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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달/무제 by 하프물범

휴전으로 끝나버린 발라카야 카탈루 대전 이후의 발라카야 최후방 국경마을 샬루트에 있는 1425부대의 9명의 평범한 이야기. 작가 曰 \'아, 왠지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일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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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ea P. 신병. (중간 수정본, 스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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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하프물범[tanatos04]  
조회 1519    추천 1   덧글 2    / 2010.07.26 04:15:40

Area - 프롤로그. 신병.

발라카야 국경 끝의 아주 조그만 마을인 샬루트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눈울림 산 너머로 해가 떠오른다. 해가 떠오르는 것을 가장 먼저 확인한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늙은 수탉이 천천히 횃대로 올라가 목을 가늘게 빼더니, 꺼끌꺼끌하고 쇳소리가 섞인 우렁찬 목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샬루트 곳곳에 퍼지는 늙은 수탉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아직 잠에 만취해있는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하루일과의 시작을 위해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겨 천천히 세면실로 걸어갔다.


그것은 샬루트의 가장 외각에 위치한 1425부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늙은 수탉의 혼이 담긴 울음소리는 부대까지 전해지지 않았지만, 대신 여자 부대원들이 함께 쓰는 방에 마련된 화장대 위의 자명종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해가 빠끔히 고개를 내 미는 순간, 자명종이 온 몸을 사시나무처럼 바르르 떨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푸른 색 자명종이 금방이라도 폭발 할 듯 시끄럽게 울어대자, 방 안에서 가장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복층침대 위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졌다.


최대한 자명종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폭신한 베개로 귀를 가리는 부대원, 자명종이 울든 말든 마취제라도 맞은 듯 잠자고 있는 대원, 서서히 일어나기 위해 기지개를 크게 켰지만 온 몸을 짓누르고 있는 잠 때문에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부대원, 또 그런 부대원을 꽉 끌어안고 자는 부대원들이 있었다.


그 중 한 소녀 부대원이 침대 이층에서 비틀거리며 천천히 내려오더니 하품을 크게 쩍 하고는 연신 기지개를 켰다.


소녀의 주위에는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로 괴로워하는 부대원들이 있었다. 소녀는 천천히 화장대 쪽으로 걸어가 자명종을 잠재우고는, 밤새 부스스해진 머리를 헤어밴드로 대충 정리하고 난 뒤, 하늘하늘한 잠옷차림으로 비틀비틀 걸어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무로 만든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사방에 부드럽게 울려 퍼졌다. 소녀는 마치 조건반사적으로 발을 옮겨 부엌과 중앙 거실을 지나 샤워 실에 딸려있는 작은 세면실로 갔다.


비누에 거품을 잔뜩 내어 얼굴을 가볍게 바르고는차가운 물로 비누를 씻어 낸 후 부스스한 머리를 풀어 머리를 감았다.


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를 수건 한 장으로 대충 닦아내고는 자신의 칫솔에 상부에서 지급된 듯한 칙칙한 국방색의 튜브에 담긴 치약이 아닌, 핑크색튜브에 담긴 치약을 힘껏 눌러 짜고는 물 한 컵과 함께 세면실을 나와 중앙 거실을 지난 뒤 밖으로 나갔다.


L자형 건물의 공터 겸 정원 겸 사격장에 나온 소녀는 산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칫솔로 이를 여기 저기 힘차게 닦고는 물 한 컵으로 입안을 전부 행군 뒤, 입안의 거품과 함께 바닥에 뱉어냈다.


그러나 여전히 졸린 얼굴의 소녀는 칫솔을 컵에 넣고는 느릿느릿 기어들어와 칫솔과 컵을 제자리에 놔두고는 부엌 옆에 붙은 여자 부대원 용 탈의실로 천천히 들어갔다.


자신의 관물대 앞에 선 소녀는 천천히 잠옷을 벗어 걸고는 남보라 색 천으로 만든 군복을 입기 시작했다. 소녀의 몸에 딱 맞춰 만든 듯 전혀 남는 부분 없는 군복을 갖춰 입고, 거의 다 마른 머리카락을 뒤로 모아 한 몫에 묶은 소녀는 군복 상의 재킷의 버튼을 잠그지 않은 채 터덜터덜 밖으로 걸어 나갔다.


기지 앞의 작은 우체통 바로 옆에 놓인 바구니에는 매일 아침 마을 빵집에서 직접구운 따끈따끈한 빵이 들어있었다. 소녀는 바구니 안의 따뜻한 식빵 두 덩이와 우유 한 병이 들어있었다. 소녀는 식빵과 우유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기지로 들어와 부엌 겸 주방의 한 가운데 위치한 식탁위에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빵과 유우를 식탁위에 올려놓자, 바구니 안에 빵과 유우의 가격을 청구하는 대금 표가 한 장 놓여있었다. 대금 표를 꺼내든 소녀는 누런 종이위에 휘갈겨진 글씨들을 보고는 얼굴이 조금 파랗게 되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는 종이를 주머니 속에 구겨 넣었다.


“하아…. 이번에는 생각보다 빵 값이랑 우유 값이 많이 나왔네. 식빵을 반 덩이로 줄여 버릴 수도 없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본부에 식비 추가 지원 요청을 해 봐야겠다. 도미닉 중사님에게 부탁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아직 따끈따끈한 온기가 남아있는 식빵을 위에 올려놓은 소녀는 부엌 안의 다용도 서랍 안에 놓인 앞치마를 매고는 식빵을 먹기 좋은 크기로 나누기 시작했다. 소녀가 정성스럽게 식빵을 나누는 사이 아직 잠기운이 남아있는 조금 적색 끼가 도는 머리의 젊은 청년이 부엌으로 내려왔다.


이미 군복을 갖춰 입은 남자는 찬장에서 작은 양철 주전자를 꺼내더니 싱크대에 붙은 작은 펌프로 능숙하게 물을 채워 넣고는 나무로 불을 때는 화덕 위에 올려놓고는 식빵을 자르고 있는 소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후 밖으로 나갔다.


소녀가 식빵을 다 잘랐을 때 쯤, 남자가 신문 뭉치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남자가 식탁위에 신문지를 내려놓자, 때마침 주전자가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남자는 맨손으로 뜨거운 양철 주전자의 손잡이를 잡고는 도자기로 만든 머그컵에 커피와 크림, 설탕을 넣고는 향이 좋은 커피를 들고서 식탁에 신문을 펼쳐 든 채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신문을 읽어나갔다. 오목한 그릇에 달걀을 깨 넣고 있던 소녀가 조용히 신문을 읽고 있는 남자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도미닉 중사님, 오늘 신문에는 무슨 재밌는 일이 있나요?”


“아니, 아무것도. 딱히 흥미로운 기사거리는 없는 것 같군. 아침부터 수고가 많군, 베티 일등병. 그러고 보니, 아직 다른 부대원들은 일어나지 않았나? 여전히 잠들이 많군.” 


“뭐, 클레어는 어젯밤에 철야로 서류정리를 했으니까 당연한 거죠. 이브는 클레어를 도와준다면서 안자고 있었구요. 글로리아 하사님은 옆에서 장난만 쳤지만요. 뭐, 아침밥 먹을 때쯤이면 전부 일어나니까, 좀 더 자게 내버려둬도 괜찮아요.”


달걀이 가득 든 오목한 그릇에 거품기를 넣고 달걀을 풀던 베티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도미닉은 조용히 웃으며 신문을 접고는 커피 한 잔을 더 타더니 의자에 조용히 앉아 부엌의 북쪽에 난 작은 창문으로 높게 떠오른 태양을 바라봤다. 베티가 식빵 한 장 한 장을 달걀 물에 적시고 있을 무렵, 누군가 쿵쾅거리며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베티보다는 조금 작은 어린 소녀 두 명이 헐레벌떡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재빨리 세면실로 달려갔다. 잠시 후 두 명의 소녀는 세면실의 문을 거칠게 열고는 부엌으로 뛰어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의 속도로 달려 나오더니 재빨리 탈의실로 들어갔다.


베티가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달걀 물을 머금은 식빵을 굽고 있는 사이, 두 명의 소녀들이 부엌으로 달려와 도미닉의 앞에 차렷 자세로 서더니 큰 소리로 소리쳤다.


“도미닉 중사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베티 일등병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도미닉 중사님…, 밤새 좋은 꿈 꾸셨습니까? 베티 언니, 잘 잤어?”


“응. 클레어, 이브. 잘 잤어. 잘 씻고 왔지? 양치질은 했고?”


“넵! 당연히 했습니다! 오늘 아침은 뭐야?”


“응. 깨끗이 씻고 속옷도 갈아입었어.”


“그래, 클레어, 이브. 이제 쉬어도 좋다. 차 한 잔 마실 테냐? 방금 물을 올려둬서 조금만 끓이면 금방 마실 수 있을 거다.” 


“넵! 감사합니다, 도미닉 중사님! 다즐링 홍차로 부탁드립니다! 이브, 너도 마실 거지?”


“응. 감사합니다. 도미닉 중사님, 저는 로즈마리 허브티로 부탁드립니다. 며칠 전에 메데이아 언니가 구해왔다고 하셨어요.”


도미닉은 은은한 미소를 짓고서는 주전자에 물을 조금 더 담아 화덕위에 올려두었다. 프라이팬위의 식빵들이 하나 둘 익어가며 맛있는 냄새를 풍기자 클레어와 이브가 베티의 옆으로 다가와 프라이팬 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달걀 물 입혀서 구운 토스트야? 맛있겠다!”


“클레어, 달걀 물 입혀서 구운 토스트가 아니라 프렌치토스트라는 거야. 언니, 아침부터 안 힘들어? 우리가 대신 해 줄까?”


“아니. 클레어랑 이브는 어젯밤에 열심히 서류 정리하고 공문 썼으니까, 아침에는 푹 쉬어야지. 이 정도는 이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뭐. 앉아서 쉬고 있어.” 


클레어와 이브는 베티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클레어와 이브가 자리에 앉아, 도미닉이 양철 컵을 하나 씩 나눠 주었다. 클레어와 이브는 도미닉이 나눠 준 양철 컵을 들고서는 잡담을 주고받으며 컵 안의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다란 접시위에 프렌치토스트가 가득 쌓이기 시작하자, 부엌너머의 지하에서 나무 계단 특유의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름때가 잔뜩 묻은 장갑과 작업복을 입은 회색머리의 남자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아래에 있는 지하실에서 올라왔다. 남자는 초점을 잃은 멍한 눈동자로 클레어와 이브처럼 부엌을 지나 세면실로 갔다. 베티는 남은 식빵들을 적실 달걀을 더 깨뜨리며 세면실 문을 막 연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데미무어 병장님! 이번에는 작업하실 때 쓰셨던 장갑이랑 작업복은 제발 다른 빨래들이랑 분리 해 주세요! 전번에도 한 번 섞였다가, 빨래하는 중에 골탕 먹었으니까요!”


“응…. 이번에는 똑바로 치워 놓을 게. 그러니까 잔소리는 그만.”


데미무어는 힘없는 목소리로 베티의 말에 건성건성 대답하더니 세면실 문을 닫았다. 베티가 걱정 섞인 얼굴로 힘차게 달걀을 풀고 있을 때, 눈 깜짝할 새 세안과 샤워를 끝낸 데미무어가 깨끗한 평상복으로 샤워 실에서 나와 탈의실로 걸어갔다.


클레어와 이브는 데미무어가 탈의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세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오더니 베티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베티가 클레어와 이브를 바라보자, 클레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언니, 병장님이 또 하얀 빨래랑 작업복이랑 섞어 놨어.”


“그래서 우리가 따로 나누고 왔어. 병장님이 많이 피곤하신가봐.” 


“그럴 줄 알았어. 어젯밤부터 뭔가를 뚝딱 뚝딱 하고 계시더니. 결국 한숨도 안 주무셨구나.”


베티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는 도미닉에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도미닉 중사님, 데미무어 병장님한테 밤에는 좀 주무시라고 전해주세요. 저렇게 매일 잠을 안 주무시면 언제 쓰러지실지 몰라요.”


“걱정하지 말게. 데미무어도 자기 몸은 알아서 관리하겠지.”


“그래두요….”


“그 정도로 데미무어가 쓰러졌으면, 지금 내가 그렇게 말 하겠나? 아, 데미무어. 잠은 잘 잤나?”


“네, 중사님도 안녕히 좋은 밤 보내셨나요? 베티, 미안하다. 잠결에 또 빨래 통에 작업복을 넣고 말았어. 지금 가서 따로 꺼내놓고 오지.”


“아뇨, 아까 클레어랑 이브가 꺼내놓고 왔어요. 병장님, 취미로 무기 개조하시는 것도 좋지만, 잠도 주무셔야죠. 그렇게 매일 밤을 새시다간 금세 몸이 상해버려요.”


“응…. 귀담아 듣고 나중에 참고하지.”


데미무어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쓰러지듯 그대로 식탁에 퍼져버렸다. 데미무어가 식탁에 엎드려 잠시 눈을 붙이는 동안, 검은 머리의 남자와 긴 검은 생머리의 여자가 같이 2층에서 내려왔다.


남자는 아직 졸림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도미닉과 식탁 위에 누워있는 데미무어에게 간소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중앙거실로 걸어갔다. 긴 생머리의 여자도 역시 재빨리 도미닉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총총걸음으로 남자를 따라 세면실로 들어가 버렸다.


얼마 후, 검은 머리의 남자가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탈의실로 들어갔다. 긴 생머리의 여자는 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로 세면실 문에 기대어 쭈뼛쭈뼛 서 있더니, 남자가 탈의실로 들어가자 곧바로 뛰어 여자 탈의실로 몸을 던졌다.


검은 머리의 남자는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물에 젖어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물기를 털어내며 대충 정리하고는 군복의 단추를 잠그며 부엌으로 들어와 도미닉의 앞에 바르게 섰다.


“도미닉 중사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늦게 일어나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네, 다니엘 상사. 어차피 나도 그렇게 일찍 일어난 편은 아니니까. 그나저나, 메데이아는 어디 갔지? 방금 자네와 같이 나온 것 같은데.”


“… 병장 메데이아, 지금 일어났습니다…. 죄송합니다, 도미닉 중사님…. 앞으로는 일찍 일어나겠습니다.”


“괜찮네. 늦잠 잘 수도 있는 거지. 자네들, 커피라도 마시겠나?” 


“감사합니다, 도미닉 중사님.”


메데이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다니엘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프렌치토스트들이 커다란 접시에 담긴 채 탁자 중앙에 놓였고, 클레어와 이브가 베티를 도와 개인용 접시와 식기를 각각 자리에 놔두었다. 클레어와 이브가 접시를 옮기고 있는 사이, 베티는 토마토를 얇게 자르고, 토스트에 곁들여 먹을 샐러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은 모두가 잡담을 나누고 있는 사이, 마지막 한 사람이 2층에서 내려와 부엌으로 들어왔다. 아직 잠옷차림의 어지럽게 얽힌 주황머리의 여자가 이브와 클레어의 사이에 털썩 주저앉더니, 둘의 머리를 사정없이 쓰다듬기 시작했다. 여자는 아직 덜 풀린 목소리와 몽롱한 눈으로 말했다.


“으음? 우리 귀염둥이 꼬마 두 명, 어젯밤에는 잘 잤니?”


여자는 마치 강아지를 쓰다듬듯 이브와 클레어의 머리를 약간 거친 손길로 머리를 헝클어버렸다.


“어젯밤에는 수고 많았어. 그래도 아직 남아있지? 그렇게 엄청난 걸 하룻밤 안에 처리하는 건 역시 힘들어. 미안하지만, 오늘도 부탁해. 나도 열심히 도와 줄 테니까.”

“네! 글로리아 하사님! 오늘 서류 정리도 잘 부탁드립니다!”


“…으으…. …클레어, 조금만 조용히 대답하면 안 될까…. …머리가 윙윙 울려서 엄청 괴롭거든….”


“죄, 죄송합니다, 메데이아 병장님.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하하. 메데이아, 아직도 큰 소리로 말하면 머리가 아픈 거야? 으음, 어떻게 하면 나으려나.”


글로리아가 두 명의 머리에서 손을 때고는 귀를 막고 있는 메데이아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베티가 프렌치토스트가 잔뜩 담긴 접시와 샐러드, 토마토가 담긴 접시를 식탁에 내려놓자 글로리아가 탄성을 지르며 프렌치토스트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베티가 프렌치토스트에 닿기 직전 단호하게 글로리아의 손을 탁 내리쳤다. 그리고는 프렌치토스트가 가득 담긴 접시를 글로리아의 손에서부터 멀리 떨어뜨려놓았다.


글로리아는 욱신거리는 손을 비비며 원망스러운 듯 베티를 살짝 노려봤다. 그러나 글로리아의 원망스러운 눈길에도 베티는 눈 하나 까딱 안하고 글로리아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노려보셔도 안 돼요. 각자 덜어 드실 수 있게 접시랑 포크, 나이프는 금방 가져다 드릴 테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그것보다, 옷 먼저 갈아입고 오시는 게 어떠세요?”


“옷은 아침밥 먹고 갈아입을 거야. 옷 갈아입는 것 보다 먼저, 난 아직 씻지도 않았으니까. 베티, 참견하는 게 아줌마 같아, 아줌마.”


“그, 그런 도발은 웃기지도 않으니까, 보채지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킥. 거짓말이야, 거짓말. 베티는 전혀 아줌마 같지 않고 아가씨 같은 걸. 귀여운 도시 아가씨 말이야.”


글로리아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베티는 개인용 접시를 하나 씩 꺼내 각각의 앞에 내려다 둔 후 포크와 나이프를 한 벌씩 나눠주었다. 우선 도미닉이 프렌치토스트 한 장을 들고 접시에 내려놓자,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티는 기지 안의 모든 컵을 동원하여 모두에게 우유 한 잔씩을 주었다.


“베티, 맛있게 먹겠네. 굉장히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샐러드군. 아침부터 부대원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해 줘서 고맙군.”


“으음 맛있어, 베티. 이 정도면 마을로 내려가서 장사를 해도 되겠는 걸? 물론, 손님은 나 하나 밖에 없을 거지만. 것보단, 내가 다 먹을 거니까. 도미닉 중사님, 그렇죠?”


도미닉의 감사의 인사에 이어 글로리아가 베티를 극찬했다. 베티는 맑은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그렇게 칭찬 하실 필요 없는데….”


베티가 우유를 식탁 한 곳에 내려놓고는 앞치마를 벗어 둔 후 자기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는 사이, 베티는 조용히 한숨을 내 쉬고는 가장 꺼내기 껄끄러운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사실, 아침부터 할 이야기기는 아니지만. 요즘 저희 식비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중사님께서 본부에 식비 예산을 좀 더 지원해달라고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많이는 필요 없으니, 10%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아요.”


“흐음, 일단 나중에 말은 꺼내보겠는데. 그게 생각만큼 쉽게 내 주지는 않을 거야. 변방에 있는 부대에게 식비를 쉽게 늘려 줄 만큼 그렇게 돈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을 거니까. 미안하네.”


도미닉이 포크를 내려놓고는 조용히 말했다. 베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포크를 접시위에서 가만히 굴리며 대답했다.


“역시… 조금 무리한 부탁이었나요? 그렇다면 제가 적당히 잘 관리 해야겠네요. 쓸데없는 지출은 최대한으로 줄이고 필요한 물건만 사야겠네요.”


베티의 말에 갑자기 부엌 안에 정적이 감돌기 시작했다. 평소에 별 다른 생각이 없는 글로리아와 다니엘도 바쁘게 움직이던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베티가 분위기를 파악한 후 상황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클레어가 조금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그럼 오늘부터 빵을 적게 먹어야 하는 거야? 오, 오늘부터?”


“아, 아니! 그런게 아니라….”


“돈이 부족하면, 나부터 줄일게. 나는 아직 어리니까 빵은 조금만 먹어도 돼. 클레어, 내 토스트 먹고 싶으면 먹어도 돼.”


“이런, 이런. 아직 어린 아가씨들은 돈 같은 거 걱정 할 필요 없어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돼. 식비가 부족하면 내 월급에서 조금 빼 줄 테니까.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 전 그냥 저희 부대의 재정상태가 아주 조금….”


베티가 자신이 내 뱉은 말을 끝맺기 위해 변명을 하려 했다. 그러나 데미무어가 입으로 기울이던 컵을 식탁위에 내려놓고는 팔짱을 낀 채 심각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아침부터 돈 이야기입니까. 돈이 필요하면 내가 만들고 있는 총기라도 팔아버리지. 저번에 비싸게 산다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이 기회에 하나 팔아버리죠.”


“상병님! 군대 물건을 함부로 파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어쩔 수 없잖아. 식사를 못 하면 총을 만지작거리는 것도 의미 없어. 그냥 팔아버리는 게 낫지.”


데미무어가 심드렁하게 말하고는 접시 위에 그득히 쌓아 두었던 프렌치토스트의 일부를 다시 돌려놓았다. 베티는 자신이 엄청난 말을 저질렀다는 것을 통감하고는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 채 몸을 잔뜩 움츠렸다.


“…먹을 게 없으면 내가 사냥이라도 갔다 올게…. …하운드 라이플 한 자루만 있으면 멧돼지 한 마리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으니까….”


“아, 아뇨. 걱정 하실 필요 없다니까요.”


“먹을 게 부족해지면, 훈련하기 힘들어지잖아. 마을에 내려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는 건가. 힘쓰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을 거 같은 데.”


“다니엘! 너까지 그렇게 말 하면 어떡해!”


메데이아가 발끝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하자 베티가 메데이아를 진정시키기 위해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그러나 다니엘이 평소와 같이 별 관심 없는 목소리와 얼굴로 조용히 말을 꺼내자 베티가 폭발하고 말았다.


“미안하다. 명색에 1425부대의 대장으로 부대원들을 위해 이런 자잘한 욕구도 채워주지 못해서.”


“아침부터 왜 이렇게 어두운 분위기만 만드시는 거예요. 모처럼 만든 프렌치토스트 맛 다 달아나게. 그냥 흘러가는 말이니까, 귀담아 듣지 마세요. 하하하…. 죄송해요.”


베티는 멋쩍게 웃으며 살짝 침울해져 있는 모두의 접시위에 넉넉히 프렌치토스트를 나눠주었다. 그러나 맛있게 먹기는커녕 글로리아마저 턱을 괸 채 포크로 토스트를 쿡쿡 찌르고 있었다. 베티는 자신 때문에 최대한으로 가라앉은 공기를 어찌하지 못해 잔뜩 움츠려든 채 주위의 눈치를 살펴보고 있었다.


베티가 거의 울먹일 정도로 눈망울을 적시며 울상을 짓자, 보다 못한 도미닉이 침묵을 깨는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 그러고 보니 기지에서 온 전갈이 하나 있었군. 오늘 중으로 신병이 이쪽으로 배속을 받아서 온다는 편지가 왔었는데. 깜빡하고 말 안 하고 있었군.”


도미닉의 말에 침울했던 분위기가 조금 깨졌다. 클레어가 식탁 의자 위에 무릎을 꿇고 올라가 방방 뛰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신병이요? 우와! 누구예요? 누구? 남자예요? 여자예요?”


“이왕이면 언니가 왔으면 좋겠는데. 베티 언니 혼자 매일 힘들게 일하잖아. 그치?”


“아, 하하….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신병이 온다면 환영회를 열어야 할 까요? 오랜만에 맛있는 거라도 해 볼까요?”


도미닉이 흥분을 진정시키기 못한 채 소리치는 클레어를 진정시키는 사이, 이브가 베티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베티는 뒤통수를 살짝 긁으며 멋쩍게 웃고는 환영회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러자 방금 전 까지만 해도 고개를 괴고 있던 글로리아가 얼굴을 들더니 소리쳤다.


“찬성! 베티, 나는 초콜릿 무스를 잔뜩 입힌 초콜릿케이크가 먹고 싶은데. 가능하겠어? 이렇게 부탁할게.”


글로리아의 애교 섞인 부탁에 베티가 고개를 갸웃 거리며 생각에 잠기자, 데미무어가 조금 쏘아대듯 말했다.


“하사님 생일파티 같은 게 아니잖아요. 신병이라…. 이왕이면 군기가 바짝 든 녀석이었으면 좋겠는데.”


“저도요. 그 편이 좀 더 다루기 쉽겠죠, 병장님.”


데미무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데이아는 조용히 토스트를 노려보고 있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럼, 신병이 오면 내가 교육해야 하는 거야…? …그럼 뭐부터 해야 하는 거지….”


“아니, 아마 신병에 대한 교육이나 걱정은 필요 없을 듯하다. 수도의 중앙 군사학교를 수석. 아니, 수석 바로 뒤로 졸업한 학생이라고 적혀 있더군. 거기다가 높으신 분의 추천서 까지 있는 걸 보면, 훈련이 잘 된 신병일거야.”


메데이아가 기대 가득한 얼굴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도미닉이 새롭게 배정받은 신병에 관해 여러 가지 고민을 내 뱉는 자신의 부하들을 보며 당당한 목소리로 호언장담을 했다. 신병 이야기로 분위기가 조금 녹자, 그제야 토스트를 오물오물 먹는 글로리아가 도미닉에게 물었다.


“흐음, 높으신 분의 추천서까지 받을 정도로 엄청난 사람이라면, 수석 졸업생이랑 비등비등하게 엄청난 녀석이겠네요. 그런데, 그 추천서는 대체 누가 써 주셨죠?”


“잠시만…. 추천서는 분명 내 안 주머니에 넣어 뒀어. 보자, 폴 프레드릭슨 중령님이 직접 써 주셨군.”


도미닉이 가슴 주머니에서 붉은 색 리본이 달린 양피지를 꺼내 부드럽게 휘갈긴 사인이 있는 곳을 읽었다. 글로리아는 부드럽게 늘어지는 콧소리를 내더니 도미닉의 손에서 양피지를 뺏어 위 아래로 대충 훑어 본 뒤 도미닉에게 돌려주었다.


“확실히 영감님 서명이 맞네요. 자기 가족이랑, 자기 부대원들 말고는 딱히 관심 없는 팔불출 폴 영감이 써 준 추천서를 받는 영광의 신병 이름은 뭔가요?”


“그게, 칼… 프레드릭슨.”


도미닉의 얼굴이 샛노래진 채 대답하자, 글로리아가 이미 예상을했다는 듯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낙하산이네요. 그것도 명백하게.”


데미무어가 양상추를 으적으적 씹어 먹으며 툭 내뱉듯 말했다. 데미무어의 한 마디로 부엌 안은 다시금 정적에 잠겼다. 그다지 관심이 별로 없는 데미무어와 다니엘, 글로리아와 낙하산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브와 클레어를 제외한 둘은 포크를 들지 못했다.


마치 암묵적인 계약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침묵을 포크와 나이프로 프렌치토스트 세 장을 과감하게 집어든 글로리아가 한 마디로 박살내 버렸다.


“진짜 낙하산이라서 폴 영감님의 힘으로 들어오든, 원래 이쪽에 지원해서 들어오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여기 와서 잘 하게 만들면 되죠.”


글로리아의 아주 단순한 한 마디에 도미닉이 고개를 끄덕였다. 접시 위에 놓은 프렌치토스트를 우걱우걱 씹어 삼킨 뒤 다시 새로운 프렌치토스트를 들고 나르며 글로리아가 말했다.


“베티가 애써 만든 프렌치토스트 식으니까 빨리 드세요. 그러다가 다니엘이 다 먹어버립니다.”


“하사님도 만만치 않게 많이 드시고 계십니다.” 


“어머, 아직 한창 커야할 때니까 더 먹어도 상관없어.”


“하사님은 이제 스물여섯 살이잖습니까. 성장이 멈춰도 벌써 예전에 멈췄습니다.”


다니엘이 글로리아의 황당한 대답에 글로리아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다니엘의 눈빛에 글로리아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상관으로써 권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니엘, 지금 상관한테 시비 거는 거야? 미안하지만, 이래봬도 아직 자라야 할 데가 남아있다고. 너는 남자라 말해도 잘 모르겠지만.”


“그게 어딥니까?”


다니엘의 한 마디에 프렌치토스트를 반으로 접어, 그것을 한 입에 밀어 넣으며 글로리아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슴.


“…….”


글로리아의 말도 안 되는 대답에 다니엘은 그냥 포기하고는 자신의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브와 클레어는 끝까지 낙하산에 대해 골머리를 썩이다가, 결국 열심히 프렌치토스트를 자르고 있는 메데이아를 멈춰 세운 후 물어보았다.


“저기, 메데이아 언니. 낙하산이 대체 뭐야?”


“…낙하산이란 건 말이야. 자기는 실력도 안 되면서, 엄마나 아빠, 할아버지가 엄청 힘이 세서, 엄마나 아빠, 할아버지가 힘을 써서 그 사람이 들어가고 싶은 곳에 넣어주는 걸 말하는 거야…. …한 마디로 말해서, 능력은 없으면서 주위에 아는 사람만 많은 거지….”


“우웅, 아직 잘 모르겠어.”


“…그런 건, 아직 어린애들은 몰라도 되는 거야…. …나중에 전부 알게 될 테니까….”


이브의 호기심어린 질문에 메데이아가 조곤조곤 답해줬지만, 이브와 이브의 옆에서 메데이아의 말을 듣던 클레어는 아직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시끄러웠던 아침식사가 끝나고. 금색으로 반짝이던 프렌치토스트가 담겨있었던 접시와 샐러드가 담겨있었던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베티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메데이아는 부엌에 남아 부엌 벽에 난 커다란 창으로 은은하게 들어오는 아침햇살을 만끽하며 누워 있있고. 데미무어는 지하실로, 다니엘은 거실에 앉아 권총을 분해해 청소하고 있었다.


이브와 클레어는 아침식사를 끝냄과 동시에 밖으로 튀어나갔다. 도미닉도 뭔가 약속이 있다며 이브와 클레어가 나간 뒤 밖으로 나갔다.


글로리아는 약속대로 아침식사가 끝나자마자 세면실로 달려가 세안을 한 뒤 탈의실로 들어갔다. 설거지 거리가 그리 많지 않아 재빨리 해치운 후, 시원한 물 한잔으로 한숨을 돌린 베티는 신병의 환영회 때 먹을 만한 음식을 생각하기 위해 메데이아의 맞은편에 앉았다.


눈을 감은 채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던 메데이아는 베티의 인기척에 고양이처럼 등을 활 마냥 굽히며 기지개를 켰다. 베티는 턱을 괸 채 한숨을 폭 내쉬며 허공을 응시했다. 메데이아는 그런 베티를 지긋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아뇨. 별 건 아니구요. 신병 환영회 때 어떤 요리를 해야 될지 고민 중이에요. 평소처럼 그냥 먹자니, 왠지 신병 환영회 같은 분위기가 안 날 것 같고요, 그렇다고 뭔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걸 하자니, 아침에 말 한 대로 식비가 모자라고요. 에휴, 이러나 저러나 걱정이 많아요.”


“…그래….”


베티의 힘없는 대답에 메데이아가 노곤한 목소리로 천천히 대답하였다. 베티는 손가락으로 식탁 위에 천천히 원을 그리며 말했다.


“글로리아 하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케이크는 만들어 보려구요. 하사님이 부탁하신 대로 초콜릿 무스를 바른 케이크는 구울 수 없어도, 마침 커피에 넣어먹는 커다란 초콜릿 덩어리가 많이 남아 있어서 한 번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메데이아 병장님은 특별히 드시고 싶으신 거 없으세요?”


“나? …나는….”


메데이아는 베티의 질문에 잠시 허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베티는 메데이아의 행동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메데이아가 몸을 둥글게 움츠리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베티는 잘 들리지 않았는지 양 미간을 조금 좁혔다. 메데이아는 고개를 아주 살짝 들어 베티의 눈치를 살펴보고는, 아까보다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만들어 준 오리찜요리가 먹고 싶은데….”


“네? 아, 그 오리찜요리요?”


“응. …역시, 조금 힘들겠지…? …괜찮아, 이번이 아니라도 다음에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거니까….”


“그럼, 역시 오리찜요리로 할까요? 저번에 요리에 썼던 와인이랑 향초가 좀 남아 있을까 모르겠네요.”


베티가 밝게 웃으며 손바닥을 치자, 메데이아가 고개를 바짝 들어 눈을 크고 동그랗게 떴다. 메데이아는 눈을 빛내더니 이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탈의실로 들어가 작은 귀마개와 두꺼워 보이는 인조 털 코트와 털 부츠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한손에는 데미무어가 살짝 손을 본 대물 망원경이 달린 하운드-1 스나이프 라이플과 일반 살상용 탄환보다 조금 작은 사냥용 탄환이 담긴 작은 가죽가방을 어깨에 매고 나왔다. 메데이아는 눈을 반짝이며 하운드 라이플을 짊어지며 기지를 나섰다.


“적당히 한 마리만 잡아 올 게.”


“아, 그, 그러세요. 그럼 전 케이크를 만들고 있을게요. 딱 한 마리만 잡아서 돌아오세요. 그럼, 다녀오세요. 메데이아 병장님.”


“응!”


메데이아는 오랜만에 경쾌하게 대답을 하고는 문을 닫고 나섰다. 베티는 기지개를 크게 켜고는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지하실로 내려갔다. 식품저장고의 앞에 있는 데미무어의 작업실은 괴상한 소리가 문 밖으로 세어 나오고 있었다. 베티는 날카로운 무엇인가로 단단한 쇳덩이를 자르는 듯한 굉음에 몸서리를 치며 재빨리 식품저장고로 들어갔다.


디귿자 선반위의 다양한 식료품들로 가득 찬 식품저장고에서 베티는 한 구석에 놓여있는 바구니를 집어 들고는 식품저장고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병에 반 정도 남아 찰랑거리는 와인병과 삼각형으로 곱게 접어놓은 종이에 쌓인 향초, 후추 씨와 당근, 양파, 마늘, 감자를 바구니에 담은 후 종이에 포장되어있는 커다란 초콜릿을 근처에 놓인 칼로 필요한 만큼 쪼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잡이가 달린 작은 밀가루 포대를 낑낑거리며 들고 식품창고를 빠져나왔다. 베티는 그 시끄러운 소리를 지나 부엌으로 올라가 식탁 위에 밀가루와 바구니를 올려놓았다. 그리곤 아직 들고 오지 않은 계란과 우유를 가지러 지하실로 내려갔다.


베티가 계란과 우유를 들고 부엌으로 올라오자, 군복으로 갈아입은 글로리아가 앞치마를 두른 채 당근과 양파, 감자를 잘 씻어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부엌으로 올라와 앞치마를 매고는 고맙다는 듯 방긋 웃는 베티를 향해 글로리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나도 딱히 할 일이 없는 걸. 그리고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어 준다는 데 나도 성의를 보여야지. 가만히 앉아서 얻어먹기만 하면 조금 그렇잖아.”


글로리아가 당근을 집어 들며 말했다. 베티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밀가루 포대를 뜯었다. 글로리아가 갑자기 무엇인가 번뜩이듯 생각이 났는지 깎고있던 당근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그래! 케이크 만드는 것도 도와줄게. 이래봬도, 옛날에는 케이크나 과자 굽는 게 취미였거든.”


“정말요? 왠지 하사님답지 않은 데요.” 


“하하. 그건 칭찬으로 들을 게. 그건 그렇고, 저녁 메뉴는 뭔가 거창한 걸로 준비하려는 모양이야? 방금 메데이아가 하운드 라이플을 메고 나갔거든. 알고 있었어?”


글로리아가 흙이 살짝 묻은 칼과 야채를 흐르는 물에 씻으며 말했다. 베티가 커다란 볼에 밀가루와 우유, 계란을 넣고 거품기로 천천히 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묻은 물을 탈탈 털어내고는 화덕에 불을 지피며 초콜릿을 중탕으로 녹이기 위해 냄비에 물을 받으며 글로리아가 말했다.


“흐음, 메데이아가 멧돼지라도 잡아 오려고 하는 걸까. 아니면 사슴? 늑대? 저번처럼 순록만 아니면 괜찮은 데…. 맛을 꽤 좋았지만.”


“하하하. 전에 드셨던 오리찜요리가 입에 맞으셨는지 그걸로 해 달라고 하시던데요? 그래서 직접 잡으러 가신 모양이에요.”


“오리를? 이 주변에 눈울림 산 아니면 오리가 살 만한 곳이 없을 건데. 걔도 정말…. 오리 정도는 그냥 마을에 가서 사면 될 건데.”


글로리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화덕 아래에서 불이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르기 시작하자, 글로리아는 커다란 초콜릿덩이를 잘게 썰어 중탕용 용기에 넣었다. 그리곤 작은 직사각형으로 초콜릿을 덩어리에서 때어내 작은 조각칼로 무엇인가 글씨를 새겨 넣기 시작했다. 베티가 바쁘게 움직이는 글로리아 대신 화덕 아래의 커다란 오븐용 화덕에 불을 때며 글로리아의 손에 들려있는 초콜릿에 관심을 보였다.


글로리아는 베티의 눈길에 부드럽게 웃으며 초콜릿에 글씨를 새겨 넣는 것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왕이면 생일파티 할 때 쓰는 케이크처럼 하면 좋잖아? 이름도 알아냈겠다, 우리 부대에 처음 온 날도 생일처럼 여기라고 하면 되지 뭐.”


“좋은 생각이네요. 그럼 저도 대충 만들면 안 되겠는 걸요? 가장 큰 틀로, 이때까지 만든 것 중에 제일 맛있게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이등병! 잊을 수 없는 환영회를 만들어 주자고.”


베티는 밝게 웃으며 거수경례를 했다. 글로리아가 냄비에 넣어 녹이고 있던 초콜릿이 다 녹을 때 쯤 도미닉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황색 빛 음료가 담긴 병을 상자 째 들고 와 비좁은 식탁위에 올려두었다. 작은 병에 담긴 음료수들을 빤히 바라보던 글로리아는 코르크 마개를 손으로 돌려 빼고는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켰다. 알코올의 시원함과 사과의 시큼함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음료수를 마신 글로리아는 크게 탄성을 지르며 병을 내려두었다.


“푸하! 이거 엄청 맛있는데요! 아까 바쁜 일이라고 하신 게 이거가지러 가신 거였어요? 어디서 얻어 오신 거예요?”


“작년 연말에 만들어 놓고 양조장에 잠시 맡겨둔 걸 찾아왔지. 알코올 도수도 낮고 꽤 달달해서 이브랑 클레어가 먹기에도 적당할 거야. 많이 마시면 안 되겠지만.”


“흐음, 신병이 온다고 너무 힘쓰는 거 아닐까요, 우리? 평소에는 이런 식으로 안 먹는다는 걸 알게 되면 낙하산이 꽤 실망할 거 같은데요.”


글로리아의 한마디에 도미닉이 크게 웃었다. 베티는 다 녹은 초콜릿의 일부를 반죽에 잘 섞은 다음 케이크 틀에 반죽을 붓고는 오븐에 집어넣었다. 오븐 근처의 작은 모래시계를 살짝 뒤집어 놓았다. 베티가 잠시 앉아 사과주를 마시며 숨을 돌리고 있는 사이, 이브와 클레어가 무엇인가를 들고 황급히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도미닉과 글로리아가 계단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올라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급히 내려오던 이브와 클레어가 도미닉과 글로리아의 시선을 눈치 채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며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도미닉과 글로리아, 베티는 이브와 클레어의 행동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브와 클레어는 끝까지 모른 척을 하며 어색하게 걸어 부엌으로 들어왔다. 글로리아는 작은 컵에 사과주를 가득 따라 이브와 클레어에게 건네주었다. 이브와 클레어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글로리아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주며 이브와 클레어에게 하루 종일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았지만, 글로리아의 질문에 이브와 클레어는 어물쩍어물쩍 대답할 뿐 제대로 된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 실은 그렇게 궁금하지 않거든. 어차피 마을 아이들이랑 놀다 왔을 게 분명할건데. 잡동사니라도 주워왔겠지.”


“그, 그게 아니라….”


“저, 저기, 사실은….”


글로리아가 말하고 싶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이브와 클레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부드럽게 웃었다.


따뜻한 봄날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부엌으로 메데이아가 문을 벌컥 열며 들어왔다. 인조 털로 만든 코트는 눈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메데이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작은 탄환에 목이 꿰뚫린 오리를 한 손에 들고 당당하게 나타났다.


녹색 깃털과 하얀 색 깃털, 그리고 목에서 흘러내린 피로 새빨갛게 물든 깃털이 펄럭이는 죽은 오리는 메데이아의 손에 부엌으로 들어왔다.


베티와 이브, 클레어는 죽은 오리를 보자마자 재빨리 식탁 아래로 숨었고, 도미닉은 주춤거리며 글로리아 뒤로 물러났다. 메데이아는 거침 숨을 계속해서 몰아쉬며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하아, 잡아왔어…. 20분 정도 기다리고 있으니까 한 마리 나오더라구. 조금 큰 것 같은데. 요리하는 데는 문제없겠지?”


“크, 크, 크고 자시고 아직 깃털도 벗기지 않은 걸 그대로 들고 오시면 어떡해요! 꺄악!”


“으, 귀, 귀가…. …미안….”


한손으로 귀를 막으며 괴로워하는 메데이아의 곁으로 간 글로리아는 겁 없이 죽은 오리를 손가락을 툭툭 치며 말했다. 거의 칠면조만한 오리가 글로리아의 손이 닿을 때 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찔거렸다. 글로리아는 오리를 보며 큰 소리로 감탄했다.


“확실히 엄청나게 큰데? 칠면조 보다 조금 더 큰 것 같아. …도미닉 중사님, 여기서 남자는 중사님 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럼 이걸 누가 분해하죠?”


“그건. 하아, 내가 하는 수밖에 없지. 그, 그럼. 메데이아, 그 오, 오리를 건네주게.”


“…네, 중사님….”


“주, 중사님…. 제가 다니엘을 불러 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죽은 오리의 목을 잡은 채 그 자리에서 얼어버린 도미닉을 보며 베티가 재빨리 식탁 뒤에서 튀어나오며 말했다. 메데이아는 조금 풀이 죽은 채 코트의 단추를 풀며 세면실로 걸어갔다. 글로리아가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메데이아를 바라보더니, 딱딱하게 굳어버린 중사의 정강이를 구둣발로 살짝 걷어찼다. 도미닉은 짜릿한 고통에 정신이 번뜩 드는지, 아까 까지만 해도 잘 들고 있던 죽은 오리를 떨어뜨리고는 글로리아에게 다가갔다.


“오, 오, 오리가….”


“죽어 있는 게 당연하죠. 그것보다, 메데이아가 힘들 게 잡아 왔는데, 그 앞에서 꼭 숨고, 얼어붙고 해야겠어요? 뭐, 당연한 반응이긴 하지만… 그래도 칭찬 정도는 하고 얼어붙든가 하셔야죠.”


“미, 미안하네.”


잔뜩 화가 난 글로리아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를 하는 사이, 다니엘이 부엌으로 고개를 빠끔히 내 밀었다. 식탁 위의 죽은 오리를 발견하자 다니엘이 조금 놀란 듯 살짝 떨리는 물었다.


“중사님, 부르셨습니까? 어? 이 오리는 어디서 나셨습니까?”


“메데이아가 방금 막 잡아 온 오리야. 아무도 해체 할 용기가 없어서, 다니엘이 오면 맡기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자, 빨리 가서 해체해서 가지고 오라구. 슬슬 요리를 해야 하니까.”


“네.”


다니엘은 덤덤하게 오리의 목을 잡아들고는 훈련장으로 통하는 문으로 걸어갔다. 메데이아가 뽀송뽀송하게 마른 수건으로 눈으로 잔뜩 젖었던 머리를 닦으며 부엌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도미닉을 빤히 바라봤다. 도미닉이 눈에 뛸 정도로 메데이아를 의식하자, 메데이아는 조금 삐친 듯 고개를 홱 돌리고는 탈의실로 들어갔다. 부하의 차가운 반응에 마음이 상한 도미닉은 한숨을 푹 내쉬었고, 글로리아는 도미닉의 등을 두드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구름이 꽤 많이 낀 하늘에는 별의 반짝임은 없었지만, 달의 샛노란 빛이 구름에 반사되어 은은히 퍼지고 있었다. 육수가 따끈하게 끓고 있는 오리찜요리와 먼지가 앉는 것을 막기 위해 보자기로 덮인 케이크, 그리고 식탁에 앉아 저녁식사와 이 환영회의 주인공을 기다리는 1425부대의 부대원들이 부엌에 모여 있었다. 그러나 저녁이 꽤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신병은 나타나지 않았다.


“꽤 많이 늦네요. 오늘 오는 거 맞나요? 잘못 아시고 계셨던 건 아닌가요?”


“오늘이 확실한데. 설마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배고파요. 중사님.”


이브가 꼬르륵 소리를 나는 배를 문지르며 말하자, 모두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화덕 위의 오리찜요리는 육수가 걸쭉해 질 때까지 끓었지만, 신병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베티는 오리찜요리의 육수가 졸아들기 전에 냄비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아무도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아무도 오리찜요리를 먹기 위해 눈치를 보지 않았고, 오리찜요리보다는 아직 오지 않는 신병을 걱정하는 듯 가끔 창밖을 뚫어져라 바라보기도 했다.


오리찜요리가 식탁위에 올라간 지 10분 후, 도미닉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기다란 꼬챙이를 들었다. 부드럽게 익은 오리가 꼬챙이에 푹 찔러 꼬챙이에 꿴 채 오리를 냄비에서 꺼내려고 했다.


모두가 기다리던 이가 오지 않아 실망한 상태에서 아직까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오리를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다. 도미닉이 커다란 접시에 오리를 내려놓고, 그 위에 잘 익은 양파와 감자, 당근과 함께 밝게 빛나며 기름이 번들번들한 금빛 육수를 끼얹었다.


육수의 풍미와 오리 자체의 진한 향이 부엌 가득이 퍼지자, 더 이상 신병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는지 모두 포크와 나이프를 한 손에 하나 씩 든 채 도미닉이 오리를 자르길 기다렸다. 도미닉이 커다란 커팅용 나이프를 들어, 오리의 배를 쩍 가르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헛소리를 들은 양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잠시 후 연이어 들려오는 난폭한 노크 소리에 이브와 클레어가 현관으로 달려 나가 문을 열었다.


달빛이 희미하게 내리쬐는 현관 앞에는 온 몸이 먼지투성이인 남자가 부러지기 직전의 나무지팡이에 의지한 채 한 손으로 문을 정신없이 두드리고 있었다.


이브와 클레어는 자신과 같은 색의 군복을 입고 있는 남자에게 환영의 표시를 하려고 했지만, 얼굴 여기저기가 피투성이에 긁힌 상처 투성이의 남자의 생각보다 심각한 행색에 겁을 먹고는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도미닉을 향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도미닉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이브와 클레어를 바라보며 고개를 조금 기울인 후 천천히 일어나 현관으로 나갔다. 도미닉 역시 얼굴이 찢기고 멍든 상처투성이인 남자를 바라보며, 잘 왔다거나, 늦게 왔다거나 하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도미닉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나무지팡이를 냅다 집어 던지고는 절뚝거리는 다리로 몇 걸음을 더 걸어 현관 앞에 서 있는 도미닉에게 쓰러졌다.


도미닉이 남자를 끌어안은 채 잔뜩 질린 얼굴을 하고 있자 글로리아가 고개를 빼꼼히 내 밀며 물었다.


“누구예요? 손님이에요?”


“…아마, 신병으로 추정되는 남자….”


“하아, 하아. 이, 이제야 도착했군요. 다리를 삐끗해서 절벽으로 굴러 떨어진 후, 길을 잃어서 하루 종일 헤매고 다녔습니다. 겨우 물어물어 찾아왔는데… 다행이 여기가 맞군요. 세냐르의 중앙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1425부대에 새롭게 배속받은 칼 프레드릭슨이라고 합니다.”


“어, 어서 오게. 마침 자네의 환영회를 열고 있었네만. 몸은 괜찮겠나?”


“아아, 감사합니다…. 몸은 괜찮습니다. 저 때문에 기다리시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칼은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모든 부대원들이 다리를 절뚝거리는 칼을 놀랜 얼굴로 바라보았지만, 칼은 다른 사람의 눈은 신경 쓰지 않고 빈자리에 앉았다. 갑작스러운 칼의 등장에, 거기다가 망신창이인 모습에 정신을 약간 팔고 있던 베티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재빨리 구급상자를 가지고 와 절뚝거리는 다리에 부목을 대고는 붕대를 감아 주었다. 글로리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직 정신이 혼미한 칼에게 말했다.


도미닉은 사과주를 한 컵 가득 부어 칼에게 건네 주었다. 칼은 새하얀 진통제와 함께 사과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저기, 괜찮은 거야. 그러니까, 칼 이등병?”


“넵…! 괘,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발만 삐끗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벌써 도착해 있었을 건데요. 정말 죄송하지만, 하루 종일 굶어서 그러니 식사해도 괜찮을까요?”


“핫! 첫날부터 꽤 당돌하게 이야기 하네? 온통 다친 상처투성이인 주제에.”


“죄, 죄송합니다….” 글로리아가 칼의 말에 가볍게 웃으며 얼굴로 도미닉을 바라보자, 도미닉이 고개를 끄덕였다. 글로리아는 도미닉의 자리에 있는 나이프를 들어 재빨리 오리를 반으로 갈라 살을 발라주었다. 칼은 오리의 뼈에서 살이 분리되는 순간 고기를 낚아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은 크게 다친 것이 아니란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는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오리 요리위로 퍼지던 진하고 구수한 냄새와 따끈한 향기도 사라지고, 오리의 살도 거의 반 정도 헐벗을 무렵, 글로리아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초콜릿케이크를 들고 왔다. 그리고는 오리요리를 치우고는 식탁 중앙에 케이크를 내려놓았다.


“오리요리로만 배를 채우면 베티가 애써 만든 축하 케이크가 아깝게 되잖아. 오리요리는 내일 먹어도 상관없지만, 이 축하 케이크는 나중에 먹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자, 신병. 네가 잘라야지?”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달콤한 사과주를 마신 칼이 기력을 되찾았는지, 글로리아의 호의에 쑥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커다란 나이프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목을 크게 한 번 가다듬고는 말했다.


“아까는 정신없게 해서 죄송합니다. 다시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칼 프레드릭슨입니다! 세냐르의 중앙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와 큰 형님의 소개로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힘든 훈련이든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칼의 짧은 말이 끝나고,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반으로 자르자 모두가 칼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베티가 칼에게서 나이프를 받아 들고는 케이크를 정확히 나누어 덜어줄 때, 이브와 클레어가 금세 이층으로 뛰어올라가 무엇인가 작은 상자를 들고 내려오더니 칼에게 건네주었다. 칼은 그제서야 이브와 클레어를 눈치 챘는지, 둘을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고는 상자를 받아든 후 이브와 클레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선물이니? 이런 것 까지 준비 해 주고. 고마워.”


“뭘! 이제부터 같이 살게 됐으니까 당연한 거지! 고마워 할 필요 없어!”


“그건 저랑 클레어가… 아니, 나랑 클레어가 칼 이등병한테 선물로 주는 거야. 앞으로 잘 부탁해.”


선물을 건네주며 당당하게 말하는 클레어와는 조금 달리 이브는 조금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더니, 이내 가슴을 활짝 펴고는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칼이 조심스럽게 선물상자를 열어보자, 그 안에는 여러 색깔의 알록달록한 유리구슬들과 사탕이 한 가득 들어 있었다. 이브와 클레어는 부끄러운지 꺅꺅 소리를 지르며 글로리아의 옆으로 달려갔다.


칼은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브와 클레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케이크를 먹는 데 열중하고 있던 도미닉은 칼의 질문에 입을 조금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저기, 여기 있는 어린아이 두 명은….”


“아, 우리 소개가 늦었군. 거기 있는 두 명은 이브 일등병과 클레어 일등병. 자네보다 나이는 적어도 선배니 깍듯이 대하도록. 그리고 여기는 글로리아 하사.”


“잘 부탁해. 이등병 씨. 글로리아 로즈. 그냥 편하게 하사님이나 글로리아 하사님이라고 불러.”


“아, 넵! 도미닉 중사님, 글로리아 하사님! 그리고 이브 일등병님, 클레어 일등병님. 방금 전에는 죄송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난 클레어 패터슨! 얘는 이브 워커야.”


“응…. 잘 부탁해.”


이브와 클레어가 손을 내밀자, 칼이 양손으로 받아 악수를 했다. 포크를 내려 둔 채 도미닉의 부대원 소개 계속되었다.


“흠, 그리고 저기 있는 자네와 비슷한 나이대의 베티 이등병이랑 다니엘 상병, 저기 있는 두 명은 데미무어 병장이랑 메데이아 병장일세.”


“앗, 잘 부탁드립니다! 칼 프레드릭슨이라고 합니다.”

“베티 그리핀, 같은 이등병이지만 내가 더 빨리 들어왔으니까 선배야. 그러니까 말 놓을게.”

“다니엘 하우저. 상병이다. 이쪽도 앞으로 잘 부탁한다.”


베티와 다니엘이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하자, 이브와 클레어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칼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가 끝나고, 데미무어가 손짓으로 칼을 부르더니 자신의 옆에 꼭 붙어 마치 숨은 것처럼 앉아 있는 메데이아와 자신을 같이 소개했다.


“데미무어 헤이즈, 이쪽에 앉은 여자는 메데이아. 둘 다 병장이다. 얘가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말을 잘 안하려고 해서.”


“아, 넵! 잘 부탁드립니다.” 


“…….”


칼의 인사에 메데이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칼이 메데이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자, 메데이아는 황급히 데미무어를 벽으로 삼았다. 데미무어는 곤란한 듯 칼의 악수를 받아 주고는 메데이아의 머리를 그리 강하지 않게 쥐어 박았다. 마지막으로 도미닉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신의 소개를 했다.


“내 이름은 도미닉 모리스. 현 1425부대의 대장이자, 계급은 중사일세. 앞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나에게 부탁하도록.”


“멋있어요! 중사님. 역시 대장님 느낌이 팍팍 나는데요? 자, 신병. 마지막으로 크게 대답해야지?”


“알겠습니다!”


칼이 우렁차게 대답하고는 자리에 앉아 커다란 케이크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케이크가 모두의 접시에서 깔끔하게 사라지고, 홍차 한 잔으로 입가심을 하고 있던 찰나 데미무어가 작은 원통모양의 신기하게 생긴 물건을 들고 밖으로 나가더니 10분 후 부엌으로 돌아와 소리쳤다.


“환영회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불 태워주지. 모두 밖으로 나오라고!”


“무슨 일이지? 데미무어 병장이 저렇게 들뜬 적은 자기가 만든 라이플이 엄청나게 크게 폭발했을 때 밖에 없는데.”


글로리아는 반신반의 하며 데미무어를 따라 나갔다. 모두 마시던 홍차를 내려놓고는 데미무어의 말에 따라 기지 앞 작은 도로로 나왔다. 데미무어는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도로에서 성냥을 긋더니,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불을 붙이고는 재빨리 모두가 모여 있는 곳으로 뛰어왔다. 모두가 의아해하며 데미무어를 따라 하늘을 바라보자, 잠시 후 불을 붙였던 곳에서 강한 폭발이 일어나며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하늘 높이 올라가 큰 소리를 내며 터졌다.


데미무어는 자신의 발명품을 보며 만족한 듯 낄낄 웃었고, 모두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불꽃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칼은 불꽃이 터지는 것을 눈에 가득 담은 채 이때까지의 모든 힘든 일을 잊으려고 했다. 도미닉이 불꽃에 젖어있는 칼을 향해 조용히 손을 내밀자, 칼이 도미닉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칼 이등병.” 


“넵!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도미닉 중사님!”



수정사안


말 줄임표를 대폭 줄였습니다.


너무 긴 문장을 짧게 삭제, 띄어쓰기, 혹은 조금 손 봤습니다.


대사를 약간 수정했습니다.


메데이아의 대사 중에 긴 장문이 아닌 한 말 줄임표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아, 어찌 된 일인지 13페이지가 16페이지로 진화 했습니다.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밤 되세요.


오늘의 추천 곡


YUI - Again


tanatos04 님에 의해 2010.07.26 04:16 에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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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선호수야 07/28/11:30
기, 길다... 어쨌거나 잘봤습니다
20 하프물범 07/29/12:31
선호수야//캄사에 또 캄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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