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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브레이커스 by 동림

“이게 무슨 약인데?”
“자살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약.”

초인적 능력과 완벽한 외모 뒤에 각각의 상처를 숨긴 '이드 브레이커스' 멤버들과 잉여인간에서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주인공이 펼치는 바이올런스 학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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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동림[eastwood]
조회 1173    추천 16   덧글 2    / 2009.04.14 23:54:19

 


Class 1. 29번째 유서

 

……머리부터 부딪히면 엄청 아프겠지.
교진은 학교 옥상 난간에 허리를 걸친 위험천만한 자세로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러고 있은 지 벌써 한 시간 반 째. 슬슬 등이 아프고 눈알이 시려오기 시작했다. 교진의 몇 발짝 뒤에는 오늘 새벽까지 고뇌를 담아 쓴 유서가 놓여 있었다.
교진은 어제 당했던 수모를 떠올렸다. 어제 점심 시간, 교진은 단골로 교진을 괴롭히는 패거리에게 붙들려 바지가 벗겨진 채 맨 엉덩이 사진을 찍혔다. 패거리는 그 사진을 교실의 빔 프로젝터에 초대형으로 상영해서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다른 반 애들까지 찾아와서 웃어댔다. 특히 D컵 글래머인 교생 선생님이 고운 손으로 입을 가리고 ‘푸훗’하고 작게 웃었던 것을 교진은 잊을 수 없었다.
그래…그것 뿐이라면 그나마 괜찮다.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녀가 그 빌어먹을 사진을 보고 있었다는 거다. 하필이면, 그녀가.
더 이상 이런 비참한 인생 살고 싶지 않아. 신이시여, 다시 태어나면 이런 잉여인간 왕따가 아닌 몸짱 인기남으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
마침내 교진은 난간을 움켜쥔 두 손에 힘을 주고, 약 25m 높이의 허공을 향해 몸을 던지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누구는 22층에서 떨어졌는데 나뭇가지에 걸려서 타박상만 입고 살아났다는데?
……만에 하나 안 죽고 식물인간이라도 되면 어쩌지?
……재수없게 지나가던 사람 몸 위에 떨어져서 나는 안 죽고 그 사람만 죽으면? 살인죄가 되나?
……살인교사는 형기가 몇 년이지?
……잠깐, 미성년자도 교도소에 갈 수 있나?
장장 한 시간 반 동안 교진이 난간 너머로 결정적 한 발을 내딛지 못한 것은 이런 걱정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 탓이었다. 죽기 전에 얼마나 아플까에 대한 걱정부터 시작해서 사후 세계에 대한 걱정까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비참한 현실을 못 이겨 자살을 결심하면서도, 매번 막상 실행에 옮기려 하면 온갖 잡념들이 찾아와 발목을 붙드는 것이다.

“이봐, 학생! 지금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위험하게!”

난간을 붙들고 다시 고민을 시작한 교진을 향해, 옥상 출입구 쪽에서 경비 아저씨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진은 화들짝 놀라며 난간에서 물러났다.
황교진. 열 일곱 살, 산화 고등학교 2학년. 172 센티미터 57킬로그램.
별명은 황멸치, 혹은 황찌질. 올해로 왕따 경력 5년 차.
오늘 황교진 군이 시도한 자살 장르는?
투신 자살.
결과는?
역시나 이번에도 실패.
열두 살 이후 통산 28번째의 유서를 마구 구겨서 호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교진은 처량하게 옥상에서 발길을 돌렸다.

28번째 자살 시도가 수포로 돌아간 다음 날 아침. 늦잠을 잔 교진은 아침도 굶은 채 온 힘을 다해 학교로 뛰었다. 1교시가 끝나자마자 뱃속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울렸다. ......이 놈의 몸은 대체 양심이란 게 있는 거냐. 바로 어제 자살 시도를 했던 주제에 이렇게 강력한 생존 본능을 표시하다니. 교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다, 나도 내가 한심한 거. 하지만 어쨌건 지금은 자살 충동보다 배고픔이 더 크니까 일단 먹고 봐야겠어. 교진은 매점에서 사 온 단팥빵의 비닐을 뜯고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황멸치! 밥 먹냐?”

“헙!’

교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하마터면 빵 대신 혀를 씹을 뻔 했다. 네 명의 남학생이 빙글빙글 웃으며 교진의 책상을 에워싸고 있었다. 1학년 때부터 교진을 줄기차게 괴롭혀 온 패거리였다. 1학년 때에는 그나마 세 명이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2학년까지 그 세 명이 함께 배정되어 쫓아 올라오더니 한 명이 추가되어 이제 4인조가 되었다. 패거리는 차례로 교진의 뒤통수를 함부로 툭툭 치며 낄낄거렸다.

“이야, 멸치가 사람 먹는 빵도 먹네?”

“그거 먹는다고 뼈가 튼튼해지냐?”

“원래 멸치에는 칼슘이 풍부하잖아. 이런 거 안 먹어도 돼.”

패거리는 한 입도 먹지 못한 교진의 단팥빵을 빼앗아 공놀이 하듯 주고 받으며 웃어댔다. 교진은 이를 악물었다. 매일 겪는 일이지만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패거리에게 돌아가며 머리를 쥐어 박히며, 교진은 곁눈질로 옆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귀에 이어폰을 낀 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그녀가 이 쪽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애써 스스로 위안하며, 교진은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었다.
점심 시간이 되자마자 교진은 패거리들을 피해 교실을 나갔다. 멀티미디어실로 가서 맨 구석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부팅시켰다. 포털 사이트에 접속한 교진은 블로그를 열었다. 화려한 블로그 스킨이 모니터를 찬란하게 수놓았다.
‘알파보이의 PXP 사랑방’
일일 방문자 수를 알려 주는 블로그 카운터는 3,256명을 표시하며 깜박이고 있었다. 교진은 뿌듯한 표정으로 덧글란을 체크했다. 그저께 밤에 올린 포스팅에 벌써 덧글이 52개나 달려 있었다.
PXP는 일본의 유명 전자회사에서 만든 휴대용 게임기였다. 고성능과 멋진 디자인, 다양한 게임 소프트들로 세계 각국에 수많은 마니아를 보유하고 있었다. 교진의 블로그는 PXP 게임 소프트를 테마로 운영되고 있었다.
교진은 방명록을 클릭했다. 방명록에도 하룻밤 사이 스무 개가 넘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 혹시 ‘말아라 왕자님’2탄 파일 있으신가여? 공유 점.
- 안녕하세요…지식im에서 보고 왔는데요. ‘사일런트 힐즈’파일 좀…T.T

 “훗…건방진 것들.”

교진은 콧방귀를 뀌며 분당 700타의 속력으로 답글을 쓰기 시작했다.

- 먼저 제 블로그의 ‘입문’코너부터 체크하고 물어보시죠. ^^

그렇다. 교진의 블로그는 단순한 PXP 게임 블로그가 아닌, PXP 불법 복제 게임 소프트 파일의 정보를 제공하는 블로그였다. 교진이 밤새워 외국 사이트들을 뒤져 따끈따끈한 불법 파일의 링크 주소를 찾아내 포스팅하면, 순식간에 수십 개의 감사 덧글들이 달렸다. 그 중에는 종종 불법 파일을 쓰지 말라고 경고하는 글도 섞여 있었지만 그런 덧글은 보이는 즉시 블로그 주인장의 권한으로 지워 버렸다.
블로그에는 교진의 사생활 이야기를 올리는 일기장도 있었다. 처음에는 게임 정보만 얻어가던 방문객들은 점차 수가 늘어나면서 일기장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기는 그들을 위한 일종의 팬 서비스였다.
교진은 그저께 쓴 일기를 클릭했다.

‘오늘 하늘도 음울한 회색빛……이제 이 세상 따위, 저버려도 좋을 때가 아닐지…….’

쉬크하면서도 시적인 말투. 모노톤으로 편집한 셀프 사진 첨부는 필수다.
셀프 사진이라고 해도, 얼굴은 절대 찍지 않는다. 가슴 아래부터의 몸 사진만 올리는 것이 철칙. 최고의 조명과 각도를 연구해서 찍는다. 일기에는 이십 개가 넘는 리플이 달려 있었다.

-역쉬 알파보이님 분위기 짱 스탈리시하심!
-디올옴므 모델 같아요~ㅎㅎ

디올 옴므는 무슨......너무 말라서 남자 바지 중에는 사이즈가 없는 탓에 누나가 처녀적에 입던 바지나 물려 입는 판에.
하지만 누가 진실을 알겠어? 아무도 진실 같은 건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인터넷에서 나는 허약한 마른 멸치 왕따 황교진이 아닌, 스키니한 간지남 알파보이 님이니까.
교진의 블로그는 지긋지긋한 현실을 잊게 해 주는 탈출구였다. 힘센 녀석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느끼는 분노와 굴욕도 블로그에 접속하면 잊을 수 있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교진이 올리는 정보 하나 하나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현실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우월감이 느껴졌다.

“어이, 뭐야 넌? 컴퓨터부원도 아니면서 맘대로 컴퓨터를 쓰다니!”

갑자기 형광등이 켜졌다. 멀티미디어실을 관리하는 컴퓨터부 부원이 눈을 부릅뜨고 교진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앗, 미, 미안. 지금 나갈게.”

교진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컴퓨터 전원을 끄고 멀티미디어실을 나갔다. 밀린 답글을 마저 달아줘야 하는데……손가락이 근질거린다. 그나저나……오늘 밤에는 오랜만에 열혈 자료 헌팅을 좀 해 줘야겠는걸. 몇 달 전부터 엄청난 업데이트 속도를 자랑하는 경쟁 블로그가 생겨나 방문객 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이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두고 보자, 뉴비 녀석. 원조 스타 블로거 알파보이님의 저력을 보여주마.
결의에 찬 주먹을 불끈 쥐는 교진에게서는, 바로 어제까지 옥상에서 투신 자살을 감행하던 비극적인 소년의 모습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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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 東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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