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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브레이커스 by 동림

“이게 무슨 약인데?”
“자살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약.”

초인적 능력과 완벽한 외모 뒤에 각각의 상처를 숨긴 '이드 브레이커스' 멤버들과 잉여인간에서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주인공이 펼치는 바이올런스 학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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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동림[eastwood]
조회 1178    추천 16   덧글 2    / 2009.04.14 23:56:27
다음 날 자습 시간. 담임 교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교진의 옆 분단에서 여학생들이 수다를 떨어대고 있었다.

“들었어? 내일 명지이 전학 간대.”

“정말? 벌써부터 남자애들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 오는구나~.”

툭. 멍하니 수학 문제집을 보고 있던 교진의 손에서 샤프가 떨어졌다. 교진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나 여학생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

“어머. 뭐야 황교진! 기분 나쁘게 여자들 대화를 엿듣고 난리야?”

“저리 가 버려! 재수 없어!”

여학생들은 교진을 향해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그러나 멍해진 교진의 머릿속에서는’명지이’와’전학’이라는 두 단어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와르르,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울린다. 말도 안 돼. 이건 거짓말이야. 그러나 종례 시간, 교진은 확인 사살을 당했다.

“내일 여자 17번, 명지이 양이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작별 인사 잘 나누도록 하세요.”

후우우-. 담임교사가 말을 맺자마자 남학생들의 입에서 땅이 꺼지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한숨 뿐이랴. 교진은 벽을 치며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깨 아래까지 오는 긴 생머리를 한 올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하게 늘어뜨린 소녀, 명지이는 남학생들의 한숨은 전혀 들리지도 않는 듯,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교과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이. 그녀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 황교진 인생의 유일한 행복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이어진 비참한 왕따 인생의 오아시스, 꿀, 희망, 요정, 여신…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구름 위의 천사 같은 존재가 바로 그녀였다.
산화고에 입학한 첫날, 교진은 같은 반 옆 자리에 앉은 지이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다. 새하얗고 투명한 피부, 길고 새까만 속눈썹, 단정한 옆얼굴에 매료되었다. 그녀가 2학년 때도 지이와 같은 반에 배정되었을 때 교진은 신에게 감사 기도라도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고백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지이는 산화고 전교에서 손꼽히는 미소녀였다. 그러나 지이는 말 없고 차가운 신비주의 미소녀로 유명했다. 1년 내내 지이와 세 마디 이상 말을 나누어 본 학생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언제나 지이의 주변에는 미모에 반한 남학생들이 우글거렸지만, 전부 말도 제대로 붙여 보지 못한 채 칼같이 거절당했다. 지이가 1학년 때 킹카로 유명했던 3학년 선배가 장미꽃 백 송이를 들고 교실까지 고백하러 왔다가 3분 만에 꽃다발을 그대로 들고 돌아간 사건은 유명했다.
성적은 언제나 전교 30위권 안에 드는 우등생에, 새하얀 도자기 인형 같은 외모. 그런 것에 비하여 지이는 지나칠 정도로 말이 없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태도가 그녀를 더욱 특별해 보이게 만들었다. 자칫 여학생들로부터 반감을 살 수 있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그녀에게는 동갑내기 소년 소녀들을 압도하는 어떤 분위기가 있었다. 그 분위기 때문인지, 지이의 정체는 사실 모 재벌 그룹의 직계 자손이다, 혹은 외국계 마피아 보스의 딸이라는 괴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눈의 여왕. 그것이 지이의 별명이었다. 인간도 아닌 멸치가 감히 얼음 나라 여신에게 고백이라니……게다가 지이를 좋아하는 티를 조금이라도 냈다가는 괴롭히는 패거리들에게 무슨 망신을 당할지 몰랐다.
그런데 당장 내일부터 그녀를 볼 수 없게 되어 버린다니. 1년 넘게 품어온 마음이 전해지지도 못한 채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절망과 슬픔, 다급한 마음이 한꺼번에 교진을 덮쳤다. 머리를 움켜쥐고 반나절 내내 고뇌하던 교진은 마침내 결심했다.
좋아, 그녀에게 고백하자. 거의 99%, 아니 99.99%의 확률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지이를 생각하며 뜬 눈으로 지새운 수많은 밤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수는 없다. 이제 앞으로 두 번 다시 내 인생에서 지이를 만날 날이 없을 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고백을 할 결심을 하기는 했는데, 문제는 고백의 시기와 방법이었다. 일단 패거리들의 눈을 피하려면 학교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고백해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지이에게 학교 밖의 다른 장소에서 잠깐만 만나 달라는 부탁들 해야 하는데......1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말 한 마디 붙여 보지도 못한 주제에, 이제 와서 대 놓고 할 말이 있으니까 만나 달라니……과연 내가 그렇게 긴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잘 생기고 잘 나가는, 고등학생 주제에 벌써 외제차를 끌고 다닌다는 3학년 킹카 선배도 무시했던 눈의 여왕 명지이가, 나 같이 비쩍 마른 왕따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기나 할까? 아니, 내가 자기랑 같은 반이라는 걸 알기나 할까?
……무리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이 없어질 뿐이다. 교진은 울적한 마음으로 지이를 슬쩍 바라보았다. 지이는 언제나처럼 책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똑한 콧날, 동그란 턱……아아, 너무 예쁘다. 내일부터 저 예쁜 옆모습을 볼 수 없게 되다니……이건 비극이야.

-용기 좀 내 보지 그래?

갑자기 들려온 묘한 목소리에, 교진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좌우를 둘러 보았다.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어서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렸다.

-너도 남자라면 말이야.

교진은 당황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데 목소리가 들리다니. 마치 귀가 아니라 머리 속으로 직접 울려오는 것 같은 느낌……도대체 이거 뭐지? 무슨 계시 같은 건가? 나 교회도 안 다니는데?
그러나 그 후로 이상한 목소리는 들려 오지 않았다. 그런데, 방금 그 목소리……왜인지 지이 목소리와 무지 비슷한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어떻게 남 몰래 지이에게 짝사랑하는 마음을 고백할까 고민하던 교진은, 결국 편지를 쓰기로 했다. 직접 얼굴을 보고 고백하는 건 역시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전학은 내일 간다니까, 내일 아침 누구보다도 일찍 등교해서 지이의 책상에 편지를 넣어 두면 되겠지. 그러면 패거리들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다.
교진은 한결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심혈을 기울여서 지이에게 보내는 고백 편지를 썼다. 밤 늦게 겨우 끝까지 다 쓴 편지를 봉투에 넣고 단단히 밀봉했다.
편지는 다 썼고 이제 전해 주기만 하면 되는데, 자꾸만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이 떠오른다. 예를 들어 지이가 내 편지를 발견하지 못한 채로 가 버린다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나쁜 상황......러브레터를 읽은 지이가 모두 앞에서 나를 비웃는다거나……으으으, 그런 일만은 제발 일어나지 않았으면.
“젠장! 이럴 때는 이거지.”

자꾸 소심해져 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교진은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블로그를 띄웠다. 요즘 새로운 불법 게임 파일 자료 업데이트에 온 힘을 기울였더니 방문자 수가 다시 5천 명이 넘기 시작했다. 오늘도 새로 쌓인 수십 개의 덧글들과 방명록 글들을 보며 교진은 뿌듯하게 눈을 빛냈다.
그래, 나는 멸치 황교진이 아니야. 인기 폭발 파워 블로거 알파보이 님이라고. 자, 힘내자.

다음 날. 새벽 6시에 맞춰 놓은 알람 시계 소리에 교진은 벌떡 일어났다. 부모님도 아직 깨지 않은 이른 시간. 교진은 재빨리 학교로 갔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가장 먼저 도착한 교진은 지이의 책상 서랍 깊숙이 편지봉투를 넣어 두었다.
조회 시간, 지이는 반 아이들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가서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교진은 손에 땀을 쥐고 지이의 행동을 주시했다. 막 책상 서랍에서 교과서들을 꺼내던 지이의 팔꿈치에, 뒷자리 여학생의 책상 끝에 놓여 있던 필통이 부딪혀 바닥에 떨어졌다.

“아, 미안.”

지이는 재빨리 교과서를 꺼내 책상 위에 대충 올려 놓고, 떨어진 필통을 주워 주었다. 문제는 그러는 동안 지이의 교과서 사이에 끼어 있던 교진의 편지가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으아아……안 돼!”

교진은 낮은 비명을 내질렀다. 떨어진 편지 봉투는 지이의 발 바로 아래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지이는 바닥에 떨어진 봉투를 눈치채지 못한 채 교과서만 정리하고 있었다.

“지, 지이야, 바닥에…….”

패닉에 빠진 교진은 저도 모르게 떠나는 지이를 향해 소리치려고 했다. 그 순간,

“뭐야 이건?”

커다란 손이 바닥에 떨어진 편지 봉투를 들어올렸다. 교진을 괴롭히는 불량 패거리의 일원이었다. 교진은 순식간에 종이처럼 창백해졌다.

“이거 러브레터 아냐?”

“이야~요즘 세상에 러브레터? 구경 좀 할까?”

패거리들은 킬킬 웃으며 멋대로 편지 봉투를 열었다. 지이는 교과서를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냉랭한 눈으로 패거리들을 바라보았다.
교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지이가 패거리들에게 그만 두라고 말해 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지이는 관심 없다는 듯 책상 정리에만 몰두했다. 패거리들은 큰 소리로 교진의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여신보다도 더 아름다운 지이에게. 푸하하하. 뭐야! 완전 웃기는데!”

“아, 안돼에에에!”

수치심으로 이성을 잃은 교진은 패거리들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순식간에 패거리들에게 팔다리를 붙잡혀 허공에서 헛손질만 하고 말았다.

“뭐야, 이거 황멸치 니가 쓴 거였냐?”

“얘들아~들어 봐, 멸치가 명지이한테 러브레터를 썼대!”

패거리들은 교진의 편지를 높이 들어 흔들며 반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교진은 붙잡힌 채로 미친 듯이 버둥거리며 애원했다.

“그, 그거 당장 내놔! 그만둬!”

“지이, 작년부터 계속 너를 좋아하고 있었어. 너만 바라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감히 말을 걸 수도 없었어~? 크하하하하하!”

패거리들은 큰 소리로 교진의 편지를 읽으며 배를 잡고 웃어댔다. 웃음소리는 파도처럼 교실 전체로 번져나가, 순식간에 교실의 모든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교진을 비웃어대고 있었다.

“이 자식, 멸치 주제에 감히 울 학교 넘버원 퀸카 명지이를 넘봐? 어이 명지이, 이 멸치한테 뭐라고 한 마디 해주지 그래?”

패거리들은 교진을 마구 쥐어박으며 지이에게 이죽거렸다. 그러나 지이는 아무런 말없이 책상 정리를 끝내고 가방을 챙겼다.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지이는 교진과 패거리를 바라보았다.

“지, 지이…….”

교진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1년 반 동안 지이와 눈이 마주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이런 나는 보지 말아 줘, 평소처럼 그냥 무시해 줘. 제발, 부탁이야. 지이…….
그러나 그녀의 눈에서 보이는 건 얼음보다도 차가운 감정뿐이었다. 지이는 고개를 돌리고교실을 나가 버렸다. 끝까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끝났다. 그녀는 가 버렸어. 내 인생 최악의 모습을 봐 버린 채로.
5년 세월 동안 왕따를 당하며 느껴 왔던 모든 굴욕감을 다 합친 것보다도 큰 굴욕이 교진을 후려쳤다.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패거리들이 편지지를 마구 구겨서 교진의 입 안에 쑤셔 넣을 때도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날, 해질녘.
아름다운 오렌지 빛 석양을 바라보며, 교진은 구겨지고 찢어진 러브레터 조각을 움켜쥔 채 학교 옥상 위에 서 있었다.
교진은 예전에는 두려워서 차마 올라갈 수는 없었던 허술한 난간 위로 올라섰다. 손바닥 너비 정도로 좁은 난간 위에 힘들게 균형을 잡고 서자, 한눈에 25m 아래의 풍경이 들어왔다. 난간 아래에서 그냥 내려다 봤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공간감에 순간 머리가 아찔해졌다. 교진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29번째 유서는 이걸로 대신하자.”

교진은 한 손에 움켜쥔 찢어진 편지 조각을 하늘로 휙 뿌렸다. 바람을 타고 허망하게 날아가 버리는 종이 조각들이 마치 지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잔인한 세상아. 오늘에야말로 정말 죽어 버리는 거야.
교진은 심호흡을 하고 눈을 꽉 감았다. 자, 저 편지 조각처럼 몸을 날려 버리자.
그러나 막 마지막 한 발을 떼려는 순간.
……엄청 아플 지도 몰라?
역시나 잡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교진은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아냐, 젠장! 오늘은 진짜로 죽어버릴 거라니까?
……오늘 블로그 일기장에 고백의 결과를 올리기로 했잖아?
블로그고 뭐고 난 이제 죽을 건데 그딴 게 무슨 소용이냐고!
……정말? 진짜로 죽으려고? 너 같은 의지박약이 과연?
미끌, 순간 교진의 한 쪽 발이 미끄러졌다.

“흐아아아아아아악!”

꼴사나운 비명과 함께 교진은 균형을 잃고 난간 너머로 떨어졌다. 완전히 허공 아래로 추락하기 직전, 기적적으로 난간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교진은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사, 사람 살려! 살려줘요! 떨어진다아아아악!”

죽어 버리겠다는 생각은 1초도 되지 않아 저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무서운 공포 속에서 교진은 미친 듯이 절규했다.

“죽기 싫어! 나는 죽기 싫어! 119……수위 아저씨……아무라도 좋으니까 제발 나 좀 구하러 와 주세요!”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난간에 매달린 팔에서 힘이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허우적거리는 발 아래 까마득한 허공이 느껴진다. 더 이상은 비명을 지를 힘조차 없다.
공포와 패닉 속에 몸부림치는 교진의 귀에 끼익 하고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교진이 매달려 있는 난간 앞으로 한 사람이 고개를 내밀었다.

“관 둬. 어차피 죽지도 못할 거면서.”

부드럽고 침착한 목소리.
오렌지빛 석양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빛나는 새하얀 피부와 윤기 흐르는 긴 생머리.
교진은 눈을 의심했다. 그녀는, 오늘 아침에 전학간 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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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림  lv 2 53.3333333333% / 460 글 19 | 댓글 3  
글쟁이 東林입니다.

이드 브레이커스 1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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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아우마 04/29/02:16
아니, 컴퓨터로 소설 보다가 제가 낯 간지러웠던 적은 처음이네요.. 수, 수준급... 이랄까나..
5 네피오네 11/20/06:36
와.. 진짜.. 아어 짱 짱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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