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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 자살의 메커니즘 by 수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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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수류아[suryua]  
조회 1258    추천 0   덧글 0    / 2010.04.11 21:52:36

■ 막이 내리기 직전에 웃는 녀석이 범인이다.

 

“빌어 처먹을!! 놈은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

경파는 보편적인 늙은이들을 지구적으로 저주했다.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변화를 감지하고도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해 태풍의 진행속도가 수십 년 전보다 네 배로 느려져버린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고 경파는 생각했다. 느려진 태풍 탓에 한반도의 여름은 몇 년에 한 번 장마가 지나간 다음에도 강렬한 태양빛을 극적으로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대신 진짜 벼락과 물벼락이 쏟아지지만.

그리고 그 물벼락을 맞으며 병원 울타리 안을 샅샅이 뒤지던 경파와 몇몇 스태프들의 도망친 서수의 흔적을 뒤졌지만 소득은 그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것뿐이었다. 병원을 둘러싼 울타리는 태풍 속에서는 건강한 장정도 올라갈 수 없었고 그와 상응하는 단절성을 과시하는 바리케이드 같은 접이식 미닫이 철문은 굳게 잠긴 채였다. 몸을 가누기 힘든 비바람 속에서의 수색의 어려움은 도주의 어려움과도 일맥상통했다. 그렇기에 나온 판단이었다.

“서수를 일련된 8월의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단정하고 지금부터 정식 수색에 들어가겠소! 스태프 여러분의 협조를 부탁하오!”

공권력을 앞세운 부탁을 가장한 정중한 명령이었다. 독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있었지만 경파의 눈은 발버둥치는 설치류보다는 맹금류에 가까운 위압감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 젠장맞을 놈은 분명히 이 본관 어딘가에 있어! 정문과 쪽문, 후문을 비롯한 모든 본관의 문을 봉쇄하고 하나하나 뒤져나가면 제까짓 놈이 어쩔 수 있겠나?! 그 눈에 띄는 흰머리를 안 보이게 꼭꼭 감출 수도 없겠지!! 술래는 그 녀석을 제외한 전부다!!”

상의를 쥐어짜며 그는 이를 갈았다. 맨몸에 홀스터를 매고 그 위에 구겨진 와이셔츠를 대충 걸친 경파는 호통에 가까운 지시를 내렸다. 스태프들은 레지던트, 인턴 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느꼈고 행동도 빠릿빠릿해졌다. 환자들은 각자의 병실에 감금되다시피 격리되었고 스태프들은 교대 근무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지구의 그림자 현상으로 인해 생겨난 신체의 리듬을 거역하고 그들의 정신은 긴장 속에 깨어나 있어야 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알겠나?! 놈은 경찰이 있고 없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살인을 저지른 미치광이야!! 이판사판으로 이쪽을 공격할지도 모르니 다들 조심하라구!”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들 사이에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지도 모르는 괴물이 하나 이간으로 의태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인간은 생각을 재배할 수 있는 동물이었고 그 생각은 자신이 잠든 사이 상대가 멱을 따러 올지도 모른다는 방향으로 자라 공포라는 열매를 맺었다. 그것은 지나치게 성능 좋은 각성제가 되어 환자들은 출입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있는 문을 바라보게 했고 복도를 돌아다니는 스태프들의 손에 사람을 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사람을 효율적으로 부술 수 있는 둔기를 들게 했다. 일련의 변화는 극적으로 다수가 일자를 증오할 수 있게 했다.

서수는 그들 안에서 세상 최악의 살인마로 돌변해 있었다.

 

“제길, 갑자기 무슨 난리지?”

한 밤중에 갑자기 원내의 모든 사람들을 부를 때만해도 유반은 이게 웬 떡인가 생각했었다. 태풍의 눈에 들어간 사이 병원에 침입한 것은 좋았지만 지금 날씨로 다시 몰래 나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양누리병원은 엄청나게 넓지만 입원환자와 스태프의 숫자는 상당히 적고, 평소 잘 쓰이지 않는 창고는 얼마든지 있으니 숨어 있다 태풍이 개면 나가려고 했던 유반에게 원내의 모든 사람이 한 곳으로 몰리는 것은 등잔 밑에 숨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사람들이 모일 장소인 카페테리아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기로 한 선택도 그 당시에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역시 숨어든 게 들킨 걸까.”

명백하게 수색을 시작한 스태프들의 소리에 유반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 병원은 입원환자 혹은 그 가족이 아니면 들어올 수가 없게끔 되어 있었다. 이미 유애가 퇴원-그것도 최악의 이유로-한 상황에서 자신은 정식 절차로는 출입을 허가받지 못했다. 보초가 없는 게 이상할 정도의 폐쇄적인 병원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유반은 자신을 법보다 상위가치에 두는 것을 택했고 그 리스크는 지금 상황에서 최악의 형태로 나타나려하고 있었다. 자신의 발소리는 최대한 줄여야 했고 남의 발소리는 개미의 것만큼 작더라도 신경 써야 했다.

“…또, 누가 오나.”

유반은 선반으로 가득한 창고 한 켠에 몸을 숙였다. 그에게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자기는 어두운 곳에 있고 상대는 밝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손전등을 들고 있기는 했지만 위치파악에 있어 어느 쪽이 유리한가는 자기의 몸을 확인할 것도 없이 뻔했다. 유반은 침착하게 광원이 방사되는 반대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고 서수가 어디서 습격해 올지 모른다고 방사각의 반대편을 흘깃흘깃 쳐다보던 스태프는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복도의 형광등 아래로 손전등의 불빛이 잠기는 것을 확인하고 유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그는, 바깥의 불빛과 전구의 스트레이트한 광원에 익숙해진 그의 눈은, 같은 어둠 속에 있는 그림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크읏?!”

목을 움켜쥔 손아귀는 유반의 호흡을 순식간에 틀어막았다. 당황한 그는 목을 조르는 손을 잡았다. 그 손에는 짐승의 발톱으로 할퀴어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굳게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 의도를 떠올리고 경악한 사이 가볍게 들어 올려진 유반은 등을 벽에 세게 부딪혔다. 감전된 것만 같은 충격에 시야가 반전했을 때 그는 허공에 새파랗게 빛나는 두 개의 눈동자를 보았다. 시리게 내려다보는 눈에 어색함을 느낀 유반은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경동맥이 눌려져 산소를 공급받지 못한 뇌가 의식의 끈을 놓아버리는 데에 약 10여초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 동안 유반은 자신을 잡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이었다.

“설, 마, 그런-”

상대의 팔을 붙잡고 있던 유반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림자는 손에 감았던 붕대를 풀었다. 붕대 안의 새하얀 손에 상처는커녕 멍 자국도 없음을 확인하고 그림자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창고의 물품 운반용 카트에 붕대와 같이 유반을 올려놓고 시트를 아무렇게나 덮었다. 그리고 여유롭게 창고에서 나왔다.

형광등의 새하얀 빛으로 물든 복도를 카트가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밀고 있는 하얀 손의 주인은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살인마를 쫓는 스태프들의 불안한 얼굴이 스쳐지나가지만 그들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살짝 숙여 그림자가 진 얼굴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콧노래에는 웃음기가 섞여 들어갔다.

복도의 끝에서 카트가 멈춰 섰다. 카트를 끌던 그림자는 고개를 돌려 주변에 누가 있는지를 살폈다. 좋아, 아무도 없다. 유반을 덮었던 시트를 펼쳐 바닥에 깔았다. 침대보용 시트는 상당히 넓게 바닥을 가렸고 그 위로 카트를 끌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외부계단으로 향하는 문을 밀어젖혔다.

휘이이아아앙!!

위층으로 이어진 계단은 도저히 폭풍의 가림막이가 되지 못했다. 건물 안으로 몰아치는 비바람 속으로 그림자는 카트를 밀었다. 빗속으로 들어온 후 문을 닫으며 재빠르게 시트를 끌어당겼다. 시트 덕에 복도가 그다지 젖지 않은 것을 보고 그림자는 미소 지었다.

그림자는 카트에서 유반을 끌어내렸다. 그의 목에 붕대를 감고 계단 난간에 반대편을 묶었다. 창고에서처럼 그림자는 유반을 손쉽게 들어 올렸다. 하나, 둘, 셋 하는 호흡으로 그를 난간 밖으로 내던졌다. 유리와 암실의 거울효과로 그림자는 자신의 행동을 조심스럽게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던져진 유반도 의식을 잃고 있던 터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입에 거품을 물었다.

몸을 움찔거리며 숨이 조용히 끊어지는 과정을 느긋하게 바라보던 그림자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입에 물고 라이터를 들어 불을 붙여 보려했지만 불은 붙지 않았다. 딸각, 딸각, 딸깍, 딸깍, 딸각, 딸각. 라이터의 레버를 신경질적으로 조작하는 그림자의 얼굴에는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동안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다시 주머니에 꽂고 한 손으로 빈 카트와 젖은 시트를 집어 던졌다. 카트는 폭풍 속에서 이렇다 할 소음을 내지 못하고 바닥에 추락했고 시트는 바람에 날려갔다. 젖은 담배를 입에 문 채, 그림자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자는…”

빗속으로 나온 경파는 외부계단 난간에 매달린 커다란 추를 보았다. 그 추는 무게를 잰다는 일반적인 통념상의 역할과는 동떨어져 있었으며 그 소재 또한 상이했다. 다만 그 추는 이 세상 무엇보다도 무겁지만 또 한없이 가벼운, 사람의 목숨을 재고 있었다.

“분명 처음 죽었던 유애의 오빠다. 어째서 이런 곳에, 이런 꼴로…?”

외부계단으로 나온 것은 극히 우연한 일이었다. 신경질적으로 C동의 창고를 돌며 수색을 하던 그는 버릇처럼 담배를 입에 물었고 동행하던 스태프가 ‘피우려면 밖에서 피워라’는 정중한 핀잔을 날렸다. 경파는 ‘담배는 여럿이 피워야 맛이 난다’는 추파로 답하고 스태프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를 끌고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머리를 식힌다는 목적을 겸한 장난 같은, 혹은 투정에 가까운 행동이었으나 결과는 붕대에 매달린 시체와의 조우였다.

물을 흠뻑 먹은 유반의 시체는 두 명의 남성 스태프가 낑낑대며 끌어 올렸다. 빗속에서 차갑게 굳어버린 시체는 언제 죽었는지 추정할 수 없었다. 유반이 병원에 몰래 숨어들어온 시간은 경파가 병원에서 빠져나간 태풍의 눈이 머물렀던 때라는 목격 증언은 이곳저곳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1700시를 이후로 그의 행적은 완전히 끊겨 있었고 그가 어째서 여기에 남아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증언을 한 환자들은 그가 유애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만 했다고 했다. 그것도 매우 상피적인, ‘유애는 잘 지냈나’ ‘여기 와서 유애는 행복했던가’하는, 오빠로서 동생의 마지막 있던 곳의 추억을 수집했다는 뒷맛이 쓰린 이야기. 허나 경파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했다. 그는 유반의 목을 조르던 붕대가 서수의 왼쪽 발목을 덮었던 붕대와 같은 것임을 주목했다.

“그가 공범이었나?!”

이 병원에서 사람을 죽일만한 녀석은 서수뿐이다. 고로, 이 빌어먹을 피사체도 서수의 작품이며 서수에겐 그만의 이유가 있어서 죽였을 것이다. 미치광이에겐 미치광이 나름의 로직이 존재한다. 이 사체가 카페테리아에 사람들이 모인 2200시 이전의 작품이라면 태풍이 지나가기 전까지 발견되지 않는다는 생각 또한 가질 법 했다. 설령 2200시 이후의, 도주 중의 역작이라고 한다면 서수와 유반의 특별한 접점이 있었음을 가정해야 했고 그 결론을 내리는데 경파는 오컴의 면도날을 사용했다. 단순하게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서수는 내가 조사를 계속한다는 사실을 유반에게 알렸고 유반 또한 그것에 대해 의논할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이지. 그리고 서수는 공범자를 처리하기 위해, 혹은 둘 사이의 의견 충돌이 있었고 그를 살해했다…”

그 면도날로 여기저기를 잘라낸 듯한 구멍투성이 구성이었지만 잡고 나면 모든 것이 명확해 진다, 경파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서수, 라는 전제가 그의 뇌세포에 기름칠을 하고 있었다. 경파 자신은 그것이 엔진오일처럼 매끄럽게 머리를 회전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진실은 어찌되었든 경파에게는 그 해석이 매우 마음에 들었고 실제로 두뇌회전의 원동력으로도 작용하고 있었다.

“여기에 유반을 옮겨 넣으려면 필연적으로 비를 맞을 수밖에 없어! 따라서 살해는 2200시 이후에 일어났다! 2200시에 모인 모든 이들 중 젖어있던 녀석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현재 그 빌어먹을 자식은 흠뻑 젖어있겠지!! 바깥에 있다간 그 자신도 얼어 죽을걸?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면 물기가 남아 있을 거야! 서둘러서 외부계단의 문들을 확인해 보도록!”

지시에 따라 스태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경파의 입가가 사납게 미소 지었다.

“빌어먹을 놈. 그래, 네 놈이 어디로 도망치든 이제 손바닥 위다.”

경파는 서수를 독안에 든 쥐라고 생각했다. 손을 뻗어 잡기는 힘들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뻔했다. 경파는 계단의 난간을 붙잡은 채 골골이 생각했다. 그는 다시 비에 젖어 몸에 들러붙는 셔츠를 짜증스럽게 바라보았다. 자신의 꼴 또한 물에 빠진 생쥐 꼴이라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수사의 기본 매뉴얼 중 하나인 범인과 자신의 생각을 일치시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내가 그 망할 놈이라면…?”

경파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위아래로 갈라진 계단. 어느 한 쪽으로 올라가는 서수의 뒷모습이 그의 망막에 환상처럼 그려졌다. 어둠 속을 노려보면서 경파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태그
24 수류아  lv 24 85.64% / 32141 글 1295 | 댓글 2419  
인류최약人類最弱의
망량망상魍魎妄想 수류아라고 합니다.

[完] 자살의 메커니즘 32편
/여름/촉수군은 청춘을 구가한다 7편
외인교실의 궤네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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