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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하 Dreamland Online
방공호 by 계수

=전 세계의 명예로운 인류 여러분. 대통령…. 아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감히 고하겠습니다. 도망치십쇼. 살아남아 주십시오. 결코 이 지구에 인간이 살았다는 것을 잊게 하지 말아 주십 시오… 그리고… 어… 그리고….= 대통령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tv가 꺼지고 평범한 광고가 흘러나왔다. 싸늘한 교실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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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계수[rla916]
조회 1072    추천 0   덧글 0    / 2010.08.14 16:00:36

승강기의 기계음에 귀가 젖어간다.

긴장? 아니면 체념일까? 흐느낌도 없는 승강기 안에는 32명의 학생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재원은 32명이나 타도 아무 문제없는 이 커다란 승강기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지금 이런 이변 역시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종말.

정말, 말로 하면 웃음밖에 안 나오는 공상적인 이야기였다.

“덜컹” 하고 무언가 잠기는 소리와 함께 승강기가 멈추고 아이들 사이에 작은 동요가 흐른다. 잠시 후 승강기의 문이 열리고 새하얀 공간이 학생들을 맞이했다.

기분 나쁜 공간이다.

그런 생각이 재원의 머리를 스쳤다.

또각 거리는 소리를 울리며 안내원 이라고 하는 군복의 여자가 나가자 준권이를 필두로 한 아이들이 천천히 승강기에서 내려 걸어갔다.

“이 쪽은 식당. 이쪽은 리빙룸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루 8시간 이상 리빙룸에서 지내야 합니다. 식당의 이용은 지금부터 나누어 드릴 카드로 이루어집니다.”

플라스틱 같은 문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말 하는 여자. 높낮이 없는 컴퓨터 같은 말에 아이들은 숨을 죽였다.

“카드는 식당에서만 사용되며 한 끼의 식사나 자판기를 사용할 수 있는 지폐를 뽑는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됩니다. 카드의 사용은 8시간마다 한 번씩 가능하며 축적은 되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몇몇의 학생들이 그 말을 받아 적었다. 재원은 서하람이 가만히 있는 것을 지켜보며 조용히 군복의 여자를 지켜보았다.

“지폐는 평소 사용하시던 지폐도 사용이 가능하나 빈부의 격차가 불러일으킬 물의를 예상하여 모든 지폐가 똑같은 가치를 지니도록 설정 해 두었습니다. 그럼 카드를 나누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 사람당 한 장 씩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여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조금 웅성거리며 앞으로 나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카드 더미를 손위에 올려놓았을 뿐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한 아이가 서두르다 카드더미를 치자 카드들이 바닥에 떨어진다.

“잠깐. 전부 진정 해.”

준권의 말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과연 준권이. 강한 영향력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반장 행세?”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영호였다.

명백히 말 하면 준권은 부반장이지만 이미 반에선 녀석을 반장으로 생각하는 녀석이 많았고 진짜 반장 역시 인사나 잡무들을 제외한 것은 전부 준권에게 맡기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세력 싸움이냐. 황재원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며 서하람을 바라보았다. 만약 자신이 저 위치에 있다면 가장 먼저 나섰을 것이다. 누가 말 할 것도 없는 중립. 그 가운데 있는 하람이 나선다면 백의 준권도 흑의 영호도 아무도 나서지 못 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도와주려고 할지도 모른다. 두 세력의 중립인 하람이 어느 쪽에 붙느냐에 따라 세력이 고립되거나 번성하거나 둘 중 하나의 결과가 생기는 것이니까.

그럼으로 그가 나서면 평화는 지속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비난을 못 들은 척 한 준권은 카드더미들을 주워 한 사람에게 한 장씩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영호 역시 조금 탐탁하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카드를 받아들었다.

“그럼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주무실 방으로 안내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딱딱한 어투의 군복 여성에 따라 학생들이 이동했다.

아, 어쩌면 여긴 하람의 독재가 가능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재원은 문득 그렇게 생각했지만 금방 생각을 접었다.

그 건 이 공간에 우리 32명의 학생들만 남았을 때의 얘기다. 하지만 저 앞의 군복의 안내원도 있고 이 방공호에 더 많은 사람이 들어 올 가능성 역시 얼마든지 있다.

이런 생각은 그만두자. 지금은 그저 앞날을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런 죽기 직전의 순간. 살아 날 확률은 0.1%. 그냥 제로라고 말 하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작은 희망에 의해 우리는 이 방공호에 오게 되었고 이렇게 된 이상 살아남기 위해. 혹은 죽기 위해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남은 평생. 혹은 3주를 살아야 할지.

재원의 경우엔 죽을 확률이 99.9%인 이 3주 안에 시화와 어떤 시간을 보낼지.

 

잘도 떠들어 대고 있다.

재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하람 일행을 쳐다보았다. 수학여행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을.

재원이 있는 곳은 머큐리라고 칭해지는 방. 군복의 여자는 8명 수용을 위한 방으로써 이곳들을 소개했다. 머큐리, 비너스, 마스, 주피터.

지구만 쏙 빠진 방 이름에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종말을 암시하고 있는 느낌. 기분 나쁘다.

남녀 합방으로 쓰는 것이 행운일까 불행일까. 다행히 시화는 서하람의 뒤를 따랐기에 영호 같은 녀석과 한 방에 있지 않아도 됐지만 그래도 재원은 자신 이외의 다른 남자들이 있는 방에 함께 있는 것이 불안했다. 추악한 독점욕. 재원은 그렇게 생각했기에 애써 의연하게 있었다.

“난 위쪽이다!!”

침대를 발견 한 분위기 메이커 준태가 그렇게 소리치며 2층 침대의 위를 차지하기 위해 뛰어갔다.

“어딜!”

다른 녀석들도 따른다. 서하람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 모습에 재원은 작은 분노를 느꼈다.

뭐 하는 거야 저 녀석.

그런 생각이 느닷없이 떠오른다.

천재.

서하람은 천재이다.

그 것이 과학적이거나 객관적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반 안에서의 그는 그런 존재였다. 멘사에서 찾아 왔다고 하는 IQ160의 천재. 뜬소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근거 없는 소문 따위 세상엔 없는 법이다. 게다가 소문이건 아니건 지금은 아무 상관없다. 만일 하람이 재원 자신과 같이 평범한 범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 것은 이 방공호 안에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의 모든 정의와 이론들과 인식들은 이제 32명의 학생들에 의해서 결정되어진다.

만약 여기서 32명의 학생들이 마법이 있다고 믿으면 마법 같은 허무맹랑한 것도 진짜 있는 것이 된단 말이다.

군복의 여자가 사라진 지금 그 것은 확연했다. 그럼으로 그는 기둥이 되어줘야 했다. 32명 학생들이 편하게 기대어 줄 수 있는 기둥. 마음의 불안과 정신의 안정을 위한 기둥.

그런데 그래야 하 녀석이 싱글싱글 웃고나 있다니. 심각성을 모른다는 말인가?

“후.”

재원이 한숨을 토해냈다.

“왜 그래?”

용케 눈치 챈 하람은 그런 재원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어왔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 자신의 몸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재원은 오한을 느꼈다.

“이런 상황인데… 한숨이 안 나오겠어?”

그 눈앞에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해 봤자 들통 날 것이며 괜히 의식하게 될 뿐이다. 그렇기에 재원은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힘내자. 주저앉아 있어봐야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재원의 어깨에 탁 하고 손을 올린 하람은 그 말을 끝으로 2층 침대가 4열로 노여 있는 공간을 향해 달려가 훌륭하게 윗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하얀 방. 기분 나쁠 정도의 하얀 방이기에 눈이 아플 정도다. 형광등인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인지 모를 것이 천장에서 하얀 빛을 내뿜고 그 빛을 받은 백색 벽은 멋지게 빛을 반사한다.

4열로 늘어선 2층 침대는 문이 없는 방 같은 곳에 있었고 화장실과 샤워실로 보이는 문이 각각 하나 씩 보였다.

생활 할 최저한의 조건은 갖추고 있다는 얘기였다.

재원은 그 하얀 공간에서 허공을 응시하는 두 개의 붉은 눈동자를 찾아내어 다가간다. 멍 한 얼굴에 반쯤 감긴 눈동자. 백색의 눈동자와 백색의 피부. 지나치게 투명한 피부에 혈관색이 훤히 보여 조금 징그럽다는 생각이 든다. 두 손으로 잡아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은 팔뚝. 가녀린 목선에서 위로 이어지는 턱. 그 위로 보이는 붉은 입술이 지나치게 새빨갛기에 소름끼쳤다. 물론 재원이 보고 있는 붉은 눈 역시 그냥 보고 있기만 해도 체내에 흐르는 피가 생각나 기분 나쁘긴 마찬가지였다.

분명 예쁜 얼굴이지만 이런 모습은 조금 무섭다. 생각해 보면 전혀 반 할 이유가 없음에도 재원은 그런 그녀. 시화를 좋아하고 있었다.

“대체 왜인지…”

그렇게 중얼거린 재원은 시화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

한없이 무료해 보이는 표정. 저 위에 있을 학교. 그 교실에서 보았던 얼굴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무표정. 약간 지루한 듯이 반 쯤 감긴 눈이 특히 사랑스러워 보였다.

“툭.”

“…!”

시화가 움직였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다가 그대로 앞으로 걸어 나왔고 그녀의 정면에 서 있던 재원에게 부딪혔다.

“너….”

재원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공허한 눈동자가 허공을 훔친다.

환한 빛. 붉은 색 눈동자를 사정없이 투과하여 그녀를 미친 듯이 괴롭혀야 할 빛. 알비노 환자라면 눈을 짓누르며 고통스러워해야 할 빛.

그러나 그녀는 의연하다. 평소처럼 반쯤 감긴 공허한 눈동자로 어딘지 모를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약간의 경련과 함께 재원은 빠득 하고 이빨을 갈았다.

이럴 수가…. 아아, 이럴 수가. 신이란 놈은 왜 이렇게 잔인한 것인가.

재원의 손 위에 손이 올라온다. 얼음같이 차갑고 눈과 같이 부드럽다. 시화의 손이었다. 손톱 부분이 마치 눈에 피를 흩뿌린 듯 선홍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아파.”

냉정한 어조. 높낮이 없는 말에 재원은 손을 땠다. 절망이 가득한 얼굴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얼굴.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당장에라도 달려와 무슨 일이냐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해 줄 표정.

허나 시화는 해 주지 않았다.

단지 시화의 성격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젠장”

재원은 그렇게 중얼거린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재원의 목 언저리를 응시하는 시화. 그 시선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재원은 조용히 그녀를 침대로 데려가 누인다. 하람은 그 모습을 분명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저 하람도 시화를 대하는 것은 껄끄러워 한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성격과 외관 때문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건 학기 초. 언젠가부터 말도 없고 학교도 잘 나오지 못 하는 시화는 반의 구석이자 더러운 세력의 틀에서 조차 벗어나 있었다.

그럼으로 그녀에겐 파고들 틈이 없었다. 난공불락의 요새. 그녀는 반에서 그런 존재였다. 어느 한 쪽으로도 녹아들지 않는 단 하나의 공평한 여신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생겼다.

그 것도 최악인 이런 방공호에서 말이다.

재원은 결심을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런 곳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시화가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다. 불안해진 재원은 시화와 함께…

방공호를 나가기로 했다.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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