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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공호 by 계수

=전 세계의 명예로운 인류 여러분. 대통령…. 아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감히 고하겠습니다. 도망치십쇼. 살아남아 주십시오. 결코 이 지구에 인간이 살았다는 것을 잊게 하지 말아 주십 시오… 그리고… 어… 그리고….= 대통령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tv가 꺼지고 평범한 광고가 흘러나왔다. 싸늘한 교실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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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09    추천 0   덧글 0    / 2009.05.10 20:22:55

불마저 꺼져있어 깜깜한 방 안. 조금만 눈을 감았다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살아 있는지조차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방이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마지막으로 보았던 마스의 방 만이 기억날 뿐.

하람과 준권은 현제 이름도 모를 방에 가두어져 있었다. 아까부터 욕설을 중얼거리고 있는 준권과 다르게 하람은 침착했다. 당연하게도 모두 예상된 일이었으니까

하람과 준권의 몸은 묶여있는 것과 동시에 시각마저 빼앗겨 있었다. 자신들의 셔츠로 만들어진 눈가리개는 완벽하게 시각을 빼앗았지만 덕분에 나머지 감각들은 이상하게도 예리해졌기에 하람은 이곳이 샤워실 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익숙한 샴푸냄새가 났으니까.

방향감각도 잃어버렸고 몸도 움직일 수 없는데다 보이지 조차 않는다. 분명 이대로 2,3일 정도 방치된다면 미쳐버릴 거란 생각이 엄습해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일까 10분? 1시간? 아니면 한 달? 혹시 몸의 자유를 되찾았을 땐 모든 게 끝난, 종말을 맞이한 지구에서 눈을 뜨는 것은 아닐까?

그런 불안감도 적지 않게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하람은 믿기로 했다.

채희와 연화를. 그리고 시화를.

그리고 얼마 후. 누군가 샤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리가 들리자마자 준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상대는 신경 쓰지 않고 하람을 일으켰다. 몇 시간정도 묶여있던 탓인지 몸이 찌뿌드드해 잘 움직일 수 없었다. 부드러운 살갗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여자아이 인 것으로 보이는 그녀의 긴 머리가 느껴졌다.

“채희야?”

샤워실에서 나온 것을 확인한 하람이 조용히 물었다.

“….”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람은 채희라고 단정 지었다. 이 타이밍에 올 수 있는 건 채희뿐이니까. 그 행동력 강한 여자아이밖엔 생각할 수 없었다.

“괜찮아. 모두 내 생각대로니까. 연화가 나와 준권이를 위로 올려 보낼 거야. 그럼 끝나. 너흰 여기서 있으면 돼. 내가 모두 파헤쳐 볼 테니까. 이 장소가 어떤 곳인지 전부 알아낼 테니까.”

상대는 계속 아무 말도 없었다. 묶여있어 움직이지도 못 하는 하람은 그저 팔에 느껴지는 가녀린 감촉을 느낄 뿐이었다.

“걱정 마. 돌아올게. 위험하니까 돌아가. 불도 꺼져있을 텐데 잘 보이지도 않잖아?”

셔츠로 눈을 가렸다지만 그 하얀빛을 다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즉, 이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불이 꺼져있다는 뜻이었다.

하람이 침묵하는 사이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전해져오는 온기에 하람은 그녀가 자신을 껴안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머리카락이 볼가를 스치고 살갗과 살갗이 만나고 있었다. 부드러운 느낌에 하람은 숨이 멎을 것 같았다.

“….”

그리고 입술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순간 하람은 이 아이가 채희도 연화도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녀들의 것과는 다르게 훨씬 여리고 작은 입술. 비록 한 번 정도밖에 해보지 않은 키스라지만 감각이 예민해져있는 지금이기에 알 수 있었다.

“너…”

짧은 입맞춤이 끝나고 그녀는 하람에 주머니 속에 무언가를 넣었다. 사각형의 작은 물체. 이곳에 잡혀올 때 빼앗겼던 수첩이었다.

“나는 여기에 있다.”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다시 하람을 일으켜 샤워실로 데려갔다. 털썩 주저앉은 하람은 여전히 욕설을 중얼거리는 준권을 새삼 때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방금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했다.

물론 쉽사리 되진 않았지만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깊게 생각할 것이라곤 그거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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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준권이 지쳐 아무 소리도 내지 않게 되었을 즈음. 연화를 포함한 아이들에 의해 나와 준권은 승강기에 태워졌다. 눈도 가려져있는 상태고 손과 발도 아직 묶여있었기에 저항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준권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쉰 목소리로 중얼거릴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상준권과 서하람. 둘은 방공호의 사회를 어지럽혔다고 판단. 둘 다 올려 보네겠어.”

연화의 목소리가 마치 판결을 내리듯이 밧줄에 묶여진 체 서있는 하람을 향해 울려 퍼졌다.

이걸로 됐다. 혹시 저 위로 올라가 하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곳엔 연화가 있다. 연화가 자리를 잡고 있는 이상 어떻게든 균형은 유지될 거라고 하람은 생각했다.

이제 시작이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연극은 이 위에 있을 무언가를 위해.

이곳은 방공호 따위가 아니다. 그 증거로 위로 올려 보내진 학생들은 하람이 보았던 그 봉오리에 인체표본으로서 살아있었다. 아니, 살아있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 라고밖에 가정할 수 없다. 문제는 그 누군가가 누구인가. 하람은 준권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준권과 함께 올라가는 것이다. 물론 손과 발이 묶여있는 체로.

“이 커터도 올려 보내겠어. 이런 게 있어봐야 서로에게 불안만 가져올 뿐이니까.”

연화가 사전의 약속대로 커터를 승강기 안으로 던졌다. 커터는 쇠 소리를 내며 하람의 앞에 떨어졌고 하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커터를 상상하며 승강기 문이 닫히기를 기다렸다.

“그럼. 잘 가.”

연화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리고 승강기 문이 닫혀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람은 천천히 주저앉아 바닥에 있는 커터를 찾기 시작했다.

“탁!!”

그리고 누군가 승강기에 올라탄 느낌이 예민해진 감각으로 느껴졌다.

“잠깐! 너?!”

연화의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덜컹 하고 낡은 목소리가 승강기 안에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

하람은 적잖게 놀라며 더 서둘러서 바닥의 커터를 찾기 시작했다. 이미 문은 닫혔다. 문제는 누가 이 안에 탄 것일까.

“정말, 귀찮게 한다니까. 어설픈 각성자는.”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 하지만 분명 익숙한 그 소프라노에 하람은 숨을 삼키며 더욱 필사적으로 바닥을 훑었다. 하지만 커터는 누군가 이미 주운 듯이 보이질 않았다.

“뭐야?! 누구야!!”

준권의 불안감 찬 목소리에 하람역시 서서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 못한 상황에 당황한 것이다.

“알 것 없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목소리. 하지만 처음 듣는 차갑고 냉정한 낮은 목소리.

“너….”

하람은 숨을 삼키며 말 했다. 이럴 리가 없다. 어째서 이 애가 이 곳에.

“은채희?”

그 것은 하람이 아닌 준권의 말이었다.

“은채희냐? 그 목소리, 은채희 맞지?! 너 뭐야! 어째서 너 따위가.”

“닥쳐 멍청아. 멤버가 듣고 있잖아.”

채희의 냉정한 말에 준권도 하람도 침묵했다. 아무 말도 없이 숨소리만이 들리는 공간에 약간의 부유감이 느껴지더니 그 것도 잠시.

“덜컹.”

승강기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생각지도 못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빙룸이 있던 방향. 환풍구가 뚫려져있던 방향으로 승강기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예민한 감각으로 인해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봐, 눈가리개는 좀 풀어주지 않겠어? 답답해 미치겠는데.”

“안 돼.”

“자, 잠깐. 은채희 이 방향 이건…. 제 2의 그 곳으로 가고 있는 거냐?! 하하 뭐야, 너도 동료였나. 까맣게 몰랐어.”

“동료라고?”

갑자기 끼어든 준권의 말을 잘라먹듯이 채희가 낮은 목소리로 말 했다.

“퍽!!”

그리고 들려오는 타격 음. 준권의 목소리가 신음소리가 되어 새어나왔다.

“의식도 제대로 공유되지 않은 주제에 동료라고 말 하지 마. 덜떨어진 것.”

하람은 새삼 깨달았다.

이 건 채희가 아니다.

이 목소리의 톤. 말투. 행동. 모두 채희의 것과는 달랐다. 마치 딴 사람이 채희의 안으로 들어간 느낌. 하람은 생각보다 의외의 일이 벌어진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입을 꼭 다물었다.

“이, 이봐. 미안해. 미안하다고. 그래도 일단 이 밧줄하고 눈가리개는 풀어 줘.”

비참하게 들리는 준권의 말. 이것 역시 평소의 준권과는 조금 다르지 않은가? 냉철하고 리더십 있는 준권이 이런 굴욕적인 말을 할 줄 알았던가?

“싫어. 어차피 리셋 될 건데 봐서 뭘 하게?”

리셋?

“자, 잠깐! 리셋이라니? 그게 뭐야!”

준권이 불안하게 목소리를 떨며 물었다. 준권도 모르는 건가? 아니 잠깐. 이 녀석들이 한 패인건가? 그런데 어째서 한 명은 이렇게 덜 떨어진 취급을 받고 있는 거지? 이곳이 정부의 기관이 맞기는 한 것인가?

“그 것도 모르면 입 다물어. 머저리.”

차갑고 냉담한 발언에 준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와중 하람이 입을 열었다.

“리셋이라.”

메마른 소리에 대답하는 자는 없었기에 하람은 말을 계속했다.

“혹시 기억을 지우겠다는 거야?”

“…너.”

“아아, 이해가 가는군. 아마 우린 최소 한 두 번 정도 리셋이란 걸 받았겠지? 시간이 3일이나 지나있는 것은 그 탓이고. 아무래도 그 리셋 이란 건 기억을 지울 수만 있지 조작은 불가능한 모양이야. 21일이 아니라 18일로 했으면 완벽했을 텐데 말이지.”

“닥쳐.”

퍽. 하고 하람의 몸이 중심을 잃고 바닥에 뒹굴었다. 머리를 찬 건지 꾀나 아팠다. 하지만 이걸로 확실하다.

아마 빙고겠지.

리셋이란 건 기억을 지운다는 의미였다.

자, 그럼 정리해보자. 인체 표본 같은 걸 만들 필요가 있고 기억을 지울 수 있다. 그런 오버 테크놀로지는 침대에도 포함되어 한 번 잠들면 이상하게도 두 배 이상의 수면을 취하게 되는 침대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판기는 만 원이던 천 원이던 똑같은 가치로 판단해 인류의 경제성을 무시하여 균형이 안 맞게 설계되어 있다.

이로서 유추해 낼 수 있는 이자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뭐, 확실하게 해서 뭐든 될 수 있다. 미래인이던 외계인이던 우주인이던. 하지만 확실한 건

절대 현대에 살고 있는 인류만은 아니란 얘기다.

 

하람은 척추에 뼈저리게 올라오는 오한을 느끼며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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