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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12    추천 0   덧글 1    / 2010.01.10 23:28:47



 정체불명의 새하얀 빛을 온몸으로 받은 세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안구가 버틸 수 없었기 때문… 이라고 저도 모르게 생각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뭐야 도대체 그 여자…!’

 눈을 감았음에도 파고드는 새하얀 빛으로 인해 정신이 아득해진다. 더는 못 참겠다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마음을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것으로 억누른다. 그렇게 1초 1초가 곤혹이었다.

 이런 상황을 만든 원인으로 생각되는 방금 전의 여자. 도저히 한국인이라고는 볼 수 없는 새하얀 피부색과 에메랄드 기운이 들어간 보랏빛의 머리, 짙은 보라색의 눈을 한 그 여자는 분명 외국인이었다고 생각한다. 흔하지는 않지만 어디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단순한 외국인이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그래, 순수무결한 알몸으로 세현의 방에 있었고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이 빛을 만들어 냈다는 것만을 제외하곤 그랬다. 세현은 뭐가 뭔지 추측조차 세워지지 않는 날벼락 같은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오늘을 저주했다.

 여름방학 첫날임과 동시에 자신의 생일인 7월 28일 오늘. 아침부터 ‘모닝 로또’라는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복권에 당첨되질 않나, 조깅 중에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는데 대화를 하다 자기도 잊고 있었던 차입금을 받게 되어 예상외의 소득을 보질 않나, 교환 학생으로 외국에 갔던 친한 형이 적절하게도 이틀 전에 귀국해 생일 파티에 참석하질 않나. 재수가 좋다 했는데,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발생해 해안도로가 엉망진창이 되질 않나, 그로인해 친구들이 다치질 않나, 이런 빛에 괴로워 하질 않나(여자의 알몸을 처음으로 본 두근거리는 행운은 보류), 현 모씨의 운수좋은 날이 따로 없다.

 그렇게 눈을 떴는지 안 떴는지 조차 분간이 잘 안 되는 그런 새하얀 공간에 있길 몇 초,

 순식간에 화면이 바뀌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빛이 사그라들고,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응?”

 세현은 기겁하는 줄 알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기는 분명 방에 있었다. 알몸의 알 수 없는 외국인을 보고 빛에 둘러 싸였다는 게 꿈이면 꿈인 일 같지만 분명하게 순도 100%의 사실이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세현은 지금 월미도 지상 30미터를 날고 있다.

 정확히는 상공 30미터에서 멈춰있었다.

 공중에 떡하니 정지해 있는 것이다. 세현은 오줌을 지릴 정도로 기겁하곤 온몸의 기관이 전부 정지하는 느낌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니까 바이킹을 탈 때 90도 이상의 머리끝까지 올라갔다가 관성의 법칙으로 인해 잠깐 동안 정지해있는 그 순간의 느낌이랄까. 그런 걸 뜬금없이 당한다면 누구든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게 정상이리.

 1밀리미터라도 움직인다면 떨어질 것 같다는 공포감에 세현은 온몸을 정지시킨 채 눈만을 굴려 현재 상황을 다시 한 번 체크한다. 그렇지 않고는 평생 이대로 있어야 될 것 같았기에. 아무리 인내심 강한 세현이라도 그렇게 된다면 별로 못 가 미쳐버리고 쇼크사 할 것이 뻔했다.

 눈만을 굴려 확인 하는 데에 불편함은 ‘전혀’ 없다. 사방이 훤하게 다 들여다보이는데, 상공 20미터라는 높이는 그 정도였다. 걸친 것이라곤 T셔츠 한 장과 청바지 하나인 완전무결한 상태로 그런 높이에 ‘정지’ 해 있는 건 정말, 장난이 아니라, 진짜, 현실과는 까마득하게 동떨어진 장소로 정신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일 것이다.

 게다가 여긴 ‘바다 위’였다. 눈만을 이용해 확인 해 본 결과 월미도의 해안도로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부근이다.

 “미…”

 ‘…치고 팔짝 뛰겠네.’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문다. 그만큼 그 어떤 행동이라도 해선 안 될 법한 느낌이 강했다. 공중에 ‘정지’해 있는 걸 유지하기 위해선 똑같이 ‘정지’를 고수해야만 하나, 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기 때문에 세현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문득 그는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게 있었다.

 ‘바람이 없어…?’

 다시 눈만을 굴려 주위를 살펴본다.

 50미터 앞의 월미도 해안도로. 도로 자체는 물론이고 상점가조차 마구잡이로 부서져 완전한 엉망이 되어있다. 불바다… 도 아닌데 어느 전장의 마크 같은 불길한 검은 연기도 하늘 위로 솟구치고 있다. 드문드문 보이는 도로 위의 시신이나 무너진 가게 파편에 깔려 피를 토하며 움찔거리는 부상자들도 보인다.

 시신이나 부상자들의 모습에서 위를 쥐어짜이는 고통을 받아 위산이 역류할 뻔 했지만, 정신 차리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했었던 때가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단순히 ‘여기’에서도 무참한 광경이 자세하게 보이는 자신의 시력을 탓할 뿐,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본다.

 …주위를 둘러보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아니… 두 개 있다.


 첫 번째로, 세현 자신은 전혀 바람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 제대로 살펴보면 바람은커녕 공중에서 느껴져야 할 공기의 그 무엇도 피부에 닿고 있지 않았다. 단순히 몸의 감각이 무더져서 그런가, 라는 것도 아니다. 정지해 있는 상태에서 손가락을 약간 움직여 손에 손톱자국을 내고 입술을 깨물어 감각을 확인했기에 그렇게 생각한다. 더욱이 바람이 불어서(로 보이는) 누가 장난으로 걸어뒀던 걸로 예상되는 해안도로 부근 깃발이 잠깐 세차게 흔들리고, 어느 무너진 식당 위로 스믈스믈 기어오르던 검은 연기가 한쪽으로 기운 것에 반해 자기 자신은 머리카락 한 올조차 끄떡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바람의 영향을 전혀 받고 있지 않다는 미스터리가 존재한다는 것이 성립된다. 말도 안 되지만 말 그대로 ‘정지’상태.

 그리고 또,

 두 번째로…

 까지 생각하다 쿠웅! 하는 충돌음과 함께 옆으로 기울기 시작한 자신의 몸에 세현은 이번에야 말로 정말 오줌을 지릴 뻔 했다고 비명으로 울분을 토한다.

 왜인지 일정한 각도로 점점 왼쪽으로 기우는 자신의 몸에 무게중심을 바로 잡으려 허우적대지만, 또 왜인지 온몸에 풀플레이트 갑옷이라도 강제로 입혀진 것처럼 굉장히 무겁운 느낌으로 팔목 하나조차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점점 기울어지기만 할 뿐. 그렇게 기울어지다간 물속으로 고꾸라져 쳐박힐 뿐이었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어느 정도 수영을 할 줄 아는 그로선 해안도로에서 50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니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겠으니 원하던 바다, 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온몸에 풀플레이트 갑옷이라도 장비한 것 같이 몸이 꿈쩍도 안 해준다면 오히려 낭패다.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며 꼬꾸라지기를 수 초.

 아무런 생각 없이 세현은 기울고 있던 방향의 반대쪽을 바라본다. 그에게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것도, 어떤 기운이 전해졌던 것도, 충돌음이 나고 자기가 왼쪽으로 꼬꾸라지고 있는 것을 순간적으로 깊이 생각한 것도 아닌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린 건 순전히 하나의 우연이었다.

 그런 우연에 감사해야겠다고 세현은 생각한다. 만약 그런 우연이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유도, 원인도 모르고 죽어야했을 테니까.

 그렇게 검은색의 철 같이 보이는 거대한 주먹이 세현을 향해 내리쳐온다.

 어딘가에서 한 번 봤던 주먹이다, 라고 그는 새하얀 정신 속에서 생각했다. 기계임에 분명한 검은색의 거대한 철의 주먹. 맞으면 순식간에 온몸이 터져버릴 게 분명한 파워와 속도다. 지하철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점점 다가오는 지하철을 바라볼 때의 심정은 이런 걸까? 죽음이 코앞에 닥쳐오는 느낌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다. 세현에 한해서는 오늘 일어났던 ‘엉망진창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여름방학 첫날임과 동시에 자신의 생일인 7월 28일, 아침부터 ‘모닝 로또’라는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복권에 당첨되는 걸 시작으로 조깅 중에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는데 대화를 하다 자기도 잊고 있었던 차입금을 받게 되고, 또 집에 돌아오니 ‘저녁을 기대해’라는 부모님의 웃음어린 말씀과 동생 세아로부터의 자그마한 생일 선물을 받는 훈훈한 일, 교환 학생으로 외국에 갔던 친한 형에게 전화가 와서 밖으로 나가 보았더니 자신의 생일 축하하는 친구들 등…,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발생해 해안도로가 엉망진창이 되는 일도 있었고, 그로인해 친구들이 눈앞에서 다치는 사건도, 그래서 혼란으로 절망만 하던 때 울고 있는 동생을 발견하곤 정신 차리자고 스스로에게 맹세했던 일도.

 현재까지 스쳐가니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저 커다란 주먹은… 모든 걸 망친 원인이기도 한 주먹이었다.

 ‘저 주먹만 없었으면….’

 오늘은 즐거운 생일 날이 되었겠지.

 원망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단지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감는다.

 이걸로 끝이구나, 내 열일곱 살 인생은. 현재까지의 삶에 그리 불만은 없었지만 아직 해보고 싶은 건 많았는데….

 남들보다 훨씬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 밖에 없었던 것만은 한이라면 한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감은 두 눈은 더욱 질끈 감아진다.

 그리고 커다란 주먹의 철퇴는 세현을 내리찍었다.

 지금까지의 순간은 단 한순간이었고 주먹은 굉장한 속도로 내리쳐졌다.

 …내리쳐졌다.

 내리쳐진다?


 “응?”


 세현은 오늘로 도대체 몇 번째 기겁하는 지, 자기 자신임에도 질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었던 게,


 커다란 주먹이 지근에서 멈춰 있었기에.


 물론 주먹이 지근에 있다는 부분에서 진정 기겁했지만 중요한 건 ‘멈춰있다’라는 부분에서 진심으로 놀라 있었다.

 그렇다고 ‘주먹’이 멈춘 건가, 절대 아니었다. 세현은 여기서 진짜 호기심 반 식겁 반으로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게, 마치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말 그대로의 ‘시간 정지’를 체험하고 있었으니까.

 그니까 한 마디로 ‘시간’이 멈춰 있었다.

 주위가 회색빛으로 물든 것조차, 시간 정지를 느끼고 있는 자기 자신만은 색이 있는 것조차 SF영화에 의거하는 듯 보이는 게 더욱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다.

 전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혼란스러웠지만 사망 예고 일보 직전이었던 세현으로선 일단은 안도하고 보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나 안도하고 있을 시간조차 신은 주지 않는 건지, 세현은 또 깜짝 놀란다.

 그의 앞으로 작은 주황빛의 세련된 홀로그램이 구형으로 펼쳐지면서 하얀 글자들이 적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크레이터 아카샤, 접속되었습니다.》


 “뭐…?”

 사방에서 울렸기에 약간은 혼란스러웠지만 사람을 편안한 게 만드는 목소리여서 그런지 세현은 침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 다시 그를 당혹스럽게 하는 게,

 《네? 멋대로 타임트랩을 건 것이 마음에 안 드신 건가요? 원하신다면 바로 해제하겠습니다.》

 “뭐, 뭐?”

 《정확히 못 들으셨습니까? 다시 말씀 드리…》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예? 그럼요?》

 그렇게 반응하니 정말 혼란스러울 수밖에는 없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급습하는 안도감은 나쁘지만은 않다. 아무래도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과 이 모든 진상을 파헤칠 수 있는 키를 얻었다는 예감에서 그러는 것임에 분명했다.

 그게 비록 SF틱 하지만서도.

 세현은 잠깐 여유를 갖고 자신 앞에 떠오른 어른 머리 두 개만한 크기의 작은 주황색 3D홀로그램을 바라본다.

 【KRATER AKASYA】


 단지 그렇게 하얀 문자로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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