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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공호 by 계수

=전 세계의 명예로운 인류 여러분. 대통령…. 아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감히 고하겠습니다. 도망치십쇼. 살아남아 주십시오. 결코 이 지구에 인간이 살았다는 것을 잊게 하지 말아 주십 시오… 그리고… 어… 그리고….= 대통령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tv가 꺼지고 평범한 광고가 흘러나왔다. 싸늘한 교실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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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29    추천 0   덧글 0    / 2010.08.15 17:54:48

모두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며 재원은 숨을 죽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던 흐느끼는 소리가 잦아든다. 역시 동요했던 것일까. 하긴, 지구 종말이란 말을 듣고 제정신으로 있는 녀석들이 신기한 것이다.

재원은 몰려오는 졸음을 쫒아내며 필사적으로 버텨냈다. 이런 지옥 같은 곳에 시화를 오래 둘 수는 없다. 명백한 약자는 처음엔 동정을 받지만 갈수록 귀찮아지는 법이다. 즉, 시화는 언젠가 귀찮은 존재로 전락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멸시받으며 하인취급 받게 된다. 그런 미래도 떠올릴 수 있다.

이윽고 방 안에 고른 숨소리만 남는다. 일어나기가 싫을 정도로 편안한 자리에서 일어난 재원은 최대한 숨을 죽이며 시화에게로 다가갔다.

어떻게 하지? 흔들어 깨울까…. 그런다고 눈이 안 보이는 시화가 따라와 줄까? 혹시 놀라서 소리라도 지르면 곤란한데….

그런 오만가지 생각을 하던 재원은 각오를 다지고 시화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역시 차갑고, 앙상하게 뼈만 느껴지는 손. 불쌍하다. 그리고 그 전에 사랑스러웠다.

“…왜?”

시화의 차갑고 조용한 목소리. 재원은 일순 얼어붙듯이 멈춰버렸지만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여기서 나가자.”

 

강제로 데리고 나왔다고 봐도 무관할 정도로 그녀의 팔목을 잡고 무작정 데리고 나왔다. 눈이 안 보이는 불안 때문일까, 세계가 멸망한다는 사실에 포기한 것일까. 그녀는 순순히 나를 따라 흰색 복도로 나왔다.

복도엔 아무도 없다. 물론 누가 있다고 해도 멈출 생각은 없었다.

재원은 곧장 복도 끝에 보이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이 방공호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다. 나간 뒤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있다고 해도 돌아올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한 번 결정한 것에 망설임 없이 행한다. 신조이자 재원의 장점이었다.

“미안해 시화야. 하지만… 분명히 이런 곳보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곧장 걸어가던 재원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고 시화의 부서져버릴 것만 같은 팔목에 서서히 힘을 푼다.

그녀에게 이 장소는 안 좋다. 곧 있으면 누군가는 이 상황을 컨트롤 하려고 하기 시작할 것이며 그에 따른 희생자도 나올 것이다. 그런 파란이 이는 방공호에 재원은 그녀를 그냥 둘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각일 뿐인 것이다.

물어야 한다. 그녀에게 한 번은, 의사를 물어봐야만 했다.

“…가자.”

하지만 묻지 않았다. 비겁하게, 더럽게. 이게 시화를 위한 길이라 굳게 믿고 있는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이 있다고.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은 주관적이다. ‘객관적인 입장으로 쓴다.’라며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라 할지라도 일말의 주관은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것이 재원은 예외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재원은 오히려 시화를 자신의 주관에 맡기기로 했다. 비록, 시화가 그것을 원치 않는다 해도…. 자기는 뛰어나지 않다. 시화가 원하는 것까지 생각해서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방법은, 이상적인 것은 재원에게는 무리라고,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틀렸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것인가.

좋아하는 여자애의 최후라면 좀 더 좋은 것으로 해주고 싶다. 이런 방공호 깊숙한 곳에 박혀 보이지도 않는 눈을 가지고 구석에 웅크려 있는 꼴을 보느니, 눈으로 볼 수 없더라도 마지막 지구의 냄새를, 최후로 불어오는 바람을, 태양의 뜨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재원은 씁쓸하게 인정했다. 한심한 위선일 뿐이다. 자기가 아무리 시화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녀의 의견이 들어가지 않은 재원의 이상은 무엇을 하더라도 재원을 위한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재원은 다시 한 번 시화의 손목을 움켜쥐고 똑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만큼 이 방공호는 끔직했다. 소수의 미완성 인간만이 있는 장소, ‘질서’가 확립되어있지 않은 사회가 위험한 정도를 재원은 잘 알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자 시화는 살짝 동요했다. 손목으로 아주 조금, 떨림이 느껴진다.

“위로 가는 거야 시화야. 이런 방공호에 있느니, 차라리 그게 나아.”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시화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역시 불안한 것일까, 하긴, 별로 말도 해본 적 없는 남자애의 주관에 휘둘리는 쪽이 얼마나 불공평한 것인가…. 자신이 생각해도 답답한 입장이었다.

“아니야.”

그렇게 부정의 말을 입에 담는 시화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왔다. 하지만 재원은 꾸욱 참았다. 시화를 위해서. 바꿔 말해 자신을 위해서….

하지만 시화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이 엘리베이터는 위로 가지 않아.”

 

뭐?

재원이 의문을 품는 순간 문이 닫혀버렸다. 쿠웅 하고 무겁게 닫힌 문. 그리고 잠시 뒤 엘리베이터는 조금 부유하더니

 

확실하게 옆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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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직시하지마 피하고 싶은 현실이라면 받아들이지 말고 부숴버리면 되는거야.

방공호 3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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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전쟁 과 아이돌 29편
(가제) 계수나무 -월계- 29편
레루레루! 1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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