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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에이션트 드래곤 치매 걸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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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91    추천 0   덧글 0    / 2010.02.07 17:32:59

* 코믹 작업 덕분에 하루만에 급하게 쓴 글이라 구성 및 문장이 졸렬합니다. 죄송ㅠㅠ

   * * *


   이전과 다른 이불 감촉에 눈을 떴다.

매일 드러눕던 이불이 아니다. 솜처럼 느껴질 만큼 두텁게 쌓인 이끼다. 고향 마을의 뒷산에서도 보지 못했던 선명한 푸른색. 물감이 아닌지 문질러봤지만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았다. 생전 처음 들이켜 보는 신선한 공기에 신맛을 느꼈다. 흙에서도 상쾌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숨통이 트여 절로 심호흡이 나왔다.

“어?”

바닥만이 아니다. 평소에 입던 잠옷이라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현란한 무늬가 새겨진 옷으로 바뀌어 있다. 소매가 넓고 얇은 천을 몇 겹 겹쳐놓았다. 일어서보니 무척 가볍다. 밑단이 질질 끌리는데도 부담이 없다.

이건 분명 꿈이다. 볼을 꼬집어 볼 필요도 없을 만큼 다른 풍경이니. 게다가 솔직히 말하자면, 훨씬 나은 곳이다. 도끼자루가 썩기까지 놀았던 신선들이 새삼 이해가 갔다.

하늘을 찌를 듯 뻗은 전나무들이 든든한 방어벽처럼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다. 숲 속도 조용하고 바람도 불지 않는다. 나를 위해 만든 쉼터라는 기분이다. 그럴 리 없지만 이 숲이 무척 익숙한 공간으로 보였다. 사장님 부인의 제멋대로 추측에 지친 머리부터 다시 이끼 밭에 드러누웠다.

누운 채 바라보는 하늘에 한 검은 점이 날아가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점이 점점 커진다. 주먹 만하게 커진 것이 금방 수박 만하게 부풀었다. 심상치 않은 바람 소리에도 우두커니 있다가 내 주변에 진 그림자에 놀라 옆으로 굴렀다. 의외의 순발력과 혓바닥에 닿은 이끼 조각에 놀라기도 전, 얼어버린 심장의 느낌이 온 몸을 파고들었다.

잘린 용의 머리가 이끼 밭 한 가운데 박혔다. 아니, 목은 잘렸기 보단 뜯겼다. 두터운 가죽 안으로 근육과 핏줄이 드러났다. 김이 피어오른다. “아.” 머리에 닿은 푸른 이끼가 벌겋게 물들었다. 얼떨결에 일어났다. 그러다 머리에 박힌 죽은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새파란 눈동자. 알아차리자마자 비늘의 백금도 눈에 들어왔다. 이 조합은 분명―

폭발음이 뒤통수를 덮쳤다. 이미 덜컥 놀라 예민해진 심장이 이번엔 터져버릴 듯이 요동친다. 정신 차리고 주변을 보니 푸른색이 사라졌다. 포토샵으로 지운 마냥 나무와 이끼가 있던 자리에 수많은 도마뱀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다. 색색의 비늘들이 검붉게 물든 채 빛난다. 멀쩡한 몸은 하나도 없다. 팔이 어깨에서 떨어지고 날개가 등에서 도망갔다.

“읍!” 갑자기 코가 따갑다. 머릿속을 쑤실 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느껴졌다. 힘들게 고갤 치켜들었다. 하늘이 익숙한 색의 안개로 뒤덮였다. 색을 알아보니 냄새도 낯익었다.

스모그. 매연. 자동차 뒤에서 맡을 때의 그 냄새와 똑같다.

어째서 용이 있는 곳에 스모그가 있지. 띵한 머리는 대답이 없다. 대신 지독함 속에서 자유롭게 숨은 쉴 수 있었다. 나머진 미래의 꿈에 또 튀어나올 법한 진상들이다.

그래, 나가야 한다. 아무리 깨고 일어나면 사라지는 신기루라 해도 이런 광경을 오래 감상할 순 없다. 볼을 꼬집고 머릴 쥐어박고 팔 안 쪽과 허벅질 꼬집었다. 비명이 나올 만큼 구박하는데 아직도 눈앞은 살풍경이다. 혹시 말로만 듣던 가위현상인가. 가위면 맨 정신에 온 몸이 굳어버리는 증상 이랬는데.

허둥대는 사이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처음 듣는 외국말이지만 목소리가 낯익었다. 고갤 들었다.

금룡, 소희 언니가 나랑 비슷한 차림으로 서 있다. 장난기 어린 얼굴이 고생과 충격으로 얼룩졌다. 몸은 정말 먼지와 피를 뒤집어쓰고 있어 더 초라해 보인다. 소희 언니가 다시 외쳤다. 뉘앙스를 들으니 누굴 부르고 있다. ‘위펠님샤드’.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들은 대로라면 이런 말이었다.

나랑 상관없는 말이라 우두커니 있는데 소희 언니 표정이 심상찮다. 다리에 잔뜩 힘주며 토막 난 용들의 시체를 넘어 다가온다. 아이보리 눈동자가 번뜩였다. 금방이라도 잡아 찢을 것처럼 손가락이 오그라들었다.

“언니?”

나에게 온다. 같은 옷을 입었다고 화날 용은 아닌 것 같았는데. 큰 목소리로 좀 전의 말을 반복한다. 한국어 잘하는 용이 갑자기 왜 이러지. 이 언니가 외국말 하는 모습 본 적도 없다. “어, 언니. 왜 그래?” 질문 던지자마자 호통이 날아왔다. 몇 걸음 떨어져 있어도 어깨가 흠칫거렸다. 날카로운 힘이 담긴 목소리다.

코끝이 닿을 거리로 바싹 다가오자 금룡의 눈가에 물기가 어린다. 입이 기침을 뱉는다. 난 바라보기만 했다. 달리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설사 사정을 안다 해도 인간이 용을 위로하고 다독일 수 있을 리 없다. 이전에 병원에서 언니 자신이 한 말마따나 나이도 수백 년 차이 나고 세상조차 다른 둘이다. 21년 인생이 몇 백년짜리 인생을 어떻게 대해. 당장 몇 살 위인 선배 앞에서도 어색한 게 인간이다.

그런데.

물이 튀는 소리와 함께 언니가 풀썩 주저앉았다. 통곡이 피어올랐다. 치렁치렁한 옷소매를 부여잡고 뭐라 말한다. 자기 옷 밑단이 붉게 물들어가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지조 있는 금룡이라 해놓고 매달린다. 마구 구겨진 표정을 외면하고 고갤 돌렸다. 언니의 어깨 너머로 고인 붉은 웅덩이에 얼굴이 비쳤다. 수면에 비친 광경을 본 순간, 등에서부터 소름이 쫙 퍼졌다.

“뭐야!!”


볼을 때리는 찬 바람에 정신이 돌아왔다. 온몸에 감기는 추위에 몸을 웅크리다 익숙한 잠옷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돌아왔다. 나도 참 잠버릇 고약해졌다.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모자라 고시원 밖에까지 나와 서 있다. 도로 한가운데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안심하려던 순간,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순간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피가 고인 웅덩이에 비친 얼굴.

내가 아닌 그 녀석, 누림의 것이었다.



리어카 없이 뒷동네로 들어갔다. 어쩐지 홀가분하다. 하긴, 몸집 큰 아저씨들 여럿이랑 붙어있다 떨어지니 허전한 느낌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용우 아저씨가 떠돌지 않는 요일에 맞춰 들어갔으니 마주 칠 일은 없겠지. 물론 이별 편지는 쓰고 나왔다. 쓰던 리어카 안에 봉투와 함께 집어넣었으니 금방 발견할 것이다.

그래도 아쉽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다. 아저씨들, 그새 다 잊어버렸다. 내가 다른 아르바이트도 몽땅 알아본 뒤에 여기로 결정했단 사실을. 시급 센 곳을 마다하고 운명적인 박봉을 선택한 이유를.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사람들 사이에 잔뜩 섞여있는 악어 눈들에 내가 얼마나 겁먹었었는지. 좋아. 남의 인생이다 이거지. 지나갈 때마다 보이는 악어 눈길에 눌려 용이 없는 곳을 찾기 위해 얼마나 애먹었는지 따윈 상상하기도 싫다고. 사장님도 말은 고민했다지만 속은 아내 편이라 여겼다. 어차피 처음부터 요망한 짐승 어쩌고 하며 싫어한단 티 팍팍 냈으니까.

아, 맞는 말은 딱 하나다. 한번 용과 꼬이기 시작하면 끝없이 꼬인다는 거. 용 때문에 그나마 얻은 자리도 잃었다. 다시 알아본다 해도 고졸짜리 여자가 들어갈 만한 자린 없을 것 같다.

“아이구머니나. 여기서 만나는구만.”

늙은이 특유의 떨림이 섞인 목소리. 뒤돌아보니, 짐 3개와 함께 길 한복판에 선 어느 할머니가 있다. 무심코 눈을 살폈다. 휴, 진짜배기 사람이다.

“어디 쫓기다 왔는가?” “네?” 한숨이 노골적이었나 보다. 급하게 덧붙였다. “그, 그냥 그런 일이 있어요! 할머니랑은 아무 관계없어요!” “그래?” 할머닌 다시 짐을 질 채비를 한다. 모르는 사람이어도 내버려두기엔 보따리가 묵직해 보인다.

“아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래 줄라우?”

말과 함께 왼쪽 손이 내게 보따릴 하나 건넸다. 꽤 무겁다. 보따리 안에서 부딪치는 소리에 정체를 알았다. 병무더기. 하나 들어도 끙끙 소리가 나오는데 나보다 키가 더 작은 할머닌 양손에 달고도 아무렇지 않다. 경험의 차인가.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힘들면 그냥 내 머리 위에 올려놔.”

“아니에요! 괜찮아요!”

예의와 자존심은 보따릴 포기하지 않았다.


땅에 다시 내려다놓고 심호흡을 할 때 할머니의 반가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쓸데없이 내 방에 가득 찬 병을 팔았던 고물상의 주인이 할머니였다. 가게 문 앞에서 저린 어깨를 주물렀다. 할머니도 호흡 한 번 하며 땀을 훔쳤다. 몇 번을 봐도 힘 하난 대단한 어르신이다.

“이거 고맙구만. 오랜만인데 짐까지 들어주고.”

“벼, 별로…….” 내가 한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자주 못 봐서 내가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몰라. 오늘은 안 바쁜 날인 가 보지?”

“네 간만에 좀 한가해졌어요. 비슷한 가게라 생각나기도 했고.” 아, 변명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잘 왔어, 잘 왔어. 늙은이는 사람 보는 맛에 살거든. 어여 들어와.”

닫힌 문을 냉큼 연다. 혼자 사신 게 아닌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집 주변에 병이 꽤 많이 쌓여 있다. 폐지 공장 창고보단 적지만 집 주변을 에워쌀 정도면 아르바이트생도 있다는 증거다. 폐지 공장만큼 널찍해 보이진 않는데 더 받아줄까.

관두자. 인맥이 있다 해도 딱 한 번 만났을 뿐이다. 용우 아저씨랑 마주칠 수도 있다.

“애기야! 손님 왔으니 차 좀 끓여라! 아니, 아니다. 차는 내가 끓일 테니까 너도 얼른 상견례부터 해라!”

집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애기면 며느리인가. 잠깐 들렀다 갈 생각이었는데 차까지 얻어먹게 생겼다. 뭐라 말도 못하는 사이 슬리퍼 끄는 소리가 점차 가까이 들렸다. 할머니에 며느리. 긴장감이 들었다.

“어머니도 참 그렇게 유난 떨면 손님이―”

궁상맞게 등장한 화장실 슬리퍼가 곧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햇빛에 모습을 드러낸 얼굴.

이목구비. 앞머리와 한쪽만 튼 옆머리. 눈동자 색. 입술 색. 하얀 스웨터에 검은색 긴 치마. 전부. 모두가.

엄마의 모습이다.

목소리가 나올 때부터 머릿속 활동이 멈춰버렸다.

(일단은) 엄마도 말끝을 버렸다. 한가해하다 손님을 맞은 웨이터의 웃음으로 멈춰버렸다.

고물상 골목의 모든 소리가 지워졌다. 적어도 내 귀에 흘러들어오는 소린 모두 씻겨져 나갔다. 아무 냄새도 안 난다. 오직 눈만이 바로 앞의 얼굴을 비췄다. 맨 얼굴이라 추억과 더 또렷하게 겹쳤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흙더미 속에서 바로 꺼내 씻긴 후 가져다놓은 것 같다. 옷마저도 마지막으로 봤던 차림이다.

다시 나머지 감각을 살린 쪽은 엄마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대답이라 내 몸까지 깨우진 못했다.

“어머나! 나랑 꼭 닮았네!”

말을 잃어버렸다. 순식간에 벙어리가 된 기분이다.

“어머니, 어머니 이리 좀 와 보세요! 정말 신기해요! 간만의 손님이 제 처녀 때 모습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정말?”

“와서 보시라니까요!”

난 살아있는 동상이 되어 두 사람의 수다를 듣기만 했다. 할머니도 붕어빵이라며 딸자식 같다는 말을 꺼냈다. 그 뒤의 말은 시간이 멈춘 날 제대로 찔러 맞췄다. 정말 딸로 만들어버릴까라고. 입양은 한번도 안 생각해봤다니. 농담조라니.

나는 목소리 톤까지 기억하고 있는데.

마지막에 어떤 표정을 지었었는지 얘기해줄 수 있는데!


엄마는 작별인사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 인사의 의미가 이제야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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