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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Dragological : 용 심리학 by 퍼기

본격 에이션트 드래곤 치매 걸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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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42    추천 0   덧글 1    / 2010.01.29 11:47:42

 * * *


   그래도 수술은 해야 했다. 늙은 용의 손짓은 임시방편이었다. 자신도 처음 봤을 때 거리에 가득 찬 먼지들에 놀라 시력을 일부러 떨어뜨려놨다고 했다. 용의 시력은 무섭구나. 가까이서 떠다니는 진드기가 보인다. 용들이야 공간을 메운 벌레들이 번거로워 눈을 가렸겠지만 나로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뒤, 혹시라도 부작용이 있을까봐 정밀 검사를 했다. 마력으로 망가진 몸은 엄청난 후유증이 있고 고칠 수도 없다고 한다. 검사하는 내내 내 곁을 떠나지 않던 수지니 씬 한시름 덜은 얼굴이었다. 긴장해서 생긴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는 모습을 보니 슬그머니 미안해졌다. 승호 씨랑 더불어 라면 대접이라도 해줘야겠다. 식당은 내 처지에 무리다. 이거 또 미안해지네.

마지막 검사가 끝나고 병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수지니 씬 밝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스스로도 너무 초조해한 탓에 힘없이 다녔단 사실을 인정했다. 주치의의 책임감은 생각보다 더 굳셌다. 늙은 용은 그녀의 첫 환자였다.

“할아버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면 난 의사로서 낙제일거야. 처음 치고 너무 센 환자를 맡았지만 말야. 하하.”

다음 환자부턴 정말 거리낄 게 없겠다. 투신자살이 아닌 이상.

“조마조마 했어. 승아가 수술해도 그대로면 정말 할아버질 탓할 수밖에 없는데, 같이 전쟁을 겪은 입장에서 그러기도 미안해지더라. 일부러 널 괴롭히려는 것도 아니어서 갈등 많이 했지. 뭐, 결국엔 다 잘됐지만.”

“돌보기보단 감시를 잘 하셔야 할 걸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니까.”

“한동안은 탈출할 일 없을 거야.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조차 잊은 용은 아냐.” 몇 번 까먹는 꼴을 눈으로 봐온 사람으로서 동의하기 힘든 말이다. 예의상 고개만 끄덕였다. 수지니 씬 건성으로 한 대답에 아무 대꾸 하지 않았다.

내 병실은 금룡 간호사와 함께 미리 둘러봤던 병동의 방으로 정해졌다. 용의 피를 마신 사람들이 누워있는 건물이라 필연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빵빵한 배상 덕분에 1인실 독방이다. TV도 있고 창문 밖으로 탁 트인 풍경도 보인다. 같은 구성인 고시원 방보다 더 좋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닫혀있는 병실 문을 열었다.

“어라.”

남의 병실에 외부인 셋이 눌러 앉았다. “여, 수지니.” “늦게 끝났네?” 한가롭게 인사까지 건넨다. 자문위원과 간호산 TV 앞에 딱 달라붙었다. “할아버지!” “우아.” 잠자코 있던 백금용은 겁부터 먹었다. 날 보더니 얼굴을 달군다. 한 손엔 크레파스가 있다. “둘 다 놀려면 당직실에나 가!” 먼저 들어온 수지니 씬 TV부터 냉큼 껐다. 시청자들이 얼굴을 구겼다.

“내려와.”

나도 녀석에게 시켰다. 침대에 굴러다니는 크레파스와 구긴 종이를 주웠다. A4지 아깝게 한쪽 면만 채우고 갖다버렸다. 덩어리 하날 펴봤다. 종이 펴는 소리에 녀석의 어깨가 들썩였다.

“별?”

온통 찌그러져 혹성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바탕을 보니 알 수 있었다. 검푸른 바탕에 울퉁불퉁한 하얀색 도형 하나. 색깔은 맞는데 별을 소재로 한 초현실주의 그림이 됐다.

“그거, 내가 밑그림까지 그려줬는데도 실패한 낙서야.” “으. 낙서. 아니에요.” 간호사 말을 맥없이 반박한다. 녀석은 부인하지만 내가 봐도 낙서 수준이다.

“으으. 낙서. 아니에요. 별이에요.”

“어쨌든 다들 나가. 승아는 이제 푹 쉬어야 해.”

두 사람을 일으킨 수지니 씨가 냉정하게 말했다. 파란 눈이 구조 신호를 보낸다. 맞는 말이라 무시했다. 망친 낙서들을 구석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소리에 위화감을 느낀 녀석은 그제야 침대 밑으로 내려왔다. 원래 자리를 찾은 크레파스가 담긴 상자를 녀석에게 건네줬다. “으. 으음.” “네 병실로 가.”

투덜대는 간호사와 사정사정하는 승호 씨를 수지니 씨가 밀어냈다. 이제 할아버지 차례라고 문 뒤로 버티고 섰다. 녀석은 힘들어간 청룡의 눈에 내 뒤로 숨었다. “뭐해! 돌아가라니까!” 오들오들 떠는 녀석의 소맬 잡고 끌어당겼다.

“우. 우아. 우아아.”

“가서 낮잠이나 실컷 자.”

튀어나온 녀석을 승호 씨가 받았다. 그 사이 수지니 씨가 문을 닫았다.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이 병동 복도에 사람이 드문 이유를 이제야 이해했다.

하루라도 떨어뜨려놔야 정도 빨리 떨어진다.


서울의 밤은 밝다. 가로등만 해도 눈에 금방 띈다. 내일이면 다시 저 가로등을 누비며 종이 줍기 생활에 몰두해야겠지. 할 일을 잔뜩 빼먹고 다닌 날 사장님은 자르지 않았다. 백금용의 납치로 마무리 지었지만 옥상에 올라가기로 결심한 내 의지도 있었는데. 돌아오면 두 배로 주워야겠다. 아저씨들 시간도 빼앗았다. 수술을 했으니 더 이상 녀석이 날 찾아와 손녀 타령을 하진 않을 것이다. 손녀가 없으니 밖에 쏘다니지도 않겠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젠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한결 편안해진다.

별 그리기라. 녀석이 그린 별이라면 낯설진 않았다. 치매 검사지의 질문 따라 애써서 그린 것이 있었다. 무생물인 컴퓨터의 별은 정 대칭에 완벽하게 5개로 뾰족한데 녀석은 미트볼을 그려 놨다. 다른 질문도 답은 다 산으로 가고 바다로 갔다. 유일하게 정상인 부분은 계산. 100에서 7을 계속 빼는 연산을 아무렇지 않게 해냈었다.

아아, 망할. 내가 왜 녀석 생각에 몰두 하냐! 어차피 내일부턴 만나지도 않는다. 지나가다 마주치기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자자! 자고 일어나서 아침 일찍 퇴원수속을 밟는 거다. 보는 시선을 두려워하니 밝은 아침이면 따라 올 생각 하지 않겠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집중하자. 양이라도 세자.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아아!”

틀렸다. 다 깨버렸다. 12시 반이 지나는데 눈꺼풀은 가볍기만 하다. 수술 마취 때 미리 다 자서 안 오나.

바뀐 몸의 리듬에 한숨을 쉬웠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문고리가 덜컥 열렸다. 홀로 있는데다 등도 꺼 놓아서 등이 순간 서늘했다. 늦은 시간에 하는 검사도 있는가 생각하고 불을 켰다. 환해진 방 안에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문이 슬며시 열렸다.

“이야. 안 자네?”

“안 자야 안 심심하지, 바보!”

수상한 콤비, 아니 금룡과 승호 씨 목소리다. 끙끙대는 신음도 들려서 침대 밖으로 나와 봤다. “오, 승아! 너도 야행성이구나!” 간호사가 먼저 틀린 추측으로 인사했다. 승호 씬 캔 한 상자를 드느라 말도 못 꺼낸다. 내가 거들어주자 겨우 의자에 올려놓고 한숨을 내쉰다.

“얘기 나누는 건 오랜만이다, 승아야. 후우.”

“어떻게 남자가 캔 덩어리 하날 못 들어? 인간 남자는 다 약해빠졌다니까!”

“난 힘쓰는 직업이 아니거든요?”

“여긴 웬일이에요?” 검지로 둘 목소릴 낮추며 질문했다. 내 말에 금룡이 서류 가방을 들어보였다. “일하러 왔지롱.” “네?” 상대를 벙 쪄놓고 서류 가방을 연다. 사인란이 비어있는 종이뭉치가 튀어나왔다. 일하러 왔음은 사실이다. 그런데 장소를 골라도 너무 잘못 골랐다. 뒤에 한 무더기로 사온 과자와 커피 캔은 뭐람.

“텅 빈 복도에 둘만 있음 재미없잖아.”

“무서운 게 아니고?” “어허! 지조 있는 금룡은 어둠에 겁먹지 않아!”

스스로 지조란 수식을 붙이는 용의 머리는 완전 새둥지다. 카운터 밑에서 구르며 자다 온 것 같다.

“영감은 어째 안 따라 왔네요.”

“이제부터 그 영감 잘 때 마취제 필수야.”

의자를 침대 옆으로 질질 끄는 간호사가 대답했다. “최후통첩이지. 이번에도 안 되면 그야말로 감옥행이야.”

“수지니도 힘들게 결정한 일이다. 결국 할아버진 또 수지닐 원망하겠지만.”

“그땐 입을 진짜 꿰매버릴 겨! 아무리 영감이라도 해선 안 될 말이 있어.”

힘든 이유가 따로 있었다. 얘기하는 승호 씨의 말투에도 편치 않은 기색이 드러났다. 매번 마취시켜 재워야 할 지경에 이른 녀석을 안타까워한다. 나로선 단단한 방어벽 하날 두른 기분이다.

“근데 소희 씨는 승아랑 언제 말 터놓고 지냈어?”

“빠르지. 피 검사 결과 나오기 전에 슬쩍 쳐들어갔거든. 나랑 비슷한 머리 색깔이라 더 맘에 들어! 오래 지낼 수 없음이 아쉽지만.”

“진작 터놓을 거면 이름 밝히지 그래?” “지조 있는 금룡은 함부로 자기 이름을 말하지 않아. 당신은 우리네 습관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잘 알아서 순순히 밝혔고.”

지조 있는 금룡이란 여자가 한 입으로 두 말 한다. 비슷한 머리 색깔이 맘에 든달 땐 언제고 이름도 못 가르쳐 준다니. 누가 이름가지고 공갈사기라도 치나! 세상에 ‘소희’가 한둘도 아닌데.

“뭐, 이제 승아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됐으니 밝혀도 상관없겠군.” “참, 나.” “난 안 소희. 본명은 아르마칸저스. 사실 본명으로 불리는 게 더 좋다만 발음이 워낙 꼬이니 그냥 소희라 불러도 돼.” 승호 씨의 비아냥거림에도 꿋꿋이 자기 ‘지조’를 지킨다. 안 소희 아르마칸저스라. 외국이름 같기도 하다. 하나가 이미 다른 세계 출신이라 한글이름도 낯설게 다가왔다.

“아. 참고로 수지니 본명은 테아레이야. 근데 언급하지 않는 편이 나아. 걘 고향에 대해 별로 안 좋게 생각하거든.”

“수지니 언니는 성씨를 뒤에 붙이던데요?”

“아, 그건―” 말끝에 웃음이 배어나온다. “박 수지니 하면 꼭 박수무당 생각나잖아! 푸하하.”

먼저 얘기한 쪽이 분명 소희 언니일 것이다. 승호 씨도 한숨만 쉬었다.

“승아 자고 싶음 먼저 자.”

“코앞에 둘씩이나 앉아있는데요?”

“뭐, 어때! 승호는 일하면 조용해지고, 이 몸도 집중하면 일 하느라 바쁘다고! 크, 역시 야식 업무가 짱이라니까.”

업무보다 야식이 먼저 나왔다. 손은 어느새 과자봉질 하나 집었다. 승호 씬 과자들 사이에 끼어있던 삼각 김밥을 꺼내 말없이 뜯는다.

“승아도 먹을래?”

“이 시간에 먹으면 얼굴 부어요.”

“먹어! 입원한 주제에 부기 따지냐?” 다른 삼각 김밥이 날아왔다. 공장에서의 버릇대로 냉큼 잡았다. 소희 언니 표정을 봤다. 야식에 동참하게끔 분위기 띄우느라 열심히 미소 짓는다. 캔 커피 상자를 들고 온 승호 씨를 봐서 포장을 뜯었다. 무심코 뒷면의 글씨를 보다 한 문장이 잡혔다. 식욕이 달아났다.

“이거, 어디서 사 왔어요?” 지조 있다는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게 살짝 질문했다.

“이 병동 지하에 병원 매점 있어. 야근하는 의사들 때문에 24시간 열더라.”

김밥 포장은 메이커 편의점 거다. 과자 양이나 무식한 캔 커피 수를 보니 금룡이 쏜 게 틀림없다. 사실대로 말하면 지조 있는 금룡을 속인 매점 주인이라며 뒤집어엎을 지도 모른다.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 성격의 간호사다.

“저, 잠시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금방 갔다 와. 복도 불 켜진 데 별로 없어서 꽤 무섭다.”

위로냐 겁주기냐. 아저씨들에게서 억지로 받은 만 원이 달린 코트를 입고 나갔다.

대체 간호사가 무슨 말을 했기에 유통기한이 일주일이나 지난 삼각 김밥을 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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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은걸 토대로 보면 용이란건 그냥 사람 정신에 민감한 감각을 가진 평범한 놈들이네요. 뇌 구조도 진화가 너무 덜되서 정보 선별능력도 떨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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