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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달/무제 by 하프물범

휴전으로 끝나버린 발라카야 카탈루 대전 이후의 발라카야 최후방 국경마을 샬루트에 있는 1425부대의 9명의 평범한 이야기. 작가 曰 \'아, 왠지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일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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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하프물범[tanatos04]  
조회 1138    추천 1   덧글 1    / 2010.07.29 00:20:55

덜컹거리는 기차의 흔들림 속에 그리 편하게는 아니었지만 잠을 자고 있던 칼은 누군가 다급하게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칼이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칼의 거친 반응에 상당히 놀란 얼굴의 베티가 별 일 아니라는 얼굴로 웃더니 어색하게 자리로 돌아갔다. 칼은 입가에 흘러내리기 직전의 침을 삼키고는 기지개를 크게 켜고는 칼의 눈치를 조금 살피고 있는 베티에게 말했다.


“어, 어젯밤에… 으아. 잠을 못 잤거든요. 그래서 조금 피곤하네요. 그런데, 무슨 일로 깨우셨어요?”


“아, 응, 그게… 이제 거의 다 도착하는 것 같아서.”


“그런가요? 몇 분 정도 남았다고 하던가요?”


“사, 30분….”


베티가 수줍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칼이 크게 하품을 하고는 옆에 놓은 사과주스를 벌컥 벌컥 마셨다. 이제 더는 잠이 오지 않는지 말똥말똥한 눈으로 가방에서 작은 책을 꺼내 천천히 표지를 넘겼다. 베티가 조용히 눈을 밑으로 깔고 책을 읽는 칼에게 심심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책이야?”


“며칠 전부터 읽고 있던 책이요. 처음에는 별로였는데 읽다보니 재밌어서 계속 읽게 되네요.”


“아, 그래…. 흠흠….”


“저기, 심심하세요?”


“아,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그러니까, 그… 으, 응.”


베티가 손을 거세게 가로젓더니 이내 체념하고는 고개를 숙이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칼은 읽던 책을 덮었다. 책이 탁 소리를 내자, 베티가 별안간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흐음, 칼은 가족이 몇 명이야?”


“…아버지, 어머니, 큰 형님, 작은 형님, 막내 여동생, 큰 형수님, 작은 형수님, 조카 세 명에 개 한 마리까지, 저 까지 합해서 11인 이요. 베티 이등병님은요?”


“응, 나는 아버지랑 오빠 한 명. 어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어.”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 가족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이쪽이니까. 그나저나 엄청 많구나. 지금 바로 집으로 가면….”


“아마, 여동생이랑 어머니, 작은 형수님이 있을 걸요?”


“그래? 후후후, 부럽네.”


베티가 은은하게 웃으며 말했다. 칼과 베티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가끔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즐거운 이야기도 나눴다. 이야기의 흐름이 서서히 무르익을 때 쯤, 기차가 크게 고함소리를 내더니 서서히 속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칼은 기차가 도착한 것 같다며 이야기를 끊고는 가방을 들고 내릴 준비를 하였다.


기차 창밖의 역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마 샬루트에 있는 마을 사람들을 전부 모아놓으면 딱 그 정도 나오지 않을까 하고 칼은 기차에서 내리기 전 생각했다. 사람들의 홍수가 조금 빠지고, 탑승객들이 올라타기 전 칼과 베티는 재빨리 기차에서 내렸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끝에 베티와 칼은 역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세냐르는 칼이 떠났을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여기저기 자동차들이 지나다녔다. 그러나 매우 오랜만에 이런 엄청난 수준의 북적거림을 만난 칼과 베티는 그저 멍하니 역 앞에서 장승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거리에서 칼은 멀리 있는 카페를 발견하고는 베티를 데리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 역시 한산하지 않았지만, 그나마 밖의 갑갑한 공기보다는 조금 트이는 느낌이었다. 칼이 능숙하게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는 커피가 올 때 까지 테이블에 앉아 밖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여전히 사람들로 시끄럽네요. 옛날에도 그랬지만 샬루트에서 살다보니 이런 북적거림이 이제는 낯서네요.”


“나도 그래. 전부 엄청나게 바빠 보여. 왠지, 우리만 이때까지 엄청 편하게 살아온 것 같은거 있지.”


“하하하. 그러네요.”


베티가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흘러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열정에 서서히 머리가 어지러워지던 칼이 익숙한 얼굴이라도 발견 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를 낳은 여성의 몸매 치고는 군살이 하나도 없는 깔끔한 몸매,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흑발이 잘 어울리는 여성이었다. 군복하의를 계량하여 딱 붙게 만든 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여성은 앞머리를 한 쪽으로 몰아 머리핀을 꽂고 있었다.


역 앞에서 차를 세운 여성은 찾는 사람이라도 있는지 수십 명이 왔다 갔다 하는 곳에서 햇살이 눈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눈 위를 살짝 가린 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칼은 재빨리 카페 밖으로 나가더니 그 여성을 향해 전력 질주 하였다. 카페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베티는 칼이 여성에게 말을 거는 것을 봤다.


여성은 칼을 보자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칼의 손을 꽉 잡더니 해맑게 웃으며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그 여성을 데리고 베티가 앉아있는 카페로 들어왔다. 달콤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여성이 베티의 앞에 서더니, 칼이 재빨리 베티에게 그 여성을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작은 형수님입니다. 형수님, 이쪽은 저희 부대의 베티 그리핀 이등병 님입니다. 언제나 저를 잘 돌봐주고 계십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레미나 프레드릭슨입니다.”


레미나가 손을 내밀자 베티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평범한 여성들 보다 조금 더 큼 손에 자신의 손이 파묻히자 베티는 왠지 모를 푸근함을 느꼈다. 레미나는 부드러운 인상으로 단숨에 베티의 마음을 빼앗아갔다. 베티는 저도 모르게 계속해서 손을 잡고 있었고, 레미나가 정중하게 손을 때고는 칼을 향해 물었다.


“흐음, 그럼 이분이 도련님의 여자 친구신가요?”


“네? 아, 아뇨! 저흰 그런 사이가 아니라 단순히 군대의 선후배 사이입니다. 절대 그런 사이가….”


“하하하. 놀라는 모습이 귀엽네요. 장난이에요, 장난. 아마 도련님은 여자 친구 분이 있어도 안 말해주셨을 걸요.”


“아…. 칼 이등병?”


레미나가 입을 살짝 가리고는 호쾌하게 웃었다. 베티는 레미나의 장난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겨우 장난이라는 것을 듣고는 한숨을 푹 내쉬자, 눈앞에서 뻣뻣하게 굳어있는 칼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칼은 잠시 정신이 나갔다 돌아온 사람마냥 깜짝 놀라더니 눈을 두어 번 깜빡 거리고는 재빨리 레미나의 등을 떠밀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레미나는 대체 왜 그러냐며 최대한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 버텼다.


“도, 도련님! 저런 아가씨를 여기 혼자 놔두고 가실 생각이세요? 적어도 가족 분들이 오실 때 까지는 함께 기다려 줘야….”


“그, 그건…. 죄송합니다 베티 이등병님! 먼저 가 보겠습니다!”


“아, 응.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아마 금방 올 것 같으니까요. 그럼.” “만나서 반가웠어요. 다음에 또 만나길 빌게요.”


레미나가 칼에게 등을 떠밀리는 동안에도 꿋꿋이 인사를 했다. 베티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카페 밖의 칼은 레미나에게 따지듯 말하는 듯 했고, 레미나는 손을 저으며 장난인데 뭐 어떠냐는 얼굴로 차에 올라탔다. 베티는 참 즐거워 보인다고 생각하며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는 카페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갈 무렵, 덩치가 큰 남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부리부리한 눈에 한 눈에 봐도 온몸이 단단한 근육으로 덮여있는 것 같은 남자가 정강이 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코트를 입은 채 카페 안으로 들어와 카페를 기웃기웃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베티의 옆에 조용히 섰다. 베티는 그 남자에 대해 눈치 챘는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오랜만이야.”


“형수님! 거기서 그렇게 말 하시면 어떡해요! 베티 이등병님이 곤란하시잖아요!”


“어머, 전 그냥 장난이었는데. 많이 부끄러운 가 봐요? 얼굴이 새빨개졌는데요? 우후후. 언제 한 번 집에 데리고 오세요. 자리는 많으니까요.”


칼은 얼굴을 잔뜩 구긴 채 창밖을 노려봤다.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 한적한 교외로 차가 들어가자, 마치 샬루트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차는 조금 더 달리더니 교외의 커다란 저택에 멈춰 섰다. 레미나가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자, 칼이 재빨리 내려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내 들고는 저택의 문 앞에 섰다.


칼은 초인종 앞에 서서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엄지로 부드럽게 초인종을 눌렀다. 딱 두 번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누군가 재빨리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 무겁지 않은 소리가 그치더니 이내 끙끙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문을 천천히 열렸다. 문 뒤에는 겨우 문고리에 손이 닿는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칼의 얼굴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칼에게 달려가 안겼다.


“삼촌!”


“리비, 잘 있었니? 엄마 말은 잘 듣고 있었어?”


“응! 삼촌도 잘 있었어?”


칼은 리비를 목마 태우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초인종 소리를 들은 엘리시아가 현관으로 걸어오더니 칼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칼은 리비를 조심스럽게 레미나에게 보내고는 울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였다. 칼이 소리 없는 경례를 마치자마자 재빨리 울고 있는 엘리시아에게 다가가 엘리시아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


칼이 엘리시아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레미나가 두 모자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뒤늦게 내려온 레나가 오빠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아직 낡은 검은 군사학교 교복 차림인 자신을 칼이 보기 전 재빨리 위로 올라갔다. 칼은 계단의 끝에 서 있던 레나의 얼굴을 보았지만, 레나가 재빨리 다시 올라가자 고개를 갸우뚱 하며 말했다.


“그런데 레나는….”


“아, 아가씨는 2층에 계실 건데요? 아가씨! 도련님 오셨어요! 빨리 내려오세요!”


레미나가 2층을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레나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레미나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는 2층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레나가 자신이 골라 준 옷을 입고 내려오자 레미나가 피식 하고 웃었다. 레미나는 화사한 하늘색 원피스를 나풀거리며 오빠의 앞에 섰다. 평소처럼 눈을 조금 날카롭게 뜬 채 오빠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돌아왔네. 군대는 절대 가기 싫다고 하더니.”


“레나, 오랜만이야. 뭐, 처음에는 가기 싫었는데… 생각보다 편하더라고.”


“흥!”


레나가 크게 콧방귀를 끼며 고개를 살짝 돌리자, 칼이 부드럽게 레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레나는 칼의 손길을 피하진 않았지만,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화를 내고 있었다. 레미나가 모두를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가 갓 구운 케이크와 홍차를 내 왔다.


칼은 자리에 앉아 달콤한 케이크를 맛보았다. 칼이 케이크를 거의 다 먹어 갈 때 쯤, 누군가 문을 열고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찰랑찰랑 거리는 금발을 휘날리며 부엌으로 들어온 닐은 칼의 옆에 앉더니 다짜고짜 동생의 등을 강하게 내려쳤다. 칼은 입안에 물고 있던 케이크가 목에 걸려 켁켁 거리며 힘겹게 케이크를 넘기고는 닐을 바라봤다. 닐은 칼의 머리를 어지럽게 헝클어 놓고는 말했다.


“이제야 돌아왔구나. 난 네가 탈영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있었네? 앞으로도 거기 있을 생각이야?”


“닐! 탈영이라니…. 도련님한테 실례잖아. 도련님, 죄송해요.”


“아뇨, 형님이 저러시는 건 예전부터 봤으니까요. 그리고 탈영 같은 거 할 생각 없어. 거기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칼이 당당하게 말하자 닐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레나도 포크를 입에 살짝 문 채 칼을 지긋이 바라봤다. 닐은 칼의 케이크와 홍차를 뺏어 먹으며 리비를 안아 올렸다. 칼은 평소와 같은 평화였지만, 왠지 다른 푸근함이 느껴지는 식당 안에서 마음을 푹 놓았다. 칼이 집을 둘러보며 천천히 말했다.


“내가 갔을 때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 뭔가 엄청 바뀌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랑 언니가 바꾸자고 했는데, 아빠가 바꾸지 말자고 해서 손도 안 대고 있어. 오빠가 오면 편히 못 쉰다나 뭐래나. 별 걸 다 걱정하고 있어.”


“그래… 아버지가.”


“도련님 방도 전에 그대로니까 한 번 올라가 보세요. 매일 깨끗하게 청소하고 있어서 먼지는 하나도 없지만요.”


칼은 레미나의 말에 천천히 일어나 가방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레나와 폴의 방 사이에 있는 작은 방문을 열자 포근하고 따뜻해 보이는 이불이 깔린 침대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칼은 침대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는 자신이 있었을 때 보다 더 정갈하고 깔끔해진 방을 둘러봤다. 칼은 우선 책상 앞에 앉아 오랜만에 자신 혼자 있다는 느낌을 온 몸으로 받았다. 따뜻한 햇볕이 곧바로 내리쬐는 의자에 앉아 긴장을 풀고 있었다.


“오랜만에 네 방에 들어오니까 좋지? 나도 처음 휴가 받고 내려왔을 때 그랬지만. 편히 쉬라고. 아, 저녁은 뭘로 먹고 싶은 지 레미나가 물어보라던데?”


“아무거나…. 집에서 먹는 거라면 뭐든지 좋아.”


칼이 조용히 눈을 감고는 말했다. 닐이 긴장을 푼 채 의자에 누워있는 칼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칼의 방문을 닫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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