니 여섯.

아까와 마찬가지로 그냥 도적인건가, 그렇게 무리는 아니겠군- 이라며 안심하려는 찰나에 좌우로부터 느껴지는 살기를 감지하고 주위를 살폈다.

흉흉한 살기를 띄며 다가오는 적의 숫자는 적어도 20명 이상은 되보였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내가 신경쓰고 있는 부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비록 숫자가 많다고 할지라도, 단순한 도적떼라면 아가씨를 지키며 싸워야한다는 핸디캡이 있을지언정 다소의 상처 입을 각오만 있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것은 이 도적들의 일부에, 오전에 보았던 시청의 근위병들을 발견하면서 부터였다.

“응-. 그래, 그래. 농민들만으론 안되니까. 이젠 정규병들까지 포함시켜서 이 자작극을 벌이고 있던 거였어? 정말 대단하네, 이 시의 시장이란 분께선 말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낭랑한 목소리에 나는 이게 어떻게 된 사태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즉 애초에 이 도시에는 흉악한 도적들따위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니, 있었다해도 이정도로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존재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 상정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도적을 가장해 자신의 도시를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약탈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도적떼’들에게 현상금을 걸어 윗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고, 덤으로 현상금을 노리고 달려드는 나같은 자들을 도적으로 위장해서 희생양으로 삼는 대담한 계획이었던 것이다.

“하하….”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때’와 같다.

내가 지켜주리라 믿었던 성문이, 등 뒤에서 불길한 소리와 함께 닫히는 것을 본 그때와.

손 끝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스륵-하고 검이 미끄러져 나갈 무렵.

“란, 괜찮아. 이번에 란이 지켜주겠다고 한 사람은 아직 여기, 이곳에 있잖아?”

속삭이듯 작게 들려온 목소리.

다시금,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지금 중요한 것은, 내 임무는, 내 몸을 방패삼아 이 무리들로부터 이 아가씨를 지켜주는 것.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니까, 다른 것은-.

“아가씨.”

생각할 필요도 없어.

“최대한 제 곁으로, 이들이 당신의 털끝 하나 건들지 못하게 할 테니까.”

‘응.’ 이라며 살며시 내게로 다가온 꼬마 아가씨를 확인하고 나는 검을 움켜잡았다.

“ !”

적들 중 누군가의 신호와 함께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나.

갑옷 대신 받쳐 입은 가죽이 불쾌한 소리를 내며 살점과 함께 찢어져 나갔다.

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쓰러져 갔다.

셋.

넷.

다섯!

고요한 밤하늘 위로 쇠와 쇠가 맞부딪치며 나오는 살벌한 소리가 매아리쳤다.

아름다운 달빛 아래에서 나는 구름처럼 시체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열하나, 열둘.

정규병이라 할지라도, 기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수많은 난관을 해쳐온 내 상대는 아니었다. 애초에, 한 명의 기사와 일개 병사의 전투력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열셋, 열 넷.

두목 격으로 보이는 거대한 양날 도끼를 든 남자가 부하들을 제치고,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내게 돌진했다.

좋은 기백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안타깝게도 실력이 받쳐주지 않았다.

예상이 맞았던 걸까.

방금의 남자가 쓰러지자 적들은 겁을 먹기 시작했는지 그들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이틈에 기세를 잡아야 한다.

나는 검을 단단히 고쳐 쥐고,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러나 그 순간.

「ㅡ 거기까지다.」

이 세계의 것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인 목소리가, 나의 움직임을 저지했다.

그리고 천천히 내 시야에 들어오는, 하나의 그림자는,

빛의 반사조차 거부하는 듯한 진묵색의 갑주로 온몸을 두른 그것은 분명.

“ㅡ 가스페론이라. 드디어 주연 등장인거야?”

내 추측을 확증으로 바꾸어주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꼬마아가씨의 목소리.

가스페론.

군사학교 시절 고문헌으로 본 적은 있었다.

「인간들이 쇠붙이에 의한 다양한 공격을 시도하자 마족들은 이에 맞춰 철제에 의한 공격을 무효화 시키는 가스페론이라는 마족을 대량으로 양산하여 엘리시아 대륙을 뒤덮는 선봉대로 삼았었다.」

흥미 위주로 본 것이라 이 문장 역시 정확한 것인지 뚜렷하지 않으나, 무엇보다도 신화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러나 눈앞의 그 모습, 죽음을 상징하듯 진묵의 갑주를 두른 그 모습에 나는 척추로부터 내려오는 서늘함을 느꼈다.

정신차려라, 란델. 이건 명백한 현실이다.

눈앞의 상대의 명백한 살기를 감지하고서도 신화니 환상이니 말 할 때가 아니었다. 아니, 그 이전에 적을 눈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다니 이 무슨 긴장감 없는 행동이냔 말이다.

이유 따위는 알 수 없으나 눈앞의 것은 틀림없는 마족, 그것도 나 같은 칼잡이가 상대하기엔 가히 최악이라 할 만 한 부류였다.

즉, 나와 녀석의 대결은 나의 필패(必敗). 절대패배를 의미하며, 다시 말해서 여기서 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도망치는 것-.

바보냐!

그럴 수는 없다.

분명히, 지켜주겠다고 맹세한 사람이 등 뒤에 있다.

여기서 내가 내 목숨 하나를 부지하기 위해 도망쳐버린다면,

이 자그마한 꼬마아가씨가 어떻게 될 지는 불 보듯 뻔 한 노릇.

마지막의 마지막에 맹세조차 져버린다면, 그렇게해서 살아남는다 하면 내 앞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인생을 살기 위해 검을 든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결심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꼬마아가씨!”

이미 ‘그때’ 그 장소에서 잃었어야 할 목숨.

지금 이렇게 누군가를 지키면서 잃는다고 해도,

결코 후회할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아니, 당신이 도망갈 때까지 반드시 제 목숨을 다해서 지켜드릴 테니까…!”

목숨과 함께 내거는 기사의 언약.

그래.

지금부터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하는 일 없도록.

“후움... 그럼, 란의 생명은, 내가 접수해도 된다는 이야기지?”

여전히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네. 제 목숨, 마지막 순간까지 아가씨를 지키기 위해 사용할 테니까.”

각오를 다지고, 검을 고쳐 잡았다.

“응, 그래. 란의 생명, 지금부터 내가 접수 할 테니까-.”

소리 없이 다가오는 가스페론를,

온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내기 위해-!

다짐하고- 달려갔다.

쇠붙이가 박히지 않는다고 했지만 물리적 충격마저도 무시하는건 아닐터, 그러면 그것만이 유일한 돌파구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의 검은 놈의 몸에 수차례 일격을 가하였다.

공격을 하면 할수록, 고문헌의 말이 사실이라는 증명을 할 뿐이었고 그럴수록 절망이라는 이름의 색이 짙어졌지만 상관없다.

내 몸은 여기서 뼈를 묻기로 각오했으니까.

내 연격을 맞고도 상처 하나 없는 놈은 잠시간의 틈을 노려 내게 공격을 개시하였다.

재차, 삼차 들어오는 가스페론의 일격.

나의 검에 비할 속도는 못하였지만,

이쪽의 반격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페널티를 떠안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적의 공격을 막아내며

꼬마아가씨가 어서 빨리 이 장소에서 도망치기를 비는 것 뿐.

하지만 그 순간 내 귀에 들려온 것은, 가냘프면서도 당당한 목소리.

「모든 것을 꿰뚫는 ㅡ」

등 뒤에서 날라온 흰색의 빛은,

「ㅡ 순백의 화살.」

단 일격에, 가스페론의 전신을 붕괴시켰다.

어안이 벙벙해진 채,

나는 천천히 돌아서서 바라보았다.

꼬마아가씨는 아까의 그 자리에서 단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

왼손에는 거대한 장궁을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개가 늦어졌네. 푸른불꽃 부길드장이자 제 2번대 부대장, 이리아라고 해.”

여전히 뭔가 엄청난 소리를 거침없이 늘어놓고 있는 꼬마아가씨.

“아까 전에 내가 란의 목숨 접수한다고 했으니까,

이제부터 란도 내 직속의 2번대 일원. 앞으로 잘 부탁해-“

생긋 웃어 보이면서, 이제서야 자신의 이름을 밝힌 꼬마아가씨는

손에 들려있던 장궁을 아무렇지도 않게 등 뒤로 휙 던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양 사라지는 장궁.

아아, 그런가.

마력으로 임시 현계 시킨 무기였던 것인가.

“ㅡ 에, 뭐야, 그 표정은?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했는데, 그런 무뚝뚝한 표정 짓고 있는건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아?”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천천히.

그리고 더 확고하게.

나는 결단을 내렸다.

“아우 정말! 저도 잘 부탁합니다, 라던가, 아니면 ㅡ”

꼬마아가씨에게 조용히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 란델 하인츠버그는, 태고의 빛과 바람의 이름을 걸고...”

고대로부터 이어진, 엄숙한 기사의 맹세.

다시는 읊조릴 일 없다고 생각했던 이 신성한 언약이,

아직도 고요하게 우리를 감싸고 있던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

“아, 나 정말!!!”

푸른불꽃의 길드 아지트라는 곳으로 오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3일 후의 일이었다.

길드 아지트라고는 해도, 중후한 고성(古城)의 모습에 더 가까운 그러한 장소였다.

갓 도착한 우리들을 제일 처음으로 반겨준 것은,

보라색 머리에 온화한 분위기의 호리호리한 여성분이었다.

그리고 이리아 아가씨께서는, 그 여성분을 보자마자 각종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인재를 포섭했다고 생각했더니,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지식한 고지식덩어리야!”

무언가 엄청난 폭언이라고 생각되는 말을,

바로 옆에 있는 내가 있다는 사실에는 신경도 안 쓰는 듯 내뱉는 꼬마아가씨.

“내가 몇 살이냐고 물어보니까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아?! 검을 배우기 시작한지 5년 이래! 아우, 정말!”

원래 기사는 처음으로 자신이 검을 수여받은 날을 자신의 두 번째 생일로 여기게 되어있다.

나는 이 풍습에 따라서 5년이라고 대답하고,

꼬마아가씨의 두 볼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고 실제 내 나이도 분명히 말해주었다.

그리고 같은 질문을 내가 되물어보자

‘정신연령 43살’이라는 이상한 답변만 들었던 것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편리하게도,

꼬마아가씨는 그 사실을 완전히 까맣게 잊어주신 모양이었다.

“뭐, 원래 그게 기사들 교육의 일부니까요.”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띄우고 꼬마아가씨를 달래는 보라색 머리의 여성.

아무래도 이런 식의 투정을 들어주는 데에 아주 익숙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이번 조사는 어떻게 되셨나요?”

그리고 곧장 이어지는 화제 돌리기.

그 유연한 대처에 나는 마음속으로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응. 뭐, 이번에도 마족이 개입한건 알았지만, 별반 소득은 없었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던 꼬마아가씨는 이내 기세를 수그렸지만,

여전히 무언가 살짝 분한 듯한 어조였다.

그 분개의 대상이 \'나\'에게서 다른 \'무언가\'로 넘어간 듯한 느낌에 속으로 약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했지만.

“가스페론따위. 약한 주제에, 덤으로 잡아서 족 쳐봐도 아무것도 모르는 하급마족 따위가 자기가 무슨 대장인양 의기양양하게 기어 나올 때는 완전히 어이상실이었다니깐.”



그래, 분명 가스페론은 강한 축에 속하는 마족은 아니었다.

활이라던가, 마법에 능통한 사람들이라면 별반 문제없이 대적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검을 다루는 사람이었고,

그 \'약한\' 가스페론을 상대로 목숨까지 걸 각오를 했었다.

ㅡ 아주 잠깐 동안, 뭔가 엄청나게 바보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단순한 착각이겠지.

“저런, 저런. 수고하셨어요. 그래도 전부터 눈독들이고 있던 란델군의 영입에 성공했으니까, 어느 정도 수확은 있던 셈 아닌가요?”

그래 분명히 착각이었을 터.

그런데.

뭔가 방금, 그냥 흘려 넘기기 힘든 듯한 말을 들은 듯 싶다.

“에엑?! 잠깐! 그, 그런 걸 말해버리면ㅡ!”

아아, 그래. 이런건 내가 듣는데서 말해버리면 안되는 거지.

ㅡ 아니. 잠깐.

\'전부터 눈독들이고 있던\'?

“이리아님, 진정하세요. 아, 그리고 시라야님쪽에서 뭔가 좋은 소식이 있는 듯 하니까.”

여전히 마이 페이스로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으며 자기 할 말 다 하고 있는 여성분.

처음에는 단지 온화하고 편안한 느낌의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가면 갈수록 어떤 의미로는 무섭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이제 가서 좀 씻고 쉬도록 하세요. 에, 란델 하인츠버그님? 나중에 잠시 시간 되시면, 잠깐 대련 부탁드려도 될까요? 요즘 아무래도 부길드장께서 미뤄두신 서류업무에 치이다보니까, 몸이 계속 찌뿌둥한 것 같아서요.\"

그리고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잇는 그녀.

여성과의 대련이라는 점이 불만스러웠지만, 이 길드에 속해있을 정도의 사람이니 가벼운 대련 정도라면 괜찮겠다라는 생각에,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약 30분 후.

나는 고개를 끄덕인 자신이, 그렇게도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나도 검술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고, 주위에서도 꽤나 정평이 나 있었지만, 별반 힘도 없어 보이는 이런 호리호리한 아가씨를 상대로 20여분 정도도 버티지 못하고 온몸에 타박상을 입은 채 시합 포기를 선언하고 있었다.

ㅡ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연습용 죽도가 있는 대로 부러져서 더 이상 대련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긴 했지만.

방어전에서 일방적인 구타전이 되어가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던 이리아 아가씨는,

대련이 끝난 후 나에게 다가와서 치료를 해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란, 정말 대단하네. 아일을 상대로 그 정도로 버티다니. 솔직히 다시 봤는걸.”

아일, 이라면 설마.

“... 설마 저분이, 바로 그 하이리스 아일님?”

어떤 의미로 무서운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의미로 무시무시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약간은 아쉬운 듯 허공에 자루만 남은 죽도를 휘두르는 하이리스 아일양.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리야 아가씨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응, 아일이 유명하긴 유명하지.”

ㅡ 그냥 유명하다, 라고 한다면 사실을 대단히 축소시켜 말하는 것이었다.

1년 전의 루프티르 회전에서 보라색 머리의 여성이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단신으로 적진을 돌파하던 장면은, 아직까지도 검을 배우는 사람들의 입에 오를 정도로 유명한, 가히 전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아마 내가 이번에 나오면서 내팽개쳐버린 서류업무 처리 때문에 꽤나 스트레스 받고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 모양이네....”

아아. 그렇다면 나는 누구 덕분에 분노한 하이리스 아일양의

스트레스 해소거리가 되었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건가.

“ㅡ 후움. 오늘 부러진 죽도의 개수랑... 이번에 내가 쓴 여행 경비랑-. 우와. 나츠가 나한테서 청구서 받으면 표정 한번 볼만 하겠는데. 이번에도 청구서만 던져두고 도망나오는게 나으려나.”

나의 치료를 마치고 이제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꼬마아가씨.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근시일 내에 뭔가 시끄러운 소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좋았다.

나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부터는 이곳이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

새로운 동료들과, 새로운 가족들.

그리고 새롭게 지켜줘야 할 사람.

가슴 속에 뻥 뚫려있던 구멍이,

어느샌가 조금씩 메워지기 시작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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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Lunewolf  lv 3 5.5% / 622 글 19 | 댓글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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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미링미링 01/18/04:47
재밌다옹~
3 Lunewolf 01/18/05:11
미링미링 // 하앜하앜 리플은 나의 힘 //ㅂ//
1 꿈나무일동 01/21/10:42
호오오옷 +.+ 잘 읽고 갑니다 (__)
3 Lunewolf 01/21/10:13
꿈나우일동 // 감사합니다아 +_+ 앞으로 시작이니 잘 봐주세요 >ㅅ<
0 건슬링거 01/27/03:02
헤에... 재미있어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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