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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공호 by 계수

=전 세계의 명예로운 인류 여러분. 대통령…. 아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감히 고하겠습니다. 도망치십쇼. 살아남아 주십시오. 결코 이 지구에 인간이 살았다는 것을 잊게 하지 말아 주십 시오… 그리고… 어… 그리고….= 대통령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tv가 꺼지고 평범한 광고가 흘러나왔다. 싸늘한 교실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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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다.=

기계 같은 울림이 리빙룸에 울려 퍼졌다.

“지금 네 사고론 몇 억년이 지나도 이해할 수 없으니 그만 둬.”

하람은 오히려 자신이 이 우주인을 가르치듯이 말 했다.

“리셋. 준비하겠습니다.”

군복을 입은 여자가 그렇게 말 하며 무표정으로 하람을 주시했다.

“우주인.”

하지만 하람은 무시하며 생체표본의 은색 젤리를 노려보았다.

=듣고 있다.=

“경고하지. 지금 당장 우리 32명의 인간들을 지구로 데려다 놔. 그러는 게 좋을 거다.”

=오류가 있다. 나에겐 그럴 이유가 없다.=

“이유라면 있어. 내가 마지막 기회를 주고 있다. 그게 이유야. 지구로 가라. 그렇지 않으면 맹세하는데 너와 함께 네가 힘들게 모아온 모든 지식들은 아쉽게도 멸망 할 거다.”

우주인을 만만하게 보는 태도. 채희는 그런 하람을 보며 아무도 보이지 않게 살짝 미소 지었다.

=오류가 있다. 인간은 그럴 수 없다.=

“그래?”

하람은 달렸다. 미쳐 누구도 반응하기 전에 내달려 채희를 덮쳤다. 위에서 내려 누르듯이 몸을 날린 하람은 쉽게 채희를 쓰러뜨렸고 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탕!!”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아아악!!”

고통에 겨운 괴성과 함께 선혈이 궤적을 그리며 하늘에 뿜어져 나온다.

하람이 팔을 부여잡으며 뒹굴었다. 하람의 왼쪽 팔에 피가 봇물 터지듯이 뿜어져 나왔고 그 뒤로 군복의 여자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포즈로 콜트를 들고 있었다.

“?! 잠깐, 총 같은 걸 가지고 있단 얘기는 못 들었는데?”

채희가 일어나며 물었다. 하람의 피가 얼굴과 머리카락에 드리핑이라도 한 듯이 흩뿌려져 있었다. 그녀의 굉장히 당황한 얼굴엔 난색한 표정이 가득했다.

=그와 첫 번째 조우했을 때. 그의 돌발 행동으로 A1 ‘하나’파괴 되었었다. 다음을 대비하기 위해 그를 제압할 수 있는 최적의 병기를 ‘방공호 안에서 찾았다.’=

딱딱한 어투에 채희는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하람은 흘러나오는 피를 부여잡으며 오히려 일어났다. 신음이 조금씩 새어나오며 비틀거리는 그에게 아까와 같은 여유 있는 말은 할 수 없을 것만 같아보였다.

“후하하하하하 웃기지마 웃기지 말라고 우주인.”

부여잡은 팔에서 흘러나오는 적색의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하람은 뭐 대수라도 대는 듯이 당당한 얼굴로 말 하며 앞을 향해 걸었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의식을 공유했다고 했지. 아니, 넌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그런 짓을 하는 게 아니야.”

비틀 거리는 발걸음. 위태위태한 동선에 겹쳐지는 환희에 가득한 하람의 얼굴.

“두려운 거다. 인류가.”

=오류가 있다. 난 인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 그렇다면 왜 의식을 공유한 거지?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 21일 후면 알게 될 것을 왜 굳이 미리 하려고 한 거냐.”

=난… 호기심에…=

말을 더듬는 컴퓨터. 하람은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생체표본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걸어가는 길에 붉은색 궤적이 생겨났다.

“인류를 얕보지 마.”

인체 표본에 도달한 하람. 붉은색 피가 흥건한 주먹이 단단한 봉오리에 부딪쳤다. 작은 쇳소리만이 리빙룸에 울릴 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너는 어째서 우리와 의식을 공유하지 않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거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널 파괴하고 지구로 돌아가 푸른 하늘을 볼 희망이 아직 있으니까.”

씨익 하고 비웃듯이 미소 짓는 하람.

“그런데 몇 가지 묻자. 쿨럭…. 우주인. 어째서 ‘우리’라고 하는 거지? 아까까지만 해도 어법에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나’라고 정의하지 않았나.”

=…난=

“하나 더. 어째서 질문을 하는 거지? 어째서 호기심이란 게 있는 거지? 잘 생각해 봐 우주인. 그 사고방식의 정점에 콜록… 무엇이 서 있는지 잘 생각 해 보라고. 우주를 떠돌아 다녔잖아.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우주의 사고를 모았잖아 그 사고들의, 윽, 무…한대의 지식에서 찾아보라고 그 의식을.”

마치 정지한 것처럼. 군복의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채희는 그저 조금 가파른 숨을 쉬며 하람을 쳐다볼 뿐. 생체 표본은 애초에 움직이지 않았고 하람 역시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수초가 지나고

=…정점엔=

마침내 음원이 어딘지 모를 소리가 리빙룸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다시 고뇌하는 듯이 침묵이 찾아온다. 그것이 하람에겐 불안하게 웅성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점엔…=

말을 고르는 우주인. 하람은 그렇기에 확신했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은

 

=………인류다.=

 

하람은 미소를 감추고 결의에 찬 얼굴로 생체표본을 노려보았다.

“내가 희망을 갖는 이유도 그 거다.”

조용한 선고를 내린 하람은 그대로 정신을 잃듯이 쓰러졌다. 흘러나오는 피가 이미 상당했다. 이 이상 흘렀다간 위험할 정도의 피. 덕분에 의식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쓰러진 하람의 주변은 아름다웠다. 흥건한 피가 동선을 따라 이어져 하람이 쓰러진 장소에 고여 있었다. 그 것은 마치 붉은색의 장미꽃처럼도. 붉은 폭포처럼도 보였다.

우주인에게 감사한다.

 

=‘나’는 아직 우주 전체를 돌아보지 않았다. 또, 세월 속에 멸망한 문명의 흔적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네 말 대로 이처럼 감정을 가진 지성생명체는 처음 만난다.=

 

그렇게 말 해준 우주인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나’는 한 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고민했다. 이 광활한 우주의 한 은하. 그 은하 중에서도 태양계. 그 안에서도 한 행성. 그리고 그 안의 200여개의 나라 중 한 작은 나라의 한 소년. 그 뿐이었던 자신은 한 없이 작고 한 없이 보잘 것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더라도 어차피 이 우주는 아무것도 보답해 주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무력하고 의미 없는 존재란 것을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며 되새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우주인을 통해서 알았다.

인류의 감정은 유일하다.

이 우주에 어떤 생명체들이 존재하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인류에겐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한없이 우주를 떠돌아 다녔을 이 우주인이 어디까지 가 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수집해 온 정보 안에 인류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지식을 가진 생명체는 없다고 말 해 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앞을 볼 희망이 생겼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가 생겼다.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이라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을 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그만큼이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자 이렇게 끝나버리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일어나 대항하여 살아남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끝나버리면 안 된다. 오히려 이로써 더욱 더 앞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 것이 나. 아니, 우리 인간의 방식 이었으니까. 그래.

 

나는 여기에 있다.

 

이 넓은 우주에 한없이 작고 보잘 것 없을지 모르지만 그런 우주에 필적할 만큼의 의미를 가진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그리고 32명의 ‘나’와 같은 인간이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앞을 보고 희망을 가지고 넘어지면 일어나서 상처가 생기면 짓누르며 이를 악 물고 달려갈 것이다. 비록 한없이 작은 희망을 바라보고 있더라도….

 

나는 여기에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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