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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에 한번씩 업데이트하는 듯한 유쾌산뜻상큼 이능력배틀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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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레텔  lv 6 60.1428571429% / 2521 글 85 | 댓글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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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그레텔[yunie22]
조회 963    추천 0   덧글 4    / 2009.11.07 13:32:39

“지금의 온달이를…… 막는다니, 도대체 뭐야. 받아들였다며, 온달이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문득 몸을 떨었다. 언제나 시무룩한 모습으로 말을 더듬거리는 온달이. 물론 그 기간이 짧기는 했지만, 같이 지내던 시간동안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PSE에서 일하게 된 뒤로는 제법 밝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어딘가 위태로워보였지.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려버릴 것만 같아서 자꾸만 걱정하도록 만드는 아이였다. 일단 내 기억속의 온달이는 그런 아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지금의 도련님은, 어딘가 망가져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는 몰라도, 다시…… 지구를 멸망시키려고 하고 계십니다.”
정말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째서? 무수히 많은 의문들이 떠오르지만, 플라보가 계속하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플라보가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가만히 눈을 감는다.
“도련님은 언제나 타협하며 살아오셨습니다. 그것이 도련님의 삶의 모토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어째서인지, ‘타협’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신 것만 같습니다. 어머님의 가르침을 모두 잊어버리신 것 같아요. 도련님이 살아온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말도 안 되게 비틀려버린 것 같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제부턴 좀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입니다. 이 모든 건, 아, 기억하고 계시나요? 그…… 박해협 말입니다. 도련님의 친구 분.”
잘못 본 걸까. 박해협의 이름을 발음하며, 플라보의 눈동자가 살짝 떨린다. 어딘지 못마땅해 하는 기색이다. 나는 그저 어리둥절해서는, 기억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사람에게 들은 겁니다. 도련님의 상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자, 그 사람이 PSE에 협력을…… 아니,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흥, 하고 플라보가 이젠 코웃음까지 친다. 아니, 왜 그러는 거지? 플라보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다니. 박해협이라는 이름의 온달이 친구. 도대체 왜 그랬던 건지는 잘 몰라도, 대놓고 나를 싫어하던 아이였다. 아니, 그보다. 잠깐만?
“해협이가 PSE에? 그 애가 어떻게 PSE를 아는 거야, 무슨 일이 있었어?”
“아…… 비오 씨는 모르시겠군요. 그 일 바로 직후 밝혀진 건데 그 사람, 초능력자입니다.”
“엥? 뭐라고? 그럴 리가?”
“초능력자입니다. 지구 멸망의 위험요소로도 전혀 보이지 않고, 본인도 입단을 거부하기에 PSE에서는 일단 ‘지켜보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간단한 조사는 마쳤는데, 그 사람의 능력은 ‘읽고 따라하는’ 능력이라더군요. 잘은 몰라도 일반인의 무언가를 읽고 그걸 따라하는 걸로 정체를 숨겼다던가, 뭐 그랬다고 합니다.”
과연 그랬던 건가. 그렇다면 내내 정체를 몰랐던 것도 이해가 간다. 같은 능력자들끼리라도, 이러면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이 떠오른다.
“아무튼 그 사람은 도움을 요청하며, PSE 남부지부에 온달 도련님의 과거를 상당 부분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도련님이 이상해지신 건 그것 때문이라는 겁니다. 자극받아 떠오르게 된 기억들에 의해, 도련님이 변하게 된 거라고 말입니다. 뭐 그 사람 능력도 능력이고 하니, 어떻게 되어가는 상황인지 읽었다던가, 나름대로 알아차리고 판단한 거겠지요. 하지만 솔직히, 제가 보기엔… 굳이 말하자면 그 반대인 것 같은데 말이죠.”
좀 더 알기 쉽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말하자면 다시 태어난 것이기 때문일까. 이 모든 상황을, 나는 도무지 제대로 이해할 줄을 몰랐다. 플라보는 여전히 무감정한 듯한 얼굴로 나를 마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까지 전혀 그 정체를 모르고 있던 박해협, 그 아이의 얼굴이 어째서인지 다시 떠올려진다. 그러고 보면 그 아이도 언제나 이렇게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의외로 화를 낸다던가 하는, 감정의 표현은 많았지만 오히려 이 토끼보다도 더욱 감정을 읽기가 힘든 아이였지. 아니, 그보다 왜 생각이 또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거지? 내가 이따위 아무래도 좋을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플라보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던 듯 하다. 가만히 입을 열고 속사포처럼 읊어지는 사실들에, 나는 멍하니 귀를 기울인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9년인지 10년 쯤 전, 온달 도련님 어린 시절의 일입니다. 어떤 사고였던 건지는 몰라도, 도련님 집에 화재가 일어났지요. 도련님은 거의 죽을 뻔 하셨습니다. 육체의 절반 이상이 기능을 멈추고 있었지요. 불길에 도련님은 고립되었지만, 어머니는 분명 살 수 있는 위치이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도련님을 두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대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쪽을 택했습니다. 어머니는 알고 계셨지요, 도련님의 능력을. 어머니는 도련님을 살리기 위해 네,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어요. 아마도 어머니는 그 능력을 이용해 도련님의 몸을 그렸다던가 했을 겁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자신의 목숨을 버린 대신, 도련님을 살린 것입니다.”
플라보가 잠시 숨을 고른다. 이걸 계속 듣고 있어도 되는 걸까. 아까부터 계속되어 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두근거린다. 늑골 안을 가득 메운 불안감이, 잘못하면 목구멍 밖으로 넘어올 것만 같았다. 어쨌든 플라보의 말은 계속된다.
“어머니가 지키려 했던 바닥의 일부분 정도만을 남겨둔 채로, 집은 완전히 불타 무너져내려버렸습니다. 혼자 살아남게 된 도련님은, 박해협 그 사람과 함께 집을 다시 세웠습니다. 도련님이 그리고 그 사람이 실체화시켰습니다. 간단한 일이었어요, 그 정도는. 문제는 그 다음이었지요. 도련님의 생각이, 잃어버린 어머니에까지 닿은 겁니다. 어렸지요, 도련님은.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도련님이 그리고 그 사람이 실체화시켰습니다. 하지만…… 그건 무참히 실패하게 되지요. 겉모습만은 어머니와 완전히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네, 겉모습뿐이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그건 그저, 어머니의 겉모습만을 흉내 낼 뿐인 종이인형이나 다름없을 뿐이었지요.”
플라보의 귀가 어딘지 슬픈 듯한 움직임을 보이며 아래로 내려간다. 말문이 막힌다. 사실 먼저 떠오른 건, 나에 대한, 아주 무서운 어떤 것이었다. 흘러넘칠 것 같은 불안감이 가슴을 아플 정도로 죄어온다. 아무리 애써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 목이 이상해 진 것도 같다. 두려워서, 차마 그것을 입에 담지는 못한다. 대신할 다른 말을 아무거나 찾는다. 간신히 목소리가 나온다.
“그럼, 밖에 있는 저 시체가……”
“그렇습니다. ‘실패해버린’ 도련님 어머님의 잔해입니다. 아마도 도련님이 직접 처리하신 모양입니다.”
그러다 마주한 또 다른 충격에 말문에 이어 이젠 숨까지 막혀온다. 언제나 시무룩하기만 하던 그 온달이가, 아무리 진짜가 아닌, 종이인형에 지나지 않는다고는 해도 자신의 엄마의 모습을 한 그것을 저렇게 만들어놓다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인 걸요. 지금까지 제가 말한 것, 전부.”
정적이 찾아온다. 도무지 참아내기가 힘든 정적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이런저런 의문과 생각들이, 마인드맵처럼 계속해서 마음속에 번져나간다. 아, 하고 입을 벌렸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냥 정신적인 문제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십수 초를 더 노력한 끝에, 간신히 운을 뗀다.
“그…… 그런데 플라보, 사실 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플라보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한다. 어떻게 말해야할까. 잠시 망설인다. 불규칙적인 심장박동. 결국 또다시 노선을 변경한다. 마음에 걸리는 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큼,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는다.
“그 해협이가…… 정말로 그 모든 걸 다 말했어? 일단 내 기억속의 걘, 그런 걸 함부로 말하고 다닐 애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그리고 두 번째로, 아무리 그 애라도, 그 사건을 그렇게 하나하나 상세히 다 알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아.”
플라보의 귀가 한 번 쫑긋한다.
“아, 역시 당신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 같네요. 솔직히 말하면 감동했습니다. 저.”
뭐라고? 그건 또 뭐야? 아까부터 말이지, 대체 뭐에 자꾸 그렇게 감명을 받고 있는 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플라보가 토끼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종간의 대화이기에 이러는 것일까. 나는 이제 살짝 인상을 쓰며 플라보를 똑바로 마주한다. 불안감을 잠재우려 애쓴다. 아무튼 아직 할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잘은 몰라도 온달이네 어머님의 가르침, 이라던가 그런 거 말이야. 정말로 그 애가 그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던 거야? 아니, 사실은 잘 몰라도. 왠지 말이지…… 그럴 것 같지 않다고나 할까.”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해져 있다. 플라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그래요. 사실 그 사람이 PSE에 말한 건, 도련님이 화재로 어머니를 잃었고 그 어머니를 다시 살려내려 했었다는 것 정도뿐입니다. 만약 이 모든 것을 다 PSE에 낱낱이 보고하기라도 했었다면, 제가 정말 그 사람을 어떻게 해버렸을지도 몰라요.”
어울리지 않게 난폭한 어투다. 어째서 해협이를 그렇게 대놓고 싫어하는 건지, 하는 의문은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기분이 이상했다. 플라보는 어째서 나를 이토록.
“그럼 잠깐만, 이것 봐. 그런 걸…… 나한테 다 말해도 되는 거야?”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온달이의 과거를, 겨우 이주일쯤 알고 지냈을 뿐인 나에게 말해도 되는 건가, 하고 묻는 것이다. 플라보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당신이기에 말하는 겁니다. 당신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당신을 믿고 있어요. 일이 이렇게 되지만 않았더라도, 어쩌면 온달 도련님 스스로가 말했을지도 모르는 내용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것이, 당신이 온달 도련님을 돕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기에 말하는 겁니다.”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영 편치 않았다. 좀 과한 신뢰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온달이는 정말 나를 그 정도까지로 생각했던 걸까? 그리고 이런 사실을 안다고 해서, 내가 온달이를 도울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지금 온달이는, 어떤 상태이기에.
“에이, 뭐 그건 그렇다 치고. 해협이가 그 모든 걸 다 말하지 않았더라도 말이야, 두 번째는 플라보 너에게도 해당돼. 플라보는……어떻게 그런 것들을 다 알고 있는 거야.”
잠시 정적이 흐른다.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내 그 하얀 토끼의 입이 조심스레 열린다.
“사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건지. 어쩌면 제가…… 그 모든 걸 아는 것을 바랐기에 이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그래요, 죽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그 때 제가 그들의 곁을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망상 같은 것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다소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잘은 몰라도, 플라보는 지구 침략을 위해 만들어진 달 토끼가 아니던가. 우연히 설정을 받지 못해 무설정의 존재로 태어나게 되었다고, 마지막 전투 이전에 있던 잠깐의 회의시간에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플라보가 시선을 내린다.
“그렇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전 거짓말을 했던 겁니다. 물론 온달 도련님은 그저 토끼 ‘플라보’를 ‘모델’로 해서 그렸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짜 ‘플라보’입니다. 먼 옛날 그렇게 죽어버렸던 토끼 ‘플라보’ 그 자체라는 말입니다.”
지겹도록 반복한 서술이지만, 이번에도 나는 플라보의 말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플라보. 온달이가 옛날에 키웠다던, 지금 여기 내 앞에 있는 플라보의 모델이 되었다던 토끼 말이지. 그런데 플라보는 지금, 그 ‘플라보’가 자신이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도대체 어떻게? 이건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아까 했던 설명과 다르잖아.
“하지만…… 하지만 잠깐만, 온달이 어머님은? 분명 그거 실패했다고 하지 않았어?”
의도치 않게, 다소 질책하듯 내뱉어버렸지만, 플라보는 인내심을 잃지 않고 끈질기게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네. 그 때의 시도는 분명 실패했었습니다. 어렸었기에 그랬던 것이지만. 도련님은 거기에 잡다한 설정 대신, 그저 그 ‘존재’만을 써넣으셨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한 존재에 대해 다 알 수가 없습니다. 보여 지는 것이 진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온달 도련님은 그저 자신이 보고 있던 어머니의 겉모습만을 열심히 묘사해서 써넣으셨던 겁니다. 그것은 결국, 어머니의 겉모습만을 그럴싸하게 흉내 낼 뿐인, 3차원의 종이인형에 지나지 않는 ‘어머니’를 만들어내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지요. 온달 도련님은 저를 그릴 때 이름만을 써넣으셨습니다. ‘플라보’라는 이름이요. 말하자면 온전한 ‘제 존재’ 그 자체를. 물론 달 토끼들의 세계를 그리실 때, 저에게 어째서 이름만을 주신 건지는 잘 모릅니다. 어쩌면 온달 도련님은 토끼 플라보가 다시 살아오기를 바라신 걸지도 모릅니다. 그 실패 이후, 어렴풋이 알게 되신 걸지도 모릅니다. 그랬기에 당신을 그릴 때도 이름만을 써넣은 건지도 모르고요.”
플라보가 이젠 다시 시선을 올린다. 빨간 눈동자가 발하는 빛이 나를 꿰뚫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비오 씨, 당신은 결코 가짜가 아닙니다. 당신은 실패작이 아니에요. 저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도련님과 함께 했던 바로 그 ‘플라보’ 본인이라는 것을.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안해 할 것은, 전혀 없어요.”
“아.”
망연히 눈을 깜박이며,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내버린다. 내가 불안해하고 있던 것을, 플라보는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플라보가 한 말의 의미를 천천히 되새겨본다. 나는 실패작이 아니다. 결코 가짜가 아니다.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죽어버렸던 ‘이비오’ 본인이다.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불안감이, 몸 이곳저곳의 통로를 따라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그저 눈을 깜빡이기나 하며, 플라보를 바라볼 뿐이다.
“그래…… 고마워.”
“고맙긴요. 오히려 전 너무 제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닌가, 죄송스러운걸요.”
정말 미안하다는 듯 플라보의 쫑긋하던 두 귀가 다소 시들해진다. 괜찮아, 괜찮아 거듭 말해보지만, 사실 불안감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묘하달까 더 좋지 못한 느낌이 드는, 또 다른 종류의 불안감이 찾아든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 말하자면, 그런 느낌의 불안감이었다. 아니, 괜히 그런 생각 할 필요 없어. 기껏 다시 살아나게 됐는데, 감사히 잘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안감을 마음 한 구석으로 꾹꾹 눌러버리려 애쓴다. 그건 그렇고 말이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은 남아있었다.
“그보다. 플라보, 그럼 넌 어떻게 이렇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네 말대로라면, 너는 그 때의 그 토끼 모습 그대로가 되어야 하지 않아?”
뭐랄까, 시작부터 지금까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뿐이다. 플라보의 동그랗던 눈이 가늘어진다.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 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세히는 저도 잘 모르지만, 아마도 제가 그렇게 바랐기 때문이겠지요. 죽기 이전의 제가 말입니다.”
점점 더 가늘어져가던 플라보의 눈이, 이내 완전히 감긴다. 창밖으로부터 하얀 햇살이 들어와, 똑같이 하얀 플라보의 위로 아무렇게나 부서진다. 그 이해 불가능한 피조물을, 새하얀 거짓말쟁이를 나는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어쩌면 우리의 죽음에 대한 지구의 보상일지도 모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지구이지만서도…… 그러니까 어쩌면 당신들이 능력을 가지게 된 것과 비슷한 이치일지도 모릅니다. 생전에 바랐던 것, 어쩌면, 네. 꿈, 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것이, 새로 태어남과 함께 반영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아니면, 지구가 또 그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잣대로 판단한 것인지도. 물론 이 모든 건, 다 그저 제 추측일 뿐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비오 씨, 당신도 그럴지도 모릅니다. 어딘가 달라진 점을 발견하지 못했나요?”
“응? 달라진 점이라니.”
갑작스런 물음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를 모르고 머뭇거렸다. 몸도, 정신도 상태가 영 엉망진창이라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말이지. 나는 그렇게 가만히 앉은 채, 몸과 정신을 나름대로 가다듬어보려 한다. 머리끝에서부터 하나 둘, 차근차근 체크해본다. 그러다 문득, 나는 깨닫는다.
“아……”
무심코 신음을 흘린다. 나는, 알 수 있었다. 리미터 온, 오프. 목구멍에 버튼 같은 것이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물론 환청일 뿐이긴 했지만, 나는 그것으로 완전히 깨닫는다. 새로운 나의 몸에 찾아온 변화. 딸깍, 리미터 오프. 가슴이 두근거린다.
“플라보…… 나를 봐.”
“네.”
플라보는 즉답하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본다. 딸깍, 리미터 온.
“아니, 다시 고개를 돌려도 돼.”
그러나 플라보는 이상하다는 듯 빤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네? 왜 그러십니까, 비오 씨.”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딸깍, 딸깍. 계속해서 켰다가, 껐다가 한다. 그러나 어떠한 문제점도 발견하지 못한다. 나는 완전히 이해했다. 두려움인지 흥분인지 모를 어떠한 것에 전율한다. 아아, 그러니까. 나는. 달 토끼들과 싸우며 계속해서, 끊임없이 바라던 것. 다시 태어나면서 나는, 아무런 문제없이 완벽하게 능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바들바들 떠는 나를, 플라보가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괜찮아, 괜찮아.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까, 하고 플라보가 눈을 깜박인다.
“그럼 이제 슬슬 일어나 봐도 될까요? 혹시 힘드시면 조금 더 있다가도 괜찮습니다.”
잠시 플라보의 무감정한 듯한 목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있다가, 이내 얼른 몸을 일으켜 세운다. 아까보다는 훨씬 움직이기가 수월했다.
“아…… 아냐, 그래. 그러니까 플라보, 결론은 넌, 내가 지금의 온달이를…… 그게, 막아주기를 바란다는 거지?”
플라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플라보를 따라, 나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 주며 말했다.
“온달이를 보러 가야지. 어디 있는지 알아?”
“아, 그거야 물론.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당신도 ‘깨우치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온달 도련님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들로, 도련님께 연결되어있습니다.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일단 그런 건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비오 씨. 조금,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지금의 온달 도련님은, 전과 상당히 다른 모습을 하고 계시거든요. 아, 물론 겉모습은 그다지 달라진 건 없지만 말입니다. 그 내면이 말입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까. 걱정스러움에 살짝 인상이 써진다. 플라보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한다.
“말했지요? 도련님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말도 안 되게 비틀려버린 것 같다고. 그러니까, 그 모습은 마치……”
플라보가 깜빡, 눈을 감았다 뜬다. 적절한 단어를 고민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어린 시절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
올리고는 있지만 너무 막 써서(...) 언제 다 갈아엎을지도 몰라요~
1권의 그려지는자리(4)가 살짝 수정되었답니다. (저번에 퇴고하면서 고친건데,
제일 많이 수정된곳이라 일단 이거부터 다시 올려요.)
모자란 글이지만 봐주시느분들 4랑...합니다...ㅜㅜ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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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레텔  lv 6 60.1428571429% / 2521 글 85 | 댓글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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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1/07/01:52
플라보 좋아요 플라보 \'ㅂ\'/
6 그레텔 11/09/12:56
플라보 귀엽죠 저도 좋아합니다. 가 아니라 ㅠㅠ 감사합니다!/ㅅ/
0 11/09/10:45
우왕>ㅂ<)/ 뭔가 온달이의 능력은 신급이었군요...\'ㅠ\' 생명 재창조를 넘어서 살려내다니..;; 주인공이 바뀌는건가요..? \'ㅂ\')
6 그레텔 11/09/11:15
음... 그렇다기보단 1권 주인공이 온달이였다면 2권 주인공은 비오인 식이랄까 이런 구성으로 갈거같아요~이런식으로..() 온달이의 능력에 관한건...^///^ 헤헤 쫌더 지켜봐주세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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