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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 자살의 메커니즘 by 수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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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수류아[suryua]  
조회 1206    추천 0   덧글 0    / 2010.04.11 21:49:17

■ 나는 자살한다. 죽일 수 있는 내가 있기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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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 오전 1000시 현재 태풍 11호 휘모리가 본격적으로 상륙하여 한반도 전 지역에 재해 경보 2급 이상을 발령중입니다. 군․경․소방대는 24시간 비상근무태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휘모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상 강풍을 동반한 열대저기압은 이름과 달리 느리게 움직였다. 그거야말로 수십 년 전부터 있어온 이상기후 때문이라는데, 자세한 사정은 복잡한 수식과 상식을 넘어선 과학 이론이 접근을 거부했다. 중요한 건, 그 때문에 피해가 예전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증식되었다는 거다.

“빨리 지나가길 비는 마음에 휘모리란 이름을 붙였을 텐데, 역시 성명학은 사장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진래 선생님이 고개를 내리 저었다. 신경질적으로 TV의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지만 어느 채널이나 태풍 관련 기상 뉴스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공중파 이외의 채널은 현재 외부 수신기가 절찬리에 상공을 유영 중이어서 노이즈만 흘러나왔다.

나는 뒤로 밀어 정리된 카페테리아의 식탁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눈앞에는 형형색색의 발포 스티렌 수지 매트리스를 깔고 어느 서바이벌 예능프로그램에서 진행했던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전의 나는 TV를 잘 보지 않았는지 아니면 기억에서 사라졌는지 룰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구속의를 입고 있는 처지라 참가는 어차피 불가능하기에 그다지 눈에 두지도 않고 물러서서 진래 선생님과 구석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진래 선생님은 저기 끼어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 난 누가 다치면 들어가는 응급반이야.”

여전히 하얀 의사 가운 밑에는 하얀 피부 외에 걸쳐진 것이 없는 번뇌 그 자체인 듯한 패션을 한 진래 선생님은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한 손은 주머니에 꽂은 채 딸깍딸깍 소리를 내는 것을 봐선 건물 내 금연 조치를 어길 생각은 없는 듯했다. 아니, 고민 중인가.

“…저, 진래 선생님?”

“응? 왜 그러지, 서수 군? 저기에 끼고 싶다는 핑계로 구속의를 벗게 해달라는 요청은 들어줄 수 없어. 물론 나에게 어른의 시간을 가르쳐 달라는 핑계로도 벗을 수 없지. 아래쪽만 벗어도 충분하니까.”

가르쳐 주시는 겁니까?! 가르침을 청해도 되는 겁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고요,”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후회했다. 어른의 시간이 어떤 것인지의 호기심이 원래 하려던 질문보다 더 큰 호기심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내 입에서 나온 질문은 처음의 호기심에 대한 답만 요구하고 있었다.

“에, 선생님은, 흠흠, 왜 상의를 입지 않는 건가요?”

진래 선생님은 나를 슬쩍 돌아보았다. 실눈인 탓에 날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얼굴의 방향만을 돌렸을 수도 있겠지.

“음, 뭐랄까, 그건 말이지…”

진래 선생님은 입술로 담배를 까닥까닥 거렸다. 딸깍딸깍 소리는 점점 더 템포를 빨리했다. 어지간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목에 뭔가 닿는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거슬리거든. 간지럽고, 꺼칠하고, 섬뜩하고, 끈적하고, 무엇보다 흥분되니까 말이지. 목은 약점이야. 민감해.”

그러고 보니 의사 가운도 위쪽의 깃은 둥글게 잘라내었다. 쇄골에서 위쪽으로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얼굴은 니코틴을 심하게 원하고 있었다.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 담배를 원할 정도로 목에 무언가가 닿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군, 목이 약점이라. 요(要)체크다.

사람들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꼬리잡기 비슷한 게임이었는데 길게 늘어선 열이 선두를 따라잡지 못해 상대편과 부딪혔다. 그 바람에 모두들 나뒹굴고 있었지만 즐겁게 웃고 있었다. 조만간 죽을 지도 모르는 사람들치고는 상당히 밝은 표정이었다.

“저 사람들도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점에서는 일반인과 똑같아. 다만 그 병이 좀 희귀할 뿐이지. 그것이 가져다주는 짐이 조금 무거울지라도 지금이 즐거우면 웃을 수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 거기에 이들은 그 웃음의 소중함을 알지.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이렇게 웃고 싶을 거야. 나나 여기 스태프들은, 그걸 돕기 위해 있는 거고.”

“내일 웃는 것보다 죽어서 편한 걸 택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요?”

“흐음?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이구나, 서수 군은.”

진래 선생님은 기어코 라이터를 꺼냈다. 창문이라도 열고 기대어 피우고 싶겠지만 지금은 태풍의 한가운데 있다. 지포라이터의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그녀는 말했다.

“여기 모두는 살고 싶어 해. 다만 자살 외에 죽을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니까 자신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주어진 선택권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일 뿐이야. 문제는 그 고민 끝에 살아남길 희망한 사람이 몇 없다는 거지만.”

자살 외에는 죽을 방법이 없다?

“이게 다 그 망할 4명이 진리란 것에 닿아버렸기 때문이야. 인간은, 인류는 그 때 끝나버린 거지.”

진래 선생님의 말에 숨겨진 행간은 너무 넓었다. 그 사이에 함축된 내용은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서소 누나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살은 사전적 의미로만 존재하는 단어일 뿐, 실제로 이 세상 모든 죽음은 타살로 설명이 가능하다. 누군가 자기를 죽여야만 했다면 분명 그 사람이 그렇게밖에 하지 못하게 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수아, 그 무언가를 확실히 인지하고 이해하여 마침내 무시하게 되면, 이 병도 금방 사라질 것입니다”-라고. 철치학과의 대학생다운 말이다. 알면 대처가 가능하다라는 발상. 하지만, 그렇다면 자살 외에 죽을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란, 자살하는 것이 너무 쉽다는 것을 체감한 바람에 나머지 죽음에 대한 가능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아닐까. 만약 자신이 자살로밖에 죽을 수 없다면, 그것이 종교의 교리처럼 도덕의 정언명제처럼 확고한 참으로 나에게 다가온다면,

죽지 않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나는 자살 외의 방법으로 죽지 않는다. 그럼 나는 인간인가? 인간임을 증명하려면-

‘역시, 자살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네.’

빈약한 논리지만, 죽지 않으면 증명조차 할 수 없다. 거기다 그 수단이 남들에 비해 고뇌와 번민에 휩싸이지 않고도, 여차하면 무의식적으로도 접근 가능하다면 더욱 그러하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고 있는데도 열고 싶어진다.

‘유애도 미누 씨도 상자를 열고 만 것일까?’

유애를 떠올렸다. 언제나 지면과 얼굴을 마주하던 소녀였다. 아니, 그 시선은 허공을 맴돌았다. 다리. 사라진 다리. 없어진 다리. 잘려나간 다리. 그랬다. 그녀는 다리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다리를 잃었을 때 이미 전부를 잃었다. 없어진 다리를 계속 생각했다. 나머지는 사라지지 못하고 남은 찌꺼기.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사람 사이에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즉, 인간으로 있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빗물과 메스를 몸으로 받아 다리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미누 씨를 떠올렸다.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질 만큼 웃음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한없이 울리는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그는 영역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개인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 사이를 넘나드는 그 또한 인간으로 있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약물로 속과 겉을 전부 채우고 그 또한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길을 떠났다.

‘하지만 떠난 것이 아니라 보내진 것이라면…’

유애의 죽음에는 불가사의한 점이 많았다. 어째서 삼각정원에 홀로 떨어져 있던 것일까. 어째서 메스를 사용한 것일까. 어째서 그녀는, 삼각정원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미누 씨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어째서 C동 약품보관고까지 간 것일까. 어째서 약물을 사용하려고 했던 것일까. 어째서 그는, 절단기를 숨겨놓았는가.

‘자살로는 설명되지 않아. 하지만 타살이라면-’

모르겠다. 눈앞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모습이 마치 TV 속 일만 같다. 「디비디비딥! 와하핫! 다음! 디비디비-」「태풍 휘모리는 최대 풍속 27m/s, 중심 기압 940mb의 중형태풍으로 순간 강우량이 120mm/h에 이를 것으로-」, 노이즈, 「쿵쿵따! 쿵쿵따! 일! 이! 짝! 사! 오-」, 노이즈, 노이즈, 「현재 중부지역엔 태풍 특보가 발효 중이며-」, 노이즈, 「신난다- 재미난다- 더 게임 오브-」, 노이즈, 「현장에 나가있는-」,노이즈, 노이즈, 「다음 색은 페퍼민-」, 노이즈, 「피해 상-」, 노이즈, 노이즈, 「다음은 누가 술래-」노이즈, 노이즈, 노이즈. 사람들의 얼굴이 멀어진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유애가 멀어진다. 미누 씨도 멀어진다. 시각과 청각이 전부 노이즈에 잠긴다.

-그럼, 다음은 누구 차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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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망상魍魎妄想 수류아라고 합니다.

[完] 자살의 메커니즘 32편
/여름/촉수군은 청춘을 구가한다 7편
외인교실의 궤네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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