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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구 - 그와 그녀의 일기 by 메르피나

갑자기 불치병에 걸려 허약한 몸과 이상한 능력을 손에 넣은 여자 아이가 옆집으로 이사온 퇴마사와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참고로 대문 그림의 경우 인터넷에서 찾아 도용한 것으로 저작권 법에 침해될 시 바로 삭제하겠으니 쪽기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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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 11. 8 - 그녀의 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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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메르피나[grace]
조회 984    추천 1   덧글 0    / 2009.11.09 21:30:53

 09. 11. 8   a.m. 5 : 58   - 그녀의 일기 -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저렇게 부산을 떨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우왕좌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무엇을 입을까? 머리는 어떤 모양을 하는 것이 좋을까? 가방에는 무엇을 챙기는 것이 좋을까? 돈은 얼마 정도 가져가야 하는 걸까…… 오죽하면 유모가 내 옆에서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을까. 살짝 창피했지만, 준비를 제대로 못해서 당황하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에게는 첫 데이트니까.


 
데이트일까? 에이, 설마. 이런걸 데이트라고 하는 거잖아. 하지만 그냥 지난번 일에 대한 보답으로 영화를 보자고 한 건데? 근데 도대체 내가 왜 이걸 가지고 고민하고 있지? 이런 수많은 망상들이 나를 나가기 전부터 철저하게 괴롭히고 있었다.


 
결국 나는 몸치장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평정으로 치장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 극장까지 걸어가지 않을래? 극장까지 멀지도 않고, 영화 시작할 때까지 시간도 넉넉하니까.”


 
집 앞에서 기다리던 아저씨를 만나 동네를 벗어나면서, 아저씨는 나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것는걸 좋아하는 나로써는 반대 의사를 표시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아저씨와 나는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계속 걸어갔다. 나는 살짝 거리감을 두고 아저씨의 옆을 쫓아갔다. 현란한 네온사인들이 반짝이는 거리위로 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번화가를 나온 것은. 아니, 사실 이런 밤중에 번화가를 나온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그것도 남자와 둘이서.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이 이상야릇한 상황에 대해서, 그 어떤 후회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고 있었다. 어쩌면 집에서 지내던 한달 동안 간이 배 밖으로 나올 정도로 커진 걸지도. 혹은 그 동안 부모님께 배웠던 예의범절이나 여자아이가 조심해야 할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중요성의 등급이 매우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너무도 어린 나이에 경험해버렸으니까. 내가 과연 언제 또 이런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예측이 전혀 불가능하게 되었으니까. 한 달이 조금 넘은 예전 그때부터……


 
오랜만에 보는 영화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아저씨의 안목에 살짝 감동했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나의 심금을 울렸고, 아름다운 가을의 들판에도 흠뻑 취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영화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결국 눈물을 또그르르 흘리고 말았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기 전에 빨리 눈물 자국을 지워야지.’ 라고 생각하고 정말 표시 안 나게 눈과 얼굴을 훔치려고 했지만, 영화가 끝나자마자 가자며 벌떡 일어나버린 아저씨 때문에 그 계획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결국 나는 부랴부랴 일어나서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아저씨는 이런 나를 보더니 살짝 놀리는 어투로 말하는 것이었다.


 
뭐야. 운 거야?”


 
나가는 사람들 보니까 나만 운 것도 아닌데 놀리지 마세요.”


 
나는 약간 뾰로통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아저씨가 웃더니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나는 오랜만에 보는 영화니까 좀 더 재미있는 걸 고를걸 그랬나 후회돼서.”


 
아니에요. 엄청 재미있었어요.”


 
다행이야. 뭘 봐야 할지 잘 몰라서, 아는 사람에게 추천 받은 영화거든.”


 
아저씨는 재미있었어요?


 
? 나야 뭐.”


 
그리고 한동안의 침묵. 영화관을 나와, 나는 목적지도 모른 체 그저 아까와 같이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아저씨와 나란히 걸었다.


 
만약에요. 영화에서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갑자기 사라져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 아저씨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냥 걸어가면서 이야기나 할까 하고 물어본 이 가벼운 질문에, 아저씨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 아저씨를 고개를 돌려 살짝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무언가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대답을 원하며 쳐다본다는 것을 알았는지, 어렵게 입을 떼기 시작했다.


 
, 나는 그냥……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누군가를 두고 떠나는 상황 보다는 직업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누군가 나를 두고 떠나는 상황이 많아서 말이지.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남기고 먼저 사라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네.”


 
그렇겠구나. 나는 바로 이해했다. 지난번에 강아지와 같이 의뢰가 끝나서 헤어진 영혼들이 수도 없이 많았겠지.


 
그럼 반대의 입장에서 어떠세요? 누군가 아저씨를 두고 떠나는 것이?”


 
글쎄. 아직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나는 그저 빠르게 현실에 순응하게 될 것 같아. , 갔구나. 하는 느낌? 물론 처음에는 슬프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겠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인데도요? 그냥 의뢰로 만나는 사람 말고요.”


 
내 물음에 아저씨는 살짝 망설이다, 힘주어 말했다.


 
.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가능한 걸까? 만약 나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다면…… 우리 부모님이나 유모가 내 곁을 떠나게 된다면…… 아마도 나는 나를 주체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도달하겠지. 그 분들이 내가 가진 전부니까. 내가 이런 암흑 같은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힘이자, 이유니까.


 
단아는 어때?”


 
?”


 
단아는 만약에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갑자기 사라져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거야?”


 
저라면저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사람 곁에 남을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저 스스로도 생각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도전하게 될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혼자 남아서 아파하지 않도록……”


 
나의 이런 말을 듣자, 갑자기 아저씨가 매우 쓸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래.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혼자 남게 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


 
아저씨의 이 혼잣말이 왠지 모르게 너무 슬프게 울려서, 나는 그만 더 이상 말을 붙일 수 없게 되었다. 아저씨도 나 못지않게 힘든 경험을 했던 것 같았다. 아니, 나보다 더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그냥 따뜻한 집 안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가하니까.


 
시간은 1시가 되어갔지만, 거리에 있는 사람의 수는 전혀 줄어들어 있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술을 마신 사람들도 눈에 띄었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무척이나 다정해 보이는 연인들도 있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던가. 군중 속에 고독이라고. 집에 혼자 있었을 때는 잊고 살았던 외로움들이 거리에 나오자 오히려 더 사무쳤다. 나의 비참함을 동정 받고 싶지 않아 연락을 끊어버린 중고등학교 친구들도 보고 싶었고, 이런저런 말들이 듣기 싫어 그저 피하기만 했던 친척들도 왠지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안다. 겁쟁이인 나는 결코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이 내민 손을 잡지 않겠지. 차라리 모르는 사람의 손을 잡을지언정.


 
배고프지 않아? 근처에 내가 잘 아는 가게가 있는데, 뭔가 먹고 가지 않을래?”


 
아저씨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오랜만에 나와서 나도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늦게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도 얻었고. 아저씨는 유모에게 꽤나 좋은 인상을 보였던 것 같다. 딱딱한 유모가 쉽게 허락해 준 것을 보면.


 
이 시간에 하는 음식점도 있어요?”


 
아저씨는 웃었다.


 
이 시간에도 영업하는 음식점은 많아. 여기서 멀지 않은데, 괜찮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도착한 음식점은 꽤나 큰 건물의 지하에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간판도 없고, 계단도 허름해서 나는 살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여기 음식점 맞는 거죠?”


 
의심이 가득 담긴 나의 말투에 아저씨는 소리 내어 웃었다.


 
맞아. 아는 사람만 아는 좋은 곳이지. 주인이 좀 괄괄하긴 하지만, 여기 음식 꽤나 맛있다고. 들어가자.”


 
그때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누군가를 만나게 된 것은.


 
혹시 퇴마사이신 천기님이 맞는지요?”


 
아저씨와 나는 소리가 난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올린 40대 정도의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아저씨는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누구신지요?”


 
아저씨의 대답을 들은 아주머니는 너무나도 기쁜 표정으로 아저씨의 손을 덥석 잡더니 말하는 것이었다.


 
아아. 다행이다. 어서 만나야 했는데.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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