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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 주세요! (完) by 페더

분명히 말하지만, 나와 그녀는 매우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런데 뭐, 약혼이라고? 말도 안 돼,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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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58    추천 1   덧글 1    / 2009.08.15 21: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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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숨을 몰아쉬고, 나는 유수아를 돌아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녀석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찰나, 또다시 의식이 희미해졌지만 나는 억지로 버텼다.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을 잇는다.

“지금 여기서 허락할 테니까, 나 한 대만 쳐라.”
“……뭐?”
“치라고. 허락할 테니까. 아니, 명령할 테니까 쳐. 조항 기억하지? 「유수아는 유사시에 오윤성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잔말, 말고 쳐.”

호흡이 가쁘다. 의식이 흐리다. 금방이라도 사고가 끊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 나는 겨우 모든 말을 내뱉었다. 유수아의 표정에 아연함이 떠오른다. 다시 그녀가 물었다.

“진짜로?”
“쳐!”

남은 힘을 긁어모아 나는 강하게 명령했다. 유수아의 어깨가 흠칫 떨리더니, 이내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그녀 역시 심하게 다친 모양인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 다가와, 내 앞에서 겨우 제대로 몸을 일으키더니,

퍼억―주먹이 뺨에 닿았다.

그녀도 나도 극한까지 지쳐있음이 틀림없다. 그녀의 주먹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약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너무나도 강렬한 감각이었다. 미약한,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것에 비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통증이 옅어져가는 의식에 불을 붙였다.

그래, 유수아라면 이래야 한다. 제멋대로 말하고, 제멋대로 날뛰며 제멋대로 사람을 부리고 제멋대로 사람을 때리고, 그런 주제에 배려할 건 모두 알아서 배려하는 여자가 유수아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코앞에 닥쳐도 체념하지 못하는 게 유수아다.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마법사가 묻는다.

“이거, 보라고.”

나는 마법사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옆구리는 아프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의식이 흐려지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의식만은 어떤 때보다도 뚜렷했다.

불현듯,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약혼자잖아!”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서로 으르렁대도 그것은 이미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약혼녀가 죽도록 내버려두는 약혼자가, 세상 어디에 있냐!”

나는 스스로의 의지를 강력하게 관철했다.

“――.”

마법사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다시 다문다.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이 녀석이 죽도록 내버려두지는 않겠다. 의지를 재확인하고, 나는 마법사를 노려보았다.

“……일반인인 당신에게까지 손을 대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마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굽힐 수 없는 의지는 부러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극광이 맺혔다. 손 안 한가득, 실타래처럼 올올이 묶인다. 그것은 검이었다. 끝이 송곳처럼 날카로운, 찔러죽이기 위한 무기였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도망칠까? 안 된다. 내가 여기서 피하면 필연적으로 뒤의 유수아가 맞는다. 그렇다면 막아내? 무리다. 맨손으로 칼을 막아내는 방법 따위 나는 모른다.

“방해자는 죽으십시오.”
“……!”

마법사가 고했다. 그것은 내게 내리는 죽음의 선언이었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한순간 두려움에 못 이겨 꺾일 뻔한 다리를 억지로 지탱한다. 저도 모르게 숙일 뻔한 몸도 가까스로 곧게 세웠다. 피하지 마! 여기서 피하면 죽는 건 유수아다! 스스로의 의식에 마구 채찍질을 한다. 그러는 사이 빛의 검은 느린 속도로 가까워져, 이내 고통도 열기도 없이 내 가슴에 틀어박히고――

그리고 다음 순간 우주가 펼쳐졌다.

“……뭐?”

눈앞이 까맣다. 처음에는 내가 결국 죽은 것인가 싶었다. 그러나 시야를 채운 어둠은, 아니, 그것은 어둠이 아니었다. 뒤늦게 그것을 인식한 것은 시야 언저리에 비친 작은 빛 때문이었다. 별빛과도 닮은 그것을 저도 모르게 돌아보는 순간――

별의 바다가, 해일이 되어 나를 덮쳤다.

말하자면 그것은 심연이었다. 끝이 존재하지 않는 무한함이었다. 수천, 수만, 수억, 셀 수 없는 숫자의 별빛이 저마다의 의미를 품고 한순간 내게 다가왔다가, 나를 스치고, 다시 멀어진다. 우주 한 가운데에 뜬 채 깊은 어둠속에서, 별들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나는 생각했다.

여긴, 어디지?

의문에 답하듯, 다음 순간 무수한 별들이 크게 회전했다. 별자리를 그리듯 선을 그리며 움직이더니, 이내 연쇄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충격은 없고, 소리 또한 없다. 지켜보는 것은 나 하나뿐인 고요하고 고독한 멸망이었고, 또한 멸망은 동시에 창생의 의지. 그것은 끝에서의 시작이며 시작으로의 끝.

알 수 없는 지식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알 수 없는 개념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알 수 없는 존재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세계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가 발 디딘 적 없는 깊은 우주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무한의 「나」가 나를 본다. 무한의 「우주」가 나를 담는다. 뭘까. 이것은 뭘까. 나는 눈앞에 펼쳐진 우주에게 물었다.

――너의 우주다.

답하는 목소리가, 아아, 있었다.

환희하는 목소리. 절망하는 목소리. 격노하는 목소리. 비탄하는 목소리. 그리고 그것은 의지였다.

――너의 우주다.

항거할 수 없는 강건한 의지가, 다시 한 번 내게 말했다. 나는 이끌리듯 우주로 손을 내밀었다. 별빛이 일렁이는 우주의 한 가운데, 일순 균열이 내달린다. 균열은 이내 검은 덩어리처럼 하나로 뭉쳤다. 빛을 내지 않고, 그것은 다만 그 공간에서 내게 고고하게 존재를 알린다. 나는 그것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너의 뒤틀린 우주다.

그것은 보잘것없는 평범한 돌이었다. 그것은 눈이었다. 그것은 무기였다. 목소리였다. 혈류였다. 보석이었다. 심장이었다. 행성이었다. 공허였다. 하늘이었다. 대지였다. 생명이었다. 별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나의 우주다.

나는 우주를 손에 쥐었다. 머릿속 가득 들어찬 모든 알 수 없는 것들이 단숨에 이해되었다. 그렇다. 이것이 나다.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이다. 뒤틀린 창생이다. 운명을 거스르는 생명이다. 멸망의 끝에서 태어난 시작이다.

직후, 세계가 반전했다.

“―――――――――――――――――――응?”

어라. 나 아직 안 죽은 건가?

어째서인지 정신이 조금 몽롱했다. 방금 전까지 어딘지 알 수 없는 까마득하게 머나먼 곳에 있었던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았다. 억지로 떠올려보려 해도 뭔가에 막힌 듯 사고가 진행되지 않는다. 기억의 공백에 의아함을 품다가, 나는 뒤늦게 내가 처해있던 상황을 깨닫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유수아는? 혹시 나 지금 벌써 죽었나? 그럼 지금 유령? 얼떨떨해하며 돌아보니 유수아는 아직 살아있다. 어째서인지 사진으로 찍어서 가보로 남겨두고 싶을 만큼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조금 안심하며 나는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법사가 손에 쥐고 있던 빛의 검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마법사 본인은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언제부터인가 검고 커다란 부정형의 덩어리가 내 어깨에 얹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 리가! 이제 와서, 이 순간에 와서 우주를 보았다는 말입니까?! 하필 이 순간에!”

마법사가 경악하며 말했다. 질문의 대상은 나인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조금 알아듣게 말해줘.

“천天도 없고, 지地도 없고 인人뿐인 우주라니! 그런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법사는 그다지 내 바람을 이뤄주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고 있다고. 하긴, 적이니까 당연하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지금쯤 죽어 널브러져 있어야 할 내가 당당히 살아있는 이유와, 마법사가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난 이유에 대해 생각하며 반사적으로 어깨에 얹힌 검은 덩어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손끝에 닿은 검은 덩어리가 갑자기 퍽,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수축하기 시작했다.

“으허?”

그러고 보니 의문을 품어야 할 건 하나 더 있었다. 이 기괴하게 생긴 건 대체 뭐냐. 나는 잔뜩 오그라든 채 허공을 둥실거리며 떠다니기 시작한 검은 덩어리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데. 골똘히 생각해보니 유수아가 마법을 쓸 때마다 나오는 세 개의 흰 덩어리랑 닮은 것 같았다. 색은 좀 다르지만.

“……너, 아니, 마법, 사……?”

등 뒤에서 유수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려다가, 순간 옆구리를 꿰뚫는 지독한 통증에 눈앞이 새하얘졌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대로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을 뻔한 것을 가까스로 지탱하고, 어쩔 수 없이 고개만 슬쩍 돌렸다.

“뭔 소리냐? 아니, 이따가 말하자.”

아직 마법사가 물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다시 앞을 돌아보았다. 마법사는 초조한 낯빛을 하고 시선을 이리저리 방황시키고 있다. 하려는 일에 무언가 차질이 생긴 것일까. 그렇다면 이대로 돌아가 주면 좋을 텐데. 나는 눈앞의 여자, 마법사를 가만히 노려보며―어라, 잠깐?

나 지금, 눈앞의 마법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다.

“……!”

마법사도 뒤늦게 그것을 깨달은 것일까. 그녀는 황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늦어도 한참 늦은 반응이었다. 이미 나는 마법사의 얼굴을 봐 버렸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복장이 확연히 달라서 잠시 못 알아봤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분명 내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이었다.

“……마녀?”

이번 대 레이스의 총괄심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아라드·파시모나카가, 눈앞에 서 있었다.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마법사는 얼굴도 뭣도 알 수 없는 이상한 마법사였다. 그래서 나는 저 마법사가 혹시 유수아의 어머니를 죽인 범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정체가 드러난 저 마법사는 마녀 아라드·파시모나카다. 어라,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마법사가 마녀고 마녀가 아라드고 아라드는 심판이니까, 아니 이게 아니고 유수아의 어머니를 죽인 범인이 마녀라는 건가? 요컨대 유수아의 부모의 원수? 그런데 그런 주제에 왜 여기에 있지? 유수아도 죽이려고? 그녀는 또 왜? 일가족 전부를 몰살시키고 싶은 건가? 자기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밤잠을 못 자는 정신 나간 연쇄살인범? 젠장.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큿!”

순간 마녀가 옅은 신음성과 함께 빙글 몸을 돌리더니, 그대로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뒤늦게 그것을 깨달은 나는 달려 나가 그녀를 붙잡으려 했으나 통증 때문에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제자리에서 낑낑대는 사이 마녀는 금세 지붕을 뛰어넘고 하늘을 날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어? 잠깐만. 도망갔다고? 진짜로?

“…….”

허탈해진 나는 입을 벌리고 멍청히 하늘만 바라보았다.

긴장이 풀렸다. 최후까지 그러모아 몸을 지탱하고 있던 힘은 마녀가 도망쳤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저항도 못 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에는 또다시 격렬한 통증이 옆구리를 파고들어서, 나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가까스로 손을 들어 입술을 틀어막고 보니, 얼굴 전체가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옆구리의 상처는, 대체 어떻게 다친 건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피를 내보내고 있다. 사람의 몸이라는 건 이렇게도 피가 많이 흘러나오는구나. 내려다보고 있으니 질릴 정도다.

“……야! 괘, 괜찮아?!”

곁에 다가온 유수아가 내 머리를 받치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느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별 거 아니라고 그녀의 물음에 답하려 했으나, 입술만 희미하게 달싹거릴 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의식은 엄청나게 맑은데 감각은 갈수록 희미해진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일까? 그리 생각하자 오한이 들었다. 설마 이대로 과다출혈로 사망, 배드 엔딩입니다 데헷☆ 같은 전개가 벌어지지는 않겠지. 아아, 어쩐지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플랜더스의 개가 썰매를 끌고 달려오고 있다. 썰매 위에는 철판처럼 보이는 갑주로 가슴과 중요부위만을 가린 건장한 남자가 나를 보며 기분 나쁜 표정으로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고 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전사의 영혼을 발할라로 인도한다는 발키리의 위용. 근데 발키리는 여자 아냐?

마침내 환각마저 보이고 있다. 이거 위험해.

엔딩 테마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내 인생은 스탭롤에 돌입. 폐막과 동시에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대 갈채. 온 세상에 감동의 소용돌이. 흥행 성적 연속 1위.

‘그의 한결같은 모습에 희망을 얻었다.’(진 모 씨, 25세, 회사원)
‘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해주는 감동적인 작품.’(최 모 씨, 44세, 주부)

……기다려. 나 아직 안 죽었거든.

별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는 사이 정말로 위험한 상태가 되었다. 그나마 또렷하던 의식마저 점점 흐려지고 있다.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고 직감했다. 잠이라도 자 두면 조금은 편해질까. 나는 사물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흐릿해진 눈을 몇 번 깜빡여 겨우 시야를 정리하고 옆에서 뭐라 떠들고 있는 유수아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문득 나는 한 가지 사실이 생각나 나른하니 혼잣말을 했다.

“그래도, 다행이구만…….”
“다행은 뭐가! 너 지금 잘못하면 죽는다고!”

나도 제대로 안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인데 그걸 들었는지 유수아가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꺅꺅대는 목소리에 고막이 아프다. 이 녀석 흥분도 가라앉힐 겸, 나는 느릿느릿 손을 들어 귀를 대 보라고 손짓했다. 녀석은 입을 다물더니 순순히 내 입가에 귀를 가져다댔다. 나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잔다. 아침에 깨워줘.”

아니, 이럴 때는 자는 게 아니라 기절하겠다고 말해야지.

스스로의 말에 태클을 거는 것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단번에 가라앉았다.

---


2장은 여기서 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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