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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복 이야기. by 은하수

그녀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내게 이렇게 말하였다. "세계 정복을 하는데에, 협조를 해 줬으면 좋겠어." 손가락으로 나를 가르키며 말하는 은하수. 조금은 그녀의 다음말에 대비 했더라면, 놀라 자빠지는 표정을 보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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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정복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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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은하수[vkdlf0123]
조회 1087    추천 0   덧글 0    / 2009.09.22 01:11:16

 

 

                              5화- 정복의 끝.

 

 

 끝.

 밥을 먹을 때도, 목적지를 향하는 것도, 하루도, 일년도, 사람의 생도, 좋은쪽이든 싫은쪽이든 모두 그 끝이 있다.

 그러한 끝이란 것을, 그것도 아주 갑작스럽게 받아들여 본 적이 있는가?

 어떠한 일을 하든 그 모든 일엔 끝이 있기에 아마 끝이 다가올 때는 모두가 서서히 정리를 할 테지만, 갑작스레 그 모든게 끝이 나버린다면 아마 지금의 나 같으리라. 

 은하수와 함께 한지 한달이 지났을 무렵.

 그저 멍하게 넋을 놓은 나.

 난. 은하수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지는 몰랐다.

 아니, 언젠가 들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것은 너무나도 갑작스럽다.

 \"저기 은하수. 방금 뭐라고?\"

 나의 되묻는 물음에, 은하수는 나지막히 답한다.

 \"지금부터, 세계 정복의 \'마지막\'. 작전을 짜도록 해.\"

 그리고 그 답변의 말 속.

 그 중 은하수에게선 절대 듣지 못 할 것이라 여겼던 한 단어.

 \'마지막.\'

 혹시나하는 마음에 다시금 묻는다.

 \"이봐 은하수. 작전이면 작전이지 왜 \'마지막\'이 붙는거야. 뭐, 이번이 아니면 끝이라도 날 각오로 계획을 짜란거냐? 어떻게든 세계 정복을 하자는 말이냐?\"

 자조썩인 나의 물음에, 은하수는 여전히 평소와 같은 무표정으로 답한다.

 \"말 그대로. 이번 계획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제 세계 정복 계획은, 이게 마지막이야.\"

 평소처럼 냉정한 상투적 말투.

 이제 익숙해져 아무렇지도 않은 그 말투가, 이번엔 정말로 싸늘하게만 느껴진다.

 마지막이라니.

 거짖인가 진실인가를 따지려는 머리 속에, 이제껏 은하수는 거짓말만큼은 하지 않았다는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그녀의 말은 언제나 도장처럼, 한번 내뱉으면 모든 게 끝이었으니.

 은하수의 말은 어디까지나 진실.

 그러니 그것은 진심.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녀는 정말 이게 마지막이란 의미.

 그런데 뭐지.

 이제껏 은하수의 행동들이 맘에 들지 않았던 내게 있어, 그녀는 갑작스럽지만 이제 이게 마지막이라 말하고 있다.

 그렇담 난 지금, 이제 은하수의 계획에 동참하지 않아도 되니 기쁜것인가. 아니면 아쉬운 것인가.

 마지막이란 단어.

 이것은 내게 좋은 의미인가. 나쁜 의미인가.

 그저 그런 혼란 속.

 초선은 화가난 듯 은하수에게 말한다.

 \"저기 은하수씨. 이렇게 갑자기, 너무 갑작스레 상의도 없이 마지막이라니. 제가 뭔가, 다르게 알아 들은거죠? 하하하하....\"

 \"...\"

 답변은 없다.

 그러자 초선의 입가의 새겨진 미소들은 사막처럼 빠르게 매말라간다.

 이내 바짝 마른 초선의 미소. 초선은 다시금 묻는다.

 \"설마 정말... 정말로... 세계 정복을, 포기하려 하시는 건가요?\"

 \"...\"

 \"아니면 지금, 자포자기라도 하려는 건가요?!\"

 \"...\"

 답변은 없다.

 초선의 말들은 들은 체도 하지않고, 그저 초선과 나 사이에 시선을 두고 있는 은하수.

 그런 은하수의 반응에, 평소 미소로 안면을 가리던 초선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진다.

 일그러지고, 일그러지고...

 그것은 그런 은하수의 무답변이, 초선 그녀에겐 점점 무언의 긍정으로만 들려오기 때문. 

 악문 어금니의 힘만큼 더욱 일그러지는 초선의 모습.

 그 모습을 감추려는 듯 고개를 숙이지만, 악 문 이가 갈려 뿌드득 소리를 낸다.

 \"뿌드득뿌드득...\"
 하지만 그것으로도 한계이기에, 이내 초선은 고개를 숙인채 소리친다.

 \"뭐야 이거...정말!! ... 정말 뭐야 이거!! 정말... 결국 다 똑같아!!\"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초선의 말.

 ...

 \"다!! 다!! 다!! 전부 다!! 전부!! 전부!! 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

 초선의 소리침이 끝나자, 비교적으로 공간은 조용해진다.

 그것은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

 그런 무거운 분위기를 만든 초선의 다음 행동은, 너무나도 순식간.

 정말 \'아차\'하는 짧은 순간.

 허리츰 어딘가에서 칼을 빼어든 초선은, 은하수를 향해 빠르게 다가선다.

 칼을 빼어든 초선의 행동은, 나 또한 무엇을 하기 위함인지 빠르게 판단된다.

 은하수를, 죽이기려도 하려는거야?!

 좁은 이 공터. 서로 멀다고 해 봤자 5m남짓.

 눈 깜짝할 사이.

 생각할 시간도 주지않고 초선은 순식간에 은하수의 코 앞까지 다가선다.

 그대로 아무렇게나 은하수를 찌르려는, 베어버리려는 초선.

 그런 초선의 모습에, 은하수는 여전히 무표정한 시선.

 이봐 은하수. 정말 그러다...

 .....

 ...

 붉은 피가, 칼날을 물들인다.

 이내 바닥에 떨어지는 피의 방울.

 그녀- 초선의 칼날을, 비월단은 맨손으로 잡아챈다.

 매서운 모습으로 초선의 칼날을 쥐어잡은 비월단.

 그에따라 놓으라는 듯 초선이 힘을 주자, 비월단의 손에도 더욱 힘이 들어간다.

 그에 따라 더욱 솟구치는 피.

 사람의 손은 돌같은 게 아니기에, 날카로운 칼에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을 것.

 비월단의 손바닥은 물에 젖은 수건을 짜내듯, 한방울 한방울. 이내 한줄기로 떨어지는 피.

 칼을 잡은 손에선 피가 흘러내린다.

 그런 비월단을 매섭게 노려보는 윤초선.

 여전히 매섭게 초선을 노려보는 비월단.

 비월단의 그 매서운 눈빛은 손바닥의 아픔 때문이 아닌, 초선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 말하는 듯.

 하지만, 초선의 표정 또한 비월단과 비슷하다.

 \"이게, 무슨 짓이죠?!\"

 비월단에게 향한 초선의 신경질적인 말투.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고!!\"

 초선이 소리지르며 다시 힘을 주자, 비월단의 손바닥에선 더욱 많은 피가 쏟아진다.

 쏟아진다.

 이러다 폭포처럼 쏟아지지 않을까 하는 나의 생각.

 그런 생각보다 먼저, 어느새 난 초선의 칼을 든 손을 잡고있다.

 휘두르지 못하도록 잡고있다.

 \"이제 그만해 초선.\"

 \"... 이거... 놓으시죠.\"

 \"그만해 초선...\"

 \"이거...놔!!!! ... 유리 당신이야 어차피 그만두고 싶었던 일이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유리 당신이야 별 일 아닌 듯 그만두면 되겠지!! 그런 당신이 지금 뭘 알아...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 당신이... 대체 뭘... 뭐 알아..\"

 말 끝이 흐려지는 초선의 울음 썩인 말.

 나는 그런 초선에게, 아무 답도 할 수가 없었다.

 .......

 .....

 ...

 교실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그만두고, 싶었던 일...

 하고싶지, 않았던 일...

 그렇다.

 내게 있어 세계정복이란, 그저 은하수의 반협박과도 같은 강제력에 의한 목적이었을 뿐. 아마 초선의 말대로 그만두고 싶어했던 일이 맞을 것이다.

 그러니, 난 어제 그녀의 물음에 답할 수가 없었다.

 초선의 속내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제나 진지했던 그녀.

 그런 그녀에게 있어 난, 그저 이 일은 그만두고... 싶었던 일...

 ...

 .....

 결국 초선은 힘없이 칼을 놓고는, 공터를 뒤로한 채 어딘가로 가버렸다.

 그 뒷모습은 뭔가를 잃어 슬픈, 비유할 수 없는 슬픈 무언가.

 초선의 모습이 사라지자, 비월단은 초선의 칼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칼날을 잡았던 손바닥은 그 전체가 붉게 물든 모습.

 비월단은 그런 손바닥을 옆으로 가볍게 털었다.

 그러자 원래부터 새빨간 벽돌로 되어있던 벽에, 더욱 짙은 새빨간 피빛이 물든다.

 그렇게 보통 사람이라면 온갖 아픔을 표현하며 소리질러야 할 상처.

 비월단은 상처입은 오른손을 피를 쥐듯 꽉 쥐어보이며, 주머니 속에 조심스레 넣어보일 뿐.

 그런 비월단의 뒤에서, 은하수는 별 일 아니었다는 듯 나지막히 내게 말했다.

 \"그럼 유리. 내일까지다. 내일까지, \'마지막 계획\'을 짜 오도록 해.\"

 평소와 같은 냉정한 은하수의 눈빛.

 하지만 평소보다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그런 은하수는 할 말을 끝마쳤다는 듯. 공터를 뒤로한채 걸음을 옮겼다.

 결국 난, 그렇게 한참동안 답변도 없이 멍하니 서 있었다.

 

 .......

 .....

 ...

 

 

 그만두고, 싶었던 일.

 내게 있어 이 \'세계정복\'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은하수의 계획에 동참한 것?

 아니면, 은하수 같은 친구라도 사귀고 싶은 것?

 무엇이 되었든, 난 \'세계 정복\'이란 것에 진실하게 동조한 적은 없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나?

 \"...\"

 정확히는,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분명 처음 은하수의 계획에 참여하게 되었을 땐 그만두고만 싶었다.

 그만두고,

 하지만 지금은, 이제는 잘 모르겠다.

 어제의 일 때문인가.

 모르겠다.

 무엇을 생각해도, 이젠 잘 모르겠다.

 \"이봐 유리.\"

 문득 생각에 잠긴 등 뒤로, 익숙히 들려오는 마야의 목소리.

 평소에도 자주 이유없이 나를 부르는 마야. 현재 닥친 상황이 상황인지라 무시하려는 내게, 마야는 누가 듣던 상관 없다는 듯 혼잣말처럼 말한다.

 \"유리. 어차피 인간은 밥을 먹고싶다 생각하면 밥을 먹게 되어있고, 놀고 싶다 생각하면 놀게 되어있는게 인간이다. ... 그러니 너 또한, 이미 그 답은 나와 있을 것. 단지, 잠시의 선택의 망설임에 놓여 있을 뿐...\"

 답이... 나와 있다고?

 선택의... 망설임?

 대체 무슨 소릴.

 \"이봐 마야...\"

 마야의 알 수 없는 혼잣말에 대해 물어보려 뒤를 돌아 보았을 땐, 이미 교실의 뒷문으로 향하고 있는 마야의 뒷모습이 보일 뿐.

 물론 그 뒤를 따라나서 마야에게 말의 의미를 물어 볼 수도 있지만, 굳이 따라나설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이내 사라진 마야의 뒷모습에, 마야의 책상 위를 바라본다.

 책상 위는 조금 두꺼운, 처음보는 제목의 소설책.

 그러니까 마야의 말에 중점은, 내겐 이미 답이 나와 있다라는 말...

 그것은, 결말을 아는 소설책 읽기와도 같다는 말인가.

 아니면, 내게 결말을 요구하는 것인가.

 아니, 내가 뭔가 답을 내려는 일을 하려고는 했나?

 \"...\"

 모르겠다.

 정확히는 모르겠다기보단, 맘 속의 물음들을 이해 할 신경이 없다.

 지금 내게 그런 말을 한다 하여도, 내겐 그저 한가지 생각만이 머리 속을 맴돌 뿐.

 그러니 지금은, 지금 머리 속을 맴도는 이것만을 생각해보자.

 이것만.

 바로 세계 정복,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 계획을...

 

 

 

 

 

                                        #

 

 봄의 꽃이 피기 시작하여도,

 햇살이 점점 따사해져도,

 갑작스런 전학생이 전학와도,

 학교에서 이상한 방송이 들려와도,

 요즘 학생들에게 그런 것은 관심 밖.

 심지어 교장이 납치되어도, 학생들은 크게 관심 보이지 않는다.

 은하수의 교장 납치 사건.

 지금 생각 해보면, 정말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교장을 납치한들, 학생들이 관심을 가져주기라도 할까?

 아마 교장이 납치된 것을 학생들이 눈치라도 채 주면 다행이리라.

 여하튼 이러든 저러든 그 작전은 실패했고, 지금 생각하면 성공 할 리도 없었다.

 애초에 성공을 목표로 한 계획은 하지도 않았으니.

 그러나 마지막인 지금. 다시 한 번 따져본다.

 이 학교를 정복하려면, 진정으론 어찌 해야할까.

 지금까지의 일들을 따져보자.

 왜 안 되었을까.

 그에 대한 답들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빠르게 답이 나온다.

 그것은 학교의 진정한 주인이나 다름없는 학생들에겐 별 피해도, 피해 의식조차도 가지게 하지 못했기 때문.

 그렇다.

 사람은, 더군다나 이 나이에 학생은 남보단 자기 자신에게만 신경쓰기 바쁘다.

 관심받기 원하고, 우월하고 싶을테니...

 ...

 관심이라...

 \"흠...\"

 문득 생각하게 된다.

 은하수도, 관심을 받고 싶은건가.

 마지막인 지금. 아직까지 난 은하수의 속을 모르겠다.

 아무리 누구라도 오랜시간 관찰하면 어느 정도의 생각이 읽히긴 마련인데, 이건 이리튀고 저리튀니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이렇게 갑자기 마지막이라니.

 예고조차도 없었기에, 지금의 마지막이란 단어가 시사하는 바는 크게 다르다. 

 마치 모든 것을 끝내려는 듯 한, 은하수는 단지 이제까지의 일들을 모두 끝내려 하는 것.

 은하수에 발언에 대한 비월단의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와 초선에게는 이제까지의 이 모든 일들을 단지 끝내려 한다고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따져보니, 역시 초선의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겠군.

 그런 그녀- 초선은, 오늘 모임에 나타날까.

 이성을 잃도록 흥분한 그녀가 나타날까?

 나타난다 하더라도, 어제처럼 칼을 들고 은하수를 죽인다고 하는 건 아닐지...

 만약 그렇게 됐을 때 비월단 그 녀석이 없으면... 내가 대신하여 초선을 막아야 하는건가?

 문득 떠오르는 초선의 매서운 눈매.

 그런 독이오른 초선의 칼날을 비월단은 단지 손바닥으로 잡아낸건가.

 생각만으로도 내 손바닥이 찢어진 것만 느낌.

 젠장.

 평소라면 녀석이 있으나마나 별 상관이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꼭 비월단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

 그보다 정말, 이 학교를 단 한 번에 정복할 방법은 무엇일까...

 무엇이 있을까.

 .....

 ...

 아주 오랜 시간 생각한 끝에, 정리된 생각들은 차근히 정리되어 답이 된다.

 그것은 아주 차근차근, 학생들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빼앗아 우리를 각인 시켜 나가는 것.

 비록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이렇게만 한다면 학교를 정복하는 것.

 어렵지 않다.

 어렵지 않겠지만, 하지만, 이제 이 계획은 실현 불가능.

 마지막인 이 계획은, 이제 단 한 번의 기회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단 한 번의 작전으론 불가능한 계획.

 단 한 번의 계획으로 학교를 정복하는 것.

 그것은 정말 언젠가 마야가 말한 학생들을 다 죽여나가는 무력 정복이 아닌 한, 이뤄질 수 없다.

 즉, 계획 같은 것은 아무리 세워봐야 이젠 불가능.

 불가능하다.

 

 

 

 

 

 

                                        #

 

 언제나 이 시간이 되면 저녁노을이 지고 있다.

 오늘 하루일을 마치고 자랑스레 돌아가는 태양.

 그렇게 하루종일 생각한 끝에, 나 또한 결국 답은 나왔다.

 이것은 마지막.

 하지만 단 한번으로 학교를 정복할 방법. 그런 건 정말 다 죽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그렇다. 방법은 없다.

 약속처럼 우리가 학교 뒤 공터로 모이는 시간보다 약간 늦은 시간.

 안으로 들어선다.

 들어서며 자연스래 좌우를 살피자, 좌측엔 비월단이 벽에 기대어 있고, 가운데엔 은하수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초선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조금 늦게 도착했기에, 나보다 늦게 도착하는 이는 없을 것.

 없다는 것은 늦게 도착한다는 것이 아닌, 오지 않는다는 의미.

 그렇게 초선의 부재를 확인 하자마자 은하수를 바라보자, 은하수는 나를 바라보며 내게 뭔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계획.

 학교를 정복할 계획. 그것은 분명 없다.

 있다한들 그것은 한 번에 이뤄질 수 없는 계획.

 그러니 방법도, 계획 따위도 없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난 말하고 있다.

 \"이번 계획은, 학교에 있는 쓰레기 통들을, 전부 치우자.\"

 \"어째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칼처럼 쏘아지는 은하수의 날카로운 말투.

 가슴을 추스리며 답한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당연히 쓰레기통을 찾을 것이고, 그것들을 전부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사정하게 되겠지? ...\"

 \"...\"

 답변은 없다.

 은하수도, 비월단도, 초선이라면 당연히 반론하였겠지. 하지만 초선은 없다.

 그래, 어차피 이 둘은 나의 말에 반론한 적 없다.

 그러니 이 바보같은 계획은 이것이 마지막이 되고, 이제 이런 바보같은 모임도 끝이다.

 마지막이란, 끝이란 단어와 연관있는 것이니까.

 마지막의 끝.

 끝.

 

 

 

 

                                        #

 

 기분 나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기쁠만한 일도 없었지.

 그런것들을 깊게 따지기엔 귀찮았으므로,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이 세계 정복이라는 거창한 일이, 이렇게 허무히 끝이 날 줄은 몰랐다.

 늦은 저녁시간.

 아직 몇몇 남아있는 교실로 들어가 교실마다 다른 휴지통들을 가져다 나른다.

 혹여나 왜 가져가냐 물어보는 자가 있다면, 선생님의 부름으로 더러운 휴지통을 씻거나, 수거한다고 답하면 되니 행동에 별 다른 어려움은 없다.

 나는 1층에서 2층. 비월단은 3층에서 4층 교실의 휴지통을 모두 수거.

 모두 모아 공터에 모아보자, 40개가 조금 넘는 양의 휴지통.

 \"이제 학생들이 이것들을 돌려달라고 난리는 치면, 그걸 빌미로 협박하여 정복을 할 수...있겠지...\"

 말 끝을 흐리는, 나의 뻔한 거짓말.

 이제 끝이다.

 나의 말도 안되는 설명을 들은 은하수는, 내게 뭐라고 말할까.

 귀를 기울인다.

 모든 신경이 귀로 쏠린 듯, 작은 소리도 낚아채는 무자비한 낚시대가 된 귀.

 은하수는 그런 내 귀에, 나지막히 말한다.

 \"그래. 그럼 유리. 이제 이 계획이 마지막이란 것은 이미 말 했었지. 그러니 실패하면 이제 이곳에 오지도, 나를 만나지 않아도 되. 그럼, 이만...\"

 ...

 공터를 나서는 은하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평소와 같은 뒷모습.

 그렇게 은하수가 사라지자 공터에 남은 나와 비월단.

 옆의 비월단은 우리와 만나기 이전부터 이곳에 있었듯, 언제나처럼 다친 오른손을 대신하여 왼손으로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

 지금은 은하수도, 비월단도, 나도 말하고 있지 않지만, 적어도 난 이미 알고 있다.

 이 계획은 실패일 것이며, 그것은 이제 마지막이자, 모든 것의 끝.

 그래, 끝이다.

 지금의 하늘처럼-

 달이 떠올라 해가 진 것처럼...

 ...끝이다.

 

 

 

 

                                   #

 

 이른 아침.

 교실에 들어서자 버릇처럼 은하수의 모습을 살핀다.

 말 그대로 버릇적.

 언제나 은하수는 나보다 먼저 자리에 앉아 있었으니, 교실에 들어서며 그녀를 살피는 것은 언젠가부터의 나의 버릇.

 하지만, 그녀의 자리에 그녀- 은하수는 없다.

 잠시 화장실이라도 들렸거나, 오늘따라 늦잠을 자 자리를 비운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감은 무심코 말한다.

 은하수는, 오지 않는다고.

 ...

 

 수업이 시작 되었지만, 은하수는 끝내 제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계획이 실패한 것이라 생각해 충격이라도 먹은건가?

 하지만, 아직 계획이 실패한지는 알 수 없을텐데...

 아니, 애초에 그런 계획, 믿는 사람이 바보인가.

 그렇다.

 애초에 난 맘 속. 이미 계회은 실패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내가 하는 생각을, 은하수가 그녀가 못하리란 법은 없으니 이미 실패를 알아챘겠지.

 그렇담 이것으로 그 마지막 계획은 실패했고, 마지막이란 것은, 그 끝을 의미한다.

 끝난건가.

 끝났구나.

 그럼 이제 은하수에게 놀아날 일은 없겠지.

 \'야호\'라고 외칠까. 아니면 하루종일 싱글벙글 웃고 다닐까.

 \"...\"

 이상하게, 기분은 좋지않다.

 왜지. 언제나 난 그만두고 싶었잖아. 그런데 왜?!

 마지막이 너무 이상해서? 아니면 허무해서?

 아니면, 초선과 은하수의 다툼이 신경 쓰여서?...

 ...

 초선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삐진 것을 넘어서, 분명 화가나 아주 무서운 상태이리라.

 비월단은 괜찮을까.

 칼을 맨손으로 잡다니.

 어제 제대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손에 붕대를 둥둥 매고 있었는데.

 아무렇게나 둘러진 붕대 모양으로 봐선 아마 비월단 스스로 붕대를 맸을 것.

 병원에라도 가봐라고 말을 해줘야...

 문득 이런 생각이, 걱정들이 필요 없다는 것을 느낀다.

 이젠 만날 이유가 없으니. 만날 수가 없기에.

 애초에 그들은 세계 정복이라는 계획에 의해, 계획을 위해 모인 자들.

 그런 계획이 모두 끝이 나버린 지금. 앞으로 그들을 만날 일을 없다.

 ...

 문득 버릇적으로 은하수를 살피려다, 은하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살펴본 나의 주위.

 사람은 많지만, 이상하게 그들은 내게서 멀게 느껴진다.

 손에 닿일 듯 가까지만, 실직적인 것과는 다른 거리.

 붙어있는 대지 위, 그저 홀로 떠다니는 나.

 

 

 

                                        #

 

 ...리...

 .....리...?

 ...유리...

 \"유리. 이봐 유리?\"

 나의 책상을 두드리며 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화들짝 답한다.

 \"어? 어.\"

 언제부터 내가 넋을 놓고 있었지.

 \"아하하 미안. 잠시 딴 생각 좀 하느라고. 그보다 나 불렀어?\"

 일단 나를 부른 사람이 누군지 자세히 바라보자, 눈 앞에는 이름모를 여학생.

 하지만 이름만 모를 뿐.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다.

 한쪽 귀를 어루만지는 버릇. 항상 입 안에 공기를 가득채우는 버릇.

 아마 나의 바로 옆 자리에 자리잡은 여학생일 것.

 그녀는 버릇처럼 한쪽 귀를 어루만지며 답한다.

 \"응. 그게, 담임 선생님께서 각 자리의 맨 앞줄이 수학여행비 거둬서 반장에게 가져다주래.\"

 할 말을 끝마친 듯, 이내 주위의 여학생들과 어울려 밖으로 향하는 그녀.

 그런 그녀 주위의 친구들은 서로에게 속삭이듯 말한다. 

 \"너 재랑 친해?\"

 \"아니. 그냥 모르는 것 같아 전해준건데.\"

 \"재 좀 이상해. 맨날 딴생각하는 게 이상한 생각하는 것 같고, 별로 어울리진 마.\"

 \"...\"

 다 들린다 이것들아.

 남의 뒷담화를 하려면 내가 안보이는 곳에서 하든지... 쳇... 

 어쨌든 서로 친구 사이들이란 건가.

 그저 친구의, 충고 같은 것이겠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게, 바로 그 친구의 충고...

 \"하아... 친구.\"

 친구 사이라...

 

 

 아무렇게나 옮기는 걸음.

 또 다시 생각에 잠긴다.

 나와 은하수는, 과연 친구 사이였을까.

 친구. 쉽게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존재...

 아닌가?

 잘 모르겠다.

 무작정 걷다보니, 어느새 동떨어진 건물과 건물을 잊는 다리 위.

 이 다리를 건너면 방송실쪽 건물이기에 더 나아갈 길도 없어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본다.

 학교에 하나밖에 없는 화려한 교내 정원 다리 위.

 그 아래는 아직 색색의 꽃은 피지 않았지만, 분명 여름이 되면 아름다울 화려한 정원이 내려다보인다.

 역시 학교의 정면이다보니, 뒤뜰의 \'솔심정(정원이름)\' 과는 정성을 들인 정도부터가 다르다.

 하지만 아름다우면 뭣하리. 지금의 내겐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데.

 그나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파아란 하늘이, 오히려 흥겹게 느껴진다.

 \"하아- 심심하다.\"

 아니, 외로운건가...

 맘 속으로 쓸쓸히 정정해본다.

 

 

 

 

                                       #

 

 학교가 끝마친 하교 시간.

 그 때의 소음은 장터나 잔치집의 소음만큼이나 시끄럽기 그지없다.

 시끄럽다.

 시끄러워.

 저절로 귀를 막고 걷고 싶어지지만, 굳이 귀를 막고 걸을 필요까지는 없다.

 이럴 땐 그저 딴 생각에 잠기면 그만...

 마치 수면에 잠기듯, 생각에 잠긴다.

 어느새 주위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고, 오직 시선에만 의지해 걷기 시작한다.

 그런 나의 시야 속. 개미떼처럼 몰려 하교하는 학생들 사이. 문득 익숙한 얼굴 하나를 발견한다.

 짙은 긴 생머리를 아무렇게나 풀어해친, 윤초선.

 분명 뒷모습 뿐이지만, 그녀를 알아본 것에 망설임은 없다.

 척 봐도 그녀는 분명한 초선.

 보아하니 혼자 하교를 하는 있는 듯 하다.

 스치는 생각.

 말을 걸어볼까.

 하지만, 말을 걸 이유도, 목적도 이젠 없잖아.

 그래, 어차피 이제 다 끝나 버렸는데...

 그러자 갑자기 울고만 싶어진다.

 멍하니-

 여름이 끝나 서글피 우는- 그저 매미처럼-

 

 

 

 

                                       #

 

 목요일.

 그녀는 오늘 아침도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로써 은하수가 학교에 나타나지 않은지 사흘.

 평소 그녀를 무시하던 학생들도, 그녀가 나름 유명인이라 그런지 슬슬 그녀가 보이지 않자 여러 말들이 많다.

 주변에 들리는 그 소문도 가지각색.

 \'은하수 걔 자퇴 했다던데?\'

 \'여기에서도 적응 못해 또 다른 곳에 전학 갔다고 들은 것 같은데...\'

 \'걔 자살한 거 아니었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문의 강도는 더욱 커진다.

 이젠 그 소문이 진짜라 믿는 사람도 바보이리라.

 그런 그녀- 은하수는 정말로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정말 소문대로 전학이라도 간 것일까?

 설마 계획이 실패 했다하여, 학교까지 나오지 않을 줄이야.

 전혀 상상은 가지 않지만, 충격이라도 받은건가?

 ...

 으으, 역시 은하수가 충격 받았다는 건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군.

 아마 충격 때문은 아니리라.

 그렇다면 왜?

 이유가... 있나?

 그녀가 학교에 나오지 않기 시작한 시점이 세계 정복 마지막 계획이 실패한 후부터니, 분명 계획 때문인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이유가 뭘까?...

 ...

 뭐... 이제 내가 상관 할 바는 아닌가.

 괜히 또... 이유 없이 우울해지네...

 

 

 

                                        #

 

 아침을 먹지 못해 허기진 쉬는 시간. 잠시 매점에 들린다.

 구멍이 난 듯 허전한 배. 배 속을 채우자.

 채우는 김에, 이유를 알 수 없이 텅 빈 가슴도 채우자.

 그러한 생각들로 매점에 내려오자, 매점은 생각보다 상당히 한산하다.

 기껏해야 두 세명.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떠는 여학생들 뿐.

 하긴, 아침을 못먹은 학생들은 1교시 마치고 대부분 왔을테니, 점심시간 전에 이렇게 매점에 찾아올 사람은 몇 없겠지.

 그렇게 무엇을 먹을까 곰곰히 따지던 내 시야 사이. 문득 익숙한 얼굴 하나가 시야 사이로 무심히 스쳐간다.

 매점의 옆. 창살로 된 창문. 

 그 옆을 지나는 자. 난 그 자를 알고 있다.

 날카로운 눈매와, 은하수처럼 표정의 변화가 많지 않은 자- 바로 비월단.

 그러고보니 비월단 저 녀석은, 아직 은하수의 이 세계정복 계획이 끝났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겠구나.

 하긴, 비월단은 우리 중에선 누구와 이야기를 잘 하는 것도, 잘 마주치지도 않는다.

 그저 은하수가 시키면 시키는대로.

 지금 따져보니, 저 녀석도 나 때문에 은하수와 관련되게 된 것이었는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

 역시, 알려 줘야겠지.

 

 

 그가 지나간 매점의 옆길을 따라 걸어가보자, 도착한 그곳은 교내의 직원용 주차장.

 그곳은 학교의 뒤편이기에 사람이 잘 오지 않는다.

 확실히 몰래 담배피기 좋은, 비월단이 올만한 장소다.

 주차된 차량은 많지 않았기에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자, 그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작은 소나무 아래. 비월단은 익숙한 자세로 나무에 기댄 채 하얀 구름을 내뿜고 있다.

 역시 무심코 다가서기엔 어색한 사이. 마른 침을 삼켜보고는, 그에게 나를 확인 시켜주듯 천천히 다가가 말해본다.

 일단은 인사.

 \"안녕.\"

 \"...\"

 \"그... 오른손은 괜찮냐?\"

 \"...\"

 답변은 없다.

 그저 붕대를 감은 오른손으로 담배를 물고는, 이내 한숨처럼 내뱉는 모습.

 그러길 한참 후.

 다시 입으로 연기를 뿜어내며, 비월단은 언제 있었냐는 듯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상대를 누르는 듯한 그 뚜렷한 시선에 또 다시 몸이 위축되지만, 일단은 나를 의식했다는 시선.

 그런 생각에 웃으며 말해본다.

 \"여어 비월단. 오랜만.\"

 \"...\"

 역시... 비월단과는 이야기를 끌어서 좋을 것 없다. 본론이나 말하고 가자.

 \"그보다, 비월단 넌 아직 모르지? 이젠 그 은하수의 그 모임엔 나오지 않아도 되. 이제 끝났거든. 그저께 계획이 마지막이었다고 해야하나. 하하. 그러니, 이제 나오지 않아도 되.\"

 \"...\"

 여전히 무답변.

 하긴... 굳이 내가 말해주지 않았어도 비월단에겐 별로 상관없었나.

 비월단 이 녀석은...

 \"비월단 넌. 어차피 어쩌다 이 말도 안되는, \'세계 정복\' 이라는 계획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으니, 굳이 말하지 않았어도 상관은 없었겠지. 하여간 어쨌든, 너도 끝났다는 것은 알아야하니 이 말 하려고 왔어. 이제 그곳(학교 뒤 공터)엔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뭐, 너야 이제 혼자 담배 필 장소가 새로이 생겼으니 좋을거야. 그럼, 안녕. ...\"

 \"...\"

 안녕이라.

 이것으로 이제, 비월단과도 끝인가.

 끝이라...

 다시 한 번, 모든 게 끝났음을 되세긴다.

 이렇게 한 명, 비월단과의 관계를 확실히 정리하니, 은하수에게 듣지만 못했을 뿐. 이제 정말 세계 정복이 끝났음을 몸으로 느낀다.

 하긴, 애초에 그런 목적을 장난으로라도 가졌었다니, 바보 같잖아?

 바보 같아도, 그저 잠시의 좋은 추억으로...

 \"유리 넌, 아직도 은하수를 잘 모르는군. 후우-.\"

 ...

 그것은, 몇 번 듣지 못했지만 분명 알고 있다.

 그것은 무겁고, 둔탁한, 비월단 특유의 목소리.

 뒤를 돌아보니, 비월단은 자신이 기댄 나무에 담배꽁초 지지고는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말을 이을자는 비월단 그가 아님은 잘 안다.

 그- 비월단이 내게 한 말은 나에게 궁금증을 낳게하는 말.

 질문은-

 \"내가, 아직도 은하수를 잘 모른다니?\"

 -내가 한다.

 그 물음에, 비월단은 나무에 비비던 담배 꽁초를 바닥에 떨구며 답한다.

 \"넌. 내가 그 장소에 있었단 우연 때문에, 은하수와 내게 함께 했다고 생각 하는거냐.\"

 ...

 그 날. 동료가 필요하다 하여 만나기로 한 장소. 그리고 그 날. 우연히 그 장소에 나와 함께 서 있었던 비월단.

 비월단은 나무에 눞듯 기댄 자신의 몸을 반동으로 일으키며 이어 말한다.

 \"그 날. 내가 거기 있었던 것은 너 때문도, 나 때문도 아닌, 단지 그녀- 은하수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 유리 네녀석 때문이 아니다.\"

 \"...\"

 그런가.

 그 날 비월단이 그 곳에 있었던 것은- 우연도, 나 때문도 아닌... 단지 나처럼 은하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뿐. 이란건가...

 젠장, 그렇담 그 날 비월단을 보고도 모른척한 은하수는, 날 속인 것이었나.

 하지만 아직, 날 속인 은하수에게 배신감을 느낄 순간은 아니다.

 난 아직, 비월단에게서 중요한 답(이야기를)을 듣지 못했으니.

 이야기의 주제.

 \"그보다 내가, 아직도 은하수에 대해 잘 모르다니? 무슨 뜻이지?\"

 내가 은하수에 대해 잘 몰랐었던가.

 물론 몰랐다고 말 한다면 몰랐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그는, 비월단은 은하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가?

 나로선 이 학교 안.

 은하수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단언한다.

 그녀는 절대 누구에게 속내를 보여 주지도, 옅보게 해 주지도 않으니까.

 그렇다.

 성격은 다르지만, 분명 은하수는 나와 비슷한 부류. 자신을 누구에게 이해시킬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 은하수에 대해 비월단은 잘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

 노려보듯 바라보아주자, 이내 비월단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입가에 아주 깊은 미소를 지어 답한다.

 \"역시 넌, 그녀에 대해선 제대로 몰라.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그녀가 누구인지. 또 그녀가 너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또, 그녀가 얼마나 강한지... 킥...\"

 마지막 자조썩인 혼잣말.

 내가, 하나도 모르는거라고?

 이내 비월단은 깊은 숨을 들이 마시더니, 혼잣말하듯 이어 말한다.

 \"슬슬, 시간이 되어가는군...\"

 ...

 잠시 후. 때 맞춰 쉬는 시간의 끝을 알리듯 울리듯 교내의 종소리.

 교내에서 들려오는 옅은 스피커 소리.

 이내 바닥의 담배 꽁초를 즈려밟으며, 비월단은 걸음을 옮긴다.

 걸어가는 길. 그는 내 옆을 지나치며 걸음을 살짝 멈추더니, 속삭이듯 작게 말한다.

 \"마지막은 끝이지만, 굳이 끝이라고 볼 수는 .. 없겠지...\"

 \"...\"

 \"...기다린다.\"

 ...

 

 

 

                                    #

 

 ...

 세상이 내게 공허하듯..

 나 또한 세상에게 공허했다.

 그저 공허한 세상.

 우울한 노래를 들으면 우울해지고.

 즐거운 노래를 들으면 즐거워지고.

 그저 순간에 이끌리듯, 그런 것 아닌가?

 하지만 그- 비월단이 내게 한 말 뜻은,

 끝이, 아니란 말인가?

 아니면 끝이란거야?

 뭐야? 모르겠다.

 그저 비월단이 한 말들 중 동의 하는 것은 은하수가 강하다는 것.

 확실히, 그 때의 그 돌려차기는 유단자 정도의 돌려차기 였으니, 은하수는 강하다.

 하지만 내게 의심심장하게 다가오는 나머지 말들.

 대체 내게 무엇을 말하는거야?

 대체 내게 무엇을 원하는거야?

 대체 내게 무엇을 하라는거지.

 그런 모든 원인인 은하수는, 또 무슨 생각이며 어디에 있는거지?

 ...

 맘 속의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물음들은, 흐릿한 그림같은 답변만 되어 돌아올 뿐.

 ...

 조용하다.

 정리가 되지않아 말끔히 비워버린 머리 속은, 상당히 조용하다.

 그리고 나의 주위 또한, 비워진 듯이 상당히 조용하다.

 조용하다.

 내가 있는 곳은 교실이란 아주 작은, 그 중 책상만한 작은 공간이니. 조용해질 수 밖에...

 이상하게 이런 상황. 한 사람이 비워진 머리 속에 떠오른다.

 ...

 \"윤초선... 넌...?\"

 

 

                                    #

 

 그녀의 반은 내가 잘 알지 못하기에, 쉬는시간 마다 한 반씩 살펴보았다.

 1-8반.

 그 중 1-3반은 아닌 것이 확실했기에 5반부터 8반 사이.

 한 번의 쉬는 시간마다 찾아나선다.

 찾아나서고- 찾아나서고-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일단 찾기 시작한지 세번째 쉬는시간.

 7반 교실에서 그녀를 찾아낸다.

 교실의 가운데쯤 자리에서, 조용히 뭔가를 하고 있는 그녀- 윤초선. 

 주위의 시선은 상당히 많기에 남의 교실 입구에 서 어영부영 하고 있으면 괜한 눈초리만 받으리라.

 그렇기에 당당히 그녀에게 다가간다.

 1초. 2초. 3초.

 맘 속으로 3초. 그러자 어느새 그녀 앞에 당도.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말한다.

 \"저기 초선.\"

 \"...\"

 목소리가 작았나 하여 다시 말한다

 \"저기 초선!\"

 \"...\"

 그제서야, 내게 느릿한 시선을 옮기는 초선의 모습.

 \"음... 뭐부터 말해야할지. 그러니까...\"

 문득, 내게 향한 시선을 책상에 내리꽂는 초선.

 그리고 잠시. 이내 내게 다시 시선을 옮긴 초선의 입가에는 아주 깊은 미소가 묻어나 있다.

 그 깊은 미소로 초선의 답한다.

 \"무슨 일이니?\"

 \"...\"

 \"응? 내게 무슨 일이야?\"

 고개를 갸웃한 초선의 물음.

 하지만 빠르게 답하지 못하는 것은, 할 말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뭔가가, 뭔가가 예전 초선과는 다르다.

 말투?

 아니면, 평소엔 잘 쓰지 않던 안경?

 \"이봐 얘?\"

 그래. 이건 마치... 나를 처음 보는 사람 대하듯 하잖아.

 그렇담 내가 초선을 처음 보느냐.

 당연히 아니다.

 그렇담 내가 초선과 다른 사람을 잘못 알아봤느냐.

 안경을 썼다는 쓰지않았다 차이만 있을 뿐. 그녀는 분명 윤초선.

 그렇담 남은 이유는 하나.

 그녀는, 나를 처음부터 몰랐던 사람이 되려 하는 것.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면, 굳이 나 뿐만이 아닌가. 초선은 은하수도, 그리고 비월단도...

 \"너말야 초선. 지금 뭐하는...\"

 \"닫아버릴 거예요.\"

 \"뭐?\"

 \"다시. 예전처럼 닫아버릴 겁니다. 인간 관계를...\"

 \"초선 너... 인간 관계가 그렇게 쉽게...\"

 \"끊어질 수 있죠.\"

 나의 말을, 자신의 주관으로 이어 답하는 그녀.

 \"부셔지는 건. 잘라버리는 건. 아주, 너무 쉬워요. 가장 가까웠던 사람도 큰 돈에 깨지기도 하고, 평소 잘 대해주던 사람이 단 한번 화를 내어도 그것에 심한 충격을 받고, 자신을 사랑한다 생각하던 남자가 한 순간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주듯... 끊어지는 것은, 정말 쉬워요.\"

 \"너...정말...\"

 \"하지만, 그 모든 부셔짐들에는 한가지의 공통점이 있죠.\"

 \"...\"

 어느새 평소와 같은, 아니, 언젠가 보았던 진짜 초선의 미소.

 그녀는 그윽하게 미소지어 이어말한다.

 \"바로, 배신. 나를 먼저 배신한 것은, 다름 아닌 그녀입니다.\"

 이내 다시 베시시 소리내어 미소짖는 초선.

 \"그래서, 나에게 하고 있는, 나에게 하고싶은 네 얘기가 뭐냐?\"

 ...

 침을 삼키는 듯한 잠시의 뜸을 들여, 초선은 말한다.

 \"... 끝입니다. 마지막이라고 말 한 건. 바로 은하수씨 였으니... 하긴, 처음부터 기대한 내가 바보였어요. 어차피 그녀도 주위의 기대에 부흥 못해 결국 떠나가버린 것 뿐. 포기한 것 뿐. 치잇... 이게 뭐야... 기대했건만. 믿었건만. 결국 아무도, 아무도 바꿀 수 없어.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그리고 결국 자기 자신 마저도!!!! 전부!!!! 누구도!!!! 전부 다!!!!\"

 \"윤초선!!!!\"

 ...

 시끌시끌한 주위.

 너무나 시끄러워 나의 귀를 막고. 그들의 입을 막게 하고 싶었던 주위.

 어느새 주위는 나의 소리침에 침묵이 흐른다.

 조용해진 대신, 나를 바라보는 수 많은 주위의 시선들.

 하지만 주위 시선에 아랑곳 않고 그녀에게, 초선에게- 난 소리쳐 이어 말한다.

 \"---\"

 

 

 

 

                                           #

 

 끝.

 시작이 있으면, 모든 것엔 그 끝이 있다.

 뫼비우스의 띠라는 게 있기도 하지만, 그러한 극단적인 \'예\' 만 제외하면 세상에 끝이 없는 무한이란 것은 없다.

 그러니 정말로 끝났다.

 은하수의 세계정복 계획은, 이제 정말로 끝이 나버렸다.

 전부- 끝났다.

 \"유리. 수업 끝났다.\"

 등 뒤로 들려오는 마야의 목소리.

 때 마침 수업도 끝났다.

 그러니 나의 졸음 타임도 끝났고.

 나의 오늘 하루 일과도 이로써, 끝났다.

 \"흐음...\"

 아니아니, 아직 하나... 남았나?

 

 

 

                                          #

 

 학교가 끝 마친 시간.

 새로운 달을 맞아 빠르게 하교하는 오늘.

 모든게- 세계 정복이 끝나버린 지금.

 이상하게 난 학교 뒤 공터에 나와있다.

 그렇게 넓은 곳은 아니지만 뻥 뚫린 하늘만큼은 넓은 공간.

 그곳에서의 알 수 없는 몸의 떨림. 기묘한 기분.

 뭘까?

 기분좋은 기다림. 떨림.

 하지만, 기분이 좋다지만 기다리는 무언가는 나타나지 않는다.

 단순한 나의 착각?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익숙한 얼굴 하나가 소리도 없이 나타나 공터의 한쪽벽에 자리잡는다.

 초점 없지만 어딘가를 향한 확실한 눈빛. 불량기 가득해 보이는 긴 머리에, 교칙에 어긋나는 반짝이는 귀걸이를 한, 무엇보다 가장 큰 교칙 위반인 담배를 익숙히 입에 물어보이는 그- 비월단.

 그는 익숙한 자세로 담배를 물고는 라이터를 집어든다.

 칙...칙...

 그 모습에,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해본다.

 \"으음. 저기 비월단 너 말야.\"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내게 향한 시선. 그 시선에 이어 말해본다.

 \"흐음. 담배. 뭐 피냐?\"

 비월단은 한 모금의 연기를 더 뿜어내고는, 이내 뜸을 들여 짧게 답한다.

 \"... 레정.\"

 한 순간. 순간에 딴 생각을 해버렸다면 듣지못했을 빠르고 작은 답변.

 됐다.

 대화는 길지 않았지만, 이것으로 되었다.

 그런 짧은 대화를 마쳐 안도감을 느끼는 사이. 누군가의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 발소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이곳. 공터를 향하는 누군가라는 것은 쉽게 예측.

 누굴까를 생각하는 사이. 이내 바로 옆 공터로 오는 작은 골목까지 다가온 발소리는 멈춘다.

 이내 골목에 얼굴만 내밀어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소녀.

 이내 몸을 들어내더니, 언제나처럼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짓는 그녀- 윤초선.

 \"에...안녕 하세요?\"

 주위를 살피며 가볍게 인사한 윤초선은 나와 비월단을 번갈아 바라본다.

 비월단은 윤초선의 등장에 아랑곳않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고, 난 멋쩍은 웃음.

 그러한 모습들에 윤초선은 고개만 여러번 갸웃한다.

 이제 윤초선까지 모였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가 남은 것.

 하나.

 중심.

 이내, 또 다시 가까워지는 발소리.

 조금 전보다 더 또렷히 울리는, 구두굽 같은 발소리.

 또각... 또각... 또각...

 이윽고 학교 뒤편의 작은 공터.

 그녀는- 은하수는 초선의 뒤를 따라 담담히 나타난다.

 여전히 싸늘하리만치 무미건조한 그녀의 표정.

 그 변함없는 모습에 웃음과도 같은 미소를 참는 사이, 은하수는 내가 서 있는 입구 근처를 지나 반대쪽 벽에 기대어 팔장을 낀다.

 이것으로, 모두 다시 모였다.

 웃음을 뱉어내듯 헛기침을 하고는, 말해본다.

 \"에헴. 흠흠. 이봐 은하수. 근데 너, 그 사이 키가 좀 작아진 것 같다?\"

 \"네 눈이 정상이 아닌거겠지.\"

 단박에 부정한는 은하수.

 그런가.

 마지막은 끝이지만, 굳이 끝은 아니다.

 \"은하수. ... 흐음.. 그러니까. 아직도 넌 세계를, 학교를 정복할 맘이 있는거냐? 은하수.\"

 바람에 머리칼을 휘날리던 은하수.

 이내 턱을 치켜 올리며, 그녀는 나지막히 내게 답한다.

 끝은 끝이 아닌,

 \"---\"

 모든 것의 새로운,

 \"---\"

 시작.

 오늘따라 유난히 시원한 바람.

 그때.

 난 처음으로 그녀- 은하수의 옅은 미소를 옅 볼 수 있었다.

 사과가 쪼개지듯, 시원한 미소를.

 \"자~ 그럼!! 시작 해 볼까?\"

 \"네? 뭘요?\"

 나의 옆. 아기 고양이처럼 고개를 갸웃한 초선의 귀여운 물음.

 오랜만에 초선에게, 아주 기분좋게 미소지어 답해본다.

 \"세계 정복.\"

 

 

 

 이것을 누가 믿던. 안 믿든. 이젠 상관없다.

 세상의 시작이 알이라면, 그 끝은 닭인가?

 세상의 시작이 닭이라면, 그 끝은 알인가?

 어떻든 내 말의 취지는 끝과 시작이 있다는 것.

 그 끝은, 바로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것.

 지금 이것은 바로 그 시작의 전조.

 그렇기에 지금부터 시작될 이 작으면서도 큰 이야기는,

 그저 나와 은하수와, 초선과 비월단의,

 

 세계 정복 이야기.

 

 

                                           -END-



태그
5 은하수  lv 5 57.5% / 1845 글 132 | 댓글 171  
안녕하세요. 제가 쓴 이야기 재밌어요.
아, 그렇다고 절대 읽어보라는 권유의 프로필이 아님(ㅇㅂㅇ)/
참고로 저는 반전을 사랑하는 사람. 완결이 나기전엔 스토리를 논하지 말라.

세계 정복 이야기. 20편
마계 정복 이야기. 18편
마녀사냥. 17편
Enic 13편
브레스 1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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