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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 자살의 메커니즘 by 수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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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수류아[suryua]  
조회 1248    추천 0   덧글 0    / 2010.04.11 21:49:32

■ 세상만사는 대체로 불합리하다. 불합리할수록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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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리에이션은 오후 3시에 막을 내렸다. 그저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피곤한 법이다. 나는 어제의 추락 여파로 더욱 심하게 절게 된 왼쪽 다리를 끌다시피 하여 복도를 걸어 나왔다. 문에 가장 가까이 있어 먼저 나왔지만 이내 사람들의 등을 보며 걸어가게 되었다. 그 걸음들은 의외로 빨라, 어느새 맨 뒤로 쳐졌다. 이윽고 절뚝거리는 발소리밖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내 병실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다. 창밖은 휘모리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언어유희조차 되지 못하는 말장난에 쓴웃음을 짓고 엇박자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복도는 길고 병실은 멀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나 혼자에게는 절대적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창밖을 쳐다본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붉고 하얀 것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어딘가가 익숙했다.

처음에는 유애의 유령이라 생각했지만 내 기억속의 환각과도 닮았다.

시커먼 하늘이 비를 뿌리듯이 그것은 피를 뿌리고 있었다.

전추, 실족, 전락, 비행, 낙하, 추락, 착륙, 충돌, 반동, 착지,

충격.

붕괴.

파괴.

괴사壞死.

괴사怪事.

유령도 환각도 아닌 단순한 착각이었다. 내가 본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단지 이해가 오해가 되었을 뿐이었다. 창문에 닿은 손은 냉담한 사실만을 고하고 있었다. 뇌를 제외한 모든 신체는 차가움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떨어진 것은,

유애처럼 작고 유령처럼 하얀 옷을 입고 있던,

순이었다.

 

“제기라아아알!!”

경파 씨의 욕지거리가 태풍 속에서도 들려왔다. 이미 점으로는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뭉쳐서 쏟아지는 빗물에 우산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얀 장막이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물살이 쳤다. 이런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법한 물의 폭력은 상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순은, 그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B동과 별관 사이에 있는 우천도로의 둥근 천장에 한 번 부딪치고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 그녀는 성한 곳이 없었다. 이상했다. 나도 그렇게 떨어진 적이 있었지만 그다지 다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의문은 별거 아니었다. 그녀는 이번 한 번의 추락만으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커다란 흔적이었기에, 쉽게 발견되었다. 옥상문은 열린 채로 바람에 쾅쾅 벽을 두들기고 있었고 빗물은 계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C동의 외측 계단, 4층의 복도와 옥상으로 이어지는 중앙계단까지 그 자국이 있었다. 커다란 붓에 붉은 먹을 먹여 써 내린 붓글씨처럼, 복도를 화선지로, 순의 몸과 피를 붓과 먹으로 삼아 커다란 획을 남겨 놓았다. 순의 작은 발자국, 피가 쓸려 흘려진 방향, 그 모든 것은 옥상으로 향해져 있었다. 획은 한 번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중간에 끊기거나, 교차하거나 했다. 그 말은 즉,

“어떤 미친 자식이, 이 간호사를 옥상에 끌고 가 죽을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떨어뜨렸다는 거다. 빌어먹을!!”

순은 이전에 말했었다. ‘투신投身에 대한 대비만큼은 완벽하다’. 과연 그러했다. 그녀는 단번에 죽지 못했던 모양이다. 다만, 단시간에 여러 번 시도되었을 경우는 일반 사례를 부수는 만능의 단어 예외에 속해 있었다.

“어떻게, 사람을 옥상에서 한두 번도 아니고 대여섯 번을 떨어뜨리는데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수 있지?!”

그거야 당연하다. 애시 당초 이곳은 외부에서 오는 환자가 드물다. 게다가 특별히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없는 이상 응급환자도 없다. 낮 동안 경비는 A동 앞의 프론트를 지키고 있을 뿐이고 레크리에이션 중에는 중환자가 없는 이상 야간 근무자를 제외한 전 스태프가 환자들과 같이 레크리에이션에 참여한다. C동에서 벌어진 일 따위 이런 태풍 속에선 A동에 소리도 전해지지 못한다. 순이 떨어지는 걸 본 것도 마지막 추락만 B동 외측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왜 지원이 오질 못해?! 뭐, TV를 보라고?! 비상대기태세? 망할,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재난 상황 대비 대기 따윌 타서 어쩌자는 거냐?!”

경파 씨는 휴대전화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부서져라 폴더를 닫은 그는 빗속에서 순의 사진을 찍다 카메라를 던져 버렸다. 그는 스태프를 물리고 혼자 순의 시체를 빗속에서 A동 안으로 끌고 왔다.

“제기랄, 건드리지 마!! 건드리는 새끼를 범인으로 간주하겠어!!”

순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뒤로 묶어 올렸던 머리는 빗물과 핏물과 뇌수로 끈적하게 젖어 있었다. 왼 팔꿈치의 관절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고 오른손목은 뼈를 내보인 채 너덜너덜하게 간신히 붙어 있었다. 양 다리는 아예 관절이 아닌 곳에서부터 부러졌고 갈비뼈부근은 기분 나쁘게 움푹 들어갔다. 연한 분홍빛을 띠고 있었을 간호복은 눈의 초점을 맞추지 않아야 원래의 색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빗물을 뚝뚝 흘리는 순의 사체를 보고서야 나는 간신히 체감했다.

터무니없는 살인마가 이 병원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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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수류아  lv 24 85.64% / 32141 글 1295 | 댓글 2419  
인류최약人類最弱의
망량망상魍魎妄想 수류아라고 합니다.

[完] 자살의 메커니즘 32편
/여름/촉수군은 청춘을 구가한다 7편
외인교실의 궤네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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