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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하 Dreamland Online
방공호 by 계수

=전 세계의 명예로운 인류 여러분. 대통령…. 아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감히 고하겠습니다. 도망치십쇼. 살아남아 주십시오. 결코 이 지구에 인간이 살았다는 것을 잊게 하지 말아 주십 시오… 그리고… 어… 그리고….= 대통령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tv가 꺼지고 평범한 광고가 흘러나왔다. 싸늘한 교실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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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44    추천 0   덧글 0    / 2009.05.17 18:58:35

공기가 바뀌었다.

그렇게 밖에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 하람은 승강기에서 내려 몇 걸음 정도 걸어갔다. 물론 모두 묶여있는데다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준권역시 하람과 별 다를 것 없는 상태로 채희가 등을 미는 대로 걸어 나갔다. 위태위태하게 균형을 잡으며 멈춰 섰을 때.

“또각.”

확실하게 들려오는 굽 소리에 하람은 정신을 차렸다.

“어째서 의식의 의사를 무시한 거죠?”

감정과 높낮이 없는 목소리. 기계가 억지로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는듯한 목소리를 하람은 잘 알고 있었다.

“….”

아마도 채희를 향한 질문이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구두 굽 소리가 하람쪽으로 다가오더니 곳 머리에 감겨있던 셔츠가 풀어졌다. 하람의 눈앞에 있는 것은 예상대로 군복의 여자였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하람의 팔과 다리의 밧줄을 너무나도 손쉽게 풀어버렸다.

“어서 오십시오. 의식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그렇게 높낮이 없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하람은 시선을 옮겨 긴 머리카락을 가엽게 보일정도로 괴상한 포니테일로 묶어 내린 채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얼굴을 돌린 채 앞서 나갔다.

하람이 있는 곳은 방이었다. 침대가 없고 또, 샤워실과 화장실이 없는 것만 빼면 비너스란 이름을 가졌었던 그 방과 똑같았다. 아니, 아니었다. 샤워실 문은 있었다. 다만 그 문은 아마 승강기의 문이었는지 하람의 뒤에서 굳게 닫혀있었다.

“이봐, 너 군복녀냐? 날 풀어줘! 명령이야!”

마치 부하에게 말 하듯이 준권이 소리쳤다. 군복의 여자는 무표정으로 준권에게 다가갔다.

“실례하겠습니다.”

눈가리개를 풀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하람이 조금 경계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녀는 셔츠가 아닌 준권의 입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아아아악!! 우웩!!”

구역질을 하는 준권. 그 그로테스크한 관경은 마치 수의사가 곰 같은 커다란 동물 입속에 손을 집어넣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곳 하람은 그 관경을 여유롭게만 쳐다볼 수 없게 되었다.

“…!!”

준권의 입에서 손을 뺀 그녀의 손에 반짝 하고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마치 젤리같이 유동성 있게 움직이는 것. 길게 늘어진 것이 입에서 빠져나올 때 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준권은 아무래도 졸도한 것인지 눈의 흰자위가 보였다.

곳 수은같이 은빛으로 빛나는 그 젤리는 서서히 여자의 손에 빨려 들어가듯이 응축되더니 야구공만한 크기의 공이 되었다.

“가시죠.”

이미 방의 밖으로 나간 채희를 따라 쓰러진 준권을 질질 끌고 가는 군복의 여자. 하람은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웃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녀들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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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밖엔 승강기를 타고오기 전의 그 곳과 똑같은 복도가 있었고 그 것이 이어진 곳엔 식당과 리빙룸이 있을 두 개의 문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리빙룸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을 따라 들어가는 하람. 당장 채희를 붙잡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래봤자 얘기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결국 이렇게 뒤꽁무니나 쫓아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리빙룸엔 하람의 예상대로 그 것이 있었다. 환풍구를 통해 보았던 구역질나는 관경. 사람이 인체표본처럼 들어가 있는 봉오리. 주먹에 힘이 들어간 걸 깨달은 하람은 들리지 않게 심호흡 하며 중앙의 봉오리에 멈춰 선 두 사람과 함께 멈췄다.

“삐-”

알 수 없는 기계음. 그 것이 난 곳은 봉오리 앞에 서 있는 군복의 여자로부터였다. 준권에게서 부터 빼낸 은색 구슬을 봉오리 아래에 억지로 눌러 넣는 행위.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하람은 알 수 없었다. 그저 봉오리 안의 표본이 약간 보글거렸을 뿐. 그 것 뿐이라고 생각한 하람은 시선을 채희에게 옮겼지만 곳 들려오는 소리에 다시 시선을 빼앗겼다.

“우웅”

기계의 구동 음. 컴퓨터가 켜질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한 그 불길한 음과 함께 봉오리가 ‘열렸다.’ 열린 봉오리의 안엔 당연히 사람. 그 것도 반 해부 상태의 사람이 들어있었다. 물처럼 쏟아져 내릴 거라는 하람의 예상과 다르게 인체표본은 그대로 허공에 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젤리로 통째로 굳혀버린 듯 투명한 무언가가 그 반 해부 인간을 고정하고 있었다.

=또 보는 군. 서하람.=

목소리?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 하지만 하람은 조금 의아해했다. 분명 소리로서 들림에는 틀림없지만 어디서부터 들려오는 건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눈앞의 해부된 인간도 채희도 준권도 아무도 입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계에서 나는 소리라고 보기에도 이상했다. 그런 것 치고는 바로 옆에서 말 한 것처럼 생생했다.

“또 봐?”

채희가 얼굴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그는 한 번. 이곳에 왔었습니다.”

군복의 여자가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말 했다.

하람은 머릿속으로 환풍구를 통해 보았던 이들을 생각했다.

들켰었던 건가?

“넌 누구지? 어디서 말 하고 있는 거야?”

하람이 묻자 채희가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나’는 의식. 우주의 모든 지식을 ‘수확’하는 유기체이다.=

돌아온 대답의 의미보다는 대답이 돌아온다는 것 자체에 조금 놀란 하람은 잠시 채희와 군복을 쳐다보았다.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하람은 꿀꺽 침을 삼키고

“후자 쪽의 대답은 아직 인데?”

질문을 이어갔다.

=‘너’와는 의식의 공유가 되어있지 않아 머리에 직접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허나 ‘나’는 인간의 정보 교환에 대해 이해했다. 공기의 진동을 이용한 정보 전달은 이 공간 어디에서도 할 수 있다.=

하람이 귀를 기울이며 말을 들어보았다. 자세히 들어보니 음원은 여러 차례 이동하는 것 같았다. 아마 ‘이것’은 이 공간의 공기를 마음대로 조종해 소리를 낼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 것도 사람의 언어로써.

“…넌 대체 뭐지? 우주라고 했었나? 우주인인가?”

=그렇다.=

피식. 하고 하람은 미소를 지었다. 우주인이라니 그런 말 도 안 되는 것에 의해 이따위 방공호에 갇혀있었단 말인가.

“그래서, 이 공간은 뭐지? 우주인이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만든 방공호?”

=오류가 있다. 이곳은 방공호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살리려는 것은 32명의 인간 뿐. 모든 인간 개체를 살릴 생각은 없다.=

마치 컴퓨터와 대화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원이 변화하며 소리의 음색도 고저도 달라지는 말. 하지만 묘하게 한글의 어투를 재현한 말은 분명 사람의 말처럼 들리기는 했으나 감정이 묻어나오지는 않는 것 같았다.

“우리 32명을 살리려는 이유가 뭐지?”

=‘나’는 인간을 이해했다. 하지만 너희의 ‘지식’은 공유하지 못 했다. 완벽한 공유를 위해 ‘나’는 너희를 데려가야 한다.=

이 우주인의 목적은 인간의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아직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런 성질의 물질. 혹은 생명체 란 말인가.

“…어디로?”

=‘나’가 머물 곳. 모든 것이 합쳐지는 곳. 그러기 위해 ‘나’는 지구에서 21일 거리에 있는 곳에 갈 것이다.=

모든 것이 합쳐지는 곳?

그게 무슨 뜻…. 잠깐, 설마.

“블랙홀?”

=오류가 있다. 너희가 정의하는 블랙홀 이란 장소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것을 ‘나’가 생성시킬 수 있는 장소다.=

쿵. 하고 무언가가 하람의 가슴을 내리찍는 것 같았다.

“…그럼 지금 우린 우주에 있다는 거야?”

=그렇다.=

“…잠깐, 말도 안 돼. 웃기지마.”

한 번 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우주인이라고? 그러 리가 없다. 이 상황과 이곳에 오기 전의 생활에서 볼 수 있다. 이 녀석은 우주인 일 수가 없다. 그렇다는 얘기는….

“네가 인간을 이해한 게 언제지?”

=일주일 전 대략적인 인체의 이해가 끝났고 2틀 전. 샘플을 얻으면서 인체의 이해는 완벽하게 끝났다. 남은 건 의식과 지식의 이해뿐이다.=

일주일 전.

역시 말 도 안 된다.

“우주인. 잘 들어. 이 방공호…. 그러니까 네가 우주선이라고 주장하는 이 장소는 인류가 8개월의 시간에 걸쳐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넌 겨우 일주일 전에 인체에 대해 대충 알고 있는 수준이었어. 그럼 여기서 네가 우주인이라는 가정을 세우자. 그렇다면 어떻게 이 환경을 만들 수 있지? 질소, 산소, 이산화탄소, 아르곤, 네온, 헬륨 등이 포함된 공기, 인간이 살아있을 수 있는 기압. 그리고 중력. 이 모든 게 인간에 대한 아무 이해도 없이 만들어졌다고? 거짓말 하지 마.”

그렇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녀석이 우주인이라고 한다면. 지금까지의 말들로 유추해 볼 때 인류와 만난 것은 적어도 8개월 전. 그래야 말이 된다. 하지만 인체에 대한 이해가 끝난 것이 겨우 일주일 전. 그렇다면 이 녀석은 일주일 만에 신의 흉내라도 내듯이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고 실험도 없이 거의 바로 우리 32명을 태웠다는 얘기가 된다.

우주인이라고 해서 그런 게 가능하겠는가.

=인간의 협력에 의해 이 장소를 만들 수 있었다.=

“?”

하람이 잘 이해하지 못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과 협력해 이곳을 만들었단 뜻이야.”

가만히 하람을 노려보던 채희의 존재를 새삼스럽게 눈치 챈 하람은 그렇게 말 하는 채희의 말을 듣고 적잖게 충격을 먹었다.

비틀. 하고 몸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무언가 위장에서 역류하려고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입가에 손을 가져갔다.

인간의 도움으로 이곳을 만들 수 있었다. 그 뜻은….

“…대가가 뭐였지?”

=우주에 관한 일부 지식을 공유시켜 주었다.=

우리는… 우리는 이 우주인에게

팔린 것이다.

 

인류는 32명의 인체를 이 우주인에게 팔고 그 대신 앞으로 풀어야 할 우주의 비밀에 관한 해답지를 얻어내었다.

아마 지금 쯤 지구에선 우리들을 기리며 묵념이라도 하고 있지 않을까?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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