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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 자살의 메커니즘 by 수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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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수류아[suryua]  
조회 1378    추천 0   덧글 0    / 2010.04.11 21:50:22

■ 현실의 개가 떨어뜨린 뼈를 얻은 물에 비친 개가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어느 쪽인가 하는 문제는 너무나도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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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닥친 경파 씨에 의해 나는 병실에서 일시 퇴거되어 원래 연히 씨가 쓰던 병실로 옮겨졌다. 복도에서는 그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형사를 우습게보나?! 내가 여기 있는 걸 모르는 놈이 어디 있어?! 그런데도 사건을 일으키다니!!”

타당한 평가였다. 경파 씨는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사건을 일으켰다는 사실보다는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에 화를 내고 있었다. 국가의 권력은 이 병원에서 그다지 위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그를 더 없이 불쾌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경파 씨에게 진래 선생님의 말은 이전과 달리 공감할 여지가 있었다.

“그녀는 자살했습니다.”

“…자살이오?”

“예, 베르테르 케이스로는 드물게, 유서가 있더군요.”

자살. 진래 선생님은 유애나 미누 씨의 죽음도 자살이라고 주장했었다. 순이 죽었을 때는 입술을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지만, 이번 연히 씨의 죽음에는 다시 그녀의 의견을 내놓았다.

“그 유서 볼 수 있소?”

진래 선생님은 들고 있던 봉투를 내밀었다. 경파 씨는 장갑을 낀 채로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두 번 접힌 종이를 펼친 경파 씨는 미간을 찌푸렸다. 병실 침대에서는 내용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얼핏 봤을 때는 새카맣게 종이가 메워져 있었다.

“이 필적은 사망자의 것과 같소?”

“정확하게-라고 한다면 전문가가 아니니 답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글씨체입니다.”

경파 씨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문뜩 나를 쳐다보더니 내가 있는 병실로 들어왔다.

“꼬마, 원래대로라면 네 놈이 제 1용의자지만 그런 옷을 입고선 도저히 범행은 불가능했겠지. 뭐 좋다, 일단 너에겐 이 유서를 보여줘야 할 것 같으니까. 단, 내가 들고 있을 테니 읽도록.”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내 쪽으로 연히 씨의 유서를 펼쳤다. 깨알 같은 글씨로 빽빽하게 A4용지가 채워져 있었다. 초점을 맞추기 위해 눈을 살짝 찌푸렸다.

『이건 유언장이 아니야. 속죄장이야. 내게 숨겨둔 재산이나 들어둔 보험 같은 건 없으니 그쪽으로도 기대하지 마. 대학생은 졸업을 하지 않는 한 개인 연구물은 물론 뇌세포 하나하나에까지 대학이 전부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으니까. 상아탑은 막강하다고.

이야기가 샜네, 흐음. 아, ‘흐음’이나 ‘아아’ 같은 단어는 여기서 필요 없겠구나. 난 현문학과가 아니니까 글을 쓰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아. 내용은 지리멸렬하고 맥락이 없고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무도한 문장이 될 거야. 이해해. 사실 별로 이해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나는 죽어있을 테고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이 무슨 짓을 하던 아무것도 못하니까. 포기야, 포기.

일단 사과부터 할게. 미안해, 유애. 미안해, 미누. 미안해, 순. 미안했어. 죄송합니다. 민폐를 끼쳤습니다. 너희들, 아니 당신들? 음, 존칭은 어렵네. 여러분이 적당한 거 같아. 아무튼 여러분이 받았을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짧은 생에 대해 심심하고 재미없는 사의, 조의, 부의, 경의를 표합니다. 마지막은 아닌가? 상관없겠지. 죽은 자가 경배 받는 건 당연하니까.

하지만 이 속죄장을 읽은 당신. 당신은 내 죽음에 사의, 조의, 부의, 경의를 표할 필요가 없어. 내 죽음은 그들과 달라. 나는 죽어야 할 때에 죽지 못한 비겁자야. 수명을 연장 당했지. 베르테르 케이스에 의한 도축 시기가 늦춰져 버렸어. 저승사자의 방문을 늦춰준 그에게는 면목이 없지만 나는 역시 죽어야 할 때 죽어야 해. 그건 신지학자로서 지켜야할 룰이었다고.

이제 슬슬 속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지. 그래야 이것이 속죄장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테니까. 현문학자들은 이런 귀찮은 걸 어떻게 질리지도 않고 다루는 걸까. 하지만 곧 죽을 테니 그런 것쯤 감안할 거야. 이런 과정은 나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속죄장은 남에게 내 죄를 용서받기 위해 쓰는 거니까 제대로 확실하게 설명해 두지 않으면 곤란하니까.

나는 죄 많은 삶을 살아왔지. 후회한 적은 없었지만. 남에게 후회를 남기는 짓은 많이 했어. 미리 말해두지만 이것 따위는 나에게 속죄를 해야 할 정도는 아니야. 내가 속죄, 죄를 벗고 싶은 것은 억울한 죄에 대한 것이지. 억울하게 지게 되었지만 나 말고는 딱히 그 죄를 지어줄 사람이 없었어. 그 때문에 엉뚱한 사람이 죽고 말았지. 그 죄의 무게는 어중간하지 않아. 그러니 나는 그 죄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이 속죄장을 써.

사과할게. 다른 표현은 잘 모르겠어. 이 글 앞부분에도 조금 썼던 것 같지만 역시 이 표현이 제일인 것 같아.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마침표에 띄어쓰기 포함 500자면 충분히 감정이 전달되었을 것으로 봐. 이런 말은 사족이겠지만 그 만큼 내가 진심임을 알아줘.

정말로, 미안해. 순. 고의였지만, 바라던 바는 아니었어.

순에 추신. 남 탓을 하는 건 좋지 않지만 이건 모두 서수 군 탓(힘 꽉 주고 진하게 써서 강조한 거야. 눈치 챘어?)이야. 들러붙으려면 서수 군에게 들러붙어. 나에겐 죄는 있어도 잘못은 없고 조만간 육신도 없어질 테니까.

읽은 이에 추신. 서수 군에게 보여줘. 이 정도면 그도 반성하겠지. 결자해지를 부탁해.』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건 유언장이 아니고 연히 씨가 주장하는 속죄장 비슷한 것도 아니다. 반성의 기미가 느껴지는 글이 아니었다. 신지학자니까 글을 못 쓴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이건 단지 날 괴롭히기 위해 남긴 저주글일 뿐이다. 내가 유언장에서 눈을 떼자 경파 씨는 그것을 접어 봉투에 넣고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전부 네 탓이란 건 무슨 얘기지? 말해, 이 빌어먹을 꼬맹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두뇌가 아니라 완력이다. 그 점에 있어서 경파 씨는 훌륭한 공권력의 대행자였다. 힘을 휘두르는 방향에 있지만 않는다면 믿음직하기까지 하다. 덧붙여 나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 여선생은 이번에도 자살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자기 손으로 목을 졸라 자살하는 인간이 있을까보냐?! 차라리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죽었다 그러지! 애초에 그녀에게 자기 목을 부러뜨릴만한 완력이 있을 리 없어! 게다가 넌 왜 범행현장에 있었는데도 범인을 못 본 거냐?! 앙?!”

이 순간만은 연히 씨가 죽도록 미웠다. 증오를 받아야할 대상은 이미 세상에 없었다. 내 몸은 경파 씨의 손아귀를 거스르지 못하고 힘없이 흔들렸다.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기회다, 이건. 틀림없어. 슈팅게임에서 보스한테 피탄被彈 당했는데 저쪽에서 동전을 하나 더 넣어준 거나 마찬가지야.’

연쇄살인에서 탐정에게 유리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범인이 사건을 계속 일으키기에 증거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 또 하나는 용의자 목록이 계속 줄어든다는 것.

그리고 범인은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 경찰이 있든 없는 상관하지 않고. 어떤 동기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으면 얼마든지 이후에 수사망을 피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범인은 또 사건을 일으켰다.

‘사건을 일으켜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 건가, 가가, 가가가?!’

“이 자식, 대답을 하란 말이다!!”

태풍 속에 선 것처럼 휘둘렸다. 생각할 여유가 남질 않았다. 벗어나고 싶어도 단단히 고정된 구속복의 벨트는 느슨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태풍이 멎었다. 멎었다기보다는 눈에 들어와서 잠시 조용해진 것뿐이다. 경파 씨는 때를 놓칠 새라 부 씨를 데리고 서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기 직전까지 시달렸던 나는 간신히 숨을 돌렸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경파 씨는 눈이 지나가기 전에 돌아올 테니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경고했으니까. 그가 돌아오면 수사고 뭐고 나는 중요참고인 자격으로 끌려 다니게 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 그 전에 뭐든 해 봐야해.”

처음부터 다시, 천천히 사건을 돌아보았다.

8월 7일 새벽. 유애가 죽었다. 하양누리병원 본관 A, B, C 세 개 동 가운데 있는 삼각정원에서 몸에 수십 개의 메스가 꽂힌 채 발견되었다. 출입구는 잠겨있었고 열쇠는 그녀의 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 휠체어가 산산조각이 나있었고 주변의 나뭇가지도 꺾여있었다. 유애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경파 씨는 다른 곳에서 살해하고 옥상에서 떨어뜨렸다고 주장했다.

8월 9일 밤. 미누 씨가 죽었다. C동의 약품보관창고에서 오버도스 상태로 발견. 문에 걸려있던 자물쇠는 절단기로 뜯어낸 흔적이 남았지만 절단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캐비닛은 엎어지고 약병은 깨져 뒹구는 난장판이었지만 거기서 증거물이 될법한 것들은 전부 경파 씨가 수거해갔다.

8월 12일 오후 3시경. 순이 죽었다. 병원을 두르듯이 설치된 우천도로 지붕에 서너 번 반복해서 떨어져 충격을 입고 마지막에는 A동 앞쪽으로 떨어졌다. 비와 부 씨의 청소로 인해 정확히 어디어디에 떨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C동 외부계단과 4층 복도에 피를 흘리며 지나간 자국이 있었다. 부 씨가 유일하게 젖은 채로 나타나 경파 씨가 부 씨를 유력 용의자로 체포했다.

8월 13일 새벽. 연히 씨가 죽었다. 자고 있던 침대 위에서 목이 졸려 부러진 채 발견되었다. 유언장인지 속죄장인지를 남겼고 그 덕택에 조만간 나는 중요참고인이 되어버린다. 잔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라.’

나는 스스로 떠올린 생각에 자조했다. 여기 있는 사이 워낙 놀기만 해서 잘 인지하지 못했었는데 여유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베르테르 케이스 판정을 받은 사람은 내일 당장에 시체가 되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머릿속을 번개가 치고 지나갔다.

“…설마, 경파 씨가 있는데도 사건을 저지른 이유가….”

4개의 사건 사이에 빈 공간으로 남았던 퍼즐조각이 채워졌다. 완성된 그림은 너무나도 이상했다. 이 연쇄의 고리는 부자연스럽다. 아직 내가 모르는 미싱링크가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체상의 커다란 진상眞相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 본디의 모습 자체가 불가사의했다.

“그래도, 이거면, 뭘 조사해야할 지는-”

아아, 명백하다. 흐음. 뭔가 연히 씨다운 생각을 해낸 것 같다.

 



태그
24 수류아  lv 24 85.64% / 32141 글 1295 | 댓글 2419  
인류최약人類最弱의
망량망상魍魎妄想 수류아라고 합니다.

[完] 자살의 메커니즘 32편
/여름/촉수군은 청춘을 구가한다 7편
외인교실의 궤네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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