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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공호 by 계수

=전 세계의 명예로운 인류 여러분. 대통령…. 아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감히 고하겠습니다. 도망치십쇼. 살아남아 주십시오. 결코 이 지구에 인간이 살았다는 것을 잊게 하지 말아 주십 시오… 그리고… 어… 그리고….= 대통령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tv가 꺼지고 평범한 광고가 흘러나왔다. 싸늘한 교실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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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05    추천 0   덧글 0    / 2009.05.05 19:40:52

다시 식사시간이 되었다. 식사를 한 뒤엔 자동적으로 졸음이 쏟아지기에 한 끼만 먹고 바로 자 버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덕분에 식당은 굉장히 한적해 30명들의 학생 중 반도 없을 정도였다.

채희의 옆에서 하람이 무덤덤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채희는 조금 불편해졌다. 마치 절친한 친구처럼 하람의 옆에 붙어있는 준권. 그 녀석에게 감시를 받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이 하람을 통과해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 젓가락질 하나도 마음대로 못 할 것 같은 느낌.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분명 옆에 앉아있음에도 채희에겐 눈동자조차 돌리지 않는 하람의 태도. 그 것은 채희를 무시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기 보다는 하람이 꼼짝도 못 하고 쇠사슬에 묶여있는 사람처럼 보였기에 답답했다. 준권에게 사육당하는 동물 중 한 마리.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 하람이 너무나 안타깝고 가엽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아.”

땡그랑. 하고 하람이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오른쪽에 앉아있던 채희는 숟가락을 줍기 위해 고개를 숙였고 동시에 하람도 고개를 내렸다.

“마스.”

속삭이는 소리. 채희는 조금 놀라면서도 숟가락을 주어 하람에게 건넸다. 하람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식탁위에 숟가락을 올려놓고 젓가락만으로 우동을 입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마스.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전쟁의 신의 이름을 딴 행성으로 붉은 빛을 띠고 있어 예로부터 재앙이나 전쟁의 상징으로 여겨왔다고 하는 행성. 이른바 재난의 행성.

하지만 하람은 아마 그런 거창한 뜻의 마스가 아닌 단순한 방 이름의 마스를 말 한 것이라고 채희는 생각했다.

무슨 뜻일까? 갑자기 마스? 분명 준권이 묵는 방으로서 있는 것조차 거북하다는 채희의 친구들이 자는 때 외엔 가능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불평을 하던 방이었다. 조그마한 행동에 트집이라도 잡히며 곧바로 위로 올라가 버릴 것 같은 불안감. 게다가 준권이란 아이 자체가 올려다보기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어깨를 나란히 하기는 거북한 사람이었기에 같은 방의 학생들은 싫었던 것이다.

그런 곳에 채희를 불렀다? 대체 하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걸까?

채희는 조심스럽게 하람을 흘겨봤지만 하람의 얼굴에선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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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룸의 사람은 이제 1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아버렸다. 다른 아이들은 전부 방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한 순간이나마 종말이라는 단어가 없는 꿈속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시방석에 채희는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여전히 준권과 하람은 붙어서 가끔 뭔가 상의하듯이 소곤거리다가도 가끔 그저 멍하니 있었다. 웃음은 전혀 없는 둘. 마치 상사와 부하직원의 대화 같은 느낌의 고등학생 둘을 보고 있자니 무슨 연극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우스웠다.

마스.

하람은 그렇게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직도 채희는 깨닫지 못했다.

마스의 방에서 기다리라는 걸까. 아니면 마스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일까? 하지만 갑자기 왜 그런 걸 말해주는 것일까. 여러 궁금증들이 채희의 머릿속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었다.

“아.”

그리고 탄성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입을 눌러 막아 참았다. 이 고요한 리빙룸의 침묵은 중력에 짓눌리는 것처럼 거북했지만 그렇기에 그 걸 깨버리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런 고요덕분에 채희는 깨달았다. 묘한 결속감이 채희, 준권, 하람 외의 아이들에게 느껴졌다. 서로를 의지하듯이 어깨를 토닥여 주거나 어떻게든 서로 3m이상 떨어지지 않는 7명의 아이들. 그 얼굴들의 공통점을 채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마스의 7명.

준권까지 합해 8명인 마스의 아이들.

현제 리빙룸에서만 준권과 하람에게 짓눌려있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이 아이들은 잠을 자는 방에서까지 준권의 중압감에 눌려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곳 적응과 함께 준권에게 대항할 힘도 자연스럽게 길러졌는지 모른다. 그러기 위한 결속. 단단한 끈이 준권 모르게 아이들 사이에 이어져 있었다. 아마 하람이 준권을 몰아낸다고 한다면 그 다음은 이 아이들 중심으로 방공호가 움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것과 마스라고 말 한 하람의 말을 이어버리기엔 억지였다. 그렇다면 조금 더 말을 더 붙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걸 안다고 해도 채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래. 이런 걸 뜻한 것이 아니었어.

채희는 소리 없는 미소를 지으며 준권의 눈을 피해 일어났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움직여 리빙룸을 나간 채희는 곧장 마스로 향했다.

7명이 여기에 있다. 거기에 준권과 하람도 리빙룸에 있다고 한다면 마스는?

완전히 비어있다는 얘기다.

혹시 누군가 뒤따라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빠른 걸음으로 걸어 마스에 들어간 채희는 조금 놀랐다. 비어있어야 할 방에 두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 것이다. 숨어버릴까 하고 생각했지만 곡 그 두 명의 얼굴을 확인하고 채희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늦었잖아 은채희.”

냉정한 말로 조금 화가 난 듯이 말 하는 연화. 그리고 그 옆엔 아무 말 없이 허공에 초점을 둔 시화가 앉아있었다.

채희의 예상이 적중했다. 하람은 마스로 가라는 뜻이었다. 아무도 없는 이 방에서 밀회를 갖기 위해서. 아마 준권에게 대항하기 위해 마스의 아이들과 얘기가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이 밀회로 준권을 몰아내기 위한 확실한 방법을 전달한다. 이미 비어있는 방은 세 개나 있지만 이곳에서. 준권이 모르게 회의가 진행된다는 것은 크다. 준권 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장소에서 준권 그 자체를 무력화시킬 회의가 진행된다. 그 건 아주 위험하면서도 강력한 최강의 전선. 그 것을 구축한 하람은 동시에 준권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의 위치에 서 있었다.

마치 조선시대의 왕을 몰아내기 위한 역적들의 모임. 그런 상황에 조금 두근거리기까지 한 채희는 연화에게 다가갔다.

“상황을 조금 설명해 줬으면 하는데.”

“어디까지 알고 있는데?”

왠지 아까부터 신경이 곤두선 연화가 날카롭게 물었다.

“하람이 너희를 만나게 해 준 것?”

“그래. 그럼 얘기는 빠르겠네. 서하람 그 멍청이는 이 방공호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균형을 완전히 부숴버릴 생각이야.”

“?”

채희는 잠시 움찔했다. 마치 전혀 의외의 말을 들은 사람처럼….

“그런 표정 짓지 마. 나도 녀석이 왜 그러는지 자세하게 들은 게 없어. 조만간 추궁할 생각이지만. 뭐, 그래도 ‘그 녀석’이니까 따라갈 생각이야.”

그 녀석이 하니까?

“저, 서연화. 호,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너 하람이를 조, 좋아 하는 거야?”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 채희. 순순히 귀여워 보이는 모습에 연화는 무심코 같은 여자아이 임에도 안고 자고 싶다고 생각했다.

곰 인형 수준으로 귀여워 보였으니까

“…호오? ‘하람’이라니 이름만으로 부르는 걸 보니 꾀나 친해졌나본데?”

그런 마음의 흔들림을 진정시키려는 듯이 짓궂게 묻는 연화.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반 친구잖아. 게다가 중학생도 아니고 그런 걸로 부끄러워할 것도 없잖아?!”

“네, 네, 얼굴 빨개졌네요. 그냥 솔직하게 좋아한다고 하면 되는걸.”

“안 좋아해!!!!!”

“싫어한다고는 죽어도 안 하는구나?”

“싫어해!!”

“늦었어”

“이런 개….”

무심코 욕이 나오려는걸 참아낸 채희는 심호흡했다. 이런 식으로 휘둘리면 앞이 없다. 연화는 여전히 짓궂은 얼굴로 채희를 응시했다. 시화는 왠지 굉장히 한심 하다는 듯이 호흡해 한숨을 조금 섞어내며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으으으….”

“풋, 걱정 마. 좋아하긴 하지만 너 정도로 진지한 건 아니야. 게다가 연애감정 보다는 전우애랄까 동료애랄까? 아아, 우정이라고 하나? 어쨌든 그쪽이 더 강해.”

“…그래? 그런데 너 성격이 좀 바뀐 것 같은데….”

“이게 원래 성격이야. 내숭이 좀 심했었지? 아, 이제 와서 좀 뭐 하지만 사과할게 물 뿌린 거랑 책상의 낙서 미안. 동족혐오랄까. 나랑 비슷한 녀석이 있으니까 왠지 굉장히 짜증나서.”

채희는 움찔 하고 뒷걸음질 쳤다. 연화가 새삼스럽게 조금 무서워졌다.

학교에서의 괴롭힘은 이 녀석의 짓이었나?

“괘, 괜찮아. 지금 와서 뭘. 게다가 그런 걸 떠들 상황도 아니잖아?”

애써 태연하게 말 하는 채희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연화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넌 귀여워.”

“뭐?”

“아니야. 그런 것 보다 그 녀석이 너한테 내릴 지시를 줬어.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보래. ‘할 거야? 안 할 거야?’라고”

채희는 말문이 막혔다. 하람의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람의 지시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안 할 것인가.

어쩌면 채희의 선택에 따라 하람은 무모한 짓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람은 채희와 함께 이대로 있어줄지 모른다. 비록 대놓고 함께하진 못 하지만 확실하게 옆에 있어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게 옳은 것일까? 좋아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속박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대답은 당연하잖아.

“할 거야.”

확실히 하람이 걱정된다. 무엇을 하려는지 자신이 그의 말에 따름으로써 그는 어떤 리스크를 짊어지게 되는 건지. 연화와 시화. 거기에 자신까지 끌어들이는 일에 하람은 분명 큰 부담을 끌어안았을 것이다. 이미 자신 외의 사람을 끌어들인 시점에서 그 사람들의 안전은 필수적으로 보장하게 될 테니까. 그런 만큼 자신을 돌보지 못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채희의 선택으로 인해 일이 잘못되면 하람이 최악엔 위로 추방될 수 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하람이 하고 싶은 데로 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 것이 채희가 사랑하는 방법이니까. 그게 하람이 좋아하는 채희의 채희다운 방법이니까.

“당당하게도 말 하내. 뭐, 좋아. 그럼 잘 들어. 일단 녀석이 하려는 것부터 구체적으로 설명할게.”

연화는 툴툴거리듯 불만을 토하며 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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