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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 27 - 검은장미인형록 (4차 리뉴얼 개시) by Seren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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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T.S. - #4. 그저 그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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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SerenJ.U.[efiangel]  
조회 1090    추천 0   덧글 0    / 2007.07.11 16:32:45
#4. 그저 그런 하루


아침 5시.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갈 준비를 하였다. 소녀는 아침을 로비로 가져다 달라고 프론터에 메모를 보내고 로비로 나왔다. 로비에는 역시나 하나우미가 책장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나우미 씨.”
“그래. 안녕.”
하나우미는 책장을 넘기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소녀는 어젯밤에 읽은 책을 책장에 꽂아놓고 다른 책을 꺼내 그녀의 옆에 가서 앉았다.
“책 읽는 거. 생각보다 재밌네요.”
“그래. 재밌으면 다행이다.”
하나우미는 책장을 넘기며 대답해주었다. 그렇게 둘이 책을 읽고 있는 사이, 아주머니가 우리 둘의 아침을 가져왔다.
“아침 왔다. 맛있게 먹어라.”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둘은 짧게 대답하고 책을 옆에 내려놓았다. 아주머니는 잘 먹으라고 하며 다른 방으로 갔다. 소녀는 탁상 쪽으로 몸을 당겨서 식사를 덮고 있던 덮개를 치웠다. 하나우미도 소녀처럼 몸을 당겨 탁상에 몸을 가깝게 하였다. 소녀는 여기서 매 식사 때마다 한결같은 행동을 하며 한 숟가락 뜨고 감동받고, 한 젓가락 뜨고 또 감동받고를 반복했다. 하나우미는 별로 대단치도 않은 걸로 요란 떤다며 중얼거렸다. 소녀는 그녀의 말에 숟가락을 멈추고 고갤 돌려서 젓가락을 그녀의 앞에 찌르듯이 내밀었다.
“그건 잘못된 말이에요! 대단치 않지 않아요!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요! 하나우미 씨 말대로 지구가 인간이 살 수 있게 되는데 59억9000만년! 하지만, 역으로 따지면, 인간이 이 지구상에 존재한 건 1000만년! 그 1000만년 동안 인간은 밥을 먹고 성장했다고요! 그런 중요한 촉매를 대단하지 않다고 하면 안돼죠!”
하나우미는 소녀의 말을 듣더니 한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리고 소녀의 들이민 젓가락을 치우며 말했다.
“그래. 대단한 원동력이지. 정말 대단한 원동력이고말고.”
“그렇죠. 헤헷.”
소녀와 하나우미는 서로를 보며 키득거렸다.
“확실히. 붙어 다니는 군.”
소녀와 하나우미는 3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계단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 남자가 계단에서 내려오더니 둘의 맞은편에 앉았다.
“에, 그러니까….”
“류상혁이다. 사람 이름을 외우는 건 어때. 마법사들.”
“마법사?”
소녀는 상혁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법사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상혁은 우리를 보며 시치미 떼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마법사가 뭐냐고? 너희가 마법사잖아. 너희도 E-26 때문에 왔다면 정보를 나눠보자고. 너희들을 여기서 체포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아는 걸 말해.”
소녀는 상혁의 말에 어이가 없어졌다. 마법사라는 무슨 밤하늘에 별 잡는 듯한 말을 하더니, 이번엔 체포하지 않을 테니까 아는 걸 말해라?
“무슨 말이냐고요. 것보다 무슨 말인지 저――”
“이봐. 류상혁.”
하나우미는 소녀의 앞을 팔을 뻗어 가로막더니 짜증난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 마법은 약 2000년 전에 사라졌다는 세계의 상식도 없어? 게다가 당신이 뭔데 우릴 체포하고 말고야. 경찰이라도 돼? 아니, 경찰이라도 아무런 죄 없는 사람을 잡아갈 수 없지. 그럼 당신이 법이야? 이 나라에는 법이라는 게 있다고. 게다가, 설령 나랏법으로 잡을 수 있다고 해도, 연합법을 무시할 수 있어? 기가 막히는군.”
상혁은 하나우미를 보며 계속 시치미 떼면 재미없다고 으르렁거리며 우리를 노려보았다. 하나우미도 그런 그에게 지지 않고 대구를 하였다.
“만일 우리가 백보 양보해서 마법사라고 합시다. 그럼 우리가 마법이라는 것을 쓰는 걸 당신이 봤습니까? 그리고 물증이 있습니까? 목격자가 있습니까? 오직 당신의 심증. 이 하나뿐입니다. 이 이상,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면, 저희가 당신을 모함죄로 연합법원에 고소하겠습니다.”
상혁은 하나우미의 말에 눈썹을 까딱거리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쳇. 마법을 쓰는 것을 확인만 할 수 있어도, 끝나는 건데.”
“그거 참 유감이네군. 마법이란 건 본적도 들은 적도 없어서 어떻게 쓰는 건지 감도 안 오는데.”
하나우미와 상혁은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다가 자리에 앉았다. 상혁은 물증만 잡히면 보자는 듯이 둘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나우미는 기분이 나쁜지 소녀에게 어서 밥 먹고 딴 데로 가자고 했다. 소녀도 그에게 터무니없는 의심을 받는 사실이 기분이 나빠져선 하나우미의 말에 그러자고 하고 서둘러 밥그릇을 비웠다. 그리고 읽던 책을 가지고 하나우미와 함께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상혁은 소녀의 방으로 들어가는 둘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둘이 방으로 들어가자 금발의 남자가 계단에서 내려왔다.
“또 붙어있군. 저 둘.”
“대충 그런 거 같아.”
상혁은 내려오는 그를 보며 말했다. 그는 머릴 긁적이며 한숨을 쉬곤 상혁의 옆에 앉아 리모컨을 들었다. 상혁은 소파에 기대어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봐. 양천.”
“왜.”
양천이라 불린 그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볼만한 것을 찾았다. 상혁은 그를 말없이 바라만 보다가 고개를 들어 몸을 앞으로 숙였다.
“하아. 일은 꼬이고. 너는 어때? 원하는 거 건진 거 같아?”
“글쎄다. 영 아니야. 그건 그렇고, 하나우미가 회사의 비밀 직원이 아니다는 말은 아직 신뢰할 수 없지만, 그 마법사라는 거. 저 꼬마에 대해서는 믿지 못하겠지만, 믿어야 할 듯 해.”
상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양천은 TV채널을 한 곳에 멈추고 말을 이었다.
“그 미화라는 애. 가명이던데. 그리고 네 말에 따르면, 마법사라는 녀석들은 자기 이름을 숨기고 서로 암호명으로 부른다고 했잖아. 그 아이, 이름을 말해라고 했을 때, 약간 더듬거리기도 했고.”
“그렇지. 기자가 좋긴 하네. 정보도 빠르고. 그런데, 무전기조차도 연락권 밖으로 되는 이곳에서 그런 정보를 구하다니, 제법이다.”
양천은 그의 말에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런다는 듯이 비웃었다. 그리고 소파에 기대어 앉으며 말했다.
“생각해봐. 우리가 프론터에 연결된 인터폰으로 서로 다른 방에 연락할 수 있어. 그리고 프론터는 외부 건물과의 연락이 가능한 회선이 있지. 프론터가 퇴근하고 이안에 우리들만 있는 시점에서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아. 다른 한 명과 미리 짜두고 정해진 시간에 프론터를 거치는 인터폰을 하는 거야. 이건, 단지 연기. 그리고 나는 사전에 손봐둔 회선을 통해서 외부와 연락하는 거지.”
“아무리 기자라도 그런 게 기본인 사람은 없다고.”
상혁은 양천의 말에 손을 저으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양천은 가사롭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채널을 또 다시 바꾸었다.
“연합 공무원은 실력만 있으면 연쇄살인범이라도 등용하는 세상이야. 일반 회사라고해서 안 그럴 거 같아. 요즘 진짜 특종 물어오는 기자는 물불 안 가리고 막장가는 막가파들이라고. 머리가 특출나게 좋거나, 레어스킬정도는 있어야지.”
“하아―――”
상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후 시끌시끌해지며 사람들이 계단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슬슬 시간이긴 하네.”
“그래.”
둘은 계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로비에 내려와 자리에 앉고, 카드도 하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상혁은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았다.
“앞으로 3분인가.”
“저기 오네.”
양천은 창밖을 보며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규영을 가리켰다. 그때, 소녀의 방문이 열리며 소녀와 하나우미가 나왔다. 그러자 로비의 분위기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이 확 가라앉더니 다들 둘을 경계하며 한쪽에 몰려 앉았다. 하나우미는 소녀에게 책을 받아서 책장에 꽂고 함께 계단 쪽 자리에 앉았다.
“자기 할 말도 못하는 것들이.”
“하나우미 씨.”
소녀는 그녀에게 그만해라고 주의를 했다. 그 때, 헛기침소리가 들리더니 프론터 직원을 앞세운 규영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소녀와 하나우미의 뒤에 서서 목례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소녀는 몸을 돌려서 그의 인사에 답을 하였다. 하지만, 다들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인사를 받아주지는 않았다. 규영은 머릴 긁적이며 머쓱하게 웃었다.
“아하하…. 아직은 환영받을 분위기는 아니군요. 네, 그럼 화제를 돌려서. 어제 저녁에 식사와 함께 선금이 지불되었습니다. 모두 아침은 드셨죠? 그럼 지금 바로 연구동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질문 있으신 분?”
규영은 고개를 돌려 모두를 보더니 돌아섰다.
“자, 그럼 가죠.”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규영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하나우미도 자리에서 일어나 소녀와 함께 내려갔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들과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그럼 우리도 이만 가볼까.”
양천은 하나둘 내려가는 사람들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혁은 그의 말에 그러자고 대답하며 사람들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연구동으로 가는 길에 소녀는 뒤를 한번 돌아보았다. 세 패로 나눠진 사람들. 자신과 하나우미. 그리고 금발의 남자와 상혁.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신경 쓸 거 없어. 위험한건, 저 뒤에 오는 둘이지. 먹이를 물기 위해 조여 오는 맹수들이니까.”
하나우미는 소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소녀도 그녀를 보며 ‘그렇죠’라고 대답했다. 그 사이, 연구동에 도착한 모두는 처음에 주사를 맞았던 방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열아홉 명의 연구원이 각각의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규영은 모두의 앞에 서더니 손뼉을 쳐서 시선을 모았다.
“자자, 여길 보세요. 이번 약은 지난번보다 양이 좀 많습니다. 그래봐야 지난번은 8밀리고 이번 것은 10밀리지만요. 아무자리나 앉으셔도 됩니다만, 장미화 씨.”
“네.”
규영은 소녀를 바라보더니 가장 왼쪽 자리를 가리켰다.
“지난번에 고열과 이상 증상을 고려하여 약의 농도와 양을 조절했습니다. 그러니, 저 자리에서 맞으세요.”
“네.”
소녀는 그의 말에 대답하고 그가 가리킨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다들 자기가 편하다 싶은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짧은 주사 시술이 있은 후, 규영은 모두를 보며 말했다.
“네. 제 2차 접종이 끝났습니다. 앞으로 3일 후에 다시 접종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지금까지와 별로 다를 것 없는 숙식동 생활입니다. 하지만, 따분하지 않습니까? 회사의 견학코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원하시지 않으신다면야, 그냥 방으로 가서 쉬셔도 되지만 말이죠.”
사람들은 귀찮다는 듯이 그냥 가서 쉬겠다고 했다. 소녀는 그들을 보며 ‘사람 무안하게, 뭐하는 거예요’라고 하더니 규영을 보며 손을 들었다.
“저는 가요. 책도 읽고 싶지만, 눈으로 보는 것도 좋으니까요.”
“감사합니다. 미화 씨.”
규영은 소녀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하나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럼 별 수 없군. 나도 그 견학이라는 것 좀 해야겠어.”
상혁은 둘이 견학을 하겠다고 하자 양천을 바라보았다.
“이봐. 우리도 저 견학이라는 것 가야겠는데.”
“젠장. 나는 방에서 자려고 했는데.”
양천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짜증을 내더니 손을 저었다.
“미안. 나는 이번에 빠질게. 내키지가 않아. 기분도 지금 주사를 맞고 나서 영 찜찜하고.”
상혁은 그의 말을 듣더니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둘을 보며 그에게 말했다.
“그럼. 이번은 내가 혼자서 하지. 그리고 특별한 일이 있음, 알려주지.”
“그거 감사.”
양천은 상혁의 말에 고맙다고 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상혁은 ‘괜찮아’라고 하더니 규영에게 다가갔다.
“나도 괜찮겠지.”
“물론이죠. 괜찮고말고요.”
규영은 싱글벙글거리며 다른 사람들도 바라봤다. 하지만 사람들은 벌써 양천을 선두로 세워선 숙식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양천은 그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우리는 방으로 돌아갈 테니까, 구경 잘 해라고.”
“세 명이 끝인가요? 더 없어요? 더 없어요? 네?”
규영은 한 사람이라도 더 늘려보려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붙잡았지만, 다들 매몰차게 거절하며 양천을 따라 숙식동으로 돌아가 버렸다.
“하아. 사람들이 이래서야.”
규영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더니 돌아서서 셋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애절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세분은 저를 버리시지 않을 거죠? 네?”
“네!”
소녀는 손등으로 이마를 치며 대답했다. 하나우미는 ‘미화가 간다면야’라고 하며 머릴 긁적였고, 상혁은 말없이 둘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규영은 뭔지 모를 기운 빠지는 동작을 취하더니 안주머니에서 어디서 구해왔는지 가이드용 손깃발 같은 것을 꺼냈다. 그러더니 힘없이 그것을 흔들었다.
“네~. 그럼 세분을 모시고, 회사 견학을 하겠습니다. 더 많은 분을 모시지 못해서 아쉽지만….”
“푸후훕―――”
소녀는 규영의 말이 재밌는지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았다. 규영은 식은땀을 흘리더니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고 헛기침을 했다.
“흠, 흠…. 네.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갈 곳은 이 연구동입니다. 그리고 연구동 다음은 생산동. 그리고 생산동 다음은 사무동. 그 다음은 숙식동으로 돌아가는 거죠.”
“그렇게 길지는 않은 거 같은데. 연구, 생산, 사무. 고작 세 개잖아.”
규영은 하나우미의 말에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을 열었다.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셋은 그의 뒤를 따라 방을 나왔다. 규영은 셋이 방에서 나오자 문을 닫고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가리켰다.
“이 위가 우리 회사의 신약을 연구하는 연구실이 있는 곳입니다. 1층은 그저 휴식 공간으로 있는 거고 말이죠. 이 위는 말입니다.”
규영은 계단으로 올라가더니 반쯤 가서 셋을 바라보았다.
“자, 이쪽으로.”
규영은 그들이 자기를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위로 올라가며 주의와 설명을 이었다.
“여기 있는 장비는 실험에 사용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건들지 말아주세요. 신약개발은 장비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하거든요.”
규영은 옆에 있는 유리관을 만지려는 소녀의 손을 손깃발로 살짝 쳐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저희 장화제약은 3150년이라는 꽤 긴 역사를 가진 회사입니다. 그래서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신약개발에 회사 이익금의 70%를 쏟아 붓고 있죠. 그렇게 막대한 자금과 인재를 들여서 전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국내 제일의 제약 회사라는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겁니다.”
규영은 돌아서서 뒷걸음으로 가더니 무균실험실이라고 적힌 곳 앞에 서서 손깃발로 그곳을 가리켰다.
“여기가 주실험실인 무균실험실입니다. 여기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신을 산소소독을 하고, 그 다음에 살균 처리된 저기 보이는 우주복같은 실험복을 입고 들어가야 한답니다. 우리들이 숨 쉬며 내뱉는 이산화탄소조차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뭐, 그런 세세한 건 넘어가고.”
규영은 다시 돌아서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설명하며 올라온 반대쪽 계단으로 향했다. 규영은 내려가는 계단의 앞에 서서 셋을 보며 웃어보였다.
“그럼, 질문 있으신 분?”
하나우미는 무균실험실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손을 살짝 올렸다.
“네. 하나우미 씨.”
“아까, 최소 10년이 걸리는 신약개발이라고 했는데, 이 회사에서 만든 약 중에서 가장 오래 걸린 약은 어떤 약이죠?”
규영은 곤란한지 혀를 깨물며 눈을 돌렸다. 그러더니 다시 밝은 표정을 지으며 손깃발을 들었다.
“120년 걸린 악성 뇌종양 치료약입니다. 시행착오만 30번은 있었던 약이죠. 먹는 것만으로 뇌종양을 치료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거든요.”
“으응.”
하나우미는 그의 말에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감탄을 했다. 상혁은 그녀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쳇. E-26에 대해서 떠볼 생각이었군.’
상혁은 규영을 보며 다음 장소로 가자고 재촉했다. 규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대답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자, 그럼 다음 장소는 생산동입니다. 저희회사가 이 곳, 연구동 다음으로 가장 많은 자금을 쏟아 붓고 있는 곳이랍니다. 좋은 약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한 장비 관리가 필요하거든요.”
규영은 계단을 다 내려가서 돌아서더니 내려오는 셋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오전 정기 청소 시간이랍니다. 6시간 간격으로 전공정의 기계의 작동을 멈추고, 생산시설 전체의 문제점 체크와 소독 및 청소를 하거든요.”
“지금이 그 시간?”
하나우미는 그의 말에 밖에 보이는 생산 공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규영은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하며 생산동쪽으로 셋을 안내하였다. 생산동으로 들어선 규영은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가리켰다.
“이 위로가 견학로입니다. 위에서 아래를 보며 견학할 수 있도록 되어 있죠. 생산 공정의 오염방지를 위해 안전유리로 막혀있답니다.”
규영은 약간의 설명을 붙이고 계단을 올라갔다. 셋은 그 뒤를 따라 올라가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규영의 말대로 벽이 두꺼운 유리벽으로 되어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안에는 연구실과 마찬가지로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이 기기를 손보고 있었다. 하나우미는 청소된 곳과 아직 청소하지 않은 곳을 번갈아보더니 규영을 바라봤다.
“내 눈에는 청소를 한 곳이나, 안 한곳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데.”
“약을 만드는데, 미세 먼지 하나라도 들어가면 안돼니까요. 그런 미세먼지 하나가 약의 부작용을 초래하는 결과를 내기도 하니까 말이죠.”
소녀는 둘의 말에 벽에 붙어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규영은 손깃발을 빙그르 돌리더니 앞쪽을 가리켰다.
“자, 그럼 이제 앞으로 갈까요. 지금은 청소하는 중이니까, 기계가 돌아가지는 않으니까.”
“네~”
소녀는 얼른 유리에서 떨어져서 그의 뒤를 따라갔다. 하나우미는 혀를 차더니 상혁을 한 번 힐끔 쳐다보곤 그 뒤를 따랐다. 상혁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한 듯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아까 소녀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어?”
상혁은 눈을 살짝 찌푸리더니 소녀가 손으로 집고 있었던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손가락이 닿아있던 곳에 패인 흔적. 아니, 미세하지만 녹아있었다. 손가락이 닿은 곳의 유리가 녹아있다. 무의식중에 마력을 뿜어내어 이렇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상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셋의 뒤를 따라갔다.
‘이것도 증거로 쓰기는 가능해. 하지만, 원래 패여 있었다든가, 그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지. 좀 더 증거를 잡으면 이걸 덧붙이면 돼. 그럼 발뺌 못하게 되지.’
하나우미는 상혁이 내뿜는 뭔가 기분 나쁜 기운에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돌렸다. 상혁이 이쪽을 보고 짓고 있는 미소는 왠지 꺼림칙한 게 기분 나빴다.
‘저 녀석 아직도 마법사 타령인가…. 정말이지,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 거야….’
“자, 이쪽은 약을 만드는 재료를 보관하―――.”
규영은 나름 열심히 설명을 하며 하나우미와 상혁을 바라보았다. 설명을 하나도 안 들어주고 있는 게 속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소녀 한 명이라도 열심히 들어주니, 그걸로 나름 만족해야 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들어주는 소녀는 규영의 설명이 끝나자 또 다시 유리벽에 붙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규영은 소녀의 옆에 서서 함께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그녈 내려다보았다.
‘저건….’
규영은 소녀의 손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주 천천히 이었지만 유리가 약한 파동을 일으키며 녹아들고 있었다.
‘역시, 몸속에 숨겨진 힘이 깨어나고 있는 것 같군. 그리고 나머지는 아직 아무런 징조도 없고. 그럼 오늘 점심부터 해독제 대신 각성제를 넣어야겠군. 그리고 이 아이의 식사에는 촉진제를 넣으라고 해야겠어.’
규영은 통로의 중앙으로 돌아와 손뼉으로 셋의 시선을 모았다. 그리고 약간의 설명과 농담을 보태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예정대로 다음 코스인 사무동을 거치고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숙식동으로 돌아왔다.
“아~ 배고파~”
소녀는 돌아오자마자 큰소리를 내며 로비로 뛰어올라갔다. 하나우미와 상혁은 서로를 경계하며 노려보더니 각자 자기 발길 닿는 대로 올라갔다. 규영은 셋이 올라가는 것을 보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며 헛기침을 하곤 일층에 식당으로 갔다.
“여, 식사는 내가 온 다음에 배급하라고 했는데.”
“네. 아직 안 올려 보냈어요.”
“그래.”
규영은 담당자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담당자는 규영이 안으로 들어오자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규영은 준비된 음식을 보더니 주위를 훑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입을 열었다.
“아직, 이 안에 해독제를 넣지는 않았지?”
“네. 아직은….”
규영은 쓰고 있던 안경을 살짝 들썩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302호실 식사는 해독제 대신 이걸 넣어. 그리고 나머지는 해독제 다음 단계인 2단계를 넣는다. 알았지.”
“헤에. 이제야 끝이군요. 생각보다 오래 걸렸는데요.”
담당자는 어깨를 돌리며 두두둑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규영은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럼 제대로 된 동료를 건진 기념은 내일 저녁에 하자고.”

- - - - -

소녀는 자기 방에 침대 위에 엎드려 뒹굴 거리며 밥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리며 식사가 도착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헤에~ 밥이다~”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방문을 열고 식사를 받아들어 안으로 들어왔다. 전과 다를 것 없는 식사. 소녀는 이 식사가 여기서의 마지막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 - - -

똑―― 똑―――――
“네.”
하나우미는 방에 있는 의자에 앉아 책을 보다가 노크 소리에 대답했다. 그러자 밖에서는 식사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녀는 책을 덮고 문으로 걸어가 식사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식사를 식탁에 올려놓고 덮개를 열었다.
“다르군. 지금까지와. 이제 끝을 내겠다는 건가.”
하나우미는 혀를 차며 덮개를 다시 덮었다. 그리고 자기 짐가방에 손을 넣었다.
“내일 아침, 아수라장이 되겠군.”

- - - - -

뇌진은 로비에 있는 소파에 기대어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응? 뭐야?”
“식사입니다.”
“아, 알았어.”
뇌진은 몸을 일으켜 식사를 바라보았다. 전의 식사와 미묘하게 이 위화감은…. 뇌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여기와 작별할 때가 된 것 같군.”

- - - - -

상혁은 자기 방에서 둘이 마법사라는 것을 어떻게 드러내게 할 지 고민하며 밥을 떠먹었다.
“이건!”
상혁은 입에 물고 있는 밥을 얼른 뱉어내고 화장실에 가서 물로 입을 헹구었다. 그리고 입가를 닦아내며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알아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군. 지금 이 실험에 참가중인 사람은 스무 명. 그 중 한명이 빠져서 열아홉 명. 이 중에서 나와 그 녀석들을 빼면 열여섯 명이 폭주하겠군. 오늘 새벽부터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게 된 녀석들과 싸우게 되는 건가. 그럼 그에 합당한 준비를 하고 기다려야지.”

- - - - -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소녀는 병든 닭처럼 꾸벅거리기 시작했다. 하나우미는 꾸벅거리며 책을 읽는 소녀를 보더니 고개를 한숨을 쉬더니 소녀의 머릴 박박 문질러주었다.
“졸리면 들어가서 자. 괜히 책 읽겠다고 뻐기지 말고.”
“아뇨, 괜차――― 흐아암~”
소녀는 괜찮다고 하다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하나우미는 고개를 저으며 소녀를 방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침대에 눕히곤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나오면서 소녀에게 말했다.
“아, 지금 자잖아. 그럼 내일은 절대로 방에서 나오면 안 돼. 알았지. 꽤나 혼란스러운 일들이 벌어질 수 도 있으니까.”
“혼란스러운 일?”
소녀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곤 이내 잠들어버렸다. 하나우미는 손잡이 안쪽을 살짝 건드린 후 문을 닫았다. 그러자 철컥거리는 소리가 나며 문이 잠겼다.
“그럼. 나도 내일 아침을 대비해서 준비해볼까.”
하나우미는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그날은 지나갔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안에서 단지 세 사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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