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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Dragological : 용 심리학 by 퍼기

본격 에이션트 드래곤 치매 걸린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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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05    추천 0   덧글 1    / 2010.01.22 11:02:33

3주차 완료\'ㅂ\'/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초등학교 운동장도 산의 흙과 운동장 모래가 뒤섞여 있었다. 차도는 그나마 잘 정리됐다. 사고 현장이 된 동네와 아스팔트 길 사이를 노란 구조물이 가로막았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보이는 번화가까지 휩쓸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승용차 두 대가 지나갔다. 한적하다. 뒤이어 오는 차들이 없다.

비어있는 동네 분위기를 미리 읽었는지 흙더미 꼭대기에서 누림이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머리와 날개 끝이 언뜻 보인다. 정오의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비늘. 부산에도 경찰이 있단 사실을 망각했다. 그전에도 제멋대로 위압감 풍기긴 했지만. 저절로 주머니에 손이 갔다.

수지니 씨 직통 번호가 손에 없다. 점퍼에 두고 안 꺼냈다. 맙소사. 경찰을 부르면 남은 흙더미마저 무너져 내릴 것이다. 기껏 발굴해놓은 우리 집 이하 동네 건물들을 다시 파묻히게 둘 수 없다. 녀석을 다룰 사람이 나뿐이란 사실이 싫어도.


맘 같아선 계속 달리고 싶다. 그런데 몸은 집이 가까운 동네 길에서 쉬자고 한다. 1년 남짓 리어카 끌고 시내를 누벼서 체력엔 자신 있었는데 역시 걷기와 달리긴 다르다. 흙 묻은 길 주변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띵하다.

“하아. 후. 젠장.”

아무도 없는 길 한복판에 주저앉으니 마음이 텅 비는 기분이다. 숨을 고르며 윗동네 쪽을 바라봤다. 누림이 여전히 무너진 산 위를 기웃거린다. 건물 뒤편으로 흐릿하게 보였다. 흙더미에서 뽑은 소나무를 입에 물었다 다시 내려놓는다. 또 다른 소나무를 물었을 땐 고갤 축 늘어뜨려 실망한 기색이다. 형광이긴 해도 포스트잇이 반짝이진 않아 오래 걸리나 보다. 아니면 거릴 싸돌아다니느라 능력이 더 약해졌겠지. 돌아다닌 자리에 남는 비늘이 증명해준다.

몸이 편안해지니 잊고 있었던 배고픔이 생각을 마구 찔렀다. 아침을 걸렀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대로 녀석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면 점심마저 거르게 되지만, 폐허가 된 동네에 땡전 한 푼 없는 신세다. 현실이 발을 재촉한다. 추하게 점심 값 구걸하는 짓보단 늙은 백금용 말리는 쪽이 더 낫다.

발을 질질 끌며 우리 집 맞은편의 슈퍼 앞을 지나갔다. 슈퍼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머리가 돌아갔다. 닫힌 유리문. 너머로 진열대에 쌓여있는 상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색색의 과자상자. 망가지지 않았다. 갑자기 힘이 솟는다. 주변을 뒤져 맥주병을 담는 상자를 찾았다.

“에잇!”

상자가 튕겨나간다. 성질이 돋았다. 계속 두들겨 봐도 흠집만 약간 난다.

“아이씨! 진짜!”

내던진 상자가 아스팔트 위를 날카롭게 뒹굴었다. 곤두박질치는 소리에 짜증이 더 심해졌다. 주저앉았다. 거지만 안 됐지 춥고 배고프고 억울하고 답답하다. “이게 뭐야!” 스스로 내지른 외침도 거슬린다.

찌푸린 미간을 달래려고 손을 올렸는데 땅이 한번 울렸다. 가슴속까지 울리는 진동이다.

“아가씨?”

블라인드가 내려오듯이 누림의 대가리가 위에서 나타났다. 반쯤 눈꺼풀이 감긴 파란 눈동자와 마주봤다. 눈동자에 얼굴이 비친다. 잔뜩 이골이 난 표정에 자다 일어난 채 정리도 안 된 머리카락의 여자가 보인다. 내 표정을 금방 눈치 챈 녀석의 눈동자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아가씨?”

“왜!”

지친 정신이 용머리에게 반말을 뱉었다.

“으음.” 눈이 감긴다. “미안해요.” 김 피어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둥이 각도가 틀어졌다. 콧김을 내 얼굴에 뿜는다. 정신없어선지 금속 냄새도 안 느껴진다. 주둥이 끝을 대고 말을 잇는다. “아가씨. 많이. 힘들어 보여요.” “신경 쓰지 마!”

숨을 고르고 다시 일어섰다. 가로막은 주둥이를 옆으로 밀치고 상자를 주웠다. 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선 녀석의 몸뚱이가 보인다. 손녀 메모지나 찾으러 가버리라지. 과자를 얻고 나면 이곳을 떠나 부산의 용 정신병원 전화번호를 찾을 것이다. 그쪽 사람들은 수지니 씨 번호를 금방 알아낸다.

“으으. 배고파요?”

“신경 쓰지 말라니까!”

“나. 그런 할아버지. 아니에요.”

“나도 네 손녀 아니거든?”

상자를 주워 질질 끌었다. 긁히는 아스팔트에서 요란한 소리가 난다. 누림이 살짝 고갤 들었다. 내가 지나가게 비켜주는 짓으로 생각했더니 갑자기 주둥이를 슈퍼 유리문에 박는다. 로바다야키 문짝처럼 유리문도 백금 주둥이 앞에 산산조각 났다. 오래된 방 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녀석은 머리에 붙은 유리조각을 털어냈다. 한마디 하려던 찰나, 먼저 가게 안을 둘러본다. 진열대가 넘어지는 소리가 귀를 두드린다. 한참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나서야 대가리가 밖으로 나왔다. 머리에 분홍색 과자상자를 얹은 채 말한다.

“여기. 없어요.”

본능에 이끌린 난 말없이 가게 안으로 뛰어들었다.


늙은 용 콧구멍에서 김이 솟아올랐다. 오후인데다 남부지방이라 소리만 들린다. 과자는 유통기한 제법 긴데도 습기를 먹은 탓에 건진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 멀쩡한 사탕이나 초콜릿이다. 초콜릿을 세 개째 뜯어먹으니 지끈거리는 머릿속이 잠잠해졌다. 여자는 당이 없음 안 된단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문을 뚫고 나서도 누림은 제 자릴 지켰다. 엎드린 채 사탕 빠는 날 바라보기만 한다. 메시지를 못 찾은 탓에 힘없는 눈동자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녀석의 존재감은 몸뚱이만큼 크다. 배가 얼추 부르니 시선에 자꾸 밟힌다. 네 개째 초콜릿을 씹다 말고 바라봤다. 푸른 눈이 따라 마주 본다. 양 손에 사탕과 초콜릿을 든 여자가 비친다.

쓸데없이 피어오른 긴장감을 누르고 얘길 꺼냈다.

“먹을래?”

아무 말이 없다.

“진짜 단데. 우울할 땐 당이 최고야.”

뱉고 나서 후회가 밀려왔다. 나도 바보다. 생 삼겹살에 환장하는 짐승에게 무슨 얘기람. 강아지도 초콜릿 잘못 먹음 큰일 나는데.

“맘대로 해라. 네 눈엔 온갖 잡 먼지가 들러붙은 걸로 보이지?”

사탕을 들이대며 말한 뒤 집어 삼켰다. 포도 맛이 입 안에 퍼진다.

“으. 많이. 배고팠어요?” “어!” 아침 먹을 시간에 내가 어디 있었는지 잊으셨나.

“아가씨. 원래. 많이. 안 먹잖아요.” 이 녀석 봐라.

“미안! 난 굶주리고 달달한 거나 좋아하는 인간이다! 먹을 것도 밝혀! 됐냐?”

“으. 그런 뜻. 아니에요. 아니에요.”

뻗은 팔 사이로 머릴 파묻는다. 겁먹을 거면 먹보로 만들지나 말던가!

“우리. 별로 안 먹잖아요. 보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말 한번 잘했다.”

사탕을 씹어 넘겼다. 드디어 이 녀석이 뭔가 아니다 싶은 부분을 알아챘다. 맞다. 이 승아는 사람이라 하루에 한 끼라도 굶으면 짜증이 돋는다. 보름에 한 번 식사라니. 다이어트라 쳐도 무섭다.

“네가 기억하는 손녀는 너처럼 보름에 한 끼 먹어도 아무렇지 않지? 이런 가공식품도 안 좋아하고. 네 정신으로 봐도 이상하지.”

“으음.” “이게 내가 손녀가 아니란 증거 1이야!”

손가락질까지 튀어나왔다. 녀석이 별 반응 없자 주둥이 앞으로 다가와 섰다.

“우아.” “진짜 손녀는 안 이래! 아무리 딴 세상에 와도 습관은 바로 안 고쳐져! 그리고!”

고개를 든 녀석의 콧구멍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난 한 번도 용으로 변신한 적 없고, 혼자선 날지도 못하고, 마법도 못 쓰고, 보석도 안 좋아하고! 무엇보다 너랑 만난 적 한 번도 없어! 우리 엄마, 아빠 머리를 걸고 맹세하는데 작년 크리스마스 이전까진 네 비늘도 본 적 없어!”

“으. 무슨 말이에요? 여기 얘기. 하나도―”

“말 돌리지 말고 끝까지 들어!”

자기 말이 잘리자 주둥이를 앞으로 내민다.

“다른 가족은? 어디다 내버리고 남한테 오는 건데?”

“아가씨?”

“아내는! 아내는 어디 있냐?”

다시 고갤 파묻는다. “기억. 안 나요? 아가씨. 태어나기 전에―”

“아들딸은!”

“으. 으으. 아가씨.” 경찰 얘기만큼이나 기겁한다. “왜. 왜 그래요? 역시. 그. 그 이상한―” “대답해!”

그놈의 아들딸에게 가서 범죄행각 일러버릴 테다!

“……없어요.”

목소리가 꼬였다. “뭐?” “없어요. 없어요. 다 없어졌어요!”

눈을 꽉 감는다. 땅 속으로 꺼지려는 듯 파묻은 주둥이를 뒤튼다. 그 앞에서 난 한쪽 손을 내민 채 굳어버렸다.

“아가씨만. 있어요.”

팔이 힘을 잃고 내려갔다. 억누를 수 없는 동질감이 머릿속을 말끔히 비워버렸다.

녀석이나 나나. 같은 도시에서 같은 씁쓸함을 맛보며 같은 텁텁한 공길 마셨다. 이 생각만 빈 곳을 가득 채웠다. 나도 딱히 다른 친척들을 의지한 편이 아니었다.

아냐. 아니야. 정신 차려야지. 친손녀 생김새를 잊어버렸듯이 어딘가에 아들딸이나 아내가 이주해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침착하자. 원래 누구든 전쟁 한 번 겪으면 제정신 아니게 되잖아. 젊은 사람들도 이상해지는데 할아버지야 오죽할까.

병원에 가야 한다. 돌아가야 한다. 가서 이 녀석 친척 찾아보고 내 피검사도 해봐야 정신이 말짱해질 것 같다.

“으으. 미안해요.”

엉덩이를 털었다. 하루 내도록 여기 있다간 내 실종신고가 들어오겠다. 어제까지만 해도 녀석을 법정으로 끌고 가겠다고 장담하던 아저씨들이다. “아가씨. 병원. 안 돼요. 차라리. 감옥 갈게요.” 단어 하나가 걸음을 붙잡았다.

“차라리. 계속. 갇혀 있을게요. 백년이든. 천 년이든.”

“여긴 널 가둘만한 감옥이 없어.”

기분 나쁘게 이런 곳에서 감옥 얘길 한다.

“나 데려다 주기나 해. 끌고 왔음 끝까지 책임져!”

“으으. 집에. 돌아갈래요. 그런 곳. 싫어요. 공기는 메스꺼운데다. 물은 금속 맛에. 아무것도 못하게 해요.”

“거기가 내 집이거든? 이제 좀 알아들어라, 제발!”

외침에 고갤 젓는다. “잘못했어요. 나. 여기서도 잘못했으니까. 고향. 갈 거예요.”

이젠 고향 타령이다. 나이 더 어린 수지니 씨도 잘만 적응하는데 이 늙은이는 끝까지 징징댄다. 어차피 고향 가도 서울 공기보다 더 메스꺼운 악취가 떠돌 것이다. 죽은 살들에서 나는 악취라던가.

“으으. 나! 잘못했어요! 다른 친구들과. 못 지내요!”

내민 앞발에 힘을 준다. 발톱이 아스팔트에 박혀 흠집을 낸다.

“여기. 이 곳. 아가씨.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미안해요. 내가. 산이랑. 나무랑.”

“뭐?”

“다 무너뜨렸어요. 산. 무너뜨렸어요. 으으. 그래도. 다시. 쌓을 거―”


언뜻 짝 혹은 퍽 소릴 낸 것 같다. 손바닥이 욱신거린다. 따갑다. 녀석의 주둥이를 치다 붙어버린 손바닥이 비늘에 균열을 냈다. 떼어내자 우수수 떨어지는 가루와 함께 비늘 조각이 묻어났다. 빨갛게 부었다. 철판에 싸대기라니. 모르는 새 내가 간이 부었다.

젠장. 남자일 때의 뺨에다 먹였어야 했는데.

헛소린지 진실인지 구분이 안 간다. 백금용 헛소리를 지겹도록 들었는데. 아픔이 기어오르는 손바닥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개소리든 고백이든 가슴에 한 방 맞은 기분임은 같다. 망할 자식. 그래. 쌤쌤이다. 나도 네 과거사 긁었고 넌 공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집이 없어지고, 부모가 없어졌다. 돌아갈 곳이 사라졌다. 것도 희희낙락거리며 여행을 즐겼던 순간에.

“……흑.”

내가 아파했던 날 엄마, 아빠가 같이 울어줬다면.

“으윽. 욱.”

엄마, 아빠가 고통스러워했던 날, 난 잡담이나 지껄이고 있었다.

“흑. 젠장. 으윽. 훌쩍. 젠장! 흐흑. 흑. 에이씨!!”

이 녀석은, 나에게 내린 벌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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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니 진작이 이런 말을 안한 주인공도 어지간히 무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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