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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용사 강하다! by 강속구

여러분 안녕? 나는 강하다. 아니, 강하다는게 아니라 성이 강씨고 이름이 하다라고. 웃기지? 나도 이런 이름이 싫어. 그런데 어쩌겠니.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강하게 자라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니 마냥 싫다고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거든. 아무튼 내 나이도 이제 19살.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마냥 놀 수 만은 없는 시기에 접어들었어. 그래서 평소처럼 친구들과 야간자율 학습을 하고 있었는데.....[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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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속구  lv 2 26.3333333333% / 379 글 24 | 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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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강속구[ksg8342]  
조회 1042    추천 0   덧글 2    / 2009.12.05 12:47:08

난 지금 죽었다.

간단명쾌한 결론이다. 스스로 이런 완벽한 결론은 낸 데에 관해서 나는 스스로의 지혜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정도다. 오, 난 역시 대단해!

정확한 사인은 교통사고. 선생님의 맹추격을 피하다 어쩔 수 없이(물론 애초에 자율학습을 빠지지 않으면 된다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당연히 넘어가도록 하자)차도로 돌진, 그리고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덤프트럭과 충돌해서……[이하생략] 과 같은 일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여긴 어디?

정신을 차리자마자 눈앞에 있던 간호사누나(로 생각했던 설탕이라는 웃기는 이름을 가진 천사누나)가 화사한 꾸민 미소를 한 채 알려줬다. ‘어서오세요, 천국입니다.’ 무슨 천국이 패스트푸드점도 아니고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지만 갖은 협박과 고초(주로 멱살잡이)로 나는 결국 여기가 천국인 것에 대해 시인하게 되었고, 구원을 얻게되……진 않았지만 이곳에 와서 그나마 나에게 관심을 준 이 설탕누나를 얼떨결에 따라나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어떤 건물 앞에 와 있다.

숨을 한번 들이쉬어 볼까, 후읍- 다행히도 내가 죽을 때 이것저것 부서지거나 꺾인 것들은 생략된 듯 숨을 쉬는데도, 걷거나 뛰는데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하긴, 죽을 때의 신체를 그대로 가져왔다간 상반신과 하반신이 따로 노는 기현상을 볼지도 모른다. 이정도의 애프터서비스는 해 줘야 죽을 맛이 나지.

후아- 들이쉰 숨을 한번 내쉬고,

흐으읍--- 힘차게 들이킨다. 좋아, 이정도로 크게 숨을 삼키면 가능하다.

나는 숨을 있는 힘껐 들이마시고----

“푸하하하하하하하!!! 쩌어어어얼어어어어---!!! 우하하핫핫--!! 엄청 웃기네요 그거!! 우하핫!! 요, 요옹사아아--? 그거 언젯적 이야기입니까?! 서, 설마 ‘잘~살아보세~’하던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실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보시던 쪽만화에 나오던 말입니까?! 우헤, 우헤헤헤헥!! 아, 숨차다! 우핫핫핫---!! 지금까지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누님 최고!! 아, 생전 이렇게 웃을 일이 있을꺼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데!!”

“…….”

“크흑! 크흐흐흑! 아, 힘들어! 배아파!! 용사라니, 그런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세상에, 용사가 있다면 악당도 있을 테고, 세상의 전복을 노리는 악의 무리라도 있는 겁니까? 이왕 하시는거 어딘가에 대마왕이 봉인되어 있다고까지 하시죠!! 으히히히힛!!”

“맞는데.”

“어?”

“맞다구요.”

“예?”

“그러니까 맞다구요. 악당이 있고, 악의 세력이 있고, 대마왕도 봉인되어 있어요.”

……이건 또 시방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여?

물론 조금 무리하게 웃어서 주먹 한두대쯤 맞을 각오는 해둔 바였다. 그렇지만 진짜 배가 아플 정도로 무진장 웃겨버려서, 농담도 이정도면 진짜 수준급이니 진지하게 개그계 진출을 권하는게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 잠깐, 잠깐. 그러면,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악당들이 있고, 악의 세력도 있고, 그러니까 대마왕도 봉인되어 있어서 대략 부활해버리면 걷잡을 수 없다…… 뭐 대충 그런 말입니까? 삼류만화에서 자주 쓰며 가끔은 초일류 만화로 탄생하는 그거?”

“네. …일단 들어가도록 할까요. 이렇게 문 앞에 마냥 서있는 것도 그렇고… 자세한 이야기는 그분이 해 주실 것입니다.”

“……?”

아, 확실히 여기에 이렇게 멍하니 서있자니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는 것도 조금 그렇다. 주변의 모습은 아까와 달리 평범한 시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갖가지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차도를 지나다니는 차량도 보인다. 그나마 번잡하지는 않은 편인데 조금 멀리 눈을 두면 여기서 멀지 않은 거리에 고층빌딩이 밀집해 있는 번화가도 눈에 들어온다. 말하자면, 여기는 크게 발달한 지역은 아니지만 적당히 시내의 범위 안에 있는- 음, 대충 그런 위치라고 할까.

……그런데 천국이라더니 이래도 되는 거야? 아니, 건물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저건 분명 내가 수능보고 재빨리 운전면허를 타서 몰래 타고 다니려고 눈독들이던 아버지의 아반떼(1.6)?

“디케님, 들어가겠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디케인가, 아니면 김사장님 같이 앞의 ‘디’가 성이고 ‘케’라는 직책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설탕누나를 따라서 나도 방 안에 들어가자,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에…….”

애매한 대답을 하며 고개를 숙인다. 밖에서 봤을 때는 제법 대리석으로 그럴싸하게 지어졌다 싶었는데, 정작 들어와 보니 내부도 칸막이 하나 없이 통짜로 되어있고 안에 있는 사람도 딸랑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정면으로 문을 바라보는 형태로 놓인 책상에 앉아 내게 인사를 건넨 여성이었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명은 오른쪽 벽에 붙은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전화를 받고 앞에 놓인 컴퓨터를 연타하며 연신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일어 잠시 그 여성을 관찰해보니,

“여보세요! 예? 또 악당이 나타났다구요!? 아뇨, 여기 말고 다른데 전화해보세요! 저희 휴업했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겠어요?! [달칵] [따르릉] 여보세요! 아, 그러니까 갚는다니까요! 아나, 예산이 안 잡힌걸 저희 보고 어쩌라구요! 억울하면 위엣분들 한테 직접 가서 따지던지 알아서 하세요! [철컥] [따르릉] 여보세요! 아!, 네~ 사장님. 호호호~ 아뇨, 별말씀을…… 예? 아, 아무래도 안 되겠다구요? 그, 그렇군요…… 호호, 괜찮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쾅!] 망할! 안되면 애초에 전화하지 말란 말이야! 바빠 죽겠는데 짜증나게!”

……뭔지 모르겠지만 ‘지금 누군가 내게 손끝이나 머리털 하나만 가져다 대도 증오로 놈을 태워죽인다’라는 오오라가 물씬 풍겨져 나온다. ……가능하면 접근하지 말아야지. 숨도 다른 쪽으로 쉬고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저 아이가 조금 바빠요, 원래는 착한 아이인데 업무에 치이다보니…… 호호호.”

“……원래는, 말이죠?”

그렇게 따지면 희대의 살인마도 원래는 순수한 영혼이었을 텐데 말이지.

“일단 앉으실까요? 슈가양, 손님께 차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안내에 따라서 손님 대접용으로 마련된 소파에 가서 앉는다. 그렇게 가는 사이에도 원래는 착한 아이였었던 누군가가 광기에 어린 목소리로 전화기를 질러대며 컴퓨터를 부서져라 치고 있었지만 무서우니 무시한다.

달칵, 달칵. 설탕누나가 재빨리 인스턴트커피를 타서 내준다. 방금 시켰는데 오초도 채 안 되서 커피를 대접하다니, 이것이야말로 커피의 달인?(커달?)

더군다나 인스턴트커피인데도 불구하고 향과 맛이 살아있다. 스읍- 하고 코로 들이쉰 공기가 커피의 진한 향을 머릿속까지 채워준다. 그리고 잔을 들어 살짝 맛을 음미하자 남미의 초원과 아프리카의 열대우림이 느껴지는 청아한 맛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난 그런 맛을 한껏 느끼며 눈앞의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아줌마,”

배가 아프다.

얼마나 아프냐 하면 예전에 아빠가 낚시하러 숨겨둔 유통기한이 지난 건빵 3봉지를 몰래 먹었다가 배탈 난 정도로 아프다. 소장과 대장에서 불어버린 건빵이 배를 연신 찢어버릴 듯 압박하고 거기에 상했기 때문에 찌르는 고통이 연거푸 이어지며 그 양이 많아서 설사약으로조차 해결이 안 되는 엄청난 상황의 고통이 느껴진다.

“으으으……”

일어날 수가 없다. 분명 살아있는 것 같기도 한데 죽은 것 같기도 한 것이 영 시원찮다.

“정신이 드세요?”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 속삭이는 듯 하면서도 명확하게 들리는 부드러운 목소리. 그야말로 천상의 목소리다.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겠지 라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아뇨, 오크가 인간으로 보이는 것을 보니까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듯 합니다. 뒤에 있는 날개는 까마귀한테 삥 뜯으신 겁니까? 아니면 협찬?”

“개념은 없지만 정신은 차리신 것 같군요. 아프신 곳은 없으세요? 특히 머리나 뇌가.”

“……잡고계신 제 모가지가 좀 아픕니다만?”

“어머, 죄송해요. 혹시 간이 배밖으로 나오지 않을까 꽉 잡고 있었거든요.”

“……말씀하시는걸 보니 당신은 내가 가능하면 알고 싶지 않고 알 필요도 없었고 차라리 모르는게 나았을 그 사람이 맞군요.”

“네. 그렇다면 당신도 생각 같아선 걸레 쥐어짜듯이 잘 짜서 지옥불에 구워버리고 싶은 그 분이 맞으시군요?”

찌릿하고 눈에서 보이지 않는 번개가 발사되서 허공에 격돌한다. 학교에서도 어지간해선 말싸움에 지는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고착상태에 빠지게 되다니, 머나먼 길을 떠나(죽었으니까) 이제서야 호적수를 만난 느낌이다.

이 사람…… 고수다!

“그렇지만 사실은 A커…… 커헉!”

“죽어☆”

“이젠 공사구분도 안되잖아!? 그보다 아까는 뺨을 치더니 이젠 대놓고 패기 시작하네!?”

“괜찮아요. 죽이진 않을꺼니까.”

“그 말은 죽지도 못 할 정도로 엄청난 짓거릴 한다는 뜻!?”

“아뇨, 죽지도 못하게 해버린 다음에 엄청난 일을 해버린다는 거죠☆”

그거나 이거나 별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만?

“으으…… 그런데 여긴, 어디죠? 나는 분명……”

아픈 배를 움켜잡고 묻는다. 분명 천국에 왔고 설탕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이름을 가진 천사누나와 만나고서 어느 집에 들어갔던 것 까지는 머릿속에 있는데, 그 이후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에…… 일단, 같이 가실까요? 기다리는 분이 계십니다.”

“예에…….”

어쩐지 중간생략한 듯한 대사에 어정쩡한 대답을 하고 따라나선다. 주변을 둘러봐도 생판 모르는 사람(천사?)들 뿐이고, 아무래도 따라가는 수밖에 없겠지 싶다. 어찌어찌 길을 걷고 횡단보도를 건너 역 앞 사거리를 지나 좌회전해서 백 미터쯤 전진하니 익숙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특이하게도 한쪽 벽에 이집트벽화같이 사람모양을 한 구멍이 나 있었는데, 아주 깔끔한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걸로 봐서는 누가 부쉈다기 보다는 인테리어의 일종인 듯 했다.

“들어가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하면서 들어가지만 세 대의 전화기를 연신 받아대는 내 나이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애는 눈 돌릴 새도 없이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있어서 말을 건넬 건덕지도 보이지 않고, 그 맞은편을 보니 손님용으로 마련된 듯한 소파와 테이블에 한 여성이 우아한 자세로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앉으시겠습니까?”

“아, 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앉아 미리 준비된 듯한 커피가 있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걸 보이 아직 식지 않은 듯하다. 내가 올 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있던 건가?

그리고 나는 부드러운 분위기는 조성하기 위해 가장 부드러운 말을 골라서 서두를 꺼냈다.

“아줌”

아프다.

어디가 아픈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곳은 남자로써 정말 소중한 곳이고, 또한 귀하게 보존해야 할 자신의 분신이며 또한 영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내 입으로 말하기가 참 그렇다는 것은 그것을 아끼는 나의 마음이기도 하고 아무튼 대충 그렇다.

얼마나 아프냐하면 어렸을 적 학교에서 하던 단체 곤봉돌리기를 하다가 친구 손을 떠난 나무곤봉이 내 분신에 직격했던 그 순간과 계단의 난간에서 미끄럼틀을 타다가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살짝 솟구친 난간의 끄트머리에 전속으로 부딪친 순간을 합한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크허억…….”

고통이 뼈를 깎고 살을 에는 것 같다……!!

“괜찮으세요?”

“아뇨, 괜찮지는 않지만 예의상 괜찮다고 해야 괜찮은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그거 큰일이네요. 어서 잘라내야 할 텐데…….”

“안되거든!? 누구 맘대로!? 이거 내비두면 감기환자한테 몰핀 투여할 사람이네!?”

“괜찮아요, 고통은 순간이니까요.”

“웃기지마!? 육체의 고통은 순간이지만 영혼의 고통은 영원하거든!?”

아니아니 절대로 싫다니까, 정마로. 그러니까 톱이랑 대패 좀 손에서 떼어놓으면 안 되겠습니까? 대체 그걸로 뭘 어쩌려고?

“쳇.”

“‘쳇’은 뭐가 ‘쳇’이여!? 아쉬워 하는거여!? 지금 엄청 아쉬워 하는거지?!”

이 망할 아녀자가……!!

이젠 직업여성인지조차 의심될 정도의 설탕누나를 내버려두고 일어선다. 뼈와 살이 분리되는 듯한(정확하게는 살과 살이다. 그곳에는 뼈가 없으니까) 고통이지만 기를 쓰면 못 일어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여긴……”

“천국 이층입니다.”

“삼층도 있나요?”

“육십삼층까지 있습니다.”

“어쩐지 익숙한 기분이 드는군요. 데자뷰라고 해야할까, 전생의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 익숙한 듯한 기분이면서도 생전 처음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기분탓 입니다.”

“기분탓 이군요.”

“네, 기분탓 입니다.”

기분탓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아무래도 자세하게 알아보려면 귀찮은 기분이 들것 같으니 그냥 대충 그런가보다 하는 기분으로 가도록 하자.

“그런데 어째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죠? 전 분명히……”

아마 어딘가에 있는 어느 건물로 들어 갔던거 같은데. 그 이후로의 기억이 없다. 혹시, 단기 기억 상실증?

“……이, 일단 같이 가시겠어요? 기다리는 분이 계십니다.”

어쩐지 떨리는 목소리. 내 날카로운 감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아무래도 당황하는 거 같은데……

“그러지요, 뭐.”

미심쩍은 면이 없는게 아니어서 덥석 물 떡밥을 던지고 번개같이 추궁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보류, 신사적인 나는 흔쾌히 승낙하고 얌전히 따라가기로 했다. 여성의 곤란한 모습을 보기 싫은 젠틀한 내 일면을 보였을 뿐이지 결코 멱살을 잡힌 채 개처럼 끌려다니는게 무서워서 그런건 아니다. 진짜로.

사거리를 돌아 좌회전하고 역으로 들어간다. 역에는 열차가 하나 정차해 있었는데, 열차 옆의 푯말에는 -지옥행, 님들 다 뒤졌음ㅋ-) 라고 적혀있었다. …웃어야 하나, 이거?

“그쪽이 아니에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거에요.”

엘리베이터도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역 안쪽으로 향하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한 번에 몇 개씩 운행하는 듯한데, 다른게 아니라 구름들이 위 아래로 왔다갔다 하면서 사람들을 나르는 거였다.

“대단해…….”

“대단하죠? 천국이 자랑하는 구름 엘리베이터입니다.”

“아뇨, 그것보다 대놓고 저기 타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구요.”

나라면 저렇게 안전장치도 없고 앞뒤가 뻥 뚫린 채 하늘을 날아다니는 구름은 못 탈 텐데 말이지. 안전제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저러다가 어어 하는 사이에 훅가는 수가 있다고?

“괜찮아요, 저렇게 보여도 안전하거든요. 떨어지지만 않으면.”

“그 말은 떨어지면 죽는다는 뜻이군요?”

“네, 한방에. 훅~☆하고.”

“…….”

……절대로 구석자리엔 가지 말아야지.

천국 엘리베이터를 타고 역의 1층에 가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역 앞에서 오른쪽으로 백 미터 정도 걷자 익숙한 건물이 또 다시 눈에 들어왔다. 벌써 세 번째 같은 경험이다.

……이 안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들어가기 전에 한가지 약속해 주실래요?”

집 앞에서 잠시 멈춰선 설탕누나가 돌아보며 묻자,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싫어요.”

“이씨ㅂ……”

“이씨ㅂ……?”

“아뇨, 제가 아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씨라구요.”

“그 사람의 성이 이씨라는 말이군요.”

“네, 제가 아는 사람의 성은 오얏 리(李)를 씁니다.”

“뒤에 비읍이 나왔던 것 같은데……”

“보배라구요. 그 사람이 좀 유능하거든요.”

“오오, 그렇다면 원래 하시려던 말씀은 ‘이씨 보배’가 맞습니까?”

“네, 그 말이 맞아요.”

“과연, 명석한 추리다!”

나 자신의 지혜로움에 대해 스스로 감탄하며 무릎을 탁 친다. 그러자 ‘이건 무슨 ㅂ……’라는 표정을 짓던 설탕누나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선 다시 말을 건넸다.

“흐, 흠. 그럼 한가지만 명심해주세요. 이건 제 개인적인 부탁이기도 하고, 또한 강하다님을 위한 말이기도 합니다. 들어둬서 나쁠 건 없겠죠?”

“정 그러시다면 못 들어드릴것도 없죠. 어디 한번 말해보세요.”

“큭…… 차, 참자……. 그, 그러니까, 아직 서른이 넘지 않은 여성에게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호칭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줌마?”

투 쾅!

말 한 순간 벽을 뚫고 무언가가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느끼지 못한 사이에 잔상만 희미하게 남은 물건은 내 뒤 멀리로 사라져가고, 그 물건이 남긴 공기의 충격이 내 뺨을 후려친다. 속도도 음속을 넘었는지 귓가에 벌떼가 들어온 것 같이 욍욍하는 소리가 가득하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방금 전의 일로 인해서 건물의 외벽에 연필꽂이같이 생긴 정사각형의 구멍이 인간형태의 구멍 옆에 하나 더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잠시 그 구멍을 돌아보며 식은땀을 흘리던 설탕누나는 손을 허리에 짚고서 다시금 질문했다.

“……말이죠, 서른이 넘지 않은 ‘젊은 여성’에게 ‘ㅈ’발음이 들어가는 말은 절.대.로 하면 안 되요. 아시겠죠? 절.대.로?”

“음…… 알겠습니다. ‘ㅈ’발음을 안 하는 호칭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정확해요. 그럼 다시 물을게요. 서른이 넘지 않은 ‘젊.은.여.성’을 부를 때 어떤 호칭이 제일 좋은 것 같나요?”

과연, 그런 것이었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다른 사람에게 실례가 되는 표현은 실례지. 나는 훌륭한 젠틀맨으로써 아직 서른이 넘지 않은 젊은 여성에게 예의와 범절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대답했다.

“올드미스?”

투다다다다다 쾅!!! 두두두두-두두--!! 꽈과광!!

기관총과 박격포로 동시에 사격을 가하는 것 같은 폭음이 터지며 빗발 같은 무엇들이 전신을 스쳐지나간다. 폭풍과도 같은 사격에 가늘게 생긴 피부의 실선에선 나도 모르게 핏줄기가 줄기를 이뤄서 흘러내린다.

보, 보이지 않았어…… 이것이 바로 순살(瞬殺)!?

“……호. 호. 호. 정말 무식함이 땅 끝까지 이를 분이군요.”

“별말씀을.”

“칭찬 아니거든!?”

울컥,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 지르는 누님의 모습에 나도 울컥해서 마주대고 소리를 지른다. 아니, 지금 누구한테 화를 내는거야?

“아 그럼 제대로 설명을 해 줘야 할것 아니야! 아까부터 슬슬 돌려 말하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그럼 내가 한번 문제를 낼 테니 맞춰봐! 아래는 큰 동그라미, 위에는 작은 동그라미! 그리고 작은 동그라미에 눈코입이 다 있고 팔만 끼워져 있어! 이게 뭘까!? 정답, 동그라미 괴물! 맞출 수 있겠냐 이거!?”

애초에 처음부터 잘못 설명한게 누군데 누구한테 화를 내는 거야? 그리고 지금 생명의 위기에 직결한건 나거든!?

방금 전의 포격(이라고 명칭하자)으로 유추해 봤을 때는, 아마 한발이라도 정통으로 맞게 되면 천국이고 나발이고 그냥 잿가루가 되서 사라져버릴 느낌이 드는건 기분탓?

“으, 으음…… 아, 알았어요. 그러면 다시 말씀 드릴게요. 이 안에 들어가서, ‘예’ 혹은 ‘아니오’로만 대답하세요. 절.대.로.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알겠죠?”

“별로 싫지만 제 얼굴을 봐서 오늘만 특별히 그렇게 해 드리도록 하지요. 저한테 감사하세요. 뭣하면 몸으로 갚으셔도 좋습니다.”

“알았어요… 감사합니다꺼져.”

지금 저거 나한테 시비 거는거 맞지?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서 나한테 까닥거리며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는게 분명 나한테 싸움 거는거 맞는거지? 그런거지? 응?

“…….”

그래도 나는 젠틀맨이다를 상기하며 불꽃같은 분노를 잠재우고 안으로 들어왔다. 절대로 뒤로 돌린 손에 힘줄이 불거져 나와 있어서가 아니다. 더군다나 등 뒤로 돌린 망치에 핏자국이 묻어있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절대로.

방 안에 들어가자 평범한 사무실의 풍경이 보였다. 통짜로 된 방에 달랑 책상 세 개, 하나는 정면을 바라보는 형태의 가장 고급스러운 책상, 다른 하나는 지금도 미친 듯이 전화를 받으며 컴퓨터를 연타하는 여자애가 쓰는 책상, 또 하나는 그보다 조금 안쪽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책상. 왼쪽 벽에는 손님 접대용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아한 자세로 한 여성이 앉아 있었다.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고서 바라보니 위로부터 은은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천장에 사람모양의 구멍이 하늘을 향해 뻥 뚫려 있었다. 이 건물 특유의 인테리어인가. 채광에는 상당히 좋을 것 같지만 비가 샐 것 같았다.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화사하게 웃으며 날 맞이하는 마담(이라고 칭하도록 하자)의 첫 인사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

“…….”

“…….”

“하, 하하…… 유, 유머러스한 분이시군요. 이미 이야기를 들으셨겠지만, 저는 디케, 혹은 유스타치아로 불리우는 ‘신’입니다. 보통은 ‘정의의 여신’으로 불리우지요.”

“아니요.”

“……흐, 흠. 디, 디케님. 이분이 너무 긴장하신 것 같아서 대신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옆에서 바라보던 설탕누나가 끼어든다. 음, 아무리 봐도 완벽한 대화였는데?

“그러고 보니 아직 성함도 듣지 못했군요.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무거워지는 공기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하기위해 누님은 손바닥을 펴서 날 가리킨 채 이렇게 선언했다.

“네, 이분은 강하다.”

“……강한가요?”

“예.”

“저보다도?”

“예.”

“…윽! 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분의 이름은 성이 ‘강’씨고 이름이 ‘하다’입니다.”

“아하, 과연. 성이 강씨고 이름이 하다였군요? 저는 또 갑자기 강하다고 하셔서 사소한 오해를 할 뻔 했습니다. 하마터면 손님께 무례를 끼칠 뻔했네요. 저도 참 바보같이…….”

“예. 컥!”

이럴수가! 옆구리에 들어오는 강렬한 팔꿈치 찌르기에 나도 모르게 다른 말을 내뱉고 말았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한평생 살아오며 약속은 칼같이 지켜오며 ‘강하다는 쏘는 약속은 기억 못하는데 먹는 약속은 칼같이 찾아오더라.’라는 칭찬까지 들었던 내가 약속을 어기고 말다니! 땅을 칠 노릇이다.

나의 화려한 언변과 언어준수에 빠져들던 마담도 내 실수로 인해 잠시 혼이 나갔는지 멍하니 머리를 흔들었다. 역시, 이래서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 법이다. 한번 어겼다고 약속이 끝난건 아니니 앞으로라도 절.대.로. 잘 지켜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장난도 그리고 농담도 아닙니다.”

“예.”

“……휴우.”

……어쩐지 옆에 앉아있는 설탕누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뭐 주식이 하한가를 달리다가 막판에 상한가를 치고 본전이라도 남긴건가. 옆에선 중요한 얘기를 한다는데 그런 사적인 업무는 좀 다른 곳에 가서 해줬으면 좋겠다.

“세계가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는 마왕의 부활의 때가 다가오고 있고, 악의 세력들이 점점 커져서 조금씩 세상을 집어 삼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어쩐지 야간 자율학습이 의무화 되고 학원을 가거나 고액 과외를 받지 않으면 병신취급 받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런 악의 세력이 뒤에 있다면 충분히 수긍할 만 하다. 녀석들은 어린아이와 앞으로 자라날 학생들의 몰개성화와 무개념화를 추진하여 자신들의 말만을 수동적으로 듣는 기계인간을 양산하려 하는 것이다! 오오, 실로 무섭지 아니한가!

“그런 상황을 저희가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세계의 위기는 곧 저희의 위기. 그래서 저희는 ‘그들’, 악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힘을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예.”

앞에 앉아있는 마담은 주먹을 불끈 쥐더니 설교모드로 들어갔다. 아, 시작되어버렸나- 돌이킬 수 없어, 돌이킬 수 없다. 원래 자신의 정의가 강한 사람들의 설교는 한번 시작되면 설교하는 사람이 지치거나 듣는 사람이 자리를 뜨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갓뎀을 외치며 저주를 날려봐도 본인이 갓(God)인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요,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의 절망을 먹고 자라는 악의 무리들, 그리고 사람들을 악의 길로 이끌어 점점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악당들…!! 저희는 그런 악당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어렵지요, 물론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희망이야 말로 진실로 참되고 아름다운 것!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빛인 것입니다! 그것을 지키는 우리의 사명은…!!”

연설이 계속되는 동안 말을 끊을 수도 없고, 뭐 튀어나갈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도 없다. 거기다가 자신이 ‘신’이라고 뻔뻔하게 소개까지 하는 것을 보니 한두 시간의 설교로는 지치지도 않을 것 같다. 몹쓸 노릇이다.

그러나 단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었으니.

“예~ 예예~ 예이예에~ 예예, 예~ 예에에~ 예~예~예예~”

“‘[울컥][울컥][울컥][울컥]”

“……그런 것입니다! 악에 대항하여 일어서는 것이야 말로 정의의 의무! 그리고 바른 곳에 사용되어지는 선한 힘!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정의 최고! 정의 만세! 정의 최고! 정의 만세! 정의여어어어---!! 영원하라아아아아아아아---!!”

“아니요. 크헙!”

“야이 개쓰레기야아아아아아앗----!!! 제대로 안 들을래! 대답 제대로 안할래! 뭐야! 물론 디케님의 설교가 지루하고 짜증나고 더워 죽겠는데 열 받게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른이 하시는 말씀은 제대로 들어야 할거 아니야!! 좀 똑바로 대답하면 어디가 덧나냐아아아!?!?”

“……슈가양이……,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예.”

“맞장구 치지마!”

“예?”

“말꼬리도 올리지마!”

“아니요?”

“끼야아아아아!!! 이런 놈 싫어어어어어어어어------!!!!”

……조금 심했나. 음,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절규하는 아리따운 천사분을 보니 내 마음이 아프다. 나는 여성에게 너그러운 젠틀맨, 그렇기에 분위기를 조금 부드럽게 만들어보기 위해서 간단한 농담을 건넨다.

“싫으면 시집ㄱ……”

“죽어버려어어어어---!!”

빠앜소리와 함께 힘차게 고개가 백구십도 정도 돌아가서 벽이 보인다. 시원스럽게 사람모양의 구멍에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어쩐지 내 몸 크기에 딱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목이 이렇게 돌아가면 죽어야 정상인데 어째서 죽지 않는건지 잘 모르겠다.

……개그캐릭터 불사의 법칙?

“흠, 흠. 자, 그럼 진정들 하시고…… 컥!”

“너 때문에 그렇잖아!”

“어허, 남자의 과거를 캐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레이디.”

“[울컥]”

그러니까 등 뒤에서 숨겨둔 피 묻은 망치를 꺼내는건 좀 참아줬으면 좋겠는데? 그거 질리지도 않나?

“슈가양, 진정하세요.”

“……네.”

다행히 내 머리가 반쪽이 나는 것을 구해준 사람은 앞에서 손을 번쩍 든 채로 부하직원의 폭탄발언에 큰상처를 받았던 마담이었다. 안대로 눈을 가린 채 어떻게 그렇게 잘 보는지 신기하지만 뭐 신이라니까 그냥 대충 다 되려니 싶다.

그러고 보니 이어서 보면 마담신이 제일 적절한 호칭이 아닐까 싶은데.

“아무튼, 지금까지의 설명은 잘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예.”

대충은 다 들었다. 그러니까 악의 세력이 왕창 있고, 정의매니아인 이 마담은 지금 악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 요런 얘기다.

……한 두어 시간 들은거 같은데 요약하니 두 줄이다. 뭐지? 내가 요약의 천재인건가 아니면 마담이 말 늘리기의 천재인건가, 아니면 둘 다!?

천재성을 고민하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마담은, 두 손을 번쩍 들어 책상을 쾅! 치더니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용사가 되어 주십시오.”

“……예?”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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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용사 강하다! 15편
단편-유토피아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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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2/16/02:16
홈페이지 랙 덕분에 읽지 못한 것을 이제야 읽네요.
이러다 시끄럽다고 옆집에서 항의하겠어요.
그만 좀 웃기세요.
0 묏자리 01/31/11:39
1-1편부터 읽은지 얼마되지도않았는데 계속 터뜨리게되네요. 배가 무척이나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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