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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용사 강하다! by 강속구

여러분 안녕? 나는 강하다. 아니, 강하다는게 아니라 성이 강씨고 이름이 하다라고. 웃기지? 나도 이런 이름이 싫어. 그런데 어쩌겠니.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강하게 자라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니 마냥 싫다고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거든. 아무튼 내 나이도 이제 19살.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마냥 놀 수 만은 없는 시기에 접어들었어. 그래서 평소처럼 친구들과 야간자율 학습을 하고 있었는데.....[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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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속구  lv 2 26.3333333333% / 379 글 24 | 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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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강속구[ksg8342]  
조회 1208    추천 0   덧글 1    / 2009.12.07 20:47:29

천장에 뚫린 인간모양의 구멍을 통해서 하늘을 바라보니 참 맑고 파랗다. 건물 옆에 뚫린 구멍을 통해서 바람도 선선하게 들어오고,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적당한 정도다.

나는 지금 천국에 와 있다. 어찌된 사정이냐고 물으면 나도 잘 모른다. 단지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기 위해 열심히 달아나다 평범한 여학생1과의 접촉사고를 피하기 위해서 차도로 돌진했던 것이 잘못되어 덤프트럭과 접촉사고를 낸 정도밖에 모른다. 설명하다보니 어째서 천국에 왔는지 명확해지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리고 만난 설탕이라는 웃기는 이름을 가진 천사누나에게 반 강제적으로 끌려와 한 건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 곳에는 내년이만 서른일 것 같은 마담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무슨 소린지도 모를 이야기를 아무튼 대충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말하는 것이었다.

용사가 되어주세요!

하, 농담도 정도가 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시민의 삶을 살고 있던 나에게 갑자기 용사가 되라니, 아무리 천국에 인재가 부족해졌다고 해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고로 용사란 멋있고, 강하고, 용기가 넘치며 세상물정에 어두워야 하는 법이다(왜냐면 그래야 무보수로 부려먹기 쉬우니까). 물론 내가 멋있고 강하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진짜로 강하다니까) 세상물정에 밝고(친구가 절대로 갚지 않을 천원을 꿔달라고 하면 단호히 집으로 귀환하는 정도) 공짜로 남과 치고 박고 피 터지는 싸움질을 할 정도로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시.”

“파트타임으로 월당 오십은 어떻습니까.”

“즐. 요즘 알바해도 그것보단 더 벌거든요?”

“육십. 이 이상은 안 됩니다.”

“허허…… 다른 사람을 알아보셔야 겠습니다? 저 그렇게 싼 남자 아닙니다?”

“칠십! 꽤 많이 드리는겁니다.”

마담이 칠십을 부르자 나도 제법 고심하기 시작했다. 파트타임에 칠십, 아르바이트로 칠십을 벌기 위해서는 거의 한달 내내 뛰어야 한다. 그런데 파트타임으로 칠십이라면 확실히 탐나는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응? 방금 용사는 별로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물론 별로다. 만화도 아닌데 힘든데다가 위험하기 그지없는 일을 공짜로 맡는다는 것은 내 개념과 영혼이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공짜로’말이다. 잘 생각해야 한다. 요즘 안 그래도 직장구하기 어려워서 실업자가 점점 늘어가는 추세인데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다고 하면 취업준비와 동시에 아르바이트까지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더군다나 월 칠십이면 교통비나 용돈을 제외하고서라도 적금까지 부을 수 있다! 내 나이에 아르바이트 하거나 취업을 하는 친구들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이다.

이해하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쉽게 설명하겠다. 용사가 좋다고 공짜 중노동을 덥석 무는 녀석들은 이타주의적인 바보들이오, 그렇다고 불꽃같은 반항심에 무턱대고 ‘나 싫어요’하는 친구들도 멍청하다는 것이다. 그래봤자 백수밖에 더 되나? 자고로 어른이란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잘 해야 하는 법이다. 이런 판단이 빠를수록 이득이 높아져만 간다. 남도 도울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고. 좋지 아니한가!

나는 여기서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팔십! 여기서 콜 하시죠. 저도 더 이상은 부르지 않겠습니다.”

“……좋습니다. 파트타임으로 월당 팔십. 매월 10일에 송금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은행 맞으시죠?”

“예, 계좌번호는 232701-04-198509입니다. 정말 잘 선택하신 겁니다. 요즘 그 돈으로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아름다우신 만큼 지혜롭기까지 하시군요.”

“호호호…… 무슨 말씀을, 그럼 나머지 사항은 슈가양이 설명해 드릴 것입니다. 슈가양? 모셔가도록 하세요.”

“……네.”

보라, 이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자의 전형이다! 마담과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승리자의 미소를 띄우며 설탕누나를 따라 이층으로 향한다. 이층은 일층의 사무실과 달리 옆에 따로 계단이 있어서, 사무실을 나온 다음에 옆문을 통해 다시 들어가 실내계단을 올라가는 구조였다.

그리고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는 아무도 없이 각종 기계장치들만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작은 사무실이라고 하지만 칸막이도 없이 통짜로 이어져 있어서 우리 학교 교실만한 크기에 한쪽 벽면 전체가 영상출력이 가능한 큐브로 되어 있었고, 컴퓨터가 놓인 책상도 다섯 개나 되었다.

“여기는…….”

“상황실입니다. 사건이 생기면 모두 여기로 와서 상황을 지휘하게 되지요.”

말한 대로 벽면에 여러 가지 지도가 걸려있는 모습이나 기계장치들을 보니 지휘소 같은 모습이 연상된다. 지금까지는 솔직히 장난처럼 봤었는데, 이곳의 풍경‘만’은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군요. 그렇지만 별 관심은 없으니 용건이나 빨리 말씀해주세요. 이제 전 뭘 하면 되는 겁니까?”

뭐, 그거야 어쨌든 잘 됐다 치고. 그런데 앞으로 뭘 해야 할지가 아직도 명확하지가 않다. 지금 당장 어디론가 날아가서 악의 세력과 너죽고 나살자 이런 식으로 싸우는 걸지도 모르고, 우주를 떠다니는 외계인과 혈투를 벌이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나는 특별한 거라고는 탁 트인 개념밖에 없는 사람이라 그런 육체노동은 솔직히 사양하고 싶다.

“우선…… 이걸 받으세요.”

내밀어진건 전자시계였다. 밴드는 가죽으로 되어 있었고, 버클만 스테인리스로, 그리고 케이스는 딱 직사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케이스의 안에는 두 개의 시간이 각자 흘러가고 있었는데, 어떤 시간을 나타내는 건지는 구체적으로 써 있지 않았다.

시계를 건네받는다.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다.

“자, 그러니까 용건을…… 커헉!”

“뭐 하는 짓이야!?”

풝(소리가 이상하긴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구타의 가격소리다)소리가 나며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아니, 쓰레기 심부름도 모자라 이젠 사내폭력까지!? 나는 단호하게 항의했다.

“뭐긴 뭐여! 버리라고 준거 아니여!?”

“아니 너 쓰라고!!”

“뭐!? 지금 나보고 이걸 손에 달랑달랑 차고 다니라는거여!? 이딴 싸구려 시곌 내가 왜!! 가죽도 싸구려 인조가죽에 버클도 척보니 금방 벗겨지게 생겼구만! 거기다 디자인 열라 촌스러워!”

솔직히 말해 이건 좀 아니거든?! 차고 갔다간 애들한테 놀림 받아서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릴 기세를 담고있거든?!

“후, 후, 후우우…… 지, 진정을……”

“그러게요, 뭐 이런 것 가지고 흥분하고 그러십니까.”

“너 때문이잖아! 쓰라면 좀 닥치고 쓰지 못해!?”

이젠 협박까지 하다니!

“소리지르지 마세요, 저도 정사원이거든요? 선배님이라도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거 디자인도 영 구리고 편의성도 별로인데다가 크기만 커서 쓸만한게 못되거든요? 적어도 쓰는 이유라도 설명해주시지 않으면 손도 안댑니다?”

자고로 행동에 앞서야 하는 것은 말이다. 가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 있는데 이게 아주 민폐다. 말만 하고 행동을 안 하는 사람도 허접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도 없이 행동하는 사람보다는 그게 났다. 그러다가 사건이나 사고가 펑! 터져버리면 주변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피해를 입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느니 가만히 있는게 났지. 그런고로 행동에 앞서서는 충분한 설득과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봐, 내가 좀 지혜롭다니까?

“……알겠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죠. 그 시계는 천국시간과 지구시간을 표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지역에 따라 자동으로 시차를 변경하니 따로 조절할 필요도 없고, 본인의 힘을 조금씩 흡수해서 쓰기 때문에 따로 충전을 하거나 건전지를 끼울 필요도 없어요. 그리고 액정은 삼단으로 분리해서 GPS도 띄울 수 있고, 메모장 기능에 문자보내기와 인터넷 통화까지……”

“외판원이 됐어?!”

“……아무튼 기능이 엄청 많으니까 디자인이 구린건 좀 이해해주세요. 저도 차고 있단 말이에요.”

……그 한마디에 동정심이 일어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기로 했다. 20대 직장여성이 그런 탱크 같은 전자시계를 차고 있다니!

“……그런데 그건 좀 그럴싸해 보입니다만?”

“최신형이거든요. 에헷☆”

……방금 전의 한 말은 취소한다. 설탕누님이 차고 있는 시계는 밴드가 금색의 작은 사슬로(순금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케이스도 백금으로 반짝여서 사치품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빌어먹을, 신입은 철 지난 싸구려 재고품이나 준다 이거지?

그래도 설명을 들으니 막상 거절할 수는 없는 법, 절대로 시계에 들어있는 지상파 DMB방송이 탐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최신형 MP4 기능이 탐나서도 아니다. 동영상 재생기능이 가장 탐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아, 현실은 가난한 고삼…….

쓰레기통에서 시계를 주워서 왼팔에 차자 천사누나가 이번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시계를 차셨으면 이걸 드세요. 나머지는 차후에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밀어진 두 개의 알약. 하나는 파랗고, 하나는 빨갛다.

“호오.”

그래서 난 망설임 없이 빨간약을 주워 먹었다.

오너라, 비정한 현실이여……!!

“……뭐하세요?”

“기디라세요, 지금 정신 차리는 중입니다.”

두 팔을 힘껏 벌린다. 나는 냉엄한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월 팔십이라니. 좋지 아니한가! 나의 지혜는 역시 하늘을 뚫고 우주를 넘나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마에 파리가 와서 앉기는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

“저기, 이거 빨간거랑 파란거 한 세트거든요? 같이 드셔야만 효과가 있어요.”

“아, 그, 그래요?”

난 또 먹고서 생판 모르는 기계장치 속에서 깨어나는 줄 알았지.

일부러 안 알려 준거지? 그런거지?

“어서 드세요.”

“예, 예~”

민망해서 재빨리 파란약을 마저 입안에 털어 넣고 꿀꺽 삼켰다. 그러자……

“커, 커, 커헉! 무, 무…!!”

알약이 너무 커서 목이 막혔다!!!

“어, 어머! 무를 드릴께요!!”

“커, 커흑! 무……!! 아니, 무 말고 물을 달라고!! 지금 일부러 이러는거지!?”

불꽃같은 분노로 알약을 태워 넘기고 입 속에 구겨 넣어진 무 조각들을 퉤 뱉어낸다. 아무래도 노리고 있었는 듯 옆에는 커다란 다라에 담긴 사각형의 무 쪼가리들이 보인다.

동치미……?

“어머, 아깝게. 다시 주워드세요.”

“……그거 아십니까, 2016년은 丙申年이라고 하더군요.”

“뒤지고 싶으세요??”

“아뇨, 만수무강하고 싶습니다.”

그러던 찰나, 배에서 신호가 왔다. 마치 배가 타는 듯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것은…… 배탈!?”

아랫배와 윗배의 사이에서 격렬하게 요동치며 내 위장을 뒤흔드는 이것은 분명 아까 먹었던 두 개의 약이 분명하다. 왜냐면 이곳에 오고 난 후로 먹은게 없으니까. 실로 단도직입적인 추리다!

제길, 부작용이 있는거였나……!! 의사 및 약사와 상의했어야 하는데…!!

“……어머, 그러시게 상한 음식은 먹지 마셨어야죠.”

“제길……!! 속였구나!!”

유통기한을 보고 먹을걸…!! 방심했다…!

배를 움켜잡고 쓰러진다. 배때기를 칼로 쑤신 듯 찌르는 감각이 엄청 아파서 더 서있을 수도 없다. 손으로 땅을 짚고, 쓰러지듯 앞으로 엎어지자 옆에서 나를 담담하게 내려다보는 설탕누나가 보인다.

입가에 걸린 부드러운 미소.

“…그렇지만, 정말로 잘 할 수 있을까요……. 잘 되어야 할 텐데…… 당신은, 얼마나 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그렇지만 누구나 하기를 바랐던… 그렇기에 힘내세요. 부디,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어쩐지, 지금까지 봐 왔던 것과는 달리 진지하고, 또한 아름다운…

진짜 천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두 손을 기도하듯이 가슴 앞에 곱게 모으고 하는 말은 정말로 기도 같았다. 사람이 아니라 절대적인 신께 비는 기도.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을 때에야 찾게 되는, 그런……

예쁜, 모습이었다.

직업여성이라는 가면 뒤에는, 어떤 걱정이 숨어있는 걸까.

얼마나 중한 무게감이 그 등에 실려 있는 걸까.

그래서 나는, 온 힘을 다해 대답했다.

숨 한번 내쉴 수 없을 정도의 복통 속에서, 꼭 해야만 하는 말이 있었으니까.

가운뎃 손가락을 내밀며,

“흰색에 곰돌이팬티라니 요즘은 초딩도 안입”

나는 지혜롭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내 지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 예로 한 가지 이야기 해 주지, 나는 버스카드를 가지고 잠긴 문을 딸 수 있다! 후후, 놀랐는가? 이것은 내 지혜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비유하자면 코끼리 이빨에 낀 고춧가루 정도일 뿐이다. 그만큼이나 내 지혜는 무궁무진한 것이다.

“크헉……!!”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혜가 고통을 줄여주는 것은 아니다. 쓸모 없잖아 이거!!

시야가 까맣다. 밤인 이유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는 내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어쩐지 오늘따라 몇 번씩이나 이와 동일한 상황을 경험한 것 같지만 하나같이 좋지 못한 기억뿐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쿠허어어억…!!!”

지금의 고통은 아까보다 다섯 배는 더 강하다는 것이다!! 배가 찢어지고 팔다리가 뒤틀리고 머리가 아작난 것 같은 격렬한 고통이 온몸을 휘젓는다……!!

꼭 덤프트럭에라도 치인 것 같잖아!

그래도 다행인 것은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으니 고통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이다. 먼저 배의 아픔이 사라지고, 천천히 팔과 다리의 아픔도 사라져간다. 마지막으로 머릿속이 맑아지며 예전과 같은 말끔한 상태로 돌아갔다.

죽을 것 같던 고통이 불과 일분이 채 안되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눈을 떴다.

“음……”

하늘이 보인다. 어두운 파란색이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 왼손을 힘차게 뻗어 보지만 결코 닿지 않는다.

그렇군, 아무리 손을 뻗어도 하늘까진 닿지 않는건가…….

새삼스럽게 그럴싸한 말을 생각하며 윗몸을 일으킨다. 방금 전의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아무의미 없다. 그냥 그럴싸 보이려고 말했던 것 뿐이다. 왠지 저런거 멋있잖아.

윗몸을 일으키자 마찬가지로 어두운 파란색이 보인다. 어? 하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앞쪽도 그렇네?

설마 여기는, 아까 봤던 천국과 비슷한 곳인가. 그곳이 하얀나라라면 여기는 동요 속에 나오는 파란나라나 뭐 그런 곳일지도 모른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는다. 이번에는 말캉말캉하다. 응?

“끼야아아앗--!! 변태!!”

촤합-!!

고개가 오른쪽으로 거세게 돌아가자 목에서는 무리한 운동으로 콰직콰직 하는 소리가 들린다. 오옷, 내가 알지 못하는 목 안의 무언가가 부서지고 있어…!!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어제 봤던 TV프로를 재방송으로 보는 듯한 이 느낌은……

확인을 위해 나는 다시 한 번 손을 움직여 보았다. 말캉말캉하다.

“꺄아아아악--!!! 변태!!”

처훨~썩!!

이걸로 확실해졌다. 물론 내 고개가 이번에는 왼쪽으로 쿠직쿠직 소리를 내며 꺾이긴 했지만 이것으로 나는 대단한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렇군, 이것도 역시 개꿈인가!”

“그건 무슨 개소리여!”

쩌억-!!

“반응이 똑같아서 진부해!! 그리고 이번 것 역시 때리지 않아도 됐었잖아!! 그리고 효과음 이상해!!”

“아, 그러네요.”

이번엔 존댓말이다. 방금 전의 태클이 반말이긴 했지만 그 정도는 내 기준으로 OK이다. 무슨 기준이냐고? 대충 그런 기분이 들면 그런 것이다.

“핫! 그러나 간파했다!”

번뜩 하고 영감이 떠오른다!! 분명 예전과 같은 상황인 것 같았으나, 나의 날카롭기 그지없는 지혜는 금방 이것의 이질감을 간파한 것이다.

“에? 뭐, 뭔가요?”

그렇다, 이전의 기억과 지금의 결정적인 차이는…!!

“C커……커흡!!!”

“……저질!”

아까와 달리 지금은 무릎으로 니킥을 먹었다는 것 정도?

아무튼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아주 익숙하다. 어두운 파란색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앞에 있는 여학생의 교복 마이와 저녁쯤 된 하늘의 색이 어두운 파란색이었을 뿐이었고, 나머지는 엄연히 제 색을 가지고 있었다. 아까와는 다른 충실한 현실감. 그리고 멀리 보이는 상가의 간판들은 내게 아주 익숙한 이름들 뿐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여기는 현실인 거군요.”

“……저기, 혹시 머리를 다치신 건가요? 어머… 어떻해… 구급차를 불렀으니 금방 올 거에요.”

손으로 머리를 짚는다. 가느다란 손이 이마에 닿자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이 전해진다. 그 감촉을 잠시 눈을 감고 감상을 하……기 전에.

저기, 누구…?

처음 보는 얼굴이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중간 길이의 생머리, 그리고 가늘고 둥글둥글한 눈썹과 입술, 얇은 콧등.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태연과 티파니를 삼분의 일씩 섞고서 100으로 나눈 정도로 예쁘다. 겨우 그 정도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태연과 티파니는 여신이다. 여신의 100분의 1정도 닮았으면 일반인 중에서는 꽤나 중상위권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다.(여신 중에도 가끔 어울리지 않는 아줌마[쾅!] …마담의 여신이라던가 봤던 것 같긴 하지만)

아, 처음 봤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 틀린 말이다. 나는 분명 이 여자애를 본 적이 있는 것이다. 이 여자애는 분명……

“평범한 여학생(1)?”

“그 평범한 사람 앞에다 대고 평범하다고 말하지 말아줄래요?”

“괜찮습니다. 전 지혜로운자(1)이니까요. 괄호 안의 숫자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신경쓰이거든요!? 아니, 그렇게 말하면 더 신경쓰이잖아!”

“신경쓰면 지는겁니다.”

“니가 먼저 썼잖아!?”

“어허, 우리 언제 봤다고 반말입니까? 서로간의 예의를 지켜주세요. 그래서야 선진문화 정착이 되겠습니까?”

“애초에 나한테 달려든게 누군데!? 트럭에 치여서 걱정 되서 달려왔는데…… 아, 아…… 그, 그런데 다친 곳은 괜찮아요? 피도 엄청 났는데.”

“예?”

일어나면서 어렴풋이 느끼는 내 몸은 이제 다 나아있었다. 아픈 곳 하나 없고 바퀴벌레처럼 고통이 심각해서 억지로 머리가 고통을 차단한 것도 아니고 마비가 되서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질감 하나 없이 말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을 듣고 주변을 돌아보니 팔과 다리, 그리고 배랑 머리에 피가 한 움큼씩이나 묻어서 굳어있었다. 말하자면 피칠을 했다는 것이다.

“끄아아아아아아!!! 이게 뭐야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악!!! 뭐긴 뭐야 핏덩이지이이이이이!!”

“소리지르면서도 날카롭게 지적하시는 것이 꼭 제가 알고 있는 A컵 직업여성을 보는 것 같군요. 혹시 닭날개라던가 비둘기 날개 같은걸 등 뒤에 달고 다니라고 주변에서 말하지 않습니까?”

“……신고합니다? 성추행 및 여성비하발언으로.”

“아뇨, 전 어짜피 미성년이라 훈방조치… 아, 제길!”

그러고 보니 나 올해로 19살이구나!! 신고하면 영락없이 철창행이구나!!

“……그건 뭐지요?”

“…모르십니까? 견종에게 있어서 최고의 경의와 신뢰를 표현하는 이 포즈를?”

“네, 잘 모르겠는데요. 개폼인가요?”

“네, 개폼입니다.”

최고의 개폼인 엎드려 발로 빌기를 모르다니!

평범한 여학생(1)의 무식함을 통탄하며 일어선다. 이상하게도 옷이나 피부는 피칠을 했지만 오히려 몸은 개운하기 까지 하다. 그렇다면 굳이 여기 남아있을 필요가 없지. 안 그래도 약속시간이 지나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더 이상 시간을 끄는건 곤란하다. 그러니 경찰이나 구급차가 오기 전에 서둘러서 가도록 하자.

“아,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구급차 부르러 가셨는데요.”

“저를 친 덤프트럭은?”

“그냥 갔는데요, 뺑소니 같은데…….”

좋은 기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아직 내 얼굴을 못 봤고, 트럭 운전수도 뺑소니를 쳤으니 두려워서 어딘가에 신고도 못 할 것이다. 어디 연관되는 것 없이 조용히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후후…… 이것도 인연이니 서로 통성명이나 합시다. 나는 강하다. 당신은?”

“……건방져…… 그것도 개 건방져……”

“아니 이름이 강하다라고!! 성이 강이고 이름이 하다!!”

“아~ 그렇구나~”

“느긋하게 이해한 척 하지 말아줄래?! 그거 상처거든!?”

평범한 여학생(1)은 그렇게 태연하게 자기 머리를 한번 뒤로 휙 쓸어 넘기더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비밀.”

“…….”

“…….”

“건방져…… 그것도 개 건방져…….”

“아, 아니야!! 이, 이쪽은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고!”

“이름을 못 알려줄 만한 사정이 있을 리가……”

순간 나는 흠칫 하고 말을 멈췄다. ----있다.

예를 들면- 나 같은.

그리고 보통 교복 마이에는 이름이 주기되어 있잖아? 나는 깨달음과 동시에 번개같이 평범한 여학생(1) 가슴을 바라봤다. 마찬가지로 눈치 챘는지 재빨리 손을 들어 가렸지만……

나는 보고야 말았다.

“은하수……”

“윽!”

“…….”

“…….”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은하수라니……

“…….”

“저, 저기…….”

“…….”

“아, 안 웃어……?”

“…….”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을 들은 사람 중에 여태 웃지 않은 사람은 이 애가 유일하다. 동병상련, 같은 아픔을 지니고 있기에 내 이름을 들어도 웃지 못 한 걸까. 아주 쉽게 놀림감이 되고, 놀림이 없이 이름을 불러도 놀리는 것 처럼 되어버리는 이름. 지어준 사람을 원망하고 싶지만 보통은 집안의 어른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지었다라고 하면 원망조차 할 수 없는 그런…….

“…….”

“……웃지, 않는거야?”

눈을 감은 채 앞으로 닥쳐들 상처에 대비하고 있던 여자애는 쫄아 있던 몸을 편 채 입을 굳게 다물고 나를 바라본다. 나 역시 진지한 눈을 하고, 여자애의 눈을 곧바로 마주본 채.

숨을 들이킨다.

그렇다. 나는……

“우핫핫핫핫핫!!! 은하수래~~~!!! 끄핫핫핫핫!!! 아이고 웃겨!! 푸핫핫 으, 으허허헉!!! 꺄훌~~!! 대, 대박!! 으햐햐햐햐!! 어떻게 이름이 으, 은하수래!! 그러면 성이 은, 이고 이름이 하수여!? 그럼 사람 만나도 이렇게 할 거 아녀!? ‘안녕하세요, 하수입니다.’ 끄하하하하학!!! 최, 최고야!! 하, 하수라니!! 이름이 하수라니!!”

“[빠직]”

“푸힛힛힛힛!! 그럼 이렇게 말하면 되겠네!! ‘안녕하세요, 하수입니다. 그렇지만 가슴은 고수입니다.’ 크핫핫핫핫!! 이거 좀 괜찮타!! 너, 너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같이 개그우먼 한번 안 해볼래!? 대박 칠거라고!!”

웃으면서 숨이 막혀서 나도 모르게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배가 땡겨서 죽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죽어.”

“끼히히히힣!!! ……예?”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위에서부터 내리 꽂히는 번개같은 니킥이었다.

“……여어.”

“……꼭 진흙탕에서 세 번 정도 구른 다음에 시멘트 속에서 헤엄치다 늪에서 기어나온 듯한 모습이로군, 자네.”

“아산만, 위대한 대한민국!”

옷과 피부에 묻은 피를 근처의 공용 화장실에서 적당히 처리한 후 약속 장소인 세이브 PC방에 세이브 하자 날 반기는 것은 아직도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녀석들이었다(옷에 남은 자국은 진흙에서 굴렀다고 말했다. 핏자국이 거뭇해서 무난히 세이브). 한참 늦었는데 아직도 PC를 켜고 있지 않다니… 역시 나를 위해 주는 건 이 녀석들 뿐인가, 감동받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감동을 뒤로하고 녀석들과 나란히 앉아서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내안에 끓고 있는 감동과 분노를 담아서 번개 같은 컨트롤을 보여주지, 오늘 인터넷의 바다 속에서 나를 만나는 녀석들은 자신의 운 없음을 저주하며 그 사실을 하늘과 땅을 향해 원망해야 할 것이다……!!

나는 마우스를 격하게 움켜쥐었고,

우리는 그 날 인터넷의 바다에서 컨트롤의 신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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