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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 주세요! (完) by 페더

분명히 말하지만, 나와 그녀는 매우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런데 뭐, 약혼이라고? 말도 안 돼,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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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페더[mdragoon]
조회 968    추천 0   덧글 0    / 2009.08.21 18: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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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시작되었다. 천지를 우러러보는 눈, 비전의 마법사 유진명은 앞 다투어 달려 나가기 시작하는 선수들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그의 딸과 그 약혼자의 모습도 있었다.

“명명에 답하는 자여, 자네 딸도 보이는군그래.”
“응? 어, 아아. 그래, 뭐.”

여자, 명명에 답하는 자 세르실레나·드·메이블·헤밀턴은 멍하니 선수들을 내려다보다가 뒤늦게야 당황하며 대꾸했다. 평소였다면 시비를 걸지 못해 안달이 나 있어야 정상인 여자가 기묘하게 조용한 것을 보고 진명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절대적인 자신감 덩어리인 헤밀턴의 가주가 어쩐 일일까. 설마하니 긴장이라도 하고 있다는 것인가?

‘하지만, 그것보다도…….’

진명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시선을 조금 옆으로 돌렸다. 마녀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 비친다. 9년 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는데도 이번 대에 다시 총괄심판을 맡은 수완은 칭찬해줘야 할까. 딸아이인 수아를 노리고 있는 게 분명한 아라드에게는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

진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미 비전을 통해 모든 일이 좋게 풀릴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굳이 자신이 일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이 가슴속에 응어리진 불안을 없앨 수는 없었다.

아라드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정확히 진명을 향했다. 진명은 숨을 삼켰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후우.”

진명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모든 일의 원흉은 자신인 바. 아무리 수아가 이것을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런 주제에 일을 망치게 될까 봐 두려움에 떨며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오, 엇차.”

문득, 곁에 서 있던 세르실레나가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갔다. 그대로 담벼락 아래로 뛰어 내려가 소리도 없이 착지하더니, 답지 않게 씨익 웃으며 진명을 올려다본다. 진명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가? 이보다 더 좋은 관람석을 찾는 것은 힘들리라 생각하네만.”

세르실레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잠깐 가볼 데가 있어. 갔다 오면 경기가 끝나 있을지도 모르겠네. 후후, 주 해체 신청서류는 준비했겠지?”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네.”
“뭐, 그렇지. 안 봐도 뻔하지만. 그럼 난 이만.”

가볍게 손을 젓더니, 이내 그녀의 모습이 그대로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진명은 얼마간 세르실레나가 사라진 자리를 응시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경기는 이제야 초반부. 그러나 선수들 간의 경쟁은 벌써부터 치열하기 그지없다.

그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하늘을 뒤덮을 듯 쏟아지는 무수한 화살의 무리를 유수아는 일일이 맞상대하지 않고 유려한 동작으로 피해갔다. 등에 매달린 나는 그녀가 격하게 움직이는 터에 속이 울렁거렸으나 입을 꾹 다물었다. 방금 전 공격을 퍼부은 마법사가 혀를 차며 우리를 노려보다가 어딘가에서 날아온 불꽃에 격추당했다. 치열한 공방이 사방에서 벌어지는 가운데, 나와 그녀는 공격해오는 자들을 맞상대하지 않고 교묘하게 피해가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앞, 왼쪽 위랑 땅속에서! 알아서 피해봐!”
“일일이 지시 안 해도 된다니까!”

앙칼지게 소리 지르면서도 그녀는 내 지시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앞에서 날아오는 얼음덩어리와 왼쪽 위에서 날아오는 새파란 빛을 오른쪽으로 뛰며 피하고, 땅속에서 솟구치는 공격은 자리를 박차고 위로 뛰어올라 피했다. 세 방향에서 날아온 공격이 서로에게 충돌해 섬광과 마력이 사방으로 튀었다. 거의 동시에 다른 각도에서 다시 공격이 날아온다.

“뒤에서 회오리바람! 우와, 저건 좀 넓은데?! 못 피하겠어!”
“에이이 제기랄!”

유수아는 거칠게 외치며 자리에 멈춰 서서 빙글 몸을 돌렸다. 왼손만으로 나를 업은 채 남은 손을 앞으로 뻗어내는 순간 칼날 같은 돌풍이 우리를 덮쳤다. 그러나 그보다 한 발 앞서 그녀가 펼친 방벽 덕에 피해는 없다. 앞에 보이는 유수아의 머리칼이 조금 흐트러졌기에 나는 원래대로 정리해주었다.

“다시 달려!”
“명령하지 말라고 했지!”

그녀는 나를 업은 채 다시 맹렬한 속도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순위는 아직까지 중상위에 머무르고 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10위정도 될 것이다. 그러나 노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1위다.

“얼마나 달렸어?!”

유수아가 물었다.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친절하게도 마력으로 이루어진 표시등이 있었다.

“5km! 한참 멀었어!”
“더럽게 머네!”

전방에서 날아오는 은색의 창을 주먹으로 쳐 깨부수며 그녀는 질린 듯이 소리쳤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이 아닐 것이다. 나도 그녀도 그 어느 때보다도 흥분해 있다.

“마력배분 잘 해야 돼! 마지막에 힘 딸리면 말짱 도루묵이다!”
“나도 알아! 알아서 한 다니까 왜 자꾸 참견이야!?”
“불안해서 그런다!”

티격태격하는 와중에도 수아는 사방에서 날아드는 공격들을 용이하게 막고 피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게 파편이 튀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그녀는 확실히 강하다. 굳이 내가 지켜줘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어이, 앞에! 머리 숙여!”
“에? 우햣!”

내 목소리에 앞을 돌아본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나도 뒤따라 고개를 숙이자, 날아오던 푸른 칼날이 머리 위를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스쳤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시야에 가득 차는 날카로운 칼날.

“윽……?!”

반사적으로 눈을 감으려는 순간, 유수아가 오른손을 들어 크게 휘저었다. 그녀의 손에 모인 천지인이 한 번 회전하더니 이내 격렬한 돌풍을 토해냈다. 내게 날아들던 마력의 칼날이 산산이 조각나 사라졌다.

“멍청아! 긴장 풀지 마!”
“미, 미안!”

우리는 다시 달렸다. 치고 박고 티격대고 피하고 막으며 10km지점을 돌파했다. 뒤를 돌아보면 우리 뒤를 쫓아오는 선수들의 숫자도 꽤나 줄어들었다. 순위는 알 수 없지만, 제법 위로 치고 올라온 것 같다.

“오―호호호!”

그리고 그때, 매우 익숙한 웃음소리가 허공에서부터 들려왔다.

“금발이냐!”

고개를 들어보니 과연, 용인지 뱀인지 알 수 없는 기이하게 생긴 생물체 위에 올라탄 금발이 가소롭다는 눈으로 우릴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수아가 다 들리는 소리로 혀를 찼다. 그 심정 나도 이해가 간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최악의 적이다.

“자, 자, 자, 자아! 드디어 때가 왔어요! 빛의 종말! 이 자리에서 바로, 당신과 결판을 내겠어요!”
“바쁘니까 나중에!”

내가 고개를 들고 소리치자 금발은 불꽃을 휘감은 뱀으로 답변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화끈한 감각이 뒷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위험하잖아!”
“당신은 빠지세요! 이건 저와 빛의 종말 사이의 문제예요!”
“약혼녀 문제에 빠지라는 게 말이나 되냐!”

그러나 사실 이렇게 말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나는 시선을 돌려 유수아를 바라보았다. 마침 그녀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작게 말했다.

“저거 어떡하지?”
“무시해.”

명안이다.

유수아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뭔가를 시끄럽게 얘기하던 금발도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챘다. 그녀는 이내 악귀와 같은 얼굴로 우리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어어어어―딜 도망가는 건가요?! 당신이 제게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방해되니까 꺼져버려!”
“무례한 소릴 하시는군요!”

이번에 날아온 것은 서리를 휘날리는 늑대였다. 유수아는 귀찮은 듯이 크게 혀를 한 번 차고는 옆으로 몸을 날렸으나 늑대는 직선으로 날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허공에서 궤도를 꺾어 집요하게 우리를 쫓아왔다. 결국 그녀는 눈살을 확 찌푸리며 멈춰 서서 그것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깽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늑대가 산산 조각나 사라졌다.

“귀찮게 하는구만, 진짜!”
“무시해, 무시! 엮이면 귀찮아진다고!”

한순간 싸우려는 기색을 보이던 그녀는 내 만류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금발이 눈살을 찌푸렸다. 싸움을 피하려 드는 우리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도망치지 마세요! 정정당당하게 여기서 나와 겨루세요!”
“미안, 나중에!”

유수아 대신 내가 그녀에게 사과했다. 우리 팀의 전력은 강한 편이 아니다. 그래서 고안한 작전이 초반에 접전을 피하고 확 치고 올라가 미리 기반을 다져놓는 것이다. 어떻게든 2~3위 자리를 따놓으면 그 다음엔 뒤에서 따라붙는 한두 녀석들만 차근차근 처리하면서 여유롭게 2위와 1위 자리를 노릴 수 있으니까. 유수아는 자랑은 아니지만 자기가 마법에는 좀 약해도 싸우는 것 자체는 자신 있다고 했고, 그 말은 레이스의 우승 후보라던 금발과 대등하게 싸웠던 예전에 이미 증명되었다. 1위와 2위를 흠씬 때려눕혀 놓으면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1위가 된다. 그러나 이 작전을 이루려면 초반에는 되도록 정면 전투를 피해야 한다. 따라붙은 상대가 설령 우리랑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난 금발이라고 해도.

금발이 입매를 일그러뜨리며 우리 뒤를 쫓아왔다. 나는 유수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거 어쩌냐! 쉽게 포기할 기색이 아닌데?!”
“아 젠장, 미치겠네!”

유수아가 자리에 급히 멈춰 섰다. 그대로 몸을 빙글 돌리며 곧바로 땅을 박차 허공으로 뛰어오른다. 뒤늦게 허공에 멈춘 금발과의 거리가 한없이 가까워졌다. 유수아의 천지인이 오른손에 모였다. 다음 순간 그녀는 힘껏 기합을 지르며 오른손을 내질렀다.

“으랴아앗!”

섬광이 폭발했다. 직선으로 날아간 빛의 기둥은 금발 대신 금발을 태우고 있던 용인지 뱀인지 모를 괴생물체를 맞췄다. 자신에게 날아올 공격에 대한 대비만 하고 있던 금발은 물론 그 공격에 대응하지 못했다. 날카로운 비명성과 함께 괴생물체가 마력이 되어 흩어졌다. 당연한 수순으로 금발도 아래로 떨어졌다.

“우, 꺄아아아악!?”

금발의 비명소리를 무시하고, 유수아는 순간적으로 허공에 마력으로 발판을 만들어 그것을 박차고 다시 지상에 착지했다. 이어 멈출 틈도 없이 그녀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잘 들어. 넌 마법을 쓰지 마. 선수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일반인 공격 가능이라는 새로운 규칙이 생긴 시점에서 경기에 일반인이 참가했으리라는 건 예상할 거야. 그러니까 너는 일반인처럼 행동해. 마력을 내보이지 마. 아무리 규칙이 신설됐다고 해도 쌓아놓은 감각이나 습관 같은 건 쉽게 안 변해. 마법사들은 여전히 일반인을 공격하는 걸 꺼릴 거야. 그러니까 얌전히만 있으며 네가 직접적으로 목표가 되는 일은 없어.”」

경기 시작 전 유수아가 내게 한 말을 떠올리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에 보이는 선수들은 우리들을 제외하고 없다. 근처에 15km를 알리는 표시등이 있었다. 방금 지나쳤다. 36.15km를 두 바퀴, 총 72.3km의 코스 중 5분의 1을 조금 넘게 달렸다. 눈앞의 유수아에게서는 지친 기색도 없다. 오히려 오랫동안 사람 등에 매달려 있던 내가 가벼운 멀미를 느낄 정도다. 제법 순조롭다.

---

오늘 며칠이지?


아, 21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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