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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에이션트 드래곤 치매 걸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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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15    추천 0   덧글 0    / 2010.02.07 17:36:08

이하 동일(...) 아, 막간에 잘 써야 하는데 아주OTL

* * *

 

어린이 대공원을 넘어 아차산에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걸었다. 길고 펄럭이는 치마에 단화까지 신어 꽤 불편할 것 같은데도 엄만 힘차게 오르막길을 걸었다. 지나가는 아저씨들이 엄마에게 시선을 보낸다. 아무 짐도 없어 가볍긴 하지만 걸음걸이가 너무 즐거워 보이는 모양이다. 실제로 엄만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다. 산까지 올라간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있었던 난 숨이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간격이 벌어지려 하면 입술을 악물고 뒤쫓았다. 엄만 혼자 내버려둘 수 없는 사람이다.

갑작스런 등산의 이유는 엄마의 묘기를 보기 위해서다. 내가 청한 건 아니지만, 엄마의 설렘을 팍 식힐 수도 없었다. 수많은 병들의 출처도 어린이 대공원과 이곳 아차산 주변이었다. 나로선 병 줍기에 어떤 묘기가 필요한 지 알 길 없으니 묵묵히 따라 걸을 수밖에 없다.

등산하기 전, 엄마와 나란히 목욕탕부터 다녀왔다. ‘용 냄새’를 발견한 순간 몸에 해롭다며 엄마가 닦달한 것이었다. 내 코엔 아무 냄새도 없는데 엄마는 시궁창에 빠진 녹슨 구리가 풍기는 냄새를 느꼈단다. 백금용과 붙어 다닌 탓에 금속 냄새가 심하게 배였다고 결론짓고 입던 옷도 세탁소에 맡겼다.

“그딴 냄새, 인간이 맡아도 안 되고 있어서도 안 되는 물질이야.”

물질이라니. 과학 냄새가 풍겼다. 어쨌든 깨끗이 씻고 나오니 기분은 한결 상쾌해졌다.

“아, 엄마!”

생각하며 느릿느릿 걷는 사이 거리가 또 벌어지고 말았다. 엄마가 이렇게 체력이 좋진 않았는데. 함께 등산하면 항상 꼴찌였던 엄마였다. 그새 보약 많이 지어먹었나.

“같이 가요! 이건 등산이, 하아! 아니라 극기 훈련 수준이에요. 극기 훈련!”

“체력 좀 길러야겠다. 아직 봉우리 근처도 안 갔어.”

“그건 그렇지만! 엄마가 너무 빠르다고요!”

목소릴 키웠다. 신호가 된 듯 걸음이 뚝 멈췄다. 크게 뜬 눈으로 뒤돌아 바라본다. 사이를 놓치지 않고 잽싸게 뒤따라왔다.

“정말. 하아. 정말 농담 아니에요. 하. 천천히 가요. 시간 많아요. 한낮인걸요.”

“엄마라고?” “아.”

숨을 고르는 입은 내버려뒀다. 학학거리며 엄마를 관찰했다. 지긋이 바라보는 눈은 자신을 어머니로 대하는 날 이상하게 여긴다.

맞다. 처음으로 돌아가 버렸지. 엄마의 머릿속은 윈도우가 다시 깔린 컴퓨터와 같다. 다시 얘기해줘야 한다. 이름만이 아닌 가족관계도. “아줌마 내 엄마에요.” 아무렇지 않다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아줌마 남편도 있어요.” “그러니?”

되물으며 피식 웃는다. 화끈한 꿈속에 등장한 아빠가 생각났나.

“남편은 얼굴 안 봐서 모르겠지만, 넌 맘에 들어. 정말 내 처녀 때, 아니지. 아니지! 결혼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아니다. 딸이 중학생이면 적어도 10년은 넘었는데. 그럼 난 40대가 아니라 50댄가? 아닌데. 주민등록번호는 분명 40대 쪽이었는데. 이상하네. 내 나이에 대학생짜리 딸을 둬도 괜찮은가?” “엄마 동안이라서 그래요!”

끔뻑 놀란다. 칭찬에 눈이 살짝 빛난다.

“도, 동네에서도 연예인 수준이라며 인기 좋았어요! 화장품 진열대 옆에서 사진 찍으면 포스터 모델 뺨친다는 얘기까지 나왔는걸요? 엄마 거울 보면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생각 안 들어요? 이거 빈 말 아니에요!”

“으음.”

생각에 빠졌다. 칭찬이 칭찬으로 안 들리나. 얼마간 가만히 있다 홀리듯이 대답한다.

“그래서 내가 용한테 꼬였나.”

“네?”

용에게 꼬였다니. 말이 제멋대로 튄다. 동안 얘길 하는데 용이 왜 튀어나오나. 내 생각을 모른 채 엄만 자기 머릿속 얘기에 집중한다. “엄마.” “승아야.” 동시에 불렀다. 난 손짓으로 엄마에게 첫 수를 양보했다.

“혹시 용이랑 꼬인 적 있니?”

“으음.” 있다. 그런데 있다고 말하면 엄마가 어떻게 대답할지 겁난다. 아, 아냐. 겁나기는 무슨. 친엄마랑 딸 사이에 밝히지 못할 얘기까진 아니다. 이미 끝난 일이다.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답했다.

“네.” “있구나!”

손뼉 치는 소리가 울렸다. 엄청 좋아한다.

“아, 다행이다! 없는 사람한테 얘기하면 바보 멍청이 소릴 들을 게 뻔해서 말야!”

“바보 멍청이라니.” “사람이 좀 그렇잖아. 이해 안 가는 얘기만 해줘도 금방 화성인 취급하는 거.”

“요즘엔 용이 흔해서 바보 취급 안 당해요. 주변 사람들 아무나 데려와도 상관없을걸요.”

말하고 곧 후회했다. 어쩐지 진짜 사람 데려와 이야기마당 펼칠 것 같았다. 다행히 엄마는 고갤 저었다. 대신 등산로를 이탈해 풀숲 사일 걸어 내려간다. 무모한 지름길을 탄다.

“엄마!”

“재밌는 얘기 남에게 들려주긴 아까워!”

풀잎을 헤치며 내려가는 등을 멍하니 보다 뒤따라갔다. 내리막길이 꽤 가파른 탓인지 불안이 일었다.



“검은색 동그라미 둘이 남자, 흰색 동그라미 둘이 여자라고 치자. 남자 둘 중 한 놈은 용, 여자도 한쪽은 용이야. 용인(龍人) 사각관계 성립이지! 아마 세상에 내가 최초일거야. 용인 사각관계는! 아무튼 헛소린 이정도로 해두고. 한 여자는 남자를 사랑했어. 그래. 인간 남자가 퍼스트고 용 쪽은 세컨드야. 잘 기억해 둬야해. 용은 세컨드다, 복창 실시! 좋았어. 얘기 계속한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까지 한 다음 아이도 낳았어. 그런데, 그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무지무지 아팠지. 그래, 의사들도 못 고치는 병이었어. 대학도 못 가고 죽을 수도 있었어. 아니,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고 봐야 했어. 남자는 반쯤 포기했지만 여자는 포기할 수 없었어.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더 강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다 여자가 약을 발견하고, 어디 있는지 알아내다 용을 만났어. 그 용은 무슨 일인지 다른 사람에게 잡힌 탓에 정신이 많이많이 망가져 있었어. 여자는 동정심 때문에 용을 도와줬지.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 용은 여자에게 친근함을 느끼고 그녀를 위해 헌신했어. 몸과 마음이 망가져서 제대로 돕긴 힘들었어도 그는 힘껏 사람 그녀를 도우려 했지.

하지만 여자는 자중해야 했어. 누가 봐도 명백한 바람이잖니. 남자도 알고 있었지. 아주는 아니어도 슬쩍 눈치는 채고 있었어. 여자는 먼저 인연을 맺은 남자를 위해 용과의 인연을 포기했어.

그런데, 그 용은 말이지. 여자를 포기하는 척 하면서 하지 않았던 거야. 여자가 얻고 싶었던 약에 슬그머니 마법을 걸어뒀지. 처음엔 여자도 몰랐어. 여자는 몇 년이 지나서야 자신이 처음 용을 만났을 때부터 마법에 걸린 상태였다는 걸 알았단다. 마침 남용이 여자와 다시 만나기 위해 여자의 집을 찾았을 때, 여자는 남용을 쫓아버리기 위해 화살을 쐈지. 아니, 총이라고 해야 하나?

그 때, 일이 터진 거야. 용이 피한다고 몸부림치는 와중에 여자가 사랑하던 남자가 죽고, 마을도 다 무너지고 말았어. 뒤늦게 남용 친구인 여룡이 와서는 얘는 원래부터 정신 이상이었다며 대신 사과하더라. 아주 웃겼어. 진상이 따로 없더라. 애초에 마을에 남용 자식이 나타나기 전부터 왔으면 좋았잖아. 그런데 마치 인간에게 그 거대한 몸집을 떠맡기기라도 한 것처럼 슬그머니 나타나서는! 여룡은 남용을 집으로 데려갔지만 그곳은 남용의 진짜 집이 아냐.

그 녀석은, 다시 올 거야. 분명. 다시 오게 될 거야.“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엄만 긴 이야기를 마쳤다. 땅바닥의 동그라미 네 개 위 수많은 선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만큼 멍청한 짐승이니까.”

멍청한 짐승이란 단어에 허무가 어렸다.

“본래 똑똑하고 능력 있었단 얘기도 안 믿어. 절대 안 믿어. 내 앞에서 어떤 재주를 부리든 간에!”

엄마는 거친 말끝으로 마무리했다. 난 입 꾹 닫고 들었다.

대신 머릿속에서 동그라미가 누군지 끼워 맞추고 있었다.

주인 없는 동그라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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