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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 주세요! (完) by 페더

분명히 말하지만, 나와 그녀는 매우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런데 뭐, 약혼이라고? 말도 안 돼,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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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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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페더[mdragoon]
조회 1182    추천 0   덧글 0    / 2009.08.23 21: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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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Epilogue/그 남자가 그 여자에게 바란 소원

얼핏 보면 세상은 사람들이 흔히 불평하는 대로 굉장히 불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의외로 세상은 유쾌하다. 유쾌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세상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 불행하다는 생각 때문에 유쾌한 일을 피해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불행해야 하는데 유쾌한 일이 너무 많잖아. 그러면 ‘불행한 세상’이라는 명제가 성립되지 않으니까 유쾌한 일은 피해가자. 뭐, 대충 이런 거다.

이런 젠장. 나도 내가 뭔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네. 아무튼 요점은 그거다. 세상은 의외로 유쾌하다.
아주머니의 모습을 본 아저씨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대로 기절해버려서, 아주머니가 진실을 얘기하는 것은 좀 더 미뤄지고 말았다. 아주머니는 수아를 업고, 나와 아저씨는 양쪽 옆구리에 끼고는 힘든 기색도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예선B조의 경주는 결국 무효 처리가 되었다. 백회에서는 잠시 우리들에게 시선을 집중했지만, 아라드와 아저씨와 아주머니 사이에 얽힌 복잡한 사정과 이번에는 아라드 쪽에서 먼저 공격을 해왔다는 사실을 참작하여 아무런 제재도 걸지 않았다.

“먼저 9년 전의 일부터 시작해야겠구나.”

그리고 드디어, 아주머니는 정신을 차린 아저씨와 간단한 응급처치만 한 유수아와 한숨 푹 자고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나를 앉혀두고 얘기를 시작했다.

9년 전, 아주머니는 아라드에게 정식으로 항쟁을 신청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자신의 힘이 아라드에게 미치지 못하며, 또한 아라드가 항쟁이 시작되기 전에 비겁하게 기습을 할 거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평소 절친했던 헤밀턴 가의 가주에게 몇 가지 부탁과 함께 계획을 하나 세웠다.

아라드는 예상대로 항쟁일 바로 하루 전에 아주머니를 기습했다. 싸우려면 좀 더 싸웠을 수도 있을 테지만, 아주머니는 몇 번 공격을 주고받다가 허망하게 죽었다. 아니, 죽은 척을 했다. 그 자리에는 헤밀턴 가의 가주도 있었고, 둘의 마법이면 사람 하나를 죽은 것처럼 위장하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것으로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아라드는 아직 멀쩡했고 아주머니는 아직 살아있었다. 즉 아주머니가 해야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대외적으로 죽은 것으로 알려진 아주머니는 헤밀턴 가에 숨어 지내면서 아라드에게 역습을 가할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본래대로라면 아저씨가 출전했던 257대 나이트레이스에서 아라드를 역습해야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저씨가 아라드를 공격한 것이다. 거기에 당황한 아주머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아라드는 아저씨의 공격으로 천지인을 파손 당했다. 그러나 아직 죽지는 않았다.

아주머니는 다시 헤밀턴 가에 신세를 지며 기회를 찾았다. 가끔 집안에만 있기가 따분하면 헤밀턴 가주의 모습으로 변해 밖을 돌아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뭣, 자, 잠깐, 그렇다면 설마 며칠 전에 우리 집에 찾아왔던 세르실레나는…….”
“응? 아, 그거 나였어.”

아저씨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또다시 기절해버렸다.

한심한 남자네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사랑스런 시선으로 아저씨를 내려다보다가, 아주머니는 얘기를 이었다. 아라드는 근 8년 간 흔적을 찾을 수 없었으나 258대 나이트레이스가 정해지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257대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아라드는 이번 나이트레이스의 총괄심판을 맡았다. 아주머니는 이것이 기회라 생각했다.

“어? 엄마, 그럼 내가 아라드한테 노려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내 딸이라면 그 정도에 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엣헴.”

아니, 잘못하면 죽을 뻔 했는뎁쇼. 내가 없었으면 진짜로 죽어버렸을 걸?

“그 점에는 윤성이에게도 감사하고 있어요. 약혼자로서, 약혼녀를 훌륭하게 지켜줬잖니?”

낯 뜨거운 말이라 나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얘기는 계속되었다. 아라드의 흔적을 찾은 아주머니는 헤밀턴 가의 가주에게 부탁해 이번에는 자신이 나서겠노라고 말했다. 헤밀턴 가주는 고민하지도 않고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한동안 헤밀턴 가주의 행세를 하고 다니며 본격적으로 아라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이름을 버리고 「인과응보」라는 이명을 얻었다는 것과 역식을 주특기로 삼기 시작했다는 것 등등, 알려진 것은 물론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끈질기게 알아냈다. 그 뒤에는 아라드를 습격할 적절한 타이밍을 찾기 시작했다. 역시 레이스 도중이 좋을 것이다. 게다가 레이스에는 자기 딸도 참가하니, 딸이 얼마나 자랐는지 알아보는 좋은 기회도 될 것이다. 그래서 아주머니는 일부러 유수아와 아라드의 싸움을 지켜만 봤다가 그녀가 위험하게 되자 그때야 튀어나온 것이다. 일단 아주머니의 얘기는 여기까지였다.

“…….”

사자는 자기 자식을 절벽으로 내던진다더니, 이건 딱 그 짝이구만. 게다가 그녀의 계획을 알고 있었던 것은 그녀의 친구인 헤밀턴의 가주뿐이었다. 그녀는 아라드는 물론이고 남편이랑 하나뿐인 자식까지 죄다 자기가 죽은 것으로 속였다. 유수아는 얘기가 다 끝난 뒤 그녀의 품에 안겨 펑펑 울어버리기까지 했다.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가 사실은 멀쩡하게 살아있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어? 잠깐. 그러면 이제 아라드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문득 떠오른 내가 묻자 아주머니는,

“왜? 꼭 알고 싶니?”

엄청나게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아저씨에게 전해 듣기로는 천지인을 봉한 채 백회로 넘어가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내 얘기를 하자면, 레이스가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나는 아예 유수아 네 집으로 이사를 와 버렸다. 애초에 혼자 살고, 짐이랄 것도 별로 없었으므로 한 시간도 안 되어 이사가 끝나버렸다. 요즘은 학교에 갔다 오자마자 유수아에게 구박을 받으며 강의를 받고 있다. 백회라든지, 헤밀턴 가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법사들의 주라든지 하는 기본적인 상식에 대해서다. 그냥 줄줄이 외우기만 하면 되니 그다지 어려운 것은 없다. 귀찮기는 해도.

금발은 레이스가 끝난 다음날부터 계속해서 우리 집에 찾아오고 있다. 레이스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가 집에 찾아오면 맞상대하는 것은 언제나 유수아다.

“그러니까, 제가 던진 양산이 먼저 결승선을 넘었으니 제가 이긴 거예요!”
“그건 무슨 논리야! 그리고 애초에 너보다 우리가 좀 더 빨랐어! 진 주제에 어디서 자꾸 헛소리야?!”

최근 유수아는 나와 자기를 싸잡아서 서슴잖게 ‘우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예전에는 같은 취급하는 것만으로도 기겁하더니, 꽤나 누그러졌다. 뭐, 그 성질이 어디 가겠냐마는. 그래도 이건 어쩐지 유쾌한 일이다.

아저씨로 말하자면 예전과 달라진 점은 없다. 아내가 돌아왔고, 그 덕분에 가끔 아내와 함께 시시덕대는 장면을 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백수처럼 늘어져있기 일쑤다. 물론 그런 아저씨를 타박하는 것은 아주머니다.

“당신! 그렇게 뒹굴거릴 시간 있으면 일자리라도 좀 알아봐! 다 큰 남자가 집안에 늘어진 게 얼마나 꼴사나운 지 알아?!”
“백회에서 예산이 지급되는데 그다지 내가 일자리를 찾을 필요는 없잖아?”
“시끄러우니까 어디든 나가!”

그럼 아저씨는 버림받은 애완동물처럼 집을 나가고는 한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레이스의 결과도 좋고 살아 돌아온 유수아 어머니도 좋다. 금발과 우리 중 누가 1등을 했느냐도 레이스가 무효가 돼버렸으니 아무래도 좋다. 다만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하나였다.

소원, 아직 말하지 않았다.

소원이라 함은 물론 이전 나와 금발의 데이트 도중 허락도 없이 나를 후려친 유수아에 대한 것을 말한다. 조항 중에는 분명 ‘허락 없이 한 대 때릴 때마다 소원 하나’라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무슨 소원을 빌지?

내가 일주일 동안 아무 것에도 집중을 못하고 낑낑대는 이유가 이거였다. 대체 무슨 소원을 빌어야 되지? 스트립쇼라도 시킬까? 아서라, 그런 짓을 했다간 그녀는 강의를 명목으로 나를 구타하기 시작할 거다. 주인님이라고 부르라고 해볼까? 아니, 이건 너무 매니악한데다가 주변의 시선이 무섭다. 돈은 필요 없고 그 외 딱히 하고 싶다거나 보고 싶다거나 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잠깐.

나는 일단 차근차근 생각해보았다. 지금 내가 왜 소원을 생각하고 있는 거지? 유수아가 저번에 허락도 없이 나를 때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엄청 아프게. 그럼 그녀는 왜 나를 때렸을까? 그건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자기 경고를 무시하고 싸돌아다닌 내가 걱정스럽고 화가 나고 등등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서 그런 것일 거라는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그녀는 언제 나를 때렸지?

금발과 내가 데이트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건, 가?”

나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너무 뜬금없는 아이디어라는 것은 둘째치자. 좋은 생각인 것 같기도, 나쁜 생각인 것 같기도 해서 영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 외에 특별히 다른 소원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금발과 한창 시끄럽게 떠들던 유수아가 벌써 거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구만.”

나는 이판사판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간 돌아올 때마다 우거지상이더니, 오늘의 그녀는 오래간만에 해맑은 얼굴로 거실로 돌아왔다. 이번 금발과의 말싸움에서는 그녀가 승기를 잡은 모양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지금까지 신중하게 고민해온 것들을 꺼내기 위한 최적의 타이밍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앞에 정면으로 서서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야.”
“응? 왜?”
“저번에 네가 때렸던 거. 그거 소원 정해놨어.”
“…….”

유수아는 해맑은 얼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는 뒤로 물러났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나는 녀석의 어깨를 붙잡았다.

“자, 잘못했어.”
“필요 없다.”

내가 고개를 젓자 그녀는 이번에는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하필 지금이야!”
“지금 생각났으니까. 좋은 타이밍이잖아? 다른 사람들도 없고.”

아저씨는 일자리 알아본답시고 나갔고―소득 없이 돌아올 게 뻔하지만―, 아주머니도 방금 전 돌아간 금발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 헤밀턴 가까지 놀러 간다는 모양이다. 고로 지금 집에 남은 건 나랑 그녀뿐이다.

“……끄응. 어쩔 수 없네.”

그녀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고는 허리에 손을 얹고 나를 돌아보았다.

“좋아. 그건 내가 잘못한 거니까. 아무 거나 말해봐. 대신 이상한 거면 죽여 버린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경고했다. 이상한 거라, 뭐 괜찮을 거다.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해서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니까, 데…….”

순간,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문이 턱 막혔다.

“응? 뭐라고?”

그녀가 아무 것도 모르고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얼굴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나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시끄럽게 뛰고 있었다. 나는 가슴을 꾹 내리누르고 억지로 심호흡을 했다.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아?”

조금 진정되려는데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서너 번 더 심호흡을 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게 그러니까 데, 데이……, 데데……, 데……데으아아아아악!”

부, 부끄러워 죽겠어!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소파 뒤로 달아났다. 유수아가 쫓아오려 했으나 나는 손을 들어 막았다. 일단 심호흡부터. 그 다음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원래는 별 생각 없이 데이트를 신청할 생각이었다. 별 건 아니고, 맞은 때가 금발과 데이트를 하던 때였으니까 퍼뜩 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건 상상 이상으로 부끄럽다. 그도 그럴게, 다른 여자도 아니고 저 녀석이잖아?! 내 입으로 데이트 신청이라니, 부끄러워 죽어버릴지도 몰라!

아, 좋아. 일단 진정하자. 나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내 입으로 데이트를 신청하는 건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다. 그렇다면……그렇지. 내가 신청하는 게 아니면 되잖아?

나는 다시 일어났다. 유수아가 이상한 것을 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너 왜그래? 갑자기 미쳤냐?”
“괜찮아. 아니 괜찮아. 난 괜찮다고. 아무 것도 아냐.”

나는 횡설수설 중얼거리며 다시 그녀 앞에 섰다.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원래는.”

나는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응?”
“원래는 말이지. 내가 너한테 데이트를 신청하려고 했어.”

유수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어 녀석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러나 아직 내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게, 근데, 아무래도 부끄러워 죽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역할을 바꾸자. 내 소원은 이거야. 네가 나한테 데이트 신청을 해줘.”

나는 손가락을 들고 그녀에게 내 소원을 말했다.

그녀는 입을 쩍 벌리고 망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말을 마친 나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그녀는 새빨개진 얼굴로 입을 벙긋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런 거…….”
“응?”
“치, 치사하잖아. 그거…….”

무슨 상관이냐. 소원을 비는 사람 마음이야.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나를 보며 부들부들 어깨를 떨고 있다. 저대로 계속 두면 너무 부끄러워서 홧김에 내게 주먹을 날려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조심스럽게 방어태세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녀는 주먹을 날리지 않았다. 대신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 나랑…….”
“응?”
“데, 데데, 데……데이……데, 데…….”

그녀는 나 이상으로 부끄러워했다. 계속 보니 의외로 재밌는 광경이었다.

“나, 나랑 데이트……해줘.”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는 작아서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순간 심장이 커다랗게 뛰었다. 나는 더 이상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려버렸다. 부끄러워서 기껏 소원을 수정했는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내가 직접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보다도 더 부끄러웠다. 그도 그럴게 이 녀석이니까. 다른 여자도 아닌 유수아니까!

“대답…….”

내가 한동안 대답이 없자 그녀가 다시 말했다.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조금 숙이고 내게 손을 내밀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 대답 안 하냐?”

부끄러운 나머지 울어버릴 것 같은 눈동자였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나는 희미한 바람을 보았다. 순간 나는 숨이 막혔다. 기이한 감정이 가슴 한 구석에서 솟아나왔다. 뭔지 알 수 없는,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닌 감정이었다.

“물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대답하려는데, 문득 재밌는 생각이 났다. 나는 가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싫어.”
“……. ……?”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그대로 동작을 멈췄다.

10초가 지났다. 20초가 지났다. 그래도 유수아는 눈을 동그랗게 뜬 멍청한 표정인 그대로 미동도 없었다. 불안해진 나는 그녀의 눈앞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그녀는 정신을 차린듯 어깨를 떨었다. 그녀는 나를 돌아보았다.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들더니,

퍽!

“으캭?!”

나는 항의할 새도 없이 복부를 맞았다.

“아, 아, 아파……!”

나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돌아보니 그녀는 눈물마저 맺힌 얼굴로 나를 보며 씩씩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역효과다.

“너 죽을래?!”

그녀가 으르렁거리며 소릴 질렀다. 나는 얻어맞은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농담이라고, 농담. 아파 죽겠네.”
“그딴 농담 한 번만 더 하면 진짜로 죽여 버릴 거야!”
“예에, 그래그래.”

나는 손을 휘휘 내저은 뒤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여전히 새빨간 얼굴인 채 적의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손이 잡혀 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좋아.”

최대한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노력하며 나는 말했다.

“데이트하자.”

---


끝났네요.

별로 안 길었다.





이건 보너스

윤성이 바라보는 수아 : 폭력녀. 맹수류. 허구한날 티격태격하기는 하지만 인간적으로 좋아할 구석과 존경할 구석은 있는 여자. 하지만 이성으로서는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일까?

수아가 바라보는 윤성 : 바보에 병신에 멍청이. 하여간 병신. 그래서 싫지만, 그런데도 싫어할 수만은 없는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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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페더  lv 8 7.11111111111% / 3664 글 99 | 댓글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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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 주세요! (完) 5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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