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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공호 by 계수

=전 세계의 명예로운 인류 여러분. 대통령…. 아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감히 고하겠습니다. 도망치십쇼. 살아남아 주십시오. 결코 이 지구에 인간이 살았다는 것을 잊게 하지 말아 주십 시오… 그리고… 어… 그리고….= 대통령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tv가 꺼지고 평범한 광고가 흘러나왔다. 싸늘한 교실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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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99    추천 0   덧글 0    / 2009.04.25 20:40:16

돌아가는 길. 위태위태하게 걷고 있는 하람의 머리는 연기가 날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끈임 없는 가설들과 그 것의 부정이 계속해서 제시되었고 끝나지도, 멈추어 지지도 않았다.

대체 뭘까. 이 상황은

방공호엔 여러 모순이 있다. 먼저 잠들어 버리면 16시간 이상의 수면을 취하게 되는 침대. 그리고 대화를 위한 리빙룸의 이해할 수 없는 구조. 또 시계의 시간은 3일 후를 가리키고 있다. 그 밖에도 마치 이 환풍기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 만든 것처럼 보이는 밧줄과 환풍구의 높이. 무엇보다 그 환풍구는 공기정화를 위한 장소가 아닌 인체의 표본이 있는 제2의 리빙룸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래 제일 후자에 있는 것이 가장 의문이었다.

먼저 이 환풍기가 ‘진짜’ 환풍기가 아닌 것에 따라 이곳은 방공호가 아니란 것이 증면된다. 물론 방공호에 그런 인체 표본을. 그 것도 다름 아닌 보호해야 할 대상인 학생들로 만든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고 말이다. 게다가 아무래도 4개의 방. 즉, 머큐리, 비너스, 마스, 주 피터 외의 방에는 사람이 들어올 기세가 없었다. 승강기는 한 번 위로-지금 와선 위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올려 진 뒤 돌아오게 하지도 돌아오지도 않았다. 아니, 애초에 ‘올라가면 내려올 수 없다’라고 한 시점에서 더 이상의 추가 인원은 보호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되겠지. 하지만 이 방공호의 목적은 보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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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난 대체 어디에 와 있는 거지?

 

이 시설은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정부의 인체실험 같은 걸 위해서 아무도 모르게 끌려오기라도 한 건가? 17살의 아이들을 모아두고 어떻게 될지 시험해 보자 같은 거? 그런 멍청한 짓을 누가 한다는 건가.

아니, 인체 표본 같은 건 어떻게 보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아직 뇌의 사용법도 제대로 모른다고 하는 것 같으니까. 그렇다면 역시 정부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인체 실험을 하기 위해 ‘우리’를 끌고 온 것일까?

만약 비합리적이고 명백하게 사회적으로 매장될 이 행위를 정부가 비밀리에 실행했고 성공했다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대화를 끊기 위해 리빙룸의 구조를 그렇게 만들고 또 샘플의 보존을 위해 오랫동안 잠재울 수 있는 침대를 그런 식으로 만들었다면?

아니, 너무 억지고 또 비과학적이다. 게다가 정부가 이 방공호를 만들었다면 밧줄이 들어있는 자판기와 환풍기의 높이는 이상하다. 그 것은 마치 이 환풍기를 통해 제 2의 리빙룸을 발견할 수 있는 열쇠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

응? 잠깐. 밧줄? 환풍기?

“!”

하람은 멈춰 섰다. 앞에는 빙글빙글 하람을 조롱하듯이 돌아가고 있는 팬이 보였다.

만약 밧줄을 넣은 게 정부라면?

그래, 생각을 전환하자. 정부는 ‘무언가’로부터의 압력으로 한 학교의 학생들 32명을 어떠한 공간에 가두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학생들은 무조건 적으로 인체실험에 쓰이며 학생들의 인권은 무시된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떻게 할까. 반항하지도 못 하고 만들어야하는 방공호. 그렇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이자 최대의 저항은.

방공호에 갇혀버릴 학생들을 돕는 것.

최대한 편하게, 최대한 안락하게. 그리고 동시에 ‘무언가’가 깨닫지 못하는 범위 내에서 방공호의 모순을 알아차릴 수 있게.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 이 방공호. 이상한 화폐개념과 모순투성이의 리빙룸. 깊게 잠들어 버리는 침대, 잘 되어있는 샤워시설. 그리고 낮은 환풍구의 위치와 자판기의 밧줄.

그렇다면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 대체 어떤 게 한 나라의 정부에게 이런 방공호를 억지로 짖게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인권을 마음대로 무시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미국? 아무리 강대국이라지만 이런 짓 까지 할 수 있는 나라던가? 아니 그 전에 한국을 상대로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는 나라다. 최강의 군사력 보유국가라도 ‘한국’이란 나라보다는 더욱 만만한 나라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일까. 음지에 숨어있는 세계 최고의 부자? 아니, 그렇다면 이런 인체실험이 그 부자에게 어떤 이득이 된다는 것일까? 그 전에 환풍기 위치와 밧줄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재기하진 않을까?

하람은 눈앞의 팬을 통과하고 제대로 걸려있는 캔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밧줄을 잡고 천천히 내려왔다. 아래엔 채희가 쭈그려 앉아 있다가 하람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상당히 반가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채희의 표정은 금방 굳어졌다. 하람이 식은땀을 흘리며 공포에 찌든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뭐야? 무슨 일 있었어?”

채희의 물음에 하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공간은 너무나도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미지수 밖에 나열되지 않은 공식으로 값을 구해야만 한다면 딱 이런 느낌일 것이다.

“서하람? 하람아?”

채희의 말에 하람은 꽉 잡고 있던 밧줄을 놓았다. 동시에 하람은 무너져 내렸다. 그대로 풀썩 쓰러지듯이 넘어지는 하람을 잡아낸 채희는 천천히 그를 눕혔다.

“뭐야? 왜 그래? 뭘 보고 온 거야?”

“나가야해. 여기서 나가야 해.”

하람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초점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생각들은 끈임 없이 하람을 괴롭혔다.

“퍽!”

채희가 하람의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하람은 잠시 코를 잡고 뒹굴 거리다가 곳 죽은 듯이 멈췄다.

“아프잖아…”

“그래서, 정신은 차렸어?”

“뭐, 그럭저럭”

고통 덕분에 조금 맑아진 하람은 채희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 보이는 커다란 원형 벤치 덕분에 다시 그 커다란 봉오리와 그 안의 인체 표본이 떠올라버렸다. 그리고 위장에 있던 음식물들이 역류를 준비한다.

“미안, 아직 못 차린 것 같아. 커터 줘봐.”

“뭐?”

“잠깐만 줘. 걱정 마 자살 같은 건 안 해. 속이 안 좋아서 손 좀 따게.”

커터로 엄지손가락 정도를 살짝 베어버리면 조금 낳아질 것 같아 손을 내밀었다.

채희는 불안한 얼굴로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커터를 하람에게 넘겼다. 하람은 과감하게 양 손 엄지의 손톱 뒤를 조금씩 베어내 피를 흘려보냈다. 조금 낳아진 것 같았다.

더러운 피가 빠져서인지 덕분에 머리도 맑아진 느낌이었다.

“고마워.”

하람은 그렇게 말 하고 다시 커터를 그녀에게 건넸다. 채희는 커터를 주머니에 넣고 일어나 하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람은 순순히 손을 잡고 일어나 그녀에게 부축해 비너스까지 걸어갔다.

하람이 쓰러지듯이 드러눕자 채희는 친절하게도 무릎을 내주었다. 조금 높은 감이 있지만 약간의 탄력 덕분에 편안한 무릎 배게 덕분에 하람은 피로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 좋은 냄새 난다.”

하람이 자신의 가슴 위에 올라와 있는 손을 덥석 잡으며 중얼거렸다.

“시끄러 변태야.”

순순히 손을 마주잡고 얼굴을 붉히며 하람의 머리를 찰싹 때리는 채희를 보며 하람은 무거운 눈꺼풀을 감았다. 몸도 마음도 지쳐버려 푹 자고 싶었다. 지금이라면 ‘그’ 침대에 누워도 괜찮을 것 같을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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