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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아 연대기] by Lunewolf

엘리시아 대륙에서 벌어지는 자유를 위한 전쟁. 그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실지는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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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Lunewolf  lv 3 5.5% / 622 글 19 | 댓글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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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Lunewolf[Lunewolf]  
조회 740    추천 3   덧글 1    / 2009.01.23 08:15:45


 

Endless battles joined,     끝없는 전투,
Numerous victories,        수많은 승리,
Countless defeats.       셀 수 없는 패배.
Yet the tide of Darkness was overwhelming, 그러나 어둠의 세력은 여전히 강대하였고,
So was the power of the Dark One \"Apsu,\" 암흑신 아프수의 힘 역시 건재하였다,
In the end it was \"Marduk\" who fell,       마지막에 결국 쓰러진 것은 마르두크,
Grieving and bleeding,   상처입고 탄식하면서,
And the heaven shed its tears that day.  그리고 그 날 하늘마저 눈물을 흘렸다. 






 
 

***

 국제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가관의 근본적인 관계를 힘의 질서에 기반을 둔 약육강식의 세계로 바라보는 현실주의 이론.
 다른 하나는, 상호간의 이익 증진을 위해 이른바 윈-윈 전략을 통한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간주하는 이상주의 이론.

 어느 이론이 더 현실성이 있는지 아직 역사는 증명하지 못했다만, 전란의 기운이 감도는 지금 이곳에는 아무래도 전자의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들렸다.
 10여 년 전만 해도 롬바르디아 제국의 입장에서 엘리시아와의 전면전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사항 중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 내란을 겪으면서 엘리시아의 국력은 많이 피폐해졌고, 반면 그 사이에 롬바르디아 제국은 북방의 섬나라와 동쪽의 이민족을 제압하면서 그 힘을 흡수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그 엘리시아의 명장 유스티치아와 오를레앙이 부재한 지금, 제국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던 것이었다.

 물론 롬바르디아 제국 제 7군단의 오거스트 중장은 이러한 역학 관계 따위에 관심을 갖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높은 망루에 서서 공격 목표로 지정된 안템 공국의 영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소국가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제국 측에 화평의 의사를 타진해왔으나, 상부로부터 그가 받은 명령은 변함없었다.
 \'원활한 보급로의 확보를 위해 안템 공국의 점령은 불가피하다\'.
 굳이 이 손바닥만 한 땅을 접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엘리시아로 진입하는 길은 수많이 있었다.
 하지만, 「군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명령에 따르는 복종심과, 그를 수행하기 위한 용기뿐,」이라는 격언을 지상 명제로 여기는 그에게 다른 요소는 필요 없었다. 아마, 고대의 어느 철학자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군인의 귀감이라고 격찬했겠지만.

 \"앞으로 3시간.\"

 동이 트기 전까지 아직 1시간. 그 후, 2시간 내로 안템을 복속시킨다. 지금 오거스트 중장의 머릿속에든 것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

 닫힌 눈꺼풀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
 창문 너머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어렴풋 들려왔다. 한 겨울에 해가 훤하게 떠있다는 것은, 못해도 8시는 되었다는 것인가.
 나는 푹신한 이불 속에 파묻혀서 좀 더 쉬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밀어내고, 상체를 일으키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하암\"

 지난 두 달간 전선을 따라 노숙을 해서 그런가, 따듯한 침실에서 잘 수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나도 많이 그새 많이 물러진 건가.\"

 문득 입가에서 새어나오는 자조적인 웃음.
 기사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철이 들었을 무렵 나는 항상 내 스승과도 다름없었던 액튼 경을 따라 전장에 나가있었다.
 하늘을 가려줄 지붕 대신, 지면과 내 몸 사이에 모포라도 한 장 있으면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시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랬던 나도 어느덧 이런 포근한 잠자리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기사 신분은 포기했을지 몰라도 기사의 마음가짐마저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철저한 자기관리.
 평소보다 늦은 시작이긴 했지만 나는 조금 더 자고 싶은 욕구를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 크진 않지만 좁지도 않은 나의 방.
 언젠가 이 방에 온 이리아님은 \'살풍경해, 남자라면 너구리 인형 너댓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지!\'라며 말씀하셨다지만, 현재 그 살풍경한 방에 놓인 인테리어는 조금 큰 배낭 하나.
 전 날 걸린 2단계 출동준비 덕분에 꾸린 준비물. 안에 든 것은 단순한 모포, 의복, 생필품, 점검도구 정도였으며 부대 물품 준비 역시도 2단계에 완료하며, 여기서 제 1단계 출동준비태세가 발령되면, 개인 비품 이외에 부대 단위의 비품을 수송하여 출발 준비 완료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러나 우리 제 2번대는 총원이라고 해봤자 겨우 7명. 그러한 이유로 제 2번대의 식료품을 비롯한 기타 전 품목은 제 3번대에서 챙겨주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이 건에 대해서 한번 제 3번대의 부관 류가희님이 이리아님한테 항의를 한 적도 있었다.
 \'자기 부대 비품은 자기 부대가 챙기는 것이 합리적인 것 아냐?!\'하고, 이에 이리아님은 \'3000명 먹을 것 준비하는 거나, 3007명 먹을 것 준비하는 거나 같지 않냐.\'라고 반박하였고, 에... 결국 입이 더 험한 사람이 이겼다는 이야기.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에 내려갔을 때는 시계가 이미 8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
 근면한 사람들은 기운차게 활동을 시작할 시간이기도 했건만, 내 예상대로 식당 안에 같은 2번대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일님을 제외하고는-그 아일님은 이 시간이면 부대장이 해야할 업무들을 처리하고 있을 시간이며- 대체로 다들 아침에 약한 편이었고, 부대원중 특히 누군가는 「아침 식사 따위 조류나 하는 것」이라는 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여하튼간에 그러한 연유로, 2번대 중에서 이 시간 식당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언제나 나 혼자.
 오늘 아침에 나와 마주앉아 식사를 같이 한 사람은, 제 3번대 소속의 샤나스라는 키다리 청년이었다.
 20대 초반쯤 되었을까, 아직 젊은 나이였지만 평균 연령층이 비교적 낮은 우리 길드 내에서는 결코 어리다고만 할 수는 없는 나이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란델씨.\"
 \"아아, 좋은 아침.\"

 근면과 성실이라는 두 단어를 인생의 모토로 삼는 듯한 이 청년은 푸른달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이리아님과 알고 지낸 사이인 듯하였다.
 그랬던 그가, 푸른달이 푸른불꽃이라는 길드 체제로 개편되면서 제 2번대가 아닌 제 3번대 소속으로 들어간 것은 이른바 전투요원이 아니기 때문.
 본인은 그에 대해서 조금 씁쓸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대규모 작전에 있어서 제 2번대는 제 3번대와 거의 통합되어 움직였기 때문에 크게 불만을 갖지는 않는 것 같았다.

 다른 여타 길드가 보통 길드장을 주축으로 지휘소를 설립하고 부길드장이 참모 역으로 보좌를 하는 반면, 우리 길드는 나츠님이 「길드장이라면 역시 진두지휘」라는 것의 맹렬한 신봉자이자 선구자여서, 자연스럽게 후방의 지휘소 구축은 부길드장인 이리아님을 주축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겨우 7명으로 지휘소를 구축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라서.
 나츠님 예하의 제 1번대가 선봉 부대를 담당하면, 길드 최고의 부대인 크롤리님 예하의 제 3번대가 지휘소를 구축하고, 여기에 더해서 의무대 성격에 가까운 엘리네님의 제 4번대가 가세하면서 본진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루시온님의 제 5번대, 실버스컬님의 제 6번대가 각각 좌익과 우익을 담당.
 여담이지만 이 길드장의 모습을 본 자유주의연맹의 아리에스님이, 「바람직한 길드장의 모습」이라면서 격찬하였고 그 뒤로 툭하면 최전선으로 달려 나가는 그의 모습에 부길드장 펠리시아님의 처절한 절규가 들려왔다는 이야기도.

 \"오늘 아침, 감자 수프네요.\"
 \"으음. 그리고 감자 샐러드.\"
 \"이건 보나마나 감자 빵인가….\"

 내 직속상관의 행위가 분명한 이 식단은, 집에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나는 묘하게 우울한 식단이었다.

 \"그러고 보니 샤나스군은, 요즘도 검의 수련 계속 하는 중인가?\"
 \"네? 아, 네.\"

 비록 주 전선에 나설 일이 별로 없는 전투 보조요원이라고 하더라도, 샤나스군은 검을 사용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계속 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아마 푸른달에 들어왔던 그 순간부터 계속.
 싸움과는 별로 관련 없어 보이는 그가 어째서 그런 수련을 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그 뒷이야기는 나로선 알 수 없는 사항이었지만,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나는 샤나스군의 수련에 있어서 종종 코치라던가, 조언 등을 해주는 입장이었다.

 \"여전히 예의 그 대검? 전에도 말했지만, 샤나스군 체격이라면 조금 더 가벼운 걸 들어도….\"

 그리고 그가 자신의 주 무장으로 골랐던 것은, 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터무니없이 거대한 물건이었다.
 물론 아일님의 애검 「시엘」이라던가, 루시온님의 「스칼렛」과 같은 유명한 대검들도 전신 길이가 1미터 90이 넘는 괴물 같은 검들이었지만, 샤나스 군이 고른 검은 오히려 한술 더 떠서 도신 길이만 따져도 대강 2미터는 되어 보이는 것이었다. 이래서야, 사람이 검을 휘두르는 건지 검이 사람을 휘두르는 건지 알 수 없는 수준.

 \"아뇨, 저 싸움에는 특별히 재주가 없으니까, 무기 만으로라도 상대를 압도하지 않으면.\"

 샤나스군의 운동 신경 등에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내게 묻는다면 오히려 일반인 이상의 수준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주변에 하도 쟁쟁한 비교 인물들이 많아서일까, 이 청년은 그 대검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몸에 되레 무리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한 적도 있었고, 그렇게 검을 다루는게 아닌 검에 휘둘릴 만한 물건은 되려 해롭다고 했지만 그의 귓가에도 가지 못한듯 하다.
 뭐, 어찌되었건 자신의 「검」을 고를 만한 권리는 그 「주인」에게만 있는 것.
 그러한 둘만의 관계에서, 샤나스군이 그 대검을 자신의 「검」으로 선택하였다면, 그리고 그 검이 샤나스군을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였다면 나에게는 그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가 없었다.

 나는 마지막 한 조각 남은 빵을 입 안에 넣고, 식기를 정리하였다.

 \"그러면, 오늘은 오래간만에 대련장에나 가볼까? 특별히 오전 일정은 없는 것 같으니까.\"
 \"네. 부탁드립니다.\"

 내가 정찰을 가있는 두달간의 성과를 시험해보고 싶은듯, 조금 기가 약해보이기도 하는 청년의 두눈에 빛이 났다.
 좋은게 좋은거지.

 샤나스 군과 함께 간 곳은 길드 대련장.
 나무 바닥으로 만들어진 이 장소는, 몇달 전까지만 해도 연무장이라는 이름의 화려뻑적한 간판과 함께 걸려있었으나 이곳을 \'접수\'한 우리 길드장께선 금으로 칠한 그 간판을 보더니 자신의 애도愛刀로 일격에 박살을 내버리고 대련장이라는 간결한 명칭으로 바꿨다는 이야기.
 이름이야 어쨋거나 부대 전체가 들어올 수도 있을만큼 넓은 공간은, 올 때마다 당시 대귀족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한 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한 그의 눈빛에 강렬한 투지가 보였다.

 -헤에, 제법..
 솔직한 마음으로 감탄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전투에 기백이야 말로 필수 요소.
 게다가...

 \"갑니다.\"

 나직이 중얼거린 샤나스 군은 돌연 내앞으로 뛰쳐왔다.
 저 무거운 검을 들고 도약이라도 한 듯, 한순간에 내 정면에서 대검이 휘둘러졌다.
 
 \"이크.\"

 도약과 동시에 검을 뒤로 당겨, 목표물이 사거리에 들어오면 사선으로 내리 긋는, 검술의 기본인 이 자세를 가르친 사람으로서 이런 실력의 향상은 기쁘기 그지 없었다만... 연습-이라고 해도 저런걸로 맞으면 골로 가기 딱 좋은 사이즈였다.
 
 \"칫.\"

 샤나스군은 안타까운듯 혀를 차고는 내려친 방향을 역행하여 재차 공격을 시작했다. 확실히, 반사신경과 운동능력이 좋은 사람일 수록 다음 반격에 용이하도록 간발의 차이로 피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이 수법은 먹힐지도 모른다. 그러니까...좀 더 숙달 된다면.

 \"핫!\"

 기합과 동시에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대검의 날부분을 걷어차버렸다. 무게 중심을 뒤흔든 이 공격에 샤나스 군은 자신의 무기에 휘둘러졌고, 그 순간 내 칼 끝이 그의 목에 겨눠졌다.

 \"하아, 하아...\"
 고작해야 2합 반. 그럼에도 거친 숨소리가 세어나온다.

 \"계속 할 수 있겠나?\"
 \"하아...하아...네, 부탁드립니다.\"

 고작-이란 표현을 썼지만 얼핏봐도 10kg에 가까워 보이는 저런걸 통상검과 맞먹는 속도로 휘둘렀으니... 숨을 몰아쉬는 것도 이해하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
 그렇게 15분 이상을 대련하자 그는 마치 비라도 맞은 것 처럼 온몸이 흠뻑 젖어버렸다.

 \"잠깐 쉬고하지 않겠나.\"
 \"아뇨, 괜찮...습...\"
 \"아니, 내가 쉬고 싶어서.\"
 
 내가 그렇게 말하고 땅에 주저앉자, 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결국 포기하고 조심스레 검을 내려놓았다.

 \"몇 번을 말하지만, 그런 무거운 검은 되려 샤나스군 몸을 망칠 뿐이라니까. 저런걸 제대로 휘두르려면 고릴라 같은 팔과 몸이 필요하다구?\"
 \"하하...\"

 자신도 알고는 있다는 듯 샤나스 군은 수줍게 미소지었다.
 큰 키 덕분에 결코 왜소해보이지 않는 그였지만, 저런 무식한 것과 함께 있으면 어지간한 거한이 아니면 가녀려 보일 수 밖에.

 \"여어-! 란델, 샤나! 아침부터 훈련중인건가? 부지런 하구만.\"

 마치 마술처럼 고릴라 같은 팔과 몸의 소유자가 등장했다. 구릿빛 피부에 탄탄한 근육, 짧게 친 검은 머리카락. 누가봐도 역전의 용사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루시온님.\"
 \"좋은 아침입니다. 루시온님.\"

 5번대 부대장 루시온님은 길드 내에서도 손꼽히는 무장으로, 선천적인 힘인지 후천적 노력인지-아마 둘 다 일 것이다.- 그의 대검 \'스칼렛\'은 샤나스군의 그것과 큰 차이를 못느낄 정도로 거대한 검이었다.
 서민이었던 것도 있겠지만 워낙에 활발한 호걸인 그는, 친근하게 다가오더니 바닥에 있는 샤나스의 검에 눈을 돌렸다.

 \"이야, 결국 포기하지 않았구만? 나도 대검 애호가지만 자네한테는 좀 더 작은 검이 편할 텐데 말이야.\"
 \"저도 몇 번이나 말했지만... 소 귀에 기도문을 읊는게 빠를 것 같군요.\"
 \"하하.\"
 \"샤나, 이것 잠시 들어봐도 괜찮을까?\"
 \"아, 네... 물론.\"

 전사에게 검은 생명. 그것을 잘 아는 루시온님은 답지 않은 정중함을 보이고는 샤나스 군의 그것을 한손으로 가볍게 들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서 몇 발짝 떨어지더니 마치 검무劍舞라도 추듯, 화려함은 조금 떨어지지만 과도할 정도로 박력있는 검술의 향연이 펼쳐졌다.
 무거운 둔기를 휘두르는 듯한 육중한 소리가 아니라 공기를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참음이 잇따라 들려왔다.

 얼마나 흘렀을까.
 그 광경을 얼빠진 표정으로 보고 있던 우리의 시선을 눈치챈 루시온님은 멋쩍은 웃음을 짓더니 다시 조심스럽게 그 검을 돌려주었다.

 \"후우, 균형감 파워, 무엇하나 부족하지 않고 잘 만들어진 검이지만... 너무 무거운걸? 설마 내 스칼렛 보다도 무거운 검이 있을 줄이야.\"

 방금 전까지 무슨 레이피어라도 휘두르듯 가지고 놀던 분이 하실 소린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러고보면 이 검, 이름은 아직인가?\"
 \"네에, 아직은... 제게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더욱 더 강해져서 이 녀석이 저를 주인으로 삼는데 부족함이 없어진다면 그때가 이름을 붙이려고...생각 중입니다.\"

 자신에게 과분한 신부를 맞이한 청년처럼, 쑥쓰러운 듯 말하는 샤나스.
 일각에서는 검에 이름을 붙이는 이런 행위를 \'전장의 미신\' 취급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은 적어도 피 튀기는 전장에 발끝 조차도 들이대 본 적이 없는 자다.

 정성을 다해 자신의 검을 소중히 대한다. 그럼 그 검은 반드시 주인의 기대에 보답한다.
 그것이 검에 대한, 자신의 영혼에 대한 예의.
 아무리 많은 동료들과 함께 하더라도 전장에서 나와 싸우는 것은 내 분신인 검뿐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검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내게 있어선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나저나, 루시온님은 왠일로 아침부터 여기에 오셨습니까. 5번대는 한창 바쁠 텐데.\"
 \"아? 아아, 우리 준비는 다 되었고 마스터가 세르 녀석에게 과외를 요청해서 말야. 겸사겸사 같이 온 거야.\"

 고개를 약간 뒤로 돌리며 엄지 손가락으로 뒤를 가르켰다.
 그 시선을 따라가자, 마스터 나인츠 하르트와 짙은 푸른 머리의 여성이 함께 있었다.

 여기서 잠시.

 길드 내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엔키시온(창세신의 아이들) 중에서, 아일님이나 이리아님이 길드의 대표적인 테크니션이라면 컨저러의 대표 격은 바로 세르양이었다.

 창세신의 아이들-엔키시온.
 이들은 「마력의 운용자」라고도 불리는데, 크게 테크니션(Technician)과 컨저러(Conjurer) 두 가지 스타일로 분류되었다.
 여기서 「마력」이란 세상의 모든 것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나, 뭐라나. 여튼, 이러한 힘을 이용해서 술자 본인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유형이 테크니션, 그리고 외부의 사물에 직접적인 간섭을 통해 물체나 공간에 영향을 주는 유형이 컨저러라고 한다.
 즉,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힘을 가진」 전설이나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찾아보면 현실 속의 테크니션들이 그 기원.
「불과 얼음을 마음대로 부리며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라 다니는 마법사」라는 가공의 인물들은 굳이 비유하자면 컨저러들. 아, 물론 하늘을 날라 다닌다는 부분은 제외하고.

 여하튼간에 이러한 엔키시온의 능력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에 대한 논란 여부는 많지만, 그나마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엔키시온이라고 하더라도 그 능력이 발현하기 시작하는 연령은 천차만별이라는 점이었다.
 나츠님의 경우에는 제 2차 엘리시아 내전을 거치면서 컨저러로서의 능력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로 틈이 날 때마다 세르님이 나츠님에게 이것저것 지도해주고 있었다.
 아직 나츠님의 컨저러로서의 능력은 많이 미흡한 편이었지만 세르님의 말에 따르면 그 잠재력은 대단한 수준이었고, 나츠님이 제대로 그 능력을 활용하기 시작한다면 길드의 전력은 또다시 대폭 상승하게 될 것이라는게 모두의 전망.

 \"ㅡ 하지만 엔키시온들도 이 세계의 법칙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아니라서. 그만큼 현상을 조작하면 그 반동을 고스란히 자신의 몸으로 되돌려 받게 되지.\"
 \"아하, 그렇군요. …엑? 이리아님?!\"

 ㅡ 어느덧 내 앞에 이리아님이 와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물체를 손으로 미는 거나, 마나를 써서 미는 거나 소모되는 체력은 동일하다랄까. 테크니션들의 경우에도, 1/2의 근력을 마력으로 보완해서 2배의 힘을 발휘한다면 피로는 4배만큼 쌓이는 거지. 근데 란란? 도대체 누구한테 그렇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거야?\"

 \"아..아하하\"

 엄청나게 부끄러웠다.
 아무래도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입 밖에 꺼낸 듯하였다.

 \"란란, 교직에 대한 꿈을 갖고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 했는걸?\"
 \"에, 그게ㅡ.\"

 이리아님은 상황을 알아챘는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주변에 샤나스군의 모습이나, 루시온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상태.
 내 쪽에서 가능한 변명의 여지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검토해 봐도 한없이 제로로 수렴 중이었다..

 \"란델군? 인기 강사가 되려면, 명쾌한 해설도 좋지만 중간 중간에 농담도 좀 섞어 주는 게 좋을 거예요.\"
 
 이리아님 뒤에서 차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일님. 진심어린 눈빛으로 충고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한층 더 무서워졌다.

 -보고 있던건 한명이 아니었단 말인가.
 쥐구멍이란 놈은 이럴때 필요하구나-. 라며 나는 절실하게 도망치고 싶어졌다.

 \"가상의 학생들을 상대로 강좌 연습을 할 여유가 있으면, 잠깐 내 상대나 해주지 않겠나.\"
 
 이어지는 이 목소리는 안젤리카님.

 \"아, 네! 안젤리카님, 대련 연습이라고 하셨죠?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마치 구원의 여신이라도 만난 듯한 기분으로 당장 목검과 보호구를 챙기러 들어갔다.

-

 가죽과 솜으로 만들어진 이 보호구는 전장에서 쓰는 판금 갑주보다 물리적으로 가벼운게 분명하건만, 내것이 아니라서 그럴까. 갑옷에 비해 훨씬 거추장스럽고 불편했다.
 투박한 바가지를 연상케 하는 머리 보호구까지 착용을 한 후, 내가 자리로 돌아갔을 때 남아있던 것은 연습용 봉 끝에 솜 주머니를 끼운 창을 쥐고 있는 안젤리카님.
 그리고 약간 떨어져서,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 있는 이리아님은 하품을 하며 내게 말했다.

 \"늦어, 란란ㅡ.\"

 실례되는 말씀을.
 이래 뵈도 전직 기사 출신. 실전용 갑옷은 아니더라도, 유사 갑옷을 입고 벗는 속도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다.
 ㅡ 그런데 어떻게 안젤리카님은 나보다 먼저 준비를 마치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거지?

 연습용 목검을 다시 고쳐 잡으며 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궁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원거리 전투의 스페샬리스트지만 그 말이 근접전 실력이 결코 떨어진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전에 몇 번인가 호되게 당한 이후에야 깨달았지만...

 \"그럼, 갑니다.\"

 내가 개전의 의사를 알리자, 안젤리카님은 창을 비스듬히 아래로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든 남자든 전장 위에선 똑같았다. 대련 역시 마찬가지.
 창의 긴 타격범위 안에만 들어가면 내 승리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과 동시에 달려갔다.
 당연하다는 듯이 어느샌가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창두槍頭를 보며, 샤나스군에게 가르쳐준 대로의 자세로 창의 몸체를 향해 검을 내리 그었다!
 나무와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는 창끝. 승리를 확신하며 발을 멈추지 않고 속도를 붙이려는 찰나.
 탕! 하며 바닥을 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떨어진 창끝이 빠른 속도로 내 몸통을 향해 날아들었다!

 \"으앗!\"

 창을 바닥에 튕겨 그 반동으로 상대를 치려하다니! 전혀 예상밖의 공격에 꼴사나운 비명을 질렀다만, 그 회심의 일격도 피해냈으며 동시에 완벽하게 내 검의 사거리에 그녀가 포착되었다.

 \"하아..앗?!\"
 
 기합과 동시에 검을 내지르던 내 몸이 멈춘 것은 거의 동시였다. 말도 안되는 장면을 봐버렸으니까!

 \"마무리가 허술하군.\"
 
 그러나 그 짧은 틈을 놓칠 그녀가 아니었다.
 찌르기에 실패한 그 자세에서, 뒤에 있던 오른 발을 한 발짝 내딛으며 몸의 축을 뒤틈과 동시에 손잡이 부분을 사선으로 들어 올리며 내 턱에 정확하게 일격을 가하였다.

 \"윽...!\"

 직격.
 그러나 균형이 무너졌을 지언정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냉정하게 공격 후의 그 틈을 향해 반격을 해보려 했으나, 그녀의 몸을 본 순간 그것은 다시 내 몸을 정지시키는 작용만 하게 되었고, 재차 말하지만 그녀는 결코 그런 빈틈을 용납해줄 호인이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올려친 자세에서 팔을 뒤로 당긴 후 상체와 함께 손잡이의 끝으로 무참하게 내 명치를 가격했던 것이다.

 \"크헉!!\"

 꼴사나운 비명과 함께 나는 땅으로 처박혔다.

 그러니까...그게-. 안젤리카님은 단 하나의 방호구도 걸치고 있지 않은 상태였으며.
 이 망할 놈의 기사도 정신이라는 것은 아무리 목검이라고 해도 차마 맨몸의 여성에게 무기를 휘두르는 것을 머리가 아닌 본능으로 거부해버렸다…는 것.


 그리하여 내가 항복 선언을 한 것은 일방적인 난타전이 시작된 뒤 정확히 5분 후.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내가 두들겨 맞는 모습을 졸린 눈으로 관람하던 이리아님이 이에 대해 간단하게 논평을 하였다.

 \"란란, 못 보던 사이에 몸이 많이 녹슬었다던가, 아니면 엡(에이버)처럼 맞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취미가 생겼다던가.\"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안젤리카님이 아무런 방호구도 입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제가 차마….\"

 그녀는 나의 필사적인 항변에 혀를 끌끌 차며, \'패배자의 변명\'쯤으로 여기더니 대답하였다.

 \"맞다, 맞아. 란란은 그런 거 신경 쓰는 답답한 성격이었지? 있잖아, 아무한테도 이야기 못 들었어? 얼마 전에 우리 길드 최신식 대련장 시스템을 도입해서ㅡ\"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목검을 마치 시범이라도 보이듯 크게 휘두르면서 말을 잇는 이리아님.

 \"ㅡ 이 목검, 마법적으로 완충 처리가 되어있어서 타격감은 그대로지만 맞아도 별로 충격이 없어. 물론 봉이나 그런 것들도.\"

 뭐야, 그런 거였나. 살짝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이리아님은 목검을 나에게 다시 건네주면서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물론 저런 거에 맞으면 누구라도 죽겠지만 말이야.\"

 그 시선의 끝에는, 아일님이 휘두른 목검의 풀스윙에 맞아 아름다운 포물선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에이버군의 모습이 있었다.
 과연, 아무리 완충 효과가 있다고 해도 저 경이로운 파워는 문구 그대로 필살(必殺), 이라는 것인가.

 

 에이버의 낙하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나츠님과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세르양의 모습이 보였다.
 나츠님의 손바닥 위에 자그마한 주황 불빛이 반짝거리다가 2초 정도 지나고 다시 사라졌다. 그는 짜증난다는 듯 허공에 대고 주먹을 휘둘렀고, 세르양은 타이르는 듯 부드러운 표정으로 뭔가를 이야기하였다.

 \"잘 안 되는 모양이네.\"

 그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 곁에서 이리아님도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나츠님이 엔키시온으로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면 전력 증강 차원에서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애당초 우리가 그를 따르게 된 것은 그가 남보다 유별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남들보다, 조금 더-.
 
 \"이리아! 나츠! 비상이다!\"

 그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의 상념을 깨뜨렸다.
 돌아보니 제 3번대의 부관 류가희님이 여느 때의 쿨한 모습을 잃고 황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가희님이 저렇게 급하게 달려오는 것을 보니, 필시 보통 사항이 아니라는 얘기. 이리아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한쪽 눈썹을 가볍게 치켜 올리면서 대답하였다.

 \"가희…?! 무슨 일이람, 물에 빠진 너구리처럼 헐레벌떡?\"

 나라면 5번쯤 딴지를 걸었을 법한 대사를 깔끔하게 무시한 가희님은 한시의 지체도 없이 이리아님에게 뛰어가 무언가 귓속말로 이야기를 전했고ㅡ

 \"뭐? 말도 안 돼…!! 나쵸!!\"

 ㅡ 그것을 전해들은 이리아님 역시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나츠님을 불렀다.

***

 오거스트 중장은 발밑에 굴러다니고 있는 머리를 아무런 감흥 없이 차버렸다.

 그 머리의 원래 주인은 다름 아닌 원 안템 공국 지배자 필립 드 메디앙 3세.

 제국군의 1/10도 안 되는 공국의 병력을 제압하는 데에 이렇게 애를 먹은 것은, 이 용감한 공작이 맨 앞에 나서서 필사적으로 예하 병력을 독려하며 방어전에 나선 탓이었다. 그리하여 당초 예상 2시간을 잡았던 전투가 무려 2배 이상 길어져버리는 사태가 발생하였던 것.

 압도적인 병력차하에서 어차피 질 것을 알았을 텐데 어째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저항하려고 들었을까.

 공화국에서의 원군을 기대해봤던 것일까.
 어딘가 다른 곳에서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던 것일까.
 아니면 무슨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도 있던 것일까.

 어찌되었건 좋았다.

 조금 차질이 있긴 했지만, 오거스트 중장이 맡은 임무는 일단 이것으로 완수된 것이었다.

 그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신경 쓰지 않는 완벽한 군인이었던 것이다.


***

 \"그럼, 현재의 상황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나츠님과 이리아님 사이에 짤막한 대화가 오가고, 그 직후 길드 전체에 대해 제 1단계 출동준비태세가 발령됨과 동시에 수뇌부 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리고 현재 반구형의 회의장 안에서, 단상 위에 올라 브리핑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언제나처럼 류가희님. 차분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짧은 사이에 다시 평정심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종아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이 길고긴 흑발의 미인은 머나먼 동방에서 왔다고만 알려져 있다. 머리카락 역시 그들의 풍습에 따라 자르지 않는 것이라 했고...
 그녀는 푸른달 시절부터 나츠님과 행동을 함께 하였던 원로 길드원 중 한명으로, 겉으로는 이리아님하고 종종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실상 서로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뢰하는 사이였다.
 전에 이리아님이 투덜거리면서 「내가 없었더라도 가희만 있었으면 루프티르에서 최소한 패배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가희님의 능력을 인정하였었고, 가희님도 종종 튀어나오는 삐딱한 발언이 조금 문제이긴 하였지만 이리아님에 대해 든든한 조언자로서 자신의 자리를 굳힌지 제법 되었다고 알고 있다.

 \"금일 오전 6시부로 롬바르디아 제국 제 7 군단 4만 8천여 병력이 안템 공국에 대한 공세를 개시. 10시경에 안템 공국은 완전 항복을 선언하였으며, 제국은 공국령을 제국령의 일부로 선포하였습니다.\"

 회장 안이 일제히 술렁거렸다. 나 역시 살짝 오한이 드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공식 자료에 의하면 안템 공국의 총 병력은 약 1만 5천 남짓. 그러한 소국가에 대해서도 이빨을 들이댔다는 것은, 제국의 무차별적인 팽창 야욕이 이곳 남쪽에까지 현실화되고 있다는 이야기와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국군 제 3군단, 제 9 군단 9만 5천여 병력이 노스우드 부근의 국경을 일제히 넘어 현재 \'시타체 길드\'가 그에 응전 중. 하지만 상황은 아무래도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뒤에 문장은 사실상 불필요한 것이었다. 시타체 길드의 병력은 약 1만 8천. 5배가 넘는 적에 상대로 「상황이 좋다」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거짓말을 보태도 하기 힘든 말이었다.

 본래대로라면 내가 앉아있는 자리는 제 2번대 부관 전용 석으로서 아일님이 있어야 할 자리였지만, 아까 가희님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리아님은 황급히 아일님과 안젤리카님을 불러서 무언가 별도의 지시를 내렸고, 그 두 명은 이내 성 안에서 모습을 감췄다.
 무슨 임무를 받은 것일까 궁금해 하는 찰나에, 목덜미를 잡혀 「부관 대리」라는 미명하에 회의실로 끌려 들어왔다.

 간결하지만 충격적이기 그지없는 가희님의 보고가 끝난 후, 나츠님의 발언이 이어졌다.

 \"함락되기 전, 안템 측에서는 우리 공화국 정부에 수차례 원군 요청을 했다고 한다. 모두 무시된 모양이지만.\"

 정부 막료들의 생각은 안 봐도 훤했다. 괜히 안템을 지원했다가, 제국과의 전면전이 일어나면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손실을 입을 것이 명확하였다.
 안템과 손을 잡아도 제국과의 힘 균형에는 별반 차이가 없는 바, 미약한 안템을 버리고 제국의 환심을 사는 것이 더 좋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우리는 그 「미약한 도움」조차 없는 상태에서 홀로 제국을 상대하게 되어버렸다.

 뒤이어 손을 들고 질문을 제기한 것은 제 5번대의 부대장 루시온님. 언제나 봐도 당당한 풍채의 사나이. 전에 세르님이 「루시온을 썰면 이리아 3인분은 나오겠다,」라고 평가했던가, 아마.

 \"그렇다면 현 상황에 대한 길드 연합으로부터의 지시는?\"

 이에 대한 답변은 다시 가희님이 맡았다.

 \"자유주의연맹을 비롯한 4개 길드에 대한 영격 지시가 하달된 모양입니다. 아마 요격전에 대한 지휘는 램버트 장군이 직접 지휘하는 듯. 저희 길드는 헨즈필드 구릉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대기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대답에 이리아님은 현직 길드 연합 총사령관에 대한 불신을 비춰 보이기라도 하듯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평시라면 모를까, 전시 상태에서 길드 연합 총사령관의 지시는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서 그 권위에 대한 절대 복종은 제 2대 길드연합 총사령관이 세워놓은 전통이기도 하였다.
 ㅡ그러고 보니, 그 문제의 제 2대 연합군 총사령관이 여기 있었군.

 \"흥! 시건방진 놈. 우린 뒤에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으라는 건가.\"

 상당히 호전적인 말을 뱉은 장본인은 제 1번대 부관 에젠님.
 콧수염이 멋들어진 중년으로서, 길드의 최고령이자 보기 드문 가장(家長)이기도 하였다.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딸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전장에선 유능한 적보다 무능한 아군이 더 위험한 법이지요.\"

 제 6번대의 부대장 실버스컬님은 쓴웃음을 지으며 농담 아닌 농담을 하였다.
 본명인지 의심가는 그 이름에 관해서 직접 묻자 \"... ...\" 이라며 침묵으로 일관하셨고 푸른달 시절의 멤버들도 \'자세한건 마스터 밖에 모를거다. 아무렴 어떠냐.\'라는 식의 반응뿐이었다. 
 어쨋거나, 나인츠님 최고의 충신이라고 불리며 과묵하기로 소문난 이분이 이런 농담까지 할 정도면 확실히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건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램버트 이자식, 루프티르에서 살려주는게 아니었어. 다음번 전장에서 만나면 적군보다 먼저 목을 베어버릴 테다.\"
 
 1번대 소속이자 길드의 돌격대장을 맡고 있는 커스틴님은 흉흉한 분위기를 숨김없이 뿜어내며 그런 농담-이길 바라는 대사-을 하셨다.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조금 무섭다만.

 \"이 시국에 길드 연합 총사령관을 죽여서 어쩌자는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농담인 것을 알아도 함부로 입에 올릴 소리가 아닌건 맞는지라 가희님의 말이 차갑더라도, 커스틴님의 입장을 누구 하나 대변해줄 수 없었다.

 \"우웅... 굉장히 어수선한데, 다들 그렇게 힘이 남아도는 거야? 그럼 나랑 우선 가볍게 대련부터 하고 회의를 시작할까?\"

 조금-짜증난다는 듯이 최고의 위험 발언을 던진 것은 밝은 갈색머리의, 3번대 부대장인 크롤리님.
 우리 부대장처럼 사이비 꼬마가 아닌 진짜로 어린 분이지만 이미 5년도 더 전에 천재라는 호칭과 함께 이 길드의 대표적인 무력의 상징이었다.
 ...왠지 모르게 옆에서 강렬한 시선이 날아오는 것 같지만 무시하자.

 \"자자, 혈기왕성한 길드원 제군들. 그 끓어 오르는 피는 제국군에게 퍼붓도록 하고, 우선 1급 준비태세로 바꿈과 동시에 이자리에서 출발 순서를 정하기로 하지.\"
 \"응, 나님이 생각해봐도 그 편이 나을 거 같아. 제국측이 준비해온 물량으로 봐선 반드시 전면전이 벌어질 테니까 말이야.\"
 
 길드장과 부길드장의 사태 중재에 모두들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회의는 급속도로 제역할을 찾아갔다.


***

 \"각하. 아군의 제 3, 제 9 군단이 적과 교전을 개시한 모양입니다.\"
 \"으음.\"

 갓 성년식으로 치르고 온듯이 젊은 신참 참모는 연신 얼굴의 땀을 닦으면서 보고를 올렸다.
 아직 한겨울이었지만, 전장이 열기가 여기까지 전해진 탓이었을까, 아니면 피하 지방이 좀 과다했기 때문이었을까.
 그 이유야 어찌되었건, 자기 관리에 처절하게 실패한 이 참모의 이야기를 오거스트 중장은 한 귀로 흘려듣고 있었다.

 \"… 그리고, 실제 이곳 치안에 소요되는 병력은 많아봤자 2천 정도로 예상되며….\"

 이 멍청한 참모들은 과연 상부의 지시를 제대로 전해 듣기는 한 것일까. 장군은 속에서 불이라도 난듯 급속도로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제 7 군단은 안템 공국을 복속 시킨 후, 그 지역에 대한 지배력의 공고를 제 1 임무로 삼는다.」

 언어 능력이 지극히 떨어지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하는 오거스트였다.
 그리고 「명령」이 이해가 되면 군인 된 자로서의 당연한 도리는 그것을 충실히 따르는 것.
 그러나 그의 예하 참모들은, 거의 다 한결같이 「최소한의 필요 병력」만 남긴 채 최전선에 나아가자고 주장하고 있었다.

 물론 오거스트 중장도 그들의 속셈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전시라는 매력적인 상황에서, 혁혁한 전공은 이른바 승진의 지름길을 열어주는 황금의 사과와도 같은 것이었다.

 \"… 치안 임무에 제일 적합한 것은 아마도 제 27사단 예하 제 102연대라고 생각되며….\"

 그래도 맡은 임무는 임무다.
 자신의 전공에만 눈이 먼 채, 금단의 열매를 따러 달려 나가는 것은 군인으로서 절대로 삼가야 하는 일이었다.

 \"… 아마 일주일 내에 최소한 헨즈필드 구릉까지는 확보를….\"
 \"ㅡ 닥쳐라!\"

 들어주는 것도 이제는 한계.
 오거스트 중장은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짜증난다는 듯 참모의 얼굴에 던져버렸다.
 젊은 참모는 순간 세상이 뒤바뀐 듯한 표정으로 지금 일어난 현상을 이해 못한다는 얼빠진 표정으로 장군을 바라보았다.

 \"에이잇! 귀관은 벌레만큼의 이해력도 없단 말인가! 제 7 군단은 이곳 안템에 대한 수비를 굳힌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부여받은 임무다!\"
 \"네, 넵!\"

 순식간에 안색이 새파랗게 변한 이름 모를 참모는 자신의 얼굴을 맞히고 바닥에 떨어진 보고서를 황급히 주워들며 부동의 차렷 자세를 취했다.
 혀를 차며 그 모습을 보던 오거스트 중장은 한차례 심호흡을 하고, 다시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위로부터의 명령 변경이 있을 때까지 혹시라도 다른 말을 하는 자는, 군율에 따라 엄격히 문책하도록 하겠다. 알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도록.\"

 겁에 질린 참모는 모범 사관학교 생도를 방불케 하는 딱딱한 경례를 올렸고, 오거스트는 그것을 건성으로 받아 넘겼다.
 물론, 상대방이 황급히 등을 돌려 사라지는 모습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안템 공국은 롬바르디아나 엘리시아에 있어서 눈곱만큼의 전략적 가치도 없는 땅이었다.
 게다가 이 지역의 치안 유지에 최적의 인원은 방금 오거스트의 참모들이 진언한 대로 약 2천. 그 이상은 오히려 보급품의 낭비와도 다름없었다.

「하지만...」그는 생각했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는 다시 안템 공국이라는 손바닥만 한 땅에 자신의 제 7 군단을 어떻게 우겨 넣을지 고심하기 시작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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